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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368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8.06 23:27
조회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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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
21쪽

32화. 잡아라, 사랑의 망설임을!

DUMMY

“…….”

“…….”

얼마의 시간이 지나,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고 벤치에 앉았다. 내 품에 안겨 울던 리유도 이제는 울음을 그치고 내 옆에 얌전히 앉아 있다. 여전히 코를 훌쩍 거리긴 하지만. 미래는 아까부터 진지한 표정인 체 망부석인 양 그대로 앉아 있다. 셋 다 말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어, 찾았다. 뭐하고 있어?”

“…….”

시선을 그렇게 높게 보고 있지 않았기에, 성빈이가 다가오는 걸 보지 못했다. 성빈이는 손을 허리에 두고 살짝 웃는 표정으로 꾸짖듯 말한다. 나는 멍하니 성빈이를 올려다본다. 미안하다. 여자애임에도, 먼저 자기 마음을 표현했는데, 그 마음에 대답하지 않고 질질 끄는 내 자신이 미안하다. 한없이 미안하다.

“어? 리유…… 울어?”

“……아니, 흑!”

“……뭐 때문에 그래. 누가 울렸어?”

내 옆에서, 아직 훌쩍이는 게 가시지 않은 리유를 보고 성빈이는 놀라 묻는다. 리유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목소리에서부터 우는 느낌이 서려 있어 속이는 건 무리다. 뒤에 ‘흑!’ 하고 훌쩍이는 건 덤. 성빈이는 미소 짓는 얼굴에서 금세 안 좋은 기색이 돼 쪼그리고 앉아 리유를 쳐다본다. 리유는 금방이라도 또 울 것처럼 한없이 서글픈 표정이 된다.

“네가 울렸지. 함부로 말해서.”

“……그렇지, 아무래도.”

희세는 볼멘소리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나는 우두커니 성빈이를 쳐다보다 문득 눈을 돌려 희세를 가만히 쳐다봤다. 잠자코 대답하곤 고개를 숙였다. 의외로 변명하거나 하지 않고 대답하니 희세는 당황했는지 ‘뭐, 뭐야. 그, 그럼 안 되지.’ 하고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희세를 보니 또한 죄책감이 온 마음으로 짜르르 퍼지는 기분이다. 자존감 강한 희세가, 나 따위 찌질한 남자애 좋아한다고 아침마다 깨워주고, 하잘 것 없는 나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수학여행 와서 다른 여자애랑 데이트 가는 것까지 용인해주고. 정말, 성인군자가 따로 없구나. 올려다보는 희세에게서 후광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섯 명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어색한 침묵을 지냈다. 희세와 성빈이는 어정쩡하게 서 있고, 나는 무기력하게, 리유는 훌쩍 거리며, 미래는 진지한 얼굴로 앉아 있다.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다들 각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나의 생각을 한다. 지금 나는, 평소엔 잘 활동하지 않는, 설령 활동을 해도 산발적으로 잠깐씩만 활동하는 ‘자괴감 회로’가 맹렬하게 가동되고 있다.

이 ‘자괴감 회로’는 불이 번지는 것처럼, 갱지에 물이 퍼지는 것처럼 급격하게 마음 속 어두운 생각들을 끄집어낸다. 기본적인 멘탈은 그것에 저항하려 하지만 자괴감 회로의 어두운 녀석들은 순식간에 마음을 점령해버린다. 이윽고 그 회로를 불붙인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금 상황에서 예를 들자면 이런 연예관계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성격·진로·기호·외모·태도 등 모든 방면으로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게 된다.

중학교 3학년 때 딱 한 번, 이랬던 적이 있다. 그 때엔 살아가는 모든 것을 부정하며, 내 자신의 존재도 부정하고, 어째서 이 세상에 살아가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뭐, 그 때엔 진심으로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아니라 약간의 중2병 같은 마인드도 담겨 있었지만. 그 때엔 남중이었던지라, 친구 녀석들의 호쾌하고 유쾌한, 그리고 계속되는 개드립과 돌직구에 부정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그 때와는 상황이 다르잖아. 스스로 그렇게 생각이 든 게 아니라, 전부 내가 원인이라 이런 사태가 된 것을.

성빈이가 수줍게 뽀뽀하고 뒤로 물러섰을 때, 나는 바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세가 쥐어짜듯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에도, 나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리유가 잔뜩 울며 좋아한다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을 때에도 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안아줬을 뿐이다. 안아줄 자격도 없는데. 그 전에 앞서, 미래에게 보여줬던 반응도 최악이었고. 대체 이런 쓰레기 같은 나를 왜 좋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여자애들이다. 아니, 그러면 또 여자애들한테 미안해지잖아. 이런 쓰레기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에게 미안해지잖아.

“내가, 내가 잘못했습니다.”

“왜, 왜 그래 웅도야!”

“……!”

나는 잠자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려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은 마음 속 자괴감을 더욱 불태웠다. 감정은 더욱 격해져 눈물까지 금세 핑 돌 것 같다. 성빈이를 바라본다. 선한 눈망울의 성빈이. 희세를 본다. 새침하지만 걱정스런 눈빛의 희세. 세 걸음 앞으로 나가 벤치에서 떨어지고, 뒤로 돌아 곧장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성빈이는 잔뜩 당황해서 말한다. 희세 역시 말은 하지 않지만 당황한 표정이다. 마음 속이 활활 불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온 몸이 짜르르 한 게 얼굴까지 확확 달아오른다. 부끄러움? 분노? 아니, 전혀 그런 건 아닌데. 뭔지 모를 감정이다.

“내가 병신이고, 내가 무능해서 이렇게 결정도 못 하고, 이렇게 리유 울리기나 하고…… 말은 안 하겠지만, 미래에게도 굉장한 짓 벌였고, 성빈이랑 희세한테도…… 끊임없이 미안한 짓만 해서, 정말 내가 미안합니다. 내가,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이, 일어나, 웅도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일어나, X신아.”

무릎 꿇고 말하니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진지하고 정돈된 마음으로, 천천히 말했다. 중간에 울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꾹 참았다. 내 정면에 리유가 보인다. 리유는 여전히 훌쩍이며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미래는 진지한 표정에서 ‘왜 이래 이 사람.’ 하는 느낌으로 안쓰럽다는 듯 쳐다본다. 성빈이는 창피해하는 투로 말하며 나를 일으키려 하고, 희세는 특유의 경멸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 입으로 ‘내가 병신이라’ 라고 말했지만 막상 희세가 정말 격한 투로 ‘병신’ 이라고 하니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일단, 정리부터 해. 뭣 때문에 이러는 건지. 어?”

“……어. 후우. 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나니 희세가 아니꼬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체 볼멘소리로 말한다. 이런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성빈이는 내 무릎을 탁탁 털어준다. 또 울컥, 미안하단 말이 나오려 하지만 아무 과정도 없이 계속 미안하다고만 반복하면 똑같은 반복이니까, 마음을 정리했다. 벤치가 네 명이 간신히 앉을 정도로 좁기에, 나는 일어나고 여자애들을 앉혔다. 맘 같아선 무릎 꿇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희세가 잔뜩 뭐라 했기에 잠자코 서서 얘기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기에, 그보다는 나부터가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피폐해질 것 같아 그냥 다 말하기로 했다. 본인들이 걸려 있는, 내 여자관계를 본인들 앞에서 다 말해버리는 건 정말 이상하고, 한참 찌질해 보이겠지만 그런 건 이제 모르겠다. 이젠 설령 두 마리 토끼 다 잡으려다 두 마리 다 놓쳐도 상관없다. 뭐가 어떻게 되던 좀 편하게 지내고 싶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두 사람은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성빈이가 먼저 나한테 마음을 표현했던 것. ‘뽀뽀’의 여부를 말하진 않았지만. 그 뒤로 희세가 고백한 것. 전전긍긍 시간 끌다 리유까지 고백한 거. 그리고 자세한 사항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전에 미래가 고백한 것까지 말했다.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진성 쓰레기인지라, 세 명 전부 좋아요. 또 누구 한 명을 집어 고를 수가 없어요. 이렇게 된 이상, ‘정웅도 공공재설’을 전파해서 누구 한 명의 독점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무슨 개드립이야! 그럼 우린 뭐 악덕 사기업이야?!”

“나,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난 싫어. 그런 흐지부지한 건.”

어느 정도 마음이 놓여버렸는지, 나는 전혀 웃기지도 않은 개드립을 쳤다. 희세는 잔뜩 화내는 투로 소리치고, 리유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성빈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단호하게 말한다. 아, 뭔가 끝이 흐지부지해진 것 같은 느낌. 어찌됐든, 모두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저…… 저도 죄송하네요.”

“어?”

잠자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던 미래가 작게 손을 들며 말한다. 뭔가 주볏주볏 어색해하는 느낌이다. 모두 미래를 쳐다본다.

“그…… 사실대로 말하자면 리유 부추긴 게 저니까.”

“부추기다니…… 무슨 말이야?”

“아뇨아뇨, 사주했다기보단…… 각성이랄까, 눈을 띄워준 거죠.”

“사주라는 말은 한 마디 안 꺼냈는데. 사주 했구나.”

“으아아~~ 아니야, 난 그냥! 답답해서!”

미래는 굉장히 공손한 말투로, 당당하지 못한 투로 주볏거리며 말한다. 나의 유도심문에 덜컥 걸려들어 다시금 반말이 돼 말한다. 나의 제 6의 기관 ‘촉’은 이 예민한 사항을 그냥 놓고 지나갈 리 없다. 뭔가 느낌이 있다. 사건의 실마리가……! ‘답답하다니, 뭐가.’ 하고 미래를 추궁한다. 미래는 ‘으으…… 으으……!’ 하며 입을 다물고 몸을 움츠리며 완강히 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지그시 미래를 노려보며 ‘그럼 리유한테 물어봐야 하……’ 하고 말하는데 내가 말하는 중간에 미래가 벌떡 벤치에서 일어난다.

“어차피 나는 망했으니까! 그 편이 더 재미있잖아! 성빈이하고 희세 사이에서 말라 죽어가는데, 거기에 리유까지 참전하면! 세 명 사이에서 빌빌대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괴로워하는 정웅도를 보자면, 정말 짜릿짜릿하고 즐거워서 견딜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유리멘탈일 줄이야, 이렇게나 찌질할 줄이야! 엄청 실망! 아하하하하하! 그래, 내가 흑막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핳하하하ㅎ하ㅏ핳하!!”

‘퍽.’

“아!! 아퍼!! 여자 때린다!!”

“이건 때려도 될 만 하지 않아?”

“응, 때려도 되.”

“그런 건 남·녀 차별하는 거 아니야. 무지몽매한 것들은 매가 약이니까.”

“에에에! 너무해, 가련한 소녀한테!”

미래의 말을 끝까지 듣고 깊이 음미한 나는 그대로 주먹을 들어 미래의 머리를 팍 때렸다. 살면서 여자애를 때린 적은 처음이다. 근데 어떤 죄책감도 들지 않아. 고개를 돌려 성빈이와 희세를 보고 물으니 둘 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미래는 아파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억울한 투로 외친다. 그러니까 리유를 사주해서 저렇게 만든 게 미래 탓이렷다. 뭐, 그게 사실이라도 희세·성빈이가 고백한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2/3은 여전히 내 탓이지만.

“아, 아니야. 미래는 나한테 조언만 해 준 거야. 나도 생각했어. 그러니까, 미래 잘못 아니야.”

“아아~ 리유야~ 역시, 리유는 착해.”

“응, 미래가 맞은 건 너 조언해서 맞은 게 아니라, 싸가지 없게 말해서 그래.”

“뭐, 뭐가! 흥흥, 어차피 난 너한테 차인 몸이니까! 저주하고 저주해서 귀신이 될 거야! 지옥이 있다면 그곳에서…… 아아! 그만 때려!”

“좀 많이 맞고 싶은 모양인데? 어?!”

리유는 조심스럽게 미래를 변호해준다. 미래는 좋아서 리유를 막 껴안으며 말한다. 나 역시 미소 지으며 리유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미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막말을 자꾸 내뱉는다. 나는 다시금 주먹을 들어 미래를 한 대 때렸다. 뭔가 더 정리가 안 되고 난장판이 된 기분이다.

“어, 어쨌든. 그래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무릎 꿇고 사죄한 겁니다. 나처럼 무능한 남자애를 이렇게나 좋아해줘서, 고맙고, 미안하고.”

“……이제 자살하러 가는 거야?”

“무, 무슨 소리야.”

“아니, 꼭 하는 말이 그래서.”

최대한 쿨한 척 결론을 냈지만 희세의 날카로운 말 한 마디에 무너져 내리는 나. 희세는 여전히 아니꼬운 듯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난 아까 너 무슨 정치인인 줄 알았어.”

“…….”

“그게 무릎 한 번 꿇고 미안하다 한 마디면 사과가 되는 거야? 왜, 아주 ‘여러분들이 좋아해서 이렇게 된 거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도 말 해보지. 일본 정치인처럼. 뭐, 정치인은 우리나라가 더 하지만. 아. ‘미안하다!’ 이건 우리나라?”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진짜로……!”

희세는 잔뜩 비꼬는 투로 말한다. 정말 마음에 안 들었는지 특유의 경멸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예전 여왕님 같은 포스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 눈빛은, 학기 초에 나를 멸시하던 그 눈빛과 매우 흡사하다. 자, 잠깐만.

“그건 정말 아니야. 세 명이 동시에 좋아해서 망설이는 건 괜찮아,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그치만 누구 하나 선택하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기만 하는 건…… 그건 아니야!”

“서, 성빈아.”

희세의 공격을 체 방어하지 못하고 있는데 성빈이까지 갑자기 치고 올라온다. 약간 실망한 듯 하면서 화난 듯 크진 않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하는 성빈이. 그 말은 꼭 꾸짖는 것처럼, 내 마음에 큰 타격을 입힌다. 이, 이 상태에서 리유가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면…… 다시금 멘탈이 붕괴되고 나는 쓰러지게 되는 건가.

“나, 난 웅이 좋아! 뭐가 어떻게 됐던 웅이는 웅이니까, 웅이가 좋아.”

“어어, 그건 치사하잖아! 내가 착, 성빈이가 척 하면 너도 합심해서 까야지!”

“맞아맞아, 리유 치사해! 이건 아니야!”

“우우웅? 왜, 뭐, 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천연덕스런 리유의 대답. 큰 배신에 두 여자애는 호들갑스럽게 리유를 추궁한다. 리유는 겁먹은 표정이 돼 희세와 성빈이를 쳐다본다. 아아, 다행이다. 어찌됐든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아.

“그래서 제가! 여기서! 게임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

“……?”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넘어갔다고는 하지만 볼일 보고 뒤 안 닦은 것 같은 찝찝함이 남은 결론. 세 여자애가 나를 좋아하는데, 나는 고를 수가 없다.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거기까지 말했는데 뭐. 어떻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런 찰나에, 갑자기 미래가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말한다. 다들 당혹스런 표정으로 미래를 쳐다본다. 나 또한 ‘뭐야 이 병신은’ 하는 눈초리로 미래를 쳐다본다. 하지만 미래는 그 정도에 굴하는 보통 여자애가 아니다. 미래는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여기 계신 찌질하신 남성 분 때문에 굉장히 답답하시죠? 바보처럼 결정도 못 하고, 결국 자기 변호나 하는 그 찌질함의 극치에! 그렇죠?”

“……어.”

“……응.”

“그, 그런가……?”

“야야, 다들 왜…….”

미래는 침묵하는 애들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무슨 예능을 진행하는 MC라도 된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한다. 가상의 마이크를 들고 행사 진행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그러더니 그 가상의 마이크를 희세와 성빈이, 리유에게 가리키며 말한다. 아무 말 없던 여자애들. 희세가 먼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에 성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리유는 망설이다 두 사람의 대답에 눈치를 보며 자기도 ‘나, 나도.’ 하고 말한다. 어이어이, 갑자기 무슨…… 나는 급격히 당황하게 됐다. 미래를 때리거나 제재할 수 있는 것도 성빈이랑 희세가 호응을 해 주니까 가능한 건데, 지금은 갑자기 미래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 버렸으니…… 미래는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자, 그래서 게임 제안합니다! 이름하여! ‘정웅도를 잡아라!’ 아하하하!”

“…….”

“……뭔 소리야.”

“자자, 재물은 가만히 있으세요. 게임 참가자는 이 세 분이니까!”

미래의 말에 나는 그 말이 잘 이해가 안 가 잠시 미래의 말을 곱씹어봤다. 여자애들 역시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인지 의문인 표정으로 미래를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를 미래만은 혼자 실실 웃고 있다. 도저히 혼자 생각하기엔 결론이 나지 않아 미래에게 물으니 미래는 내 입을 틀어 막는다.

“게임은 간단합니다! 어디보자. 지금 30분 남았는데요. 30분 안에 세 명이서 도망치는 정웅도를 잡으면 됩니다. 그럼 그 사람이 웅도랑 사귀게 됩니다! 어때요, 간단하죠?”

“야, 야, 뭔 개소리야 그건!”

“…….”

미래의 게임 설명에 나는 대번에 큰 소리로 반대했다. 아니, 그게 문제 해결이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무슨 러시안 룰렛도 아니고. ‘좋아한다’는 마음의 문제라면 그건 좋아하는 사람하고 사귀어야 하는 거잖아. 게임 같은 걸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이 문제는 철저한 대화와 상호 작용으로 인한 민주적인 해결방안을……!

“자자,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니까! 합리적이면서 절대적이면서 모두에게 평등한! 다수결의 원칙으로 가겠습니다!”

“너 다수결 원칙 되게 잘못 파악하고 있거든?! 어디가 절대적이고 합리적이고 평등해! 전혀 아니잖아! 아니, 애초에 게임 자체가 이상해!”

“자자, 계속 말하지만 재물은 이 쪽으로 가 계시구요. 게임 참가자는 이 세 분이라니까요.”

미래의 말에 나는 잔뜩 태클을 걸었지만 미래에게는 효과가 없는 듯하다……. 미래는 0의 대미지를 입었다. 나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한 체, 미래는 계속 뭔지 모를 자신만의 예능을 진행한다.

미래의 말에 주목하는 여자애들. 희세는 입술을 깨물며 진지한 눈이 돼 미래를 쳐다본다. 성빈이 역시 눈을 반짝이며 미래를 본다. 어이어이, 그렇게 진지하게 보지 마. ……살짝 불안해지려고 하잖아? 리유까지 미래를 쳐다본다.

“어때요?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아니다 싶으신 분은 손 안 들고 그냥 계세요.”

“…….”

“아아~ 전원 찬성! 그러면!”

미래는 얼굴에 하나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잠자코 손을 드는 건 의외로 성빈이. 흠칫 놀라며, 희세도 얼른 손을 든다. 리유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다 얼른 손을 든다. 미래는 굉장히 기뻐하며 나 보라는 듯 환한 웃음을 얼굴에 띠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흡사 악마의 미소처럼 사악하게 보인다.

“어때요. 기분이.”

“뭐가! 말이 안 되잖아, 말이!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무슨 이상한 게임 같은 걸로 정하는 게 아ㄴ…….”

“자자, 잡담은 집어 치우고. 전 소감만 물어봤습니다. 빠른 진행을 위해 인트로는 스킵하도록 하고──”

“무슨 인트로! 야, 야! 뭘 멋대로 진행하는데?!”

미래는 내 의견은 끝까지 묵살하고 계속 말을 이어 한다. 답이 없다. 말은 하는데 말이 통하질 않으니 솔직히 자신이 없다. 미래는 내 쪽에서 다시금 몸을 돌려 여자애들 쪽을 쳐다본다.

“자, 뭣들 하고 계세요. 일어나세요!”

“……응.”

“어.”

미래의 말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결연한 표정의 성빈이. 성빈이를 쳐다보며 마찬가지로 의지를 다지는 듯한 희세.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리유. 나는 굉장한 불안감을 느꼈다.

“어디보자…… 말하는 사이에 2분이 지났네요. 지금부터 28분! 28분 뒤엔 버스 타야 되니까 꼭 와야 되구요. 그리고 이 문학관 주위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그게 룰이에요. 그 외에는, 물건을 던진다거나, 때린다거나,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모두 됩니다!”

“누구 맘대로 무슨 이상한 룰 설명하는 건데! 야, 진짜 뭐…… 진짜 하는거야?”

“그렇게라도 해서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야!”

“히익!”

“아하하하하! 왜요, 이런 얀데레는 싫나요?”

미래는 잔뜩 즐거워하며 룰을 설명한다. 나는 안 먹힐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태클을 걸었다. 이에 갑자기 미래는 몸을 확 돌려 엄청 차갑고 냉기가 철철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속삭이듯 말한다. 순식간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미래는 다시금 밝은 표정으로 바꾸어 하하 웃으며 말한다. 이 자식…… 무슨 변겁도 아니고…… 미래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버린 기분이다.

“그럼, 시작합니다! 「정웅도를 잡아라!」 시작!”

“…….”

“어어, 잠깐, 저기. 그러니까, 여기서 누군가 날 잡는다고 그 사람하고 내가 사귀는 건, 내 마음이, 그러니까 아직 준비가! 으아아!”

미래는 손을 번쩍 들며 말한다. 그리곤 나와 여자애들 사이에서 빠르게 벗어난다. 움찔거리는 나. 나는 손을 내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여자애들은 듣는지 어쩐지 조금씩 나에게 다가온다. 이제는 뭔지모를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특히 성빈이의 결연한 눈빛이. 마치 여전사 같은 느낌이다. 몰라 뭐야 얘 무서워! 희세는 그렇다 쳐도 청순하던 성빈이까지 왜 이러는 건데! 점차 뛸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던 여자애들은 기어이 뒷걸음질 치는 나에게 뛰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소리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이런 건, 이런 건 아니잖아!


작가의말

제 소설을 전혀 모르는 친구에게, 이번 편의 개요만 말해줬습니다.

“어떤 남자애가 있는데 여자애 네 명이 좋아해. 근데 다 고백했는데 남자애가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못 해. 그래서 '돈가방을 들고 튀어라' 처럼 남자애 붙잡는 이벤트를 하기로 하고, 잡는 애랑 사귀기로 해. 근데 남자애는 그 마음이 아니잖아? 그래서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그런 편이야.”

제 친구는 정색하고 '토할 것 같아, 왜 그런 거 써.' 하고 말했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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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01화 - 3 +10 15.07.16 1,226 23 18쪽
149 01화 - 2 +6 15.07.13 1,417 18 18쪽
148 01화. 멀어진다 +8 15.07.12 1,565 26 21쪽
147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2 +27 14.12.24 1,659 29 28쪽
146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1 +8 14.12.24 1,521 24 25쪽
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144 32화 - 5 +28 14.08.13 2,004 49 18쪽
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142 32화 - 3 +13 14.08.09 1,814 29 21쪽
141 32화 - 2 +4 14.08.07 1,624 38 18쪽
» 32화. 잡아라, 사랑의 망설임을! +13 14.08.06 1,698 37 21쪽
139 31화 - 6 +16 14.08.04 1,888 31 21쪽
138 31화 - 5 +12 14.08.02 1,964 38 23쪽
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136 31화 - 3 +10 14.07.28 1,609 33 18쪽
135 31화 - 2 +17 14.07.25 1,561 39 23쪽
134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7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6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4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6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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