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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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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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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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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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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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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글자
20쪽

30화. 우유부단.

DUMMY

“흐읍.”

베란다 밖으로 나가 아침의 찬 공기를 들이킨다.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아침의 시원한 공기. 뭔가 새로 태어난 듯 기분이 굉장히 좋다. 시계를 보니 7시. 나로서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일찍 일어난 셈이다.

요즈음은 희세가 깨워주지 않아도 일찍 잘 일어난다. 뭐, 그렇다고 해도 희세가 오기 전에는 안 일어나는 게 관례였는데. 오늘은 주말도 아니고, 특별한 날도 아니고 이따 8시가 되면 학교를 가야함에도 어째서인지 일찍 일어났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니까 적응이 안 될 정도로. 우선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켰다.

“크윽…… 성빈아!”

나는 컴퓨터를 부팅하고 얌전히 켜지고 있는 화면을 보다 문득 아직 개지 않은 이부자리로 쓰러지듯 넘어지며 혼자 괴상한 소리를 냈다. 베개를 껴안고 뒹굴뒹굴,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어제 생각이 나니까!! 으아아아!!


─나,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두 번째 다짐이야. 정말 숨기지 않고 솔직해질 거야.

─어, 어……

─쪽.

─!!!


“끄아아아아~~~ 아핡, 아하아아앍~~~!!”

“뭐야, 기분나빠. 더러워.”

“으힉! 얽, 어헣, 좀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고!”

성빈이가 뽀뽀하고 수줍게 나에게서 뒷걸음질 치고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는 걸 상상하니까 그 때의 그 감촉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아서, 그 때의 그 달달한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아 온 몸이 간질간질해지고 버틸 수가 없어서 난 베개를 껴안은 자세로 방바닥을 뒹굴뒹굴 X랄발광을 했다. 행복한 망상과 행복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시점, 그 망상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냉소적이고 차가운 목소리. 소스라치게 놀라 나는 몸서리치며 눈을 떴다. 분명 나밖에 없는 자취방인데! 귀신인건가!! 라고 해도,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 희세. 평소와 마찬가지로 단아한 교복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나는 잔뜩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어기적 천천히 일어났다. 윗도리는 반팔, 아랫도리는 팬티만. 예전 같으면 내 쪽에서 기겁을 하며 황급히 바지를 찾아 입었겠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희세도 이제 이골이 났는지 눈살 한 번 찌푸리고 만다. 지금 경멸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건 내 괴상한 행위를 봤기 때문이겠지.

“좀만 더 일찍 찾아오면 너 이상한 짓 하는 것도 봤겠네. 기분 더럽네, 아침부터.”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잖아, 이건!”

“그럼 뭔데. 아침부터 그러고 싶어? 진짜, 그냥 나가고 싶다. 맘 같아선.”

“……그러니까 좀! 노크 좀 하고 들어와! 나라고 이런 꼴 보이고 싶진 않다고!!”

희세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말투로 냉기가 풀풀 날리는 투로 말한다. 나는 공연히 부끄러워져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하지만 희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꼭 일 때문에 간신히 만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냉장고를 열고 반찬을 상 위에 꺼낼 뿐이다. ‘사무적인 태도’라면 꼭 이런 느낌일까. 평소 같으면 내 말에 틀림없이 태클을 걸었을 텐데. 무표정하고 별 반응이 없으니까 오히려 더 화난 것 같다.

혹시, 어제 희나 온 것 때문에 그런가. 희나한테 말했으니까, 성빈이랑 놀았다고. 희세한테는 선약이 있다고만 말했지, 정확히 성빈이하고 놀았다곤 말 안했으니까. 아니, 희세를 속인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꼭 말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에. 분명 또 성빈이랑 단 둘이 논다고 하면 왜 그런지 엄청 노발대발 하면서 짜증피울 것 같았으니까. 희나는 귀엽고 또 귀여우니까, 나도 모르게 말했는데. 아니겠지, 희나는 어리니까, 잘 모를거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냥 오늘따라 저기압인 거겠지.


어째 밥을 먹으면서도, 학교로 같이 등교하면서도 희세는 계속 저기압인 상태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봐도, ‘뭐?!’ 하는 신경질적이면서도 또 무미건조한 태도에 함부로 말을 걸 수가 없다. 그냥 짜증만 부리는 평소 같은 성격이라면 계속 장난을 걸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찮겠는데 지금은 정말 진지한 느낌의 희세니까. 결국 학교까지 싸운 것처럼 어정쩡한 분위기로 등교했다.

“안녕.”

“어, 안녕.”

“…….”

자리에 가니 성빈이는 먼저 와서 애들하고 떠들고 있다. 나는 단지 뒷문에서 들어오면서 성빈이를 멀리서 쳐다본 것뿐인데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걸 느꼈다. 아아, 오늘따라 성빈이가 한층 더 예뻐보이네. 자동으로 뽀샤시하게 미화되는 보정이 걸리는 것 같아.

가방을 내려놓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마주보고 인사한다. 머리를 살짝 갸웃 거려서 머리카락이 쓸리듯 옆으로 흩날리는 게 너무 예쁘다. 나는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어제 있었던 일이 의식돼서 의식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얼굴이 절로 붉게 되는 게 느껴진다. 성빈이 역시 약간 볼이 상기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더 예쁘다. 아, 성빈이 주위로 자꾸 햇살이 비쳐서 핑크빛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가을인데도 잔뜩 봄처럼, 핑크빛이 감도는데 나와 갈라서며 앞쪽 자리로 가는 희세가 잔뜩 아니꼬운 눈초리로, 매섭게 나를 노려보는 그 눈빛과 마주쳐서 순식간에 기분이 다운됐다. 방금 전까진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쟤는 왜, 왜 화나서 저러는 거야. 이러면 성빈이랑 분위기 좋아도 말짱 꽝이잖아. 희세랑 싸운 것 때문에 또 신경 쓰이잖아. 아니, 싸운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

“재잘재잘.”

나는 잠자코 앉아서 숨을 쉬고 있다. 성빈이는 나한테 인사하고, 앞자리 성미와 하던 얘기를 계속한다. 나는 슬며시 그런 성빈이의 옆모습을 잠자코 쳐다봤다. ……말을 걸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되지. 모르겠어. 아아, 모르겠어. 아아─! 평소엔 어떻게 말을 걸었지! 평소엔 성빈이하고 어떻게 얘기를 했지!

─가만 생각해보니까 나, 평소엔 그냥 휴대폰에만 빠져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나 예쁜 성빈이를 옆에 두고서. 가만히 과거를 곱씹어 보니까, 나는 성빈이한테 말을 건 적이 거의 없고, 항상 휴대폰으로 재미난 것 보고 있으면 성빈이가 ‘뭐 봐?’ 하고 말을 걸어줬던 것 같아. 왜 그랬을까. 난 도대체 왜 그랬을까. 자연스럽게 말을 걸 만한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그게, 지금 좀 어색한 상황이잖아. 분명히 성빈이는 나한테 자기 마음을 표현했다. 확실하게 ‘좋아한다’는 말은 안 했지만, 뽀뽀……! 뽀뽀를 했다고! 하, 세상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이상하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여자애한테 뽀뽀를 받다니. 하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뭐, 성빈이가 내 답변을 독촉하거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바로 뛰어가버린 탓이기도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아직은 확신이 안 든다고 해야 하나. 물론, 좋긴 하지만, 성빈이 같은 애가 나를 좋아해준다면 정말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겠지만.

“뭐야, 왜 계속 성빈이 쳐다본데?”

“어, 예뻐서.”

“와, 재수없네. 둘이 아주 사귀어라, 사귀어. 재수 없게.”

“왜, 왜에~ 나 안 예뻐?!”

성빈이 옆모습을 보며 가만히 생각하는데, 문득 성미가 힐끔 나를 보며 눈을 반쯤 감고 나를 고깝게 보며 볼멘소리로 말한다. 나는 자연스럽고 능글맞게 말했다. 성빈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짓고, 성미는 구역질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과장된 비꼬는 목소리로 말한다. 성빈이는 성미에게 서운하다는 말투로 말한다. 좋아, 확실하게는 말 못 하지만 이렇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성빈이도 내 마음을 알게 되겠지. 비록 핀잔만 줬지만 성미 덕분에 어떻게든 성빈이랑 자연스럽게 말꼬를 틀 수 있게 됐다. 성빈이의 저 말에, 이제 내가 ‘응, 너 예쁘지.’ 하고 대답하면 아주 그냥 쐐기를 박는 게 되는 거지!

“웅아, 웅아!”

“어어, 어……! 아유, 우리 리유. 참 예쁘다.”

막 말을 꺼내려는 찰나, 높은 톤의 귀여운 목소리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눈치도 없이 끼어든 리유. 약간 울상인 표정으로, 어린애가 오빠에게 매달리고 말하는 것 같은 말투로 말한다. 얘기하고 있던 나, 성빈이, 성미 셋의 시선이 전부 리유에게 쏠릴 정도로, 리유 특유의 높은 톤의 코멩멩이 소리는 존재감이 강하다. 나는 안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깊은 빡침을 느끼고, 비꼬는 건 아닌데 약간의 감정을 담아 리유에게 말했다.

“어, 헤헷…… 처음 해 봤는데, 안 이상해?”

“응, 귀여워! 한참 어려 보이는데, 리유 원래도 어린데. 예뻐! 공주님 같애!”

“에헤헤헤헤…… 비니도 오늘 앞머리 내려서 되게 예쁜데!”

“응, 고마워.”

내가 예쁘다고 한 건, 성빈이보고 예쁘다고 말하려던 걸 리유가 저지해서, 이를 악 물고 약간 비꼬는 의미로 대답한 거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말은 잘 먹혀들어간 것 같다. 리유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며 좋아라 한다.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뭐, 뭐? 자세히 보니 양 옆에 머리 묶은 게 보인다. 근데 그게 트윈테일처럼 아주 묶은 건 아니고, 기본적인 생머리는 유지되면서 조금만 묶은 거라 사실 잘 몰랐다. 난 원래 사람 머리스타일 바뀌는 거 잘 못 파악하니까.

성빈이의 칭찬에 리유는 더욱 부끄러워하며 투명한 듯 흰 얼굴을 더욱 붉히며 수줍게 대답한다. 리유의 말에 힐끔 성빈이를 보니 과연, 평소엔 앞머리가 없었는데 오늘은 앞머리가 있다. 아, 그래서 분위기 다르게 더 예뻐보였구나. 성미는 여전히 아니꼽게 나를 보며 ‘어쩐 일이래, 변태 씨 별로 눈치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네.’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닌데 ‘의외로 눈치 좋은 녀석’이 된 것 같다. 아니, 그런 건 어떻게 되도 상관없으니까! 난 성빈이랑 얘기하려 했는데!

“이상해, 희세가, 응.”

“응?”

리유는 퍼뜩 정신이 들어선 심각한 표정으로 희세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러고보니 뭐 말하려고 왔지, 리유. 리유의 손가락질에 나, 성빈이, 성미 셋 다 희세를 쳐다봤다. 아무것도 안 할 때의 희세는 보통 책을 읽고 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이나 돌아다니는 나하곤 굉장히 대비되는, 건실하고 착실한 소녀의 모습이다. 헌데…… 나는 내가 오늘 아침에 희세가 화난 걸 겪어서 그런가, 그 감정이 대입돼 그런가 뒷모습만으로 굉장히 화난 것처럼 보인다.

“평소 같으면 인사하면 잘 받아주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엄청 화나보였어. 웅이한테도 그랬어?”

“아아, 말도 마. 아침부터 엄청 저기압이라니까.”

리유는 이런 것에 굉장히 민감한 성격이다. 특히, 안 좋은 쪽으로는. 누가 기분이 안 좋으면 리유도 덩달아 기분이 안 좋아지는, 어린애 같은 타입이라. 희세가 기분 언짢은 것에 자기도 언짢은 걸 느꼈나보다. 그래서 나한테 해결책을 구하러 온 모양이다. ……좀 본인이 해결하면 안 될까?! 난 내 문제만으로 바쁜데! 하지만 이런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냈다간 리유는 또 삐칠 수도 있으니까,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대답했다. 리유는 ‘그치그치! 뭔가 있어, 히이 화나게 할 만한 무언가가!’ 하고 작게 말한다. 혹여라도 희세에게 들릴까 목소리를 낮추고 은밀하게 말하는 리유의 모습이 귀엽다.

“글세…… 그런 거 아닐까, 마법의 날이라던가.”

“응, 계산해봤는데 희세 생리날짜는 아니야. 다음주 즈음이거든.”

“어, 어…… 그런 걸 자세하게 말해주냐, 무안하게.”

나는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리유의 직설적 화법에 굉장히 당황하게 됐다. 아니,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면 나는 뭐가 돼. 아무리 같이 학교 다닌지 꽤 됐고, 꽤나 친해졌다고 해도, 그런 민감한 쪽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 ……그보다 보통 친구 생리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몰라 뭐야 얘 무서워……. 어쨌든, 리유의 이상한 기억력 덕분에 생리는 아니라는 판결이 났다. 그럼 뭐야.

“글세─ 난 도통 여자애들 속은 모르겠더라고. 같은 여자애로서 어떻게 생각…… 해……?”

“…….”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사실이 그러니까. 이러면서 슬쩍 말꼬리를 돌려 성빈이에게 말을 하려던 나는 말끝을 흐리게 됐다. 성빈이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희세를 보고 있기에. 입을 꾹 다물고, 침을 꿀꺽 삼킨다. 성미도 그런 성빈이가 신기한 지 멀뚱히 성빈이를 쳐다본다.

“어이, 임성빈. 나희세 뚫어지겠다. 뭘 그렇게 봐? 싸웠어?”

“어, 어어! 아니아니, 그냥.”

“그냥 그렇게 쳐다보는 게 어딨어. 분명히 또 뭐 있구만─ 하여튼,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아아니야~ 왜 성미 너는 꼭 그렇게~”

성빈이는 성미의 놀림에 손을 내저으며 난처한 표정으로 말한다. 음…… 살짝 놀랐어. 성빈이가 그런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 짓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으니까.

“어쨌든, 웅이밖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웅이가 말해줘.”

“아니, 그런 건 네가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도 있잖아. 왜, 오늘 기분 안 좋냐고.”

“으응~~ 그치만, 그랬다가 화 내면─!”

“……나한텐 화 안 내니.”

리유는 내 손을 꼭 붙들고 말한다. 뭔가 일을 떠맡게 되는 기분이 들어 나는 애써 리유의 초롱초롱한 시선을 외면하며 대답했다. 리유는 생떼 부리는 어린애 같은 말투로 말한다. 아아, 희세의 화, 모르는 건 아니지만. 리유 너한테 화내는 건 나한테 내는 거에 비하면 정말 세발의 피라고. 희세에게 있어서 나는 그냥 까임의 아이콘인데. 심지어 잘한 짓이 있어도 까이는데. 지금 같은 저기압 상태에서 말을 거는 건 그야말로 폭풍우에 스스로 달려드는 꼴이라고.


“어이.”

“……?”

“말 좀 하지.”

“……꺼져.”

“아아, 좋게 말하는데 왜 그런디야. 매점이나 가자.”

“…….”

쉬는 시간. 나는 폭풍우에 스스로 달려들고 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기사 같은 모양인데 이거. 풍차는 실체라도 있지, 나는 보이지 않는 폭풍우를 향해 돌진했다. 근데 실체가 없는 폭풍우인데 또 철벽처럼 단단한 것 같은 기분이야. 희세는 책을 읽다 고개를 돌려 말을 건 게 나인 걸 확인하고 다시금 시선을 책으로 내리고 낮게 대답한다. 나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심드렁하게 말하고 멋지게 복도로 나왔다. 딱히 희세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다. 이러고 희세가 뒤따라 나오면 참 좋겠지만, 아마 아니겠지. 그렇다고 또 희세가 안 나오면 이만저만 창피한 게 아닌데.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다. 창피한 건 한 순간이잖아. 그냥 혼자 매점이나 갔다와야지.

“할 말이 뭔데.”

“어?! 나왔어?!”

“시끄러, 그럼 나오라는데. 나와도 X랄이야.”

“어, 어…… 가면서 얘기하자.”

의외로 희세는 순순히 나와 내 뒤에 서 있다. 내 반응이 불쾌한 지 경멸하는 것 같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나는 어색하게 말하고 걸었다.

나란히 걷는 게 이렇게나 무겁고 힘든 일이라니. 희세가 걷고 있는 오른쪽 면이 태양열에 구워지는 듯 안절부절 못하는 기분이다. 희세에게서 모종의 오오라 같은 게 나오고 있는 게 틀림없다. 희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앞만 보고 걷는다.

“화났어?”

“뭐가.”

희세는 내 말에 톡 쏘듯 대답한다. 어이어이, 그렇게 말하는 태도가 이미 화가 나 있잖아. 뭐라고 대답하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싸움 나겠지. 싸움이라기보단 내가 일방적으로 희세에게 털리겠지만. 숨을 고르고, 찬찬히 할 말을 생각해봤다.

“음…… 그러니까. 어제 우리 집에 희나 왔었어.”

“……어.”

“알고 있었어?”

“대충은.”

“그래.”

직접적으로 화났냐고 물어보기보단, 돌려서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괜한 자존심이나 기분 자극해서 좋을 것 없잖아. 일단은 희나 만난 것부터 말을 꺼냈다. 희세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잠자코 말을 이었다.

“근데 희나, 왠지 되게 화 내면서 나가버렸는데. 왜 그런 지 알아?”

“……몰라. 어떻게 알아, 내가.”

“희나가 아무 말도 안 했어?”

“…….”

희세는 불퉁하게 대답한다. 두 번째 물음에는 아예 대답하지도 않는다. 어째 반응이 다 시원치가 않아서 안달나게 만든다. 뭐 반응이 이래. 화내면 화난 거겠고, 아니라고 웃으면서 말하면 화난 게 아니다 라는 걸 알겠는데 도통 말을 안 하니 소통이 되질 않는다. 이래선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기미가 안 보이는데. 그렇다면, 극약처방을 쓰더라도 해결할 수밖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제, 실은…… 선약 있었다고 한 거 있잖아.”

“…….”

“그게, 성빈이하고 놀았어.”

“…….”

이런 말을 희세에게 왜 하냐면, 어제 희나가 혹시 말했나 하고 떠보려고 그런 거다. 그러니까 내 추측은, 희나에게 말함 → 희나가 희세에게 말함 → 희세가 속으로 ‘이놈 보소?’ 하고 기분이 나빠짐 → 지금 이 상태. 라는 추측이다. 그러니까, 내 쪽에서 먼저 실토하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겠지 하고 던져본 것이다. 하지만 희세는 한 번 움찔 하는 것 말고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걷다보니 거의 매점에 도착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너가 주말에 성빈이랑 노닥거린 걸, 왜 나한테? 무슨 의도로?”

“아니, 그…… 주말에 너도 놀려고 했잖아, 근데 성빈이랑 노느라 못 놀았으니까, 그것 때문에 화났나 해서…….”

“하! 누가 보면 꼭 너 엄청 인기 많아서 여자애들 끼고 사는 줄 알겠다? 내가? 너를?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너 진짜 엄청 웃기다?”

“……아니, 아니면 말고…….”

희세는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말한다. 대답할 말이 궁색하기도 했지만 우선은 희세의 엄청난 기세 때문에 잘 대답을 못했다. 희세는 특유의 여왕님 같은 기운으로 나를 압도하며 잔뜩 나를 깔아 뭉겐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끼면서도 괜히 던져본 나를 후회하며 찌질한 찐다처럼 대답했다. 희세는 굉장히 기분 나쁜 것 같이 나를 깔보듯 보면서도 또 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감정을 읽을 수가 없는데. 나는 풀이 죽은 표정을 짓고 희세를 쳐다봤다.

“희나가 나한테 무슨 말이라도 했을까봐? ‘오빠가 다른 누나랑 노닥거렸데─!’ 이렇게? 전혀 상관없거든! 내가 무슨 네 엄마야? 여자친구야? 너 노는 걸 일일이 나한테 보고해야 되? 네가 누구랑 놀던, 그딴 년이랑 어디서 뭘 하고 놀던, 전혀 신경 안 쓰거든! 하, 이거나 사! 멍청아.”

“어, 어…….”

“에이씨! 아침부터 소리 지르게 하네. 짜증나게. 빨리 사! 먹게.”

“어어, 미안…….”

희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굉장한 기세로 쭉 이어 말했다. 그러더니 소시지빵을 집어 탁 하고 나에게 던진다.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희세의 당당한 태도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빵을 살 수밖에 없다. ……빵셔틀?!

“기분 나빴어?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닌데, 미안…….”

“됐어, 이미 짜증은 잔뜩 내게 만들어 놓고. 말 걸지마.”

“야아이…… 좀 받아 줘라! 사과 하면!”

“됐거든! 재수 없어. 말 걸지마.”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희세가 저렇게 말한 건, 잠자코 내 말을 들으며 기분 나쁘게 들렸다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희세는 거친 말투로 대답하며 나에게서 떨어져 빠르게 걷는다. 쫒아가 말하지만 여전히 듣지 않는다. 그래도, 아까보단 훨씬 낫다. 약간은 희세도 장난기 있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웃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가서 미안하다고 비니까 ‘아 진짜! 남자새끼가 자존심도 없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흐흥.’ 하고 자기도 모르게 웃는다. 됐어! 바보처럼 ‘헤헤’ 하고 웃으니 희세도 피식 웃는다. 아, 아침부터 피곤하네. 그래도 됐다. 의뢰 완료.(?)


작가의말

어제는, 쓰기 싫어서 안 썼어요.

사실 다 핑계에요, 훨씬 많이 쓸 수 있는데, 쓸데없는 게임이나 하고 인터넷질이나 하니까... 아. 못난 집중력을 가진 나라서 미안하다-!!
이따 또 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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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142 32화 - 3 +13 14.08.09 1,814 29 21쪽
141 32화 - 2 +4 14.08.07 1,624 38 18쪽
140 32화. 잡아라, 사랑의 망설임을! +13 14.08.06 1,698 37 21쪽
139 31화 - 6 +16 14.08.04 1,888 31 21쪽
138 31화 - 5 +12 14.08.02 1,964 38 23쪽
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136 31화 - 3 +10 14.07.28 1,609 33 18쪽
135 31화 - 2 +17 14.07.25 1,562 39 23쪽
134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7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6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4 49 22쪽
»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7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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