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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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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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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02화. 친구를 사귀는 것이니까.

DUMMY

“이번 수행평가는 배드민턴이다.”

“에에에에에─”

체육선생님의 말에 여자애들은 영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이런 게 익숙한 지 체육선생님은 ‘그럼 뜀틀도 하고 허들도 하고 앞구르기도 하고 그럴까? 차라리 배드민턴 하나만 하는 게 너희한테도 덜 귀찮고 좋을텐데.’ 하고 말하신다. 별다른 대답이 없는 여자애들. 선생님은 ‘그럼, 알아들은걸로 한다.’ 하고 말씀하신다.

예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여고의 체육시간은 남자애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우선은 ‘체육’이라는 과목의 위상부터. 남자애들에게 체육시간은 상당히 우위에 있는 과목인데, 여기서는 천 것 취급(?)이다. 뭐, 남자애들도 딱히 수행평가를 좋아하진 않는다. 축구나 농구 하면서 노는 걸 좋아하지. 하지만 수행평가도 그것대로 단순한 남자애들은 즐기곤 한다. 자기들끼리 경쟁하기도 하고, 여튼 체육활동은 대다수의 남자애들이 좋아하니까.

하지만 여고는 완전 정반대. 우선은 움직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여자애들인지라─여기서 움직인다는 건 운동활동. 단순히 걷는다거나, 살아 숨쉬는 거 말고─ 어떤 것이든 싫어한다. 다년 간의 여고 생활로 체육선생님은 이런 일에 이골이 난 모양이다. 그래서 한 학기의 체육활동을 아예 배드민턴으로 정해버리는, 지극히 효율적인 선택을 하신다. 여고에 다니는 남자애로써 충분히 공감이 가 고개가 끄덕여진다.

“배드민턴 기술이라던가 이런 거 보는 게 아니야. 그냥 마음에 맞는 애랑 둘이서 배드민턴 열심히 쳐. 그거면 충분하니까.”

“네─”

선생님의 말씀에 여자애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차피 그래봐야 몇몇 애들은 또 선생님이 가시면 그늘에서 쉬겠지만.

선생님의 말에 정답이 담겨 있다. 우리가 무슨 배드민턴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여기는 대한민국, 입시만이 모든 가치의 척도인 인문계 고등학교. 체육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그냥 다 겉치레일 뿐이지. 실상 체육 못 하고 공부 잘 하면 공부 잘 하는 걸 더 쳐주겠지. 체육이 무시 받는 여고에 있자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비단 여고라서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은.

“그럼, 당연하게 오빠는 저랑 치겠네요?”

“나의 자유를 제한하지 마.”

“어멋! 저를 버리시는 건가요! 소녀에게 그런 짓까지 해 놓고, 이런 식의 배신은 인정할 수 없사옵니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희세에게라면 또 모를까. 아, 괜히 생각했다. 미래는 만악의 근원이다. 미래 때문에 괜히 생각나서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졌잖아. 나의 발언에 미래는 생떼를 부린다. 당연히 나랑 같이 하는 줄 알았나보다. 하긴, 작년부터 같은 반이 된 유일한 친한 녀석이 미래니까. 몇몇 애들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같은 반이지만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이고 ‘친구’라고 당당하게 말하긴 애매한 사이니까.

당연해 보이지만 이건 좀 잔혹하기도 하다. 짝을 짓는 어떤 행위라는 게. 선생님들 입장에선 당연하게, ‘친한 애들하고’ 같이 하라고 하겠지만. 출석번호 순이라던가, 그런 공평한(?) 방법으로 정하면 애들 반발도 상당히 심할테고, ‘그럼 너희들 편한 대로 친한 녀석들하고 해라’ 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민주적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친한 애가 없는 애들은. 결국 할 의지나 의욕이 있다 해도 친한 친구가 없기에 같이 무엇인가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혼자 있게 되고, 더더욱─ 그런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흥! 저라고 뭐 친구가 오빠밖에 없는 줄 알아요? 다른 애랑 할 거에욧!”

“아…… 뭐.”

혼자 상념에 빠져 있는데 문득 미래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소리치는 게 들린다. 미래는 ‘흥흥!’ 하고 외치며 나에게서 떠난다. 조용한 여자애 1에게 접근. ‘이미 하기로 한 애가 있어서……’ 보통 평범한 여자애에게 접근. ‘별로, 너랑은 하기 싫은데. 너, 배드민턴 못 하잖아.’ 미래마냥 활달한 애한테 접근. ‘아~ 하기로 한 애가 너무 많아서. 너는 대기번호 6번이야.’

“……오빠.”

“울지 마라. 다 그런 법이지.”

세 번이나 차이고서, 미래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뭐, 이 정도에 울 미래는 아니고 다 컨셉이지. 나 또한 그게 컨셉인 줄은 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웃음이 나오는 것을 꾹꾹 참으며 미래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결국 죽으나 사나 내가 같이 해 줘야 하나. 뭐, 내가 누구 사교성 탓할 만한 역량은 안 되지만 미래는 그런 나보다도 더 시궁창인 사교력을 자랑하니까.

‘팅.’

‘팅.’

“아! 너무 멀리 던졌잖아요!”

“네가 너무 못 하는데. 운동 하나도 안 하는구나.”

“뭐라구요! 우씨,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죠!”

몇 차례 오가지 않는 셔틀콕. 미래가 너무 못 한다. 물론 나라고 운동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보통 정도이려나. 여고에 있는 남자애라고 딱히 운동을 특출나게 잘하거나 하는 건 또 아니다. 남자라고 확실히 우위를 잡을 수 있는 건 ‘힘’ 정도려나. 운동 잘 하는 여자애들은 나보다 훨씬 잘한다. 다만, 미래는 아니다.

자연스럽게 미래의 운동을 지적하니 미래는 발끈하며 셔틀콕을 주워든다. ‘으아아앗! 기가 드릴 브레이크 샷!!’ 하며 괴성을 지르며 세게 서브를 날린다. 서브를 그렇게 강하게 날리는 게 무슨 의미일까. 거기다 기합만 강했을 뿐 실질적으로 세게 날아오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힘이 딸리는데다 요령도 부족해 셔틀콕은 내가 정말 치기 좋게 중간 조금 뒤 쪽으로 날아온다.

운동을 과히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배드민턴만은 즐겨 하는 편이다. 재미있잖아, 간단하고. 축구나 농구는 일정 사람 수가 모여야 할 수 있는 반면 배드민턴은 둘만 있어도 되고. 체육시간애 애들이랑 내기 걸고 하는 것도 재미있다.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어쨌든, 미래를 농락하기 위해 각을 잰다. ……여기!

‘팅!’

“우아아아아─ 뭐야! 장외로 나갈 줄 알았는데?! 무슨 마구를 쓴 거에요, 오빠는!”

“그냥…… 그런 기술 있잖아.”

“「기술」?! 처음으로 오빠가 남자로 느껴져요! 존멋!”

“그럼 이전까지는 안 그랬다는 건가. ……그럼 고백한 건 뭔데?!”

“어머~ 어색하게 그런 과거의 일을. 과거는 묻어두고 번영으로 향합시다. 우리 일한은 운명공동체니까요.”

“어디서 그런 개소리를! 거기다 너 한국사람이잖아!? 왜 일한인데, 한일이 아니라!!”

끝까지 날아가던 셔틀콕은 적절하게 라인 바로 앞에서 떨어진다. 미래는 뒷걸음질치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 앉는다.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미래.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싱긋 웃으며 되도 않는 드립을 치는 미래. 컨셉일빠(?)인 모양이다. 미래니까 그러려니 한다.

‘팅!’

“아 진짜! 너무 농락하는 거 아니에요?”

“뭐…… 실력을 키워야지. 제대로 하려면.”

“나 참 더러워서! 내 더러워서! 우씨.”

이번에는 셔틀콕을 강하게 땅으로 내리 꽂는다. 직선으로 빠르게 땅으로 꽂히는 셔틀콕. 땅에 튕겨 저 멀리 나아간다. 미래는 미처 치지도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대꾸한다.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는 나. 미래 놀려 먹는 것도 재미있다. 사실 중학교 때 잘 치던 녀석들한테 미래가 당하는 것처럼 잔뜩 털리던 난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구나. 미래는 짜증스럽게 말하더니 셔틀콕을 주으러 간다.

‘틱.’

“음?”

“미안, 일부러 날렸는데.”

“일부러?”

어디선가 날아오는 셔틀콕. 무의식적으로 채를 들어 쳐냈다. 땅으로 떨어져 여자애 발치에 떨어지는 셔틀콕. 여자애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일부러’ 날렸다니. 실수가 아니라?

힐긋 여자애를 쳐다본다. 단정히 한데 묶은 머리. 묶은 걸 푼다면 가슴팍 조금 너머까지 오는 곱슬머리 이려나. 묶었음에도 꽤 곱슬거리는 게 보인다. 자연 곱슬인가. 붉게 익은 건강한 피부. 원래는 흰 피부였을 것 같다. 열심히 배드민턴을 쳤는지 땀도 조금 흐르고 있다. 빛나는 검은 눈은 자신이 있어 보인다. 희세처럼 한 눈에 확 들어오는 미소녀는 아니지만, 충분히 예쁜 얼굴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꽤 오래 쳐다보게 됐다.

“보니까, 꽤 잘 치는 것 같아서. 같이 치고 싶은데?”

“아…… 치던 애가 있어서.”

“나도 치던 애가 있어. 잘 못 쳐서 문제인데. 네 짝꿍도 그런 것 같은데, 우리가 같이 치고 우리 짝꿍끼리 같이 치자고 하면 수준이 맞지 않을까 싶어서. 괜찮으려나?”

“뭐…….”

여자애는 방긋 웃으며 말을 꺼낸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 먼저 와서 같이 치자고 하는데 막을 이유는 없다. 다만 미래와 먼저 치고 있었는데. 여자애의 제안에 조금은 솔깃해지는 기분. 사실 별로 재미없거든, 이런 식으로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여자애 실력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호언장담하니 어느 정도는 수준이 되는 녀석이겠지.

곧 미래가 셔틀콕을 들고 온다. 생글생글 웃으며 천진난만한 얼굴. 갑자기 표정이 바뀐다. 마치 80년대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과장된 표정. 이글이글 타는 듯한 눈으로 여자애를 보더니 이윽고 나에게로 세차게 고개를 돌려 입을 연다.

“뭐에요, 이 여우같은 년은?! 또, 또 다른 여자 꼬시고 있는 거에요!? 오빠!”

“아는 사이야, 얘랑?”

“아뇨, 몰라요 데헷☆”

딱 봐도 과장된 아침 드라마 같은 톤과 묘한 발연기를 하는 듯한 얼굴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장난 치고 있다는 걸. 내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는 미래. 이 애가 기분 나쁘게 여기면 어떡하려고. 그 와중에 여자애는 ‘아, 미안. 꼬신 건 아니고, 굳이 말하면 내가 먼저 꼬리친 건데……’ 하고 대답한다. ‘꼬리 치다니! 그냥 배드민턴 같이 치자고 한 거잖아!’ 하고 도리어 내가 펄쩍 뛰며 말했다. 미래 앞에서 저런 반응을 보이면 대번에 물고 늘어질 게 뻔하니까. 여자애는 ‘아…… 저 쪽에서 농담하길래 맞서서 농담 해준건데. 그러면 안 됐어?’ 하고 말한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보통 그렇게는 안 하니까.

“그럼, 할게?”

“응.”

미래와 얘기를 통해 어떻게 짝꿍을 바꿨다. 나에게 한참 농락당한 미래이기에 순순히 자리를 비켜준다. 모르는 여자애의 짝꿍과 함께 치기 시작한다. 나와 여자애도 경기를 시작했다. 빠르게 셔틀콕을 쳐내는 여자애. 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데.

‘팅.’

“우아아아앗! 아오, 난 이게 제일 빡쳐.”

“히히히. 예상하고 미리 왔어야지.”

네트 바로 앞으로 떨어지는 셔틀콕. 분명 예상했지만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운동 좀 할 걸. 어떻게든 쳐내려고 처참하게 몸을 던지지만 한발 늦었다. 바닥에서 일어나며 말하니 여자애는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여자애는 상당히 잘 친다. 그렇다고 내가 중학교 때 엄청 처발렸던, 밥 먹고 배드민턴만 치는 그런 녀석들 수준으로 잘 치는 건 아니고, 나랑 비슷비슷하지만 조금 더 높은 실력. 그래서 더 의욕이 불타오른다. 지금도 1점 차이밖에 안 난다. 오래간만에 불타오르게 만드는데, 체육으로.


“재미있었네. 오래간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드민턴 쳤어.”

“나도 재미있었어. 작년에는 같이 치는 애 있었는데 올해는 아직까진 잘 치는 애들 못 봐서. 잘 치네, 웅도.”

“아아, 뭐. 남중때는 나는 중간도 못 갔는데 뭐.”

“와, 그럼 더 잘 치는 애도 있어, 남고에는?”

“걔네는 체육이 인생이니까 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드민턴을 쳤다. 나나 여자애나 꽤 땀을 흐르며 수돗가에서 얼굴을 닦는다. 싱긋 웃는 여자애.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여자애다. 운동도 잘하고, 금방 친해지고. 친화력이 상당한 것 같다. 편하게 말하게 되고. 여자애가 ‘웅도’ 라고 이름 불러주니 문득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까 나, 얘 이름도 모르네. 이름도 안 물어보고 대충 배드민턴이나 치다니, 나도 참 어지간한 녀석이다.

“저기. 그…… 이름이 뭐야?”

“아아, 맞다. 이름을 안 알려줬네. ‘채유진’이야.”

“유진이구나. 내 이름은 어떻게……? 말도 안 꺼냈는데.”

“웅도, 유명하잖아! 우리 학교 유일한 남자애인데, 이름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아…… 그렇게 유명인산가.”

“응. 뭐 특별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특별하게 한 명 남자애니까.”

“아핫. 뭔가 스타가 된 기분이네.”

유진이구나. 예쁜 이름이네. 얼굴처럼 수더분하고 고운 이름이다. 유진이는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뭔가 마력이 있는 미소인데, 보는 사람 또한 마주 웃게 만드는. 유진이와 얘기하며 교실로 돌아간다.

“너무해요, 오빠. 이제 저 따위는 찬밥이군요.”

“왜. 같이 안 놀아줘서?”

“놀아주다뇨! 오빠는 절 그렇게 보고 있었군요! 전 혼자 충분히 잘 놀아요! 오빠의 동정 따위 필요 없어요! 어맛…… 동정♡”

“그만. 거기까지. 아까도 말했지만 먼저 유진이가 왔다니까. 같이 치자고.”

벌써 도착해서 옆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미래. 볼멘소리로 말을 꺼낸다. 아마 같이 놀아주지 않고 유진이랑 놀았다고 심통 부리는 거겠지. 혼자 말하면서 이상한 망상으로 빠지는 패턴은 질리도록 봐 왔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쳐낸다. 미래는 그런 나를 보며 잔뜩 웃음을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이제 2라운드 신규 하렘 인원 유입인가요~? 하긴, 희세·성빈이 둘 만으로는 영 그렇죠? 하렘 할 거면 적어도 4명은 되야지!”

“뭔 개소리야.”

결국 ‘그 쪽’으로 대화를 유도하는 미래. 가당찮은 소리에 대답했다. 저번에 미래하고 상담해서 더 심란해진 마음이지만, 어쨌든 굳게 생각한 바는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돌려 말할 것도 없지. 나는 리유 남자친구인데. 여자친구 있는데 어찌 다른 여자를 살펴볼까? 영웅호걸은 무릇 열 여자 마다 않는다는 옛 말이 있다지만, 나는 영웅호걸이 아니라 그냥 시정잡배잖아. 리유에게 모든 순정을 바치자. 그게, 나의 길이리라. 애초에 유진이는 오늘 방금 알았고, 그냥 보기 좋은 꽃 같은 느낌이니까.


“과자 먹을래?”

“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잔데! 어떻게 알았어?”

“나도 이거 좋아해서.”

“흐흥, 고마워.”

쉬는 시간. 매점에서 과자를 사 와 유진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유진이는 무엇인가 공책에 끄적이다 환히 웃으며 대답한다. 이 미소를 보고 싶었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있고. 아까는 유진이가 먼저 말을 걸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건다.

뭔가 찔려서 하는 변명은 아니지만, 나도 이제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가 된 거니까, 이 반에서. 미래는 1년동안 볼 꼴 못 볼 꼴 많이 봐 왔고. 희세와 성빈이는 다른 반이니까, 실상 하루에 만날 시간은 밥 먹을 때 빼곤 없으니까. 같은 반에 친한 애 몇 명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유진이는 보기에 착한 것 같으니 친구가 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예쁜 외모와 예쁜 미소도 어느 정도 나의 호감에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지만.

“뭐야?”

“응, 만화. 만화 그리는 게 취미라.”

“네가 그린 거야?”

“응. 수업시간에 몰래 그린 거지만.”

“와, 잘 그렸는데?! 만화가야??”

“에헤헤, 너무 띄워주는 거 아냐. 그냥 그리는 건데.”

“아니, 진짜 잘 그렸잖아!”

힐끔 유진이가 끄적이는 공책을 보지 않으며 말했다. 개인적인 내용이라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유진이는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제야 힐끔 유진이의 공책을 본다. 만화 캐릭터. 그것도, 상당히 잘 그린. 어떤 건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그렸다. 연필만으로 이렇게 잘 그릴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신기해 연신 쳐다보게 된다.

“만화가가 꿈이야?”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취미야.”

“취미인데 이 정도로 잘 그리다니! 몇 년이나 그렸는데?”

“그림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렸었는데.”

“아~ 대단하다.”

감탄하며 쳐다보니 유진이는 그런 내가 재미있는지 ‘앞에 그린 것도 있어’ 하면서 공책 앞을 보여준다. 내가 보기엔 거의 만화 원작자 못지않을 정도로 잘 그린 것 같다. 이대로 컷 분할해서 스토리 넣으면 그냥 만화책이 될 것 같다. 유진이는 약간 수줍어하며 대답한다. 단순히 배드민턴 잘 치는 여자애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다니. 미소 짓는 유진이가 더욱 매력 있게 보인다.

“혹시. 오타쿠?”

“에헤헤헤헤, 오타쿠라니. 여자애한테 실례 아니야? 오타쿠는 아니고, 어느 정도.”

“그럼…… 당신은 오타쿠가 맞습니다. 자고로 오타쿠는 자기 스스로 오타쿠라고 안 하지.”

“어어! 오타쿠는 싫어! 그러면 웅도 너는? 이게 누구야?”

“타카나시 릿카. 어엇.”

“에헤헤. 중증인데, 웅도 너도?”

“그걸 그린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1대 1?”

“하하하하.”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오덕들의 대화. 살짝 떠 보는 느낌으로 말을 거니 유진이는 웃으며 말한다. 오타쿠라고 우기는 나의 말에 살짝 발끈한 느낌의 유진이. 공책을 앞으로 펴 멋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자애 그림을 가리키며 묻는다. 자연스럽게 일본어 이름이 나오는 나. 어째서 알고 있는 거냐, 나는! 그야 봤으니까, 그 애니를. 결국 서로의 덕밍아웃(?)을 인정하는 나와 유진이. ‘1대1’이라 말하며 눈을 찡긋 하는 유진이가 너무 귀여워 하하 웃게 된다.


“이야─ 이거 아주, 화기애애 하던데요? 아주 작정하고 꼬시는군요, 저 애.”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친구라고.”

“원래 그런 거에요, 친구에서 점점 나아가서─ 오빠! 이러는 거죠! 히힛.”

“아니야─”

“하렘마스터 정웅도! 이번 분기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과연, 점차적으로 여자애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 유진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미래는 깔깔 웃으며 놀리는 말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한다. 유진이는 어디까지나 친구로써 얘기를 나눈 거니까. 미래의 개드립은 자기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라지.

유진이, 착한 애인 것 같다. 말도 잘 들어주고 잘 한다. 배드민턴도 잘 치는데다 그림도 잘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잘 통하는 게 가장 크다. 여자애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내 성격의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화주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유인데. 서로 덕밍아웃을 하고 애니에 대해 얘기하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잖아. 그림도 잘 그리고, 오덕 중에 나쁜 애는 없다니까 유진이는 분명 착한 애일 것이다. 학기 초부터 좋은 애를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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