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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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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1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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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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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20쪽

32화 - 4

DUMMY

‘쿠르릉, 쿠궁.’

“으아아…….”

하늘이 우중충하다 싶더니 후드득 비가 오기 시작한다. 같이 당황한 모양이 된 나와 성빈이. 비가 오니 리유를 찾으러 가기도, 그렇다고 안 찾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하지만 비는 더욱 거세지고, ‘쿠르릉’ 하고 천둥소리 비슷한 하늘이 쪼개지는 소리도 들리자 둘 다 별다른 말없이 일단 문학관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요란한 진동에 휴대폰을 들어 보니 대화방에서도 얼른 다 모이라고 한다. 뛰는 와중에도 웃옷 남방을 벗어 성빈이에게 씌워 줬다. 나는 엄청 춥고 잔뜩 젖지만, 성빈이가 젖으니까. 꽤 멀리까지 와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 문학관 앞에 도착했다.

“그칠 생각을 안 하는데.”

“일기예보에서 비 온다고는 했는데…… 빗나갈 줄 알았는데.”

담임선생님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말씀하신다. 비는 추적추적, 엄청 많이 내리는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계속 내린다. 차라리 소나기처럼 쏴아 퍼붓고 멈추면 그게 낫겠지만, 이 비는 그렇게 보이질 않는다. 한동안은 계속 내릴 것 같다. 구름이 드리워 주위는 낮인데도 어둑어둑 하다. 버스에 타 있는 애들은 창밖으로 걱정스레 하늘을 보고 있고, 나와 성빈이와 희세, 미래는 버스에 타지 않고 문학관 지붕에 비를 피한 체 언덕 쪽을 쳐다본다.

“리유…… 찾아야 되는데.”

“비 맞고 있을텐데.”

“…….”

이렇게 비가 오는데 찾으러 가는 건 무리다. 그렇다고 안 찾을 수도 없다. 아까부터 계속 말하지만 리유 몸도 가는데 옷까지 얇게 입었으니까. 굉장히 추울텐데. 비에 맞아 오들오들 떨고 있을 것이다. 애처로운 눈을 하고, 비를 피하지도 못하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리유.

“우, 웅도야!”

“엇, 야! 야 정웅도!”

비가 오지만 나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뒤에서 더듬거리며 놀란 목소리의 성빈이 말과 다급한 듯 부르는 희세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하고 뛰어간다.

비가 오는 중에 뛰고 있으니 원래 비가 내리는 가속과 내가 뛰어가는 속도가 더해져 빗방울이 세차게 얼굴을 때린다. 금세 머리카락이 젖어 뭉치고 옷이 젖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손으로 앞머리를 넘기고 얼굴의 물기를 세수하듯 털어내고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며 뛴다. 비도 오고, 나도 뛰고 있으려니 마음이 더욱 급박한 기분이다. 아까 리유를 찾아다니다 성빈이와 마주친 바위 앞까지 도착했다. 여기까진 있을 턱이 없겠지. 나무 밑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하아…… X발.”

한숨을 쉬며 욕을 한다. 여기까진 꽤 거리가 된다. 거친 숨을 잠시 고르고 심란한 표정으로 산을 바라본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더 거세진 것 같기도 하고. 5분 좀 넘게 뛴 정도인데 옷이 흠뻑 젖을 정도인데…… 적당한 데에서 비를 피하지 않으면 리유도 다 젖어 있을텐데…… 걱정 한 가득이다. 어디로 뛰어갈지 목표를 정한 뒤 다시금 뛰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

나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전력질주해 용광로처럼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는 말처럼, 나 또한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다. 전력질주로 뛴 건 아니다. 다만 높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살피고 다니느라 힘이 들어 그렇다. 5분, 10분, 15분. 계속해서 애타는 마음으로 리유를 찾아 다니지만 리유는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옷은 예전에 다 젖은 상태, 머리카락은 완전히 물에 담근 것처럼 흠뻑 젖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오르는데 꽤 힘들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고 산 반대편까지 돌아봤지만 리유를 찾을 수 없었다. 비를 어찌나 맞았는지 처음엔 달리느라 몸에 열이 났지만 지금은 그 열조차 비로 식은 기분이다. 으슬으슬 추운 기분이 들기도 하다.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기분에, 리유도 찾지 못해 기운도 다 빠져서 천천히 뛰어갔다. 그러다 문득, 리유를 찾았다.

리유는 작은 낭떠러지 같은 바위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낭떠러지 바위 밑에는 안쪽으로 움푹 패여 있어 비를 피하기 쉬운데다 낭떠러지 위와 벽에 나무가 나 있어 확실하게 그 쪽 땅은 비에 젖고 있지 않는다. 굉장히 외진 곳에 있어 평범하게 얼마 나 있지 않은 산책로를 별 생각없이 걸어가고 있던 나로선 도저히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작은 소리로 ‘훌쩍’ 하는 소리가 났기에, 예민해진 감각으로 리유를 발견할 수 있게 됐다.

리유는 쪼그리고 앉아 있는 체 울고 있는 것 같다. 노심초사 끝에 리유를 발견했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기쁨이나 안도감보다는 분노를 더 크게 느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워 울고 있는가. 나는 한참 힘들고, 한참 걱정했는데. 누구에게 칭찬 받기 위해 그런 건 아니지만, 정말 물에 빠진 생쥐 꼴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흠뻑 젖은 체로,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정리도 하지 못하고 얼굴은 발굽에 체인 듯 혼이 쑥 빠진 체로 그렇게나 애타게 리유를 찾고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바깥에 있었다면 금방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어째서, 무슨 이유 때문에 이딴 외진 곳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나를 놀래키려고? 그딴 이유로?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성빈이, 희세, 미래까지 다 고생시키고 선생님까지 안절부절 못하게 걱정하게 만들고 다른 모든 애들까지 기다리게 만들어?

너무 힘들고 춥고, 하여튼 그런 복합적인 상태와 생각 때문에 분노가 마음 속에서 들끓었다. 그래서 숨을 더 헐떡이게 됐다. 내 숨소리를 들었는지 문득 리유는 고개를 든다. 약간 겁먹은 듯 멍한 표정의 리유. 그 얼굴을 보고 나는 더욱, 화가 끓어올랐다.

“X발! 뭐하는 건데!”

“……!”

깊은 분노를 담아, 숨기지 않고 그대로 함성에 담아 소리쳤다. 리유는 나를 쳐다보고 움찔 놀라며 더욱 겁먹은 표정이 된다. 그 겁먹은 얼굴을 보니 마음속에서 더욱 미움이 들끓는다. 그러면서 묘한 기분이 든다. 자신감. 고양감.

“어…… 하아, 얼마나,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이딴 데서…… 뭐하는 건데!”

“…….”

잠시 숨을 고르며, 나는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오른쪽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말했다.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려 했지만 언성이 높아지는 걸 억제할 수 없다. 리유는 여전한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 눈을 피한다. 그 반응은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든다. 무슨 대답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노, 놀래켜 주려고 했는데…… 미안 데헷☆’ 이런 식으로라도 말하면 리유니까 그러려니, 납득이라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해버리면. 어떤 소통도 없으니 답을 내릴 길이 없고, 이 끝을 모르는 분노도 끝나지 않는다.

“아…… 하아. 가자. 애들 다 기다리고 있어. 버스도 출발 못하고 있고. 다들 걱정하고 있으니까.”

“……안 가.”

“…….”

계속해서 무한증폭되는 화를 간신히 누르고 리유에게 말했다. 여기서 화를 낸다고 좋을 게 전혀 없다. 겁에 질린 무표정한 리유의 얼굴을 보니까 이건 아닌 것 같다. 비도 잔뜩 오고, 번개도 쳤는데 혼자 산에 숨어 있느라 무섭기도 했을텐데. 게다가 리유 덕분에 다른 모든 애들이 집에 못 가고 있으니까. 지금 수학여행 마지막 날 마지막 코스였잖아. 비록 말은 안 했지만 애들 중엔 굉장히 짜증나고 화난 애들이 분명 있겠지. 다시금 반리유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으니까. 얼른 데려가야지.

하지만 리유는 시무룩한 태도로,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나는 다시금 눌러 놓았던 분노가 온 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평정심, 평정심. 정웅도, 너는 한 명의 부처다.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한다. 화내지 않는다. 리유는 한 명의 어린아이인 것이다.

“왜. 왜 또. 뭐 때문에 안 간다는 거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아 뭐! 애들 잔뜩 기다린다니까?! 지금 너 때문에 몇 명이 피해 보고 있는 줄 알아?! 학생 안전 책임지는 담임선생님은! 찾아 나서다가 비 잔뜩 맞고 너 걱정하고 있는 우리 애들은! 너 하나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다른 모든 애들은! 그러다 다른 애들이 또 너 싫어하게 되면은! 그게 다 누구 탓이겠어!! 한시라도 빨리 가야 되는데!!”

리유의 말에 나는 이성의 끈이 끊어져 비가 퍼붓는 것처럼 마음속 말을 그대로 리유에게 퍼부었다. 사실 힘들었다. 잔뜩 짜증나고. 그런데 막상 찾은 본인이 안 가겠다고, 거기다 이유랄 것도 없이 대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라니. 억눌렀던 화가 폭발해서 잔뜩 화를 내며 소리치게 됐다. 막상 또 소리치고 나니까 덜컥,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분노가 가라앉으니 찾아오는 건 리유에 대한 미안함이다.

리유는 내 말을 잠자코 다 듣는다. 그리곤 찬찬히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응, 가지 않아.”

“아아…… 됐다, 됐어. 음…… 미안하고, 일단 가야돼. 버스 타야 되니까.”

“……아!”

눈물까지 흘리며 서글픈 표정을 짓는 리유를 보고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가지 않겠다는 말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충 미안하다 말하고 리유의 손을 잡았다. 앞서 가는데 외마디 리유의 비명이 들린다.

“뭐야…… 왜.”

“……읏.”

“……! 다리…… 삐었어?”

흠칫 놀라 리유를 쳐다본다. 리유는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몸을 살짝 숙이고 괴로워하는 모습에 보니 발목 부분이 퉁퉁 부어 있다. 삐었다기보단 거의 부러지지 않았을까 염려될 정도로 부은 모습. 내 말에 리유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 주저 앉는다.

“미안…… 다리 아픈 줄은 몰랐는데.”

“……흑, 흐윽…… 흐윽, 흐으으……”

“야, 야…… 울지 마…….”

리유는 내 말에 흐느끼며 운다. 운다면 앙앙,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 내며 우는 리유일텐데 지금은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듯, 최대한 숨죽여 운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우는 소리는 커지고 울음 또한 세어 나온다. 굉장히 미안해져 쪼그리고 앉아 리유에게 말했다. 하지만 리유는 쪼그린 체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다.

“미안, 화내서 미안. 아픈 줄도 모르고 끌고 가서 미안. 정말 미안해. 리유야.”

“……흑! 하아, 흐으…….”

다리 아파서 여기 쪼그리고 있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화부터 냈구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드니 미안한 마음 뿐이다. 단단히 잘못했다고 리유에게 빈다. 하지만 리유는 여전히 훌쩍이며 숨죽여 울 뿐이다. 나는 잠자코 마주 쪼그리고 앉아 그런 리유를 쳐다본다. 이제 화는 가라앉았다. 기다릴 수밖에.

“내, 내가……! 흑! 네가 화내서, 다리 아파서 화난 것 같애?! 흑!”

“……어.”

리유는 거칠게 고개를 홱 들고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리유의 귀여운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굉장히 흉한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다. 투명한 듯 흰 피부는 잔뜩 상기돼 빨갛고,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다. 거기에 잔뜩 격앙돼 찌그러진 얼굴 표정까지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을 자랑하고 있다. 리유의 울음 섞인 더듬거리는 말에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실제로 그렇지 않아……?

“나……! 처음에는 웅이 놀래켜주려고 숨었어, 그치만 절벽에서 미끄러져서……! 다리 너무 아프고, 전화기는 꺼져버리고, 도저히 움직일 수는 없는데 비까지 오고……! 그래서 여기 있었는데……! 웅이가 나 찾아줘서 정말 기뻤는데……!”

“어어, 대뜸 화부터 내서 미안, 정말 미안해. 진짜진짜 미안……”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

리유는 훌쩍거림을 멈추고 또박또박 말한다. 리유가 이만큼이나 명확하게 말하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기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똑똑이 들었다. 죄스러운 마음에 리유가 잠시 멈칫 할 때에 얼른 사과하려 했다. 하지만 리유는 외마디 빽 소리지른다. 그 정도로 거칠게 리유가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굉장히 놀랐다. 리유는 숨을 헐떡이며 나를 쳐다본다.

“다른 애들은 어떨지 몰라도! 웅이만큼은, 편견 없이 나 생각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방해만 되고, 골칫덩어리인 나라도 웅이는 늘 좋다고 해줬는데……! 결국엔 웅이도 똑같이 다른 애들 눈치만 보고,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생각하잖아!! 그런 웅이는, 그런 웅도는 싫어!!!!”

“……!”

리유는 말하면서 점점 감정이 격앙된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가선 굉장한 기세로 소리지른다. 새빨갛던 얼굴은 여기서 더 빨개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이 터져버릴 기세로 빨개졌다.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다. 멍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리유를 쳐다봤다.


그래, 분명 나는 리유와 만났다. 원래 따돌림 당하는 녀석과,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따돌림을 받던 녀석으로. 둘이서 처음 밥 패밀리를 만들고, 점차 성빈이니 희세니 들어와도 나는 변치 않게 행동하던 게 있었다. 다른 애들이 뭐라고 하던, 나는 내가 보는 내 친구를 그대로 믿기로. 다른 애들이 리유에 대해 뭐라고 중얼거리던, 재수 없다고 하던, 이상하다고 하던, 그런 건 게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애들에게 가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리유를 알려줬다. 그런 게 친구잖아.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리유가 아무리 응석부리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그래도 나는 다 리유의 편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리유가 나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주니까. 나 또한 리유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준 거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선생님이 학생 안전을 위하고 있다는 핑계. 다른 애들이 너 찾다가 잔뜩 고생했다는 핑계. 다른 애들이 너 안 좋게 볼 수도 있다는 위협에 가까운 핑계. 그런 핑계들로 내 화를 감싸려 했던 거잖아. 모두를 방패 삼아, 모두를 핑계 삼아. 그것도, 리유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할 법한 주제로. 다른 어떤 것보다, 다른 애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민감한 이 애에게.

“미…… 미안…….”

“됐어! 이제 웅도…… 좋아하지 않아, 싫어……!!”

“!”

나는 더듬거리며 자신감 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간신히 쥐어짜듯 말한 사과에 돌아온 리유의 대답은 나에게 더욱 큰 충격을 줬다. 리유의 생각을 알 수 없기에 더욱 혼돈스럽다. 충동적으로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정말 진심이라면, 진심으로 리유가 나를 싫어하고 더 이상 나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리유를 중심으로, 세계가 무너진다.


예전에도 이런 감정 비슷한 느낌 받았던 적 있는 것 같은데. 학기 초에, 기숙사 정리할 때. 책장이 쓰러지며 리유를 덮치는 걸 구할 때에. 책장 대신 내가 리유를 덮치게 됐는데 그걸 보고 여자애들이 오해하게 됐잖아. 그걸로 잔뜩 소문나서 엄청난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유리멘탈인 나는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가 쫓아와 준 리유. 나는 내가 따돌림을 당하는지라, 리유와 아는척 하거나 하면 다른 애들이 리유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따돌릴까봐, 그게 걱정돼 리유를 멀리했는데 리유는 그런 건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너무 고마워, 그 작은 리유 품에 의지해서 눈물을 흘렸던 나였다.

지금은 그 반대다. 그 때가 리유와 나의 시작이라면, 지금 리유의 말은 이어져온 관계의 끝을 선언한 것이다. 근데 어째서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거지. 모르겠다. 이제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 결코 리유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리유야.”

“놔, 놓으라구……!”

“정리유!”

힘을 주어 리유의 팔을 붙들었다. 리유는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친다. 나는 더욱 거칠게 리유를 잡아 일으켰다. 당황한 듯 놀란 표정의 리유. 한층 더한 눈물과 콧물에 당황한 듯한 표정.

“너는 내가 어떤 나라도 좋다고 했어. 이딴 변태새끼에, 무능하고 귀찮아하고 불평만 많은데다 행동할 줄도 모르는 애라 해도, 내가 허세를 부려도, 정말 약한 모습을 보여도, 어떤 나라도 좋다고, 단지 나라는 사실 하나로 좋다고. 그런데 나는…… 나는!”

“…….”

“나는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 나도 그래. 너가 어떤 리유라도, 난 그냥 네가 좋아. 정리유, 네가 좋아! 그러니까, 내가 싫다는 말은 하지 마!!”

“……!”

굉장한 억지다. 분명 어떤 나라도 좋아한다 말했던 리유지만, 분명하게 방금 전에 ‘이제 웅도는 싫어!’ 하고 말하지 않았던가. 헌데 어린애 생떼 부리듯 ‘히잉 나 싫어하지 마세요 ㅠㅠ 뿌잉뿌잉’ 이런 것도 아니고. 거기다 무슨 이딴 억지부림을 마치 소년만화의 열혈 주인공이 말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해버리다니. 굉장한 창피함이 몰려온다.

나는 리유의 어깨를 붙들고 리유를 마주보고 말했다. 굉장한 기세로 말했기에, 리유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냥 순수하게 놀라서 멍한 표정이다. 굉장히 어색한 정적이 맴돌기에, 나는 얼른 리유를 꼬옥 안았다. 리유는 움찔 잠깐 놀랐지만 이내 내 품에 익숙하게 안긴다. 추위에 떠는 리유를 따뜻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따뜻함을 느끼는 건 나다. 내 몸은 잔뜩 차갑게 식어 있어서. 리유의 작은 몸에서 무한에 가까운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쿠와아아앙! 콰과과가가강!’

“으힉!”

“우워어어억!”

“…….”

“…….”

리유를 꼬옥 안고, 이 따뜻함과 포근함이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옆에서 엄청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천둥소리. 그것도 엄청 크게. 눈을 감고 있어서 정확히 어디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눈을 감고 있었어도 ‘번쩍’ 하는 빛을 느꼈다. 그리고 그 빛하고 얼마 차이도 안 나게 엄청 큰 천둥 소리가 났다. 굉장히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리유보다 더 크게. 오히려 리유는 외마디 깜짝 놀란 정도다. 번개하고 천둥하고 차이가 전혀 없으면 가까이에서 번개가 떨어진 거라던데. 둘 다 깜짝 놀라 멍하니 소리가 났던 부근을 쳐다본다.

“번개…… 친건가.”

“응…….”

“…….”

“…….”

내 말에 리유는 잠자코 대답했다. 그러고도 한동안 멍하니 천둥소리가 난 부근얼 멍하니 쳐다본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보게 됐다. 안고 있는 상태로. 왈칵. 얼굴이 붉어진다. 엄청난 창피함이 몰려온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창피하다. 나, 나, 나는 지금…… 리유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이 작고 귀여운 여동생 같은, 아니 더해서 딸 같은 애한테 무슨 짓을……! 으아, 으아아아……! 패닉상태에 빠져 얼른 리유에게서 손을 땠다. 리유 역시 부끄러운지 아까 화냈던 열기가 빠지지 않은 건지 새빨간 얼굴로 당황한 기색이다.

“……푸흡.”

“……흐흣.”

“흐흥, 흐흐흣. 아하하하하하!”

“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서로 몹시 껄끄러운 듯, 마주보지 못하다 겨우 눈이 마주쳤다. 눈물 범벅인 리유. 가만히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줬다. 문득 리유는 나를 보고 피식 웃는다. 나도 잠시 웃음이 세어 나온다. 그 모습에 리유는 더욱 웃는다. 나 또한 리유를 보고 마주 웃었다. 결국엔 둘이서 이유도 없이 서로를 보고 박장대소를 하게 됐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죠. 아아, 정말. 으으... 하핫.(?)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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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31화 - 2 +17 14.07.25 1,562 39 23쪽
134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8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7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7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5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7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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