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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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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0,491

작성
19.01.27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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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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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비수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산디아는 누군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소리가 난 곳을 보자 부스스한 몰골의 메칼로가 짐을 뒤적이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떴어, 단장.”

산디아가 깬 것을 알아차리고 메칼로가 말했다. 창을 힐끗 보자 과연 햇빛이 환했다. 산디아는 약간 당황해서 일어났다.

자기 전에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고 빌기는 했지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거의 정오까지 자버린 모양이었다. 창문 아래에서는 에밀리오가 벽을 향해 돌아누워서, 누구든 깨우면 죽여 버리겠다는 기세로 자고 있었다.

“먹을 거라고는 소금 한 조각이 전부군. 이것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토비아스 뿐일걸. 난 고기가 필요해.”

짐을 뒤지던 메칼로가 불평했다. 이리저리 움직여 몸을 풀던 산디아가 그를 돌아보았다.

“밖에 나가서 고양이라도 사냥해 올까요?”

“여관 주인에게 뭐라도 만들어달라고 해. 그쪽이 네 농담보다는 낫겠지.”

그럴 생각이었던 산디아가 조용히 웃으며 방에서 나갔다.

여관 주인인 노파는 한참 후에 와서 커다란 나무 그릇에 담긴 정체불명의 스프와 방금 구운 것 같은데도 딱딱한 빵 한 덩어리를 내놓았다.

지저분한 그릇에 담긴 멀건 스프였지만 냄새만은 그럴 듯해서, 절대로 안 깰 것 같던 에밀리오도 뭉그적대며 일어났다. 물론 탁자에 놓인 음식을 본 다음에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갈등했다.

“나는 식당을 찾아보겠다.”

결국 에밀리오는 기분 나쁜 표정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기분이 나빠진 이유는 형편없는 음식에 잠시나마 유혹을 느껴서일지도 몰랐다.

오전에라도 클레타의 용병들이 마을에 들어왔을지 모른다. 에밀리오가 돌아다니다 용병들의 눈에 띄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이 스친 산디아는 소년을 부르려고 했지만 메칼로가 손짓으로 막았다.

“아무도 안 왔다니까 내버려 둬.”

“예?”

아무도 안 왔다고 누가 알려줬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할 때 메칼로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경계는 그쯤 하고 들어와. 너도 슬슬 쉬어야 할 거다.”

마치 그의 말에 대답하는 것처럼 천장 위에서 약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붕의 널빤지를 밟는 소리다. 소리가 지붕 가장자리로 이동하더니 창문 위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 산디아가 저도 모르게 일어섰다.

‘누구? 스텔리안?’

잠깐 혼동이 와서 그녀는 입을 열지 못했다. 맞는다고 생각했으나 그녀가 기억하는 스텔리안이 아니었다.

보다 나이 들고 크고 날렵해진 청년이었다.

‘아니, 저 옷은 분명······.’

옷도 무기도 모두 스텔리안의 것이다. 이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유순한 얼굴도 두 사람에 대한 스스럼없는 태도도 물론 스텔리안인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앳되었던 소년의 얼굴은 훨씬 갸름해졌고 큰 눈과 뚜렷해진 윤곽이 우아하게 자리 잡았다.

가까이 오자 전보다 키가 커졌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옷소매가 조금 위로 당겨지고 넉넉했던 외투도 이제는 몸에 딱 맞았다.

‘고작 며칠 만인데······.’

아무리 빨리 성장한다고 해도 몇 달은 걸려야 했을 변화가 며칠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산디아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활이 커졌군. 모양도 바뀌고.”

메칼로가 말했다. 어쩐지 들끓는 듯한 목소리였다. 산디아가 목소리에 이끌려 활보다 먼저 그를 쳐다보았다. 메칼로는 스텔리안의 활을, 실로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에밀리오와 칼을 나누던 때와 거의 근접한 얼굴이다. 전장에서나 이따금 볼 수 있는, 어딘지 무섭게도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

‘헬리온 클라우스······.’

그를 정말로 닮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얼굴이다.

메칼로의 말대로 스텔리안의 활은 그 모습이 확실히 변해 있었다. 장난감처럼 자그마하고 화려했던 소년의 활은 좀 더 길고 날렵해졌으며 색은 한층 어두워졌다. 어두우면서도 표면이 매끄럽게 빛났다.

나무라고 생각했던 표면이 쇠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 강인한 활짱 위로 섬세하고 유려한 선이 얽혀 흘렀다. 나뭇가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덩굴처럼 보이기도 하는 무늬였다.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변한 것은 처음 봐요.”

스텔리안이 제 활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수줍은 말투는 전과 다름없었지만 목소리가 한층 청아했다.

“과연. 이제 좀 쓸 만한 활이 되었는걸.”

메칼로의 말에 스텔리안의 어깨가 움칫 들썩였다. 그가 잠시 숨을 쉬지 않고 있다가 이윽고 “예.”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어린 얼굴이었다.

“충분히 먹고 쉬어 둬. 네 휴식이 끝나면 바로 출발할 테니까. 밤이든 새벽이든 상관없이.”

“예.”

“예?”

스텔리안의 대답과 산디아의 물음이 동시에 나왔다. 산디아가 나무라듯 이어 말했다.

“메칼로 님. 지금 쉬어야 할 사람은 스텔리안이 아니라 메칼로 님입니다.”

“보다시피 난 멀쩡해. 못 믿겠으면 시험해 봐도 좋고.”

산디아는 에밀리오가 없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저 말을 들었다면 두 말 않고 칼을 둔 곳으로 달려갔을 테니까.

“며칠 안에 후발대가 로레단에 도착할 겁니다.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안 돼.”

메칼로가 딱 잘라 거절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거절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던 산디아가 이유를 물었다. 메칼로는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다.

“토비아스 자식.”

짜증내는 말투로 그가 대답했다.

“나한테 말 안하고 멋대로 다른 놈들과 계약한 것 같다.”

조용히 남은 음식을 먹어치우던 스텔리안이 메칼로의 말에 놀랐는지 오물거리던 입을 멈췄다.

“토비아스가 그럴 리······ 다른 놈들이라니, 누구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산디아가 부정하다 말고 신중하게 물었다.

메칼로는 대답하기 전에 침대로 가서 털썩 누웠다. 멀쩡하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아직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누워서 천장을 쏘아보며 메칼로가 입을 뗐다.

“우리가 클레타의 수도를 떠날 때, 토비아스가 계약내용을 알려줬지? 뭐랬더라? 그 자식.”

“첫째 츈 지앵이 안전할 것. 둘째 션을 벗어난 후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산디아가 대답했다.

“첫 번째 조건은 츈 지앵을 밍 야즈에게 안전하게 데려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조건을 들었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지. 츈 지앵이 션을 떠나기 싫어하거나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가려고 할 수 있으니 그런 상황이 되어도 절대로 보내지 말 것······이란 뜻이라고.”

같은 생각을 했었던 산디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란 말입니까?”

“네가 보기에는 어땠지? 츈 지앵이 션으로 돌아갈 것 같던가?”

“확실히 그렇게는 안 보였습니다만······.”

“그러면 밍 야즈는 왜 츈 지앵이 돌아가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건······.”

입을 열었지만 산디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굳이 의뢰 내용에 넣어야 할 정도였다면 션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성을 떠난 이래로, 츈 지앵에게 그런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밍 야즈가 잘못 생각한 걸지도······.”

산디아는 궁색한 대답을 하다 말꼬리를 흐렸다.

“의뢰 내용을 반대로 생각하면, 밍 야즈는 아버지가 클레타로 온 다음 다시는 션에 돌아가지 않기를 바랐다는 뜻이다. 말이 안 되잖아.”

“말이 되려면, 츈 지앵이 클레타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의뢰인이어야 하겠군요.”

산디아의 말에 메칼로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보았다.

“펠릭스가 츈 지앵을 데리고 가는 경로를 대충 알지?”

산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로를 들었을 때 그녀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밍 야즈가 션의 사신을 만나면 언제라도 그곳을 떠나게 될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 그들은 츈 지앵을 데리고 사신이 지나갔던 길을 따라 수도로 갈 작정이었다. 그렇게 하면 밍 야즈가 수도를 떠나더라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펠릭스가 택한 곳은 그 길과 정 반대였다.

“동쪽으로 이동한 다음 마세라를 경유해서 개선대로를 탈 작정이라고 했습니다.”

개선대로란 라미스에서 클레타의 수도로 이어지는 잘 닦인 도로였다. 라미스와 국경지대에서 자주 분쟁이 일어났던 백여 년 전에 식량 수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용 도로다. 클레타의 수도에서 거의 동쪽으로 쭉 이어지는 길이었다.

“말로 열흘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보름이나 걸리는 길로 돌아가겠다는 거지. 밍 야즈가 언제 클레타의 수도를 떠나 션으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결국 두 사람을 만나게 하기 싫다는 거다.”

메칼로는 말한 다음 눈을 내리떴다. 조소에 가까운 희미한 웃음이 눈가에 걸렸다.

“밍 야즈가 션으로 떠나게 된 지금, 츈 지앵을 클레타의 수도에 묶어두고 싶어 하는 건 누구일까. 더 쉽게 말해줘? 머지않아 션의 왕이 될지도 모르는 밍 야즈의 아버지를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산디아는 어두운 표정이 되었고 스텔리안은 아까부터 입안에 넣고 씹지 못하던 음식물을 저도 모르게 꿀꺽 삼켰다.

“토비아스 녀석이 바로 그 사람과 거래를 했다는 거다. 우리에게는 츈 지앵을 밍 야즈에게 안전하게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서 말이야.”

“이유가 있을 겁니다.”

산디아가 굳은 낯으로 말했다.

“물론 이유가 있겠지.”

메칼로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언제나 내가 모르는 이유로 내가 모르는 일들을 곧잘 꾸미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 한 말과 다른 일을 내 뒤에서 하고 있다면 나한테 들키지는 말아야지.”

산디아도 그 말에는 뭐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메칼로 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입을 다문 그녀 대신 물은 사람은 스텔리안이었다. 메칼로의 시선이 며칠 만에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한 시메트라의 신자에게 닿았다. 그의 변함없이 양순한 눈은 산디아와 같은 혼란도 메칼로와 같은 짜증도 없이 고요했다.

“츈 지앵을 밍 야즈에게 데려가야지.”

메칼로가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토비아스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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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9.01.27 09:39
    No. 1

    오. 스텔리안 업그레이드(...?)라니 이럴수가. 저렇게 눈에 보이게! 게다가 무기도 같이 성장하다니 마치 RPG같은 느낌적 느낌이군요. 정말 쓸만해진 느낌은 보너스(아니 이쪽이 본편?인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2.01 04:46
    No. 2

    지금까지 스텔리안이 너무 동안이었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온 느낌? 어쨌든 스텔리안의 변화는 거의 변태(성체와는 형태, 생리, 생태가 전혀 다른 유생의 시기를 거치는 동물이 유생에서 성체로 변함. 또는 그런 과정.)에 가까운 것 같아요. >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9.01.27 12:08
    No. 3

    시메트리 신자으 능력인가요?
    알을 깨고 한차례 성숙되는개 내면뿐 아니라 외면까지 적용된다는게 신기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2.01 04:47
    No. 4

    내면이 성숙하지 않으면 외면도 동안이라는 점에서, 어쩐지 저는 이런 능력이 있다면 성숙하기 싫어질지도 모르겠어요. >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9.01.29 09:20
    No. 5

    스텔리안이 자라서 안타깝기도하고 기쁘기도 하고 싱숭생숭해요..
    토비놈 아무리 거래관계라고 해도 뒤통수 치는거 아니다 이눔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9.02.01 04:47
    No. 6

    그쵸. 귀여워서 괴롭혀주고 싶은 스텔리안 꼬맹이가 사라지니까 어쩐지 서운하죠?(님, 그거 아냐...)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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