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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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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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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12.0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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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7)

DUMMY

쉴 새 없이 떠들썩했던 전방과 국경과는 달리, 공화국 남서부에 위치한 아르바티앙은 지난 200년간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전란의 화염에서 벗어나 있었다. 피와 마법이 난무하는 전장은 아르바티앙의 주민들에겐 그저 기삿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가끔 길에 보이는 군인들은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공무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색한 평화에 찌들어 있던 항구는 날카로운 경고방송이 들려오기 전부터 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수온이 가장 높아지는 여름, 남쪽바다의 수산물을 비롯하여 교역이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평선을 물들이고 있는 검은 그림자들은 단순히 무역선이라고 보기엔 그 규모나 불길함이 너무 짙었던 것이다.


“경비정과 해군은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것이냐?! 적이 이렇게 접근할 때까지 통신하나 없다니!”


아르바티앙 해안경비대장 핀들 오스트부룩의 구릿빛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올라있다. 다급히 병사들과 함께 뛰쳐나오긴 했지만, 외성은 이미 혼란 그 자체였다.

내성으로 피신하기 위한 인파와 차량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혼란은 통제를 위한 군인들의 고함과 방송마저 삼켜버린다. 빠르게 눈치를 채고 항만에서 벗어난 무역선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지 못한 배의 선원들은 조금이라도 그들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화물들을 껴안고 혼잡한 거리 속에 파묻혀야했다. 그나마 외성 밖의 항구와 상업구역 주민들은 해안경비대의 빠른 통제로 대부분 피신할 수 있었지만, 외성의 모든 그림자를 비우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느새 바다 위의 검은 그림자는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제국의 함대라니......”

그 실체를 직접 확인했고, 본궁에 보고까지 마친 뒤였지만 핀들은 여전히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아실레마제국의 ‘해군’이란 존재는 교본에서도 보지 못했다. 아실레마 동부의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면 항구도시, 아니, 바다에 인접한 도시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제국이다. 저런 규모의 함선을 제조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블라고슬로바의 영해까지 우회하여 이렇게 반도의 반대편에서 갑자기 함대가 나타났는지도 의문이었지만, 핀들의 머릿속을 더욱 괴롭히는 존재는 전함사이로 보이는 수송선, 그리고 그 수송선에 타고 있을 수천의 제국해병이었다.

새로운 중앙군의 창설과 재편을 위해 각 도시와 가문의 병사를 차출한 것이 불과 3주 전이다. 도시경비대와 드라흐마 가문의 사병 일부가 아르바티앙에 남아있는 전력. 영주이자 시장인 자히르 드라흐마가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까맣게 몰려오는 저 죽음의 그림자 사이에서 그 사실이 얼마나 위안이 될지는 의문이었다.


“대, 대위님!”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외성벽의 망루로 올라서자,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의 병사가 핀들을 돌아본다. 무슨 일이냐고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저 멀리 바다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그의 눈에도 똑똑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부채꼴로 해안을 감싸는 제국의 전함들. 그 측면에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은, 함포용으로 개조된 농축화마력탄사출장치. 병기로서의 ‘마력탄’이라는 개념 자체가 마법사들의 생명을 깎아 만들어내는 구조인 탓에 줄곧 다른 국가들은 물론 본국의 마법사협회에게까지 비난을 받아온 병기였지만, 여전히 제국 본토의 방위목적으로 계속 운용되고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파괴력 있는 무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곳 외성벽까지 사거리가 닿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저 포신이 겨누고 있는 목표는-


“......맙소사......”



고막을 찢을 듯한 폭음과 동시에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은, 핀들을 제외한 병사들에겐 짧은 탄식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항만과 부둣가를 포함한 항구 곳곳에 폭발과 함께 연기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포격의 출처는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사방으로 튀는 파편과 거대한 폭발 뒤에 남아있는 공간의 뒤틀림, 그리고 화염과 함께 번지는 불길한 마력의 흐름.


“저놈들 아무도 없는 곳에 뭐하는 겁니까?!”


“항구가 다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안타까운 병사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핀들도, 그들도, 목표가 분명한 파괴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륙지점을 확보하려는 거다. 평탄화작업이지.”


핀들의 목소리는 신음처럼 떨리고 있었다. 찬란했던 항구도시의 입구가 초토화되는 광경보다 그의 가슴을 불길하게 적시는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르바티앙이 교역로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제국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모든 기반시설을 박살내면서 상륙지점을 확보하려고 한다는 건, 이미 그들의 목적이 단순한 ‘점령’에 있지 않음을 알게 해주는 사실.

200년 전에 끝내지 못했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검은 그림자는 ‘재기불능’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




“조용하네.”


“응.”


로빈은 짧게 수염이 올라온 턱을 쓰다듬으며 씁쓸함을 씹는다. 베르달이 함락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도 이틀이 지났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대적인 통신방해나 대군의 움직임도 없이, 전운은 그대로 베르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아르보리스의 그라우치 장군의 보고를 통해 이번 침략이 카나반 하나만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르달과 인접해있던 브린타이나의 오스타이나성과 그 인근도 이미 제국에게 공격당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뒤로 어떠한 제국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으며, 척후의 보고에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어째서 그들은 베르달의 숲속에서 가만히 웅크린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계엄령을 해제하고 도시기능을 정상화하자는 의견이 나오던데.”


지나가 바람에 휘날리는 그녀의 금빛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들이 서있는 곳은 아르다르 북서쪽 성문 위의 대망루. 밖으로는 광활한 베르메스 평원과 그를 가로지르는 미트라스 강이 여름을 빛내고 있었다.


“아직 일러. 총리님이 아르바티앙에 도착하는 대로 니에브나 블라고슬로바로 가주셔야 뭔가 이야기가 진척될 수 있을 거야. 그 때까지도 베르달의 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말이지.”


“알았어, 의회엔 내가 말해 놓을게.”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하는 지나를 바라보는 로빈. 그는 짧게 헛기침을 내뱉고 살며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안 추워?”


그런 그를 향해, 지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새빨간 혀끝을 내밀었다.


“한여름에 춥긴 뭐가 추워? 안고 싶으면 안고 싶다고 말을 하시죠, 폐하?”

결국 로빈은 체념의 미소와 함께 지나의 어깨를 감싸 자신의 품안에 넣었다.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그녀의 코에 짧게 입을 맞추는 로빈. 그를 올려다보는 지나의 태양빛 눈동자는 여름보다 찬란했다.

“걱정 돼?”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며, 지나가 묻는다. 로빈이 겉으로는 태연한 척, 여유 있는 척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왕’으로서의 역할이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간파당한 로빈은 얇게 웃으며 맞잡은 그녀의 따듯한 손을 엄지로 쓰다듬는다.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선전포고도 없이 순식간에 베르달을 삼켜버리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제국군. 그리고 기껏 연합을 구축하고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국가들.

틈을 노렸다고 밖엔 볼 수 없는 거대한 한걸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 뿐.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이 무능력한 기분은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난 잘하고 있는 걸까.”

무심코 내뱉은, 푸념에 가까운 말이었다.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지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차마 그것을 마주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기대를 받는다는 이유로 어색한 자리에 올랐어. 그리고 내가 피의 적셔진 왕좌에 오르고 나선 이 나라가 조용할 날이 없었잖아. 반란에 전쟁에 또 반란에 또 전쟁에.”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로빈은 천천히 지나를 감쌌던 손을 내려놓는다.

“고통 받는 건 병사와 국민들. 그리고 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 만약 내가 왕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그리고 모두가 고통 받을 일도 없었 아야야야야야야!”


로빈의 탄식은 비명으로 끝난다. 지나가 그의 귀를 붙잡고는 자신의 턱 아래까지 끌어내린 탓이었다. 귀가 찢어지지 않았는지 걱정될 정도로 화끈거리는 고통보다,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그녀의 눈동자가 더욱 뜨거웠다.


“네가 없었으면 이미 공화국은 야노르 시즈키치가 차지하고 있었을 거야. 제국과 붙어보기도 전에 이미 공중분해 됐을 거라고. 너는 너를 만드는 게 네가 앉아 있는 그 자리라고만 생각해? 너를 믿는 사람들을 실망시킬까봐 두렵다고? 왜 사람들이 너를 믿는지는 생각해봤어? 애초에 기대할만한 구석이 없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버려지는 게 네가 앉은 그 자리야.”

지나는 그의 귀를 놔주고, 대신 그의 머리를 붙잡아 이마를 맞댄다.

“할아부지조차도 하지 못했던, 나에게 ‘아뮤르’라는 이름을 버리라고 설득한 너야. 그 사실만으로도 넌 충분히 위대한 업적을 세운 거라고? 그리고-.....”


지나의 입이 멈춘다. 흐뭇함과 고통이 동반된 표정으로 그녀의 숨결을 듣고 있던 로빈이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살짝 달아오른 입술을 깨문 채로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뭐?”


그의 재촉에도 지나는 입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주저함을 대신 한 것은 망루로 올라온 드렌턴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로빈! 크라트가 돌아왔다.”


로빈과 지나는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곧바로 빠른 걸음으로 드렌턴의 뒤를 따라 망루를 내려간다.






“대장님!”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로빈의 얼굴은 짧은 거리를 내달렸음에도 여름의 열기에 상기되어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크라트와, 접대용 소파에 앉아있는 엘라론을 확인한 로빈의 표정이 그제야 다소 밝아진다. 여전히 무표정하고 싸늘한 크라트의 손을 맞잡으며, 로빈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면목 없다.”


늑대의 무거운 얼굴과 무거운 목소리. 하지만 로빈은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탓이겠죠. 아무튼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엘라와 로즈도 괜찮나요?”


“우린 괜찮아~”


그늘이 없는 엘라의 미소. 그녀의 품엔 사지를 빠져나온 아기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지나와 드렌턴이 뒤이어 집무실로 들어섰고, 자연스럽게 지나는 엘라와 로즈에게, 드렌턴은 입구 근처에 몸을 기대었다.

로빈은 크라트를 접대용 탁자에 안내하며 맞은편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기만작전에 이은 대대적인 기습이었다.”

로빈이 와인잔을 채우기도 전에 본론을 꺼내는 크라트였다.

“오랫동안 우리 척후의 통신마력파장을 추적해왔던 모양이더군. 초소와 중계소를 급습해서 거짓통신을 보내오고, 곧바로 침투하여 순식간에 바크달룬을 포위해버렸다. 성내에 남아있는 병력도 거의 없었고 통신마저 마비됐으니, 우리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아마 부하들은 대부분 숲에서 유랑군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하룻밤 만에 베르달 전역을 통제했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적은 누구입니까?”


로빈의 질문에, 엘라가 뒤에서 짧게 웃는다. 처음에 로빈은 그녀의 웃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어진 크라트의 말이 해답이 돼주었다.


“적은 ‘붉은 장미의 검성’ 델핀 드리브달이 직접 이끄는 2군단이다.”


놀란 얼굴은 로빈뿐만이 아니었다. 로즈에게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던 지나도,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드렌턴도, 그 순간만큼은 경악과 함께 크라트의 입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검성이?”

제국최강의 전력이 베르달에 들어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중요거점의 함락’이 아니라는 뜻. 또한 다른 국가도 아닌 카나반에, 그것도 검성이 직접 군단을 이끌고 등장했다는 것은, 지금 카나반이 지니고 있는 취약점을 상대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카나반은 지금 ‘제대로 된 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이를 숨기기 위해 애매한 인물을 내세우긴 했지만, 그 정체를 짐작하는 자가 있다면 이미 그 은폐는 소용이 없게 된다. 브린타이나를 포함한 다른 국가에서 이를 누설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가지.

“쥬넨 경의 짓이군요.”

로빈은 신음과 함께 머리를 감쌌다. 근위대장이란 직책은 한 국가의 기사인명사전이나 다름없다. 한센의 뒤를 이을만한 기사가 없다는 사실이 노출됐다는 건, 너무도 뼈아픈 손실이었다.

검성을 막을 수 없다면, 그들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여기까지 사고가 미치자, 로빈의 머릿속에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왜 베르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걸까요? 이쪽의 약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만 크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베르달 인근은 통신방해가 너무 심해서, 유랑군하고도 아무런 정보를 주고받을 수가 없었다.”


이어지는 침묵.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베르달의 병력이 보존되었다고는 해도, 크라트의 말대로 유랑군처럼 숲 곳곳에 흩어져있는 데다가 통신까지 무용지물이니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해야하는 상황. 게다가 상대가 검성이라면 그라우치 장군과의 협력도 무의미하게 돼버린다. 이제 기대해야 할 요소는 ‘연합’의 힘. 하지만 어째서 적은 ‘연합’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일까.


“양동이겠지.”

모두의 시선이, 한가로운 목소리를 쫓아 엘라를 향한다.

“중앙정부와 왕이라는 목을 동시에 치지 않는 이상 공화국은 쉽게 그 존재가 지워지지 않아. 쫓긴다면 숲으로 들어가면 그만이고, 제국의 검성이 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다른 국가들이 국경의 견제를 뚫고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녀가 검은 시선을 로즈에게서 거두고, 로빈을 돌아본다.

“하지만 이쪽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장 확실한 거점을 동시에 공략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게 무슨 말인지-”


다소 멍청해진 로빈의 얼굴로 엘라는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뻗는다.


“만약, 아르다르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넌 어디로 후퇴해서 시간을 벌 셈이었어?”


“그야 당연히, 아르바티앙-,”


대답을 마치지 않고, 로빈이 벌떡 일어난다. 그 바람에 의자가 뒤로 나뒹굴었지만 그의 굳은 얼굴은 이미 그 소음보다 날카로운 충격에 휩싸여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이, 엘라가 마무리 일격을 날려버린다.


“가장 중요한 거점들이 동시에 박살나고, 도망갈 숲마저 불타버렸다-. 이런 소식이 퍼지면 누구나 공화국이 맞이한 운명을 납득하지 않을까? 연합이라고 해봤자 다른 국가들이 이미 지워진 나라를 무슨 수로 돕겠어?”


“지통실로 갑시다.”


로빈이 다급한 걸음으로 집무실을 빠져나간다. 크라트와 드렌턴이 짧은 한숨과 함께 그의 뒤를 따랐고, 지나 또한 잠든 로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일어나려는데,


“저기, 잠깐.”

엘라의 부드러운 손이 지나의 걸음을 붙들었다. 그 이유를 묻는 지나의 표정이었지만, 엘라는 그런 그녀를 잔잔한 미소로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지나가 입을 열려는 순간 엘라의 손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지나의 아랫배.

“네가 품은 씨앗, 더없이 소중하겠지. 하지만 깨어날 생명은 언제나 눈물 속에 있어. 환희 속에서 네가 얻을 것만큼 너와 그가 잃을 것도 많을 거야. 그걸 후회하지 않도록, 충분히 고민해두길 바랄게.”


지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가려던 발걸음을 거두고, 조용히 엘라의 손이 감싸고 있는 자신의 생명을 쓰다듬었다.


“......경험에서 비롯된 말씀인가요.....?”


“글쎄.”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행복한 얼굴로, 엘라는 로즈의 뺨에 자신의 입술을 문지른다. 다시 떠오른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모든 대답을 담고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어떨까.”


“충고 감사합니다.”


지나는 웃으며, 자신의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엘라에게 보여준다. 그에 엘라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참견을 했네.”


“아니에요. 나중에 다시 뵐게요. 로즈도 안녕~”


새빨간 혀가 귀여운 미소를 남기고 지나는 집무실을 빠져나간다. 아무런 목소리도 남지 않은 그곳에서, 엘라는 속삭이듯 평화에 잠긴 로즈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적어도 난 아직 내 이름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작가의말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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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3) +4 15.04.01 936 2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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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 +8 15.03.22 1,155 30 22쪽
139 (막간)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은- +4 15.03.18 1,064 25 24쪽
138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3) +10 15.03.13 1,031 28 21쪽
137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2) +8 15.03.09 1,197 2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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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2) +15 15.01.30 1,504 40 17쪽
126 (13막) 고동을 시작하는 불꽃이 족쇄를 끊는다 (1) +9 15.01.29 1,342 28 19쪽
125 (막간) 지나가야할 시간 +14 15.01.28 1,177 32 12쪽
124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2) +8 15.01.27 1,360 35 21쪽
12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1) +10 15.01.26 1,283 31 18쪽
122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0) +8 15.01.24 1,390 30 20쪽
121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9) +8 15.01.23 1,309 34 20쪽
120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8) +12 15.01.22 1,491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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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5) +4 15.01.19 1,324 30 20쪽
116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4) +10 15.01.17 1,444 27 18쪽
115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3) +13 15.01.16 1,439 40 18쪽
114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2) +13 15.01.15 1,541 43 17쪽
11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 +6 15.01.14 1,378 29 19쪽
112 (막간) 따스한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15.01.13 1,415 28 13쪽
111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0) +11 15.01.12 1,382 39 24쪽
110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6 15.01.10 1,255 31 20쪽
109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8) +6 15.01.07 1,295 36 19쪽
108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7) +8 15.01.05 1,453 33 24쪽
107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6) +9 15.01.02 1,567 38 18쪽
106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5) +10 14.12.31 1,330 39 21쪽
105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4) +9 14.12.29 1,185 39 18쪽
104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3) +2 14.12.26 1,224 39 17쪽
103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2) +7 14.12.24 1,294 45 17쪽
102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 +4 14.12.22 1,439 32 16쪽
101 (막간) 피지 못한 목소리는 달길 따라 조각배 태워 보내고 +3 14.12.20 1,515 41 15쪽
100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1) +10 14.12.18 1,456 39 25쪽
99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0) +6 14.12.16 1,535 45 21쪽
98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9) +6 14.12.14 1,318 43 18쪽
97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8) +6 14.12.12 1,468 40 20쪽
»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7) +4 14.12.09 1,427 44 17쪽
95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6) +3 14.12.07 1,504 50 16쪽
94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5) 14.12.05 1,628 4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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