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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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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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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07.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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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21쪽

01화. 멀어진다

DUMMY

우리 학교의 변태 한 놈 이어서


-01화부터 이어집니다.



































“흑! 히끅, 후우, 흐우우.”

“이제 가야 되는데, 그만 뚝.”

“흑, 그치만, 흑.”

어린아이처럼 울며 토라진 표정으로 말하는 리유. 가뜩이나 원체 동안인 리유인데, 이렇게 울고 있으니 더욱 어린애 같다. 그리고 내 마음은 더욱 찢어질 것 같다. 가장 슬픈 건 리유 본인이겠지만. 남자니까, 울면 안 되지 마음먹지만 눈물이 핑 돌 것만 같다.

“……울어?”

“안 울어.”

“흑, 우, 울지 마, 웅이는 흑! 상남자잖아?”

“……하.”

“……흑!”

리유의 물음에 울컥, 더욱 감정이 끓어오른다. 주르르 눈물 한 방울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아, 울면 안 되는데. ‘남자여서’ 라는 알량한 이유가 아니라, 내가 울면 리유가 더 슬퍼할 테니까. 눈물범벅의 리유는 자기가 펑펑 울고 있는 것은 생각 않고 내 눈물을 닦아주며 훌쩍거린다. 더욱 마음이 찢어진다.


안녕하신가, 힘 세고 강한 아침!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웅도. 수컷 웅(雄)에 길 도(道) 자를 쓰는, 멋진 남자 정웅도다. 그리고 지금은 병X 찌질이 그냥 정웅도. 여자친구를 멋지게 전송하기는커녕 눈물이나 보이고. 그치만 진짜, 너무 슬프잖아.

“가. 비행기 놓치겠다.”

“……흥. 흑! 갈게.”

“연락하고.”

“응! 흑!”

눈물을 닦아주며 말한다. 리유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말한다. 최대한 의젓하게 말하려는 티가 절절히 느껴진다. 그래도 어색하고 앳된 모습이 보인다. 그것 때문에 더 애처로워 보이는 리유다.

조금이라도 더, 망막에, 기억에, 리유를 담아두고자 작디작은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풀이 죽은 듯 처진 어깨.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리유는 뒤돌아 나를 보며 안녕한다. 다시 눈물이 고이고 얼굴은 빨개졌지만 애써 웃음 지으며 나에게 인사한다. 이를 악 물고, 이번엔 울지 않고 마주 웃어주며 손을 흔들었다. 리유의 모습은 그대로 사라졌다.

“하…….”

갔다.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듯 공허하다. 리유가 없으니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연장인지,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공허함이…… 모든 것을 감싸는 것 같다.

‘까똑.’

「웅이야 나 가서 진짜 열심히 할게 울지도 않고 떼 쓰지도 않고 히이랑 비니처럼 멋진 여자애가 돼서 올게 그러니까... 후 그래도 가기 싫긴 하닼ㅋㅋㅋ 많이많이 좋아해 많이많이 사랑해 웅도야 ♡♡♡」

“……하아아아.”

착찹한 마음에 쉬이 공항을 떠나지 못 하는 때, 리유에게 메시지가 왔다. 더욱 아련해지는 마음. 리유가 이렇게 길게 보낸 적은 없는데. ‘ㅋㅋㅋ’는 명백히 억지로 보낸 게 보여서 더욱 처량하다. 마지막 ‘사랑해 웅도야’를 보니 겨우 마른 눈물샘이 다시 터질 것 같다. 사귀고 나서도 늘 ‘웅이’ 라고만 부른 리유인데. 사귀고 나서 한 번도 ‘사랑해’ 라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답장을 보낸다.

‘휘이이이유우우우───’

“……갔나.”

나도 나름대로 길게길게 써 톡을 보냈지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륙하는 비행기. 공항 밖에서, 나는 그 비행기를 보며 허탈한 마음으로 한 마디 했다. 리유에게 보낸 메시지는 숫자가 지워지질 않는다. 보지 못한 것일까. 연신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공항을 나선다. 더 있어봐야 아쉬운 마음만 그득할 것 같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사정들이 있었는데.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일단 무슨 일인지는 말을 해줘야 알아먹지, 우리도.”

“흐아아앙─! 어떡하면 좋아? 응??!”

잔뜩 흥분한 상태의 리유. 나에게 매달리듯 엉겨붙어 울먹이는 투로 말한다. 단순한 장난으로 보이진 않지만 일단은 진정시키기 위해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그래도 리유는 영 흥분상태를 감추질 못한다.

“하, 아주 난리도 아니네. 왜, 아주 이런 데서 키스도 하고 풍기문란죄로 잡혀가지 그래.”

“아니…… 그런 게 아니잖아. 그리고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여기서 키스 한다고 잡아가진 않지.”

“……그래서 여기서 지금 하겠다는 거야?!”

“아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어떡해 어떡해! 으앙!”

“에효.”

팔짱을 낀 채 잔뜩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팍팍 내며 짜증스레 말하는 희세. 애꿎은 나를 흘겨보며 짜증을 부린다. 적절한 대답을 해도 금세 꼬투리를 잡으며 나를 들들 볶는다. 이런 와중에도 리유는 발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답이 없네. 오직 성빈이만이 ‘진정해 리유야, 무슨 일인데?’ 하고 의젓하게 리유를 달랜다. 오오, 역시 성빈이. 유치원 선생님 같은 자상함.


뭔가 굉장히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은데, 다들. 오랜만이라고 할 것도 없다. 겨울방학, 방학이라고 해도 보충수업으로 방학 아닌 방학이니까. 간신히 보충수업이 끝나고 열흘 정도 주어진 진정한 방학.

나는 오래간만에, 자취방이 아닌 원래 집으로 돌아가 집안에 틀어박혀 뒹굴거리고 쉬고 있었다. 정말 간만에 고향의 남자 친구들과 남자답게 놀기도 하고, 잉여롭게 집에서 서로 떠들기도 하고. 사실, 말이 좋아 여자애들하고 노는 거지 마음만은 남자애들하고 노는 게 훨씬 편하고 좋거든. 희세나 미래 같은 애들한테 치이는 걸 생각하면, 어휴.

문제가 있다면 여자친구인 리유. 열흘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리유는 불만스러운지 자꾸 톡으로 전화로 불만을 표시하지만 어쨌든 이해해준단다. ‘열흘 뒤면 어쨌든 학교 오니까, 그동안은 고향에서 푹 쉬어’ 하고 말하는 리유. 리유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배려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

그렇다, 나는 리유와 사귀고 있다. 그것도 무척이나 잘. 생에 처음 사귀는 여자친구, 그건 리유도 마찬가지라 굉장히 서투른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찌보면 딱히 달라진 것도 없어 보인다. 사귀기 전부터 손을 잡는다거나 포옹한다거나, 심지어 뽀뽀까지(!), 자잘한 스킨십 같은 건 이미 거쳤으니까. 서로 알아가기? 이미 다 알고 있어. 리유의 성격이 어떤지, 행동패턴이 어떤지,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이런거 저런거 전부. 리유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한 것 같다. 잘 싸우지도 않고, 또 의외로 싸워도 리유가 삐치지 않고 금세 이해해주는 편이다. 그건 정말 의외였다. 여자친구가 되기 전엔 마냥 떼쓰는 어린애인줄 알았는데, 막상 사귀어보니 키도 덩치도 작은 리유지만 마음만은 바다처럼 넓은 것이다. 뭐, 싸운다고 해봐야 리유의 오해인 경우가 상당히 많지만. 희세랑 논다거나, 희세랑 데이트한다거나, 희세랑 같이 밥 먹는다거나, 희세랑…… 죄책감 드네.

뭐, 길게길게 설명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리유랑 잘 사귀고, 겨울방학 시작, 보충수업 끝난 후 진정한 방학 열흘. 집에서 쉬고 있는 때, 다급한 전화가 한 통 왔다.


『우우우우! 웅이야!』

“으으으응 리유 왜!”

조금 닭살 돋지만 나는 리유가 저렇게 부르면 똑같이 요상한 말투로 따라 부른다. 애칭 정도는 아니지만 리유가 ‘웅이’라고 부르는 건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나는 낯간지러워서 차마 애칭은 못 붙이겠고.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의 리유다.

『큰일났어 큰일! 어떡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와서 얘기해줘! 히이랑 비니한테도 듣고 싶어! 그러니까! 으앙 어떡해 나?!』

“자자자, 좀 천천히. 너무 한 번에 많이 얘기해서 못 알아 듣겠잖아.”

『으아아아아앙─!!』

대번에 들어도 멘탈붕괴 상태인 것 같은 리유. 허둥지둥 잔뜩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원래 리유가 두서없이 말하는 편이고 말도 빠른 편이긴 한데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조곤조곤 진정시키려 해도 이어지는 괴성에 대화불능상태에 빠졌다. 다 좋은데 여자친구와 소통의 장애를 겪고 있다. 흐흠.


─최종적으로 지금 상황의 결론을 내리자면, 나, 희세, 성빈이, 리유 넷이서 카페에 앉아 있다. 리유가 ‘비상소집!’ 이라면서 불러 모아서. 나만 부른 줄 알고 꽤나 차려입고 왔는데, 희세와 성빈이까지 있으니 묘하게 창피하다. 성빈이는 진심으로 리유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생각해주는 모습이고 희세는 별달리 신경쓰지 않고 다만 짜증나있는 상태 같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바쁜사람 세 명이나 불러 모았어?”

“응, 그러니까…… 흐으.”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말해봐.”

겨우 진정된 리유. 희세는 팔짱을 끼고 고고한 태도로 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세의 도도함은 더욱 기품을 더해가는 것 같다. 잘 말을 못 하는 리유. 대체 무슨 일인지 나까지 감질맛 나서 못 견디겠다. 옆에서 성빈이가 리유를 북돋아주며 대답을 유도한다.

“너는 남자친구란 새끼가 성빈이보다 못 달래주냐? 하, 기가차서.”

“아니, 그…… 그렇네. 죄송합니다.”

“웅이한테 뭐라 하지 마!”

“네네, 됐네요 됐어.”

문득 희세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할 말이 없는 나. 내가 성빈이처럼 소통 전문가(?)도 아니고, 남자애 여자애란 차이도 있는데. 어쨌든 변명의 여지가 없기에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다. 이러면 도리어 희세가 관광당한 꼴이 되기에 희세가 당황하게 된다. 이 와중에 리유는 발끈 희세에게 화를 낸다. 마음이 훈훈해진다. 희세는 짜증난다는 듯 손을 흔들며 고개를 돌린다. 뭔가 개판인데.

“……나, 말하기가 너무 힘들어. 아아, 미안 히이야. 말할게, 그치만…… 후우.”

“아 진짜 답답해 죽겠네. 짜증 안 낼 테니까 천천히라도 말해봐. 대체 뭔데.”

“……응.”

리유는 잠자코 말을 잇다가 희세의 눈치를 보며 말한다. 너무 답답했는지 희세는 고개를 내저으며 얼굴을 찌푸리고 말한다. ……그게 짜증내는 거에요 하고 속삭이고 싶지만 그랬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는다. 남자친구인데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닌가 싶지만 뭐, 나도 살아야지.

“……나, 2학년 때부터 학교 안 다니면 어떡해?”

“뭐?!”

“……무슨 뜬금없는 말인데. 자살이라도 하게?”

“야, 무슨 자살을……!

결단을 내렸는지 리유는 작게 한숨 쉬고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말한다. 전혀 의외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남자친구인 나조차 처음 듣는 말이다. 그보다는 이런 식의 얘기는 전혀 안 했는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얼른 개학해서 웅이 보고싶다─’ 하는 말 들었었는데.

희세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시니컬한 말을 내뱉는다. 원래도 딱히 리유에게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내가 리유와 사귀고 난 뒤로는 대놓고 빈정대고 짜증을 내는 희세. 리유는 또 바보처럼 그런 희세에게 별다른 소리도 못 하고 미안하다 할 뿐이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지은 죄가 있으니.

“무슨 일인데. 정말 못 나오는 거야? 뭣 때문에 그런 말 하는 거야?”

“……그게.”

“아 진짜 뭘 말 할 거면 똑바로 말 하던가! 어디 죽으러 가? 해외로 멀리멀리 떠나? 예전부터 내가 말했잖아, 여자애라고 우물쭈물 대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고! 밖에서 여자라고 개무시 당하기 싫으면!”

“……응, 해외로 나가……!”

“……?!”

성빈이는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리유에게 묻는다. 우물쭈물 대는 리유의 눈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캐치한 모양이다. 더욱 입을 다무는 리유. 희세는 다시금 성질이 폭발해서 짜증스럽게 빠른 속도로 말한다. 희세 성격 상 이렇게 미적지근한 리유의 화법이 화날 만도 하겠지.

리유는 희세의 다그침에 절벽에서 밀쳐진 것처럼 얼른 대답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듣고 있는 나머지 세 명에게 모두 충격을 안겨주었다. 순간적으로 아무도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무슨.”

“……무슨 말이야 그게?”

“정확히 뭔 얘기인데!”

“아, 으, 읏…….”

짧게 첫 마디를 떼는 희세. 정색하고 진지하게 물어보는 나. 왈칵 화를 내듯 감정적으로 소리치는 나. 세 명의 동시 질문에 가뜩이나 말을 잘 못 하고 있는 리유는 더욱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아빠가, 어렵게 유학 가는 거 결정하셨다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서…… 그래서, 모두에게 물어보려고.”

“…….”

“……후.”

리유는 간신히 모기만큼 작은 소리로 말을 잇는다. 잠자코 듣고 있는 나를 포함한 세 사람. 어떻게 쉽게 대답할 만큼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확실히, 리유가 말하는 것을 망설일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중요한 얘기니까. 리유는 울상이 돼 모두를 쳐다보며 눈치만 살핀다.

“유학을…… 어디로 가는데.”

“호주.”

“너…… 영어는 할 수 있어?”

“……전혀.”

의외로 먼저 상세한 사항을 물어보는 것은 희세. 리유는 단답형으로 간신히 대답한다. 나는 착찹한 마음이 들어 차마 리유에게 어떤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성빈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리유를 바라본다.

“리유 너는 어떤데? 네가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잖아?”

“……그치만, 아빠가 어렵게 준비했다고 하고, 돈도 많이 든다지만 내가 가서 열심히 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하시니까, 어린애처럼 거절하기도…… 싫어. 그건 싫어.”

“……음.”

성빈이는 시종일관 진지한 투로 물어본다. 진심으로 리유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유의 대답은 의외로 성숙한 말. ‘어린애처럼’ 단순히 가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하기는 싫다는 것이다. 조금은 성장했다고 봐야 하나, 의젓한 리유의 모습은. 나는 가만히 어떤 말을 꺼내지도 못 하고 입술을 깨물고 있다.

“……모두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어. 나는, 잘 모르겠어. 그치만 친구들 얘기 듣고, 생각해서 결정하고 싶어.”

“…….”

그래서 모두를 불렀구나. 리유답지 않은 어른스런 처사인데.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은 남자친구인 나한테 최우선적으로 알려주지. 그 정도는 남자친구로서 바랄 수도 있잖아. 이러면 나는 그냥 희세, 성빈이랑 동급(?)인 셈이잖아. 리유의 말에 모두는 침을 꿀꺽 삼킬 뿐 섣불리 말하지 못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지 성빈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나는, 가야된다고 생각해.”

“가……?”

잠자코 말문을 떼는 사람은 희세. 특유의 예쁜 눈을 강렬하게 뜨고, 성빈이만큼 진지한 눈으로 리유를 보며 말한다. 리유는 금세 겁에 질린 모습으로 ‘가……?’ 하고 말한다. 이런 모습을 보니 결코 외국으로 리유를 보내고 싶지 않다.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잖아. 솔직히, 이런 꽉 막힌 고등학교 수업 듣느니 해외에 나가서 유학하는 게 훨씬 좋은 경험일 것 같다. 영어가 느는 것은 1차적인 얘기이고, 네 세계가 넓어지고 네가 성장하는 거니까. 꼭 영어 때문이 아니라, 너 개인적으로도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거니까, 유학은.”

“……응.”

“대신, 부모님이 뼈빠지게 부치는 돈이니까 절대 가서 흥청망청 놀고 그러면 안 되고 정신 차려서 해야겠지. 외국인하고 얘기 많이 하고,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고. 할 수 있겠어, 그런 거?”

“……조금, 자신은 없는데.”

희세의 의견은 지극히 정석론. 유학의 긍정적인 점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그건 충분히 매력적인 얘기이긴 한다. 말이 안 통하긴 하지만, 어쨌든 좋은 경험임에는 틀림 없으니까. 희세 말대로 영어 뿐만 아니라 리유의 일생에 있어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 지도 모른다. 지금 고등학생 나이의 유학은 그만큼 영향력이 크니까.

“나는, 조금 반대야.”

“가지 마……?”

잠자코 희세의 의견을 듣고 있던 성빈이. 생각을 정리한 듯 총명한 눈으로 말을 잇는다. 이번에는 구원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 리유. 방긋 웃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물론, 가서 좋은 건 정말 좋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건데. 리유, 조금 서투르고 아직은 어린 면이 있으니까. 외국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되. 도리어 상처만 받고 돌아오진 않을까, 걱정되잖아.”

“리유가 해내지 못할 거라는 거야? 리유 우리랑 동갑이야. 어린애 아니라고.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왜 못 한다고 기를 죽여?”

“리유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웅도라던가, 버팀목이 충분히 있어서 괜찮지만. 말도 문화도 전혀 동떨어진 해외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건 못나서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잖아. 나도, 당장 해외 간다고 하면 적응 못할 것 같은데.”

“……뭐.”

희세가 이상론이라면 성빈이는 현실론이다. 사람은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가 아니니까. 가서 적응하고 외국인하고 얘기 많이하고, 말로는 편하지. 하지만 실제로 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니까. 성빈이 말도 억지가 아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희세는 나서서 자신의 의견을 보충하려 하지만 이어지는 성빈이의 말에 별달리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웅이는?”

“나? 어…….”

“빨리 말해, 또 우유부단하게 중간에서 있지 말고.”

“음…….”

뭔가 또 가운데에서 솔로몬의 판결을 해야 되는 것처럼 됐다. 찬성과 이상론의 희세냐, 반대와 현실론의 성빈이냐. 중간에 있는 나, 당사자인 리유. 절묘하네. 그리고 뭘 정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물론 내 욕심으론 당연히 가지 말라고 하고 싶지. 넷이서 있으니까 별로 그런 게 없어 보이지만, 리유는 내 여자친구인걸. 여자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훌쩍 해외로 유학 간다고 하면 누가 좋겠어. 해외는 고사하고 방학 며칠 잠깐 멀리 있는데도 꽤 보고 싶었는데. 리유 없는 생활을 만끽하며 친구들과 논 것은 기분 탓이고.

하지만, 또 리유의 미래를 생각하자면 유학을 가는 쪽이 맞는 것 같다. 게다가 부모님이 어렵게 결정하신 일이고. 막말로, 유학 보내려면 얼마나 등골이 휘겠는가. 그런 희생을 감안해서라도, 리유를 생각해서 보내주시는 건데. 가서 외국애들하고도 친해지고, 영어로 얘기하고 하면 나중에 돌아온 리유는 영어 능통에 사교성까지 갖춘 만능 로리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머리만 금발로 염색하면 완벽하겠는데. 아니아니, 여기서 갑자기 그딴 개드립이 왜 나와.

어쨌든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짜 솔로몬이 나와서 판결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이 작은 리유를, 해외로 보낼 수는 없어. 그치만 또, 내 욕심만 고집해서 리유의 미래를 꺾을 수는 없어. 그러면, 그러면……! 아아!

“……가는 게 좋겠는데.”

“히잉! 정말?!”

“웅도야…….”

심사숙고 끝에 말을 꺼냈다. 대번에 탄식하며 신음하는 리유. 성빈이마저 내 이름을 부르며 아쉬워 한다. 희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팔짱을 끼고 멀거니 우리를 보고 있다.

“물론, 내가 제일 보내기 싫지. 그치만, 역시.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믿어. 희세처럼. 리유, 몰아세우는 게 아니라.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믿어. 그렇잖아? 다른 애들하고도 잘 지내고, 귀여움 받기에 충분하잖아. 열심히 하면, 해낼 수 있을 거야. 난 리유를 믿어.”

“……응.”

“그렇게까지 말하면, 나도 리유 믿을 수밖에 없네.”

두서없이 말한다. 솔직한 심정을 전하고 싶은데. 어쨌든 리유가 잘 됐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니까. 어떻게든 리유를 왕따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제는 충분히 다른 애들하고도 잘 놀 수 있게 됐으니까. 이제 막 걸음마 뗀 아이에게 달리기를 시키는 무리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니. 사람은 시련과 함께 성장하는 법이니까. 리유를 믿기로 했다.

리유는 내 말에 시무룩해졌다. 자칫 리유에게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성빈이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니 리유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진다. 희세는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신다.


──────────────────

“……나는 딱히, 패배하고 돌아오는 패잔병이 아니야.”

“……많은 걸 해봤어. 하지만, 안 되더라고.”

“……과거의 영광에 휩쓸려, 현실을 보지 않는 건. 이웃 어느 국가 같아서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근데 예전에 나, 진짜 잘나갔잖아! 내가 바라는 이상향이 과거의 나였잖아!”

“……그래서 돌아온 겁니다. 내 의지로.”

“……변명은 죄악일 텐데 니트로박사.”

“……속편이 나온 작품들은 모두 망했지. 속편이 성공한 건 터미네이터밖에 없어.”

“……아 몰라 그냥 쓸래.”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진짜 오래간만이네요! 네, 많은 일이 있었지요. 새 작품들은 낼 때마다 폭망(?)하고, 과거의 영광에 젖어 우학변 댓글들을 흐뭇하게 보는데. 문득 마지막화하고 크리스마스 스페셜 편에서, ‘그냥 이거나 더 연재해요’ 하는 말들을 무수히 많이 봤습니다.

저는 한 번 완결 내면 거기서 끝! 하고 더 연재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아. 그래요. 저도 이제는 예전처럼 해보고 싶어요. 올리자마자 많은 분들이 봐 주시고, 댓글도 많이 달아주던 예전 같은 느낌. 물론 예전처럼 재미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다시금 연재 재개입니다! 다만 지금 쓰고 있는 주작품이 있어서, 매일매일 연재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잘 되면 이틀에 한 화, 못 하면 일주일에 한 화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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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87 사카나상
    작성일
    15.07.12 15:09
    No. 1

    와~~~~반갑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12 23:01
    No. 2

    아직까지 기억하고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12 18:18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12 23:01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27 화제
    작성일
    15.07.13 00:06
    No. 5

    ㅎㅎㅇ저도있슴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13 23:32
    No. 6

    ㅎㅎㅎ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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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5.07.13 00:18
    No. 7

    올만에 문피아 들어왔는데 n자가 떠있길래 왔어요 ㅋㅋㅋ
    뭔가 중간에 포켓x스터 해설자 느낌의 말투가 있었지만
    자, 리유는 보냈으니 거유성빈이냐
    만능 희세냐 선택하면 되겠군요
    흔하진 않지만 없지도 않지요?!
    여친남친 유학보내고 딴 사람 만나기....
    아 물론 저는 해바라기입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소설속의 판타지이니....또르르... 좋아하는 애가 얼른 톡을 보내길바라며..
    (새 글 내신걸 이제 알았네요...아하하...-_-;;;;;)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13 23:34
    No. 8

    뭔가 굉장히 슬픈 이야기를 들은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요.

    그래요, 소설이니까! 소설이니까 괜찮아요, 막장으로 가도, 현실성 없어도!! 우워어어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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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01화 - 3 +10 15.07.16 1,226 23 18쪽
149 01화 - 2 +6 15.07.13 1,417 18 18쪽
» 01화. 멀어진다 +8 15.07.12 1,566 26 21쪽
147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2 +27 14.12.24 1,659 29 28쪽
146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1 +8 14.12.24 1,522 24 25쪽
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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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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