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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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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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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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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8쪽

32화 - 2

DUMMY

이것은 도망치는 자와 쫓는 자의 이야기. 쫓기는 노예와 붙잡으려는 추노꾼들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탈옥하는 죄수와 붙잡으려는 공권력의 사투일까. 어느 쪽이든 서로의 신념과 서로의 자유를 위해 사력을 다해 움직인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은 어떠한 의미도 없다.

“거기 서!!”

“서라고 서겠냐! 아아아! 진짜!”

희세는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아들을 붙잡는 아주머니 같은 기세로 말한다. 나는 그 기세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도망치고는 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성이란 것이 존재하는 멀쩡한 여자애들이, 어째서 이런 게임을 받아들였는지. 그네들도 이성적 판단이 존재한다면 생각할 수 있을텐데. 이렇게 강제로 붙잡아 게임 벌칙으로 사귄다고, 그것이 진정한 사귐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애초에 붙잡힌다 해도 내가 곧이 곧대로 말을 들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 마음인데.

“예! 시작과 함께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나희세 선수! 과연, 우리반 체육 1등 답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중계 하는 건데?! 스포츠냐!”

“제가 MC인데, 이 정돈 해야죠! 아하하하!”

“진짜 그만해!! 아오.”

리유는 정말 달리기를 못 한다. 성빈이는 그럭저럭 여자애들 평균 정도라 나를 잘 못 쫓아오고, 결국 어느 정도 수준으로 쫓아올 수 있는 건 평소에도 운동을 잘 하는 희세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희세가 여자애들 중에 운동을 잘 한다 해도 남중에서 3년간 축구로 단련된 내 달리기를 이길 순 없다. 그래도 짜증이 솟구친다. 이 상황 자체가 짜증나는데, 미래는 중간에서 아주 큰 소리로 마치 스포츠 해설하듯 중계를 하고 있다. 깊이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미래에게 퍼부으며 말하니 미래는 실실 웃으며 대답한다. 미래 손바닥 안에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굉장히 싫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종료시키고 싶지만, 그러기엔 여자애들이 너무 진지한 눈빛으로 뒤따라 오고 있어서 그러기도 힘들다. 아, 애초에 처음부터 도망가지 말고 말로 설득해야 했어.

“으헉!”

“에에엣! 아하앗!”

“아아~ 이런 경우도 있네요! 나희세 선수의 도발로 몰린 먹잇감을 아슬아슬하게 임성빈 선수가 잡을 뻔 했습니다! 이거 잘못하면 죽 쒀서 개 줄 수도 있겠는데요? 잘 생각해야 겠습니다!”

“……씨!”

뒤따라오는 희세만 신경 쓰다가 문득 옆에서 기습적으로 다가오는 성빈이를 간신히 피했다. 우오, 진짜 잡힐 뻔 했어! 미래는 아주 재미있다는 듯 방긋방긋 웃으며 해설한다. 희세는 눈을 빠직 성빈이를 노려본다. 성빈이는 희세의 눈빛을 무시하고 나를 쫓는다.

“뭐야 뭐야, 변태 씨 잡으면 되는 거야?”

“……아니야!”

“뭔데? 니들은 잡으려는 거 아니야??”

“……됐으니까 넌 빠져!”

“아아, 생각지도 못한 최정희 선수의 난입! 최정희 선수는 173cm의 장신에 강한 체력을 지니고 있기에, 먹잇감을 찾는 경기에 더욱 활력을 가져다 줄 것 같습니다!”

“무슨 스펙 설명인데!? 그리고, 먹잇감이라니!!”

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바깥에 나온 애들은 굳이 우리만 있는 건 아니다. 정희가 우리 쪽의 사단을 보고 뛰어온다. 희세는 귀찮은 듯 쏘아 붙였지만 미래는 누구든 끼어들어 난장판이 되는 것을 더욱 좋아하기에 정희까지 ‘선수’에 포함시켜 해설한다. 나는 짜증난다 짜증난다 하면서도 태클은 지속적으로 걸고 있다. 아니, 태클을 안 걸면 안 될 것 같아서.

미래의 말대로 정희의 참전은 굉장히 위협적이다. 정희가 유일하게 희세를 이기는 분야가 체육인데. 거기다 키도 웬만한 남자애들보다 크고, 같이 농구나 축구 같은 걸 해본 결과 체력도 어지간한 남자애 뺨치는 수준이다. 비록 달린다 해도 뒤로 처지는 희세나, 팔을 양 옆으로 가련하게 흔들며 아가씨처럼 뛰는 성빈이와는 격이 다른 달리기 수준의 정희다. 자세부터 남다르다.

“야, 그러니까 이게! 잡기장난 같은 게 아니라, 그게…… 아 씨 뭐라고 설명해야 돼!”

“변명은 필요 없다! 넌 그냥 사냥감인거야! 잡으면 되는 거잖아! 뭐, 잡으면 사귀기라도 하는 거야? 변태 씨 팔자 좋네~”

“그거야! 그러니까 잡지 마!”

“에, 엣…… 사귀어?!”

정희는 정말 엄청난 기세로 달려온다. 이러다간 정말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중2병 같은 발언이지만 나는 지금껏 달리기 속도를 50% 정도만 내고 있었다. 원래 ‘이게 내 100%의 힘이다.’ 하는 적은 패배하게 돼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적이라는 건 아니고! 다른 게 아니라 별로 힘을 쓰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정희는 오늘만 사는 여자애다. 죽을 기세로 달려오니 나라 해도 따라 잡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정을 말할 수도 없다. 정희가 거의 다가왔을 때,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말하려 했다. 정희는 피식 웃으며 비장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비장하게 말하는 말에 정답이 담겨 있다. ‘그거야!’ 하고 말하니 정희는 눈에 띠게 당황하더니 제자리에서 멈춰선다. 어째선지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패닉상태가 됐다.

“아! 먹잇감을 거의 손에 넣었던 최정희 선수! 갑자기 멈춰섭니다! 먹잇감의 계략에 빠져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었을까요? 슬로우 카메라, 보시죠!”

“카메라는 무슨 얼어죽을! 너 진짜 가지가지 해라, 어?!”

“아하하하하하!”

미래는 여전히 상황을 중계하며 말한다. 물론 카메라 같은 건 없다. 애초에 해설이라는 게, 들을 관중이 없는데 누구한테 하는 거겠어. 가만히 보니까 꼭 나 들으라고 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체력 약해서 빌빌거리는 주제에, 이런 때엔 어떻게 나랑 비슷하게 달리는 것 같다. 나를 놀려먹기 위해선 그 정도 힘듦도 불사하겠다는 강렬한 의지인건가. 정말, 미래도 어떤 의미론 대단하다.

“하아, 하아, 하아…… 흐으으……! 히이, 이이이익……!!”

“아~ 정리유 선수, 고질적인 체력 문제에요! 처음부터 굉장히 저조한 성적인데, 지금은 아예 경기 불능 상태입니다! 이래가지곤 먹잇감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습니다!”

나는 문학관 앞 광장을 한 바퀴 돌 듯이 도망쳤다. 리유는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며 팔을 허공에 흔든다. 아, 그러고보니까 추격전이 시작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 같다. 그야 리유는 정말 체력이 약하니까. 일반적인 여고생 수준이 아니라, 그냥 아이 정도 수준이다. 그것도 여자아이. 남자애들은 어릴 때부터 축구 하는 녀석들이면 의외로 체력이 강하니까. 미래는 그런 리유를 보고 안쓰러운 듯 안타까운 목소리로 해설을 한다. 이런 와중에 살짝 장난기가 돈다.

“어엇, 말씀드리는 순간! 먹잇감이 정리유 선수 쪽으로 달려갑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설마 스스로 마음을 정한 것일까요! 아아,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

“흐읏……!”

미래가 해설한 그대로, 나는 리유 쪽으로 달려갔다. 희세와 성빈이가 흠칫 놀라는 눈치인 게 보인다. 짜증나는 상황이지만, 여자애들 반응을 보는 건 이것대로 재미있다. 리유는 내가 자기 쪽으로 오던 말던 이미 얼굴은 상기됐고 체력적으로 한계인지라 정신이 없다. 리유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콕.’

“아읏!”

“아아! 이 무슨 관광일까요! 정리유 선수, 먹잇감의 손가락으로 이마 한가운데에 지건을 맞습니다! 저거 생각보다 아픈데요! 그로기 상태의 정리유 선수, 그대로 주저 앉습니다!”

“……푸흐흣.”

리유에게 가까이 다가가, 하지만 두 발자국 정도 차이를 두고 손만 뻗어 리유의 이마를 검지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리유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대로 주저 앉는다. 애초에 너무 힘들어서 더 뛸 기력도 없던 리유였다. 소리를 지르는 게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리곤 다시금 뛰어 희세와 성빈이를 피한다.


“하아…… 하아…….”

“흐으…… 하앗…….”

“아아아. 으흠흠.”

한동안 뛰어 다니기를 반복. 나는 지능적으로 체력의 50%만 사용하며 일부러 광장을 빙빙 돌기만 했다. 그건 성빈이와 희세의 체력을 빼기 위해. 설령 순간 가속은 둘이서 몰아가면 나를 붙잡을만하다 해도, 체력만큼은 확실하게 약한 여자애들이니까. 비단 운동을 못 해서 뿐 아니라, 신체적인 한계치가 명확하니까.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성빈이와 희세 둘 다 얼굴이 상기돼서 숨을 헐떡인다. 곧이어 희세가 먼저 멈춘다. 적극적으로 계속 뛰어다니던 희세이기에, 힘들만도 하지. 성빈이 역시 희세가 멈추니 멈추었다. 나 또한 가만히 멈춰섰다. 힘들긴 하지만 아직 충분히 달릴 기력이 남아 있다.

광장에서 세 명이 숨을 헐떡이며 서 있다. 셋이서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서 있다. 어째서인지 다른 여자애들이 구경하고 있다. 하긴, 몇 분이 넘도록 계속 잡으려고 쫓고, 도망다니고 하니 구경할 만도 하지.

“어떻게 진행될지, 하악, 아무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하아, 흐으, 경기는, 하아, 앞으로 15분! 하악, 남았습니다!”

“힘들면 그만 해도 되는디.”

“무슨, 하아, 하나도 안 힘듦! 하악!”

있지도 않은 가상의 관중들에게도 해설을 하던 미래인데, 이 사태를 진짜 구경하는 관중들이 생겼으니 미래는 물 만난 물고기다. 다만 계속 쫓아 다니며 속사포처럼 해설까지 곁들이느라 힘들어 죽을 것 같은 모양새다. 내 말에 정말 힘들어 보이지만 허세를 부리며 고개를 내젓는다.

“둘 다, 내 말 좀 들어봐.”

“…….”

“…….”

나는 잠자코 말할 준비를 했다. 성빈이와 희세는 숨을 고르며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지금이 기회다. 이 게임을 끝낼 수 있는.

“내가 우유부단해서, 이기적이어서 결정 못 하는 건 미안해. 100% 내 잘못이야. 그치만, 이런 게임을 죽자고 하는 건 또 아니잖아? 설령 잡힌다 해도, 내가 따를 것 같아? 사람 마음이란 건 그렇게 간단하게 정해지는 게 아─”

“시끄러.”

“조용히 해.”

“!”

솔직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데 동시에 희세와 성빈이가 내 말을 끊는다. 그러더니 서로 놀라 쳐다본다. 파지직, 불꽃이 튈 기세로 서로 노려보더니 다시금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너는 말할 자격 없어. 이기적인 거 알잖아. 아무것도 결정 못 하는 거 알잖아. 그러면서 꼴에 남자라고 마초 같은 자존심은 또 있잖아. 아무 결정도 못 하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자부심만 내민다면, 근데 그래도 그런 네가 좋은 여자애가 있다면 결과는 하나야. 여자애가 정해주는 수밖에.”

“……나도 마찬가지야.”

“야, 그게 무슨……! 아니 내 말은! 이상한 자존심 같은 게 아니라, 누구 하고 사귀는 건 마음에 따라야……”

둘 다 말하려다 희세가 먼저 입을 연다. 멀리 구경하는 애들에겐 들리지 않을 만큼, 그치만 나에게는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희세의 말은 비장미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그 말에 나는 말문이 턱 막힌다. 괜히 얼굴이 확확 달아오를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성빈이는 자기 할 말을 빼앗겨서 억울한 듯 희세를 흘겨보다 나를 쳐다보고 말한다. 나는 변명하려 하지만 막상 생각이 헛돌기만 한다.

“야!”

“……나?”

“그래, 너.”

변명도 제대로 못하고 어버버 하고 있는데, 문득 희세가 큰 소리로 외친다. 성빈이를 보고. 지금 상황에서 희세가 성빈이를 부를 이유는 없는데. 성빈이도 얼떨떨해서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 희세를 쳐다본다. 나한텐 격하게 ‘그 년’, ‘성빈이 년’ 하고 말했는데 차마 본인 앞에서 그렇게 부르진 않는다.

“일단은, 잡자.”

“……응.”

“뭐, 뭐……?”

희세는 길게 말하지 않고 짧고 강렬하게, 그러나 의도가 전부 전해지게 말한다. 성빈이는 잠자코 희세를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당황해서 희세와 성빈이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일단 잡고 보자고? 둘이 협심해서?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인데?!

“아! 기묘한 동맹의 체결인가요! 두 선수, 일단은 먹잇감을 잡는데 협력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위기입니다, 먹잇감!”

“와와와~”

“잡아라 잡아!”

“근데 왜 먹잇감이래?”

“몰라, 현실은 변태 씨가 여자애들 먹는 거 아니었어?”

“어우, 먹는 게 뭐야! 아하하하!”

미래는 신이 나서 애들 앞에서 큰 소리로 해설을 한다. 열정 만큼은 정말 해설가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다. 여자애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괜히 더 창피해진다. 상황은 생각보다 급박하게 돌아간다. 천천히 다가오는 희세와 성빈이.

“야, 야…… 잠깐만. 뭐 이런 이상한 일에 진지하게 임하는 건데. 애초에 내가 이거 잡힌다고…… 안 한다니까, 이 게임!”

“……좀 작작 해. 작작 쫑알거리고, 남자가 한 번 게임에 참가 했으면……!”

“인정하고 받아들여!”

“우아아아아아!!”

겁먹은 표정으로, 나는 말했다. 두 여자애는 어째서인지 아까와는 기세부터 다르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패왕(覇王)의 기세가 느껴진다.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흐른다. 희세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주먹을 꽈악 쥐고 꾹꾹 누르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더니 중간에 말을 끊는데 그 말을 이어 받아 성빈이가 말한다. 몰라 뭐야 얘네 무서워! 그 짧은 시간에 둘이서 뭘 짰을리는 없고, 귓속말? 무슨 온라인 게임이냐! 그럼 지금 둘이 진심으로 나한테 빡쳤다는 거잖아!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희세와 성빈이는 정말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 같은 기세로 달려든다. 나는 두려움을 없애려 소리를 지르며 벗어났다. 미래는 ‘와! 시작됐습니다! 어마어마한 기세의 두 사람! 과연, 먹잇감은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하며 쫒아온다. 간담이 서늘해져온다. 진심으로 전력으로 도망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싸늘하다. 두 사람의 패기가 날아와 덮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여자애들보단 빠르니까. 희세는 앞쪽에서 탱. 성빈이는 옆쪽으로 빠져서 극딜. 우측으로 빠진다면 다시금 희세가 퇴로를 막아서고.

“하악, 허억. 흐읏!”

“거, 거깃…… 하앗!”

동맹을 맺은 것까지는 좋은데. 한 명은 옆으로 빠지고 한 명은 계속 쫒아서 몰아가는 것까진 좋은데. 그치만 그것도 어느 정도 전력이 맞을 때에 가능한 작전이지. 50% 정도 되던 달리기를 100% 끌어올리니 상대가 되질 않는다. 체력장 하는 때처럼 적극적으로 달리니 격차가 한참 벌어진다. 거기다 지금은 아까처럼 광장을 빙빙 도는 게 아니라 그냥 일직선으로 달려왔기에 더욱 그렇다. 미래는 예저녁에 떨어져 나가, 지금은 나 혼자 달리고 있다. 대신에 문학관에서 상당히 떨어지게 됐다. 문학관 뒤쪽, 산은 아니고 언덕 정도 되는 곳으로 왔다. 그래도 희세는 독기를 품고 달려와 쉽사리 시야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성빈이는 체력이 다했는지 따라오지 못하고 저 멀리에 있다.

“왕!”

“우어어어! 뭐야 뭐!”

“잡을 거야!”

“너까지 동맹이야?!”

“기습이지롱! 복병이닷!”

“근데 이미 끝났어, 그 복병.”

“어어, 어어! 잡혀, 순순히 잡혀어!”

뒤의 희세만을 주시하며 천천히 뛰는데, 문득 앞쪽에서 소리가 났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리니 풀숲에서 리유가 뛰쳐나오며 소리 지른다. 만약에 리유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나왔다면 그대로 붙들렸겠지. 하지만 리유는 ‘왕!’ 하는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나왔고, 그 결과로 리유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나 참,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애초에 복병인데 자기 위치를 말해주는 복병이 어디 있어. 근데 언제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아까 전까지 힘들어서 죽을려고 하던 애가. 나는 피식 웃으며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리유는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쫓아오려 하지만 50% 출력으로도 전혀 맥을 못 추던 리유다. 전력으로 달려가면 아예 상대가 안 되는 달리기 속도다.


“아우, 짜증나.”

숨을 헐떡이며 나는 한 마디 했다. 이제 희세랑 성빈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무얼 바라, 이렇게 뛰어 왔냐면. 뭐가 어떻게 됐든, 변명을 어떻게 하던 게임을 참전한 모양새가 됐는데. 한 가지 맹점이 있잖아. 타임오버. 분명 미래가 처음 게임을 제안할 때, ‘지금부터 30분, 아니 28분!’ 이라고 했다. 그 시간의 기준은 선생님이 문학관 관람 종료하고 입구 쪽으로 모이라고 한 시간. 그리고 지금, 5분 남았다. 꽤 멀리까지 뛰어왔지만 여기서 다시 달려가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성빈이나 희세, 둘 다 작심하고 동맹까지 맺고 뛰어왔지만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만큼 무모한 애들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걸로 끝이다. 아무리 희세가 돌직구로 찌질하다고,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해도 난 이런 게임은 납득할 수 없다. 시간을 끄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잡혀선 안 되지. 조금 숨을 고르다 다시금 문학관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야! 너! 거기 서!”

“순순히 잡힐 거면 내가 저 멀리까지 왜 도망가겠어!”

“씨! 좀 잡히면 덧나?! 우리가 진짜 그렇게 하겠냐고!”

“안 잡혀! 남자의 헛된 자존심이야! 됐어?!”

달려가다 보니 지친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걷는 성빈이와 희세가 보인다. 소리 없이 달려가 둘의 어깨를 톡 치고 앞서 달려간다. 둘은 다시금 쫓아오며 소리친다. 이제는 게임의 본질마저 잊은 것 같다. 그냥 달린다. 그래, 사실 이런 게임 뭐라고 죽을둥 살둥 이러고 있는 건지.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됐던 질 수는 없다. 계속 달린다.


작가의말

복날이라 어머니가 닭백숙을 해 주셨습니다. 근데 소화가 안 되요. 역시 고기는 든든하네요. 근데 밤 11시가 넘었는데 소화가 안 되다니! 으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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