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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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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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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2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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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9쪽

02화 - 2

DUMMY

“역시, 잘 치네.”

“웅도 너도. 저번보다 실력 는 것 같은데?”

“아아, 처참하게 발렸는데 무슨.”

체육시간. 오늘도 유진이와 함께 즐거운 배드민턴이다. 셔틀콕을 쳐서 유진이 쪽으로 날리며 너스레를 떤다. 유진이 또한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서로 좋은 덕담 해주며 훈훈한 분위기. 뭐, 방금 것도 내가 져서 유진이에게 서브를 넘기는 것이지만.

체육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다. 두 명이서 배드민턴을 하지만 정확하게 ‘저는 누구누구와 배드민턴을 합니다’ 하고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배드민턴만 하면 된다. 나중에 수행평가 할 때에만 미리 말하면 된단다. 그래서 자유롭게, 유진이와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히잉, 너무해요. 저랑은 통 치지도 않고.”

“뭐, 수영이랑 하면 되잖아.”

“저는! 오빠랑 배드민턴 치려는 게 아니라 오빠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거라구요! 흥흥!”

“귀여운 척 해도 소용없어. 리유보다 한참 딸리는 귀여움이라.”

“너무해요!! 정말. 하여튼, 그저 여자면 헤벌레 해서.”

옆에서 주뼛거리며 나타나는 미래. 불만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불퉁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래에게는 뭔가 까칠하게 대하고 싶은 기분이다. 그것만이, 미래의 개드립에 대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니까. 냉철하게 미래의 귀여움을 가로 막으며 말하니 미래는 잔뜩 싫은 표정으로 소리치듯 말하고 자리를 뜬다.

“미래랑 친한가봐?”

“응, 유일하게 친한 애들중에 같은 반 됐으니까. 다른 애들은 같은 반이 안 됐는데. 하아. 우리 밥 패밀리.”

“밥 패밀리? 누군데?”

“어어. 나랑, 희세랑 성빈이. 미래. 그리고…… 리유도 있었는데…… 후우.”

“응??”

“아니야.”

가볍게 셔틀콕을 날리며 말을 거는 유진이. 말을 하면서 치면 큰 대결의식 없이 선선히 치는 것이기에 나 또한 여유 있게 툭 셔틀콕을 받아 치며 대답한다. 거리낌 없이 밥 패밀리에 대해 말한다. 말하면서 슬쩍, 서글픈 기분이 된다. 리유에 대한 것. 아니야, 이제는 극복할 때가 됐지. 리유가 떠난 지가 언젠데. 열심히 하고 있을 리유를 위해서라도 기운 내야지.

유진이에게는 딱히 리유가 유학 간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미래의 망상처럼 내가 여자애들 만나려고 여자친구 있는데도 말 안 하고 속이는 게 아니라, 유진이는 리유가 누구인지도 모를 테니까. 갑자기 덥썩 ‘리유는 내 여자친구인데, 유학 갔어.’ 하고 말하는 건 좀 뜬금없잖아. 금세 친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희세나 성빈이, 미래만큼 친한 사이는 아닌 유진이니까.

“희세는 누구인지 알고, 성빈이도 이름은 들어봤는데 리유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봐.”

“그렇지. 존재감이 되게 옅어서. 엄청, 엄~청 귀여운 애 있는데. 착하고 천사 같고 웃는 모습이 마냥 귀여운, 그런 애 있는데. 이번 겨울방학 끝나고 유학 갔어. 호주로.”

“……헤에. 그 여자애 좋아했나보네?”

유진이의 말은 세 여자애의 인지도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전교에도 유명한 희세와, 그럭저럭 적절한 인지도를 가진 성빈이. 아무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은 리유. 하긴, 간신히 따돌림에서 벗어나던 때였으니까, 2학기 때에. 나도 모르게, 리유에 대해 말을 꺼내는데 엄청 미사여구를 붙여 말하게 된다. 딱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북녘땅 위대하신 수령님에 대해 언급할 때에도 이 정도로 하려나.

유진이는 잠자코 리유에 대한 내 묘사를 듣고 살짝 내 눈치를 보며 묻는다. 겸연쩍은 미소를 짓게 된다. 역시, 여자애들은 눈치가 빠르구나. 아니, 저런 묘사 듣고도 눈치채지 못하면 그게 더 문제 있는 것이려나.

“응, 맞아. 비밀…… 아아, 뭐. 비밀까진 아니고. 사귀고 있거든, 리유랑.”

“에에…… 처음 알았어. 전혀 몰랐는데?”

“뭐, 의도한 건 아니지만. 리유가 그런 거 알려지는 걸 되게 창피해해서. 지금은 없지만. 아아~ 보고 싶다.”

“……그렇구나,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여자친구가 싫어한다면.”

“응, 고마워.”

딱히 내가 반 여자애들한테 ‘나 리유랑 사귄다!’ 하고 떠벌릴 건 아니지만, 리유는 다른 애들에게 나와 사귀는 게 알려지는 걸 상당히 창피해해서.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창피해서 그런 것 같다. 희세나 성빈이나 미래는 괜찮다면서 다른 애들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내 손도 잘 못 잡고 그러던 리유다. 근데 내가 먼저 말하고 있네. 뭐, 소문 내는 건 아니니까.

유진이는 차분한 태도로 내 말을 듣고 대답해준다. 역시, 유진이는 착하구나. 안 그래도 부탁하려 했는데 유진이 쪽에서 먼저 비밀로 해 주겠다고 하니.

‘탁!’

“아아! 뭐야, 갑자기. 친선경기 아니었어?”

“여자친구도 있는데 이 정도 기습도 못 받으면 안 되지! 히힛.”

“뭐야, 질투하는 겨? 나 인기 많네~”

“어머, 착각도 유분수지. 덤벼봐! 배드민턴도 여자애보다 못 치는 주제에!”

“오호…… 한 판 해 보자 그거지?!”

갑작스럽게 대각선으로 팍 꺾이는 엄청난 마구(?)를 선보이는 유진이. 친선 경기라 마음 놓고 있던 나는 미처 대응하지 못했고 셔틀콕은 그대로 땅에 꽂힌다.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하니 유진이는 놀리듯이 말한다. 여자친구 있다고 하니까 바로 태도 돌변이구나. 씨익 웃으며 너스레를 떨자 유진이는 더욱 나를 도발한다. 오래간만에 다시금 승부욕 발동이다.


“이따 점심 같이 먹을래?”

“점심?”

“응, 우리는 도시락 시켜먹는데. 밖에 나가기도 귀찮잖아? 애들한테 너 소개시켜 주고 싶기도 하고.”

“아~ 너희 밥 패밀리에…… 나 초대하는 거야?”

“응. 아, 다른 밥 먹는 친구 있으면 안 와도 되고.”

“으응, 갈래. 꼭 보고 싶어, 웅도 친구들.”

“아 그래? 헤헤, 다행이네. 그러면 이따 점심시간 되면 같이 가자.”

“응!”

체육시간이 끝나고, 상쾌하게 땀을 흘린 나와 유진이. 같이 교실로 올라가며 말을 꺼내봤다. 어느 정도 차일(?) 마음을 먹고 던진 말. 유진이는 착한 애니까, 희세나 성빈이하고도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아서. 미래하고는 이미 어느 정도 말 나누는 사이가 된 것 같고.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다행히 유진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꼭 보고 싶어’라는 긍정적인 대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유진이는 더욱 상큼하게 웃으며 말한다. 좋아, 이걸로 밥 패밀리 한 명 더 추가인가.

“음. 있잖아요 오빠. 유진이한테 같이 밥 먹자고 했어요?”

“응. 왜?”

“분명 좋지 않을 텐데…… 역시, 오빠는 일 벌리는 데 소질이 있어요. 전혀 모르는 것 같은 표정 지으면서.”

“뭐가? 뭐가 안 좋아?”

“아아, 됐어요. 저는 경고 했어요. 흐흣. 저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니까~”

“??”

자리에 돌아오니 벌써 교복으로 갈아 입고 앉아 있는 미래. 나를 힐끔 보더니 말한다. 의미 모를 말만 지껄이곤 기분 나빠지는 미소를 짓는 미래. 무언가 방관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다. 뭐가 나쁘다는 거야. 유진이랑 같이 밥 먹는 게? 또 미래만의 망상을 펼치는 것일까, 리유 버리고 바람 피운다는? 그럴 리가. 이런 건 쿨하게 무시해주는 게 좋다.


“그럼, 갈까.”

“응.”

“에이~ 폭풍전야입니다!”

“뭔 소리야.”

점심시간. 말하지 않아도 내 자리로 찾아온 유진이. 유진이도 어느 정도 기대한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싱긋 웃으며 말했다. 유진이 또한 마주 웃으며 대답한다. 옆에서 미래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적절하게 무시하고 희세와 성빈이와 만나러 복도로 나간다.

“아, 오늘 같이 점심 먹기로 한 애인데, 이번에 새로 반에서 사귄 친구야. 소개할게, 채유진이야.”

“안녕, 만나서 반가워. 음~ 이쪽이 희세? 이쪽이 성빈이?”

“…….”

“어, 안녕! 임성빈이야.”

뭔가 교과서에 나오는 영어 본문 같은 소개. 「Hi, Miu-su, This is Cathy. She is a new student from America.」 이런 거. 훌륭한 중등 영어다. 뻣뻣한 표정으로 유진이를 바라보는 희세.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유진이의 살가운 인사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희세. 반대로 성빈이는 마주 웃으며 인사한다. 유진이랑 성빈이는 성격적으로 뭔가 비슷한 느낌이니까. 잘 어울리려나?

“……얘는 뭐야.”

“말했잖아, 반에서 새로 사귄 친구라고. 같이 밥 먹으면 어떨까 해서 데려왔는데.”

“……나 따로 먹을래.”

“야, 왜에. 유진이 싫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투로,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희세. 희세는 원래 목소리 톤이 꽤 높은 편인데, 이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는 건 상당히 화가 났다는 표현이다. 뭔가 뒤가 켕기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소신껏 말한다. 대번에 ‘따로 먹겠다’며 몸을 돌리는 희세. 너무 갑작스러워서 얼른, 희세 손목을 붙들며 잡는다. 따로 먹겠다니, 유진이가 얼마나 당혹스럽겠어.

“……너 눈치도 그렇게 없어?! 왜, 나만 미친X 만들게?! 그래, 싫어! 그래서 뭐! 따로 먹겠다니까, 굳이 그딴 질문 해서 악역 만들어야겠어? 말도 없이 데려온 네 잘못은 하나 없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왜, 왜 그래, 희세야……”

“…….”

내 손을 탁 뿌리치는 희세. 그러더니 몸을 돌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쏟아내듯 격한 목소리로 말한다. 소리 지르거나 큰 소리로 말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희세의 날카로운 말은 내 마음에 콕콕 박히는 듯 하다. 아아, 그렇구나. 내가 눈치가 없었구나.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희세 기분을 배려해주지 않았구나. 하다못해 미리 어떨지 메시지라도 보내볼걸. 기분 언짢았구나.

가만히 옆에서 보고 있는 유진이는 또 무슨 죄인가. 아무 잘못도 없이 그냥 내 제안에 온 건데 겸연쩍고 무안하게 되고. 성빈이가 얼른 희세를 진정시키며 말한다. 옆에서 미래는 작게 속삭이는 말로 ‘저는 경고 했었어요…… 흐응. 이럴 줄 알았는데.’ 하고 말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말 좀 해주지, 하아. 설명충이라고 선언했으면 그런 걸 좀 설명해달란 말야.

“미안, 괜히 같이 먹자고 해서. 웅도랑 친해져서, 웅도 친구들하고도 친해지고 같이 점심도 먹고 싶었는데…… 격하게 싫은 모양이네. 친구들하고 합류해서 먹을게. 미안!”

“……미안, 유진아.”

“아니야. 그럼 다음에 밥 사 줘!”

“응, 진짜 미안해.”

“갈게!”

빠르게 먼저 사과하는 유진이. 일을 크게 벌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것 치고는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정중하게 사과한다. 게다가 같이 밥 먹자고 제안한 건 나인데, 유진이가 먹겠다고 말한 것처럼 말한다. 더욱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유진이에게 연신 사과한다. 유진이는 눈을 찡긋 하며 얼른 반에서 나와 뛰어간다. 아아…… 괜한 일을 벌였네.

“……뭐!”

“미안, 너한테 말도 안 해서. 밥 같이 먹는 건데, 너무 나 좋을 대로만 생각해서. 미안, 미안. 괜히 분위기 잡치게 해서.”

“……칫.”

유진이가 떠나고 바로, 희세에게 시선을 돌린다. 잔뜩 짜증내는 표정으로 짜증스럽게 내뱉듯이 말하는 희세. 얼른 고개를 꾸벅, 조아리며 사과한다. 가뜩이나 화가 난 희세다. 그런 와중에 유진이에게만 사과하고, 유진이만 착한 녀석처럼 보이는 상황이 됐으니. 얼른 사과를 해야 후환이 두렵지 않다. 실제로 미안하기도 하고.

희세는 내 사과에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여전히 짜증스런 목소리로 ‘칫’ 하고 말한다. 그러더니 잠자코 ‘짜증나니까 오늘 도시락은 네가 사.’ 하고 말한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희세를 본다. 억지로 웃음을 참지만 결국 방긋 웃으며 말하는 희세.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응, 사줄게 사줄게!’ 하고 대답했다. 옆에서 미래가 ‘우와! 저도 사 줘요 오빠! 역시 통이 크네요, 오빠는!’ 하고 말한다. 정색하고 ‘자신의 밥은 스스로 장만해야지.’ 하고 대답한다. 마구 우기며 생떼를 부리는 미래를 뒤로 하고, 성빈이가 웃으며 ‘뭐 먹을래 다들?’ 하고 배달 시키기 위해 휴대폰을 든다.


“아까는 좀 놀랐어.”

“응, 그 때 희세가 기분이 좀 언짢았나봐. 좀 많이 민감한 성격이라.”

“어. 괜찮아, 기분 나쁘거나 그러지 않았으니까.”

오후 쉬는 시간에, 유진이 자리에 앉아 다시금 점심시간의 일에 대해 사과했다. 유진이는 착한 미소를 얼굴에 띠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역시 착하구나, 유진이. 확실히, 같은 반이니까 많이 얘기할 수 있어서 이 점은 좋구나. 금방 오해를 풀 수도 있고.

“아, 밥 사주는 거. 밥은 그렇고, 나중에 웅도 너네 집 놀러가도 되?”

“어…… 우리 집?”

“응. 남자애는 뭐하고 놀까 궁금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못 가봤어, 남자애 방은. 여중 여고니까.”

“아하하. 그렇기도 하겠네.”

제안을 바꾸는 유진이. 살짝 놀란 나는 얼른 표정 관리를 한다. ……좀 그런데. 희세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내 정조관념(?)으로는 조금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여자애가, 말 만한 처녀애가 남자애 방으로 스스로 들이닥친다? 그건 좀…… 아니, 무슨 짓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우리 집에 살고 있다면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근데 지금 내 거처는 자취방. 그러니까 좀 더 이상한 기분이잖아. 안 그래도 매일 희세가 오는 것도 처음에는 상당한 부담이었는데. 지금은 일상이 됐지만.

“뭐, 상관없겠지. 주말 같은 때에, 시간 되면 날 잡아서 말해줄게.”

“와! 놀러 가도 되는 거지? 헤헷. 웅도는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는 스타일?”

“깔끔하진 않은데, 우렁 각시 같은 사람이 있어서…….”

“우렁 각시?”

“아하하…… 농담농담.”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나. 어디까지나 ‘친구’로써 찾아오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있나. 자취방이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생각 외로 상당히 좋아하는 유진이. 정말 남자애들 방이 어떤지 궁금한 탐구정신인 모양이다. 유진이의 대답에 나는 비유를 하며 대답했다. 그 우렁 각시가, 아까 잔뜩 자신에게 짜증을 부린 희세라는 걸 알면 유진이는 어떤 느낌일까. 절대 말할 수 없지, 누구라도 이상하게 볼 텐데.


‘띵동.’

“……흡. 음??”

퍼뜩. 눈이 떠진다. 알람? 아니다. 무엇 때문에 눈이 떠졌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 이상하군, 보통의 나는 희세가 와 커튼을 치면 그때야 일어나는데. 무엇 때문에 스스로 일어나게 됐을까. 일어나서 멍하니 커튼을 쳐 눈부신 햇살을 맞이하는 찰나, 다시금 ‘띵동’ 하고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그제야 납득이 간다. 초인종 소리에 깼구나.

그런데 한 가지 의문. 누가 이 시간에 초인종을 누르나. 희세라면 거리낌 없이 문 앞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까 앞서 ‘희세가 와 커튼을 치면’ 이란 말을 했지. 너무 당연한 일상이라 비밀번호를 바꿀 생각도 안 했다. 그러니 희세가 초인종을 누를 리는 없다. 그렇다면…… 성빈이나 미래? 아니 이 아침에 왜 오겠냐고. 그럼 신문사나 우유 배달부 같은 것일까. 그 쪽이 아무래도 현실성 있어 보인다. 한 번도 맞이한 적은 없지만. 아마 옆방이랑 헷갈린 것일까? 떡진 머리를 긁적이며 문을 연다.

‘덜컥.’

“안녕─ 와 대박! 너무 네츄럴 한 거 아니야, 웅도?”

“……으헉!”

“실례하겠습니다─ 와, 진짜 자취방이네?”

“뭐, 뭐, 뭐, 뭐야?!”

한 쪽 눈을 감고 문을 열고 바라본다. 있어야 할 신문 배달원이나 우유 배달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교복을 입은 단정한 모습의 유진이. ……유진이?! 아아아아?! 왜, 이 아침부터 갑자기 유진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유진이를 바라보다 순간 내 복장을 깨닫고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반팔 티셔츠와 사각팬티. 유진이 말대로 너무 네츄럴한 복장이다. 상황을 수습할 틈도 없이 유진이는 방으로 들어온다. 우아아아─! 얼른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바지부터 입는다.

“헤에─ 정말 자취구나. 부러워! 컴퓨터도 있네! 평소엔 늘 컴퓨터만 하지?”

“어, 어, 어, 어떻게…… 아니 이 시간에 왜……!”

“미래가 알려줬어. 말하지 말랬는데, ‘근데 말해도 되요!’ 하는 이상한 말 하면서.”

“크으…… 미래구나, 미래였어…… 아아.”

굉장히 창피하다. 얼굴이 확확 달아오른다.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여자애에게 팬티 차림을 들키는 것은 과히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아니, 친해진 여자애라고 해도. ‘여자애’한테 팬티차림을 들킨다니! 거꾸로 생각해봐! 여자애면 같은 경우에 트라우마 생겼을지도 몰라!

더듬거리며 간신히 유진이에게 물으니 유진이는 당황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방긋 웃으며 말한다. 크윽…… 근미래, 네 년이었구나. 적은 가까이에 있다더니, 미래 네가 스파이였구나…… 천진난만하게 말해줬겠지…… 아니, 천진난만하지 않아. 분명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나 괴로우라고 일부러 알려준 거겠지. 아아. 근미래, 이 정도였구나. 나를 엿 먹이는데에(?) 정말 최적화 돼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아침 먹었어? 난 안 먹었는데. 같이 먹자아!”

“아아…… 아침. 아침. 아. 아?! 잠깐만, 지금 몇 시……”

‘삑삑삑삑 삐빅. 철컥.’

발랄한 목소리로 말하는 유진이. 나는 여전히 진정이 안 돼서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다 문득, 뇌리에 한 가지 사실이 스쳐 지나간다. 아침을 먹었냐는 질문. 물론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앞서 말했지만 희세가 와서 깨워주고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 게 느긋한 내 아침 일상이니까. 참 뻔뻔하게 희세에게 신세지는 걸 말하고 있는 나.

그런데 지금, 아침 안 먹었는데. 유진이는 들어와 있는데. 말인즉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서 희세가 들이닥친다면. 그건 그야말로, 지구멸망과도 같은 일이겠지. 희세가 안 올 리가 없는데. 얼른 휴대폰을 보고 시간을 보는 찰나. 지옥의 사신이 찾아오는 것처럼, 바깥에서 문의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들린다. 빛의 속도에 근사치 99.999% 정도에 가까운 속도로 문 앞으로 갔지만 이미 문은 천천히 열린다. 안 돼에에에……!

“……?”

“……아. 그. 그게.”

“……뭐야?”

문을 열고 급박해 보이는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희세. 이내 얼굴이 굳는다. 내 뒤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는 유진이를 발견했으니까. 희세는 표정이 일그러져서,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침이라 그런지 목이 잠겼다. 중요한 순간에 잠긴 목소리를 낸 희세는 창피한지 잠깐 헛기침을 한다.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져버릴 것 같다. 아아, 어떻게 해야 하냐 어떻게 해야 하냐 으아아아아─!!


작가의말

......연재가 좀 더디지요? 다른 작품 쓰는 것도 있고,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최선을 다해서, 이틀에 한 편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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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5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7 4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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