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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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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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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3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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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31화 - 4

DUMMY

본격적인 관광의 날이 밝았다. 숙소에는 돌아오니까, 느긋하게 맨몸으로 버스에 오른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리유와 함께 자리한다. 아까 처음 봤을 때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평소에 비하면 기운 없어 보이는 리유. 말장난을 걸어도 그때 뿐, 계속 풀죽은 시무룩한 모습이 된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래도 별 말 하지 못하고 가만히 리유를 쳐다볼 뿐이다.

“자, 자유롭게 관람하되, 여러분은 고등학생이죠? 정숙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폐 끼치면 안 되요! 음, 여기 종 앞으로 30분까지 모여요!”

“네─”

담임선생님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어째 우리에게 대하는 투가 고등학생이 아닌 유치원생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담임선생님, 고등학교 선생님보단 유치원 선생님이 훨씬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말씀하시고 다른 선생님들 쪽으로 간다. 우리도 우리대로 모였다.

첫 관광지는 서라벌 박물관. 애초에 나는 박물관을 가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다거나, 혹은 고미술에 관심이 있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갈 수도 있겠지만. 전혀 어떠한 재미도 감동도 없고, 심지어 전시돼있는 물건들을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진도 못 찍고. 그저 유리 너머에 있는 옛날 물건들을 쳐다만 볼 뿐. 그럼 교과서에서 보던 거랑 뭐가 다른데? 그런 냉정한 마음이다.

“…….”

“흐음.”

그렇다고 우리끼리 왁자하게 떠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물관이니만큼 얌전히 시끄럽지 않게 관람해야 한다. 난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심각한 고통을 느꼈다. 여기 대체 왜 있는 건데.

“그냥 나가서 쉬고 싶다.”

“으응, 그래도 왔는데, 한 번만 보자.”

“으아아…….”

나는 볼멘소리로 작게 말했다.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성빈이가 듣고 달래는 표정으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또 여기서 ‘싫어! 나갈거야!’ 하면 어린애가 생때 부리는 것 같으니까.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성빈이를 따랐다.

박물관이라고 해봤자 별 게 없다. 정말 그냥 박물관. 다만 도시가 도시다보니까 신라 유물 위주로. 기왓장이나, 검이나. 응, 신라면 분명 내가 알기로 기원후 국가인데 왜 이 박물관엔 청동기가 어쩌고 철기가 어쩌고 하는거지. 불타버린 어딘가의 9층 목탑하고 도시 복원모형 같은 것도 있다.

“으하아암─”

“…….”

지루해 하품하며 모든 것들을 대충 둘러봤다. 맘 같아선 그냥 나가서 쉬고 싶다. 차라리 아까 정문 쪽에 보이던, 자판기 옆 의자에 앉아서 MP3라도 들으면서 있는 게 100배는 낫겠어. 심심해진 나는 관람은 뒷전으로 하고 다른 애들 행동거지를 살폈다.

성빈이는 모범적으로 관람을 하고 있다. 적당히 유물들을 보면서 적당히 고개도 끄덕이고, 적당히 깨알같이 적힌 글씨도 읽는다. 중간에 내가 한숨쉬거나 툴툴대면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그런 성빈이에게 미안해서라도 함부로 불평을 못할 지경. 모범적인 오오라의 성빈이 때문에 나까지 모범 관람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미래는 죽을상. 나보다 더하다. 아니, 이건 관람이 아니라 그냥 질질 끌려다니는 수준. 졸려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헤롱헤롱 약이라도 한 것처럼 휘청휘청 걷고 있다. 나는 단순히 지루해서 그런 건데, 미래는 정말 생명이 깎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얼른 버스로 돌아가서 자라고 하고 싶다.

희세는 갑작스런 지식인 모드. 박물관에 있는 모든 지식을 흡수할 기세로, 꼼꼼하게 깨알같이 적힌 글들을 모두 읽고 있다.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로 박물관에 임하고 있다. 그 기세에 어느 누구도 감히 접근하기 힘들 정도.

문제라면 리유다. 다른 애들의 이런 태도는 익히 예상한 정도인데, 리유만은…… 예상한 리유의 행동이라면, ‘와 이거 봐! 진짜 책에 나오던 칼!’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거나, 맘대로 사진을 찍어 마찬가지로 직원의 눈총을 받던가. 어떻게 됐든 누군가에게 소리를 들으면 ‘히잉…… 혼났어…….’ 하면서 내 옆으로 와 풀죽은 표정이 되고.

하지만 지금의 리유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냥 별다른 감정 없는 뚱한 모습. 계속 그러니까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다.

“뭐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어?! 어어, 어.”

풀죽은 리유를 쳐다보며 신경 쓰고 있는데, 옆에서 성빈이가 걱정스런 투로 묻는다. 정확하게 내 생각을 간파해서 나는 당황해 더듬으며 대답했다. 성빈이는 ‘뭐 때문에?’ 하고 이어 물어본다. 뒷머리를 긁으며, 조금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리유가 기운 없어 보여서, 그게 좀.”

“응.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 잘 웃지도 않고.”

“어. 뭐 싸우거나 하는 일 있었어, 혹시 어젯밤에?”

“아니…… 그런 건 전혀 없었는데.”

말이 나온 김에 성빈이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성빈이의 반응은 그런 일은 없었다는 반응.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다. 하긴, 성빈이가 나한테 거짓말 할 이유가 없지. 나는 심각한 표정이 돼 ‘그럼 뭐 때문에 저러지.’ 하고 혼잣말했다. 정말 궁금하니까. 성빈이는 ‘그러게. 물어볼 수도 없고.’ 하고 맞장구친다. 좀 더 얘기를 자세히 하려 박물관 바깥으로 나와 자판기 옆 의자에 앉았다.

어제 뭐 특별히 잠들기 전에 얘기한 거 없냐고 하고 물으니 성빈이는 그런 건 없고, 다만 어제 내 방에 놀러갔다 돌아와서 바로 잤다고 한다. 별다른 말없이 졸리다고만 하고 자길레 그러려니 했다고. 그런 건 충분히 연상되긴 한다. 잠에 약한 리유니까.

“아아, 모르겠다. 정 안 풀리면 나중에 물어봐야지.”

“음……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말 못할 일일수도 있고.”

“여자애들은 참 비밀도 많아, 뭐만 하면 말 못할 일이래. 답답해, 답답해.”

“흐흥. 그치만, 그럴 수도 있잖아.”

“어어, 그렇지.”

성빈이의 말에 나는 팔을 뒤로 하고 비꼬듯 말했다. 성빈이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나. 답답해도 경과를 지켜보는 게 맞겠지. 뭐, 리유가 보통 여자애들처럼 베베 꼬아가며 돌려말하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정 안 되면 내 말대로 나중에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되지.

“……뭐해, 보라는 박물관은 안 보고.”

“아, 잠깐 나와서 얘기하고 있었어.”

“……분위기 참 좋다?”

“어어, 별 거 아니야. 리유 얘기 하고 있었어.”

“……흥.”

성빈이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얘기를 나누는데, 문득 옆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니 묵직한 분위기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희세. 한 마디 한 마디 꾸욱꾸욱 화를 눌러 참고 말하는 느낌이다. 나는 최대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속은 이미 겁을 한 사발 집어삼켰다. 이런 게 일촉즉발이지. 성빈이한테도 괜히 눈치 보인다. 성빈이 역시 불청객 희세를 좋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본다. 훼방 놓으려는 목적을 달성한 희세는 ‘흥’ 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색한 분위기를 뒤집으려 헤롱헤롱 걸어오는 미래와 리유 쪽으로 걸어가며 ‘이번엔 저쪽 가 보자!’ 하고 말했다.


박물관이라고 해 봐야 뻔하디 뻔한 것. 관람시간이 끝나고, 모두 종 앞에 모여 단체사진 한 번 찍고 버스에 올랐다. 얼마 달리지 않아 넓은 광장 같은 곳에서 내렸다. 다시금 선생님 앞에 모였다.

“여기는, 여러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요. 자전거 같은 거 빌려 타도 되고, 걸어다니면서 구경해도 괜찮아요. 그치만 절대! 개인행동 해서 약속시간 전까지 못 오거나 하면 안 되요! 다들 휴대폰 꼭 켜 놓고! 매너모드 풀구요! 알았죠?”

“네─”

선생님은 꼭 해야 하는 잔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으신다. 이렇게 말해도 꼭 늦는 애들이 있긴 하지. 들판처럼 펼쳐진 너른 도시에, 도시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저 쪽에, 크고 아름다운 무덤들이나 기념품으로 많이 보던 첨성대가 보인다.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그런 말인가. 확실히, 그건 좋다. 수학여행이라고 해 봐야 늘 틀에 짜인 것처럼 버스 타고 다니다 내려서 이 쪽에서 30분, 그리고 빠지지 않는 단체사진, 그리고 또 이동. 관광이 아니라 사진 찍으러 다니는 거지, 그건. 그치만 이런 식으로 자율시간을 넉넉하게 주고 마음껏 돌아다니게 하는 건 진정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자전거라도 탈까.”

“응, 타자 타자!”

광장 한구석에는 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가 있다. 자전거가 수십, 수백대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은 하나의 장관이다. 여긴 자전거 타고 많이 관광하나보네. 확실히, 도시 전체에 유적들이 흩어져 있으니까, 그걸 다 걸어서 보긴 그렇고,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며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내 말에 성빈이는 격하게 좋아하며 대답한다. 성빈이의 말에 뒤를 돌아 내 뒤에 따라오는 애들을 봤다.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희세, 버스에서 자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미래, 무표정한 리유. 다섯 명이서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기도 힘들고.

“그래 그럼, 빌리자.”

“응응!”

“아. 혹시 자전거 못 타는 애 있어?”

“……?”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니 성빈이는 반짝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문득 생각이 나 말하며 나는 특정 인물을 쳐다봤다. 남자애들이라면 당연하게 자전거를 다 탈 줄 아는 걸로 정하고 빌렸을텐데, 혹시 모르잖아, 여자애들은. 사실 여자애들도 어지간한 경우 아니면 자전거는 탈 수 있다. 다만 나는 ‘누군가’라면 틀림없이 못 탈 것 같아서 이런 말을 꺼내는 거지. 누군가는 바로, 리유. 아니나 다를까, 무표정한 표정에서 약간 시큰둥한 표정이 된 리유는 힘없이 손을 든다. 나도 모르게 멋쩍은 미소가 지어진다.

“어떡한다. 뒤에 태울수도 없고.”

“으으…… 저, 저도 못 탈 것 같아요…… 난 그냥 리유랑 걸어다닐게…….”

“아, 그래. 근데 그럼 따로 다니게 되잖아.”

“상관 없잖아……? 맘 같아선 그냥 벤치에 앉아 자고 싶다아……!”

“괜찮겠어?”

내 말에 미래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말한다. 손가락을 불판 위에 구워져 고통스러워하는 오징어처럼 바둥거리며, 허공에서 그 손을 휘두르며 미래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미래를 무시하고 리유 앞에 서서 리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리유는 여전히 아까 전과 같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응, 괜찮아.”

“좀…… 기운 좀 내라. 수학여행이잖아.”

“응, 기운 내고 있어.”

“기운 내는 게 이 정도야? 기운 한 번 안 내봐.”

“……정말.”

“아아아아니. 그냥 기운 내고 있어. 미안하다야.”

대답은 곧잘 하지만 어째 무언가 싱겁다. 나는 한손으로 리유의 볼을 꼬집으며 장난치듯 말했다. 리유는 ‘정말’ 하더니 순식간에 무척 암울한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시공간이 굳는 것 같은 느낌과, 리유 뒤편으로 한없이 깊고 어두운 무의 공간이 생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나는 두려운 목소리로 얼른 리유를 제지했다. 이만큼 풀죽어 있는 게 정말 애써서 이 정도인 거구나.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가 손을 쓸 정도가 아니다. 내가 떨어져 나가자 리유는 다시금 무표정한 얼굴이 돼 미래 쪽으로 걸어간다.

“이거 타자.”

“어…… 이거?”

성빈이는 아까부터 굉장히 들뜬 표정과 분위기다. 리유에게 한눈이 팔린 나를 툭툭 치며 말한다. 성빈이가 말하는 건 2인용 자전거. 약간 떨떠름한 반응으로 성빈이를 쳐다본다. 2인용 자전거는 한 번도 안 타봤다. 남중 다니던 나인데, 이걸 타 봤으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잖아! 설령 남녀공학이었다 해도, 제대로 사귀는 사이가 아닌 이상 이런 러브러브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런데, 그런데. 성빈이가 나한테 이런 자전거를 타자고 했다.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니구…….”

“…….”

성빈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나는 난감해서 뒷머리를 긁으며 슬쩍 눈치를 본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 자전거를 쳐다보는 희세.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본다.

나는 이런 때에, 주책바가지 남편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몸을 사리며 ‘미, 미안……’ 하며 얼른 희세를 달래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 희세는 ‘미쳤어, 아주 잘들 놀아. 응?!’ 하는 식으로 화를 내고. 성빈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애매한 포지션으로 서 있고.

헌데 전혀 아니다. 희세는 영혼이 없는 것 같은 무감정한 느낌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시선을 돌려 성빈이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 자전거 빌리는 아저씨에게 간다. 그러더니 별 의견 없이 자전거를 빌린다.

“아, 저, 희세야……?”

“잘 놀아. 난 혼자 갈 거야.”

“야, 야…… 같이…….”

“……생각이 있어? 후우.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여자애가 분위기 잡아주면 좀 받아먹을 줄도 알아. 이 멍청이 고자새끼야.”

“……!”

“간다.”

나는 희세를 붙잡고 ‘같이……’라고 말하고 뒷말은 잇지 못했다. 같이 가자고는 차마 못 하겠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그것도 그렇다. 희세는 자전거를 잡고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쉰다. 그러더니 한 마디 날카롭게 말한다. 나는 화악 얼굴이 달아올랐다. 희세는 성빈이와 서로 연적이라는 걸 대놓고 티내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하는 짓이 오죽 답답했으면 ‘받아먹을 줄도 알아’ 라고 말했을까. 그 ‘주는’ 쪽이 경쟁자인 성빈이인데도. 그 정도 눈치도 행동도 없는 내가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희세는 그렇게 말하고 자전거를 타고 쭈욱 나아간다.

“괜찮아?”

“어…… 잠깐만…… 재정비의 시간을…… 하아.”

성빈이의 걱정스런 말에 나는 너무 창피해져서 얼굴을 붉히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애들을 볼 수가 없다. 잠시동안 열을 식히고 간신히 성빈이를 쳐다봤다. ‘미안.’ 하고 말하니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아냐. 괜찮아졌어?’ 하고 말한다. 천사같은 성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 이거 빌리자.’ 하고 말했다. 성빈이는 활짝 웃으며 좋아한다. 남자답게 여기선 내가 자전거 대여비를 냈다. 그리고 둘이서 자전거를 탄다.


“으으…… 엄청 무거운데. 제대로 밟고 있어, 성빈아?”

“제대로 하고 있어! 웅도 네가 힘 약한 거 아니야?”

“아니, 나는! 으아! 그럼 의외로 성빈이 네가 무거운 거일지도……? 아하하, 농담 농담.”

“그, 그건 아니잖아! 너무해!”

둘이 자전거를 타고 가며 깨알같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사실 그렇게 힘들진 않은데. 성빈이도 마찬가지로 내 농담을 받아주며 까르르 웃는다.

“첨성대!”

“응.”

“……별 거 없는데?”

“그렇지, 뭐.”

“사진 찍자, 사진.”

“그래.”

첨성대 앞에 섰다. 발랄한 목소리로 귀엽게 첨성대를 가리키며 말하는 성빈이.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벽돌로 쌓은 굴뚝 같은 모양의 탑 같은 이상한 건물일 뿐이다.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고, 성빈이는 말한다. 그래,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결국 남는 건 사진이니까. 휴대폰을 꺼내 성빈이를 찍어주려는데. 성빈이는 모르는 젊은이에게 다가간다. ‘사진 찍어주세요!’ 하며 붙임성 좋게 말한다. 엇…… 난 당연하게, 성빈이 혼자, 그다음 나 이런 식으로 찍는 줄 알았는데. 둘이 찍는 거였구나. 2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는 성빈이의 붙임성 있는 귀여운 목소리에 흔쾌히 성빈이 휴대폰을 받고 사진을 찍어준다.

“자, 찍습니다.”

“…….”

“!”

젊은이의 말에 성빈이는 ‘빨리 빨리!’ 하며 자세를 잡는다. 나는 그런 성빈이가 귀여워 피식 웃으며 성빈이 옆에 섰다. 성빈이는 재빨리 내 팔에 팔짱을 끼며 바싹 달라붙는다. 의외의 행동에 깜짝 놀란 나. 성빈이를 내려다보니 성빈이는 반짝 웃으며 손으로 V자를 지어 얼굴에 가져다대고 그대로 굳어 있다. 이…… 이런 건 진짜 연인 같잖아! 놀란 표정으로 성빈이를 보는 사이 젊은이는 웃는 낯으로 ‘다 찍었어요.’ 하고 말한다. 성빈이는 ‘고맙습니다! 저도 찍어드릴게요!’ 하고 말한다. 젊은이는 됐다고, 이미 셀카로 찍었다고 대답한다.

“고등학생?”

“네.”

“둘이 애인사이?”

“네? 아, 아뇨, 헤헤헤. 친구요.”

“에에, 요즘은 친구끼리 팔짱끼고 그러나? 우리 때엔 전혀 안 그랬는데─ 그럼 썸타는구나?”

“에에…… 헤헤헤헷.”

“…….”

“뚱하게 있지 말고 이런 귀여운 여자친구 사귀어 봐요! 학창시절에 여자친구 사귀는 게 얼마나 부러운 건데요. 아, 저는 안 사귀어봤구요.”

“에에, 그런 거 아니에요~”

“전혀 신빙성 없어 보이는데─ 하하하.”

젊은이의 말에 성빈이는 수줍게 웃으며 즐겁게 대답한다. 나는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다만 그런 성빈이와 젊은이를 쳐다볼 뿐이다. 젊은이는 그런 나에게 말하고 웃으며 손짓하고 떠난다.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 같다.

“좋은 분이네.”

“응. 어…… 고마워.”

“뭐가 고마워?”

“팔짱 껴서.”

“아하하, 그게 고마워?”

“어…… 그냥 고마워.”

“흐흥. 고마우면 더 자주 해야겠네?”

“……!”

“아하하하하. 얼굴 빨개졌다.”

“아니야.”

할 말이 없어 고맙다고 하니 성빈이는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말한다. 계속 말하다보니 어째 성빈이한테 말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농락? 나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얼른 뒤돌아 자전거 쪽으로 간다. 성빈이는 그런 나를 귀여워 죽겠다는 기운으로 뒤따라 오며 웃는다. 으아아, 이거 너무…… 너무 핑크빛이잖아!

“다음은 어디 갈까?”

“저 쪽 가보자, 저기 왕릉!”

“그래.”

“밟아 밟아!”

“가고 있습니다, 마님.”

“아하하, 마님이라니!”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문득 굉장히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리유나 혼자 냉정한 표정으로 떠나버린 희세가 떠올라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금세 성빈이의 밝은 목소리에 다시금 즐거운 분위기로 돌아왔다. 아, 모르겠다. 내가 걱정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이 핑크빛 현실을 만끽하자.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둘이 적절한 개드립을 치며 논다. 뒷자리의 성빈이는 내 말이 잘 안들리는 지 계속 물어보고. 나도 마찬가지로 잘 안 들려서, 분명 별 것 아닌 말로 한 건데 언성을 높이며 떠들게 됐다. 자유시간을 상당히 많이 줘서 굉장히 널널하게 돌아다니며 유적들을 구경했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글 안 쓰는 사람 김태신입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핳하ㅏㅏㅎ핳ㅎ. 사실 요즘은 삼국통일 하느라 바빠서요(?). 그리고 저글링하고 맹독충도... 으아! 바퀴! 군단숙주! 뮤탈! 타락귀! 무리군주! 감염충! 뭐 뽑아야 돼! 으아! 꿀네랄 내꺼야! 으아아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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