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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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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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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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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9쪽

30화 - 4

DUMMY

“……뭐.”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서 나는 반문했다. 한줄기 바람이 불어, 희세의 머리칼과 치맛자락을 흩날린다. 희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지만 실은 엄청난 충격에 등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흐르고 있다. 심장은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고 있다. 잘못 들은 거겠지. 아니, 확실히 그렇게 들었는데. 확실히 「좋아한다」라고 말한 게 맞다면, 그걸 다시 여자애한테 말하게 주문하는 것도 굉장한 실례잖아. 하지만 이미 가장 병신 같은 대답인 ‘……뭐’ 라고 해버렸고.

“좋아해.”

“…….”

어째서 나는, 무엇 때문에 희세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애써 회피하고 있었을까. 너무도 완벽한 여자애라서? 나하곤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기비하 때문에? 모르겠다, 확실히 모르겠지만…… 확실한 현실은 희세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는 사실이다. 이것만큼은 이제 어떤 수를 써도 완벽하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심장이 쿵쾅, 온 몸이 뛰고 있는 것 같다. 굳이 들으려 애쓰지 않아도, 심장이 뛰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린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내 심장소리가 들릴 것처럼 고동치고 있다. 눈앞이 심장박동에 따라 두근두근 뛸 정도다. 아찔하다.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꼬여 복잡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머리는 아예 큰 충격으로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멍─ 하니 아무 생각도 없이, 눈앞의 희세만 보고 있다. ……멍청아, 뭐라고 말이라도 해 봐. 희세 기다리고 있잖아. 여자애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엇, 진짜.”

“……하아. 기껏 나온다는 말이 ‘진짜’ 여부야.”

“…….”

정말, 내가 생각해도 멋스럽지 못한 말이다. 그럼 이 상황에서 희세가 장난을 치겠는가.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희세의 저 눈은, 거짓이 아닌 진실된 눈이다. 그건 나도 아는데, 그건 아는데……! 왜 이렇게 찌질대는지. 정신집중, 정신집중. 정웅도, 정신 차려봐 좀. 판단을 하고 말을 내뱉으라고……!

희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쓴웃음을 얼굴에 담고 대답한다. 그 표정을 보니 마음이 아린다. 희세에 독설을 듣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괴롭지. 이 느낌…… 이상해.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너 좋아한다고, 정웅도!”

“……어.”

“흐읏…… 나도 바보 같아서, 말도 잘 안 나오지만…… 모르겠어! 그냥 좋아, 너하고만 같이 있고 싶고…… 너랑만 놀고 싶고…… 부정할 수 없게, 좋아져버렸어. 바보같은 정웅도 변태새끼인데…… 잔뜩 좋아한다고.”

희세는 힘주어 말한다. 낮고 작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니 희세는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감정을 담아 나를 향해 소리치듯 말한다.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을, 그 동안 참아왔던 말을 나에게 퍼붓는 것 같다. 울먹이거나 슬프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내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덤덤하게, 자기 마음을 그대로 담아 말하는 희세의 고백. 나는 심장이 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나는……

나는 그 마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내 모순적인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산산이 부서진 첫사랑. 한 번의 실패로 인한, 모든 나머지 것들에 대한 일반화. 나는 여자애를 좋아해선 안 된다. 여자애가 나를 좋아하는 일은 없다. 설령 좋아하는 티를 낸다 해도 그건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수작질이다. 나 또한, 여자애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외모만을 보고, 수컷의 본능으로 「좋아한다」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라는 스스로의 생각으로 머릿속을 답답하게 가둔 체.

─정말정말 좋아하는 여자애가, 정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여자애가 나를 좋아하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어. 그렇다는 건 그 여자애가 나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거니까. 그치만 이렇게나 착하고, 이렇게나 눈부신 여자애들이 나를 이용하려 나를 좋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데, 그런데도 나를 좋아한다면.

─나 자신도 마찬가지야. 그 사람 내면도 제대로 보지 않고, 외면만 보고, 겉모습만 보고 좋아한다고 하는 건…… 그건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 그 사람의 껍데기를 좋아하는 것일뿐. ‘남자새끼가 뭐 그렇게 쪼잔하게 따지냐, 그냥 예쁘니까 좋아하는 거지.’ 하고 따진다면 그 사람하곤 말할 가치가 없다. 진심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건 남자, 여자 따지는 게 아니다.


“어…… 나는…….”

긴 생각을 마치고, 초조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희세에게 말을 꺼냈다. 마음을 정리하진 않았다. 다만 내 생각을 정리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내 생각을 정리했다고 뭔가 달라지는 건 없다. 뻔한 궤변을 그럴싸하게 늘어놓을 뿐이지.

“일단은 실감이 안 나는데…… 한참, 한참 모자라는데. 아, 그…… 내가 볼 때엔 확실히 내가 너보다 한참 모자라고, 한참 딸리는데…… 하아, 좋아한다니까…… 심장 터질 것 같은데.”

“잔말 말고 대답이나 해, 멍청아.”

“……어?”

하지만 희세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질질 끌면서 대답을 회피하는 걸 눈치채고 잽싸게 핵심을 찌른다. 순간 당황한 나. 재빨리 당황한 티를 없애려 하지만 희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씨익 웃으면서 물어본다.

“나는 네가 좋아. 너는…… 내가 좋아?”

“…….”

희세는 조금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며 물어본다. 수줍은 티를 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희세지만,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좋아한다 말하는 게 어찌 부끄럽지 않을까. 꼭 소녀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사람 공통이야, 이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래라던가, 리유라던가.

“……하아.”

“대답하기…… 싫어?”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희세의 시선을 피했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정말 분수에도 안 맞는 짓이지만, 내게 아무것도 없다면 당연히, 당연히 희세의 고백을 받아주었을 것이다. 애초에 스펙차이 어쩌고 하는 건 다 드립일 뿐이지. 그만큼이나 완벽하고 이만큼이나 예쁘고, 요리 잘하고, 나 위해주는 여자애가 좋아한다고 먼저 고백할 만큼 적극적인 성격이면 누가 그 고백을 안 받아줘.

하지만, 하지만…… ……성빈이. 불과 어제, 어제 성빈이에게…… 받은 뽀뽀는……! 우유부단한데다 쓰레기 같은 생각이란 건 알지만, 그냥 두 사람한테 모두 고백을 받고 싶다. 하지만 그건 안 되잖아.

성빈이는 입술을 깨물며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시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심장이 다시 두근. 아려온다. 그렇게 슬픈 표정 지어버리면 난, 난……! 결국 무슨 말을 할지 정하고, 이를 악 물고 말했다.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개드립 치지 말고! 맨날 그렇게 이상한 말로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진짜!”

“아아아, 농담 농담. 때리지는 마, 아아아, 너 주먹 아프다니까?!”

“맞아도 싸! 진짜.”

진지하게 개드립을 치니 희세는 응징의 주먹으로 명치를 때린다. 가련한 소녀 치곤 손이 매운데다 아무리 소녀라도 명치를 때리면 충분히 아프다. 방금 고백하고 그 대답을 듣는 어색한 상황임에도, 꼭 평상시처럼 맞고 저항하고 그러고 있다. 그나마 어색한 분위기가 누그러진 것 같다.

“후으으. 뭐, 어차피 너 같은 바보새끼에게 일관된 대답을 듣길 바라고 고백한 건 아니지만.”

“……그건 무슨 소리야. 되게 불쾌한데.”

“그럼 지금 대답해 줘. 나 좋아……? 예스야, 노야……?”

“그, 그건…….”

희세는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한다. 불쑥 불쾌한 기분에 물으니 다시금 희세는 애처롭고 가련하면서 약간 야한(?) 그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다시 허세 부리는 병신에서 그냥 병신(?)이 돼 말끝을 흐렸다. 한동안 끔찍하게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하아. 뭐, 너 병신 같은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괜찮아.”

“……뭐가?”

“그 미친 앵앵대는 년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임성빈.”

“……아니, 그, 그게. 그러니까 그건.”

“상관 없어. 지지 않아. 질 생각도 없어. 이미 정면으로 싸우기로 했으니까.”

“…….”

희세는 당당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한다. 그 표정 또한 떳떳하고 반듯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렇게 자신만만한 희세와 비굴한 나를 대조해서 살피며 열등감을 느꼈다. 아, 희세가 그래서 오늘 성빈이에게 그렇게 시비조였구나. 이미 두 사람, 한바탕 붙었구나. 나는 알지 못 했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어. 설령 네가 성빈이 그 년을 선택한다 해도. 다만.”

“……?”

희세는 담담하게 내 눈을 보며 말한다. 그러다 ‘다만.’ 하고 단호한 말투로 말한다. 눈빛이 달라졌다. 날카롭고 살기가 감도는 눈빛.

“결과가 어떻게 되던 확실하게 말해줘. 내가 싫고 임성빈이 좋다. 내가 좋고 임성빈이 싫다. 확실하게 안 하면…… 알지?”

“……응.”

“그래, 가 봐.”

희세는 거의 위협적일 정도로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눈빛에 압도돼,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얀데레?! 무서워!! 간신히 대답하니 희세는 다시금 평소의 심드렁한 눈빛이 돼 나에게서 떨어진다. 그러더니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다.

“……희세야! 고마워!”

“……그딴 말 필요 없거든! 바보야!”

희세가 현관에 들어가려는 걸 보고 뭉클한 기분이 들어 큰 소리로 말했다. 희세는 뒤돌아 나를 보고 마찬가지로 크게 대답하고 혀를 쭉 내밀고 집으로 들어간다. 덜컥 문이 닫히고, 나는 멍하니 닫힌 문을 한동안 쳐다봤다.


“크흑…… 으으…… 아아…….”

혼자 집으로 터벅터벅 걸으며,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괴상한 소리를 지껄인다. 가슴을 부여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가슴이 아프다. 너무 아프다. 크윽…… 드디어 눈을 뜬 건가. 마족(魔族)의 피에! 온 몸에는 전에 없던 짜릿함이, 심장 쪽에서부터 전율하듯 전달된다. 그래, 이건 운명의 데스티니. 어둠에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족(魔族)만의 권능. 나는 더 이상 인간이길 포기하겠다!

“으으…… 희세야! 좋, 좋…… 아아아아 못해! 성빈아! 좋…… 아아아아 이것도!!”

컴퓨터도 켜지 않고, 이불에서 뒹굴거리며 베개를 껴안고 혼자 말하고 혼자 수줍어하고 있다.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 부끄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 애꿎은 이불을 팡팡 차고 있다. 희세는 어떻게, 그렇게 창피해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좋아한다」라는 말을 할 수 있지? 난 가상으로 말하는데도 이렇게나 창피한데! 죽을 것 같은데! 그걸 본인 앞에서 한다고! 아아아아!!!

……모르겠어, 어느 쪽인지. 어느 쪽이 내 마음인지.


“…….”

“뭐.”

“아니야.”

불퉁한 표정으로, 나는 학교를 가고 있다. 옆에선 희세가 마찬가지로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잠을 거의 못 잤다. 퀭한 눈으로,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뜨니 희세. 어제 희세가 나한테 말한 건 전부 꿈인 양, 바뀌지 않은 평소의 일상이다.

어색한 느낌은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어제의 그 말이 꿈결처럼 느껴지니까. ……실은 그거, 꿈 아니었을까. 희세는 평소랑 전혀 다름이 없다. 나는 잠도 못 자서 눈이 잘 안 떠지는데. 잠을 충분히 잤는지 희세 피부는 뽀얗고 하얗게 물이 올랐다.

사실은 모래알이 입에 깔깔하게 있는 것처럼 껄끄럽다. 밥도 모래알 씹는 것처럼 먹었고, 희세와의 말도 입에 모래를 씹는 것처럼 힘들고 버겁다. 좀 봐달라고, 고백한 다음날 바로 이렇게 얼굴 들이미는 건 너무하잖아.

“안녕.”

“응…….”

자리에 가서 앉으니 성빈이가 방긋 웃으며 맞이해준다. 그 또한 전혀 반갑지 않고,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 성빈이의 웃는 모습 위로 어제 담담하게 고백한 희세 얼굴이 겹쳐 보인다. 이…… 이 쓰레기 자식이! 그만두지 못해! 아아, 아아…… 신은 어째서, 어째서 나희세를 낳고, 또 임성빈을……! 으으, 암 걸릴 것 같애. 한숨을 푹 쉰다.

“몸 안 좋아? 되게 아파 보이는데.”

“어, 잠을 잘 못 잤어.”

“왜? 악몽이라도 꿨어.”

“하하…… 악몽이라…….”

성빈이는 걱정스런 말투로 묻는다. 악몽까진 아니지만, 이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 전혀 행복하지 않아. 죽을 것 같다고.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나도! 으아아아!

수업을 들으면서도, 온통 그 생각 뿐이다. 희세, 성빈이, 누구.

희세는 예뻐. 몸매도 좋아. 변태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크고 아름다운 가슴은 희세의 매력이지. 거기에 걸맞는 잘록한 허리에. 동양에서 나오기 힘든 몸매잖아. 거기에 적극적이고, 요리도 잘 하고. 공부 잘 하는 건 덤이다. 잘 한다는 수준이 전교 1등인 게 문제지만.

성빈이는, 그게 희세한테 가려서 그렇지 성빈이도 결코 작은 가슴은 아니다. 성빈이는 희세에 비해 슬랜더한 몸매. 부담스럽지 않은 딱 적당한 사이즈에, 무엇보다 세상 어떤 것도 포용하고 녹여버릴 것 같은 부처님 예수님 저리 가라 할 미소가 있다. 거기에 약간 콧소리 섞인 간드러지는 목소리도 매력이고.

……둘 다 매력이 넘치는 게 너무 문제야. 둘 다 나한테 너무 잘 해주는 게 문제야. 둘 다…… 아, 진짜!

‘통.’

“웅도는, 정말, 수업시간에 자거나 안 자면 딴 생각 하는구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담임선생님이 책으로 내 머리를 톡 치며 말한다. 방긋 웃으며 말하시는 걸 보니 화나서 그러시는 건 아니고 장난으로 그러는 것 같다. 나는 정색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벌 서고 오겠습니다.’ 하고 나갔다. 선생님은 ‘어, 그, 그런 거 아니었는데…… 우, 웅도 화났어?’ 하며 말씀하신다. 나는 묵묵히 교실 밖으로 나가 엎드렸다. 차라리 벌이라도 받자. 나에게 가하는 스스로의 벌이다. 나는 개새끼다. 개만도 못한 놈이다.


“…….”

“…….”

점심시간. 오래간만에 다섯 명이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다. 헌데 분위기가 영 시원치 않다. 나는 풀이 잔뜩 죽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고, 성빈이랑 희세는 각각 염려서른 표정과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미래는 뭐가 좋은지 방실방실 웃고 있고, 리유는 연신 걱정스러워서 내 옆에 앉아서 밥도 안 먹고 계속 물어본다.

“웅이, 어디 아파? 왜 그래?”

“……아니여.”

“근데 왜에~? 이상해, 오늘. 기운도 없고, 대답도 안 하고. 놀아주지도 않고!”

리유는 잔뜩 토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너라면 안 그러겠니. 그 고민하는 성빈이와 희세가 동시에 한 자리에 있는데. 솔직히 지금은 두 사람 중 어느 한 명이라도 보면 마음이 아련하고 죄스럽고 미안해서 눈도 못 마주치겠는데. 두 사람이 다 있다고. 이걸 어디에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아, 하소연 해도 그리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 같다. 욕만 잔뜩 먹겠지. 배가 불렀다고.

“뭐─ 사랑의 시련일지도 모르지, 오홍홍홍홍.”

“……하아.”

“사랑의…… 시련? 그게 뭐야?”

미래는 은근한 투로 말하더니 굉장히 얄밉고 높은 톤으로 평소와는 다른 웃음소리로 웃는다. 명백히 나를 노리고 하는 말이다. 저격인가. 저항할 힘조차 없다. 한숨을 푹 쉬니 옆에선 눈치라곤 존재하지 않는 리유가 궁금한 투로 미래를 보며 물어본다. 미래는 ‘글세에~ 히히히히. 난 모르겠네── 하핫.’ 하고 말을 돌린다. ‘어어! 알려줘! 왜 나만 안 알려줘!’ 하고 생떼를 부리는 리유. 힐끔 희세와 성빈이를 보니 둘 역시 미래의 말에 조금 동요하는 눈치이다. 성빈이는 약간 어색해하며 나를 쳐다보다 희세를 쳐다보고, 희세는 처음부터 명백하게 적대적인 눈빛으로 성빈이를 본다. 곧 두 사람이 눈싸움인 양 쳐다보고 있다. 아아, 제발. 내 앞에서 그러지 말아줘, 그럼 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있으실 거죠?”

“너는 좀 캐릭터를 하나로 통합해라 좀. 존댓말 캐릭터를 가던, 그냥 원래대로 돌아오던.”

“아하하, 내 맘이거든─요? 히히히.”

밥을 다 먹고, 혼자 고독을 곱씹으며 복도를 걷고 있는데 미래가 따라 붙으며 말한다. 나는 아니꼬운 말투로 미래에게 애꿎은 화를 냈다. 미래는 그러거나 말거나 몹시 즐거운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나를 보고 말한다.

“너, 되게 즐거워 보인다.”

“그럼요! 이렇게나 재미있는 구경이 어디 있어! 아하하하, 죽을 것 같아 하는 너도 병신같고, 싸울 것만 같은 일촉즉발인 희세랑 성빈이도 재미있고! 흐흥!”

“……너 진짜 어그로 잘 끈다. 타고난 거야? 진짜 때려주고 싶다. 여자애 진심으로 때리고 싶다고 생각한 건 너밖에 없을 것 같아.”

“어머어머, 위험한 말을 하시네! 그런 인간 쓰레기였다니…… 거기다 괜히 왜 내 쪽으로 말을 돌리실까!”

미래는 잔뜩 촐싹거리며 말한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퀭한 눈으로 진심으로 말했다. 미래는 피식 웃으며 나를 보고 말한다.

“오빠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거 보니까, 확실히 희세도 말 전한 것 같네요. 그쵸?”

“……멋대로 추측하지 마, 그런 거.”

“아하하, 노코멘트?”

“…….”

미래의 말에 나는 푸욱, 다시금 어제의 일이 떠오르려 한다. 희세, 성빈이, 희세, 성빈이. 아아, 정신이 붕괴될 것 같다.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미래는 내 침묵에 대답하지 않고 나를 따라 걷는다.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아요. 흐지부지한 건, 여자애들은 싫어하니까.”

“……알아, 아는데! 아으으…… 모르겠다고, 나도…… 다 좋아하면 안 될까?”

“어머, 시작부터 양다리로 시작하려구요? 그럼 저도 끼워주실래요? 패자부활전? 그럼 존댓말 캐릭터도 살릴게요! 섹드립도!”

“……됐어, 이 컨셉종자야.”

미래의 말에 나는 진저리를 치며 대답했다. 제발 그만, 이젠 생각하기도 싫어……! 생각해야 하는데, 결론을 내야 하는데! 미래의 가벼운 개드립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나마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은데.

“신중하게 생각해요. 저 버리고 정할 만큼 대단한 여자애니까. 알았죠?”

“어…….”

사실 미래에 대한 것도 아직 상처가 치유가 안 됐다. 엄청 미안하고, 죄스러운데. 미래 본인이 더 괴로울 텐데, 이딴 걸로 괴로워하는 내 옆에서 자꾸 조언해주는 미래가 참 고맙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은 감았지만 해 때문에 눈이 부시다. 으으. 결론, 결론. 우유부단한 정웅도야, 결론을 내려라.

상남자는 무슨. 상찌질이야. 찌질이 중의 찌질이.


작가의말

오래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다 게으른 제 잘못입니다.


-원래는 신작 너나대」를 가지고 7월 연참대전에 참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너나대」 한 편, 「우학변」 한 편으로 가려고 했죠. 왜 「우학변」으로는 연참대전 참가하지 않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우학변」은 연참대전 끝나기 전에 결말이 나서... 헤헷.


그런데 제가 7월 13일부터 여행을 가게 돼서, 부득이하게 글을 못 올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나대」를 단 2화만에 연중(??!)하고 다시금 「우학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두 작품을 연재하다보니까 힘드네요. 한 3일동안 멘붕온 것 같아요. 얘가 얘고 얘가 얘고 얘는 뭐 사쿠라여? 하고 꼬여서 ㅠ 여행가기 전까진 꼭 많이 쓸게요!


※ 결론

· 다시 「우학변」 1일 2회 연재 ㅋ

· 단, 본인의 게으름이나 사정으로 1일 1회가 될 수 있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8

  • 작성자
    Lv.31 아싸라뵤
    작성일
    14.07.10 23:43
    No. 1

    역시 우학변은 끝날때가 다 됐군요 ㅠㅠㅠ
    여행가시다니 부럽습니다!!! 그전까진 폭참좀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10 23:47
    No. 2

    네, 최대한 많이 써야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07.11 05:37
    No. 3

    우와 정말 고민되겠네요 정웅도!
    흥미진진하군요
    즐겁고 안전한 여행 되시길 빕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11 08:57
    No. 4

    넵, 여름이니까 고생하고 올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비행병아리
    작성일
    14.07.11 08:49
    No. 5

    희세나 성빈이말고 그냥 리유를 선택하면 고민할 이유가없을텐데......

    웅도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는데도 트라우마에 영향을 전혀 안 받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실제로 저런 트라우마가 있으면 희세나 성빈이를 자꾸 피하게되고 고백에 대한 응답을 요구받게되면

    여자에 대한 증오심만 더 커집니다.

    고백한 두여자가 티날정도로 사랑 싸움 하고 있으면 "날 이용해먹을려고하는 사기꾼 두마리의 투쟁"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웅도가 격은 첫사랑이랑 비슷한 일을 경혐한 저로서는 웅도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습니다만

    트라우마를 재대로표현하면 라노벨에서 벗어나는 장르가 되는지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11 08:58
    No. 6

    아뇨 그... '이용해먹으려는 사기꾼 두 마리의 투쟁'으로 보여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성빈이랑 희세는 절대 그런 애들이 아니니까, 더욱 혼란이다 그런 거죠. 그리고 뭐, 웅도도 나름대로 호구+보살 기질이 있어서, 첫사랑의 실패를 증오가 아닌 체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적개심은 없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사카나상
    작성일
    14.07.11 16:19
    No. 7

    희세하고 성빈이 포기하고 리유를
    흐흐흥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11 21:11
    No. 8

    ...어째 경쟁상대에 리유는 참가조차 못한 것 같지만 그건 기분탓이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7.11 19:14
    No. 9

    봐요 지금 댓글들 모두가 리유를 원하는데...
    설마 독자의 기대를 배신하는 건 아니겠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11 21:12
    No. 10

    그그그 그건... 저는 어떻게 됐든, 글쓴이의 의도대로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헤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7.12 00:14
    No. 11

    희세찡을 원함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12 00:40
    No. 12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후후훗.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Kart
    작성일
    14.07.12 08:13
    No. 13

    ㅠㅠ 다음주면 군입대 하네연 쩝..
    결말을 못보다니!! ㅎㅇㄷㄱㄷㄱㅇ
    지금까지 재밋게 잘봣구 잘 놀다 오세요 휴가때 찾아뵙겟습니당.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12 08:34
    No. 14

    아... 괜찮아요, 괜찮아. 이런 저도 갔다 왔는걸요. 일이등병 때 고생하고 상병장때 놀다 오면 됩니다. 100명의 전우가 있지만 거기선 당신 혼자 뿐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만, 아뇨, 같은 하늘 아래 분명 다르지만 같이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실수에 겁먹지 말고, 한 번에 울적하지 말고 계속 하세요. 될 때까지. 그럼 칭찬받고 잘 할수 있을 거에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Kart
    작성일
    14.07.12 10:54
    No. 15

    격려 감사합니다.! 자살하지 않고? 로리로리한 완결을 기대하며 복귀하겠습니당 하핫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12 11:08
    No. 16

    넵, 열심히 하고 오세요! 응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5 23:53
    No. 17

    희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전서리
    작성일
    18.08.18 00:49
    No. 18

    희세랑 성빈이 둘다 보랏빛으로 물들어버렸어 리유빼고가 내 바람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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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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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02화 - 3 +10 15.07.29 1,220 20 20쪽
153 02화 - 2 +11 15.07.26 1,238 1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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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01화 - 4 +8 15.07.20 1,305 25 19쪽
150 01화 - 3 +10 15.07.16 1,226 23 18쪽
149 01화 - 2 +6 15.07.13 1,417 18 18쪽
148 01화. 멀어진다 +8 15.07.12 1,565 26 21쪽
147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2 +27 14.12.24 1,659 29 28쪽
146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1 +8 14.12.24 1,522 24 25쪽
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144 32화 - 5 +28 14.08.13 2,004 49 18쪽
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142 32화 - 3 +13 14.08.09 1,815 29 21쪽
141 32화 - 2 +4 14.08.07 1,625 3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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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136 31화 - 3 +10 14.07.28 1,609 3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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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 4 +18 14.07.10 1,577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5 49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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