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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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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5.08.0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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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21쪽

03화. 여자애랑 놀지만 데이트는 아닙니다.

DUMMY

“……사, 사진 찍기.”

“……어.”

처음 찍는 스티커 사진기. 긴장한 듯 나는 아무 의미도 없이 스크린 위에 뜬 글자를 읽는다. 긴장되기는 희세도 마찬가지인지 약간 떨리는 의도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스크린을 눌러 사진 찍는 상태로 돌입한다.

「방긋! 웃으시고, 여기 보세요!」

“…….”

“…….”

기계에서 소리가 난다. 웃어? 웃으라고? 이런 어색한 상황에서, 웃으라고?! 희세랑 단 둘이서 스티커 사진 기계 안에 있는 이 이상야릇미묘한 상황에서?!

머뭇거리며 시선을 희세에게 돌린다. 오늘따라 한참 예쁘게 꾸미고 온 희세. 작정하고 예쁘게 꾸민 희세는 정말 너무 엄청 예뻐서, 어떻게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것 같다. 희세 역시 묘하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기계를 바라보더니 ‘3,2,1!’ 하는 카운트다운 소리에 갑자기 내 쪽으로 붙는다. ‘웃어, 멍청아!’하고 말하면서. 바싹 붙어서 사진을 찍는 희세의 기습행동에 나는 당황한 표정밖에 지을 수 없다. 그러다 다음 번 사진은 어떻게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툭’

“……하아.”

“……왜 한숨이야. 잘 나왔는데.”

“……잘 나와서…….”

한참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뱉어내듯 밑의 구멍으로 사진을 내려보내는 기계. 말없이 사진을 들어 희세에게 한 장 주고 바라본다.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두 사람. 엄청 예쁜 희세와, 그에 걸맞진 않지만 최대한 나름대로 꾸미고 온 나. 누가 봐도, 한참 좋은 감정 오가는 초기 연인 같은 모습이다.

한숨을 푹 쉬는 나를 보고 희세는 불퉁한 목소리로 묻는다.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한다. 사진이 잘 나와서 이런다. 죄악감과 서글픈 마음 때문에. 이렇게나 예쁜 희세와 즐겁게 추억으로 남을 사진을 찍었지만, 사실은, 사실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잘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그럴 때마다…… 리유가 떠오르니까. 아아…… 아아악~~!!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웬일이야. 안 자고 일어나 있고.”

“왠지 모르게 그냥 일어나져서.”

“그러면 뭐해, 일어나자마자 게임질인데.”

“에헤헤.”

평상시의 자연스런 아침. 간만에 스스로 눈이 떠져 게임을 하고 있으려니 교복 차림의 희세가 찾아와 말한다. 심드렁한 투로 대답하며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하고 있는 나. 희세의 비꼬는 말에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제는 너무 자연스런 일상이라, 희세가 아침마다 찾아와주는 거.

“……또 다른 여자애 데려다 놀았다거나.”

“무, 무슨 소리야 그건! 그럴 리가 없잖아, 이 아침부터!!”

“그럴 리가 없는데 저번엔 왜 그랬을까.”

“아니 그건! 유진이가 말도 안 하고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 변명을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지만 내 눈도 안 보고 신경도 안 쓰고 그런 말 하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정웅도씨.”

“……아이. 됐다 됐어. 그러니까 그건!”

희세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며 지나가는 투로 말한다. 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말이다. 게임을 계속하며 나는 더듬거리며 얼른 대답했다. 저번 유진이가 아침에 왔을 때 얘기하는 것이다. 희세는 계속 마음이 남아 있는 듯 냉기가 풀풀 풍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어이없고 억울하다. 그건 진짜 그런 게 아니잖아, 오해라구! 억울한 투로 말하니. 희세는 지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말투로 말한다. 한숨을 푹 쉬며 혼잣말한다.

Alt + F4. ‘지금 탈주하시면 경험치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이후 탈주자들과 빠른 대전 후에 영웅 리그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쩌겠냐, 꼭 그렇게 되는데. 엄마도 그렇고, 왜 사람들은 꼭 내가 집중해서 움직일 수 없는 게임을 할 때 중요한 말을 건다거나 밥을 먹는다거나 하는 걸까. 현실은 저지불가인 스킬이 없으니까.

“그, 유진이가 멋대로 찾아온 건 정말 죄송합니다. 100번 고쳐 말해도 할 말이 없지유. 하지만 그건! 내가 부른 것도 아니고, 유진이랑 무슨 이상한 짓거리를 한 것도 아니고! 유진이가 멋대로 찾아온 거라니까! 그 아침에!”

“……이상한 짓거리?”

“이상한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왜곡하지 말고! 알잖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왜 괜히 꼬장 피우려고!”

“꼬장? 후후훗. 진짜 꼬장 피워보는 거 보여 줘?”

“아, 아뇨. 제가 100번 잘못했습죠. 부디 선처를.”

가만히 장난스런 존댓말로 시작해서 천천히 변명을 한다. 희세 눈을 똑바로 보면서. 교복 차림의 희세는 머리카락을 한데 묶어 깔끔하고 날카로운 느낌이다. 요즈음 어째서인지 머리를 꽤 묶고 다니는 희세라서. 조금 노안(?)인 희세인지라 이렇게 단정하게 하면 꼭 회사원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희세는 눈을 치뜨며 나를 바라본다. 특별한 부분만 캐치해서 또 무엇인가 판을 벌이려는 모양이다. 이제 그런 꼬장은 지겨운 나이기에, 절로 비명 지르듯 소리 지르게 됐다. 희세는 피식 웃으며 나를 본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희세의 미소. 무섭다. 다시금 공손한 태도로 얼른 바꾼다. 우선은 고개를 숙이는 게 나을 때도 있으니까.

“……너는 나한테 이상한 짓 했었잖아.”

“……! 아, 아, 아니 그건!”

“아아. 그 때 너무 아팠었는데. 처음이니까 당연하려나.”

“무, 무, 무슨……! 나, 나, 나는 그런 짓은 전혀!”

“……하지 않았어?”

“…….”

한 마디 말에 순식간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희세. 얼굴에는 장난스런 미소와 여유가 느껴진다. 반면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흙빛이 되고 입안은 모래를 한 스푼 퍼먹은 듯 깔깔한 느낌이 된다. 절로 더듬거리는 말과 갈 곳 잃은 무의미한 손짓, 약한 강도의 지진이 난 동공.

그 때 그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아니 없었던 거야. 그건. ……어쨌든 확실한 흑역사이기에, 감히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런 끔찍한 일을, 희세는 칼을 뽑아 들 듯 꺼내어 나에게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유일한 오점, 유일한 아킬레스건인 그 때 그 일을.

방구석에 앉으며 말하는 희세에게, 나는 계속해서 말을 더듬으면서도 어떻게든 만회하고자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 구차한 변명들은 역시나 희세의 한 마디 말에 갈 곳 잃은 궁색한 말들이 되었다. 어쨌든 칼자루를 붙잡고 있는 것은 희세니까. 그 일에 있어서.

“왜 그랬을까. 남자애들은 그래? 여자애가 누워있으면 알아서 그렇게 돼? 본능?”

“……그, 그 때 그건 분명히 네가 먼저 ㄱ─”

“아아, 내가 유혹해서 그런 거다? 좋은 변명이네. 아주 좋은 차별이고. 보통 음란한 여자애가 꼬리를 쳐서 그렇게 되는 거지? 여자애들이 짧은 치마 입은 게 잘못이고, 여자애들이 행실을 잘못한 게 잘못이고?”

“……그, 그런 게 아니라…… 하아.”

희세는 샐죽 웃으며 나를 보고 말한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공손히 자리에 앉은 채 대답한다. 내 기억에 따르면 분명히 희세가 먼저 내 위로 올라와서…… 하는 변명을 할 수도 없이 끊긴다. 아니, 확실히 할 건 확실히 해야지! 흑역사지만 그 침탈과정(?)은 명확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희세가 저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뭐, 시간 없으니까 얼른 씻고 나와. 밥 먹어야 할 거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까불지 말고.”

“넵.”

한숨을 쉬며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명령하듯 말하는 희세. 마나님을 모시듯 꾸벅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이어지는 희세의 말에 나는 더욱 꼬리를 내린다. ‘그것’에 관해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최약자 신세다. 얼른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함.”

‘Ah! Ah! Fuck……! Ah↘Ha↗ Fuck!! OOh! C…… Cumming! I’m Cumming~~~!! Fu……ck!‘

“너 이런 거 좋아하는 구나.”

“야야야야야!!”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온 순간. 문을 열자마자 요란한 성인 여성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전형적인 서양 신음(?)이다. 동양 신음(??)은 저렇게 강렬하고 능동적이지 않지. 동양 신음은 뭔가 애간장이 타면서 간절한, 수동적이면서 듣는 이를 호소하는 듯한 매력이 있는 반면 서양 신음은 아주 강렬하고, 스스로의 쾌락을 위해 움직이는 듯한 강한 주체성과 능동성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신음학개론(?) 강의하고 있을 게 아니라. 희세가 내 콜렉션을 건드렸다.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던 희세인데, 어째서 내 컴퓨터를 뒤지고 있는 것일까. 가뜩이나 아까 전 과거 얘기 때문에 야릇한 기분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내 개인 폴더 직박구리까지 뒤지다니. 용납할 수 없다. 그럼 뭐 어쩔건데. 황급히 달려가 소리 지르며 끌 수밖에 없잖아.

“뭐, 뭐 하는 거야!”

“야동 본 놈이 성 낸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

“그런 속담 없어! 왜! 야동 볼 수도 있지, 남자가 변태인 게 뭐가 나빠!”

“얼씨구.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 그렇게 변태가 되었어요? 저런 신음 해줬으면 좋겠어? Ah, Fuck!”

“하지마! 제발! 이거랑 그거랑은 다른 거잖아! 사람 취향하고 실제랑은 다른 문제라고!!”

“아~ 그럼 뭐, 어느 정도 참고만 할게.”

“뭘 참고하는데?!!”

대뜸 화를 내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하는 희세. 이건 내가 화를 낼 만한 일이 맞잖아.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는 건데, 야동은! 희세는 무표정한 얼굴로 적절하게 ‘그 일’을 꺼내 또 내 입을 다물게 한다. 어떻게든 변명을 한다. 희세에게 야동을 들킨 사실 자체는 그리 창피하지 않다. 그 정도로 허물 없는 사이가 됐으니까. 하지만 ‘그 일’에 대해 언급한 뒤에 야동을 공개당하는 건, 정말 너무 어색하게 되는 일이잖아! 희세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뭔가 피곤해진다.

“크리스마스가 됐으면 좋겠어.”

“푸후우웁!!”

“응, 크리스마스 좋지~ 어, 웅도는 왜 갑자기? 사레 들었어?”

“으헉, 아니, 크흡. 잘못 삼켰나봐.”

“크리스마스 돌아왔으면 좋겠다─”

“……크흠.”

점심시간. 나, 희세, 성빈이, 미래 넷이서 간만에 학교를 나와 분식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재잘재잘 얘기하는 여자애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나. 문득 희세는 대화주제에 전혀 맞지 않는 뜬금없는 크리스마스 얘기를 꺼낸다. 나도 모르게 먹던 밥을 뿜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라면, 분명 ‘그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성빈이와 미래는 금방 바뀐 대화주제에 적응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나는 굉장히 불편한 심사다.

“크리스마스에 남자애랑 같이 데이트하면 좋을 것 같아!”

“근데 우린 여고잖아. 아마 안 될 거야.”

“우으으…… 아니야, 분명 가능할 거야!”

“누구는 되겠네. 여자친구 있으니까.”

“아…… 하하하.”

성빈이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하는 미래. 성빈이도 잠깐 풀이 죽은 표정이 되었다 금세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희세는 불퉁한 태도로 나를 보며 말한다. 뭔가 불안한 느낌에 허허 웃고 가만히 희세를 본다.

“……크리스마스 되면 작년에 이어서 하려나.”

“……!”

“뭘 이어서 해?”

“그런 게 있어. 아, 거기서 더 나가면 얼마나 더 하려나.”

“무슨 말이야? 설마, 야한 얘기?! 에에~”

“에이, 다른 얘기겠지.”

“……크흠, 흠.”

희세는 넌지시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한다. 명백히 의도한 발언. 주어도 목적어도 없지만 나는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 못 알아듣는 건 중간에 있는 성빈이와 미래. 눈치는 없지만 이런 쪽 감은 좋은 미래만은 섹드립을 치려고 실실 웃으며 희세를 바라본다. 성빈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린다. 나는 연신 헛기침을 하게 된다.

“말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허엄.”

“으응? 글쎄. 누가 손해 보는지. 폭로전 해 볼까 한 번?”

“뭔데 뭔데? 진짜 둘이 뭐 있지! 봐, 지금 둘 표정 심상치 않잖아!”

“에…… 무슨 일 있었어 웅도야?”

“아니, 아니이! 전혀! 그런 게 아니라, 그…… 다른 정치적인 문제야.”

“정치적인?”

“에에~ 오빠는 위선자에 기만자니까 전혀 믿기지 않거든요! 저는 무조건 희세 편입니다! 베에에~!”

은근한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보며 말을 꺼내는 나. 희세 또한 지지 않고 나를 마주보며 말한다. 나와 희세만 알아듣는 말을 하니 미래는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옆에서 부추긴다. 성빈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묻는다. 얼른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희세는 가만히 입을 다문다. 미래는 옆에서 깐족대며 희세 옆으로 붙으며 말한다.


“애들 앞에서 얘기하면 안 되지!!”

“왜, 내가 말하겠다는데. 말하면 안 돼?”

“아, 안 되지 당연히! 그런 건!”

“……흣.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데. 개인의 말을 제한할 권리가 너에게 있어?”

“그 드립은 내 껀데! 아니아니, 그건 아니지만!”

점심을 다 먹고, 희세만 따로 불러서 얘기하는 중. 오래간만에 둘이 얘기하는 구석 쪽 계단 앞. 희세는 팔짱을 끼고 여유로운 태도로 말한다. 내가 볼 때에, 희세는 결코 ‘그 일’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말은 안 하지만 다만 내가 불안불안해하고 나와의 대화, 나와의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거하기 위해 일부러 ‘간보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지만. 심증은 있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는 확실한 물증은 없다.

희세 또한 나와 많이 지내서 내가 쓰는 개드립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희세가 그런 말 하니까 진짜 대한민국 헌법 뒤져서 ‘헌법 몇 조에는……’ 하고 말할 것 같다.

“그그그…… 말하면 너도 창피하잖아?! 나만 창피하고 나만 나쁜놈 되는 게 아니라?”

“그런 논리 때문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몇 십년동안 입 한 번 뻥긋 못하고 입 다물고 사셨던 건데. 늘 그렇잖아, 성폭력 당하면 왜 폭행의 피해자인 여성들이 아무 말 못하고 가해자들은 설치고 다녀야 하는데? 나도 그런 거야?”

“서, 서, 서, 성폭행이라니! 그, 그, 그런 건!!”

“아아. 그럼 합의 하에 진행된 일이니 화간이다?”

“가, 가, 가, 강간은 아니지!”

“그럼 왜 정웅도 군은 그렇게 말을 더듬으실까요.”

“……으으!”

나는 도저히 말을 꺼내기 난감해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그렇잖아? 나만 창피한 일은 아니잖아! 그러나, 이어지는 희세의 말에 나는 더욱 당황해서 사색이 될 수밖에 없다. 성폭행이라니?! 내가, 이 나이에 성폭행범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잠깐만, 희세 고등학생이니까, 나는 고등학생을 성폭행 한 거니까, 잡혀가면 아청법까지 적용되는거야!? 나도 고등학생, 희세도 고등학생인데 왜?!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어떻게든 대답한다. 희세는 항상 여유가 있다. 대화의 칼자루는 희세가 쥐고 있으니까.

“……원하는 게 뭐냐! 대체 무언데 아침부터 날 이렇게 갈구는 거야!”

“어머. 세상 모든 일을 그렇게 ‘거래’ 의 방식으로 파악하시나보네요, 정웅도 군은. 속물이셔라.”

“으아아! 네가 미래야?! 그런 식으로 야금야금 놀리는 건 너답지 않아! 좀 더 희세면 희세답게……!”

“그럼 웅도도 웅도답게 얼른 짐승으로 변해서 나를 덮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 학교에서. 교복 좋아해?”

“아아아아!! 아니라구, 아니야!!”

“아, 그럼 서양?”

“아아아악!!”

돌직구로 정면돌파해보려 하지만 희세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괜히 나희세가 아니다. 논리도, 명분도, 실제 말솜씨도 희세가 월등해서 어떻게 답이 나올 수가 없다. 능력치 낮은 캐릭터로 이기려고 해도 컨트롤(?)이 되어야 어떻게 이기지, 컨트롤까지 딸리면 그냥 그대로 지는 거잖아. 내가 지금 그 꼴이다. 이어지는 야금야금 깐족거림과 비꼼, 섹드립의 3중공격에 나는 버티지 못하고 소리 지르며 머리를 쥐어 싸매고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정신공격은 더 이상은 naver…….

“장난인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후후후.”

“……장난이 지나치잖아. 나, 그 때 일 진짜…… 진지하게 생ㄱ─”

“그렇게 느끼하고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지 마. 되게 기분 나빠지니까. 그런 식으로 느글거리게 말하지도 마. 짜증나니까.”

“변명의 기회 정도는 줘라 좀! 얘기를 꺼내지를 말던가!”

“그런 식으로 성폭행 가해자가 떳떳한 세상이 되는 건 너무너무 싫은데. 정말, 대한민국은 썩어 빠졌다니까. 피해자는 입단속 하고 다녀야 하고.”

“아아아아아니라고!! 나는 그런 범죄자가!”

‘장난’이라는 말에 나는 겨우 멘탈을 회복하고 일어나 희세를 본다. 진지한 눈빛으로 진지한 태도로 말을 하려는데 내 말을 끊으며 말하는 희세. 더욱 짜증을 돋운다. 결국 대화의 결론은 ‘정웅도는 성 폭행범’으로 이어진다. 나는! 진짜! 아무 짓도 안 했어! ……아무 짓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희세는 짜증내는 나를 보고 피식 웃는다. 만족한 듯한 눈웃음. 충분히 예쁘건만 오늘따라 정말 얄밉게 보인다.

“데이트.”

“……하아?”

“내일, 데이트 해. 나랑.”

“데이트라니……?”

계속되는 모함으로 지친 나에게, 한 단어를 말하는 희세. 곱씹어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퍼뜩 희세를 바라보며 되묻는다. 다시금 말하는 희세. ‘데이트’ 라는 단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상황과 맥락이 전혀, 데이트라는 말이 나올 것이 아니어서 다시금 물어보는 것이다.

“……바보야? 여자애가 먼저 데이트 하자고 말해야 알아먹어? 데이트 하자고, 내일.”

“……아니, 그걸 모르겠다는 게 아니라. 나…… 데이트는 못 할 것 같은데.”

“……리유 때문에?”

“어.”

얼른 선을 긋는다. 다른 건 몰라도 리유가 엄연히 내 여자친구로 있는데 데이트라니. 그것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 일’을 걸고 넘어진다 해도. 그런 식으로 협박한다면 차라리 내가 리유에게 다 말하고 무릎꿇고 빌던가 하지, 내 스스로 그렇게 해 버리지. 나는 노예가 아니다.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에게 협상은 없다! ……그럼 희세가 테러리스트? 어느 의미로는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럼. 데이트……는 그렇고. 어쨌든 같이 놀아. 그러면 다음부턴 절대, ‘그 일’에 대해선 꺼내지 않을 테니까.”

“용어를 바꾼다고 데이트가 데이트가 아닌 건 아니잖아. 어쨌든, 리유가 있는데 데이트는. 안 돼.”

“……한 번도 안 돼?”

“…….”

희세는 애써 태연한 태도로 말하지만 나는 더욱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더는 안 되는 거니까, 그런 일은. 문득 희세는 애처로운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목소리까지 뭔가 애틋하게 느껴진다.

“……리유랑 사귀면, 더 이상 나랑은 놀지도 못 하는 거야? 친구로서도? 그럼, 내가 전화해서 리유한테 허락 받으면 놀 수 있어? 그래도 되?”

“아니아니, 그건 무슨 해결법인데.”

“리유 때문이잖아. 정 그렇다면 리유한테 물어볼게. 데이트 해도 되겠냐고. 그럼 되는 거야?”

“아니이…… 그게 아니잖아, 문제가. 리유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

“리유 얘기 먼저 꺼낸 건 너거든?!”

“아아아이…… 그 얘기가 그 얘기가 아니잖아.”

서글픈 표정으로 말을 잇는 희세. 그러다가 문득, 따지는 듯한 태도로 돌변한다. 나는 당황해서 대답한다. 더욱 강력하게, 리유에게 물어보겠다고 주장하는 희세. 얼토당토 않은 말이다. 더 불안한 건, 리유라면 분명 천진난만하게 ‘어! 나 대신 웅이랑 재미있게 놀아!’ 하고 대답해줄 것 같다는 것. 그래서 얼른 막아서지만 희세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결국 논리의 덫에 빠져버린 나. 단호하게 선을 그어도 어째 이렇게 꼬인다.

“……아, 알았어. 그러면, 내일 같이 놀자. 대신에, 리유가 됐던 미래가 됐던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당연하지. 내가 미쳤어.”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도, 더 말 안 해주겠다는 거. 그것도 약속이야?”

“음. 알았어. 내일 확실히 데이트만 한다면.”

“……어째 ‘그 일’을 거래로 이용하는 건 네 쪽인 것 같은데.”

“시끄러. 어쨌든 약속 한거다. 내일 10시까지, ○○ 앞으로.”

“……네네.”

애처롭게 애원하다가도 금세 약점을 파고드는 희세의 말에는 어떻게 이길 재간이 없다. 결국 백기를 들고 희세 말대로 하게 되는 나. 방긋 웃으며 좋아하는 희세. 아닌 척 하려 하지만 얼굴에 퍼진 기쁨이 내가 봐도 읽히는 것 같다. 씁쓸한 기분이다.

그래, 이건 리유에 대한 배신 같은 게 아니야. 리유가 유학 가 있는 동안 다른 여자애랑 히히덕 대는 게 아니야. 다른 여자애도 아니고, 리유도 잘 알고 있는 희세인걸. 이건 ‘거래’야. ‘그 일’에 관련된 거래.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냥 친구랑 노는 거잖아. 영화 보고 밥 먹고. 노래방도 가려나. 어쨌든. 그냥 노는 거니까, 그냥 노는 거니까 괜찮아. 음……. 솔직히 죄책감 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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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7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8.04 06:44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8.04 22:45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5.08.04 17:24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8.04 22:46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5.08.05 01:09
    No. 5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8.05 18:01
    No. 6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Personacon Kestrel
    작성일
    15.08.05 08:59
    No. 7

    여기,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8.05 18:02
    No. 8

    노답 웅도가 그렇죠 뭐.

    정웅도는 주위에 여자가 5명이어도 자기는 결백하다고 우기는 녀석이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5.08.05 11:08
    No. 9

    웅도는 정말이지 나쁜 놈이네요
    하지만 기왕 나쁘게 된 거 대놓고 나빠지는 것도... 좋을지도 ^^;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8.05 18:02
    No. 10

    웅도가 나쁜 게 아닙니다. 주위 여자애들이 나쁜......
    아아, 성차별주의자로 잡혀가겠네요. 이런 말 했다가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화제
    작성일
    15.08.05 18:32
    No. 11

    항상 좋아요 숫자가 낮네요ㅠㅠ애독자로서 아쉬울 따름ㅠㅠ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8.05 23:04
    No. 12

    괜찮습니다! 우학변은 충분히 선방하고 있거든요! 다른 소설은 이 소설 추천수정도로 조회수가 나와요! 아하하하하핳하하!!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5.08.05 20:34
    No. 1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8.05 23:04
    No. 1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5.08.23 00:53
    No. 15

    나쁘지 않네..나쁘지 않네...? 학교에서avi.....!?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8.23 11:18
    No. 16

    여성에게도 엄연히 저런 성적 취향이 있을거라 저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전서리
    작성일
    18.08.19 20:48
    No. 17

    후우..스포하자면, 리유편은 유진싫어하고, 희세편은 유진 좋게봐도 됩니다.
    죽어죽어!!저주할거야!!으아아앙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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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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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01화 - 2 +6 15.07.13 1,417 18 18쪽
148 01화. 멀어진다 +8 15.07.12 1,565 26 21쪽
147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2 +27 14.12.24 1,659 29 28쪽
146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1 +8 14.12.24 1,522 24 25쪽
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144 32화 - 5 +28 14.08.13 2,004 49 18쪽
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142 32화 - 3 +13 14.08.09 1,814 2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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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30화 - 2 +17 14.07.06 1,754 49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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