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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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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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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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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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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4화 - 4

DUMMY

“……어, 알았어.”


리유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이 돼 전화를 끊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 피곤해 보이는 얼굴. 언짢은 표정. 그는 착찹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아내에게서 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안 그래도 요즘, 딸이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여 걱정이었다. 본인은 나름대로 딸이 사춘기인가 하고 회사의 인생 선배분들게 물어보고, ‘사춘기 여자애들이라면 한창 예민할 때니 그냥 내버려 둬라’ 하는 조언을 듣고 가만히 있었다. 사실 그 편이, 자신에게도 편했다. 회사에서 격한 업무를 하고 야근까지 하고 돌아오는 날이 잦은 요즘, 솔직한 말로 자식들에게까지 신경쓸 여유가 전혀 없다. 그나마 공무원이라 비교적 빨리 퇴근하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신경 써주니 무거운 짐을 덜어낸 기분이었다. 헌데 이런 결과라니.

딸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딸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후우…….”


착찹한 마음에 담배를 뻑뻑 피워댄다. 무엇이 아버지인가. 무엇이 귀중한 딸인가. 딸이 따돌림을 당하는 동안, 아버지라는 자신은 무얼 했는가. 그저 귀찮아서,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핑계로 방관하고 내버려둔 주제에. 그 작은 것이 얼마나 모진 일을 겪었을지, 보지 않아도 선하다. 나오느니 한숨 뿐이라 다시금 담배를 피운다.



“리유는?”

“방에. 틀어박혀 있어.”


심각한 문제인지라, 회사에 말을 하고 일찍 퇴근했다. 바로 거실에서 맞아 주는 와이프에게 말하니 와이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한다. 힘없는 목소리로 보아 아내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인 모양이다. 그는 굳게 마음먹고 와이셔츠도 벗지 않은 체 리유 방문을 노크한다. 대답이 없지만 그는 슬쩍 문을 열고 들어갔다.


“리유야?”

“…….”

“아빠 왔어. 들어가도 되지?”

“…….”


평소, 리유에게 아빠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다. 다른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 응석 부리던 것도 줄어들고, 점점 아저씨가 돼 가는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심지어는 싫어하기까지 하지만 리유는 전혀 변함 없이 아빠에게 애교와 앙탈을 부린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빠짐없이 재잘재잘 얘기하고, 아빠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하는 등 그 누구보다 돈독한 부녀 관계였다. 1년 전 정도까지는. 뭐, 그런 소통이 없다고 해도 여전하게 사이가 좋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막상 지금 부딪혀보니 굉장히 어색하다. 소통의 부재, 그것이 큰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 그. 리유의 대답은 없지만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는다.


리유는 침대 위에 벽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쪼그린 무릎 위로 얼굴을 괴고, 팔로 얼굴을 가린 체 미동도 없이 그대로 돌처럼 굳어 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 찬밥처럼 식어 가고 있는 리유. 그는 잠자코 리유를 쳐다봤다.


“엄마한테 들었어. 학교에서의 일…….”

“……들었어?”

“……응.”


그는 의자에 앉아 리유 쪽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잠시 대답하지 않는 리유는 모기만한 작은 소리로 말한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칫 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말해야만 한다. 아버지로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까지 방관한 자신이 너무도 실망스럽기에 리유에게 직접 들어야 겠다, 그런 생각을 한 그이다.


“……많이 힘들었지?”

“…….”

“후우.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일에 치이고, 리유 말 들어주는 것도 귀찮게 여기고, 곧장 자 버리고. 몇 번이고, 네가 신호를 보낼 때 알아 챘어야 하는데. 미안해, 미안해, 리유야.”

“…….”


그는 솔직한 심경을 말했다. 하지만 리유는 어째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잠시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방. 그는 다시 한 번, 말하려 입을 열려 하는데 문득 리유가 고개를 천천히 드는 게 보인다. 초췌한 눈동자.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그 눈빛에, 그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저게 정녕 자기가 알던 귀여운 딸 리유가 맞나 싶다. 슬픔? 괴로움? 두려움? 그런 감정 하나 없이, 그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리유. 늘 밝고 활달한 딸이었기에, 이런 표정을 짓는 건 기억에 전혀 존재하지 않아 당황스럽다.


“……아빠는 잘못한 거 없어.”

“어……?”

“……다른 애들도, 잘못한 거 아니야. 내가, 내가 잘 못해서…… 그런 거야.”


리유는 아까 고개를 무릎에 묻고 말했을 때처럼 굉장히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눈빛과 마찬가지로 생기 하나 없는 목소리. 약간 쉰 듯한 그 목소리는 슬프다는 표현으론 모자라고 차라리 처량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분명 아내에게 들었는데. 리유가 괴롭힘 당했던 일들을. 그렇게 힘든 일을 당해놓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따돌림을 당해놓고도 자기 잘못이라니.

예전부터 그랬다. 리유는 싫은 게 있어도 싫다고 잘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다른 사람이 다른 게 하고 싶다면 금방 자기 고집을 꺾는, 그런 아이. 지금 이 태도도, 그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명 죽일만큼 싫을 텐데. 자기를 괴롭히는, 그 무지렁이 같은 벌레만도 못한 년들을 죽이고 싶을 텐데. 그 증오심, 그 미움, 모두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 놓고 자기 자신으로 잘못을 돌리고 있다. 그렇게 상처를 쌓고, 쌓고, 쌓아서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는 감정이 격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리유야!”

“……!”


그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리유를 껴안았다. 리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세찬 바람처럼, 그는 거칠게 말했다.


“싫으면 싫다고 해! 아빠한테만큼은 응석 부려도 되니까! 그렇게 감추지 말고, 그렇게 혼자 힘들어 하지 말고……! 같이 풀자, 같이 해결해 나가자, 리유야. 응?”

“……어…… 응……”


리유는 그의 말에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로 작게 대답한다. 그러다 조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한다. 리유의 작은 몸은 조금씩 요동치더니 떨리는 주기가 빨라진다. 곧,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하는 리유. 대성통곡하며 우는 건 아니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조용하게 운다. 그러다 아빠를 쳐다보더니 이내 아이처럼 울음이 터저 앙앙거리며 운다. 그는 그런 리유를 꼬옥 껴안았다. 마음이 타는 듯이 아프다.



다음날,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장을 입고 출근 준비를 했다. 아니,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출근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 리유 담임 선생님과 교장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에. 리유가 그렇게나 잔뜩 우는 것을 보고 다짐했다. 전학 수속을 밟기로.

자기 딸은 잘못한 게 전혀 없다. 그저 따돌림을 한 녀석들이 쓰레기 같은 녀석들일 뿐. 그런 녀석들을 교화할 생각도, 의지도 없다. 애초에 그런 녀석들은 교화를 한다고 착해질만한 녀석들도 아니다. 그런 녀석들을 퇴학시키거나 다른 곳으로 전학 조치를 시키는 게 맞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 그렇게 이미지를 버리면 재기하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에. 딸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 번 따돌림의 피해자로 낙인찍힌 이상, 아이들의 시선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다른 멀리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 새로이 시작한다면 다시 원래대로의 밝은 리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아빠!”

“어, 리유야. 우리 딸, 엄청 예쁘네?”

“……히힛.”


학교에 도착한 그. 막 교장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문득 누군가 옷깃을 붙잡는 게 느껴진다. 몸을 돌려 보니 작은 키의 리유. 교복 입은 모습이 앙증맞게 귀엽다. 교복 입은 모습은 아침마다 보는데, 새삼 이렇게 학교라는 배경에서 딸이 교복을 입고 있으니 더욱 귀엽고 새로운 느낌이다. 그는 말 그대로 아빠 미소를 하고 리유를 내려다본다. 리유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리유는 말한다.


“……전학, 보내려는 거야, 나?”

“흐음.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어. 엄마?”

“……응. 아빠가 오늘 학교 온다고 그래서.”

“하아, 그건 왜 너한테 말해가지고, 알아서 처리한다니까. 나 참.”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리유는 잠시 머뭇거리며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말한다.


“나, 전학 가지 않을 거야.”

“……왜. 뭣 때문에 그런데.”


그는 리유의 말에 잠시 리유를 빤히 내려다본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이내 쪼그리고 앉아 리유와 눈높이를 맞춘다. 리유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금세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 돼 말한다.


“……나 잘못한 거 없어. 아빠 말대로, 난 잘못하지 않았어. 근데 왜 내가 전학을 가? 도망치는 거잖아? 나, 괜찮아, 이 정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 그러니까, 전학 가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다시 애들하고 친해질 거니까……!”

“……괜찮겠어. 할 수 있겠어, 리유야?”

“……응.”


작게 ‘응’ 이라고 대답하는 리유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목소리도 살짝 떨린다. 그는 가슴이 뭉클해 리유를 껴안았다. 마냥 딸을 도피시키려고만 했던 자신이 또 부끄러워진다. 그래, 내 딸이 이만큼이나 컸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시련을 넘겠다고 할 만큼 자랑스럽게 컸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나, 교장실로 들어간다.


리유의 부탁으로, 그는 마음을 바꿨다. 전학 수속이 아닌, 처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으로 조사가 돼 왕따의 주동자 몇몇 녀석들이 정학 조치를 받았다. 맘 같아선 다 전학을 보내고 싶었지만, 학교 사정상 그건 안 된다고 하니. 그 뒤로, 리유가 따돌림을 당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다만 그렇다고 모든 게 잘 해결돼, 리유가 다시 예전처럼 잘 학교를 다니는 건 또 아니다. 아이들은 쉬쉬하며 아예 리유를 건드리지 않은 쪽을 택하게 된 것이다. 주동자 녀석들이 다시 학교를 복귀하는 시점에서, 그건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으리라. 방향만 「왕따」에서 「은따」로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하지만 리유는 묵묵히 감내했다. 모든 걸 솔직하게 아빠에게 말하며, 괜찮다고, 잘 다닐 수 있다고 애써 아빠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는 리유였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됐는지. 그는 그저 한숨쉬며 쳐다볼 따름이었다.



“아빠, 아빠!”

“응?”

“나, 오늘 새 친구 사귀었어!”

“어, 정말?!”


고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리유는 퇴근하는 그에게 어린아이처럼 매달려 잔뜩 달뜬 목소리로 말한다. 그 역시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외투도 벗지 않고 리유의 말을 들었다.


“응! 점심 먹는데, 같이 먹어줬어! 착한 애인 것 같아. 되게 오래간만에 얘기해서, 너무 즐거웠어.”

“그래, 잘 됐다, 잘 됐어. 고등학교 가니까 확실히 달라지는구나. 우리 리유! 친구 생긴 기념으로, 오늘은 닭 시켜 먹을까?”

“응응! 헤헤헤헤!”


리유는 밝게 웃는다. 그 역시 기쁜 마음으로 리유를 끌어안고 하늘로 붕 띄워 주었다. 까르르 웃으며 발버둥치는 리유.



─“뭐, 그 정도라네.”

“…….”


리유 아버님의 말씀이 끝나셨다. 나는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착찹하던 기분이 더욱 안 좋아져, 이제는 아주 기분이 낮게 가라 앉은 기분이다. 성빈이가 왜 쉬쉬하며 말해주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여자애들도, 왜 계속 리유를 멀리하는지 이젠 알 수 있을 것 같아. 리유를 따돌림한 주동자 애들이 누구인지는 이제 중요하지도 않아. 계속 쉬쉬하며 리유를 멀리하는 상황이 계속될 뿐이겠지. 리유에 대한 생각을 하니 조금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자네에게 고맙다고 하는 거네. 리유를 따돌림에서 벗어나게 해 줘서. 다시 밝은 미소를 안겨다 줘서. 정말, 정말 고맙네.”

“아, 아뇨.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해결해준다고 하고 정작 아무것도 안 했구요.”


리유 아버님은 괜히 부담스럽게 정중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난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걸. 오히려 리유한테 막 대하기도 하고, 리유 문제는 아무것도 건들지 않고 내 앞가림하기 바빴는걸. 다만 리유가 먼저 다가왔고, 리유가 먼저 귀여움 받으려고 뀽뀽대서 난 그저 귀여워해준 것밖에 없는 걸.


“아니, 아니네. 한 번은 소통이 단절돼 딸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알 수 있네. 리유는, 자네를 진심으로 좋아하네.”

“……네?”

“리유가 늘 말하거든. 자네 덕분에, 다른 애들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자기 응석을 받아 줘서, 나한테 하는 것처럼 응석 부려도 받아주는 유일한 애가 자네라고.”

“……네.”


아버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생떼를 좀 많이 부리는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마냥 받아주진 않은 것 같은데. 태클도 많이 걸고, 괜히 시비 걸기도 하고, 말하는 것 들어주지 않고 때리거나 한 적도 있는걸. 그리고 굳이 부탁이라면, 희세나 성빈이도 들어주지 않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당부하고 싶은 건 그거 하나이네. 앞으로도, 리유와 친하게 지내주게. 비록 좀 귀찮고, 어린아이 같이 눈치도 없을 수 있지만 누구보다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아이이네. 더 이상, 상처 주고 싶지 않네.”

“네, 알고 있어요. 제가 안 귀여워해주면 누가 귀여워 해주나요, 우리 리유.”

“……그건 좀 열 받는 말인데, 크흠.”

“아하하. 농담입니다. 살려주세요.”


아버님의 말에 나는 싱긋 웃으며 도발하는 말을 한다. 딸바보인 리유 아버님은 헛기침을 하며 슬쩍 나를 노려보신다. 가볍게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잠시 리유에 대해 더 얘기하다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끼익.’


방문을 열고 침대 쪽으로 갔다. 눈이 어둠에 익어, 리유가 잘 보인다. 여전히 쌕쌕 잘도 자고 있는 리유. 항상 느끼지만, 정말 맑고 투명한 리유 볼이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희어.


“읏챠.”


이불 안으로 들어가, 잠자코 누웠다. 리유를 내려다봤다. 귀엽다, 예쁘다. 이런 생각도 들지만 아버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서글픈 느낌이 든다.

그게 더 서글프잖아, 정말 슬픈데도 꾹꾹 슬픔을 누르고 있는 과거가. 평소엔 그렇게 밝은 미소 지으면서 누구보다 활기차게 지내는데. 그게 다 예전 슬픔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참 슬프다. 슬쩍 손을 내밀어 리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으음…… 응?”

“아, 미안. 깼어?”

“으흥흥흥흥.”


웬만한 폭풍우에도 끄떡하지 않을 리유인데, 살짝 머리카락과 볼을 쓰다듬은 것으로 잠이 깼다. 움찔 놀라며 말했다. 리유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낮게 웃는다. 뭐야, 무섭게.


“누워, 웅이 너도.”

“어, 그래.”


리유는 내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깨긴 깼지만 아직 잠에 취한 목소리로, 헤롱헤롱한 느낌으로 말하니 평소보다 훨씬 귀엽다.


“이히히히. 같이 자니까 좋다.”

“그래?”

“응응! 웅이 냄새 나.”

“아, 냄새나? 미안.”

“아니아니, 좋아.”

“…….”


리유의 말에 나는 겨드랑이 쪽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리유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싱긋 웃으며 말한다. ‘좋아’ 하고 말하는 건 혀 짧은 귀여운 발음으로 해서 정말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리유도 내 냄새 맡고 있었구나. 점점 더 변태가 돼 가는 것 같은데.


‘쪽.’

“엇…… 뭐 하는 거야.”

“이히히히. 좋아서.”


리유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내 볼에 뽀뽀를 한다. 서로 마주보고 나란히 누워 있었기에, 어떻게 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기습으로 당하게 됐다. 예전에도 한 번 당했지만, 이런 게 몇 번 경험했다고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일은 아니다. 그나마 나랑 리유 둘만 있어서 덜 창피하지만. 얼굴이 상기되는 게 느껴진다. 리유는 방실방실 웃으며 말한다. 후훗, 귀여운 녀석.


“리유야.”

“웅?”

“2학기 때엔, 꼭 내가 바꿔줄게.”

“에에…… 뭐얼?”

“아니, 아니야. 혼잣말.”

“에헤헤. 이상해.”


굳은 목소리로 말하니 리유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짧은 사이 다시 잠이 몰려오는 모양이다. 반짝 떠졌던 눈도 급격하게 작아져선 거의 감긴다. 나는 얼버무리며 넘겼다. 리유는 웃으며 거의 잠들기 직전이다.


‘쪽.’

“…….”

“아하하. 하하.”


나는 잠자코 그런 리유를 보다 살짝 리유 볼에 입술을 갖다 댔다. 부끄러워하는 리유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리유는 그대로 잠들었다. 덕분에 괜히 나만 창피해서 미친놈처럼 혼자 웃는다. 하지만 리유는 다시 잠들어 깨지 않는다. 아, 창피해 죽겠네.


방학이 끝나면, 확실하게 결판을 지어야지. 리유에 대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나도, 이제 자야겠다. 눈을 감고 반듯이 누웠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리유를 본다. ……다시는 리유 얼굴에서 웃음을 뺏기지 않게 하겠어. 그렇게는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


작가의말

...벚꽃이 피기 전까지, 나의 님은 어디에 있단 말이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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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6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3.24 22:52
    No. 1

    딸이랑 한 침대에서 자는 놈팽이를 보고도 아버지가 저렇게 순순하다니...
    오랜만에 밀린 것들 잘 읽고 갑니다
    예전부터 생각하던건데, '리유' 라는 이름이 제가 젤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지라, 늘 미묘한 기분으로 글을 보고 있습니다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24 23:21
    No. 2

    이 결혼(?)을 찬성하시는 아버지이기에... 그보다 리유라는 이름을 또 ㅆ는 분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뭐 그리 희귀한 이름은 아니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3.24 23:10
    No. 3

    역시 리유가 정의네요. 응응 리유 짱!
    원래 인간은 결함이 있어야 아름다운 법이라고요. 사랑스럽잖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24 23:22
    No. 4

    네, 그렇지요. 가슴도 없고 개념도 없지만... 뭐, 귀여우니 그만이겠죠?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3.24 23:11
    No. 5

    음냐 희세찡의 반응도 살펴보고파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24 23:23
    No. 6

    하악하악 희세쨔응!!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3.25 02:05
    No. 7

    아름다운 희세!!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25 20:30
    No. 8

    희세는, 희세는...!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지키미삼
    작성일
    14.03.25 06:44
    No. 9

    성빈이 알면 눈물바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25 20:38
    No. 10

    성빈이는 울보니까요. 눈물을 닦아줄 남자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광인입니다
    작성일
    14.03.25 19:14
    No. 11

    하렘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25 20:38
    No. 12

    ...기분 탓이겠죠, 웅도가 무슨 마성의 남자라고 하렘을 거느리겠어요, 하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4 18:08
    No. 13

    부럽다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전서리
    작성일
    18.08.19 17:40
    No. 14

    역시..끄적끄적.

    리유
    폭풍우가 와도 안깨는'척'했지만,
    아니 안순수할확률이100프로다.
    경우의 수1.
    입에 뽀뽀한다. 깻다. 모른척한다.근데 얼굴이 포커페이스다.
    경우의 수 2.
    쿨쿨..잘잔다.
    근데 웅도가같은침대에서 슥 빠져나가는데 안깨는게 이상하지? 깼다.
    말하는걸 약간 들었다.
    웅도가 온다.
    자는척한다.
    스윽..일어나기좋은타이밍이라생각해 일어난다.사실자긴그때도 못일어나겠지만.
    이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3 yu******
    작성일
    20.01.26 22:49
    No. 15

    작가님 사랑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3 yu******
    작성일
    20.01.26 22:49
    No. 16

    너무 잼나다 ㅠ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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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9 24화 - 3 +8 14.03.23 1,983 40 17쪽
98 24화 - 2 +14 14.03.22 2,777 42 25쪽
97 누락된 편입니다 +11 14.03.21 2,371 44 1쪽
96 24화. 깊고 어두운 그 때. +11 14.03.20 2,656 44 23쪽
95 23화 - 5 +21 14.03.19 2,581 80 18쪽
94 23화 - 4 +7 14.03.18 2,343 52 19쪽
93 23화 - 3 +24 14.03.17 2,644 44 22쪽
92 23화 - 2 +9 14.03.15 2,986 116 21쪽
91 23화. 여름방학의 바다!! - 1 +13 14.03.14 2,727 48 20쪽
90 22화 - 4 +18 14.03.13 2,236 78 22쪽
89 22화 - 3 +16 14.03.12 2,428 43 20쪽
88 22화 - 2 +8 14.03.11 2,405 39 19쪽
87 22화. 그가 고자가 된 이유. - 1 +13 14.03.10 2,913 99 19쪽
86 21화 - 4 +21 14.03.09 2,685 51 22쪽
85 21화 - 3 +9 14.03.08 2,601 50 19쪽
84 21화 - 2 +7 14.03.07 2,297 45 20쪽
83 21화. 힘내세요, 선생님 - 1 +13 14.03.06 2,221 52 18쪽
82 20화 - 4 +15 14.03.04 2,827 61 17쪽
81 20화 - 3 +17 14.03.02 3,028 52 20쪽
80 20화 - 2 +19 14.03.01 2,583 52 19쪽
79 20화. 큰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1 +13 14.02.28 2,445 53 18쪽
78 19화 - 4 +27 14.02.26 2,886 118 24쪽
77 19화 - 3 +24 14.02.25 3,564 118 23쪽
76 19화 - 2 +31 14.02.25 3,477 102 21쪽
75 19화. 뒷풀이! - 1 +15 14.02.24 2,326 57 20쪽
74 18화 - 4 +15 14.02.23 2,143 58 17쪽
73 18화 - 3 +21 14.02.23 2,172 58 19쪽
72 18화 - 2 +19 14.02.22 2,243 49 20쪽
71 18화. 시험공부를 여자애랑 하면 과연 집중이 되나? - 1 +31 14.02.22 2,437 54 18쪽
70 17화 - 4 +19 14.02.21 2,374 5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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