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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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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7.13 23:30
조회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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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8쪽

01화 - 2

DUMMY

결론은 났다. 리유, 유학 가는 걸로. 친구들까지 전부 가라고 조언해주니 리유로써는 버틸 명분이 없으리라. 어쩌면, 불잡아달라고 작게 신호를 보낸 것일수도 있는데. 「미래」라는 큰 명제 앞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남자친구인 나조차도.

리유 아버님이 유학 소속을 미리 밟아 놓으셨는지 출발까지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가 버리니 말 다 했다. 난 예정보다 빨리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더, 리유와 같이 있기 위해. 뭐, 막상 만나봐야 평상시와 전혀 다를 것 없는 평온한 일상이지만.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런저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결국 리유를 떠나보냈다. 너무나 공허하게. 마음에 큰 구멍이라도 뚫린 듯 괴로운 기분이다. 작디작은 리유가 이만큼 큰 존재였다니, 나에게 있어서.

‘띠리리리리─’

“…….”

울리는 휴대폰. 리유일까. 아니. 비행기 안인데 어떻게 전화하겠어. 짧은 판단으로 휴대폰을 울리는 게 리유가 아니라는 걸 인지한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꺼낸다. 의욕이 없다. 휴대폰 액정 위에 뜬 이름, 나희세.

『여보세요.』

“……어.”

『공항이야? 리유는.』

“……갔어.”

희세 목소리. 약간 높은 톤에 성숙한, 외모에 걸맞는 고운 목소리. 왜인지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더욱 슬퍼진다. 희세의 질문에 다시금 리유가 떠난 현실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점심 안 먹었지.』

“……어.”

『얼른 와. 밥이나 같이 먹자.』

“……응.”

어떤 드라마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나는 애써 울음을 감추며 단답형으로 간신히 대답한다. ……그렇다고 내가 드라마 주인공처럼 잘 생긴 건 아니고, 굉장히 흉한 모습으로 질질 짜고 있겠지. 희세도 그런 내 감정을 느꼈는지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겨우, 희세와의 통화를 마치고 울음을 삼켰다. 고추 달린 남자새끼가 지금 뭐 하는 거냐. 참아야지. 참자, 참자, 참아. 공항을 나와 천천히 버스를 타러 간다.

‘철컥.’

“하아.”

“왔어.”

“응…….”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자취방으로 들어선다. 피로하고 노곤하다. 문을 열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맛있는 냄새도 난다. 역시 집이 최고구나. 피곤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목소리가 맞이해준다.

눈을 반쯤 실눈 뜨는 것처럼 뜨고 쳐다본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희세. 개수대에서 무엇인가 씻고 있다 나를 맞이해준다. 외투를 벗으니 익숙하게 옷장에서 옷걸이를 꺼내 내 옷을 받아 건다. 나는 그대로 피곤한 표정으로 양말을 벗고 양말을 그대로 바닥에 두고 털썩 주저앉는다. 희세는 얼굴을 찌푸리고 ‘양말 뒤집어서 벗어. 지저분하게.’ 하고 핀잔을 준다. 무시하고 그대로 벌러덩 눕는다.

“……하아.”

“어땠어.”

“그냥…… 생각보다 괴롭네.”

“─그렇겠지.”

“어…….”

희세의 물음에 한숨을 쉬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딱히 희세에게 무관심한 게 아니라, 희세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어떻게 활달하게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일 기력이 없다. 그만큼 리유를 보낸 정신적 타격이 크다. 희세는 이해한다는 듯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배려, 희세답지. 지그시 눈을 감는다.

“점심, 카레 해봤는데 괜찮아?”

“아, 카레 좋지.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야채가 썩어 문드러지고 있길래. 버리기 아까워서 만들었어.”

“……굉장히 아줌마 같은 이유네. 어쨌든 고맙네, 우리집 야채 관리도 해 주고.”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말해봐, 밥 해주고 다 해주니까 아주 식모로 알어.”

“아아, 농담농담. 농담도 못 하나.”

희세의 말에 눈을 감고 쳐다보지 않으면서 대답한다. 눈을 감으니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희세의 화난 표정이 짐작이 간다. 이 정도 어그로와 태클은 서로 감내하는 사이니까, 뭐.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눈을 뜬다. 희세가 와서 밥도 차려주고 말도 해 주는데, 언제까지 기 죽어 있을 수는 없는 법. 리유가 어디 죽으러 간 것도 아니고, 아주 좋게 유학 간 건데. 연락도 되고, 다 괜찮아지겠지. 무뎌지리라. 배고프다, 밥이나 먹자.

“……잠깐만. 야, 너 누구 맘대로 방에 들어와 있는 거야?!”

“멍청한 거야, 미친 듯이 둔감한 거야? 그런 말은 들어오자마자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아니, 미친! 왜 시키지도 않은 카레는 하고 있고! 어엉?!”

“뭐가 불만이야. 요리도 할 줄 몰라서 기껏 라면이나 끓여먹을 인생, 불쌍해서 점심 해 주니까.”

“야아!”

가만히 피곤한 몸과 흰색 티셔츠에 회색 츄리닝 바지를 입고 밥상을 차리는 희세를 보고, 불현 듯 이상함을 느꼈다. 너무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몰랐는데, 희세가 왜 내 방에서 점심을 차려주는데!

불과 방금 전 일인데 회상해보니 상당히 이상하다. 들어오자마자 희세가 있는데 ‘왔어?’ 하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고, 가만히 ‘어어…….’ 하고 대답하는 나도 이상하고. 일하고 돌아온 가장이냐?! 그럼, 앞치마 두르고 있는 희세는?! 헛……! 외투를 벗을 때 희세가 받아준 것까지 상상하니 완벽하게…… 신혼부부잖아. 티격태격 대는 것도 그렇고. 으아, 이게 뭐하는…… 뭐하는 짓이야!!

“이…… 이러는 게, 아니잖아!”

“이전까지는 잠자코 받아먹다가, 여자친구 생기니까 ‘이제는 안 돼’ 라고. 받아 먹을 건 다 받아 먹고, 이제는 필요 없다?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아니이…… 그런 뜻이 아니라, 그…… 그렇잖아. 그…….”

나는 뭔가 말하기가 껄끄러워 얼버무리며 말한다. 희세는 팔짱을 끼고 특유의 도도한 태도로 나를 깔아보며 말한다. 분위기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변명거리를 말하지 못하기도 해서 나는 희세에게 맥을 못 추겠다.

말하기 껄끄러운 것은 그것. 여자친구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와서 밥 차려주고 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고. 사실, 그 얘기는 리유 사귀자마자 바로 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2학기 남는 기간은 희세가 아침마다 와서 평상시와 같이 밥도 차려주고 같이 등교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둬야지, 2학년 올라가서는 제대로 말해야겠다 했는데 웬걸. 이제는 완전한 신혼부부다. 더욱 놀라운 건 요망한 희세의 행동이 아니라 나의 태도. 희세가 내 자취방에서 요리해주고 챙겨주는 게 너무도 익숙해져서 방금 전에도 전혀 인식하질 못했다. 그래선 안 되잖아, 그래선!

“……나, 여자친구 있잖아. 그러니까 좀…… 그렇잖아.”

“……그런 식으로 나온다 그거지.”

“…….”

생각에 생각에 꼬리를 물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칼에 쳐내자! 하는 알랙산드로스 대왕의 말이 떠올라 찌질하게 말을 꺼냈다. 찌질하긴 하지만 어쨌든 내 생각을 전했으니 됐다. 희세는 여전히 새침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손을 풀고 잠시 바닥을 내려다본다. 한 손은 허리에, 한 손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시금 시선을 나에게 돌린다.

“지금은 없잖아?”

“……하아?”

“지금은 없잖아, 여자친구.”

잔뜩 도도한 말투로 말하는 희세. 눈에서 묘한 기운마저 느껴지는 기분이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서 뭐라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없……지. 없긴 하지. 꼭 그렇게 상처를 후벼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 지금 희세가 말하는 건 내 상처를 후벼파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입술을 깨물고 생각을 정리한다.

“없, 없긴 하지. 근데 그게 완전히 없는 게 아니잖아. 잠시 떠난 건데, 없다고 하는 게 아니지!”

“흐응. 그렇게나 순정파였구나, 우리 웅도는.”

“……당연한 거잖아! 오늘 갔다니까 오늘! 아까 3시간 전만 해도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내 품에 있었는데!”

“네 품에는 나도 있었는데.”

“……!!”

어떻게든 대답하는 나. 그래, 여자친구가 없는 게 아니지! 리유, 오늘 방금 떠나보냈다고! 아픈 내 마음을 추슬러주지는 못할망정 다시 상기시키다니! 너무하잖아, 희세! 정작 희세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리어 비꼬는 것처럼 말한다. 벌컥 화를 내며 말하니 이어지는 말로 내 입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리는 희세. 우어우어 뭐라고 말해보려 하지만 입만 뻐끔거리고 말이 나오질 않는다. 완전히, 어떻게 할 수 없을만큼.

“……기억 안 나? 술 마셔서? 취해서? 다 말해줄까?”

“아니아니아니아니!!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언제 그런 짓을 했다고!”

“그·런·짓……?”

“아니아니아니아니이!! 자꾸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아핳! 난 도통 모르겠네! 아우, 왜 이렇게 덥냐!”

“아 벗게?”

“아니아니아니아니이이이!! 아, 아아. 머리 아파.”

잊고 싶은, 잊어야만 하는, 아니 사실 있지 않았던(?) 일을 자꾸 끄집어 내려는 희세. 그 말에 있어서는, 그 건에 있어서는 나는 절대적 약자이다. 하지만 희세는 집요하게 힐끔 나를 쳐다보며 계속 말을 꺼낸다. 나는 잔뜩 당황해서 그것만으로 이미 정신적으로 몰려 연신 고개를 내젓게 된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벌떡 일어났던 것을 다시금 털썩 주저앉는다.

“어디. 열 있는 건 아니고.”

“……! 뭐, 뭐하는 거야!”

“응? 왜 혼자 엄한 세상에 가 있어. 열 잰 거잖아. 왜, 이렇게 이마로 재줄까?”

“!!! 야, 야아아!!”

“흐흣.”

머리가 아프다는 내 말에 희세는 성큼 내 앞으로 온다. 어떻게 피할 겨를도 없이 손을 내밀어 이마를 만진다. 이마를 만져서 그런 건 아니고, 희세가 지근거리까지 와서 그것 때문에 당황했다. 가뜩이나 민감한 분위기인데, 이렇게까지 가깝게 오면!

불만스럽게 말하니 희세는 피식 웃으며 얼굴에 장난기가 돈다. 갑자기 내 어깨와 머리를 잡더니 자기 이마를 내 이마에 가져다댄다. 이건……!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군. 으아아아아! 아닌 건 아닌 거잖아! 이건 거의 키스랑 다를 게 없는 거잖아!! 코까지 닿았어 코까지!! 너무너무 창피해서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없던 열도 다시 생길 것 같다. 잔뜩 패닉상태가 되 방구석으로 몸을 비비며 앉은 채로 달아난다.

“……더 심각한 것도 했으면서 창피해하네.”

“……야, 그거는…….”

“흐흣. 그러고 보니까, 어떻게 해결도 못 했네. ‘그 때 그 거’에 대해선.”

“……!”

잔뜩 희세에게 농락당하는 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뼈가 담긴 것 같다. 어떻게 나는 변명할 수가 없다. 이어지는 희세의 말에 더욱 눈이 커진다.

‘그것’은, 너무 어색하고 너무 창피해서 도저히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것 때문에, 방학 보충수업 내내 희세랑 어색했는데. 말은 평소처럼 하지만, 뭔가 말할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그 민감한 얘기를, 희세가 지금 꺼내고 있다.

“……어디까지 기억하는 거야.”

“음. 너는 어디까지 기억하는데?”

“……후우. 다.”

“어머─ 부러워라. 그 좋은 걸 다 기억하세요?”

“……어디까지 기억하는데.”

있어서는 안 됐다.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다. 엎지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있는가. 그건 그대로, 과거의 일로 굳어져 버렸다. 그대로 꼬리표로 달고서, 내 숙명으로 내가 책임져야할 일이다. 리유에게 얘기하지 않고 숨긴 것도 죄책감이 장난이 아닌데, 그 당사자가 이런 말 하면서 살살 골려주고 놀려먹으면…… 내 죄책감은 배가되는 게 아니라 제곱, 세제곱이 될 것 같다.

“뭐…… 엄청 만취상태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럴 줄은 몰랐는데. 너무 격해서 깜짝 놀랐어.”

“……하아. 미안하다.”

“미안할 게 뭐 있어. 뭐, 네가 나 강간했어? 함부로 대했어?”

“아 그러니까 그 얘기 좀 그만 해! 100번 내가 잘못했다고 하잖아! 아아아악! 가뜩이나 지금 리유 가고 미쳐버릴 것 같은데! 왜 너까지 와서 이래에에!!”

희세의 말에 나는 잠자코, 넙죽 엎드렸다.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꾸벅. 미안하다고 작게 말한다. 죄책감이 온 몸으로 엄습한다. 왜 이랬을까 내가 왜 이랬을까. 이어지는 희세의 말에 아이처럼 발버둥치는 나. 주어지는 짐의 무게가 너무 과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아이가 생떼 쓰는 것처럼 마구 발버둥친다. 이제 됐어, 나도 모르겠어!!

“밥 먹어. 다 식겠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하아.”

희세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발악하는 것을 그만두고 내가 진정하는 것을 본 희세는 더욱 도도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시 자리에 앉는 나.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배는 더욱 고프다. 머릿속이 혼돈으로 가득 차니 단순한 생리적 욕구만이 강하게 느껴진다. 배가 고프니, 밥을 먹자. 카레는 황금빛 물결을 흔들리지 않고 나에게 보여준다. 아아, 희세가 만들어 준 카레.

“맛있어!”

“그 와중에 먹는 건 칼 같이 먹네. 그게 좋아하는 이유지만.”

“푸흡! 너, 지, 지금 뭐라고……!”

“응? 글쎄, 기분 탓이겠지?”

엄청 맛있다! 적당히 간 돼 있고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카레 맛이 나고! 야채들도 죽어가는 것 썼다는데 전혀, 아주 신선한 맛이다. 눈을 크게 뜨고 말하니 희세는 방긋 웃으며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그 말에 나는 더욱 눈이 크게 떠지고 나도 모르게 밥을 뱉어버렸다. 더듬거리며 말하니 희세는 히히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이이…… 이거. 심각한데.

“그 때 일에 너무 집착하고 죄책감 가질 거 없어. 난, 진짜 좋았으니까.”

“……제, 제발, 그 얘기 좀 그만 하면 안 될까. 하다못해 지금 뿐이라도.”

“어머─ 그러면 거북한 얘기니까 위안부 할머니 얘기도 그만하고, 일제 식민지 청산도 안 하는 게 좋겠네? 지금도 세계 3위 경제대국 대일본제국을 자극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에요? 황국신민님?”

“아니이! 그런 게 아니잖아아! 아아, 아아으으으…….”

계속해서 ‘그 일’을 꺼내는 희세. 나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몸을 베베 꼬며 비굴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그 일’만은 제발. 내 비굴한 태도에 희세는 기세좋게 잔뜩 비꼬듯이 이어 말한다. 졸지에 매국노가 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하게 부인한다. 10년 넘게 반일교육을 받아온 나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니, 지금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닌데!

“어쨌든. 그 전이나 지금이나. 더욱 포기 못하니까, 나는.”

“……솔직하게 물어보자. 내가 좋아? 내가 어디가? 이렇게 찌질하고 병X인데?”

희세는 야무진 표정으로 지긋이 말한다. 그런 희세가 반듯하고 예뻐 보이는 나는 미친놈일까. 정신을 차리고 솔직하게 물어본다. 흥분해서 더욱 달려들 듯이 질문한다. 그렇잖아, 나 같은 평범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을 왜! 왜 희세처럼 완벽하기 그지없는 애가 좋아하는 건데! 게다가, 포기도 못 한다고! 그 정도로 내가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야?!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전혀, 이해가 안 가잖아!

“그런 말 하지 말고─ 밥이나 드세요. 네?”

“……꿀꺽.”

“잘 먹네, 좋잖아.”

“…….”

희세는 갑자기 상체를 일으킨다. 그러더니 상 너머 내 쪽으로 급격히 다가온다. 나를 내려다보면서, 가는 손가락으로 내 입술 주위를 스윽 닦는다. 내 입가에 묻은 카레 소스. 손가락을 살짝 핥으며, 희세는 말한다. 그 도발적인 말에 나는 말 잘 듣는 유치원생이 돼 먹던 카레를 꿀꺽 삼킨다.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희세. 나는 어떻게 그 말을 거부할 수가 없다.

“2라운드, 시작이야.”

“……어!? 뭐라고??”

“다 들었으면서 못 들은 척 하지 마. 2라운드 시작이라고.”

“너…… 너……!”

밥을 먹으며, 희세는 넌지시 말한다. 분명 똑똑히 들었다. 2라운드라니! 그 말은, 그 말은……! 부들부들 떨면서 희세를 바라보지만 희세는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무김치를 씹어 먹는다.

“리, 리유한테 일부러 유학 가라고 한 거야?”

“음모론 신봉자세요? 그럼 내가 리유 아버님한테 ‘리유 유학 보내시죠.’ 하면서 뒤에서 전부 꼭두각시처럼 조종한 거야? 정말, 상상력이 대단하시네요.”

“그…… 그, 그럴 리는 없지만! 그게 아니라, 그 때 모였을 때 리유한테 조언한 게!”

“조언한 건 사실이야. 사심이 아니라, 진실 되게.”

“……2라운드는 무슨 말인데, 그럼.”

“흐흥☆ 그건, 알아서 생각하세요.”

짐작가는 바를 정제하지 않고 바로 내뱉으니 희세는 칼같이 방어한다. 어떻게든 말을 해보지만 역시 희세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희세는 방해되는 리유를 보내버린…… 그런 거 아니야?! 지금 2라운드라고 말한 건 그 야욕(?)을 실현시킨 첫 포문을 여는 말이고. 아아, 도통 모르겠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희세는 맛있게 밥을 먹는다.

“설거지는 귀찮으니까 네가 해.”

“네, 그저 감사하지요. 밥 차려주고 요리해주는데.”

밥을 다 먹고 그릇들을 개수대에 놓는 희세. 이런 면은 참 착하고 좋다. 나중에 가정을 차리면 참 좋을 것 같은 희세. 감사한 마음에 대답한다. 희세는 이제 떠날 채비를 한다.

“……너무 상심하지 말고, 여자친구 갔다고.”

“어어, 뭐. 네가 잔뜩 뒤흔들어놔서 잠깐 생각도 안 났다.”

“그래. 그럼, 성공적이네. 간다!”

“……어?? 야, 뭐가 성공적이야!”

“하하하핫─!”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희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계속 내 혼을 빼놓는 말을 했지만 그래도 내심, 걱정해주고 있었구나. 희세에 대한 불신과 안 좋은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어서 눈웃음치며 말하고 홱 달아나는 희세를 보고 다시금 불안감이 생긴다. 뭐가 성공적이라는 거야! 아 진짜!!


작가의말

원래 오늘은 쉬려고 했지만, 여려분들이 호응해주시니 안 쓸 수가 없네요-- 키아, 취한다! 헤헤헷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5.07.14 00:17
    No. 1

    흐흐흐흥? 받을건 다 받아먹고라뇨....!?
    제 기억으론 그거는 안 먹은거 같은데....
    2라운드 라.....
    그때 술취하고 상의 탈의한 건 본거 같은데 ㅋㅋㅋ 정주행 해야 하려나요
    근래 들어올 시간이 부족하여...거의 못들어왔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14 08:10
    No. 2

    그 때...... 그 곳...... 그 맛......
    그 때부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둘만이 아는 일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5.07.14 23:46
    No. 3

    상상은 커지고 커져 망상이.....
    앗흥 후우후우
    괜한 야구동영상이 떠오르는 작가님의 말씀...
    타락하셨군요!
    환영합니다 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16 18:34
    No. 4

    ㅎㅎㅎㅎ 고등학생이니까 그렇진(?) 않을 거에요 어머나 제가 무슨 말을 호호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5.07.14 23:53
    No. 5

    시험이 끝나고 이리저리 바빠서 문피아도 잘 못들리고 하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너나대를 보려고 선호작을 누르니 익숙한 글이 보이더군요. 너나대 보려다가 우학변 떴길래 먼저 보러 와서 댓글 남깁니다. 어찌되었던 간에 작가님의 선택을 응원하고, 언제나와 같이 잘 보고 가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16 18:34
    No. 6

    아...! 감사합니다 ㅎㅎ 기분이 뿌듯하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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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144 32화 - 5 +28 14.08.13 2,004 49 18쪽
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142 32화 - 3 +13 14.08.09 1,814 29 21쪽
141 32화 - 2 +4 14.08.07 1,624 38 18쪽
140 32화. 잡아라, 사랑의 망설임을! +13 14.08.06 1,697 37 21쪽
139 31화 - 6 +16 14.08.04 1,888 31 21쪽
138 31화 - 5 +12 14.08.02 1,964 38 23쪽
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136 31화 - 3 +10 14.07.28 1,609 33 18쪽
135 31화 - 2 +17 14.07.25 1,561 39 23쪽
134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7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6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4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6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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