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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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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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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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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02화 - 4

DUMMY

체육시간은 그리 자주 있는 시간은 아니다. 다만 제일 즐거운 시간 임에는 틀림없지.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체육시간은 그리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다. 다른 게 아니라 여고잖아. 여고에서 체육의 입지는 상당히, 매우 좋지 않다.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하는 여자애들도 상당히 많으니까. 대충 때우기 일쑤고 수행평가나 잠깐 하다 넘어가기도 했다. 축구도 농구도 어떤 것도 하지 않기에 나 또한 체육시간이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학년에 올라와서, 2학년 체육선생님의 현명한 처사로 한 학기 내내 즐겁게 배드민턴을 치게 되었다. 안 하는 애들은 안 하는 애들대로 안 하고, 하고 싶은 애들은 하는, 그런 민주적인(?) 구조. 1학년 때엔 아예 할 게 없어서 지루하던 체육시간이, 지금은 이렇게나 재미있다. 오래간만에 배드민턴을 마음껏 칠 수 있고, 무엇보다 배드민턴도 잘 치고 마음도 착한 유진이와 친구가 됐으니까. 이번 체육시간 덕분에.

“와, 이제 진짜 잘 치네.”

“슬슬 감각 돌아오니까. 잊지 마, 내 성장은 두 번 몰아치는 걸. 이제 널 따라잡을걸?”

“푸훗, 그게 뭐야. 자.”

“핳. 어디 해볼까.”

여전한 체육시간. 유진이와 함께 하는 배드민턴은 늘 재미있다. 체육시간마다 붙박이로 둘이 배드민턴을 치다보니 슬슬 중학교 때의 실력이 돌아온다. 1년동안 녹슬어 있던 내 몸에서 남중의 체육혼이 슬슬 달아오르니까. 무엇보다 유진이가 나보다 실력이 좋으니까, 같이 하다보니 절로 실력이 늘어난 이유가 크지.

나는 허세를 부리며 감탄하는 유진이에게 씨익 웃어보이며 말한다. 셔틀콕을 주워 나에게 넘기른 유진이. 유진이와 배드민턴 치는 것은 무척 즐겁다. 체육시간 한 시간이 언제 지나가나 싶을 정도로 열중하게 된다. 운동하는 여자, 매력 터지잖아.

“……흠. 아.”

“아아, 미안. 왜에?”

비슷한 실력으로 주거니 받거니 배드민턴을 치던 나와 유진이. 이번엔 내 낚시가 성공해 셔틀콕이 유진이 쪽 바닥에 툭 떨어졌다. 셔틀콕을 줍는 유진이 쪽을 바라보다, 그 쪽으로 쭉 시선을 이어 보느라 유진이가 던진 셔틀콕을 받지 못하고 머리에 톡 받았다. 유진이의 사과와 함께 그녀의 시선도 내 쪽으로 돌아간다.

강당 한 구석, 가만히 앉아 있는 여자애들. 여자애 남자애 따질 것 없이 저렇게 사람이 기운 없이 있으면 뭐랄까, 의욕없는 패잔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나 나까지 기력이 절로 줄어든다. 그 여자애들 가운데, 압도적인 적은 존재감으로 혼자 앉아 있는 애. 민서. 다른 애들은 그나마 운동은 안 하지만 수다라도 열심히 떨고 있는데, 민서는 혼자 멀뚱히 앉아 있다. 그렇다고 다른 걸 하는 건 또 아니고. 그냥 멍 때리고 있다.

“민서야.”

“……어?”

“배드민턴, 같이 할래?”

“에……엣.”

유진이에게 잠깐 손짓하고 양해를 구한 뒤 민서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민서는 갑작스런 내 말에 흠칫 놀란 표정. 멀뚱멀뚱 나를 올려보더니 살짝 부끄러워하는 눈치. 수다떨고 있는 다른 애들이 이 쪽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는 모양이다. 나는 워낙, 익숙한 시선이라 이제 아무렇지도 않지만.

“체육시간인데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그렇잖아. 같이 하자!”

“……나, 되, 되게 못 해. 좀만 움직여도 땀 나고…….”

“그럼 더 좋네. 땀 나면 운동하는 거고 좋잖아! 넌 좀 움직일 필요가 있어! 앉아만 있잖아!”

“……응, 나 뚱뚱해서 운동 못 하니까…… 그냥 있을게.”

“아아─ 미안,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냥 같이 운동 하자는 건데.”

“아니아니이! 부, 불편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냥 있을래.”

적극적으로 말하는 나. 어떻게 지내다보니까 이런 성격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무심한 듯 시크한 척하면서 무덤덤한 척 하는 느낌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적극적이 됐을까, 이 내가. 민서는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내 말에 시무룩해져서 대답한다. 이런, 잘못 말한 것 같다. 뚱뚱한 게 콤플렉스일 텐데. 빠른 사과에 민서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한다.

“그럼, 안 되겠네. 강행할 수밖에. 읏챠!”

“아, 아아이! 나, 진짜 못 쳐서 폐만 끼치는데……!”

“못 치는 거랑 같이 치는 거랑은 상관관계가 없잖아. 나는 잘 치라고 한 적 없어, 못 쳐도 되니까 같이 치자고 했지.”

패기 있게 민서의 팔목을 잡고 일으킨다. 민서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그리 크게 저항하지 않고 따라 나온다. 굉장히 난감해하는 표정과 말을 하고 있긴 하지만. 민서의 말에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유진이 쪽으로 민서를 데리고 왔다.

“아…… 그, 민서가.”

“말 안 해도 알겠네요. 민서 가만히 있으니까 같이 치고 싶다, 그 얘기잖아?”

“어. 미안해지네.”

“하여튼, 착해 빠졌다니까, 웅도. 오지랖이 넓은 건가?”

“그게 맞는 거 같애, 착한 것보다는.”

“하하핫. 착해. 알았어, 나는 다른 친구랑 칠게.”

유진이에게 말도 안 하고 무작정 민서를 데리고 나온 것이기에 슬슬 변명회로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처 변명하기도 전에 유진이는 싱긋 웃으며 말한다. 처음에 민서에 대해 물어보고, 민서랑 친해지는 모습을 본 유진이니까. 내 마음을 잘 아는 모양이다. 고마운 마음에 방긋 웃으며 민서에게 말했다. 민서는 쾌활하게 웃으며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마음이 훈훈해진다. 착하네.

“……나 때문에 다른 애랑 치려고 간 거야……?”

“아 그런 거 따지지 않아도 된다니까. 이미 가 버렸고, 우린 같이 치면 되는 거야. 아, 너 채 없어? 배드민턴 채.”

“……응, 없어.”

“헤에. 완연하게 안 치려는 마음 가득이었구나.”

“……미안.”

어째서인지 자꾸 사과하는 민서. 아무래도 민서는 조금 많이 자신감이 결여된 것 같다. 딱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대단한 사람 앞에서는 자신감이 결여되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채가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간신히 데리고 나왔는데, 자칫 지체했다가는 민서, 다시 풀이 죽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채 좀 빌려주라. 민서랑 치게.”

“하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저랑은 실력차이 나서 못 친다더니, 한 번도 친 적 없는 민서랑은 친다니! 히도이요! 아게나이요─ 제따이 아게나이! 뀽뀽☆”

“그거랑 그거는 다르잖아. 좀 빌려주라.”

하라는 배드민턴은 안 하고 다른 친구와 깔깔대며 얘기하고 있는 미래. 미래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있다니! 채를 빌려달라는 단도직입적인 말에 미래는 발끈하는 표정을 짓는다. 혀를 쭉 내밀며 메롱 하며 의미불명의 일본어를 지껄인다.

예전 같으면 참,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 때렸겠지만 지금은. 이런 걸 너무 많이 봐서 저항력 100%가 됐다. 미래의 개드립은, 딱 하나 올바른 대처방안이 있다. 그냥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된다. 미래는 계속 튕기면서도 마찬가지로 계속 부탁하는 나에게 결국 못 이기는 척 채를 건넨다. 어차피 안 치고 있으니까.

“얼마 전까지는 유진이랑 노시더니, 이번에는 민서에요? 역시, 하렘왕 정웅도네요. 적절한 어장관리 및 떡밥 살포는 어장 안의 물고기들 관리에 필수적인 체크사항이죠? 그럼 구버젼 물고기들도 신경 써줘야죠! 희세하고 성빈이!”

“개소리 집어 치우고. 고마워, 채 빌려줘서.”

“흥칫뿡! 베에에에─”

채를 곱게 빌려줄 미래가 아니지. 악담에 가까울 정도로 나에 대한 왜곡을, 민서까지 다 들리게 큰 소리로 말한다. 여전히 대처법을 알고 있는 나는 별 타격을 받지 않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고맙다는 말은 꼬박. 무시하는 것까진 좋아도 미래 자체를 무시해선 안 되니까. 미래는 꽤나 귀엽게 어린애처럼 ‘흥칫뿡’ 하곤 혀를 쭉 내밀고 고개를 홱 돌린다.

“자. 이제 쳐보자.”

“……뺏어온 거야? 폐, 폐인데…….”

“안 치는 애한테 빌려서 치는 건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이런 게 창조경제지.”

“……나, 진짜 못 치니까…….”

“괜찮다니까. 자, 그럼 천천히 갈게. 훠이!”

민서에게 채를 건네준다. 민서는 미래에게서 채를 가지고 오는 과정을 지켜봤는지 난감한 표정으로 말한다. 막무가내로 우기듯이 말하고 일방적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한다. 우선은 못 친다니까 아주 천천히 치기 좋게 가운데 쪽으로 셔틀콕을 날려준다.

‘통.’

“아으.”

“아하, 겁나 이쁘게 맞았네. 미안. 보고 쳐야지!”

“으으…… 미안, 전혀 칠 줄 몰라서.”

“아하. 어디보자. 그러면 숙련된 조교를 통해 수준별 수업을…… 야 근미래!”

“뭐에요!”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셔틀콕. 유진이와의 박진감 넘치는 대결과는 상반되는, 너무나 쉬운 셔틀콕. 너무 천천히 날려 꼭 슬로우모션으로 재생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질 정도다. 민서는 금세 진지한 표정이 돼 ‘어…… 어……!’ 하며 안절부절 셔틀콕을 치기 위해 준비한다. 정확하게 민서 쪽으로 날아간 셔틀콕. 셔틀콕은 민서의 정수리를 톡 치고 그대로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민서는 ‘으앗!’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채를 휘두른다. 허공에. 아…… 이건 정말, 총체적 난국인데. 웃음이 절로 나온다. 못 친다고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민서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셔틀콕을 주우며 말한다. 상당히 창피한 모양. 그도 그럴 게, 상당히 귀여웠거든. 나는 잠시 고민하다 지체하지 않고 미래를 부른다. 미래는 새침하게 소리치면서도 이 쪽을 바라본다. ‘잠깐 나와줘! 배드민턴 같이 배우자.’ 하고 말한다. 미래는 ‘무슨 배드민턴을 배워요! 바보 아니에요?!’ 하며 짜증스럽게 소리친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일어나 이 쪽으로 온다. ……새침데기 컨셉?

“이렇게. 오면 공 잘 보다가. 확! 으아아앗! 아하하!”

“아웃이잖아.”

“인! 인!”

“선 바깥에 있는 걸 인이라고 하진 않지. 아웃이지.”

“아 진짜! 오빠 여성혐오주의자에요? 아몰라요, 이건 인이에요! 빼애애애액!”

“네 컨셉은 너무 쉬워서 숙련된 드리퍼면 금세 읽을 수 있어.”

“웨에에에에에!”

미래와 치는 것을 민서에게 보여준다. 민서는 눈을 크게 하고 미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아까 민서에게 준 것과 똑같이 셔틀콕을 날린다. 요란하게 있는 힘껏 빵 셔틀콕을 치는 미래. 기세 좋게 날아와 라인 한참 바깥으로 나가는 셔틀콕. 좋은 홈런이다. 우기는 미래와 냉혹하게 대답하는 나. 박박 우기며 얼토당토 않은 드립을 치는 나와, 그런 드립을 열심히 수비하는 나. 뭐야, 평범한 일상이네.

굳이 미래와 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내가 치는 걸 100번 알려주는 것보다는 비슷하게 잘 못 치지만 기본은 칠 수 있는 미래의 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어디까지나 내 판단이지만. 민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 미래를 바라본다. ‘한 번 더 보여줄까?’ 하니 민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으응, 한 번 해볼게!’ 하고 의욕을 보인다. 좋아좋아.

‘탁!’

“흐엣?!”

“오, 쳤네! 자, 그럼 이어서!”

“아아, 아!”

‘톡.’

“으으…….”

시무룩. 서브를 보낸 셔틀콕을 있는 힘껏 치는 민서. 그렇다고 해도 힘이 딸려서 중간 까지밖에 못 오지만. 어쨌든 셔틀콕을 처음으로 쳐낸 민서. 스스로도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는다. 방긋 웃으며 격려의 말을 하는 나. 다시금 치기 좋게 가운데 쪽으로 몰아 천천히 셔틀콕을 보낸다. 민서는 안절부절 못하다 이번엔 아예 치지 못하고 허공에 헛손질을 한다. 금세 시무룩해지는 민서. ‘잘 했어, 잘 했는데.’ 하고 민서를 북돋아준다.


“후우, 후우.”

“잘 했어. 한 시간만에 엄청 늘었데? 다음 시간부터는 제대로 칠 수 있을 것 같아.”

“고, 고마워. ……근데, 다음 시간?”

“다음 체육 시간에도 같이 쳐야지.”

“그, 그치만, 너 짝꿍이 그…… 유진이 아니었어?”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치면 치는 거지.”

“그치만, 폐 끼치는ㄷ……”

“폐 아니야! 재미있어, 나는. 친구랑 치는 게 중요하지, 잘 치고 못 치고가 뭐가 중요해!”

“……고마워.”

체육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올라오는 길. 민서는 땀 범벅이 돼 빨갛게 익은 얼굴로 말한다. 여전히 자신감 부족한 모습. 그런 녀석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조금은 휘두르듯 강경하게 말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리유도 어느 정도 아이 같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많아서. 그래서 이렇게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지. 그래서 스스로도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고 느끼는 거구나, 나.

내 막무가내식 행동에 민서는 조금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한다. 수줍어 하는 건가. 멋대로 우기긴 해도 그래도 같이 놀면 재미있으니까. 아, 이 판단을 내가 하는 게 아니지. 민서 생각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고마워 하는 걸 보면 좋아하는…… 걸까? 민서 말마따나 폐 끼치는 건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아~ 영어 듣기 싫어. 한국사람인데 왜 영어를 들어.”

“응, 나도. 여, 영어 못 하니까…….”

“그러니까! 한국사람이니까 외국말 못 하는데 왜 그걸로 핍박을 해! 미국의 허가? 인정할 수 없어!”

“아핳하, 똑같애.”

“그래? 히힣.”

영어 시간. 아직 수업 시작하기 전 반 옮기는 쉬는 시간. 오늘도 민서와 같이 앉는다. 기왕 앉는 거 아는 친구랑 같이 앉는 게 좋으니까. 내 불평불만에 민서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공부 못 해서 C반에 있는 것이니 할 말은 많다. 내 우스꽝스러운 흉내에 민서는 피식 웃는다. 사람을 웃기는 것은 굉장히 뿌듯한 일이다. 이래서 개그맨들이 열심히 개그 연구하겠구나 싶다.

“저, 저기.”

“응?”

“이, 이거 줄게.”

“음? 책갈피?”

“어…… 책갈피야. 저번에 산 거랑 세트로 산 거.”

“아, 그 때 그 1000원짜리?”

“으, 응.”

주뼛거리며 우물쭈물 거리는 민서. 무엇인가 내 책상 쪽으로 내밀며 간신히 말한다. 남자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책갈피. 저번에 우연히 봐서 민서에게 아는 척 했던 그 애니메이션 캐릭터 책갈피와 비슷한 것 같다. 민서의 말을 들으니 확인사살이구나. 세트라고 하니.

“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아, 최애캐구나.”

“으, 응! 그, 그런 말까지 아네.”

“아하핫. 그럴 수 있지. 내 친구도 그랬어서.”

이건 정말 내 얘기인데 친구 얘기로 돌리는 게 아니다. 중학교 때 어지간한 오타쿠 녀석 하나가 있어서. ‘하악하악 에루쨔응! 텐시미타이! 아타시노 에루쨔응!’ 하면서 자신의 최고 애정 캐릭터를 어필하던 녀석이 있어서. 그 녀석 덕분에 몇몇 애니를 추천 받아 보고, 그 덕에 민서랑 이렇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도움을 받은 셈일까.

“마코토는, 따뜻하고 다정하거든. 늘 하루쨩 위해주고, 그러면서도 또 마음에 상처도 있구. 우, 웅도 보면 마코토랑 비슷한 것 같아서. 그래서 주는 거야. 고마워.”

“아하하. 내가 얘랑 비슷해? 몸매는 전혀 아닌데. 키도 아니고. 얘 키 190 다 되게 크지 않나.”

“그, 그건 만화니까…….”

“하핳. 어쨌든 고마워, 잘 쓸게!”

“으, 응.”

잘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가 요즘 같이 놀아주는 것에 대한 호의 표시인 것 같다. 딱히 답례를 받거나 고맙다는 말 들으려고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고 선물을 안 받아주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싱긋 웃으며 민서의 책갈피를 받아 든다. ……남자애가 가슴 근육과 복근이 떡 보인 채 하반신은 타이즈 수영복을 입고 있는, 그런 책갈피를 어따 쓰지. 여자애야 좋다고 쓸 수 있겠지만, 내가 쓰면 뭔가…… 모양새가…… 그냥 영어 교과서에 꽂아 놔야겠다. 민서가 보고 좋아하게.


“여보세요? 뭐하고 있었어?”

『어! 이제 막 씻고 누워있었지─ 룸메이트랑 얘기하고 놀고 있었어!』

“오! 벌써 룸메랑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 잘 해?”

『헤헤헷─ 사실 잘 모르는데 그냥 어떻게 얘기하고 있어! 히히히.』

집에 돌아와서, 헤벌쭉한 얼굴로 통화하는 나. 어지간한 날은 이런 식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야자까지 마치고 학교에서 14시간을 보내는, 정말 스트레스 쌓이는 학교 생활이 끝나고 나면, 마치 집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듯 리유와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전화기 안에서.

리유 목소리는 밝다. 처음 통화했을 때엔 굉장히 긴장한 목소리여서 걱정이 꽤 됐는데. 지금은 완전히 적응했는지 꽤나 목소리가 좋다. 그래도 다행이네, 호주까지 가서 적응 못 해서 혼자 울고 있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적응력이 좋은 편이라니까, 리유. 밝게 웃으며 말하는 리유의 목소리를 들으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 보고 싶다.

『웅이!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2학년 올라가서?』

“아아, 그렇지. 미래하곤 여전히 잘 지내고. 희세 성빈이도 비슷하고. 반에서 두 명 정도, 친하게 지내는 애 새로 알게 됐지.”

『진짜? 누구 누구?』

“……말해도 알려나. 채유진이라는 애랑, 김민서라는 애. 알아?”

『에…… 하나도 모르겠다. 헤헷☆ 사실 나 친구 웅이랑 히이랑 비니랑 미래 빼곤 없었으니까. 잘 모르겠어!』

“그렇지, 아무래도.”

천진난만한 리유의 대답에 방긋 웃게 된다. 너무 솔직하잖아, 서글프게. 민서가 자기 스스로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만큼 씁쓸하다. 뭐, 그래도 지금의 리유는 1년 전 딱 이 맘 때의 리유보다 훨씬 발전했으니까. 이제는 아예 외국 가서도 잘 적응하는 훌륭한 아이가 됐는걸. 나라면 외국 가서 찐따 동양인의 전형이 돼서 가만히 앉아만 있었을 것 같은데.

“민서라는 애는, 가만히 보니까 너 생각 나더라고. 그래서 얘기 걸었는데.”

『나? 왜? 걔도 키 쪼꼬매?』

“아니. 키는 너도다 한 10cm 크고 몸무게는 한 20kg 더 나갈걸.”

『히에엑?! 남자애야?』

“아니이. 그런 폭언을. 그냥 좀 통통해. 어쨌든, 혼자 있고, 얘기도 안 하고 있으니까. 그런 느낌 있잖아, 애들도 쉬쉬하는 느낌. 대놓고 따돌림은 아닌데, 은근한 그런 거. 이제는 그런 거 못 보겠어.”

『……히힛. 나도 웅이 덕분에 이렇게 잘 지내는데. 그 애하고도 친하게 지내!』

“응, 그래야지. 아─ 보고싶네.”

『나두나두!』

훈훈한 대화. 리유도 이전에 따돌림 당하던 시절이 떠올랐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대답한다. 괜히 민감한 얘기를 꺼냈나 해서 얼른 보고싶다는 쪽으로 대화 화제를 돌린다. 마찬가지로 대답하는 리유. 오늘따라 리유의 목소리가 더욱 귀엽다. 한동안 리유와 통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밤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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