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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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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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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31화 - 5

DUMMY

“…….”

“하아─ 피곤해 죽겠네.”

조용하다. 아무것도 없이 고요하고 평안하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여자애. 리유, 미래. 리유는 얌전히 앉아 있고, 미래는 한숨 쉬며 슬쩍 자리를 뻗고 누우려 한다. 도저히 여고생의 행동으로는 보기 힘들다.

수학여행을 온 것이 분명한데, 두 사람의 분위기는 여행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냥 동네 공원에 와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미래가. 혼자 누우면 충분하겠지만 리유까지 있으니 눕기에 조금 좁다. 미래는 ‘무릎 베도 되?’ 하고 묻는다. 리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읏챠’ 하고 자리를 잡는 미래. 분명 바깥인데 자기 집인 양 거침없이 행동하는 미래다.

“왜 삐쳐 있어?”

“……뭐가.”

“흐흣.”

미래는 슬쩍, 리유에게 말한다. 리유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불퉁하게 대답한다. 리유의 반응에 미래는 살짝 웃는다. 무릎을 베고 리유를 올려다보며, 미래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입을 연다.

“성빈이가 물어 갔잖아, 웅도.”

“…….”

대답하지 않는 리유. 미래는 여전히 실실 웃는 표정으로 리유를 보며 재촉하듯 말한다.

“자꾸 그렇게 삐쳐 있으면 다른 애들이 웅도 채간다? 이렇게 무뚝뚝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구. 너도 네 장점을 살려서 웅도를 유혹해야─”

“왜 그래야 되는데?!”

미래는 신이 난 듯한 태도로 술술 말한다. 그러나 거친 리유의 대답에 말이 중간에 끊어진다. 리유는 무표정한 얼굴에서 순간 잔뜩 흥분한 표정이 됐다. 투명하게 맑은 피부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고 눈 또한 리유답지 않은 무서운 표정이다. 분명하게 화가 났다는 느낌이 드는 표정이다. 미래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릎을 벤 체로 리유를 올려다본다. 굉장히 어정쩡한 상황.

“흐읏. 후우. 웅도가 좋아. 정말 너무너무 좋아서, 다른 애들 상관 않고 좋아만 하고 싶을 정도로.”

“응, 그럼 좋아하면 되잖아. 누가 뭐라고 해?”

“그치만…… 그치만!”

리유는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비교적 차분한 투로 말하려 한다. 미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리유 무릎에 누워 있는 미래인지라 좀 이상한 분위기다. 리유는 눈을 질끈 감고 쥐어짜듯 대답한다. 잠시 말을 머뭇거리며 말하지 못한다.

“그치만, 마음 내키는대로 웅도 좋아해버리면…… 비니도 히이도 너무너무 얄미워지는데! 나는…… 난 히이도 비니도 좋은데! 웅이도 똑같이 좋은데, 근데…… 흐으…….”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되지.”

리유는 뭐라고 말은 하지만 잘 말하지 못하고, 다른 얘기를 꺼내려다 또 그 얘기도 마무리 짓지 못한다. 끝에는 말이 잘 정리가 안 되 입을 다문다. 생각은 많은데, 그게 정리가 안 돼 표현하지 못해 답답한 리유. 미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자리에 곧게 앉는다. 그리곤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진지한 표정의 미래. 지금까지의 웃고 즐거워보이는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다.

“웅도는 좋아하고 싶은데. 웅도를 좋아해버리면 멀쩡하던 성빈이랑 희세까지 싫어지고. 두 사람이 싫고, 짜증나고, 웅도한테 치근덕대는 게 너무 보기 싫고. 그치만 너는 그렇게 못하니까. 너까지 웅도한테 치근덕대면 이 두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이 그대로 고정돼 버릴까봐. 그래서 완전히 예전 관계로 돌아가지 못할 까봐. 그런거지?”

“어, 어, 응! 그거야 그거! 어떻게 알았어?”

“흐흥. 척 하면 착이지. 넌 표정만 봐도 다 알 수 있다니까.”

“……피이.”

미래는 리유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리유의 마음을 정리해 정연하게 말한다. 리유는 눈이 동그래져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자기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듯 말하는 미래가 신기한 모양이다. 미래는 눈을 찡긋하며 대답한다. 방금 전 신기하다는 반응은 또 사라지고 뾰로통한 표정이 된 리유. 막상 생각해보면 미래가 자기 생각을 꿰뚫고 있는 건 좀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내가 해 줄 말은 그거야. 너무 부담갖지 말고,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응?”

미래는 저 멀리 산을 바라보며 다리를 흔들흔들, 손은 벤치 뒤로 뻗어 느긋한 자세를 하고 말한다. 리유는 잘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미래를 쳐다본다. 미래는 잠시 말없이 먼 산을 보다 리유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툭 하고 양 손으로 리유의 어깨를 잡는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야. 사람은 무슨 일이든 선택을 해. 두 가지 중에 반드시 하나만 골라야 할 때가 있어. 그게 선택이고 기로야. 아이들과의 관계, 웅도와의 사랑. 둘 중에 어느 게 중요할까, 어느 게 정하지 않으면 괴로울까 잘 생각해서, 그치만 또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너무 깊이 생각하다, 생각만 하다 타이밍 놓쳐서 죽도 밥도 못 되지 말고. 생각은 하되, 너무 지체하지 말고. 솔직하게, 차분하게.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그게 잘못이 아니야. 그건 잘 하는 거야. 너를 감추지 말고 그대로 표현해. 그리고선 잘 안 되도, 차라리 낫잖아, 시원하고? 전전긍긍, 아무것도 안 하지 말고 뭐라도 해. 알겠어?”

“……응.”

미래는 굉장히 길게, 말을 빨리 하는 것은 아니고 조곤조곤 차분한 말투로, 진지하면서도 엄숙하게 말한다. 동생에게 조언하는 언니처럼, 그렇게 정돈된 말은 아니어도 솔직한 마음을 생각을 담아 말해준다. 리유는 그런 미래를 빤히 쳐다보며 묵묵히 모든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리유의 눈엔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반짝이는 활기찬 눈빛으로 돌아온 리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손을 크게 뻗으며 ‘이제 다시 부화아알!! 웅이 오면 같이 놀자고 할 거야!’ 하며 소리친다. 미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작게, ‘흐흐흥. 분탕질 치는 건 언제 해도 재미있지.’ 하고 혼잣말한다. 악마같은 미소를 잠깐 보이며.


‘끼이익.’

희세는 자전거를 세우고 섰다. 크고 아름다운 무덤이 희세 앞에 있다. 교복 아닌 사복에, 희세 자체가 발육이 일반적인 여고생보다 한참 발달된(?) 터라 혼자 여행온 대학생 같은 느낌이다. 혼자 무덤 앞에서 멍하니 무덤을 쳐다보는 희세. 문득 주위에 커플 둘이 저들끼리 엉켜 좋다고 얘기하는 게 보인다.

“……바보새끼.”

희세는 혼잣말 하고 다시금 자전거에 몸을 싣는다. 빠른 속도로 저 멀리 달려간다.


“응응! 그리고 뭐 봤어?”

“그냥저냥 이것저것─ 넌 아무것도 안 봤어?”

“어, 난 미래랑 같이 쉬었어! 쉬어서 다 충전됐어, 히히.”

“다행이네.”

점심 먹으러 이동하는 구간. 버스에서 리유가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먼저 버스에 타 있던 리유. 내가 옆자리에 앉자마자 재잘재잘 참새처럼 이것저것 물어본다. 오늘은 아침부터 오전 내내 무서울 정도로 무뚝뚝한 리유였는데.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평소보다 더욱 에너지 넘치는 느낌으로 말을 걸어댄다. 그래도 무척 기쁘다. 원래대로 돌아왔으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성빈이랑 돌아다녔던 데를 말해줬다. 리유는 ‘우와, 우와! 나도 갈 걸! 히잉.’ 하며 말한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미래 쪽을 보니 미래는 여전한 자세로 누워 자고 있다. 쟤는 수학여행을 자러 온 거야 뭐야. 시선을 돌리다 희세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모르게 움찔 하게 된다. 허나 희세는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린다. 괜히 어색한데.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나, 성빈이, 리유, 미래 이렇게 앉고 희세는 정희 쪽 애들과 함께 앉는다. 아. 제대로 삐쳐버렸네. 난감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삐친 이유가 성빈이랑 같이 놀아서인데. 그럼 희세랑 같이 놀면 마찬가지로 성빈이도 삐칠 게 아니야. 둘 중에 한 명은 이렇게 되게 돼 있어. 어쩔 수 없지. 계속 나와 좋은 분위기로 농담하고 얘기하는 성빈이와, 다시금 원상복귀돼 활달하게 귀엽게 말하는 리유, 오전 내 잠만 자서 기력을 충전한 미래와 함께 모처럼 왁자하게 떠들며 밥을 먹었다.

“힘들어─!”

“절은 원래 힘들지. 얼마 안 멀어, 저기 보이잖아.”

“그치만! 히잉. 너무 힘들다, 여기.”

서라벌에 왔다면 으레 가게 되는 곳이 있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다보탑, 석굴암. 그나마 불국사는 가깝게 있는데 석굴암은 굉장히 떨어져 있는데다 걸어가야 한다. 리유는, 원래대로 돌아온 건 좋은데 원래대로 돌아와서 힘들다고 계속 징징댄다. 나는 시큰둥하게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성빈이는 위로하는 말을 해준다. 그래도 여전히 힘들다고 징징대는 리유.

불국사니 석굴암이니 직접 본다고 뭔가 감정이 남다른 건 아니다. 그건 뭐랄까, 루브르 박물관에 가 모나리자 그림을 실제로 봤을 때의 실망감이랄까. 그냥, 그냥 절이다. 그냥 탑이다. 그냥 불상이다.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냥 사람만 많다. 아아니, 내가 삐뚤어진 성격이라 그런가.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 것 같다.

“즐거워?”

“응? 뭐어?”

“아니, 그냥. 이런 거 보는 게 즐겁나 해서. 어차피 교과서에서 다 보고 인터넷에 치면 다 나오는 건데.”

“흐응~ 굉장히 비뚤어진 시각인데.”

“어, 안 그래도 그런 생각 들어서.”

나는 가만히 감상하는 성빈이에게 물었다. 성빈이는 내 대답에 피식 웃으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이어 말한다.

“예를 들자면, 음악을 듣기만 하다 콘서트에 가. 장난 아니겠지? 관중들은 그 밴드하고 같이 호흡하고, 그 노래를 직접 생으로 듣고, 서로 소통할 수 있어. 뮤지컬이나 연극도 마찬가지고. 영화관 가서 영화 보는 것도, 크고 아름다운 화면에 빵빵한 스피커. 직접 갈 만한 가치가 있어. 근데 여긴? 여기도 결국엔 교과서랑 똑같게 못 만지고, 못 느끼고. 구태여 여길 와서 봐야하나 싶어서.”

“에에. 사진으로만 보는 거랑, 만지진 못해도 네가 직접 여길 밟고 있는 거랑은 엄연히 다르잖아.”

“그래도. 결국 아무것도 못 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으응~! 너무 부정적이야, 웅도.”

내 말에 성빈이는 앙탈을 부리는 것처럼 귀여운 투로 눈을 찡긋 한다. 나도 모르게 괜히 부끄러워진다. 성빈이는 나를 빤히 보더니 말한다. 여자애 앞에서 너무 미주알고주알 따지듯이 말해서 성빈이가 나를 좋지 않게 보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든다. 큿, 이 쪼잔한 성격. 고쳐야 하는데.

“모든 걸 그렇게 값어치로만 계산할 순 없잖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분명 역사가 숨 쉬는 이 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얻어 가는 게 분명 있을 거야. 우리도, 그러면 된다고 생각해.”

“……그런가.”

“우오오! 비니 멋있어! 어른 같애!”

“에에이, 어른 같기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아냐아냐, 엄청 어른 같애! 나도, 나도 힘들다고 안 하고 다닐래!”

“그래.”

성빈이의 말에 나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나보다도 리유가 더 감명 깊게 들었는지 굉장히 좋아하며 성빈이에게 말한다. 성빈이 또한 마주 웃으며 대답한다.


오후까지 그렇게 관광이 끝이 나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이후론 아무런 관광도 없다고 한다. 숙소에서 마음대로 놀아도 된다고, 바깥에서도 놀아도 된다고 한다. 다만 소란스럽게만 안 하고, 어디 멀리 가지만 않고. 관광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로썬 가장 최상의 조건이다. 조금 쉬다 저녁도 먹고, 일단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다른 애들은 닭을 시켜 먹는다거나, 피자를 시켜 먹는다거나 혹은 바깥을 돌아다닌다거나 하며 논다고 한다. 나는 잠시 내 방에서 고민하고 있다.

‘놀자!’ 하고 리유에게 메시지는 왔지만 단박에 가기가 망설여진다. 희세가 단단히 삐쳤으니까. 그걸 풀어주고 싶은데, 그럼 단 둘이서만 있어야 하잖아. 그런 기회를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어찌됐든 다섯 명이 운명공동체처럼 함께 다니는 체제니까. 조금이라도 희세랑 단 둘이 빠져나오는 기색을 성빈이에게 들키면, 그럼 이젠 성빈이 차례다. 아아. 희세랑 둘이 있어서 잘 화해가 될 지도 자신이 없는데, 자칫 잘못하다간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수학여행 마지막 밤인데 안 놀고 그냥 있기도 그렇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철컥.’

“뭐해.”

“어어! 어! 인터넷 보고 있었어!”

“나와, 멍청아.”

“어!”

철컥 문이 열리고 뚱한 표정의 희세가 볼멘소리로 말한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굉장히 당황스러워 펄쩍 뛰어 일어나며 말했다. 희세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문을 닫고 나간다. 어째 희세가 문을 열고 나를 부르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아침에 깨우러 와 줘서 그런가.


‘치지지직.’

“히히, 예쁘다.”

“바닷가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러게.”애들하고 바깥으로 나와서 하는 짓은 폭죽놀이. 숙소가 시내에 있지 않고 외곽에 있어서, 뒷동산 같은 곳에 올라와 폭죽놀이를 하고 있다. 처음엔 우선 막대기 같이 생겨서 지지직 거리는 폭죽을 간단하게 몸풀기로 하고 있다. 작은 걸로도 리유의 반응은 굉장히 열렬하다. 주인이 뭘 하든 즐거워하는 개를 보는 기분. 그에 비하면, 희세는 굉장히 까다로운 고양이 같은 느낌이랄까. 성빈이는…… 성빈이도 개 쪽이려나. 미래는 종잡을 수 없으니까 고양이가 맞겠다. ‘개냥이’ 정도. 어머, 여자애를 동물에 비유하다니 정말 천박하고 여성비하적이네요. 고소해야겠어요. 이런 건 아니겠지, 하핫.

‘부스스스스스─’

“와! 쩔어! 엄청 커! 장난 아니야!”

“봐, 내가 장난 없댔지! 중학교 때 이러고 많이 놀았거든.”

“……불 나는 거 아니야? 숲인데?”

“괜찮아, 폭죽이잖아.”

중학교 때 애들이랑 하던 대로 1000원짜리 분수 폭죽 4개를 한데 뭉쳐놓고 불을 붙였다. 가스불이 합쳐져 커지듯 네 폭죽이 동시에 붙어 어마어마한 불분수를 자랑한다. 어찌나 높이 오르는지 주위 나무에까지 닿을 것 같다. 성빈이가 걱정스럽게 말하지만 나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사실 좀 불안하긴 한데. 괜찮겠지.

‘삐유웅! 펑! 삐유웅! 펑!’

“와! 나도! 나도!”

“넌 위험하니까 하지 마.”

“너도 충분히 위험해 보여! 땅에 내려놓아!”

“이거 원래 이렇게 들고 하는 거야.”

이번엔 10발짜리 발사되는 폭죽. 손에 들고 마치 무기인 양 45도로 들고 하늘 방향으로 쏘니 리유는 눈을 반짝이며 굉장히 좋아한다. 자기도 쏴 보고 싶은지 달라고 한다. 하지만 이 좋은 걸 줄 수가 있나. 의연한 미소를 지으며 주지 않자 리유는 잔뜩 뾰로통해서 ‘줘어~’ 하며 손을 뻗는다. 하지만 리유보다 머리 하나는 넘게 큰 나니까. 간단히 팔을 높이 뻗어 리유가 닿지 않게 한다. 성빈이는 걱정스럽게 말한다. 걱정해주는 모습도 귀여워. 하지만 어째선지, 이럴 땐 또 쓸데없이 남자의 만용 같은 게 치밀어 올라서. 폭죽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리유 같은 반응을 더 보고 싶다구! 흐핳하!

“아. 희세 너도 쏴 볼래?”

“……병신같애.”

“크헉. 야, 그건 좀 너무 심하잖아!”

“됐어, 놀던 애랑이나 마저 노시지. 난 됐으니까.”

“…….”

희세는 얌전히 서서 아까 하던 긴 막대기형 폭죽을 아직까지 붙이고 놀고 있다. 좀 심심해보여서, 어색하지만 용기를 내 말했다. 하지만 희세는 차분하지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따끔하게 말한다. ‘놀던 애랑’ ‘마저 놀라’니. 비꼬는 듯 직설적인 듯한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단단히 화났구나. 이걸 어떻게 풀어주지. 지금은 일단 답이 없다. 여기서 어색하게 있으면 대번에 성빈이까지 이상한 분위기를 인지할 테니까. 씁쓸한 표정으로 희세를 보다 얼른 몸을 돌려 리유 쪽으로 달려가며 ‘으아아아! 또 쏠 거다!’ 하면서 달려갔다. 리유는 까르르 웃으며 ‘여기 여기! 이번엔 나도 쏘게 해 줘!’ 하며 말한다.


적절한 폭죽놀이가 끝이 나고, 밤이 깊었다. 나는 평안한 기분으로 자리를 펴고 혼자 누워 있다. 이불을 덮고 휴대폰을 하고 있으니 몹시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이다. 누워서 인터넷을 하는 건, 그렇게 엄청난 쾌락을 주는 건 아니지만 대신에 안정된 공무원 같은 기분이랄까. 학생이라 공무원은 안 해봐서 진짜 그 느낌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소 하던 짓을 평소 하던 자세로 하니까, 굉장한 안락함과 안정감이다.

여자애들은 자기들 방에서 더 논다고, 놀러 오라고 말했지만─물론 그런 말을 할 애는 당연히 리유─나는 결코 올라가지 않았다. 희세하고 같은 방인데 그 분위기 어떻게 하려고. 분명 올라가봤자 또 무시당하겠지. 성빈이는 오늘 자전거 타면서 얘기도 많이 했으니까, 오늘은 올라가면 나를 무시하지 않겠지. 그럼 그건 그것대로 더욱 큰일이지. 그걸 보고 있는 희세가 더더욱 삐칠 테니까.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어찌됐든 두 사람이 있는 데서 누구 한 명이랑 놀면 안 돼. 그럼 한 명이 감정 상하니까.

……어이 정웅도, 그냥 한 명을 정하면 안 될까. 언제부터 능력 되신다고 두 여자를 한 번에 다 가지려고 한데. 아니 그게에~ 나도 모르겠다고! 몰라 몰라! 으아아!

“낸들 아냐! 나도 답답해 뒈지겠는데! 으아아!”

“뭐가 그리 답답해.”

“으아아아악!”

혼자 답답한 마음에 꽤나 큰 소리로 외마디 소리쳤는데, 옆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불쑥 들린다. 목소리의 진위도 파악하지 못한 체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불이 화악 들춰지며 내 뒤에 있던 무언가의 정체가 드러난다. 희세. 여전한 볼멘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누워 있다.

“뭐, 뭐하는 거야!”

“추워. 이불 줘.”

“어, 여기.”

“…….”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여기 있는데!”

“왜, 있으면 안 돼?”

“……아니, 그건 아닌데.”

희세는 여전히 그 삐친 표정으로 말한다. 굉장히 당황스럽지만 일단 춥다고, 이불 달라는 말에 고분고분 따른다. 그치만 역시 이상하다. 지금은 밤 11시가 넘은 으슥한 시간. 과년한 처자(?)가 어찌 외간남자(??)의 방에, 그것도 잠자리에 함부로 들어와 있다니! 이런 요망한 핑크…… 아니, 누가 뭐가 어떻게 핑크라는 거야. 나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희세를 쳐다보다 잠자코 앉았다.

“…….”

“재미있게 놀았어? 아주 실실 웃음이 떠나질 않던데.”

“……미안합니다.”

“미안? 뭐가 미안한데?”

“아니, 그냥…… 아후.”

희세는 누운 자세를 바꿔 엎드린 자세로 휴대폰을 한다.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희세가 먼저 말을 꺼낸다. 말을 꺼내기 껄끄러운 주제로 딱 집어 말을 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먼저 사과하니 예상대로 희세는 나를 추궁하는 투다. 답이 없다, 캐리어 가야 한다. 아니, 캐리어 지금 똥망인데. 우주모함…… 요즘 뭐함?

“난 네가 성빈이 그 년이랑 노는 거 전혀 신경 안 쓰는데. 네가 누구랑 놀던 그건 네 자유잖아. 그치?”

“……정말 신경 안 써?”

“아니.”

“……나 뭐라고 대답해야 돼?”

“남자새끼가 그렇게 우유부단해서 어디 써먹겠어? 대답 정도는 스스로 정해야 하지 않아?”

“아우우우! 뭘 어쩌란 거야!”

“흐흥. 결론은 그냥 네가 병신이라는 거야. 바보, 멍청이도 포함.”

“…….”

대화의 방향이 심히 괴이하다. 뭐가 어떻게 되는 진 모르겠지만 결론은 내가 바보, 멍청이, 병신이라는 건가. 성빈이 얘기만 나오면 희세는 굉장히 입이 거칠어진다.

“어, 어쨌든 미안해. 그…… 하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갈피를 못 잡겠어. 그…….”

“요약해서 말하면 나랑 사귀자니 성빈이가 아깝고, 성빈이랑 사귀자니 내가 아깝다는 거잖아. 왜, 아주 둘이 사귀지. 둘 사귀고 리유랑 미래까지 얹어서 넷으로 축첩까지 하지 그래.”

“……정말?”

“그러면 처는 나로. 나머진 첩들로. 흫하하하하. 농담.”

“어…….”

희세는 내 말을 받아 아주 돌직구로 말한다. 평소처럼 여유 있는 비꼬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원래의 나를 돌려 까는 희세의 모습대로 돌아온 것 같다. 그렇다해도 여자애 입에서 처첩제라니, 농담이 과한데. 정말 솔직하게, ‘야 근데 나 같은 게 어디가 좋아.’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다. 찌질해 보이잖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하잖아.

“누구랑 사귀어도 별 상관 없잖아. 네 결정인데.”

“……아아.”

“물론, 성빈이랑 사귄다면 진짜 엄청 슬프겠지. 울어버릴지도 몰라.”

“야아…….”

“그럼, 뭐 어떡해? 너 반으로 쪼개서 말려서 건어물 만들어서 열쇠고리 하고 다닐까? 성빈이도 반쪽 들고 다니고?”

“어억…… 그건 너무 무섭잖아.”

“흐흥.”

희세는 눈을 번득이며 살벌하게 말한다. 우옷, 무서워. 얀데레?! 이런 컨셉은 분명 성빈이인줄 알았는데. 희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표정을 바로하고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냥, 어떻게 됐든 결정은 네가 해. 나나 걔나, 그 결정에 따를 테니까. 누구 한 명은 확실히 울리게 될 거야.”

“…….”

“그리고, 너무 기다리게는 하지 마. 그러다 둘 다 떠날 수도 있으니까.”

“어어…….”

“솔직히 너, 너무 답답해. 답답해 미칠 것 같은 건 이 쪽이라고. 성빈이 그 년도 아마 달아 올라서 어떻게 못 하고 있을걸.”

“으음…….”

희세는 삐친 건 완전히 풀렸는지 심드렁한 말투로 말한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직접 담담하게 이런 고백을 들으니, 남중 출신이고 여자애에 굉장히 서투른 나에 대한 자괴감이 엄습한다. 여고 6개월 다녔다고 여자애들이랑 꽤나 친해졌다고 우쭐했었는데.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여자 마음은 갈대라는데, 나는 남자인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갈대같은지. 희세가 이렇게 다정하게 말해주니까 또 희세가 엄청 좋아진다. 그렇지, 희세가 짱이지. 요리도 잘하고, 몸매도 죽이고,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평소엔 툴툴대지만 결국 내 말은 다 들어주고, 가끔은 이렇게 진솔하게 얘기도 해 주고. 으아아아! 이게 뭐야! 으으…….

희세는 굉장히 늦은 시간까지 내 방에 머물었다. 그 뒤로는 그냥 오전에 여행했던 얘기 했다. 사실 그 때 굉장히 화났었다고. 그치만 막상 또 혼자 다니니까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었다고. 나는 최대한 희세가 화날만한 부분은 자체 검열삭제를 하고 성빈이와 다녔던 관광지 얘기를 했다. 뭐, 적절한 검열삭제를 해도 희세는 굉장히 뾰로통하지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니 기분이 좋고 마음이 맑아진다. 그래, 결국 사람은 사람하고 얘기하는 게 최고지. 처음엔 또 설레발, 괜히 희세랑 같은 방에 단 둘이 있다고 혼자 야릇한 기분이 들 법도 했지만 막상 얘기하니까 전혀 그런 건 없다. 그렇게 늦게까지 재미있게 얘기했다.


작가의말

여러분

안녕하세요.
마지막은 잘 쓰고 싶은데 잘 못 쓰고 있는데다
결국엔 분량조절 실패가 도래했습니다.
......31화를 언제 어떻게 끝내야 하지. 흐윽.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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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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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03화 - 4 +15 15.08.10 820 21 20쪽
158 03화 - 3 +14 15.08.09 1,158 26 16쪽
157 03화 - 2 +9 15.08.05 1,105 21 20쪽
156 03화. 여자애랑 놀지만 데이트는 아닙니다. +17 15.08.03 1,282 20 21쪽
155 02화 - 4 +6 15.08.01 1,541 28 19쪽
154 02화 - 3 +10 15.07.29 1,220 20 20쪽
153 02화 - 2 +11 15.07.26 1,238 16 19쪽
152 02화. 친구를 사귀는 것이니까. +8 15.07.23 1,333 21 19쪽
151 01화 - 4 +8 15.07.20 1,305 25 19쪽
150 01화 - 3 +10 15.07.16 1,226 23 18쪽
149 01화 - 2 +6 15.07.13 1,417 18 18쪽
148 01화. 멀어진다 +8 15.07.12 1,565 26 21쪽
147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2 +27 14.12.24 1,659 29 28쪽
146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1 +8 14.12.24 1,522 24 25쪽
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144 32화 - 5 +28 14.08.13 2,004 49 18쪽
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142 32화 - 3 +13 14.08.09 1,815 29 21쪽
141 32화 - 2 +4 14.08.07 1,625 38 18쪽
140 32화. 잡아라, 사랑의 망설임을! +13 14.08.06 1,698 37 21쪽
139 31화 - 6 +16 14.08.04 1,889 31 21쪽
» 31화 - 5 +12 14.08.02 1,965 38 23쪽
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136 31화 - 3 +10 14.07.28 1,609 33 18쪽
135 31화 - 2 +17 14.07.25 1,562 39 23쪽
134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8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7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5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7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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