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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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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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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43,319

작성
15.02.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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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
19쪽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6)

DUMMY

평화롭던 해안가 마을이 붉은 불길과 비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외적이 탐을 낼만큼 부를 축적했거나 특별한 전략적 이점이라곤 없는 곳이었기에 주민들은 ‘침략’이라는 단어에 너무도 둔감해져 있었다. 해적조차도 눈길을 주지 않는 이곳에 갑자기 들이닥친 용병들과 해결사들은, 그런 그들에게 답을 주는 대신 칼과 총알을 선사해주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런 평화에 찌든 장소에도 가족을 지키고자 용기를 내는 목소리는 있는 법이다. 무기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짧은 정육칼이었지만, 그것을 들고 돌진하는 자의 표정만큼은 절실함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짧은 총성에 이어 뇌수와 함께 바닥으로 흩뿌려지고 만다. 거대한 권총의 주인은 그 참담한 풍경보다도, 쓰지 않아도 될 총알을 썼다는 사실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봐, ‘업스트림’. 멍때리지 말고 도망가는 놈들이나 가서 잡아. 조금이라도 새어나가면 계약위반이다.”


자신을 해결사호출명으로 부르는 노인의 목소리에, ‘업스트림은’ 더욱 미간을 구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알아. 도대체 이런 지저분한 계약은 누가 어디서 따온 건지.”


들으라고 내뱉은 푸념은 아니었지만, 노인은 그녀의 말에 크게 웃으며 자신의 검을 휘둘러 무기 들러붙은 피를 털어낸다.


“뭐야, 너도 그런 감상을 할 줄 알아?”


“감상은 무슨, 그냥 기분이 더러울 뿐이에요. 거점을 점령해달라고 하더니, 이게 뭐에요? 거점은커녕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잖아. 심지어 군인도 없네. ‘레일헌터’, 계약한 장소가 정말 여기 맞아요?”


“나야 협회에서 가라는 대로 가고, 하라는 대로 할 뿐이지, 자세히는 나도 몰라.”


‘레일헌터’의 편안한 웃음에, ‘업스트림’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중에 딴소리해도 난 몰라요~.”


마을길을 따라 도약해 올라가는 업스트림. 그녀의 임무는 마을 외곽에 있는 주민들과 갑작스런 습격을 피해 달아난 자들을 추격해 ‘말살’하는 것이다. 지금 이곳의 용병들과 해결사들이 무엇을 위해 와있는 것인지, 이곳이 어떤 ‘거점’이 되는지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노인의 말처럼, 자신들이야 하라는 대로 하고 그로 인해 돈을 받으면 끝이니까. 지금 구두에 들러붙는 기분 나쁜 피도 계좌에 들어찬 숫자들을 보는 순간 말끔히 씻겨나간다는 사실을 그녀는 물론이고 피를 흩뿌리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준비 완료했습니다.”


느긋한 표정으로 눈동자에 참상을 담고 있던 레일헌터에게 세 명의 남자가 다가선다. 분명히 용병의 신분으로 이곳에 상륙한 이들이었지만, 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림새는 마을사람과 다름없이 허름하고 느슨한 시골의 수준을 지키고 있었다.


“아아, 그래. 바로 출발해. 말할 내용은 잘 숙지하고 있지?”


“예.”


“그래그래, 수고해. 절대 들킬 짓은 하지 말고. 너희가 들통나면 계약은 끝이다 끝. 알지?”


“물론입니다. 그럼.......”


셋은 곧바로 마을 외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레일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이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고, 그곳에 가서 전할 말이 무엇인지는 의뢰인이 미리 부탁해놓은 대로 진행될 것이기에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다. 자신은 그걸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는,

해결사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거니와 중요하지도 않았다.





===============






특별히 독대를 요청한 것은 아니었으나 간이샤워장을 닫아 급히 마련된 면회실엔 드렌턴과 리즈 둘만이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아니, 노골적으로 시선을 마주치는 것은 리즈의 청명한 눈동자뿐, 드렌턴은 줄곧 어색함을 씹으며 좀처럼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태도와는 별개로 먼저 입을 연 쪽은 드렌턴이었다.


“.......네 엄마는 괜찮다. 과정이야 어떻든 왕녀의 어머니. 근위대를 무단이탈하고 너를 숨겨둔 죄는 참작될 거야. 그러니까 걱정은 하지 말-”


“남편분은요?”

해맑지만, 무거운 목소리.

드렌턴은 마침내 리즈의 검붉은 눈동자를 마주 본다.

“엄마는 다른 건 신경 안 쓸 거예요. 누가 죄를 묻든, 해명을 요구하든, 혹은 창녀라고 욕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 엄마가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엄마의 남편이에요.”


“.......”


무심한 듯 아무런 표정도 내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녀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수도에 있었던 넉 달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자신과 엄마에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엄마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신문이나 기사 따위가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의 상처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둘이 몇 번이고 대화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건 사과했지만, 각자의 입장은 결코 이해하지 못했겠죠. 남편분을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엄마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더더욱 없고요. 단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살며시 몸을 앞으로 숙여 드렌턴 눈동자 깊은 곳을 바라보는 리즈.

“.......아저씨는 모든 것을 묻어두고서, 진심으로 엄마를 용서하고, 진심으로 엄마에게 용서받을 수 있나요?”


모든 것을 묻어라.

참으로 쉽고 깔끔한 방법이다. 그러나 드렌턴은 고개를 젓는다.


“내가 저질렀던 일, 그녀가 받아들였던 일. 그 모든 걸 단순히 묻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하지만 나도, 리반나도 그럴 수가 없기에 서로를 마주하는 것에 고통을 받고 있는 거란다. 로빈을 위해 우리가 가졌던 시간의 유일한 증거를 희생시킨 나, 그리고 그런 나와 아들을 위해, 왕과 친구를 위해 자신의 가장 큰 상처를 부정하기로 정한 그녀. 잠시 묻어버리더라도, 우리가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땅에서 튀어나와 괴롭힐 거야.”


“그럼 왜 묻어둘 필요 없는 것까지 모두 잊으려 하시는데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리즈의 얼굴. 물씬 풍기는 풋풋한 생도의 땀내음보다도 그 단호한 표정이 드렌턴의 표정을 흔들었다.

“남편분은 아드님을 희생해서 오빠를, 이 나라의 왕을 살려내셨어요. 엄마는 도덕적 신념과 남편분의 믿음을 모두 희생하여 선대왕과 친구의 오랜 염원을 풀어주었어요. 두 분의 희생으로 지금의 오빠와 제가 있는 거라고요. 그런 오빠와 제가 곁에서 두 분이 스스로 고통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우리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요? 둘만의 문제라고요? 타의적으로 둘의 희생을 몸에 품고 살아온 저희가 왜 상관이 없는데요?”


“리즈.”


듣다 못한 로빈이 결국 천막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그의 팔에 제지를 당하면서도 리즈는 드렌턴을 향한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내 엄마라구요! 오빠의 아버지나 다름없으시잖아요! 왜 상처를 공유하지 않냐고요! 왜 둘이서만 끙끙거리고 있어요?! 우리 때문이잖아! 우리를 욕하라고!”


“리즈, 그만해.”

로빈은 리즈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았지만, 사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닌 진정이었다. 오빠의 품에서 씩씩거리는 리즈의 눈동자엔 눈물 대신, 답답한 어른들을 향한 답답함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 나도 리즈와 같은 생각이야. 아저씨와 리반나가 나와 리즈를 위해 했던 그 모든 일을, 그리고 그 결과를 나는 집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좀 더 당당하게 나와 리즈를 대해줘. 그리고 리반나의 모든 것을 품고, 리반나에게 모든 것을 품어달라고 해줘. 우리는 아저씨와 리반나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


행복하길 바란다.

언제나 드렌턴이 품어왔던 말이고, 지금도 로빈을 향해 단언할 수 있는 유일한 자신의 마음이다. 단순히 그를 아들의 대용품이자 자기합리의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바라보며, 그를 지키며, 그를 위해 삼켰던 아티카에서의 18년은 결코 뒤틀린 시간이 아니었다. 이미 리즈와 로빈은, 자신과 리반나에게 더 이상 단순한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서로의 상처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상대방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둘만이 짊어져야 할 무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로빈은 자신에게, 리즈는 리반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로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애초부터 그들을 떼어놓고 생각하자는 자신과 리반나의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를,

드렌턴은 깨달았다.


“.......고맙다.”


그리고 이것이, 시원해진 표정으로 그가 내뱉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자 감정이었다.




=============




“여기 있습니다.”


“아, 고마워.”


아르보리스의 영주 그라우치 장군의 외동아들이자 학년차석에 빛나는 보르케이지만, 그가 요새 벤의 곁에서 하는 일이라곤 도서관에서 그가 요청하는 책을 찾아다 주거나 같이 서적을 뒤적거리는 일뿐이었다. ‘전투마법사’로서 검성의 곁에서 실적과 경험을 쌓으라는 아버지의 명령. 그의 아버지가 생각하던 ‘실적’과는 다른 방향의 일들이었으나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작은 동아리방에서의 시간이 그다지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분명히 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흥미로웠다.


“.......종교재판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러고 있는 거야?”


벤과 마찬가지로 보르케에게 두꺼운 책을 받으며 입을 비죽 내미는 고도. 그녀도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이 방에서 보르케의 시선과 관심을 받고 있는 그림자는 구석에서 고도의 말을 정정해주는 경박한 목소리였다.


“종교재판이 끝난 게 아니죠. 보류됐을 뿐입니다. 뭐어, 그래봤자 우리 검성께서 흔들리실 이유는 없으시겠지만.”


처음 그를 소개받았을 때, 줄곧 얌전했던 보르케를 경악케 만든 것은 너덜너덜한 살점이나 눈동자를 대신하고 있는 푸른빛이 아닌, 그의 정체가 전 그랜드마스터이자 전 총장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파문당한 그를 교내에 들여도 되는 것이냐는 그의 물음에 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당연히 비밀이지.”


라며 보르케를 공범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브린타이나에 군사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줄곧 벤이 연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 고도의 걱정이 피어오를 법한 주제였다.


“마스터, 방부제랑 향수 좀 더 뿌려요. 슬슬 다시 냄새나기 시작하네.”


고도의 무례함에도 오캄푸스는 낮게 웃으며 분무기를 집어 든다. 집중을 요하는 상황을 바로잡은 것은 어느새 책을 펼친 벤의 목소리였다.


“딱히 혈마법이나 밤의 마법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악마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것뿐인데 별로 상관없지 않나?”


“시기가 안 좋다는 거잖아, 시기가. 하긴, 당당하게 교회에 가서 악마사전 좀 빌려달라고 하는 네가 그런 걸 신경 쓰겠냐만.”


대사제의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벤이 알고자 했던 것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브린타이나가 받드는 ‘이성과 사고의 악마 라티스’와, ‘피의 군주 아펜타우스’ 간의 관계를 알아보고자 함이었다.

이번 정변을 주도한 ‘오열의 검성’은 군부를 끌어들인 그 명분의 중심에 ‘악마국’으로서의 도리를 두었다. 아직 그가 명확한 대외입장을 밝히진 않았기에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오열의 검성은 브린타이나가 200년 전과는 달리 ‘완벽한’ 악마국이 되었다는 점에서 제국의 침략전쟁으로부터 벗어날 구실을 찾아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 진의와 목적을 알지 못했던 200년 전의 대전쟁과는 다르다. 이제 막 그 본질을 드러내기 시작한 제국의 침략전쟁을 이루는 기저엔 아펜타우스의 의지가 스며들어있다. 같은 악마국으로서, 그리고 똑같이 아펜타우스를 모셔야 하는 입장으로부터 오열의 검성은 왕국이 피의 마수를 피해낼 수 있는 활로를 찾은 셈이라고, 벤은 예상한 것이다.

벤이 이해하지 못한 점은, 바로 이 ‘모셔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악마사전에 나와 있듯이, 세간에는 아펜타우스가 세상의 본질을 이루는 고위악마 ‘바하이트’로, 라티스를 그 본질을 받드는 하위악마 ‘일루지온’으로 분류되고 있다. 즉, 일루지온인 라티스는 바하이트인 아펜타우스에게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열의 검성이 내세운 논지라고 생각한 벤이었지만, 데로가 내뱉은 답은 그에게 혼란을 주었다.


“나 또한 오랫동안 벗어나 있었기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악마들의 상호관계란 니 새끼들의 생각처럼 단순한 게 아니다. 이 세상에서 그들이 무슨 기둥을 담당하고 있는지, 또 그것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인간새끼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지는 상관이 없다. 오로지 힘과 고귀한 태생. 그것만이 악마들에게 ‘복종’이란 개념을 내릴 수 있다. 아펜타우스는 그중에 ‘힘’만을 가진 자다. 그런 그가 다른 악마에게 복종을 요한다? 농담의 악마 라레스조차도 웃지 않을 일이지.”


데로의 말에 따르면, 인간세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아펜타우스가 라티스를 구속할 수 있는 강제력은 없다. 그렇다면 오열의 검성은 거짓을 말한 것일까? 실제 저의가 어떠하든, 같은 악마국, 그것도 모셔야 하는 악마의 뜻이라는 이유로 그에 대항하려는 왕을 몰아내기엔 그 명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명분마저도 거짓이었다면? 정말 데로의 말처럼 아펜타우스와 라티스를 묶을 수 있는 접점이 없을까?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벤은 악마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모으고 탐독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하지만 지금 둘의 관계를 파고드는 것만으로는 정확히 아펜타우스가 제국황제의 이름을 빌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또 그리고 그것이 라티스나 브린타이나 왕국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기엔 우리 인간들이 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도 빈약하군요.”


벤은 오캄푸스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분명 악마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논문과 서적을 긁어모으고는 있지만, 사도국인 카나반에서는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아내기에 무리가 있다. 동시에 고도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다. 근래 들어 약해진 교회의 권위를 바로잡기 위해 눈을 불태우고 있는 자들에게 자진하여 트집을 잡히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젠 군부의 일부를 대표하는 검성의 자리에 앉아있는 벤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 방에 앉아있는 얼굴들, 나아가 본궁에 앉아있는 얼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크리스와 그륜의 제안을 넘어서, 브린타이나와 아실레마라는 두 나라의 본질적인 관계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은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과 로빈이 생각한 ‘동맹’의 본질을 정립하기 위해서 확실한 답이 필요한 때가 왔음을, 벤은 직감하고 있었다.


“.......”


벤은 천천히, 훑어보던 책을 덮었다. 가장 먼저 그의 이런 행동을 눈치챈 것은 고도의 바닷빛 눈동자였다.


“뭐야, 왜 그래?”


옅은 불안이 담긴 그녀의 질문에 벤은 대답하지 않는다. 무심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방금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시 한 번 가다듬었을 뿐이었다.


‘답을 얻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지.’


하지만 벤은 그 생각을,

이 방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




“죄송합니다, 늦었네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회의실로 들어서는 로빈을 향해 모든 의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점심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안심과 동시에, 로빈은 자신을 향한 한숨이나 혀를 차는 소리를 기대했지만 회의실을 감싸고 있는 것은 엄숙한 침묵과 무표정이었다.


“때맞춰 오셨습니다.”

그 미묘한 분위기를 뚫고 로빈을 맞이하는 마누앙의 낮은 목소리. 곧이어 로빈은 분위기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 전 아르바티앙으로부터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브린타이나의 해안가를 정찰 중이던 아군 첩보선이, 수도와 인접한 ‘디나스어맨드’라는 해안마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용병과 해결사들에게 습격을 받았다고 보고를 해왔답니다.”


“.......용병이요?”


“해적이 아닌 용병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해결사들과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누구에게 고용되었고, 브린타이나를 공격한 그 목적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 움직임은요?”


“마을을 점령한 뒤 특별한 움직임 없이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그에 따른 브린타이나의 움직임도 아직 별다를 게 없습니다.”


주어진 정보와, 지금의 상황.

모든 것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보기 위해 애쓰지만 로빈의 머리에선 마땅한 해답이 나오질 않는다.

용병과 해결사를 고용했다-는 사실은 얼핏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지만,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용병이나 해결사를 한 ‘국가’를 향한 도발에 사용하기 위해선 엄청난 금액이 필요하다. 그만큼 협회에게도 커다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지금의 브린타이나를 도발해야 하는 인물이나 그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에, 로빈은 포함한 회의실에 모두가 침묵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확신은 가지 않지만, 의심이 가는 인물은 한 명 있네요.”


“욘의 대통령 말입니까?”


마누앙의 되물음에 로빈은 고개를 끄덕인다.


“브린타이나의 정변, 론크리스의 의탁, 그리고 그녀가 카나반에 찾아온 시기까지. 모든 게 그의 예상과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습니까?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돈을 써서 상황을 움직인다- 는 방식을 생각하니 그 사람 외엔 떠오르지 않아요.”


“저도 의심은 갑니다만, 이런 도발을 벌인다고 해서 그가 제의한 ‘거래’에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허투루 돈을 쓰지 않을 인물이란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판단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군요.”


이곳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없다. 정확한 답을 위해서 로빈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하나. 그리고 마누앙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로빈의 등장에 ‘때맞춰 왔다’라고 평한 것이리라.


“제가 검성과 함께 직접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근위대와 도시경비대에게 그들의 소재를 찾으라고 명령을 내려-”


“폐하!”


회의실의 문이 급격하게 입을 벌리며 다급한 근위병의 목소리를 내뿜는다. 로빈과 마누앙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기사의 목소리가 담고 있는 내용은, 회의실의 모두에게 경악을 전염시키고 만다.




“브린타이나 정부가 디나스어맨드의 침략 건으로 카나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ㅠ

담주까지 시험기간이라, 속도가 들쭉날쭉 할 것 같습니다 :(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24 주정
    작성일
    15.02.10 00:49
    No. 1

    그륜... 이노무 자식이 결국 일을 크게 만드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5.02.10 01:28
    No. 2

    ㅋㅋㅋ 주정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연봉동결
    작성일
    15.02.10 01:15
    No. 3

    하하 욘 이녀석 끼부리다가 벤이 혼내준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5.02.10 01:28
    No. 4

    동결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ㅠ
    po한wer 중립국의 패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evolutio..
    작성일
    15.02.23 02:32
    No. 5

    세계관이 정말 방대하군요.. 장난 아니네요
    나중에 스포가 되는 부분이 지나면 공지같은 형식으로라도 사도와 악마 세계관의 역사같은 것도 보고싶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5.02.23 04:21
    No. 6

    헠 에볼루션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미흡한 세계관이라 부끄럽습니다만, 한번 설화 형식으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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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7) +6 15.02.13 1,266 28 19쪽
»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6) +6 15.02.09 1,201 31 19쪽
130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5) +8 15.02.06 1,363 35 19쪽
129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4) +6 15.02.03 1,300 31 19쪽
128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3) +12 15.01.31 1,300 33 20쪽
127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2) +15 15.01.30 1,503 40 17쪽
126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 +9 15.01.29 1,341 28 19쪽
125 (막간) 지나가야할 시간 +14 15.01.28 1,177 32 12쪽
124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2) +8 15.01.27 1,359 35 21쪽
12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1) +10 15.01.26 1,283 31 18쪽
122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0) +8 15.01.24 1,390 30 20쪽
121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9) +8 15.01.23 1,309 34 20쪽
120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8) +12 15.01.22 1,491 41 15쪽
119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7) +6 15.01.21 1,336 28 18쪽
118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6) +7 15.01.20 1,318 33 20쪽
117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5) +4 15.01.19 1,323 30 20쪽
116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4) +10 15.01.17 1,444 27 18쪽
115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3) +13 15.01.16 1,438 40 18쪽
114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2) +13 15.01.15 1,541 43 17쪽
11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 +6 15.01.14 1,377 29 19쪽
112 (막간) 따스한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15.01.13 1,414 28 13쪽
111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0) +11 15.01.12 1,382 39 24쪽
110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6 15.01.10 1,255 31 20쪽
109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8) +6 15.01.07 1,294 36 19쪽
108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7) +8 15.01.05 1,452 33 24쪽
107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6) +9 15.01.02 1,567 38 18쪽
106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5) +10 14.12.31 1,329 39 21쪽
105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4) +9 14.12.29 1,184 39 18쪽
104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3) +2 14.12.26 1,224 39 17쪽
103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2) +7 14.12.24 1,293 45 17쪽
102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 +4 14.12.22 1,439 32 16쪽
101 (막간) 피지 못한 목소리는 달길 따라 조각배 태워 보내고 +3 14.12.20 1,515 41 15쪽
100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1) +10 14.12.18 1,456 39 25쪽
99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0) +6 14.12.16 1,534 45 21쪽
98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9) +6 14.12.14 1,317 43 18쪽
97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8) +6 14.12.12 1,467 40 20쪽
96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7) +4 14.12.09 1,426 44 17쪽
95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6) +3 14.12.07 1,503 50 16쪽
94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5) 14.12.05 1,628 4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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