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381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8.09 22:57
조회
1,814
추천
29
글자
21쪽

32화 - 3

DUMMY

“후읏.”

“칫.”

“안타깝네요.”

문학관에서의 일련의 소동은 이제 끝이다. 선생님의 명대로 모두 입구에 삼삼오오 모이고 있다. 성빈이와 희세는 추격을 그만뒀다. 미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안타깝긴 뭐가 안타까워.’ 하고 내뱉듯이 말했다. 어떻게든 잡히지 않고 끝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또 찝찝한 마음이다. 아니, 안 잡혀서가 아니라. 이런 게임을 해서라도 나를 붙잡고 싶을 만큼, 그만큼 내가 우유부단하다는 말이잖아. 거기다 이런 게임을 했지만 결국엔 결론은 나지 않았고. ‘내 마음 가는대로’ 라는 이기적인 명분 하에. 희세나 성빈이나 리유가 나 좋아해준다고 우쭐대거나 그런 마음은 아니다. 그저 미안할 뿐이다. 그게 벼슬인 건 아닌데. 아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스물 아홉. 스물 아홉? 어? 한 명 모자란데?”

‘웅성웅성.’

담임선생님은 ‘다 왔지?’ 하며 손가락으로 애들을 세 보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두번 더 세시더니 높은 톤으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그 말에 다들 제각기 웅성대며 소란스러워졌다. 지금까지 이랬던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아니 뭐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 정도 되면 길을 잃거나 그러지도 않을 거 아냐.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자유시간을 꽤 허락해 준 거고. 혹시 모르니까 꼭 다른애들이랑 붙어 다니라고 했고.

“혹시 자기 친구들 없는지 확인 좀 해 줄래? 누가 없는 거야?”

“…….”

선생님은 애들 면면을 꼼꼼히 살피면서도 부탁한다. 같이 다니는 자기 친구들끼리 확인하는 편이 더 빠르겠지. 순간 나는 굉장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방금 전 머릿속에서 생각한 거 있잔아. 고등학생이 초등학생도 아니고 길을 잃겠냐고. 거기에 같이 다니기로 했으니까 잃어버릴 리 없다고 했잖아. 근데 그 두 개에 완벽하게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애가 한 명 있었어.

리유.

에이, 아니겠지, 설마 그렇겠어? 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 몸을 빙 둘러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리유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 비슷한 키를 가진 애도 없다. 이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다. 분명 아까 ‘왕!’ 하고 나 놀래줄 때, 그 언덕 같은 곳에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겠지. 문학관하고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곳인데. 한 5-10분 뛰어오면 되는 거리인데, 거기다 길도 거의 직선이고. 도무지 길을 잃을만한 곳이 아닌데, 모른다. 리유라면 충분히 못 올 수 있는 거리다.

“리유…… 없는데요.”

“어머, 진짜!”

손을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 웅성거리던 애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내 쪽을 주목한다. 그리곤 주위를 살피며 리유를 찾는다. 확실히, 없다. 애들은 전혀 모르던 눈치다. 하긴, 아무리 축제 때 연극을 계기로 애들하고 조금 친해졌다고 해도, 반에서 광범위하게 존재감이 적은 리유이기에 애들이 모를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좀 너무한데.

“어떡해. 아까 길 잃은 거 아니야?”

“……리유 진짜.”

“이거, 괜히 제 탓 인 것 같은 기분이…… 아핫, 죄송합니다.”

여자애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성빈이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모두를 보고 말하고, 희세는 입술을 꾸욱 깨물고 약간 화난 것처럼, 그치만 걱정이 묻어나는 느낌으로 말한다. 미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다. 꾸벅, 우리에게 사죄한다. 나는 잠자코 그런 애들의 반응을 살폈다. 우리 패거리 애들 뿐 아니라 다른 애들도 웅성웅성 소란스레 얘기한다. 다만 얘기하는 방향성이 좀 다르다. 걱정하는 애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뭐야, 집에 가야 하는데 왜 안 와’ 같은 푸념과 짜증이다. 자칫 잘못하단 다시금 반리유세력(?)이 늘겠는데.

허나, 무얼 그렇게 걱정하는가. 지금은 21C, 아니 21세기 접어든 지도 벌써 14년이나 흘렀다. 정보화시대, 일일생활권, 전부 2000년대 초반에 이룬 거잖아. 하물며 지금은. 그냥 전화 걸어보면 되는 거잖아. 이럴 때엔 IT 강국이어서 사람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참 감탄하게 된다. 다이나믹 코리아, 이자식 파이팅이다.

『툭. 투둑.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아.”

다이나믹 코리아 취소. 짜증나. 「까까오똑 정말 좋은데 3G나 4G 꺼져 있을 때에도 확인이 되면 좋겠어요. 데이터 꺼져 있을 때 문자 오면 확인을 못 하잖아요? 고쳐주세요!」 하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왜 전화기를 끄고 다니는데! 그럼 전화기를 왜 가지고 다니는 건데! 하여튼! 첨단기기가 있으면 뭐해, 그 사람이 활용을 못 하는데!

마지막 수단이자 완벽한 수단이 봉쇄되자 나 또한 다른 애들처럼 초조한 느낌이 됐다. 이 낯선 고장에서 전화기까지 꺼져 있으면 진짜 실종이잖아. 이러다 정말 큰 사건 되는 거 아냐? 경찰 막 오고, 실종처리 된다거나…… 서, 설마. 그 정도 까지야. 하지만 리유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지, 전화도 꺼져 있는데…….”

애들 목소리 때문에 시끄러운 와중에 선생님이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며 하시는 말씀은 잘 들린다. 내가 먼저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서 그런가. 다들 가만히 어쩔 줄 몰라 하고만 있다.

이런 때에만 갑자기, 묘한 행동력이 생긴다. 아무것도 못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꼭 나를 보는 것 같잖아. 연애에는 그럴지 몰라도, 적어도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이러고 싶지 않다. 비장한 표정으로 아까 갔던 언덕 쪽으로 걸어간다.

“야, 어디가.”

“리유 찾으러.”

“어디 있는 지 알겠어? 그러다 너까지 길 잃으…… 그렇진 않겠지만. 선생님한테 말씀 드리고 가야 할 거 아냐.”

“됐어, 예상되는 데 있으니까. 금방 찾아가지고 올게.”

희세가 나를 붙잡는다. 그리곤 특유의 툴툴거리는 아니꼬운 투로 말한다. 나지막이 말하고 대답은 듣지 않고 몸을 돌려 걸어간다. 뒤에서 희세가 ‘야 정웅도!’ 하며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하고 걸어간다. 이윽고 또 ‘어어? 웅도! 어디 가는거야! 가지 마!’ 하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마찬가지로 무시하고 뛰기 시작했다. 그나마 담임선생님이니까 망정이지, 사감 선생님이었으면…… 한 대 맞고 얌전히 찌그러져 있었겠지. 어쨌든 다시금 달린다.

웅성거리며 서로 떠들지만 결국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는 애들을 보고, 내 마음과 똑같다는 생각에 울컥, 충동적으로 뛰어 나오긴 했지만 사실 그것보단 리유가 걱정되는 게 더 크다. 아까 했던 끔찍한 상상도. 사람은 살다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잖아. ‘실종’이란 것도, 이런 방심 속에 일어나는 거잖아. ‘고등학생이니까.’, ‘에이, 애도 아니고.’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정말 리유를 잃기라도 한다면…… 거기다, 아무리 어려보인다고 해도 리유도 엄연히 여고생. 위험하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납치라도 당한다면…… 더 위험하잖아! 한참 위험하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발걸음이 더욱 급해진다.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계속 느껴지지만 무시하고 계속 뛰었다. 아마 선생님이나 희세, 성빈이겠지. 혼나겠지만 어쩌겠어. 지금은 리유를 찾는 게 더 급하다. 뛰어서 금방, 리유가 ‘왕!’ 하고 나를 놀래켰던 언덕에 도착했다.

언덕은 나무와 풀숲이 꽤 우거져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뒤로 산길이 이어진다. 도착해서 이곳 저곳 찾아보지만 웬걸, 아무데도 없다. 리유가 있을만한 풀숲이나 그런 데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도통 보이질 않는다.

“하…….”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화도 안 되고, 그런대로 있을 만한 곳에도 없고. 이제 아무런 희망의 끈이 없다. 만화나 게임처럼 사람 간에 무선 통신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헛소리고. 이러다 정말 잃어버린거면 어떡하지. 진짜 누가 납치라도 해갔으면 어떡해. 리유, 약간 맹한 끼가 있어서 이상한 아저씨도 잘 따라가게 생겼는데. 아니, 틀림없이 아무 의심도 없이 따라갈 거야. 으아아아! 그럼 안 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에효.”

‘털썩.’

한숨을 푹 쉬며 옆의 아무 나무에 기대 걸터앉았다. 원래 바닥에 아무데나 앉는 성격은 아닌데. 지금은 너무 허탈하고 힘들다. 딸자식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이 이러할까. 아니, 한 0.1% 정도 비슷하려나. 리유하고 나는…… 솔직히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처음 여고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 그렇네, 입학하는 날 교실에서 처음 만나서 처음 얘기하고, 비록 교실에서 먼저 말 걸어준 건 천사 같은 성빈이었지만, 진정 말 트고 친해진 건 점심시간에 혼자 빵 먹고 있던 리유니까.

“흐흣.”

혼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 때 점심시간에, 학교 옆 언덕에서 혼자 도시락 먹으려고 처량하게 올라갔을 때 리유가 ‘우와!’ 하고 놀렸던 게 떠올라서. 그 뒤로 친해졌는데. 따돌림 당하는 애 두 명이 모여서 처음으로 사귄, 처음으로 만든 밥 패밀리. 그리고 속속들이 성빈이, 희세, 미래까지. 가끔 정희나 채영이나 성미 등이 끼기도 하고. 걔네는 명예회원이려나. 하핫, 그깟 밥 패밀리에 무슨 정실회원 명예회원이 있어. 새삼스레 그게 엊그제 일 같기도 하고, 굉장히 까마득히 예전 일 같기도 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나 잡을 때, 풀숲에서 뛰쳐나와서 ‘왕!’ 하는 모습도 그거랑 비슷했네. 그래, 아까까진 분명히 리유는 있었는데.

……뭘 애써 감정 잡는데! 아니, 아무것도 아니잖아. 심각한 거 아니잖아. 길 잃어봤자 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 무슨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미아 된 것도 아니고.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아, 괜히 눈물까지 날 것 같아. 소녀감성 다 됐네, 정웅도. 상남자 칭호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하아. 근데 진짜, 진짜 못 찾으니까 답답하다.

“뭐해, 멍청아.”

“……어.”

한숨 쉬며 쭈그리고 앉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데, 나지막한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보니 희세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희세를 쳐다본다.

“리유 찾으러 간 줄 알았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 하, 참.”

“……못 찾겠다.”

“금방 달아오르고 금방 포기하네. 남자애답네, 남자애다워.”

“…….”

희세는 비꼬는 투는 아니고, 무덤덤한 말투로 말한다. 씁쓸한 태도로 대답하니 희세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 ……이 와중에 나는 저 말이 이상한 식으로 해석되는데. 이거, 음란마귀 쓰인 거 맞겠지. 아니, 원래 남자애는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는 거니까. 아니, 양은냄비 말이다. 라면은 양은냄비에 끓여야 제맛이지. 강한 화력에 냄비가 빨리 달아오르고, 또 다 끓인 뒤 빨리 식어서 면이 퍼지지 않으니까. 난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희세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네 덕에 다른 애들까지 다 찾아 나섰잖아.”

“진짜?”

“어, 한 10명 정도. 나머지 애들은 일단 버스에 탔어. 다 흩어졌다 또 모으기 힘들잖아.”

“그래. 다행이다. 아니, 그냥, 못 찾으면 어떡하나 눈 앞이 캄캄해져서……. 후우.”

“…….”

희세의 손을 잡고 일어났지만 손을 놓진 않았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됐다. 손을 놓아야 하는데, 왠지 굉장히 따뜻하고 의지가 되는 기분이라. 빤히 희세를 쳐다본다.

“리유 찾을 수 있겠지?! 10년 뒤, 20년 뒤까지 행방불명이거나 하진 않겠지?!! 나중에 30년 뒤에 아줌마 돼서 보는 건 아니겠지! 그치! 10명이나 갔으니까 찾을 수 있겠지!! 어떡해, 못 찾으면!!”

“벼, 병신아! 그럴 리가 없잖아, 어디 멀리 간 것도 아닐테고! 그냥 휴대폰 배터리 나가서 전화 못 받는 거잖아. 뭘 심각해서 멀리까지 상상하는건데.”

“그치만! 리유 작고 귀여우니까, 누구든지 납치해갈 수 있잖아! 허튼 짓이라도 당하면, 어떡해! 으아아아아─!!”

“어휴, 어휴…… 저래가지고 무슨…… 휴우.”

희세의 손이 따뜻하고 위로가 돼 나는 리유를 걱정하는 마음이 폭발하여 희세에게 퍼붓듯이 말했다. 희세는 당혹스런 눈치로 나에게 막 뭐라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 번 터진 마음을 수습하지 못하고 패닉 상태가 돼 희세 손을 양 손으로 붙들고 애원하듯 말했다. 희세는 ‘돼, 됐으니까 이거 놓고 말해. 멍청아.’ 하고 거칠게 말한다. 내 스스로 확정짓듯 머릿속 불안한 생각들을 말하니까 더욱 불안하다. 으으, 으으으…….

“어쨌든, 이 쪽 방면은 나랑 성빈이랑 미래랑 찾기로 했으니까. 너도 찾아. 알았어?”

“어, 응. 가 봐야겠다.”

“잠깐만! 왜 이렇게 급해. 여기서부터, 이렇게 찾으니까…… 알겠어?”

“어, 어.”

희세는 얼른 가려는 나를 붙들고 설명해준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서 보여주며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찾을 영역을 본다. 거기에 더해 희세는 선생님을 포함해서 리유 찾는 애들 대화방을 만들어 놨으니, 혹시라도 흔적이나 징조가 있으면 대화방에 말하라고 한다. 아, 아까 잔뜩 진동 오던 건 전화가 아니라 대화방이었나. 나는 장난스레 ‘이렇게 하니까 무슨 멧돼지 사냥하는 것 같다.’ 하고 말했다. 희세는 눈을 흘기며 ‘언제는 무슨 딸 잃어버린 학부모처럼 찔찔거리더니 그딴 심각하고 재미도 없는 농담 하네.’ 하고 말한다. 무안해져서 ‘아아이…… 그냥, 농담이지 뭐.’ 하고 데헷☆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애의 『데헷☆』 표정이라니. 그만큼 친한 희세 앞이니까 가능한거지. 희세는 예상대로 나를 경멸하고 굉장히 역스럽게 쳐다본다. 이런 걸 예상하면서도 이런 표정을 짓다니, 난 변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 찾으러 갈게.”

“어.”

한심스런 생각도 하면서, 조금은 마음을 다잡고 기운을 차렸다. 희세 말대로 참 쉽게 달아오르는 것 같긴 하다. 혹시 모르니까 저쪽 산 쪽을 뒤져봐야겠다. 운동을 싫어하고 일부러 귀찮은 일은 절대 안 하는 게으른 리유지만 그걸 뒤엎을만큼 엉뚱한 면도 가지고 있으니까. 의지가 충만해져 걷는다.

“……정웅도.”

“어?”

“……아니야. 가.”

“뭐야, 뭐. 할 말 있어?”

“아니라고, 그냥 가. 간다.”

“어…… 음?”

리유를 찾으려고 막 발을 몇 걸음 떼는데, 뒤에서 희세가 부른다. 멈칫 해서 바로 뒤로 돌아 희세를 보니 희세는 머뭇거리다 다시금 말한다. 마치 친구가 ‘야 있잖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는 느낌이라 굉장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한 번 추궁해보니 짜증스럽게 말하며 홱 몸을 돌려 걸어간다. 뭐야, 쟤. 원래 저렇게 자기위주에 기분파지만 이런 뜬금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아니, 지금은 희세 기분 맞춰줄 때가 아니다. 리유 찾아야지. 한시라도 바삐 찾아야 해. 으어어어!


사람을 찾는다면, 어떻게 찾아야 할까. 동물이라면 분명 찾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책에서 본 상식들을 동원한다면─ 발자국이라던가, 털이라던가, 배설물이라던가. 그런 것도 있고, 또 회귀성? 온 곳을 또 온다는 게 있다잖아, 동물들은. 그리고 또 동물들만 다니는 길이 있다고 하고. 그런 식으로 수사망을 좁힌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냄새 맡는 데 귀신인 사냥개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고.

그치만 리유는 동물이 아니다. 나는 일개 고등학생이고. ‘동물의 습성’이라면, 뭐, 좀 비유가 그렇지만 리유의 행동패턴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니까 이쯤 숨지 않았을까 예상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더욱 못 찾겠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는 나도 처음 와 본 곳이다. 우리 동네면 금방 찾을 수 있는데. 하긴, 모르는 곳이니까 리유가 길을 잃은 거지. 지금쯤 추위에 떨면서 애타게 애들을 찾고 있을지도 몰라. 혹은 다리가 삐어서 못 걷는다거나. 어느 쪽이든 상상하면 참 가련해서 견딜 수 없다.

“리유야! 리유 어딨어? 리유아!”

“…….”

야트막한 뒷동산. 언덕에서 이어지는 산이다. 허나 뒷동산이라고 무시할 순 없다. 의외로 정글마냥 나무와 풀숲이 우거져 있다. 가을이라 낙엽이 지지만 소나무가 꽤 있고, 아직 낙엽인 이파리들도 떨어지지 않았고, 풀들도 쌩쌩한 편이라 숲은 왕성하다. 시야확보도 잘 안 되고, 길도 잘 보이지 않고. 금방이라도 벌레나 뱀 같은 게 나올 것 같아 살짝 무섭기도 하다. 벌레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솔직히 뱀은, 뱀은! 독사면 어떡해. 유일하게 죽을 수도 있잖아.

“여기?!”

“…….”

“리유야!”

‘푸드득!’

열심히 찾는다. 리유가 숨어 있을 만한 풀숲도 뒤져보고, 시야를 가리는 나무 뒤편도 살핀다. 하지만 어째 전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아, 정말 답답하다. 찾기는커녕 인기척도 안 느껴진다.

“……리유?!”

“으앗!”

“아, 뭐야. 깜짝이야.”

“아하하. 나도 놀랐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인기척. 좌현 34° 방향! 갑작스럽게 팍 나무 뒤를 살피니 사람이 있다! ……리유는 아니고, 외마디 비명 지르는 성빈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하니 성빈이는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서로 찾다 찾다 만나게 된 모양이다.

“아우…… 얜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몇 명이 움직이는거야, 얘 때문에.”

“응…… 걱정되는데, 리유. 어디 다치기라도 했나.”

“어. 저녁 되기 전까진 찾아야 하는데.”

‘잠깐 쉴까.’ 하고 성빈이에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성빈이. 마땅히 앉을만한 곳은 없어 바위 같은 곳에 성빈이를 앉히고 나는 바닥에 그냥 앉았다.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다. 아직은 해가 창창하지만, 이런 사람 찾는 건 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낮엔 따뜻하지만, 가을이니까 밤엔 꽤 쌀쌀하다. 내 기억에 리유 복장 되게 얇게 입고 있었는데. 가뜩이나 작고 마른 앤데 옷까지 그렇게 부실하게 입으면 얼마나 춥겠어. 아…… 경찰 불러야 하나. 그럼 정말 본격적인 실종인데. 아니, 그래도 이렇게 겁도 없이 우리끼리 찾다가 리유하고 더 멀어지는 거 아니야. 얼른 공권력의 힘에 기대야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웅도야.”

“……어. 어?”

“많이 걱정되나보네.”

“어…… 왜?”

앉아서 이런저런 과장 섞인 심각한 생각들을 하는데 문득 성빈이가 나를 부르고 말한다. 반짝 정신이 차려져 성빈이를 쳐다본다. 약간 미안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성빈이. 아, 내가 쉬자고 해놓고, 별다른 말도 없이 묵묵히 앉아서 생각만 했네.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미.”

“되게 심각한 표정이어서. 내가 본 웅도 중에 제일 심각한 표정이야. 그만큼 많이 걱정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아무래도. 그…… 혹시 모르잖아. 납치 같은 거 당했을 수도 있고. 내가 생각이 좀 부정적으로 돌아서.”

“그, 그러면 진짜 위험한데.”

미안하다고 막 말하려는데 성빈이가 잔잔한 말투로 말한다. 뭔가 자애로운 느낌의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껄끄러운 느낌으로 대답했다. 아까 희세한테처럼 막 당황해서 패닉상태가 돼서 두서없이 말하고 싶지 않기에, 감정을 조절하면서 말했다. 성빈이는 내 말에 덜컥, 두려움 섞인 표정이 돼 말한다. 리액션은 성빈이가 잘 하는 편이지. 그래서 소통이 잘 되는 편이고.

“그치?! 리유, 작고 귀여우니까 위험하다고. 거기다 힘도 엄청 약하고, 체력도 더럽게 약하니까. 다리 삐어서 어디서 울고 있을지도 몰라. 거기다 추운데 옷도 얇게 입고 가서…… 독사! 독사 만나면 어떡하지?! 물렸으면! 야, 얼른 찾아야 되는데! 으아아!”

“지, 진정해. 그 정도는 아니겠지, 설마…….”

하지만 소통이 너무 잘 된 탓일까, 또 금세 패닉상태가 돼 허둥지둥 말하게 됐다. 으읏. 희세 앞에서완 다르게 굉장히 창피해졌다. 흥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성빈이까지 일어나서 되게 어색해졌다.

“되게 아끼는구나. 리유.”

“……뭐, 그렇지. 그…… 리유, 그렇잖아. 보호본능? 같은 거? 혼자 둘 수가 없으니까. 다른 애였으면 이만큼 불안하진 않았을텐데.”

“……응.”

그 말 그대로다. 희세나 성빈이는 애초에 길을 잃기가 힘들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금세 스스로 찾아서 올 것 같다. 미래는 길을 잃는다면 조금 걱정되지만 적어도 이만큼 걱정되진 않는다. 거기에 미래는 휴대폰을 달고 사니까, 항상 휴대폰이 켜진 상태를 유지하겠지. 그 놈의 휴대폰 때문에 그래, 휴대폰만 켜져 있어도!

“어쨌든, 이제 다시 찾으러 가자.”

“응.”

“……어?”

“응?”

‘후두둑.’


작가의말

세상엔 정말, 글 쓰는 사람도 많고, 기발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아, 또 열등감 폭발해서 으아아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저도 재미있고 개성있고, 그러면서 조금은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네요. 그런 날이 올까요- 하핫.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9 03화 - 4 +15 15.08.10 819 21 20쪽
158 03화 - 3 +14 15.08.09 1,157 26 16쪽
157 03화 - 2 +9 15.08.05 1,105 21 20쪽
156 03화. 여자애랑 놀지만 데이트는 아닙니다. +17 15.08.03 1,282 20 21쪽
155 02화 - 4 +6 15.08.01 1,540 28 19쪽
154 02화 - 3 +10 15.07.29 1,220 20 20쪽
153 02화 - 2 +11 15.07.26 1,237 16 19쪽
152 02화. 친구를 사귀는 것이니까. +8 15.07.23 1,333 21 19쪽
151 01화 - 4 +8 15.07.20 1,305 25 19쪽
150 01화 - 3 +10 15.07.16 1,226 23 18쪽
149 01화 - 2 +6 15.07.13 1,417 18 18쪽
148 01화. 멀어진다 +8 15.07.12 1,565 26 21쪽
147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2 +27 14.12.24 1,659 29 28쪽
146 2014 크리스마스 스페셜 /// 정말로...? - 01 +8 14.12.24 1,522 24 25쪽
145 끝화. +32 14.08.20 2,277 35 32쪽
144 32화 - 5 +28 14.08.13 2,004 49 18쪽
143 32화 - 4 +11 14.08.12 1,712 36 20쪽
» 32화 - 3 +13 14.08.09 1,815 29 21쪽
141 32화 - 2 +4 14.08.07 1,625 38 18쪽
140 32화. 잡아라, 사랑의 망설임을! +13 14.08.06 1,698 37 21쪽
139 31화 - 6 +16 14.08.04 1,889 31 21쪽
138 31화 - 5 +12 14.08.02 1,964 38 23쪽
137 31화 - 4 +11 14.07.31 1,854 36 19쪽
136 31화 - 3 +10 14.07.28 1,609 33 18쪽
135 31화 - 2 +17 14.07.25 1,562 39 23쪽
134 31화.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앞으로 나아갈 때. +8 14.07.21 1,878 39 20쪽
133 30화 - 4 +18 14.07.10 1,576 38 19쪽
132 30화 - 3 +16 14.07.09 1,586 44 22쪽
131 30화 - 2 +17 14.07.06 1,755 49 22쪽
130 30화. 우유부단. +10 14.07.06 1,637 40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