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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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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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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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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글자
18쪽

31화 - 3

DUMMY

“…….”

리유는 꾸욱 눈을 감은 체 웅도 방에서 나왔다.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는 걸 제어하지 못하는 리유의 특성 상 잔뜩 삐치고 화난 게 얼굴에 다 티가 나겠지만 리유는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로 웅도를 속이고 나왔다. 졸리다는 핑계가 유효하게 먹혔다. 실제로 졸리기도 하고. 밤 11시는 새나라의 어린이인 리유가 버티기엔 좀 늦은 시간이다.

“……웅이 바보!”

계단을 오르며, 리유는 공연히 한 마디 했다. 자기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웅도에게 화가 난다.

성빈이와 희세에 대한 일은 리유에게 큰 충격이었다. 두 사람이 전부 웅도를 좋아하고, 그 사이에서 웅도가 선택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애초에 남자애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잘 모르는 리유인지라 더욱 혼란스럽다. 그냥 좋으면 다 같이 좋은 거지, 꼭 특별하게 웅도만 좋아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리유는 웅도가 좋다. 웅도가 좋은 만큼 희세도, 성빈이도, 미래도, 다같이 좋다. 웅도가 간단히 부르는 말로 칭하는 ‘밥 패밀리’의 자신을 제외한 네 명 모두 좋다. 애들에게 따돌림 받아 상처받고 부족한 자신의 말을 가장 먼저 들어준 친구들이니까. 누구 하나 특별하거나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특별하다면?

리유는 스스로도 자기가 다른 애들에 비해 조금 생각이 어린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다른 애들이 자기하고 똑같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자기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하는 건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 그런 입장이니, 다른 애들이 어떤 생각이나 의견을 제시한다면 리유는 그걸 감히 어떻게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 하게 된다.

성빈이와 희세가, 웅도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웅도를 자기만의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둘 중에 누가 됐건, 만약에 웅도와 그런 관계를 이루게 된다면. 분명하게, 그 두 사람은 여러 애들의 ‘밥 패밀리’에서 조금씩 떨어져나가게 될 것이다. 괜히 ‘특별한 관계’가 아니잖아. ‘밥 패밀리’의 주도자이자 실질적으로 그 패밀리를 꾸민 웅도가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가 돼 누군가를 특별취급 하게 된다면. 그리고 결국 나중에는 패밀리를 떠나게 된다면.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나머지 애들은 분열될 게 뻔하고, 결국 원래의, 학기 초의 개개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리유는 그게 싫다. 싫다기보단 무섭고 두렵다. 지금 이대로의 친구들이 좋다.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어찌됐든 둘 중에 한 명하고 그런 관계가 될 확률이 있으니까, 리유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될 수도 있다. 차라리 한바탕 싸워서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면 그건 화해해서 치료할 수 있는 관계니까 낫다. 하지만, 이런 식의 애매한 관계의 틀어짐은……. 이제 막 친구 사귀는 법을 조금 터득하려 하는 리유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아직 일어나진 않았지만.

“……응?”

“요오오잇~ 기다렸잖아. 히힝.”

이 많은 생각을 걸어가는 짧은 사이에 할 리는 없다. 중간에 계단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한숨을 쉬며 우울한 생각을 하며 우울한 마음에 사로잡힌 리유는 힘없이 터벅 계단을 마저 올라 방 앞으로 걸어갔다. 졸리다는 핑계를 댔지만 우울한 생각을 하니 정말 무기력하고 졸려졌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잠들고 싶다. 내일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힘없이 방으로 돌아오니 방 앞에 미래가 서 있다. 자신을 쳐다보며 방긋 웃는 얼굴로. 리유는 힘없이 대답한다.

“나…… 기다린거야?”

“응. 재미있을 것 같아서.”

“뭐가.”

“흐흥.”

미래는 즐거운 듯 미소지으며 말한다. 리유는 살짝 이상한 느낌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다렸다는 말일까. 미래가 이상한 애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때 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평소의 기운 넘치는 리유라면 재잘재잘 ‘뭐가? 뭐가 재미있는데? 나도 나도!’ 하면서 앵앵거렸겠지만 지금은 전혀, 무기력하고 졸릴 뿐이기에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저 방으로 들어가 자고 싶을 뿐이다. 미래는 흐흥 웃으며 리유에게 다가온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오늘은 관광도 거의 안 했는데.”

“졸려서…… 몰라, 피곤해.”

“웅도 방에 놀러갔던 거 아냐?”

“……응.”

미래는 전혀 걱정스럽지 않은 느낌으로 물어본다. 리유는 다 귀찮아 대충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뒤이은 미래의 질문에 멈칫 했다. 응, 웅이 방에 갔다오긴 했는데. 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는다.

“웅도가 뭐 힘들게 했어? 헉, 설마 설마~~ 에이, 아니겠지. 아무리 한창 때의 남고생이라도, 리유 같이 귀여운 애를~”

“…….”

미래는 혼자만의 망상을 펼치며 저 혼자 좋아라 한다. 리유는 입이 달싹 거리는 걸 느꼈다. 뻐끔뻐끔 무언가 말하려다 덜컥 입을 꾸욱 다물었다.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든, 자기 답답한 마음을 말하고 싶다. 모두하고 친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강제할 순 없기에, 그렇다고 두고 보고 있기는 싫은, 그런 마음. 복잡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잘 정리도 안 되지만 두서없더라도 조금씩 풀어 나가며 말하면 답답한 마음이 정리될 것도 같다.

하지만 리유는 꾸욱 참았다. 말해선 안 된다. 웅도가 자기를 믿어 줬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를 해준 거잖아.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기 전에 ‘웬만하면 말하지 말아줘’ 라는 당부도 했으니까. 무엇이 어떻게 됐든, 어렵게 사귄 소중한 친구와의 관계가 깨지는 건 싫으니까, 소중한 친구가 기분 나빠할 만한 짓은 원천 봉쇄다. 내가 답답하고 말래, 리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마음도 닫았다.

“으응?”

“잘래.”

“에에. 뭐야, 진짜 별 일 없었어?”

“응. 웅이가 나한테 뭘 해. 그냥 놀다 왔어.”

“헤에~ 그래.”

리유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웅이가 나한테 뭘 해’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뭔가 움찔, 서운한 느낌이다. 리유 스스로도, 웅도가 자기를 특별취급하지 않으리란 걸 인정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말 했을 것 같은데. 웅도라면.”

“……?”

“희세하고 성빈이 얘기.”

“!”

리유는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미래는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리유는 얼떨떨해서 시선을 돌려 미래를 쳐다보는데, 이어지는 미래의 말에 제대로 놀란 표정이 됐다.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은 동그래졌다. 애초에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걸 잘 못 숨기는 리유다. 움찔 바보같아 보일 것 같아 입을 다물고 표정을 바로 했다. 하지만 미래는 빙글빙글, 이미 리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미소 짓고 있다.

“신경 쓰이지? 웅도.”

“……무, 무슨 말이야.”

“소용 없어, 리유 너는 거짓말 해도 완전, 정말, 190퍼센트 정도 안 통하니까. 뻔히 보이잖아, 감정이.”

“……아니거든?!”

“뭐가 아닌데. 꺄하하하. 재미있어.”

리유는 애써 아닌 척 거짓말하려 하지만 미래는 이미 리유의 거짓말을 꿰뚫고 있다. 미래의 말에 리유는 기분이 상해 볼을 부풀리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미래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쾌활하게 웃으며 말한다. 리유는 살짝 창피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 입을 꾹 다물고 미래를 노려본다.

“웅도가 그건 말 안 해줬겠지. 나, 그 년들보다 훨씬 예전에 고백했었거든. 웅도한테.”

“……엑? 미, 미래 너도?”

“응.”

미래는 잔잔한 표정으로 과거를 담담히 고백하는 투로 말한다. 멍한 표정이던 리유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서 깜짝 놀라는 반응으로 답했다. 희세나 성빈이가 웅도한테 고백했다는 얘기 들었을 때에도 조금은 놀랐지만, 미래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희세나 성빈이는 웅도하고 조금은 연애감정 같은 게 있을만하다고, 눈치 없고 연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리유라도 납득할 수 있겠는데 미래는 정말 의외다. 리유의 반응에 미래는 ‘그 반응 뭐야? 나 따위는 고백하는 거 예상도 못했어?’ 하며 짓궂게 말한다. 리유는 금세 미안한 표정이 돼 ‘아, 아니,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진짜야?’ 하고 말한다. 또 미래를 기분 상하게 했나 미안해지는 리유다.

“참, 마성의 정웅도야. 뭐, 나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접한 남자애가 웅도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나 말고 희세나 성빈이까지 웅도한테 넘어가다니. 진~짜 별 것도 없는 앤데. 시시하고, 허세나 부리고, 뭐든 귀찮아하고, 대충 넘어가려 하고. 어쨌든 그런 결점투성이인 애인데. 고백했어.”

“……웅이가 뭐래.”

“차였어. 하하하하.”

미래는 허탈하면서 털어놓듯 말한다. 리유는 잠자코 듣다 미래의 웅도 험담에 골이 났다. ‘우, 웅이 안 그래!’ 하고 말하려다 그것보다 미래의 뒷말이, ‘고백했어.’ 라는 간단한 말의 뒷얘기가 궁금해 물었다. 미래는 모든 걸 내려놓은 초연한 자세로 웃으며 말한다. 리유는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고선 흠칫, 마찬가지로 속으로 놀랐다. 뭐가 다행인데? 친구의 불행이?

“참 이상하지? 다 웅도한테 꼬여서, 웅도한테 빠져버려서.”

“…….”

미래의 말에 리유는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리유 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 안 그래도 아까 생각하던 일이었는데. 웅도와, 누군가 이어질 애와, 산산히 분해되는 친구들과. 미래는 애잔한 표정으로 리유를 쳐다보다 팔을 허공에 내저으며 잠깐 걷는다. 그러더니 문 바로 옆 벽에 허리를 기댄다. 리유에게서 시선을 떼고, 자기 바로 앞을 쳐다보며 입을 연다.

“무서운 거지, 모두하고 관계가 부서질까봐.”

“!”

미래의 말에 리유는 다시금 아까의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걸까, 미래는. 너무 정확하게 자기 마음을 꿰뚫어서 리유는 적지 않게 당황스럽다. 어떻게 표정을 숨길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어버버 하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리유를 피식 웃으며 쳐다보는 미래. 이 순간 리유에겐 미래가 어떠한 능력자로 보인다.

“누가 됐건 둘 중 한 명하고 사귈테고. 그럼 뭐가 어떻게 됐든 확실하게 여자친구, 남자친구니까. 리유하고, 나하고, 버림받은 누군가하고. 셋한테 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선택받은 여자애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늘겠지. 그게 이상한 건 아니야, 당연한 거니까. 근데 그렇게 해서.”

“……꿀꺽.”

미래는 잠시 말을 끊고 지그시 웃으며 리유의 반응을 살핀다. 리유는 숨까지 죽이고 미래의 말에 집중한다. 자기 스스로 생각했던 결론과 너무 똑같아서, 꼭 미래의 시선이 마음속 한구석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는 것 같아 긴장되면서도 부끄러운 묘한 기분이다.

“스스로 만든 패밀리를 스스로 깨게 되잖아, 웅도. 본인은 또 아니라고 하겠지만, 어찌됐든 이 패거리를 이룬 건 웅도니까. 구심점이던 사람이 스스로 나가면, 나머지 구성원들은 어떻게 되겠어. 와르르. 와장창.”

“…….”

잠시 머무는 정적. 리유는 대답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을거야.”

“……뭐가?”

미래는 다시금 리유에게 말한다. 리유는 별다른 생각 없이 짧게 대답했다. 진지한 눈빛으로, 리유를 쳐다보며 입을 여는 리유.

“너도, 웅도 좋아하잖아. 네가 먼저 웅도 가져버리면 되는거잖아?”

“……!!!!”

미래의 말에 리유는 멍하니 미래의 눈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이내, 화아악 얼굴이 빨개져 미래의 눈을 피한다. 투명하게 맑은 리유의 피부가 순식간에 엄청 빨개졌다. 표정이 쉽게 읽히는 데다 이런 식으로 얼굴색까지 감정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리유. 미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아, 아, 아니, 그건……!”

“안 돼? 안될 건 뭔데? 누가 금지했어? 리유, 너도 웅도 좋아하잖아?”

“그, 그, 그, 그치만!”

리유는 잔뜩 허둥지둥 당황한 티를 팍팍 낸다. 미래는 피식 웃으며 그런 리유의 반응을 즐긴다.

“!”

미래는 엉덩이에 힘을 주어 퉁기듯 밀어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문 앞에서 알짱대는 리유를 힘있게 밀쳐 벽 쪽으로 몰아 세운다. 한 손은 리유 허리에, 다른 손은 리유 볼 쪽에 가져다댄다. 리유는 흠칫 놀라 숨을 죽이고 미래를 쳐다봤다. 미래는 악마같은 표정으로 리유 얼굴 쪽으로 다가온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가져버려. 다른 애들이 뺏어가버리기 전에.”

“……!”



“으으…… 아우읏.”

비치는 햇살이 눈부셔, 나는 눈을 찡그리며 신음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아, 수학여행 왔지. 적응이 안 되네. 알람도 꺼 놔서 적응이 안 됐다. 평소라면 알람소리 듣고 먼저 일어나거나, 혹은 늦잠자도 희세가 깨워주는데. 늦잠. 잠깐, 몇 시야?! 일어나자마자 불길한 느낌이 엄습한다. 어제 저녁도 그랬잖아. 설마 나만 빼놓고 먹겠어,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나만 빼 놨잖아. 오늘도 그럴 수 있어. 수학여행 왔는데 나혼자 나홀로집에 찍게 생겼다고! 아니, 여긴 내 집도 아니잖아.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다행히 시간은 7시 30분. 타지에 나와 잤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소스라치게 일찍 일어난 것 같다. 혹시 모르니까, 얼른 씻어야지.

“다들 잘 잤어?”

“응, 잘 잤어.”

“뭐, 잘 잤겠지. 애도 아니고.”

“아하하.”

“…….”

적절한 시간에 적절하게 식당으로 내려가니 마침 성빈이, 희세, 리유, 미래 네 명이서 줄 끝에 서 있다. 방금 왔나보네. 연락도 안 했는데 이렇게 모이다니, 확실히 밥 패밀리답다. 밥 먹을 때에만 서로 이끄는 텔레파시 같은 게 있나. 활기차게 아침 인사를 하니 성빈이와 희세의 대조된 반응이 이제는 대수롭지도 않다. 성빈이는 대답한대로 잠을 잘 잤는지 피부도 희게 반짝이고 컨디션 아주 좋아보인다. 희세도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좋은 컨디션. 그런 두 사람과는 다른 의미로 대조되는 두 사람.

미래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은 모습이다. 한 눈에도 늦게 잔 모습. 아예 밤을 셌으면 차라리 나을텐데, 저건 한 새벽 5시 즈음 잔 것 같은 피곤한 모습이다.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니 미래는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보다 힐긋 나를 쳐다보더니 씨익 웃는다. 무, 무섭잖아. 분명 뭘 의도하고 웃은 건 아니고 그냥 웃은 것 같은데.

“너는 잠을 안 잤어?”

“소설 보느라…… 데헷.”

“데헷은 얼어죽을. 버스에서 자.”

“지금은 밥 먹으면서도 잘 수 있을 것 같아.”

리유는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얼굴에 그늘이 있다. 평소 리유답지 않은 정숙함과 심각함. 미래처럼 잠을 못 자서 피곤한 것 같지는 않은데. 생각해보니까 어제 나갈 때에도 좀 심각한 느낌이었는데. 설마. 아무리 눈치 없는 리유라도 그렇지. 그대로 방으로 돌아가서 애들한테 말했나? 혹시 그걸로 말다툼이라도 했다거나. 그럼 저렇게 시무룩하게 있는 게 충분히 납득이 가지. 다른 것보다도 애들하고 사이 틀어지는 걸 몸서리칠 만큼 싫어하는 리유니까.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어, 어?”

“어젯밤에. 표정 어둡잖아.”

넌지시 물어보니 리유는 멍하니 있다 깜짝 놀라며 나를 올려다본다. 꿈에서 깨어난 듯 멍한 표정. 나를 보더니 또 황급히 눈을 피한다.

“아, 아니야.”

“에이, 뭐 있는 것 같은데. 확실히.”

“…….”

리유는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린다. 누가 봐도 대답을 회피한다는 게 보인다. 역시, 어제 말했던 거에 신경 쓰고 있는 게 틀림없다. 괜히 말해줬나. 뭐, 성빈이나 희세 반응으로 봐선 리유랑 싸우거나 하진 않은 것 같지만. 어린애처럼 대하지만 어찌됐든 리유도 여자애니까, 함부로 물어보거나 하는 건 또 실례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참,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불과 6개월 전에 처음 입학할 때엔 여자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몰랐는데. 지금은 이렇게 배려도 할 줄 알고, 많이 컸다, 정웅도.

“여행까지 왔는데 그렇게 기분 안 좋으면 안 돼. 웃어봐, 응?”

“……히힝.”

“전혀 기운이 안 나는데. 너가 이렇게 사람 기운 빠지는 웃음을 지을 수도 있구나.”

“……몰라. 난 괜찮은데 자꾸 웅이 네가 몰아가는 거잖아.”

“아아니, 전혀. 너는 표정에서 드러나니까. 우겨도 소용 없어.”

“……피이, 그 놈의 표정은 만날.”

리유는 내 말에 억지로 미소를 지어본다. 하지만 평소의 활기차고 귀여운 웃음이 아닌, 각색되어 부자연스런 미소가 안면 가득 드러난다. 이렇게나 전력으로 ‘나는 지금 거짓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솔직한 감상에 리유는 다시금 어두운 표정에 삐친 표정까지 더해 뾰로통해졌다. 더욱 기운이 없어 보이게 돼 좀 안쓰럽다.

“뭔진 더 안 물어볼게. 기운 내. 리유는 웃는 게 제일 귀엽고 예쁘니까.”

“……흥.”

“어어? 왜, 뭐 나한테 안 좋은 감정 있으우?”

“……아냐, 웅이는. 됐어.”

“어어, 이러면 또 안 캐물어볼 수가 없는데~”

“됐다니까! 흥흥!”

리유 머리를 쓰다듬으며, 훈훈하게 끝내려 하는데 리유의 반응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다. 평소라면 어떤 상황이든, 심지어 나한테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도 내 손길이 그녀의 머리에 닿는다면 그 즉시 느끼는(?) 상태가 돼 강아지처럼 내 손길을 음미하는데 지금은 ‘흥’ 하고 새침하게 나에게서 세 발자국 떨어진다. 이 의외의 반응에, 나 또한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리유에게 말하니 리유는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계속 새침하게 반응한다. 우오, 이건 또 이것대로 귀엽네. 아빠 말 잘 듣던 딸이 어느날 소녀가 돼 아빠의 접촉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다. 계속 리유를 말로 괴롭히며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간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갈수록 글 쓰는 속도가 느려지는 사람입니다.

사실, 쓰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연재속도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완결이라는 압박감. 

네, 보면 알겠지만 이번 권(?)이 막권입니다. 막권까지 평소 쓰던대로 막 쓰면 그건 또 아니잖아요. 그치만 글이라는게 또, 몇 시간 투자한다고 그렇게 잘 나오는 것도 아니네요. 결국 한 30분 쓰다가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쉬다 하자' 하며 게임을 하고, 게임을 한 4시간(!) 하고 패턴을 잃어버리고... 그 반복이네요. 으으.

둘은, 송시열 쇼크와 그로 인한 회의감.

이건 뭐, 어떻게든 돌아만 가면 되지 하는 느낌으로 극복하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요즘 톡톡 튀는 그런 글에 비하면 이건 뭐...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평범한 애들이, 평범하게 하렘을 이루어서 평범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아, 정말 지극히 평범한 남고생 이야기네요. 으으... 창의력 대장이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좀.



쓸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아 고뇌하거나 몸이 아프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게으를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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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87 사카나상
    작성일
    14.07.28 22:55
    No. 1

    리유 웅도랑 사귀지말고 나랑 사귀지 데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28 23:25
    No. 2

    다들 그렇게 게이가... 어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7.28 23:28
    No. 3

    되도 않는 섹드립에 개연성을 떨어뜨리면 창조적이게 됩니다. 송시열이.그런 작품이죠. 그리고 그 작품은 소제가 색다른 것이지 창조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기운내세요.
    저는 이 작품이 매우 좋습니다. 그러니 얼른....완결을 내거라 작가양반 독자의 채찍으로 가버렷!
    (기승전병 ㅈㅅ)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28 23:41
    No. 4

    되도 않는 섹드립의 시작점인 미래쨔응은 굉장한 실패를 보이고 침몰했습니다만... 하핫. 격려와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비행병아리
    작성일
    14.07.29 08:23
    No. 5

    합법로리면 모든게 해결이 되는데.....

    의외의 반전이되고 소수의 취향도 존중이되고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29 13:06
    No. 6

    하앍 리유쨔응...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07.31 09:22
    No. 7

    근데 송시열 쇼크가 뭔지요?
    구글 다음 모두 못찾겠네요
    리유가 복병으로?
    성빈이랑 희세가 버어엉?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31 23:16
    No. 8

    네이버나 구글에 “모애모애 조선유학” 이라고 치면 바로 나옵니다. 으으... 세상은 그만큼이 아니면 뽑아주질 않아요.

    입구가 막혔다고 안심하고 있는데 귀여운 맹독충이 와 기습을 하는거죠! 근데 그러면 맹독충은 죽는데...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6 00:11
    No. 9
  • 작성자
    Lv.20 전서리
    작성일
    18.08.18 01:12
    No. 10

    "우..웅이 너도그런거 좋아하지않아? 그..그촛농..떨.."
    "큽..크푸하하..으하하하하하ㅏ!!!!"
    "왜...왜웃어.힝.."

    전혀어올리지않게..그작은 몸으로 가슴은 헐렁한옷, 아니, 스판인데 헐렁하잖아?!그리고 그초랑 내 벨트..잠시막 벨트로때리려 했던거야?!사람죽..아니..그리고 밧줄로 묶어놨다.이런건 어디서 봐서 헐렁한데 꼼꼼하다..이녀석?!
    "이..이거 싫어해..?어,..."
    "아..아니..아니그런싫어하는건 맞.."
    "내꺼야..웅이 내꺼야..나만바라.."
    "야 이 미래 미친년아-----------!!!!!!!!!!!!!!!"

    어디선가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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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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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03화 - 4 +15 15.08.10 820 21 20쪽
158 03화 - 3 +14 15.08.09 1,158 26 16쪽
157 03화 - 2 +9 15.08.05 1,105 21 20쪽
156 03화. 여자애랑 놀지만 데이트는 아닙니다. +17 15.08.03 1,282 20 21쪽
155 02화 - 4 +6 15.08.01 1,541 28 19쪽
154 02화 - 3 +10 15.07.29 1,220 20 20쪽
153 02화 - 2 +11 15.07.26 1,238 16 19쪽
152 02화. 친구를 사귀는 것이니까. +8 15.07.23 1,333 21 19쪽
151 01화 - 4 +8 15.07.20 1,305 25 19쪽
150 01화 - 3 +10 15.07.16 1,226 23 18쪽
149 01화 - 2 +6 15.07.13 1,417 18 18쪽
148 01화. 멀어진다 +8 15.07.12 1,565 26 21쪽
147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2 +27 14.12.24 1,659 29 28쪽
146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1 +8 14.12.24 1,522 24 25쪽
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144 32화 - 5 +28 14.08.13 2,004 49 18쪽
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142 32화 - 3 +13 14.08.09 1,815 29 21쪽
141 32화 - 2 +4 14.08.07 1,625 38 18쪽
140 32화. 잡아라, 사랑의 망설임을! +13 14.08.06 1,698 37 21쪽
139 31화 - 6 +16 14.08.04 1,889 31 21쪽
138 31화 - 5 +12 14.08.02 1,965 38 23쪽
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 31화 - 3 +10 14.07.28 1,610 33 18쪽
135 31화 - 2 +17 14.07.25 1,562 39 23쪽
134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8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7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5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7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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