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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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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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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7.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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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글자
22쪽

30화 - 2

DUMMY

점심 뒤의 오후수업은 늘 졸리다. 어떤 수업을 들어도 미친 듯이 쏟아지는 졸음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나 국사, 윤리, 사회 같은 지루한 수업이 걸리면 지옥이다. 국어나 수학, 영어도 만만치 않다. ……저 수업들 빼면 졸음이 안 오는 수업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아, 하나 있다.

체육시간.

”자, 오늘은 정하고 호흡 맞춰보는 거 할 테니까. 얼른 늬들끼리 정해라.”

“네─”

체육시간은 어지간해선 졸기가 힘들다. 아니, 졸 수가 없잖아. 물론 체육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 애들은 존재하지만. 남중 다닐 때엔 아예 그늘에 퍼질러 자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여긴 그래도 그러는 애들은 보이지 않는다. ……근데 그것도 어폐가 있는게, 앉아서 조는 애는 분명 봤어. 학생의 졸림은 어느 것도 막을 수 없구나.

어지간한 체육시간은 자율체육이다. 다만 학기 초, 중간고사 이후 애매한 시기에는 의외로 정상적인 수업을 하기도 한다. 수행평가 때문에.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선생님은 얼굴도 되게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다. 남중때엔 체육 선생님은 다 늙은 아저씨였는데, 여긴 의외로 또 늙은 아줌마. 딱히 체육선생님 같지는 않은데 그냥 체육선생님이라고 한다. 인자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요약하자면 그거다. 수행평가를 하는데 세 명이 조를 짜서 같이 본다고 한다. 점수는 조단위로 메기고, 그 조가 잘 하면 세 명 다 후한 점수를, 못하면 셋 다 낮은 점수를 준다고 한다. 조를 짜는 건 자유. 그냥 마음에 맞는 애들끼리 짜라고 하신다.

뭐, 나야 누구랑 짜도 딱히 상관은 없는데. 문제가 있다면 우리 패거리 애들은 다섯 명. 어떻게 해도 두 명은 남는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애들은 나를 중심으로 모였다.

“나, 웅이랑 조 할래!”

“뭐, 상관 없으려나. 어차피 체육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뭘 해도 어차피 체육이다. 체육 선생님은 귀찮으신지 수행평가 기준을 여자애 기준으로 해 놓은 걸 나에게도 적용시켜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애초에 내가 운동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여자애 기준으로 낮춘 상태면 눈 감고 해도 100점 맞겠다야. 딱 하나, 유연성 항목만 엄청 낮아서 체력장이 만 점이 안 나왔지. 어쩔 수 없다, 몸 뻣뻣한 건.

“나도, 웅도랑 같이 할래.”

“그래.”

“……나도.”

“어어…… 인원 초관데.”

성빈이는 반짝 웃으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나, 리유, 성빈이 셋이서 하면 되겠─ 하는데 희세까지 잠자코 말한다. 그럼 세 명이 넘는데. 희세는 아까만큼 기분 나쁜 건 아닌데 충분히 저기압인 상태이다. 작게 뜬 눈에서 방해하는 모든 적을 섬멸할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음, 이거 또 작은 소란이 펼쳐질 것 같은데.

“저는 남는 사람이랑 할게요. 정하세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 미래까지 참전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는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다. 애들 투닥거리는 게 재미있어 보여 그런가. 하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는데.

“난 절대 포기 안 해. 네가 나가.”

“아니, 나도 안 나가. 네가 나가.”

“어이어이, 잠깐만. 언제부터 싸우고 있는 거야.”

“넌 빠져!”

“시끄러!”

“앜!”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성빈이와 희세가 말다툼을 하고 있다. 진지하게 싸우는 건 아니고, 희세가 진지하게 정색하고 말하고, 성빈이도 그 못지않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둘 분위기가 흉흉하니 리유는 말리지도 못하고 사이에서 쩔쩔매고 있다. 나는 중간에서 제재하려 했지만 희세와 성빈이 둘이 동시에 소리쳐서 구석으로 짜져 있어야 했다. 막 엄청 시끄럽게 논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정을 폭발하며 격하게 말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확실히 둘 다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말하는 것 같긴 하다. 나는 잠자고 둘을 쳐다보다 말했다.

“그, 그럼 나 빠질까……?”

“그럼 의미가 없잖아!”

“그게 무슨 소용인데!”

“아, 아, 알았어, 그냥 짜져 있을게…….”

내 말에 또 둘이 동시에 나에게 태클을 건다. 아, 상남자 정웅도,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찌질하게 찌그러진다. 남자의 자존심 또한 구석으로 찌그러진다.

희세는 잔뜩 화난 것 같은 표정으로, 성빈이는 약간 실망한 것 같은 눈초리로 나를 보며 말한다. 희세와 눈이 마주쳤을 때엔 두려움을, 성빈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엔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암, 나도 성빈이랑 같이 하고 싶지. 이제는 훨씬 각별하게 느껴지는 걸, 성빈이의 저런 행동 하나하나가. 이전에는 그냥 ‘친구로서’, ‘짝궁이니까’ 하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뭐랄까, 확실히 나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하하, 내 착각이겠지. 라고 하기엔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뽀뽀를 받았다니까! 게임 끝났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희세까지 묘한 기분으로 보게 됐다. 성빈이야 저렇게까지 나랑 같이 하겠다는 이유가 분명 존재하지만, 희세는? 가뜩이나 오늘 아침부터 화나서 잔뜩 나한테 짜증과 불신으로 매도했는데. 설마 이거…… 만화에서나 나온다는, 「히로인 남주인공 쟁탈전」?!

……꿈도 야무지다. 성빈이한테 한 번 좋은 감정 느꼈다고 아주 상상이 5대양 6대주를 넘나들고 바다로 세계로 우주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 희세가 나한테 이러는 건 확실하게, 확실한 이유가 있지. ‘부려먹기 좋으니까.’ 아아, 그렇겠지, 역시. 희세한테 나는 「친구」 쪽보다는 「좀 짜증나긴 하는데 그래도 힘 세고 강한 종」 정도 겠지. 물론 기본적인 관계는 확실히 친구겠지만!! 농담이지, 농담. ……반 정도는 진실인 것 같아 스스로 슬퍼진다.

뭐, 리유가 날 좋아하는 건 워낙 확고부동한 사실이라 별로 어떤 감정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다만 리유가 날 좋아하는 건 눈치 없는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린 여동생이 멋진 오빠를 좋아하는 느낌이랄까. 리유보다 7살이나 어린 희나에게서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리유 너무 늦은 성장인 거 아닐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도…… 나도 웅이랑 할 거야!”

“칫! 이 년이고 저 년이고 다 하겠다고 하면 어떡하자고!”

“그럼, 그럼 정정당당하게 정하자.”

리유는 난처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성빈이와 희세 사이에 끼어들며 말한다. 희세는 팔짱을 끼고 마음에 안 든다는 투로 격하게 말한다. 성빈이는 눈을 치켜 뜨고 곧은 표정으로 희세에게 말한다. 희세는 성빈이의 눈빛을 맞받아치며 더욱 강렬한 눈빛으로 성빈이를 쳐다본다. 성빈이가 아무리 진지한 눈빛을 해도, 희세의 저 매서운 눈은 감당할 수 없다. 성빈이가 불쌍하잖아, 그만 두라구. 리유라면 3초 안에 울먹이며 시선을 피할 정도야. 과연, 표독스런 변학도를 잘 연기해낸 우리 반 연기 에이스다운 시선처리다. 성빈이의 말에 희세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지만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리유 역시 ‘응!’ 하고 동의한다.

“가위 바위 보!”

“아!! 으아아! 취소!!

“취소가 어딨어. 탈락.”

“으아아아아앙!!”

그 정정당당하다는 것이 가위바위보였나. 나는 조금 허탈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나마 남자애들처럼 가위바위보 하기 전에 ‘잠깐만 잠깐만! 음…….’ 하면서 시간 끌거나 손과 손을 모아 이상한 점을 보는 짓은 하지 않고 바로 쿨하게 가위바위보를 한다. 결과는 리유 패. 리유는 울먹이며 희세에게 말하지만 희세는 팔짱을 끼고 씨익 웃으며 말한다. 오우, 사악해.

희세가 안 통하니 성빈이에게 다가간 리유. ‘세 판 해, 세 판!’ 하고 말한다. 하지만 의외로 성빈이마저 강경하게 ‘안 돼, 한 판으로 정했으니까.’ 하고 말한다. 냉정한 성빈이의 말에 마음에 상처를 얻은 리유. 울먹이는 표정으로 ‘우아아아아앙─!’ 하며 뛰쳐간다. 어디 가는 거야, 쟨. ‘같이 가, 리유야~ 떨어지면 나랑 같은 팀이라니까!’ 하며 달려가다 얼마 가지 못해서 지나가는 키 큰 정희에게 부딪힌다. 나는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야, 리유랑 미래랑 같은 팀 좀 해줘라. 걔네 친구도 없고 운동도 젬병이라 망할거야. 너라도 도와줘야지.’ 하고 말했다. 정희는 갑자기 품에 달려든 리유를 귀엽다고 쓰다듬어주다 문득 내 말을 듣더니 ‘……흥!’ 하며 나에게서 몸을 돌린다. 쟤는 또 왜 나한테 저런데. 하여간, 도통 알 수가 없다, 여자애들은. 그나마 정희만큼은 남자애처럼 쿨한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음. 뭐부터 한다.”

“……네가 정해.”

“난 네가 하자는대로 할게.”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두 여자애의 극명한 태도 차이가 보인다. 희세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한다. 성빈이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사실, 이 수행평가라는 것도 참 웃기는 것 같다. 굳이 셋이서 해야하나 싶은 종목들. 셋이서 조를 짜서 한다면, 뭐 셋의 팀워크라던지, 단결력이라던지, 그런 걸 보는 과목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는 과목들은 전부 개인 과목이고, 간단한 체력 검정 같은 느낌인지라 정말 굳이 셋이 해야 하나 하는 느낌이다. 하는 과목은 각각 제자리멀리뛰기, 철봉 오래 매달리기, 서서 제자리 돌기.

“일단은, 제자리 멀리뛰기부터 할까. 제일 쉬워 보이니까.”

“맘대로 하셔.”

“나 잘 못 하겠는데…… 알려주라.”

“응, 뭐.”

내 말에 희세는 여전히 빈정대는 투로, 성빈이는 혀를 쭉 내밀고 귀여운 느낌으로 말한다. 아, 귀엽다. 사실 나라고 뭘 잘 하겠어. 그냥 하는 거지. 셋이서 천천히 모래장으로 걸어간다.

“음…… 그러니까 대충. 읏샤. 이 정도면 되나.”

“뭐, 자세는 나오네.”

“우와, 잘한다.”

나무판 앞에 서서 몸을 두어번 흔들었다 반동으로 앞으로 나갔다. 최대한 다리를 쭉 뻗으면서, 그러면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앞으로 몸을 쏠리게 한다. 이거 뭐, 중학교 때 해본 거잖아. 희세는 거만하게 대답하고, 성빈이는 감탄한다. 그래도 칭찬해주니까 으쓱하는 기분이다. 조금 헤벌레 해져서 성빈이를 쳐다보니 희세는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저리 비켜, 나 하게.’ 하고 말한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내가 찍은 부분을 나뭇가지로 그었다.

“읏!”

‘척!’

“오! 오오, 엄청 잘 하는데?!”

가만히 정면에서 희세가 뛰는 걸 보는데, 뭔가 좀 남사스럽다. 희세가 반동을 가하는데 가슴이 흔들리는 게 정면으로 딱 보이니까. 괜히 부끄러워져서 시선을 돌렸다 착지한 희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거의 내 기록 밑에 닿을 정도로 엄청 많이 뛰었잖아. 분명 여자애인데. 가슴의 반동 때문에 불리할 텐데(?).

내가 이렇게 놀라는 건 중학교 체육시간에 마초끼가 심한 체육선생님한테 들은 게 있기 때문이다. ‘지지배들은 근력이 딸려서, 이런 건 전부 못해. 기준표를 봐라! 몇십센치는 뒤에 있지 않냐.’ 그런데도 나랑 비슷하게 했다는 건, 희세가 참 대단하다는 거다. 운동에만 특성화(?) 돼 있는 정희라면 이해하겠는데, 희세는 공부도 잘한다. 거기에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요리도 잘하고…… 키야, 취한다~ 아니아니, 농담이고. 진짜 희세는 정말 사기 캐릭터구나. 현세에 존재하는 사기 캐릭터가 여기 있어.

“나는 잘 모르겠는데…… 웅도야, 알려주라.”

“어, 어…… 그래.”

희세는 내 칭찬에 우쭐해져서 자리에서 나온다. 나뭇가지로 선을 그으며 희세에게 ‘너 존나 쩔어!’ 하고 엄지를 치켜 세워주는데 성빈이가 나무판 앞에 서며 말한다. 자신감 없어 보이는 어색한 웃음. 나는 용수철처럼 뛰어서 성빈이 앞으로 갔다. 성빈이가 도움을 요청하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겠어! 하앆하앆 성빈쨔응! ……이건 좀 기분 나쁜 것 같다.

“그니까, 이렇게 해서. 다리로 반동을 줘서.”

“응. 이렇게?”

“어. 그리고서 폴짝.”

“응! 어, 에헤헤…….”

“괜찮아, 타이밍을 못 잡아서 그래.”

성빈이 옆에서, 자세를 취하면서 알려줬다. 성빈이는 내 설명을 들으며 내 눈을 꼬옥 바라본다. 괜히 부끄러워지는데. 하지만 나는 최대한 의식하지 않고 잘 설명해줬다. 뛰지는 않고, ‘폴짝’ 하고 제자리에서 뛰었다.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폴짝 뛰었지만 이건 뭐, 전혀 앞으로 나아가질 못 했다. 솔직히 헛웃음 나올 정도의 거리. 성빈이는 창피한지 얼굴이 빨개져서 혀를 쭉 내민다. 하앍…… 귀여워! 더 가르쳐주고 싶어! 좀 더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어험, 험, 난 변태가 아니야. 그냥 그런 거야.

“응, 타이밍 맞춰서. 폴짝.”

“폴짝!”

“오, 훨씬 잘 뛰었네. 여기 정도면 몇 센치지.”

“헤헤헷.”

두 번째로 설명해주고 뛰니 한결 낫다. 씨익 웃으며 칭찬해주니 성빈이는 기분 좋게 웃는다. 아, 이래서 선생님이 팀을 꾸려준 거구나. 못 하는 애들을 잘 하는 애들이 도와주라고. 성빈이, 그렇게 안 생겼는데 운동은 그럭저럭 평균적인 여자애들처럼 못하는 편이니까. 성빈이를 보고 ‘금방 배우네, 성빈이.’ 하고 말했다.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살짝 얼굴을 붉히며 ‘아냐, 웅도 네가 잘 가르쳐 주니까, 히힛.’ 하고 수줍게 말한다. 그 모습을 보니까 나까지 살짝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다. 오오, 분위기 좋아. 느낌 좋고.

“……?”

“……흥!”

이 느낌은…… 살해의 기운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에겐 제 6의 기관, 「촉」이라는 게 있기에 어떤 무형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촉」이 쓰일 때는 방에서 혼자 야한 걸 보고 있는데 엄마가 방으로 진입하려 할 때, 밤에 몰컴하는데 누군가 방에서 나올 것 같은 때 등이 있다. 그런데 굳이 작동하지 않았는데도 내 촉이 스스로 살기를 감지해냈다. 등골이 오싹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희세가 엄청난 기세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이다. 우오, 무서워…… 굳은 표정이 되니 희세는 고개를 홱 돌린다. 오늘 희세, 되게 무섭네.


다음은 철봉 오래 매달리기. 분명 체력 검정표에서 봤었다. 여자는 철봉 오래 매달리기고, 남자는 턱걸이라고. 근데 선생님은 딱히 나한테 어떤 말도 안 했다. 그럼 나도 매달리기만 해야지.

“이건 뭐 딱히 알려줄 게 없을 것 같은데. 기본 근력으로 하는 거니까.”

“네가 시범 보여봐.”

“나 무슨 고유명수 같은 거야? 아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내가 말을 꺼내니 희세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아까 살기등등한 표정은 없어지고 그냥 평범하게 나를 무시하는 태도다. 내 빈정거림에 다시금 노려보는 희세. 싫은 소리 듣기 전에 그냥 철봉에 손을 얹었다. 방어력 2랭크 떨어지면 골치 아프니까.(?)

“읏챠. 이렇게 해서. 웃! 으헛! 하앗! 흐핳! 응, 이렇게 할 필요는 없고, 그냥 매달려 있으면 돼. 이렇게.”

“우와…… 웅도 너 장난 아니다. 턱걸이 몇 개 해?”

“응, 그래도 20개는 넘게 하지?”

“흥, 꼴에 남자애라고.”

팔에 힘을 주고, 패기 있게 턱걸이를 서너번 하다 여유 있게 올린 상태로 유지했다. 딱히 팔이 바들바들 떨리는 걸 애써 참는 건 아니다. 오래간만에 해서 좀 힘들긴 한데. 그래도, 여자애들 앞인데 자랑 좀 해야지. 성빈이는 굉장하다는 표정으로 조그맣게 입을 벌리고 날 쳐다보고, 희세는 여전히 아니꼬운 눈치지만 또 괜찮게 보는 것 같기도 한 기분이다. 이러면 또 우쭐해진다. 응, 남자가 여자애한테 점수 따는 건 역시 운동할 때지. 왜, 어디 사는 누구는 철봉하면서 여자애한테 고백하기도 하는데. 나도 해 버릴까.

“비켜, 해 보게.”

“넵.”

“읏…… 어.”

‘툭.’

희세마님의 말에 나는 말 잘 듣는 돌쇠가 돼 얼른 나왔다. 희세는 호기롭게 팔에 힘을 주고 올라갔다 1초도 체 못 있고 툭 떨어졌다. 영문을 모르는 희세의 표정. 어리둥절한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나와 성빈이를 본다.

“풉.”

“이, 이건 실수야! 잠깐 힘을 못 준 거라고!”

“아니, 그냥 귀여워서.”

“뭐, 뭐가! 에씨. 봐! 읏!”

“오오~ 좀 버티네 이번엔.”

나와 성빈이가 동시에 푸훗 하고 웃음이 터지니 희세는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힌다. 저러는 희세도 은근히 귀엽네. 희세는 본인이 완벽하기도 하고, 또 성격도 완벽주의자라 이렇게 허당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 자기 스스로 용납할 수 없겠지. 보통 여자애라면 귀엽다고 하면 마냥 좋아하는데 희세는 그것보다는 자기가 철봉에서 떨어진 게 더 창피하고 신경 쓰이는 지 얼른 철봉에 올라선다.

과연 방금 전 떨어진 건 실수라는 걸 증명하듯 꽤 잘 버틴다. 20초 버티면 100점이라고 봤던 것 같은데, 희세는 20초는 넘게 잘 버티고 있다. 문득 체육복 너머로 희세의 불끈한 팔 근육이 보인다. ……당신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쩐지 희세가 때릴 때 생각보다 아프더라니. 운동할 때만 나오는 내장형 근육인가. 평소엔 팔 가는데, 희세.

“나 팔 힘 약한데.”

“한 번 올라가 봐.”

“응.”

뭘 해도 금방 능숙해지는 희세와는 달리, 허우대는 멀쩡한데 의외의 운동치 속성을 보이고 있는 성빈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볼 때엔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 이런 때엔 자신감만 북돋아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하고 크게 말해주니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철봉을 잡는다.

“으앗! 으아아아 아아, 아아! 무서워! 웅도야, 웅도야아~~”

“어어, 어, 그냥 내려와, 떨어지면 돼.”

“무, 무서워~~ 팔 아파, 팔 아파! 으앙!”

“뭐야, 병X이, 꼴깝 떨지 말고 그냥 내려와!”

“으아아아, 그런 게 아니란 말야! 못 내려 오겠으니까 이러지이~!!”

성빈이는 힘껏 올라갔다. 하지만 기세가 너무 올라서일까, 허리까지 쑥 올라갔다. 근데 어째서인지, 거기까지 올라가선 내려오질 못한다. 발을 동동 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팔 힘은 달려서 버티질 못하는데 그럼 균형을 잃고 나뒹굴테고, 그게 무서워서 그런가 성빈이는 울상이 돼서 쩔쩔맨다. 나는 그냥 내려오라고 했지만 성빈이는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희세는 아니꼬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다. 성빈이는 울상으로 대답했다. 어째 무서워하는 와중에도 대답은 꼬박꼬박 한다.

“으아, 으아아아아!”

“읏!”

‘물컹!’

“!!”

성빈이는 결국 앞으로 쏠린다. 공포에 질린 성빈이의 모습. 나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손을 뻗어 성빈이를 받쳤다. 내 몸 위로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받쳐야지! 하고 호기롭게 달려들었는데, 성빈이 어깨 밑 양 팔을 붙들었는데 나 또한 방금 전 턱걸이로 너무 나대서 그런지, 팔 힘이 쭉 풀려 잡지 못했다. 그 덕(?)에 성빈이는 그대로 쭉 밀려서, 내 얼굴로 성빈이 가슴이 푹 다가왔다. 우왓. 이건, 이건 꿈에서나 보던 그…… 얼굴 파묻히는 거! 으아, 으아, 숨을 못 쉬겠…… 다른 의미로 숨을 못 쉬겠어!!

“뭐…… 뭐하는 거야 멍충아!”

“푸하! 아니 난 고의로 그런 게 아니…… 앜!”

성빈이는 발버둥을 치며 간신히 떨어졌다. 나는 성빈이를 받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넘어졌다. 눕듯이 모래밭에 있는 나. 그 위로, 성빈이가 몸을 겹쳐 넘어졌다. 여전히 성빈이 가슴팍으로 얼굴이 짓눌리고 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여자애가 ‘꺄악!’ 하면서 남자애를 범죄자 취급 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성빈이는 잔뜩 겁을 먹어서 그럴 겨를이 없나보다.

아…… 행복하다…… 비록 성빈이 몸을 받느라 몸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지만, 그걸 만회하고도 남을만큼 행복한 촉감이 얼굴에…… 성빈이도…… 어디서 뭐 꿀리진 않겠구나. 하지만 이 행복은 희세의 개입으로 산산히 조각났다. 희세가 발로 차면서 성빈이를 밀쳐냈기에. 나는 잔뜩 변명을 하며 허둥댔지만 다시금 발로 나를 걷어 차는 희세에 의해 옆으로 밀려났다.

“그냥 떨어지면 될 거 가지고, 뭐 하는 거야!? 어디서 약한 척이야! 다 할 수 있으면서!”

“지, 진짜 무서웠단말야! 팔 힘은 빠지고! 우, 웅도가 안 받아줬으면!!”

“미친, 아주 꼬리를 치려고 작정을 했구나. 누군 뭐 쓰러질 줄 몰라서 안 쓰러져?! 너만 가련한 아가씨 캐릭터 연기야? 적어도 할 수 있는 건 당당하게 해야지! 납작가슴 주제에!”

“가, 갑자기 그 얘긴 왜 하는데!”

“네가 대줬잖아!”

“뭐, 뭘!! 진짜!!”

잔뜩 혼날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비난의 화살은 성빈이에게로 간다. 그것도, 굉장히 적나라하고 직설적인 어투로. 다른 건 몰라도 ‘대줬다’ 라니. 여고생의 입으로 여고생한테 할 만한 어휘는 아닌 것 같은데. 성빈이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잔뜩 울상이 돼 말한다. 희세는 아랑곳 않고 잔뜩 화가 나서 짜증스런 말투로 성빈이를 몰아붙인다. 저거…… 둘이 싸우는 거겠지. 어째 싸우는데 희세나 성빈이나 둘 다 귀여운 거지.

“저기…… 나 때문에 그렇게들 싸우지 마.”

“넌 빠져 있어! 어디서 끼어들어!”

“웅도 변태! 왜 가슴에 얼굴을 들이밀어!!”

“아아…… 네, 그, 어…… 고의가 아니었어요. 저 그냥 있을게요.”

나는 눈치를 보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희세에겐 잔뜩 눈총만 받고 성빈이에겐 글썽이는 눈으로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는 소녀의 눈빛을 받았다. 여러모로 걸레짝이 된 기분인지라, 나는 기가 죽어 병신처럼 대답하고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두 여자애는 한동안 말다툼을 계속한다.


작가의말

사실, 2편씩 연재하는 건 며칠 하지도 않았지만... 월요일부턴 신작을 준비하기에, 이번과 같이 하루에 2편씩 연재를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 다다음주에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해서, 비축분을 쌓으려면 더더욱... 

음, 신작을 준비한다는 건... 예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슬슬... 후훗...

※요약
·이제부터 1일 1편 연재
·심지어 하루에 한 편도 안 올라올 수 있음. 그러나 2일 안에 1편은 무조건 올라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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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7

  • 작성자
    Lv.87 사카나상
    작성일
    14.07.06 23:18
    No. 1

    이번에도 리유 비중이 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7 00:23
    No. 2

    흑흑... 저도 리유를 더 넣고 싶지만, 전개상 어쩔 수가 없어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7.07 00:02
    No. 3

    그냥 우학변은 매일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어요. 으으 뒷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7 00:23
    No. 4

    흐흣 감사합니다! 하루에 한 편은 나오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아싸라뵤
    작성일
    14.07.07 00:22
    No. 5

    하.. 첨엔 성빈이가 좋았는데 요샌 희세한테 자꾸 끌리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7 00:24
    No. 6

    저는 음, 제 이상의 여자애라면 희세겠네요. 아 물론 성빈이가 결코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희세가 사기케인 거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희망의검
    작성일
    14.07.07 01:30
    No. 7

    중간에 희세가안통하니 성빈이에게 다가간 성빈이 이부분

    성빈이에게 다가간 리유가 아닐까요? 잘못봤으면 죄송~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7 07:48
    No. 8

    아... 맞아요. 감사합니다! 졸지에 자아분열이 된 성빈이 ㅠ 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비행병아리
    작성일
    14.07.07 08:31
    No. 9

    성빈이가 대줬으니(!) 인재는 희새가 덮칠 순서인가요?

    아니면???

    리유의 품에?

    빈유는 사랑......일겁니다.... 아마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7 09:19
    No. 10

    사실 같은 값이면 있는 게(?) 좋죠. 우와아아앙? 희세 짱!!!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지키미삼
    작성일
    14.07.07 09:34
    No. 11

    오~~ 두 캐릭사이에서 고민 중?~~ 그래도 성빈이 ㅋㅋㅋ 물컹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7 10:51
    No. 12

    가슴 정도는 라노베에서 기본입니다. 그렇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07.08 00:13
    No. 13

    앙큼한 성빈이?
    공부랑 달리 둔텡이 희세?
    정희가 아직도 꿈의 여파가 있는듯 하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8 12:00
    No. 14

    성빈이는 청순이며 상큼입니다.
    희세는 분명 공부만큼 운동도 잘 하지만, 지금은 누구 앞이고 누구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런 것일 겁니다.
    정희는... 그렇지요. 꿈이니까, 상관 없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7.08 15:45
    No. 15

    결말에 가까이 와서야 말하는 거지만, 개인적으로 리유의 캐릭터는 무척 아쉽네요...
    글쓴이분은 평소에 라노벨 많이 읽으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8 20:36
    No. 16

    라노베는... 솔직히 라노베 뿐만 아니라 책을 잘 안 읽어서...(?) 애니 조금 보는 수준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5 23:11
    No. 17

    역시 작가님도 딸기 100%를 보셨군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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