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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369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7.20 19:04
조회
1,304
추천
25
글자
19쪽

01화 - 4

DUMMY

“여보세요?! 리유야? 리유?!”

『응! 헤헤헤, 되게 오래간만이네.』

“야 왜 전화를 안 했어!!”

휴대폰 화면 위에 떠오른 ‘리유♡’와 전용 벨소리. 얼마 만에 받는 리유의 전화인가. 얼른 전화를 받아 다급하게 말을 꺼낸다. 익숙한 리유의 목소리. 눈물마저 글썽거릴 정도로 감격스럽다. 나도 모르게 어린애처럼 생떼를 부릴 정도. 그만큼 리유의 전화가 기다려졌다.

『아, 전화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몰라서…… 방법을 잘 못 찾아서, 오늘 겨우 전화했어, 헤헷.』

“거기 어때? 밥은 잘 챙겨 먹어? 말은 안 답답하고? 괴롭히는 사람은 없어?”

『하, 한 가지씩만, 너무 빨리 말해서 못 알아 듣겠잖아.』

리유의 소식에 대한 갈망으로 나는 더욱 마음이 급해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한다. 왜 전화가 오지 않았나, 지금까지 얼마나 끙끙 앓았는데. 그렇잖아?! 아무리 외국이라도, 휴대폰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통신환경이 낙후된 곳으로 간 것도 아니고, 오스트레일리아면 선진국 아니었어?! 먼저 전화를 걸어보니 ‘고객님의 사정으로……’하는 수신음만 들리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하고.

“잘 지내? 힘들지 않아?”

『응, 괜찮아. 주위 사람들도 잘 해줘.』

“자는데는. 무슨 원룸 같은 거야?”

『기숙사야. 룸메이트도 외국인이야. 일본인이래! 신기해.』

“와, 진짜. 말은 통해?”

『나도 영어를 못하고, 그 애도 영어를 못 해. 그렇다고 각자 한국어나 일본어도 못해서.』

“아아. 답답하겠다.”

『그래도 손짓발짓 하면서 지내고 있어.』

리유의 요청대로 차분하게 한 마디 한 마디 이어나가는 대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그만큼 리유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나보다. 나도 모르게 리유에게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기억하고 알고 싶어하는 나를 보게된다. 리유의 부재가.

목소리가 생각보다 밝아서 다행이야. 기죽거나 그러진 않은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웃으며 얘기하는 리유의 얼굴이 절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 같아. 보고 싶다. 가기까진 몰랐는데, 전화통화를 하니 실감이 간다. 못 본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말 안 통해서 답답하지 않아?”

『응, 그렇긴 한데. 그래도 최대한 영어로 말해보라고, 여기 선생님이 그러셔서! 여기 선생님 외국인인데 한국말 엄청 잘해!』

”응, 대단하네.”

리유의 대답을 듣곤 나는 더욱 훈훈한 미소를 짓게 된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리유의 모습이 상상되니까. 시시콜콜한 얘기라도 재미있다.

『웅이는 잘 지내고 있어? 2학년 올라갔겠네!』

“어…… 어, 잘 지내지.”

내 안부를 묻는 리유. 조금 머뭇거리다 대답하는 나. 너무 잘 지내서 탈이지. 리유 너 없는 것만 빼면. 대답하고 바로, 휴대폰을 뺏겨버린 나.

“잘 지내다마다. 식모처럼 나 데리고 잘 살지.”

『아아?! 히이야! 왜 웅이랑 같이 있어!!』

“주말이니까, 놀러왔지. 너도 알잖아, 주말에 청소도 빨래도 밥도 안 챙겨먹고 폐인처럼 지내는 녀석인 거, 네 남자친구.”

『아, 맞다 그렇지.』

“그렇게 쉽게 수긍해버리면 내가 뭐가 되!!”

옆에서 휴대폰을 뺏어 말하는 희세. 어떻게 저항할 틈도 없이 기습적으로 가져갔다. 휴대폰으로 리유의 목소리가 들린다. 약간 놀란듯한 목소리. 하지만 이내 희세의 대답에 수긍하는 듯 대답한다. 뭔가 억울한데, 그런 평가는. 리유까지 인정해버리다니.

“대충은 옆에서 들으니까 잘 지낸다는 것 같은데. 내가 전화 방해하는 것도 그렇고, 목소리 들었으니까 돌려줄게.”

『응! 고마워, 히이야!』

“여보세요.”

『응! 히이랑 같은 반이야? 비니랑 미래는?』

“어, 미래랑만 같은 반이고. 성빈이랑 희세는 다른 반이야.”

『아! 아깝다. 그래도 같이 놀지! 점심 같이 먹구?』

“그렇지.”

희세는 금세 휴대폰을 돌려준다. 리유와 통화를 계속한다. 아아, 달콤하다. 이대로 계속 전화하고 싶어. 끊고 싶지 않다. 이런 기분은 처음인데.


“아주 좋아 죽네.”

“야, 멋대로 전화 끼어들면 어떡해!”

“……흥.”

얼마나 전화를 했을까. 꽤나 오랜 시간 통화하고 끊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통화를 종료했다. 리유가 일이 있다고 해서. 괴롭지만 잘 지내라고, 애걸하듯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끊고도 잠시동안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봤다. 아, 벌써부터 이만큼 괴로우면 어떡하지. 언제쯤 돌아올까, 리유는. 방학 때에나 오려나. 아, 그럼 아직 4개월이 넘게 남았구나. 끔찍한데.

희세는 컴퓨터를 하며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얼른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세가 놀러와 있는 걸 리유에게 들키는 건 조금 껄끄러운 일이잖아. 어느 여자친구가, 남자친구 자취방에 다른 여자애가 놀러와 있는 걸 달가워하겠어. 뭐, 리유 자체는 굉장히 순수하고 의심이 없어 희세를 그런 눈으로 보는 것 같지 않지만.

“왜. 다른 여자애랑 놀아나는 거 여자친구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다, 그거야? 흥, 최소한의 양심은 있네.”

“……말을 그렇게 하냐. 기본적으로 그. 그렇잖아. 여자애가 남자애 자취방에 와 있는 걸 좋아할 여자친구가─”

“리유도 괜찮다고 했잖아. 너 자취할 적부터 아침마다 와서 깨워주고 밥 차려주는 것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리유인데. 뭐 문제 있어? 꼬우면 리유가 와서 깨워주가 밥 차려주라고 하던가.”

“……아니, 그…… 그건 고맙지, 되게 고마운 일인데.”

희세는 한층 공격적이 돼 날카로운 투로 말한다. 시선을 컴퓨터에서 떼지 않은 채로. 냉기가 풀풀 날리는 희세의 말에 나는 반박도 못 하고 어물적 대답한다. 어쨌든 희세가 많이 도와주는 건 사실이니까,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저녁, 카레 만들 건데 도와줄래.”

“어, 그런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데만큼은 도와 줘야지!”

시무룩해진 상태에서 희세의 말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다. 피식 웃으며 컴퓨터에서 일어나는 희세. 요리는 잘 못 하지만 옆에서 보조치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니까. 도움 되는 만큼은 힘이 되야지.


“힘이 없어 보이네?”

“아, 성빈이 안녕.”

“응, 왜? 풀 죽어 있네, 월요일부터.”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시금 학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생활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나의 풀죽음은 월요병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학교에 오는 건 일상적인 일이잖아, 중학생도 아니고.

1교시가 끝나고 성빈이가 내 자리로 찾아왔다. 옆 반이니 오는 것은 금방이지. 풀 죽어서 엎드려 한숨 쉬고 있는 나를 보고 묻는 성빈이. 고개를 들어 성빈이를 보고 인사하며 말한다.

“그냥…… 음료수 사 줄래?”

“아…… 사 주는 게 아니라 사 달라고? 흐흥, 알았어. 기운 없어 보이니까 내가 쏠게.”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장난. 뭐, 성빈이랑은 그만큼 친해졌으니까. 비단 친해진 것 말고도, 예전에는 여자애들하고 얘기도 잘 못 하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보는 대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애초에 같이 생활하는 게 여자애들 뿐인 여고인데, 적응하지 못하면 그냥 내가 왕따가 되는 길 밖에 없잖아. 따돌림은 비스무리하게 당해봤지만.

성빈이는 내 드립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빈이를 따라 복도를 걷는다.

“어제, 드디어 리유한테 전화가 왔거든.”

“와, 잘 됐네! 며칠 전화 안 온다고 전전긍긍 하고 있었잖아.”

“그렇지. 근데, 전화하니까. 하아. 뭐랄까. 더 공허하다고 해야 하나.”

“음??”

음료수를 뽑아 건네는 성빈이. 기운이 없지만 애써 방긋 웃어 보이며 음료수를 마신다. 그래도 좀 개운해지는 기분. 쉼터 의자에 둘이 앉아 얘기를 나눈다. 성빈이에게 이 공허한 기분에 대해 토로한다. 성빈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이야기를 경청해준다.

“이제 실감난다고 해야 하나. 만날 수도 없고, 목소리에만 의지해야 하는 이 답답함. 전화 끊으니까 더 듣고 싶고, 보고 싶고. 근데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하아.”

“응, 알 것 같아, 조금은.”

전화를 마치고 더욱 생겨나는 리유에 대한 갈증을 말하니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경청하는 성빈이.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역시, 성빈이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힐링 쉼터(?)이다. 말을 하니 어느 정도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다.

“방학 때 돌아온다고 해도 아직 4개월 넘게 남았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리유 놀러 간 것도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러 간 거니까, 웅도 네가 기도해야지. 힘든 건 리유가 더 힘들 테니까.”

“응, 알지. 그래서 더 걱정되고. 그 쬐끄만 애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한국말 통하는 사람들하고도 얘기하는 거 서투른 앤데.”

성빈이는 정석적인 위로를 건넨다. 그렇지, 리유 놀러간 게 아니지. 누구보다 힘든 것도 리유고. 머리로는 다 이해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내 이기심은 그렇게 허락하지 않으니까, 이런 상황을.

“수줍음 많이 타서 그렇지, 말은 잘 하잖아, 리유. 네 여자친구인데 왜 여자친구 무시해! 웅도 나쁜 애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말이. 객관적으로.”

“그래도 네 여자친구인데! 감싸주고 살펴줘야지.”

“되게 아줌마 같은 말 하네.”

“아줌마라니이! 너무해!”

성빈이의 태클에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내가 성빈이에게 여유 있게 드립을 칠 만큼 친해진 정도로, 성빈이도 나를 당황하게 하는 말을 한다. 물론 희세처럼 독설이나 악의가 있는 말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방긋 웃으며 역으로 되돌려주니 성빈이는 발끈 화를 낸다. 귀여워.

“뭔가 군대 간 남자친구 기다리는 여자친구 같네, 웅도. 쩔쩔 매는 것도 그렇고. 성별이 반대로 된 것 같지만.”

“아아. 군대는 아직 먼 얘기니까 꺼내지 맙시다. 그것까지 생각하면 더 답답해지잖아.”

“아핫, 그렇지. 군대는 대학교 때 가는 거니까. 아직 대학생도 아닌데.”

성빈이의 부적절한 비유에 나는 다시금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군대는 제발. 아니, 4년 안에 통일이 될 거야! ……자기 아버지뻘 되는 정치인들을 마구 숙청하는 미친놈이 집권하고 있긴 하지만.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성빈이와 조금 더 얘기하다 슬슬 쉬는 시간이 끝나가서 이야기를 마치고 각자의 교실로 돌아간다. 예전에는 같은 교실로 들어갔는데, 꽤나 어색하네. 방긋 웃으며 돌아가는 성빈이의 미소가 상큼하다.


“왜 절 이렇게 따로 부르셨죠? 어머, 전, 오빠 마음, 받아줄 수 없어요. 전 이미 포기했는걸요…… 예전엔 제 고백 찌질하게 거들떠도 안 보더니, 이제 와서 왜……?”

“아니, 그런 말은 전혀 꺼내지도 않았는데. 애시당초 말도 안 꺼냈는데 왜 혼자서 드립치고 있어.”

“흥흥!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외모랑 가슴은 희세한테 하위호환! 성격이랑 치유력도 성빈이한테 하위호환! 로리력도 리유한테 하위호환! 저는 이제 팝콘만 먹겠다고 선언했잖아요!”

“상담할 게 있어서 그래, 상담.”

“상담?! 사앙다↘아암↗?!”

점심을 대충 먹고 할 말이 있어, 미래를 불렀다. 어느 정도 민감한 얘기이기에 건물 뒤 으슥한 곳으로 불렀다. 왜인지 모르게 건물 뒤에 벤치가 마련된 장소. 미래는 망설이는 수줍은 소녀의 모습을 ‘연기’하며 말한다. 미래의 본모습과 본성격은 예전부터 알고 있기에 무미건조한 말투로 미래의 드립을 끊어낸다. 미래는 그제야 본성을 드러내며 막말과 자학개그를 일삼는다. ‘상담’할 것이 있다고 하니 ‘상담’ 이란 말을 비꼬듯이 낮췄다 높였다 하며 말한다.

“그래요, 서서 말하기도 그러니 일단 앉지요.”

“응.”

“어허! 남녀칠세부동석이거늘, 외간남자가 외간여자와 한 자리에 앉다니 어찌! 그러고도 사대부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겠나! 자네는 정씨 가문을 이을 자격이 없네!”

“뭐 어쩌라는 거야. 네가 앉으래놓고. 그리고, 나 장손 아니라 상관 없는데.”

“개그를 다큐로 받으면 어떡해요, 데헷☆”

시덥잖은 드립따위, 이제는 간지럽지도 당황스럽지도 않다. 워낙 내성이 생겨서 미래도 별다른 반응 없이 눈을 찡긋 하며 대답한다. ‘그래서, 무슨 상담거리가 있어서 저 따위에게?’ 하고 말을 꺼내는 미래. 이 녀석에게 자학은 일상이구나. 일일이 태클 걸기도 힘들어 본론으로 들어간다.

“……네가 볼 때에, 내가 줏대 없어 보이냐.”

“음─? 아무 맥락도 없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이해하기 힘든데요. 어떤 분야에서 그렇다는 거죠? 물론 줏대는 없지만.”

“결론을 좀 처음에 말해! 줏대 없는 거잖아, 결론이!”

“네, 그렇죠. 하는 짓거리 보면 알 수 있잖아요? 1학년 때, 저랑 희세랑 성빈이랑 리유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제 3자의 관점에서 봤다면 정말 암 걸렸을 껄요? 강력한 항암치료 병행해야 할 정도로.”

“크으…….”

말주변이 없어 뭐라고 질문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대뜸 질문했다. 미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폭언을 내뱉는다. 결론을 끝에 말하는 미래의 화법에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이어지는 미래의 적나라한 말에는 대답하지 못 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미래에게 상담은 건 것인데.

미래에게 상담을 건 것은 희세 때문이다. 리유가 가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어필하는 희세. 아무리 둔감하고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 해도, 그 정도로 파악 못 하는 고자는 아니다. 무엇보다 리유랑 사귀면서 어느 정도 여자애들에 대해 알게 됐으니까.

문제가 뭐냐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 ‘나는 여자친구가 있으니, 이런 건 안 돼.’ 하고 매정하게 희세에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대로 둬? 어느 쪽도 조금은 껄끄럽고 망설여지는 선택지다. 명분대로 말하자면 첫 번째 선택지를 골라야 하겠지만, 그렇게 매정하게 했다가 희세와 사이가 안 좋아지기라도 한다면…… 충분히 그럴 것 같고.

“오빠는 기본적으로 너무 둔감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저절로 하렘을 만들곤 하죠. 남들이 볼 때엔 어장관리 하는 건 줄 알 거에요. 나쁜 남자네요, 오빠는?”

“아니라니까, 그런 거! 나는, 그냥.”

“‘사이가 나빠지기는 싫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만나는 건 한 명만.’ 이라는 건가요? 되게 이기적이네요. 여자애 같고. 오빠도 여고 다니면서 점점 여성화 돼 가는 거에요?”

“여자애가 그렇게 여성차별적인 말 하는 거 아니지. 희세 있었으면 대뜸 뭐라고 했을걸.”

“그런 선비질은 지금 통하지 않아요. 논점 흐리지 말구요, 지금 얘기하던 건 오빠의 하렘천하에 대한 것이니까.”

“크으…….”

2차 논쟁도 철저한 패배. 내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 내 의도가 무엇인지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는 미래의 말에 내 마음은 벌집이 돼 너덜너덜해졌다. 어떻게 변명할 구석이 없다. 그래,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그럼 나는 역시, 매정하게 끊어야 한다는 건가.”

“그건, 오빠 하기 나름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무슨 소리야?”

딱히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미래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결론부터 말하는 나. 뭐, 미래가 먼저 다 꿰뚫어 봐서 이런 대화가 성립되는 것이지만. 미래는 눈을 찡긋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한다. 미심쩍은 눈빛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람이 전부 운명적인 사랑을 하나요? 한 번 사귀면 평생동안 사랑해야 하나요? 전혀! 이성친구는 말 그대로 ‘친구’에요. 평생가는 친구도 있겠지만, 금세 연락 끊어지고 소원해지는 친구도 많죠. ‘영원한 사랑’은 없어요. 허구에요. 신기루에요. 다만 사람들이 그런 사랑을 하고 싶으니까, 워낙 영원한 사랑이 없으니까 만들어낸 허상이죠. 지금 오빠의 상태도, 그렇다고 봐요.”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미래는 뭔가 철학적인 말을 지껄인다. 줄줄 길게 말했지만, 끝까지 듣고 머릿속으로 곱씹은 나는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느낀 불쾌감의 원천은,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 그걸 굳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하는 의도가 뭔데. 그러니까, 리유와 나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다른 애들하고 바람이라도 피워라, 그런 말?

“강요한다거나 장려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는 얘기에요. 오빠가 지고지순하게 기다린다면,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죠. 1년인데. 중간에 찾아오기도 할 테구요. 군대 2년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는데. 정하는 건 오빠의 자유에요,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니까. 어떤 것도 오빠를 구속하거나 강제하는 건 없어요. 아, 대한민국 입시위주 사회는 구속하겠네요, 오빠 행동을.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너는 그냥 보는 게 재미있는 거지? 내가 괴로워하고, 다른 애들 사이에서 휘둘리는 거.”

“어맛! 데헷, 들켜버렸네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하고 불구경이잖아요! 둘 다 볼 수 있는데, 오빠랑 다른 애들 관계는! 불장난에, 싸움에! 그러니까 저는 전선에서 빠져서 구경만 할 거에요! 에헤헤헷☆”

“……너무 솔직하잖아. 짜증도 못 나게.”

미래는 내 앞을 서성거리며 달변가처럼 줄줄 말한다. 궤변 같기도, 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하다. 미래녀석, 나중에 약장수나 다단계 같은 거 하면 잘 할 것 같다. 가만히 미래의 말을 곱씹으며 솔직한 평을 말한다. 금세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하는 미래. 너무 솔직해서 화를 내기도 그렇다. 순수하게 팝콘 먹을 생각 가득한 미래다.

“내 선택이라.”

“그래요. 저는 어떤 것도 오빠를 탓하진 않을 거에요. 리유랑 헤어지고 다른 애랑 사귀던, 끝까지 리유에 대한 마음 간직하던. 아니면, 또 발암 걸리게 리유랑도 사귀면서 다른 애들과도 미묘한 캐미 오가는 것도. 마지막 쪽이 더 쫄깃하고 재미있겠네요! 그 쪽을 권장하고 싶어요.”

“~~아아.”

더욱 괴롭게 돼 버렸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 되고 싶어 미래에게 상담을 걸었는데, 도리어 더욱 복잡한 심사가 돼 버렸다. 미래는 깔깔 웃으며 다시금 내 자리 옆에 앉는다. ‘잘 해 봐요! 청춘이잖아요! 노력하면 될 거에요, 노오오~력! 무슨 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해 보세요!’ 하고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한다.


리유는 보고 싶고. 희세는 계속 어필하고. 성빈이는 완전히 포기한 것 같고, 미래는 여전히 드립투성이에 설명충 선언. 나는 어떡해야 할까, 이 난세(亂世) 속에서.


작가의말

불성실 연재의 등장! ㅠㅠㅠ 죄송합니다 4일이나 밀려서......

다른 작품도 쓰고 있고,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보장은 못 하겠어요, 성실연재는...... 으앙 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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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99 코드명000
    작성일
    15.07.20 19:24
    No. 1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들어가는것은 아니죠 결혼하더라도 불안한것이 요즘 세상이건만.....
    전 희세가 가장 좋지만 리유도 아주 조금 차이로 그다음으로 좋기에 누구를 선택하는것보다는 미래가말한 쫄깃한? 상황을 유지하는것이 가장 재미있을것 같은데....ㅋㄹ
    다시 돌아오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20 22:32
    No. 2

    아! 다시 봐 주시니 감사하군요! 저도 다시 써서 몹시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7.20 20:55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20 22:33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5.07.21 22:48
    No. 5

    웅도는 언제나 발암덩어리죠 뭐. 새삼스럽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22 21:36
    No. 6

    스스로도 알고 있지요, 자기가 발암덩어리라는 것을. 하지만 미래가 호락호락하게 해결책을 알려줄 리가. 발암덩어리로 있는 게 더 팝콘 많이 먹고 좋을 미래인데.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5.07.22 15:46
    No. 7

    뭐....고자 웅도대신 제가 들어가고 싶은...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7.22 21:36
    No. 8

    선택의 자유겠지만, 사실 누구라도 저 상황에 처한다면......

    저는 그냥 한 명만 만나서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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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02화 - 2 +11 15.07.26 1,237 16 19쪽
152 02화. 친구를 사귀는 것이니까. +8 15.07.23 1,332 21 19쪽
» 01화 - 4 +8 15.07.20 1,305 25 19쪽
150 01화 - 3 +10 15.07.16 1,226 23 18쪽
149 01화 - 2 +6 15.07.13 1,417 18 18쪽
148 01화. 멀어진다 +8 15.07.12 1,565 26 21쪽
147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2 +27 14.12.24 1,659 29 28쪽
146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1 +8 14.12.24 1,521 24 25쪽
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144 32화 - 5 +28 14.08.13 2,004 49 18쪽
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142 32화 - 3 +13 14.08.09 1,814 29 21쪽
141 32화 - 2 +4 14.08.07 1,624 38 18쪽
140 32화. 잡아라, 사랑의 망설임을! +13 14.08.06 1,698 37 21쪽
139 31화 - 6 +16 14.08.04 1,888 31 21쪽
138 31화 - 5 +12 14.08.02 1,964 38 23쪽
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136 31화 - 3 +10 14.07.28 1,609 33 18쪽
135 31화 - 2 +17 14.07.25 1,561 39 23쪽
134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7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6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4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6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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