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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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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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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01화 - 3

DUMMY

‘2연킬! 3연킬4연킬!! 5연킬!!! 적들은 너희 앞에 무릎 꿇었다!’

‘철컥.’

“하아. 아침부터 게임? 아니면 밤 세서? 너 미쳤어?”

문이 열리고 눈부신 빛과 함께 나타는 희세. 하지만 난 그런 희세를 볼 겨를이 없다. 눈은 모니터에 집중돼 있고 손은 마우스와 키보드와 혼연일체가 돼 있다. 가상세계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의 나. 한숨 쉬며 엄마처럼 잔소리하는 희세의 목소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희세 말대로 밤 세워 컴퓨터 한 건 아니다. 어쩌다보니 일찍 일어나졌고, 다시 자기도 그래서 한 판 하고 있는 거니까. 희세는 계속 툴툴대지만 그걸 들을 시간은 없다. 지금은 투사 돌고 미드 미는 게 중요하니까.

“얼른 끄고 밥 먹어! 오늘부터 등교거든? 너 씻지도 않았잖아!”

‘패배…….’

“끄아─ 아아…….”

간단하게 밥을 차리는 희세. 밥상을 다 차리고도 내가 나올 생각을 안하니 빼애액 소리를 지른다. 그와 동시에 우리 편 핵이 깨지며 화면에 큼지막하게 ‘패배’라는 글자가 굴욕적으로 뜬다. 탄식을 내뱉으며 의자에 쭉 기대는 나. 그대로 허물어지듯 의자에서 내려온다.

“방학동안 게임만 했지.”

“나도 남자애들하고 좀 놀아야지. 이러다간 지지배 다 되겠어.”

“‘지지배’란 말 쓰지 마. ‘여자애처럼’ 된다는 말도 하지 마. 여자애‘처럼’은 뭔데.”

조금이라도 성 차별적 말을 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희세. 나중에 커서 훌륭한 페미니스트가 될 것 같다. 아,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로. 대충 흘려 넘기고 희세가 차려놓은 밥을 먹는다.


“아─ 학교 가기 싫다.”

“누군들 가고 싶어서 가겠어.”

오래간만의 등굣길. 뭐, 열흘 만이니 그리 오래간만도 아닌가. 새 봄이 왔다고 바뀌는 건 하나 없다. 여전히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쌀쌀한 봄날에,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단정한 교복 차림의 희세. 한데 묶은 머리까지 더욱 그녀를 단정하고 올곧게 보이게 한다.

“어? 머리는 왜 묶었어?”

“그냥. 귀찮으니까. 이미지 변신.”

넌지시 물어보니 희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이미지 변신이라니…… 희세답지 않은 이유인데. 괜히 희세 대하기가 더 어려워진 기분이다.

“……어울려?”

“어? 머리? 응, 단정하고 예뻐.”

“……히힛.”

희세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은 채 차가운 태도로 물어본다. 그런 걸 물어보는 희세는 처음이기에 얼떨떨해져서 대답했다. 여전히 무표정. 그러다, 보일 듯 말 듯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는 희세.

뭐야 얘 왜 이래. 뭐 잘 못 먹었나. 어제는 저돌적인 맹수처럼, 육식동물 같던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왜 갑자기 순한 초식동물처럼 귀엽고 순수한 모습인건데. 더욱 희세를 의식하며 걷는다.

‘와글바글’

시끄러운 중앙 복도. 이맘때면 이렇게 시끄러울 수밖에 없지. 중앙 복도 게시판에 반 배정표가 붙어 있으니까. 그렇네, 나도 희세도 몇 반인지 아직 모른다. 교실에 가지 않고 배정표 앞을 서성인다.

“어…….”

“아.”

배정표를 단순히 자신의 반만 확인하고 쿨하게 뒤돌아 교실로 간다면 이 앞이 이렇게 번잡할 리 없지. 다들 자기 친구들과, 친한 애들과 같은 반인지 살펴보느라 전전긍긍 하고 있다. 나라고 다르진 않다. 내 이름부터 찾고, 그 반에 다른 애들이 있나 살핀다. 옆에서 희세의 작은 한탄이 들린다. 나도 막, 같은 반에 희세가 없음을 확인했다. 작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두 번째 하렘천하를 바랐나요? 쟌넨! 암울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데헷☆”

“……그러게, 너만 같은 반이네. ─쓸데없이.”

“크헉! 한 학년 올라가니까 돌직구 스킬 배웠어요? 대미지 커요!!”

뒤에서 왈칵 나를 안으며 특유의 거슬리는 중저음으로 말하는 미래.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내 스스로 봐서 잘 알고 있다. 나는 3반, 희세는 4반, 성빈이도 4반. 젠장, 내가 4반이었으면……! 큰 실망을 품고 대답하니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와 버렸다.

“방학은 잘 지내셨나요? 아아─ 그렇겠죠, 한창 러브러브할 두 청춘이니, 방학이든 뭐든 얼마나 좋겠어요! 그야말로 장밋빛! 진도는 어디까지? 헉, 189p까지나! 거의 다 나갔네요, 세상에!!”

“리유…… 유학 갔는데.”

“……에? 에에? 에에에에─!! 우소!!”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텐션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 미래. 간만에 보는 터무니 없는 망상이다. ……망상의 주인공인 리유는 이미 없는데. 미래 덕분에 다시금 없는 리유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 서글픈 마음을 억누르고 무감각하게 대답했다. 순간 입이 다물어진 미래. 눈이 커지더니, 꼭 일본 예능 같은 데서 나올 것 같은 리액션을 보인다. ‘같은’이고 나발이고, 그냥 일본어잖아. 아까도 국일문혼용체(?) 쓰더니, 얘는 갈수록 상태가 심해지는 것 같다. 미래는 호들갑스럽게 ‘언제요? 왜요? 왜 저한테는 안 알려줬어요!’ 하고 말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3반으로 향한다.


“설명충이에요!”

“……?”

교실은 아직 무정부상태이기에,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옆에 미래가 앉는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창 밖을 보며 하염없이 리유에 대한 생각을 한다. 저 하늘 멀리에, 아주 멀리멀리에 리유가 있겠지. 말도 안 통하는 이역만리 타향에서. 쬐끄마한 리유는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을까. 울고 있을지도 몰라. 아아, 어떡하지.

상녁을 깨뜨린 건 미래의 활기찬 목소리. 한참 슬퍼지려는 찰나였기에 나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미래를 본다.

“아…… 리유를 여읜 슬픔은 잘 알겠지만, 어쩌겠어요. 그런다고 죽은 사람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산 사람은 살아야죠. 힘내서.”

“여의다니 뭘 여여! 멀쩡한 리유 왜 죽여!!”

“당신 기다릴 테니까, 내 생각은 그만 하고 훨훨 재가하시구려. 당신 행복이 내 행복이니. 기다리겄소.”

“그런 슬픈 말 듣고 어떻게 재가해! 아니아니, 왜 자꾸 리유를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데! 유학이라고, 유학!!”

미래는 안쓰런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나. 아니, 현실부정이 아니라 미래의 드립이 잘못된 거잖아?! 멀쩡한 애를 왜 죽은 사람 취급을! 미래는 내 반박은 듣지도 않고 언제 돌아가신지 모를 할머니 흉내를 내며 더욱 내 속을 긁어 놓는다. 역시, 근미래야. 가차 없지. 드립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저 성격. 여전하구먼.

“어쨌든, 설명충이에요! 전 이제부터 설명충을 자처할 테니까!”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설명충을 자처한다는 말도 그렇고. 그럼 예전에는 무언가 다른 거였어?”

어쨌든 리유에 대한 드립은 장난이니까 넘어가고. 여자친구에 대한 일이니까 벌컥 화내도 뭐라 할 건 아니지만 장난기 가득 웃는 미래의 얼굴을 보면 순수한 웃음을 위한 장난이란 것 정도는 아니까. 미래의 ‘설명충’이란 말에 대해 묻는다. 미래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그…… 이전에는, 제가 좀 비호감 짓을 많이 해서…… 인기도 없고, 왜 있는지도 모르겠고, 음……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전선에서 빠져서 오롯이 설명충 노릇만 하겠다! 설명만 하겠다 그런 말이에요!”

“아니 그러니까, ‘전선’은 뭐고. ‘인기’는 또 뭔데. 누구한테 인기고 누구한테 비호감이라는 거야. 나한테?”

“됐어요, 더 알려고 하면 다쳐요! 어쨌든, 그렇게만 알아 둬요!”

도통 알 수 없는 얘기만 골라서 하는 미래다. 비호감 짓이라, 확실히 어느 관점에서 보면 미래가 비호감일 순 있지. 다른 애들은 일절 못 알아 듣는 드립도 많이 치고, 얼토당토 않은 섹드립도 꽤나 치고, 민폐스럽게 어디서 자꾸 사건을 물어오고 황당한 사건을 가져오기도 하니까. 근데 그런 게 누구한테 인기가 떨어지고 누구한테 비호감이라는거야. 우리 학교가 남녀공학이면 남자애들한테 그렇다는 건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여긴 여고고. 도통 알 수가 없다. 미래는 대충 대답하곤 내 팔을 투닥투닥 주먹으로 살짝 때리며 얼버무린다.

“그럼─ 음─ 호오. 이거 아주 흥미로워지는데요.”

“뭘 흥미롭겠어. 2학년이면 1학년 때랑 똑같은 학교생활일 텐데. 축제에, 소풍에, 이럭저럭 한 학기 지나고 2학기는 더 빨리 지나가겠지. 방학 아닌 방학들이 중간중간에 끼고.”

“아니, 그런 시시콜콜한 학교일정이 아니라! 연애전선이요!”

“……연애전선?”

잠시 조용해진 미래. 미래가 입을 다무니 살 것 같다. 앓는 소리를 내며 생각하던 미래는 이내 입을 연다. 수다스럽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미래니까. 좋았는데, 조용해서. 미래의 말에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렇잖아. 1학년 때랑 다를 것 없는 생활이 펼쳐지겠지. 아직 겪어보지 않은 2학년이지만, 1학년 때 봐 왔던 2학년 선배들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았으니까. 고3정도 되면 바뀌겠지, 모든 삶이. 공부 위주로.

미래는 내 말에 정색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연애전선’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나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흠흠. 설명충 기질이 발동해야 하나요. 제가 설명 드리지요!”

“아…… 진심으로 듣기 싫은데.”

“아아아! 말 하기도 전에 그런 반응 보이면 어떡해요! 설명충한테 실례에요! 좀 더 예의를 갖추고 들으세요!”

“예의 씩이야. 네네, 말해보세요. 들어줄게요.”

“히힛☆”

미래의 말에 진심으로 듣기 싫은 표정을 지으며 꽤나 큰 소리로 말했다. 앙탈 부리듯 소리 지르며 살짝 주먹으로 내 팔을 때리며 대답하는 미래. 귀엽다. 이것도 다 친하니까 이 정도로 서로 말할 수 있는 거지. 누구한테 민폐이고 누구한테 비인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활기차고 눈치 없을 만큼 드립을 치는 미래가 싫지는 않다. 미래랑 있으면 적어도 재미는 있으니까. 리유 때문에 시무룩해져 있을 나인데 시끌벅적한 이 녀석 덕분에 나름대로 기운 차리고 얘기하고 있잖아. ……좋은 건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흠흠! 현 무림의 정세로 말하자면. 정파의 세력이 급격히 약해진 사이에 사파와 마교가 속속들이 힘을 되찾고 있습니다.”

“무협소설 잃은 적이 없는데. 뭐라는 거야.”

“아, 무슨 남자가 무협소설도 안 읽어요! 동인녀인 저도 몇 권은 읽어봤는데! 드립을 치면 뭐해요, 알아듣질 못하는데!”

“그게 남자라면 다 알고 있어야 할 필수 교양인 거야?”

“당연하죠! 정말, 한 정웅도 하네요, 웅도 오빠도!”

“……그건 뭐야.”

뜬금없이 현 무림의 정세를 말해주는 미래.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미래의 말이 끝나자마자 냉큼 대답한다. 미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끌끌 찬다. 스스로 동인녀라는 커밍아웃(?)을 하면서. 뭐, 나는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듣는 ‘오빠’라는 미래의 말. 컨셉인 건 알지만 그래도 ‘오빠’라는 소리를 듣는 건 과히 나쁜 기분은 아니다. 마법의 단어랄까. 어쨌든 드립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무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거, 내 잘못이야?

“하는 수 없네요, 일반인 버전으로 다시 설명해드려야지.”

“와, 나 일반인이야?”

“아뇨, 병X이요.”

“어우야! 0.1초의 망설임도 없다야?!”

드립과 드립으로 이어지는 나와 미래의 대화. 뭔가 영양가 없는 대화 같긴 한데. 실실 웃으며 내 반응을 살피는 미래. 묘하게 섹시하게 혀로 윗입술을 핥으며 눈을 찡긋 하고 다시 말을 이으려 한다. 예전이었으면 갑작스런 모습에 당황했겠지만, 지금은 뭐 아무렇지도 않다. 아니 이젠 미래는 뭐랄까, 진짜 친여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장난기 많은 악동? 같은 느낌.

“정실부인인 리유가 유학을 갔잖아요! 자고로 사람 마음은 멀어지면 멀어지는 법! 이 무주공산을, 가만히 두고 보진 않겠죠! 조만간 무림에 피바람이 몰아칠 것입니다!”

“……너, 어휘선택이 상당히 어그로 전용이구나. ‘정실부인’이 뭐야, 정실부인이. 게다가 누구 맘대로 사람 마음 멀어지는 걸 네멋대로 확정하는데.”

“어쨌든~ 현 정세는 이렇지요. 섹시츤데레거유미소녀 나희세! 청순메가데레아가씨 임성빈! 아마, 두 사람이 참전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뭔가 엄청난 전문용어들이 들어 있어서 잘 못 알아 듣겠는데.”

“흐흥☆ 다 알아 들었으면서, 못 알아 들은 척 하긴. 오빠도, 되게 응큼하네요!”

“아니, 진짜 무슨 소린데.”

설명충이라는 스스로의 다짐에 걸맞게, 미래는 줄줄 많은 말들을 한다. 근데 설명이 필요한 설명이다. 전문용어가 너무 많이 들어간데다 너무 빨리 말해서 잘 못 알아 듣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잔뜩 은근한 표정으로 팔꿈치로 내 팔을 밀치며 말하는 미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말인즉 리유가 유학 가서 나는 홀몸이 됐고─왜인지 모르게 리유와 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가정이고─ 그것을 희세와 성빈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는 말. 말은 이해하겠지만, 도통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데.

희세……는 뭐, 미래 말대로 되긴 할 것 같다. 나에게 대놓고 ‘2라운드 시작이야’ 같은 말을 하고, 자꾸 난처하게 놀리면서도 또 아침에 내 칭찬에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 보여주는 걸 보니. 근데 진짜, 이상하잖아? 솔직히, 내가 나를 봐도 희세나 성빈이나 과분한 애인데. 그렇다고 리유한텐 어울린다고, 리유가 격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역시, 남자애가 나 혼자밖에 없어서 그런 걸까. ‘희소성’ 때문에 값어치가 올라가는 거지, 남자로서의 가치가. 진짜 그런 걸까.

‘드르륵.’

“……시끄러. 조용히 해.”

“…….”

옆에서 잔뜩 떠들고 있는 미래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었다. 문득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낮고 지친 저음이 들린다. 물론 저음이라고 해서 남자라는 게 아니라 여자 톤에서 저음. 위압감 있는 그 목소리에 떠들던 여자애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애들 아니잖아. 작작 떠들고. 출석 부른다.”

“네─”

사감 선생님.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다. 학교생활 시작할 때부터 기숙사 살 때까지 늘 괴롭힘 당했는데. 미운 정이라고, 오래간만에 보니 너무너무 반가운 마음이다. 감격에 겨운 눈으로 선생님을 본다. 아, 이제는 사감 선생님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구나. 선생님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반 애들을 둘러보며 냉정한 말투로 말하다 문득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주 작게, 미소를 머금더니 다시 얼음 같은 표정이 된다.

“……정웅도.”

“네!”

“……분탕 일으키면 고추 떼버린다.”

“꺄하하하하하─”

“……네.”

출석은 차근차근 지나, 내 차례. 선생님의 부름에 나는 또렷이 선생님을 보며 대답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선생님. 선생님은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썩소를 지으며 짓궂게 말한다. 깔깔 웃는 여자애들. 비웃음 사는 것은 익숙해져서,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1년 동안 3반 담임을 맡게 된 정혜라다. 올해도 또 사감도 맡았으니까, 벌써부터 스트레스 많이 쌓이고 있거든. 징징대는 소리 하지 말고, 짜증나게도 하지 마.”

“…….”

무슨 선전포고 하듯이 으름장을 놓는 선생님. 선생님, 원래 여자애들 별로 안 좋아했었지. 1학년 때 처음 기숙사 들어갔을 때부터 악명이 자자했었다. 이상하게 나한테는 자꾸 장난 치고 놀려먹고 그러셨지만. 조례가 끝나고 별로 쉴 틈도 없이 바로 수업이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1교시가 담임 선생님 시간인 영어라서 긴장된 수업이 계속된다.


“아쉽다─ 웅도랑 같은 반이었으면 했는데.”

“나도 아쉽지. 이런 미래하고만 같은 반 됐으니.”

“이런 미래라뇻! 너무해요, 그런 취급은!”

점심시간. 별다를 것도 없지만 오랜만의 점심시간은 먹으러 걸어가는 것마저 재미있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오래간만에 보는 애들과 얘기하는 게 즐거운 거겠지만. 반은 다르지만 한데 모인 나, 미래, 성빈이, 희세. 나란히 넷이 걷는다.

옆에서 성빈이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한다. 내 태클에 반대쪽 옆에서 왈칵 말하는 미래. 희세는 성빈이 옆에서 별 말 없이 묵묵히 걷고 있다. 활기차고 재미있는 분위기이지만 무언가 아쉽다. 리유가 없어서. 아, 또 생각나 버렸네. 리유, 잘 지내고 있으려나.

“리유는, 잘 갔어?”

“어. 잘 갔지. 생각하니까 또 씁쓸해지는데.”

“아, 미, 미안…….”

성빈이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푹, 솔직한 심경을 말하니 성빈이는 금세 미안한 표정이 돼 작게 말한다. 딱히 그렇게까지 사과할 건 아닌데. 하긴, 미래와는 다르게 성빈이는 진지한 성격이니까. 리유랑 회담도 가졌었고. 딱히 사과를 받으려는 건 아니었는데, 덕분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미안할 게 뭐 있어, 간 거면 그냥 간 거지.”

“……희세야, 그래두. 여자친구 갔는데 슬프잖아.”

“너, 너무 넉살 좋은 거 아냐? 너무 쉽게 포기 하는 거 아니냐고. 짜증나.”

“어……?”

냉정한 투로 말하는 희세. 성빈이가 내 눈치를 보며 두 입술을 마주 깨물다가 말한다. 여전히 쌀쌀맞은 모습의 희세.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영 기분이 안 좋은 표정이다. 성빈이를 보고 쏘아 붙이듯 날카롭게 말한다. 그리고는 다시 앞만 바라본다. 멍하니 어쩔 줄 몰라하는 희세.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었다.

“아아, 역시 격전의 순간이라 일촉즉발이네요. 어떻게 좋은 분위기가 날 수가 없죠, 큰집하고 작은집이 같이 있으면.”

“이제 네 드립은 알아 들을 수조차 없게 됐구나.”

“알아 들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큰 일 날걸요?!”

미래의 알아들을 수 없는 드립 덕에 분위기는 더욱 요상해졌다. 뭐, 나와 미래의 영양가 없는 대화로 어쨌든 얼음장 같던 분위기는 조금 풀렸지만. 성빈이와 희세는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묘하게 어색해졌다. 마침 걷는 배치도 서로 가장 멀리 떨어진 배치고. 뭐, 이건 말다툼 하고 그런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연히 그렇게 걷는 거지만.

밥을 먹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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