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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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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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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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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DUMMY

고등학교를 다니며 가만히 보면 일정한 패턴의 생활양식이 있다. 적절하게 신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 방학. 다시 신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 방학. 1학기나 2학기 중간에 적절하게 축제나 소풍 따위가 들어간다. 어느 시기인지는 학교 재량. 또, 학년에 따라 수학여행이나 수능 따위(?)의 특별이벤트가 들어가기도 한다. 학생들 입장에서야 일생에 한 번씩이니까 재미있고 좋겠지만, 선생님들 입장에선 매번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일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의 변화는 매우 크다. 3년간 다니며 중학생의 생활에 적응하게 되면, 이윽고 이어지는 중학교─고등학교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다. 다만 중학생 때 있었던 조금의 자유와 개인시간마저 남김없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 쏟아 부으면 곧 그게 고등학생인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삶──. 그래서, 공무원들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7시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고, 공무원들이 5시간 전에 퇴근했는데 10시가 넘어서 학교에서 나온다. ……커서 공무원이나 할까. 아아, 이런 잡담은 집어 치우고.

“와아! 히히히히. 재미있겠다!”

“아…… 하하……. 재미있겠지.”

리유의 말에 나는 모든 것에 통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은 그, 학기마다 중간고사·기말고사 사이에 랜덤하게 정해지는 그것, 수학여행 가는 날이다. 2박 3일로 이어지는 뻔하디 뻔한 수학여행. 거기다 장소도 아주 골때린다. 당연하게 탐라시에 갈 줄 알았는데, 어이없게도 서라벌시로 간단다.

……거기 중학교 때도 갔거든요!? 심지어 초등학교 때도 갔어! 애초에 탐라시도 그렇게 큰 욕심이 아니야! 내 다른 친구 중에 외지로 고등학교 간 녀석들은 일본으로 수학여행 가는 애들도 있다고! 나도 해외 좀 나가보자! 으아아아!

비단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다른 여자애들도 충분히 많은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학교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으면 그렇게 따라야 하는 게 학생의 본분인걸. 아니, 본분이 아니라 그냥 굴레인가. 반발이 심하다면, 학교에서 「일본이나 탐라 등 해외로의 장기 수학여행의 경우 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이 있을 수 있사오니……」하고 가정통신문을 보내버리면 그만이다. 우리에게 애초에 무얼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웅이는 별로 안 신나?”

“내가 무슨 신이 있겠어…… 그냥 있는 거지.”

리유는 밝게 웃으며 달리는 차창 밖을 보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걱정스런 목소리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묻는다. 물론 나는 어린애가 아니다. 애초에 여행 같은 건 별로 안 좋아하는 타입이라, 사실 수학여행따위 탐라로 가든 서라벌로 가든 알 바 아니다. ……일본은 좀 당기긴 하는데. 거긴 외국이잖아. 여튼.

아 ! 왜 서라벌로 가는 거야! 벌써 세 번째라고! 짜증나. 이번 수학여행, 망했어. 이런 어린아이 같은 고민 때문에 이렇게 풀 죽어있는 게 아니다. 말을 번복하는 것 같지만,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막상 떠나는 여행이면 즐겁게 노는 게 좋잖아. 하지만…… 요즈음의 고민 때문에, 그렇게도 못 하는 내 상황이다.

“……흥.”

리유는 창가 쪽에 앉았고, 나는 통로 쪽에 앉았다. 내 자리에서 왼쪽 대각선 앞, 잘 보이는 자리에 희세가 앉아 있다. 힐끔 희세를 본다. 말끔한 사복 차림의 희세. 그렇게 과하게 꾸민 것도, 엄청 편하게 입고온 것도 아니다. 아니, 평소 희세라면 수학여행이니 좀 더 예쁘게 꾸미고 올 법도 한데 그러질 않았다.

희세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다 때 좋게 뒤돌아 무언가 보려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눈을 반쯤 감고 아니꼽게 나를 잠시 노려보는 희세. 시선을 거두고 뒷자리 정희에게 말을 건다. 아아. 어째선지 미움 받는 것 같다.

“…….”

“……후우.”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부여잡고, 뒤돌아 뒷자리 대각선 자리의 성빈이와 눈이 마주친다. 성빈이는 옆자리 지선이와 얘기하다 내 시선을 느끼고 눈을 반짝, 나를 쳐다본다. 성빈이는 하늘하늘한 흰색인데 분홍색 계통의 원피스. 청순하고 귀여운 성빈이 이미지에 딱 맞는다. 화사하면서도 수수한(?) 묘한 느낌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

나를 쳐다보던 성빈이는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나 또한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아 헛기침을 하고 시선을 앞으로 돌려 한숨으로 바꾸었다. 몸서리 쳐질 것만 같다.

……나는 아직도 결론을 못 내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제는 냉전시기 소련과 미국이 아닌, 2차세계대전 연합국과 추축국처럼 열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통제돼 있을 때엔 그나마 대놓고 무얼 할 순 없지만, 이젠 세 명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기에, 그야말로 전면전 상태이다. 오해라고 하면 오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진실이라고 하면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서로에 대한 감정. 그리고 가운데서 갈팡질팡하는 나. 그래, 모든 원인은 나다. 또 생각하니까 머리 아프려고 한다.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며 흔들리는 창 밖을 바라본다.

희세나 성빈이, 둘 중에 한 명과 같이 앉지 않고 리유와 앉은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분명 누군가랑 같이 앉는다면 어느 한 쪽이 굉장한 기세가 될 테니까.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어째선지 내가 선택하는 그런 상황이 돼 버려서. 리유는 중립국이다. 미래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역시 미래하고도 아직은 껄끄럽기에. 무엇보다 리유는 두 사람하고 모두 친숙하고 여동생 같은 존재니까. 믿음직한 중립국이랄까.

뭐, 중립국 포지션으로 보자면 리유는 스위스구나. 크기도 작고. ……딱히 가슴 얘기를 한 건 아니다. 그런 식이면 희세는 미국이고 성빈이는 소련이게?! 아니, 왜 광활한 대지를 가진 마더 러시아가 희세가 아니란 말인가! 인구랑 생산력으로 가야죠. 역시 가슴 = 생산력인가. 아아아아~ 이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종잡을 수가 없다.


“웅아, 웅아!”

“……응? 도착했어?”

“아니, 점심 먹으래!”

“아하…….”

리유의 부름에 나는 눈은 뜨지 않고 말만 했다. 리유는 달뜬 목소리로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숨을 푹 쉬며 눈을 떴다. 애들은 이미 내리고 있다. 리유는 초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내가 앉아 있으니 나가질 못하고 있다.

“아, 미안.”

“으응. 웅이 어디 아파?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멀미해?”

“아니, 전혀. 멀쩡한데. 왜.”

“계속 잠만 자니까…… 속 매스꺼운 줄 알구.”

“아아, 괜찮아. 짜증내서 미안. 아직 도착 안 해서.”

“으흥흥, 응. 근데 짜증냈어?”

“아냐, 못 느꼈으면 그냥 퉁 치고 넘어갑시다.”

리유는 내가 내내 자고 있던 게 걸렸던 모양이다. 내 대답에 밝게 웃는다. 나는 일어날 때 짜증부린 것 때문에 리유가 언짢아하는 줄 알았다. 서로 쓸데없이 걱정해주고 있었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애들이 다 나가길 기다리다 맨 마지막으로 나왔다.

“…….”

“……기다렸잖아.”

“어.”

“가자.”

내리자마자 오른편에 서 있는 세 명. 언짢은 표정으로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하고 표정으로 말하는 희세. 나를 보자마자 방긋 웃는 표정이었다 금세 어색한 표정으로 바꾸며 머뭇거리는 성빈이. 그리고 이 모든 걸 제 3자의 입장에서 즐거운 듯 빙글빙글 웃으며 보고 있는 미래. 아…… 나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힌다. 성빈이의 말에 다섯명 모두 움직인다.

“…….”

“…….”

선생님에게 도시락을 받고, 가만히 먹는 시간. 나무 밑 적절한 의자 밑에 다섯 명이 앉았다. 한 자리 모자라 미래가 따로 앉긴 했지만. 어떻게든 기어코 내 옆에 앉겠다고, 희세와 성빈이 두 사람이 눈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경쟁해서 결국 오른쪽은 희세, 왼쪽은 성빈이가 앉게 됐다. 리유만 울상이 돼 성빈이 옆에 앉는다.

도시락이라고 해봐야 김밥 한 줄.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참치김밥인 게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은 맛을 보고 어쩌고 할 겨를이 없다. 너무 눈치 보여서. 김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애들도 묵묵히 김밥만 먹는다. 원래 이 다섯 명이 모이면 왁자지껄까진 아니어도 나름대로 즐겁게 얘기하며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었는데. 리유는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미래는 엉뚱한 얘기 담당, 성빈이는 보통 애들 말을 들어주고, 희세는 듣기도 하고, 가끔 아픈 곳을 팍 찌르는 날카로운 대답을 하고. 나는 말도 많이 하고 듣기도 많이 듣고. 그랬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저기…….”

“응?”

성빈이가 주볏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움찔 놀라 성빈이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동시에 희세가 있는 오른쪽이 따끔따끔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기, 기분 탓이겠지.

“아─!”

“푸흡!”

성빈이는 계속 보여주는 그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을 피한다. 아무래도 옆의 희세 때문이겠지. 뭐, 희세가 아니더라도 내가 제대로 답변을 해주지 앉았으니까, 그게 어색한 거겠지. 좀 안타까운 기분이 들어 눈을 감았다 떴는데, 성빈이가 젓가락으로 김밥을 들어 내 쪽으로 내밀며 ‘아─’ 하고 말하는 게 보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먹던 김밥을 거의 쏟을 뻔 했다. 무, 무슨 생각으로!! 옆에 희세 있다니까! 지금 옆에서…… 이상한 기운이! 희세 폭주해버린다고!

“안 먹어?”

“어, 어…… 고마워. 아.”

성빈이는 입술을 깨물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 표정으로 저런 목소리로 말하는데 감히 어떤 남자가 저 김밥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옆에 희세가 있다는 것은 잠시 인식 밖으로 사라지고,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입을 벌렸다. 성빈이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입 안에 김밥을 넣어준다. 같은 김밥이지만, 성빈이가 직접 먹여준 김밥이다. 더 맛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웁. 아앍…….”

“아, 미안.”

성빈이가 준 김밥을 우적우적 맛있게 먹는데 오른쪽 옆구리에 고통이 전해져온다. 희세가 팔꿈치로 내 갈비뼈를 쳤다. 실수로 한 듯 미안하다고 하지만 결코 실수로 옆구리를 칠 만한 각도가 안 나온다. 일부러 친 거다, 이건. 괴로운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희세는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나를 마주본다.

“맛있어?”

“어, 뭐.”

“아아~ 좋겠네, 누구는. 손이 없나, 김밥 멕여주게.”

“…….”

희세의 물음에 나는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이에 희세는 꽤나 큰 소리로 잔뜩 비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물론이고 성빈이까지 단숨에 어색해졌다. 이 주변 공기가 전부 어색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봤다.

“자, 먹어.”

“뭐, 뭐야.”

“내 껀 안 먹어? 왜?!”

“아, 알았어. 아─”

“그래, 그래야지.”

희세는 그러더니 못마땅한 얼굴로 젓가락을 들어 김밥을 집는다. 그리곤 내 쪽으로 내민다. 성빈이랑 잔뜩 어색하게 만들어 놓고 또 이건 무슨 짓이야. 당황해하는 표정을 짓자 희세는 대번에 분노가 가득찬 눈빛을 하곤 나를 본다. 확실한 질투와 분노의 느낌. 나는 얼른 입을 벌려 희세의 김밥을 먹었다. 성빈이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확실하게 김밥을 먹게 만드는 마력이다. 희세는 그제야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몰라 뭐야 얘 무서워…….

김밥을 우적우적 씹으며 힐끔 성빈이를 보니 다 쳐다보고 있던 성빈이인지라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어색해 죽겠다. 둘 가운데에서 이러고 있으려니까. 마침 타이밍 좋게 리유가 ‘어, 나두나두! 웅이, 아─’ 하고 말한다. 다행이다, 리유라도 말을 걸어줘서. 안 좋은 표정과 반응으로 ‘너까지 주면 배 터져서 못 먹어. 이제 그만.’ 하고 말했다. 리유는 ‘어어! 왜 내 것만!!’ 하며 생떼를 부린다. 그나마 눈치없는 리유 덕분에 무거운 분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히힛!”

“…….”

버스는 꽤 긴 시간 달려 어딘가 도착했다. 중간 점심시간에 도시락도 먹었다. 얼른 숙소에나 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숙소는 아직 아닌가보다. 분명 호들갑스럽게 리유가 ‘웅아! 도착했나봐!!’ 하면서 깨웠을 때, 팻말에 「서라벌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써 있는 걸 봤으니 도착한 것 같긴 한데.

가만히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유적 같은 거라도 보는 모양이다. 내려서 잠자코 선생님 말을 듣는다.

“에에, 자! 우리는 드디어! 신라의 고도! 서라벌시에 도착했습니다! 와와와─!”

“……와아아.”

“……신난다.”

선생님은 특유의 오버하는 말투로 혼자 분위기를 띄워보려 애쓰신다. 하지만 애들은 굉장히 제한되고 경직된 반응을 보인다. 억지 웃음과 억지 반응에 분위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그도 그럴 게, 너무 많이 왔잖아. 다른 여자애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만 해도 지금 경주가 세 번째라고.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그리고 지금. 하다못해 설악산이라도 갈 줄 알았어. 아니, 탐라! 탐라로 가자! 했는데! 여자애들도 지금 그런 마음이리라. 선생님은 애들의 시원치 않은 반응에 ‘어어! 놀러 왔는데 다들 왜 죽어가요! 그러면 안 되죠, 이렇게나 재미있는데!’ 하고 말씀하신다. 여자애들은 여전히 반응이 좋지 않다.

선생님의 잔소리 같은 설교는 끝나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1시간 뒤에 이 곳으로 모이란다. 그 동안은 자유롭게, 다만 유적지를 벗어나진 말고 돌아다니며 구경하라고 하신다. 내 쪽을 중심으로 당연하게 붙은 희세와 성빈이. 원래 옆에 있던 리유, 언제 붙었는지 알 수 없는 미래. 이렇게 다섯 명이 자연스럽게 걷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대치상황을 유지해야 하지.

유적이라고 해 봐야, 별다를 게 없다. 1000년의 고도 서라벌이라는데. 책으로도, 사진으로도 질리도록 보고 거기에 나는 3년 주기로 실물을 계속 봐 와서. 새로울 것도 신날 것도 전혀 없다. 지금은 휴가 시즌도 아니라 주위엔 다른 사람 없이 우리학교 애들뿐이다. 아아, 이러면 대체 수학여행의 의미가 뭔지.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게.”

“응.”

답답한 마음에 별로 화장실을 가고 싶지도 않은데 억지로 화장실에 간다고 했다. 희세는 대답하지 않고 성빈이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마 희세도 대답하려 했는데 성빈이한테 선수를 뺏긴 것 같은 느낌이다.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성빈이를 노려보는 희세를 보면 알 수 있지. 후우…… 암 걸릴 것 같다.

‘지이익.’

“…….”

지퍼를 내리고 소변을 본다. 내가 담배를 피울 수 있다면, 지금 피우고 싶다. 담배라도 피워서 그 연기로 이 고민을 허공으로 날릴 수 있다면. 오줌은 매우 노란색이어서 건강이 걱정될 정도다. 고민이 많으면 오줌이 노란색이라던데. 오줌까지 내 심리를 대변하고 있구나. 담배는 피울 수 없으니 마른 한숨을 푹 내쉰다.

“땅 꺼지겠어요, 오빠.”

“으히이익?! 미, 미친년아! 나, 남자 화장실이라고!”

“어머, 꼭 여자 화장실에 남자애 들어와서 ‘꺄아─’ 하고 부끄러워하는 소녀 같은 반응이네요?”

뒤에서 들리는 여자애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소변기에 몸을 바싹 붙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미래다. 문 앞에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내 뒤에 서 있다. 그것도 매우 당당하게. 어느 정도 똘기가 있는 여자애라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남자 화장실에 들어올 정도였다니. 뭐, 나 말고 아무도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고생」이란 타이틀은 대체 어디로 가져다 버린 거냐, 근미래! 지내면 지낼수록 막장이 돼고 있어!

“어, 얼른 나가! 미쳤어! 다른 사람 있었으면 어쩌려고!”

“어멋……♡ 그 말, 되게 야하게 들리는데요. 다른 사람 있었으면……?”

“닥쳐!! 좀 제발! 여고생이면 여고생답게 좀 해!”

짜증스런 표정으로 큰 소리로 말하며 미래 등을 떠밀었다. 미래는 깔깔 웃으며 ‘아 왜~~ 어차피 남자화장실 청소도 아줌마들이 하는데~!’ 하며 말한다. 그거하고 이건 경우가 다르지. 아주머니는, 엄마 같은 분들이니까.

“고민하고 있는 거죠.”

“……뭐, 그렇지.”

화장실 입구가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 쪽이랑 반대여서, 그 쪽에선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넌지시 말을 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래는 피식 웃으며 품에서 무언가 긴 막대 같은 걸 꺼낸다. ‘한 대 피우면서 할래요?’ 하고 말한다. 뭐, 뭣?! 이제 하다 하다 담배까지……?! 당장 뺏어서 ‘미, 미친년아! 다른 건 다 돼도, 담배는 안 돼! 차라리 섹드립을 쳐!’ 하고 말했다. 하지만 뺏은 것은 결코 담배의 감촉이 아닌 무언가. ‘똑’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손에 묻어나는 하얀 가루. Aㅏ…… 분필…….

“으핳핳하하핳ㅏ핳하!”

“아오!! 좀 작작 좀 가지고 놀아!”

“좀 웃으라고 한 거에요, 웃어요.”

“하나도 안 재미있어.”

분필을 땅바닥에 집어던져 아홉조각을 내자 미래는 미친 듯이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짜증난다. 미래의 의도대로 웃음이 나긴 커녕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좀 얼른 해결 좀 해 봐요, 보는 제가 다 토할 것 같단 말에요. 뒤에서 보면 있잖아요, 얼마나 짜증나는 줄 알아요? 둘 사이에 껴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본인이 제일 치열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미래는 갑자기 정색하고 말한다. 미래의 말에 더욱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느끼게 된다. 이제 애들 앞에 서는 것도 잘 못할 것 같아.

“결정하기 힘들어요?”

“……어.”

미래의 말에 나는 잠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미래가 해결책이라도 내줄 것 같은 분위기다. 지금은 누구한테라도 의지하고 싶다. 어떻게 안 되겠어, 내 마음대로는. 내 마음도 내가 잘 모르겠는걸.

“어렵게 생각하지 마요. 그냥, 이 수학여행이 분기점이라고 생각하세요. 수학여행 다니는 동안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 고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마음이 당겨야 두 사람이 사귀는 거죠.”

“……어. 그래.”

“흐흥. 좀 마음이 정해졌으려나─”

미래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 분기점……. 희세하고 성빈이, 둘 다 너무 확고한 매력이 있어서, 잘 못 고르겠다. 하지만 이번 수학여행에서라면…… 그게 가장 합당한 선택일 것 같다. 그래, 그게 맞겠다. 미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는 피식 웃으며 재미있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뭐야, 왜 이렇게 안…… 응?”

뒤에서 희세 목소리가 들린다. 나와 미래를 힐끔 보더니 ‘두, 둘이 뭐하는 거야?!’ 하고 말한다. 미래는 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더니 ‘아─ 약간의, 인생상담? 고민상담? 같은 거랄까─? 꺄하하하─!’ 하며 달려간다. 희세는 미친년 보는 것처럼 옆으로 지나가는 미래를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린다. 그러더니 굉장히 무서운 표정으로 ‘……무슨 얘기 하셨는지 천천히 들어볼까?’ 하고 말한다. 아아, 미래야. 나 갑자기 못 정할 것 같은데. 자신감이 쭉 빠져. 뒤이어 저 쪽에 성빈이까지 오는 게 보인다. 하…… 항복.


하지만 뭐, 30분 동안 구경하는 건 금방 끝이 나서 다시금 버스를 탔다. 이제 숙소로 가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지났구나.


작가의말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의욕이 떨어져서요.

7월 18일인가, 시드노벨에서 모애모애 조선유학』이라는 걸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송시열이라니,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공모전에 라노베를 내려는 저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재미있는가, 이야기가 있는가, 그런 건 상관 없습니다. 캐릭터와 모에함, 그것만 있으면 되는 게 이 바닥이다. 라는 건 진즉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충격은. 결국 전 평범한 학원일상물, 아무데나 차면 걸리는 돌멩이 같은 작품을 쓰고 있고, 정작 출간되는 건 저런 얼토당토 않지만 사람 허를 찌르는 작품... 허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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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31화 - 6 +16 14.08.04 1,889 31 21쪽
138 31화 - 5 +12 14.08.02 1,964 38 23쪽
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136 31화 - 3 +10 14.07.28 1,609 33 18쪽
135 31화 - 2 +17 14.07.25 1,562 39 23쪽
»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8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6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4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7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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