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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조회수 :
448,258
추천수 :
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4.12.22 20:38
조회
1,439
추천
32
글자
16쪽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

DUMMY

“후우~!”

소녀는 맑은 이마를 따라 흐르는 땀을 훔치며 도끼를 내려놓았다. 하얀 점조차 하나 없는 하늘, 그 가득 누런빛을 채우고 있는 것은 분명한 한여름의 태양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베르달의 숲은 좀처럼 열기를 허락하지 않는 땅이다. 소녀는 땀과 함께 빠르게 식어버리는 몸을 양팔로 감싼 채로 부르르 떨어야했다.

“......너무 많이 했나.”

챙이 넓은 모자를 벗으려던 소녀가 문득 약간의 후회를 담아 뒤를 돌아보았다. 끝이 없이 펼쳐진 숲의 파도이긴 했지만, 그녀가 베어버린 나무의 숫자는 숲속의 작은 공터를 만든 수준이었던 것이다. 지게 위로 한가득 통나무들을 쌓은 뒤에도 여전히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나무들이 풀숲에 널브러져 있었다.

“미안.”

결국 그녀는 짧은 사과와 함께 지게를 둘러멘다.

높게 쌓인 통나무들은 그 하나하나의 무게가 소녀의 몸무게와 엇비슷했지만,

숲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소녀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나왔어~!”


소녀가 지게를 내려놓으며 길게 외쳤다.

숲의 초입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 소녀의 부름에 답하여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었다. 대답보다도 먼저, 여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소녀와 소녀의 지게를 훑고 있었다.


“리즈! 이 년아! 내가 몇 번이나 말해?!”


우락부락한 눈매와 그보다 더욱 굵직한 목소리에, 리즈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숲이라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


“보는 사람이 없긴 왜 없어?! 누가 수색임무라도 나왔으면 어쩌려고!”

이런 시골까지 수색임무를 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리즈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 마을에만 나가면 들려오는 것이라곤 시끄러운 국경의 일과 누구누구의 집에 부고가 도착했다는 말들뿐이다. 어머니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혹시라도 자신이 이런 전화에 휩쓸릴까봐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리즈가 입을 다문다고 해서 어머니의 잔소리가 끝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이고, 뭘 또 이렇게 많이 베어왔어? 탕나무만 베어온 거 맞지? 또 엘론의 나무를 건드리면-!”


“아! 안다니까. 이 짓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는 뭐 그리 걱정이 많아.”


“니 년이 정신줄을 놓고 다니니까 그러지!”

매섭게 등짝을 후려치는 어머니의 손바닥을 피해 리즈는 땀을 식혀줄 양수기를 향해 다가갔지만, 모자를 벗으려던 그녀의 손을 다시금 굵직한 여인의 목소리가 방해한다.

“씻기 전에 마을 한 번 내려갔다 와라. 사올 거 써줄 테니까.”


“아- 힘든데. 내일 갔다 오면 안 돼?”


결국, 리즈는 등과 뒤통수를 따갑게 얻어맞고 만다.


“이 년아! 나무해올 때는 영력 펑펑 써대더니 이건 힘들다고 징징거려? 퍼뜩 갔다 와!”


“아이 씨~.”


어머니가 내민 종이를 낚아채듯 받아들고, 리즈는 울상을 지으며 모자를 벗어던진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검붉은 머리카락이, 숲바람에 흔들리며 찬란한 여름 해를 머금고 있었다.




============




리즈는 호쾌한 걸음과 속도로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지만, 베르달의 숲길은 그 바닥이 평탄하거나 방향을 알려줌에 있어서 친절한 편이 아니었다. 단지, 10년이 넘게 마을과 오두막을 뛰어다니던 그녀였기에 거리낌이 없었을 뿐이었다.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멀리 도약하면 도약할수록 숲의 향이 진하게 코와 목을 간질였기 때문에, 리즈는 언제나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리며 영력을 분출하는 걸 즐겨왔다. 물론 이런 모습을 어머니에게 들켰다간 등짝만으론 끝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았기에 그녀는 마을의 전경이 들어오는 순간 발을 멈추어야했다.

목이 늘어나고 너덜너덜한 먹색 셔츠와, 하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면바지에 신발이라곤 신은 적이 없는 야생적인 모습이었지만, 항상 그렇듯 리즈는 또래 친구들과 마을사람들에겐 반가운 손님이었다. 그녀가 내려오는 날엔 여지없이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미신까지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콧노래와 함께 주머니 속 동화를 짤랑거리며 그녀가 먼저 발을 디딘 곳은, 마을의 시장이 아닌 외곽의 대저택. 마을 자체가 그리 크거나 이름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딱 하나 다른 작은 마을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이 대저택일 것이다. ‘가슈펠라르’라는 대귀족의 본가라고 들었지만, 리즈는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나 영향력 따윈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마을에 내려올 때마다 저택의 담장을 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반가운 얼굴이 둘이나 있으니까.


“조~에-ㄹ!”


은은한 금빛으로 도색된 벽의 모퉁이를 돌자 화려한 정원이 리즈의 코를 자극한다. 그곳에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항상, 변함없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어, 안녕, 리즈.”

찬란한 금발과, 그에 대비되는 어두운 눈동자를 지닌 청년이 희미한 미소로 리즈를 맞이한다. 우렁찬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익숙한 듯, 화단에 물을 뿌리는 그의 몸짓엔 조금의 당혹함도 배여 있지 않았다.

“아줌마 심부름?”


“응응. 넌 또 정원질?”


환하게 웃으며 조엘 뒤편 의자에 걸터앉는 리즈. 그녀의 말에 조엘은 작게 웃는다.


“정원질이라니, 그런 단어가 있긴 해?”


“정원사는 조엘이니까, 그럼 네가 말해봐, 뭐하고 있는지.”


조엘은 잠시 녹음이 짙은 정원과 온갖 색으로 찬란한 화단을 둘러보더니-


“......정원질?”


“거봐.”


리즈는 하얀 이를 내보이며 승리의 미소를 피어낸다. 조엘도 마찬가지로 이슬처럼 얇게 웃으며,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있던 분무기를 거둬들인다.


“아-! 역시 리즈였구나.”


밝고 산뜻한 소녀의 목소리가 정원으로 통하는 창문을 통해 정원으로 번져나간다. 그와 동시에 리즈의 얼굴이 환해졌고, 조엘은 여름의 열기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던 얼굴을 붉힌다. 리즈는 마치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애완견처럼 살랑살랑 검붉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총총 창문가로 다가선다.


“아-델!”


그대로 창문너머 몸을 들이밀더니, 소녀의 하얀 드레스 품으로 달려드는 리즈. 키는 리즈가 한 뼘은 더 컸지만, 그녀의 검붉은 머리를 쓰다듬는 아델의 입가엔 어머니와도 같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오랜만에 내려왔네? 한 2주 됐나?”


조엘의 색보다도 짙고 화사한 금빛을 내뿜는 금발이 숲바람을 받아 소녀의 허리곡선에서 춤을 춘다. 새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는 그녀의 붉은 입술과 더욱 붉은 눈동자를 부각시켜주는 맑은 배경과도 같았고, 여름의 태양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그 미소는 스쳐지나가는 누구라도 뒤를 돌아보게 만들 절경이었다.

‘미인’이라는 단어가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의 빛이었다. 마을에서 ‘아델의 빛’에 설레지 않는 사람은 리즈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응응, 엄마 심부름.”


“착하네~”

아델은 헤실 웃는 리즈의 양 볼을 톡톡 건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빨간 시선은, 머쓱하게 다시 분무기를 집어든 조엘에게 향한다.

“조엘 오늘도 고생하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조엘.


“아, 뭐....... 내 일이니까.”


밋밋한 그의 대답에 아델은 웃었다. 하지만 조엘은 차마 그 미소를 마주할 수가 없어, 화단의 물이 넘치고 있었음에도 계속 분무기를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아버지는 오늘 안 계셔?”


창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리즈를 향해, 아델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검붉은 머리칼로 뒤덮인 친구의 이마를 쓸어 넘겨주었다.


“응, 일이 생겼다고 급하게 나가셨어.”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나올 수 있었겠구나. 아델 아버지는 네가 우리랑 이야기 하는 거 엄청 싫어하니까.”


“에이, 너흴 싫어하시는 건 아니야. 그냥 날 과보호하시는 거지.”


난처한 듯이 웃는 아델. 그러나 조엘은 씁쓸하게 미소를 씹었다.


싫어하지 않는다-라.

맞는 말이긴 하다.


혐오와 증오가 ‘싫어한다’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말이지.



“들어와서 차 한 잔 마시고 갈래?”


아델의 친절한 미소였지만, 리즈는 창틀에서 떨어지며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 늦으면 또 잔소리 들을 테니까. 이제 가봐야지.”


“그래, 그럼. 아주머니야말로 무서우시니까.”


리즈는 그에 반박할 수 없어 작게 웃었다. 맨발로 폴짝폴짝 정원을 가로지르려는 그녀를 향해, 조엘이 문득 입을 열었다.


“아, 데려다줄게.”


조엘과 리즈는 아델의 미소와 인사를 받으며 함께 정원을 빠져나온다. 사실 담장을 뛰어 넘는 일에 조엘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아델의 친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신입경비병에게 발각되어 일이 복잡해질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엘과의 동행은 일종의 보험이었다.


“저기, 조엘.”

시선조차 주지 않은, 가벼운 리즈의 부름. 조엘은 이어질 리즈의 말을 예상하고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진짜 아델한테 고백 안 해?”


“......또 그 소리냐.”


긴 한숨과 함께 금발을 쓸어 넘기는 조엘. 그를 뒤돌아본 리즈의 검붉은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흥미로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벌써 몇 년 째야? 아델은 날이 갈수록 이뻐진다구, 까딱하다간 다른 남자가 채간다?”


잠시 흐린 눈동자로 리즈를 바라보던 조엘은, 결국 얇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별로 상관없잖아. 아델만 좋다면 뭐-커흑!”


그는 말을 끝까지 맺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리즈가 영력을 실은 발차기로 그의 정강이를 날려버린 덕분이었다. 그 충격에도 뼈가 부서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였지만, 귓등을 때리는 리즈의 목소리에 조엘은 영력의 운용 따윌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병신아! 왜 아직까지 아델이 자기 아버지가 시키려는 맞선도 거부하면서 혼자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나 조엘은 꿇어앉은 그대로 정강이를 쓰다듬을 뿐, 어떠한 대답도 없다.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던 리즈는, 훌쩍 담장을 뛰어넘으며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잘 생각해. 미련만 쌓다가는 기회가 훌쩍 지나가버린다?”


그녀의 맨발이 풀숲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흐려진 고통의 끝에 남은 것은 여름하늘을 품은 침묵이었다. 조엘은 고개를 들어 그 하늘을 바라본다. 더없이 맑았지만, 그곳에 그의 마음을 둘 곳은 없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공허함을 향해, 그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우린 ‘일단’ 남매인걸.”





아델은 조엘과 리즈가 사라진 정원의 끝자락을 한참이나 창가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바람을 맞고 있으면, 금방 조엘이 되돌아올 것이라 기대하는 중이었다.

지금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이 창틀에 기대 정원의 향을 음미하고 있으면, 어느 샌가 조엘의 흐린 눈동자가 나타나 자신을 바라봐주었다. 그녀는 그 시간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들의 교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로 그 끝은 조엘이 매를 맞거나 지하에 감금되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기 때문에, 이제 이 기다림조차도 아버지가 저택을 비우시는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되어있었다.

서자(庶子)인 조엘이 이 저택에서 가질 수 있는 위치란, ‘구성원’ 그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물론 아델도 잘 알고 있다. 그랬기에, 오히려 그의 앞에서 내색하지 않는다.


동정심은 아니었다.


조금이나마 그와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순간을, 그저 소중하게 여기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복도 끝의 대합실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으로 그녀의 평화는 끝을 고한다.

불만이 가득한 입술을 깨물며, 그녀는 복도로 나서 돌아온 아버지를 맞이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밝은 얼굴로, 최대한 기쁜 얼굴로 그의 앞에 서기 위해, 그녀는 대합실의 문을 열기 전 크게 숨을 들이쉬어야했다.

그녀가 무언가 평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합실에 들어선 그 직후였다.


“아델.”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의 중후한 목소리. 하지만 그의 얼굴은 아델이 본적 없는 표정을 품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 표정 앞에서 입을 열수가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천천히 가녀린 아델의 양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으로 그녀의 일상에 종말을 선언할 준비를 마친다.



“잘 들어라......, 윌리안님, 가주님께서......, 반역죄로 투옥되셨다.”





================





빛은, 눈부시다기보다는 당혹스러웠다.

눈앞에서 먹색 구름이 사라지고, 이성과 시야가 돌아온 후에도 나는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었지만, 어째선지 굳어버린 머리는 쉽사리 답을 내놓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손이랍시고 눈앞에 가져다놓은 것엔 누런 뼈밖에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생각해보라. 분명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데, 눈앞에선 굳은 관절이 비명을 지르며 끼긱거리고 있는 거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멍하니 눈앞에서 손가락을 끼기긱거리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 그전에 이미 나와 그들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나처럼 누렇거나 하얀 뼈만을 남기고 앉아있고, 누군가는 덜 썩은 살갗을 데롱데롱 매단 채로 맡아질리 없는 냄새를 킁킁 맡으려 애쓰고 있다.

평소 인간사의 볼꼴 못 볼꼴 다 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광경을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실례합니다.”

나는 가까이서 들려온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대로 살도 붙어있고, 눈알도 들어있고, 표정도 살아있는, 평범한 여인이었다. 잔뜩 구겨진 미간을 보아하니, 그녀 또한 내 몰골과 지금의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인가보다.

“당황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선생님께선 지금 망자로서 부활하신 상태입니다. 혈마력의 구속에서 벗어나셨는데, 의식과 영력의 잔재는 남아있으신 거예요.”


망자라.

물론 들어본 적은 있다.

내가 되리라고는 몰랐지만.


“이성의 정상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간단한 질문을 몇가지 드릴게요. 괜찮으시죠?”


“예에.”


나는 깜짝 놀랐다. 기억 속의 제대로 된 내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탓이었다. 난 망자라는 존재들의 목에선 쇠가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마지막 기억은 무엇입니까?”


펜과 종이를 꺼낸 그녀를 향해, 나는 숨김없이 머릿속(비어있겠지만)에서 존재하는 마지막 기억을 말해주었다.


“학살의 검성이 이끄는 제국군 선발대가 아르바티앙으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제1국도에서 요격을 나갔었습니다. 요격군의 선봉을 맡고 있었는데, 적의 선발대와 만나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검게 변하더니.......”

잠시 고민을 해보지만,

“......그걸로 끝이었군요.”


여인이 자신이 듣고 적은 것과 무언가 적힌 종이를 열심히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리곤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다시 나의 눈동자가 있어야할 자리를 바라본다.


“그럼, 대전쟁 당시의 기사이셨다는 말씀이시죠?”


“대전쟁? 뭐어, 큰 전쟁이긴 했습니다만.”


대전쟁이라.

그 참혹한 광경을 담기엔 턱없이 모자란 명칭이군.


“확인 감사합니다. 곧 저쪽에서 신원이 확인되신 분들에 한해 설문조사를 진행할 건데요, 아, 제일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요.”

자리를 뜨려던 그녀가 다시 돌아와, 나를 향해 푸른 눈을 빛낸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물론,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함에 있어 이름보다 확실한 것은 없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름’은 확실하게 내 안에 남아있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삐걱거리는 턱뼈를 움직였다.



“슈리안. 아뮤르 슈리안.”


작가의말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30 네르갈
    작성일
    14.12.22 22:04
    No. 1

    헐 아뮤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4.12.22 22:09
    No. 2

    우왕 네르갈님 오랜만입니다! 언제나 감사드려요 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연봉동결
    작성일
    14.12.23 01:46
    No. 3

    잘보고갑니다~ 근데 망자중에서도 영력쓰는사람 있나요? 그리고 망자는 죽었는데 죽읆대는 어떻게 죽어요? 칼같은거에 찔리면되나... 그리고 영력이 생명력이라고 하셨는데 만약 망자가 영력 다쓰면요..? 어.. 오늘은 질문이 많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4.12.23 02:06
    No. 4

    헠 동결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질문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망자는 생전에 다하지 못한 영력의 잔재와 사념이 뭉쳐서 구현되는 존재입니다. 물론 기사였던 망자는 기사처럼 영력을 운용할 수 있지요.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영력이 곧 생명력이라는 공식은 망자들에겐 더욱 제한적인 의미로 다가옵니다.
    살아있는 자들이나 망자들이나 태생적인 영력의 크기는 어찌할 수가 없지만, 망자에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영력을 소비하는 행위니까요. 쉽게 말하면 연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 연료가 바닥나면.... 장비를 정지합니다....

    망자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망자라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영력을 보존한 채로 죽으면 됩니다. 다만 본인의 유해가 남아있다면 실체화가 쉽지만, 유해가 남아있지 않다면 물질계로 실체화는 힘들죠. 이른바 유령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_-;;

    마법사같은 경우는 본인의 원념으로 인해 스스로 망자로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악마나 사도의 영향이나 혈마법, 흑마법, 강령술로 의지를 부여받습니다.
    다만 혈마법은 그 원료가 '생명' 그 자체이기때문에, 혈마법으로 인해 부활한 망자는 10막에서 나왔듯, 자유의지를 잃고 숙주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순간까지 생명을 소진하게 되지요..

    제대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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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0) +8 15.01.24 1,390 30 20쪽
121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9) +8 15.01.23 1,310 34 20쪽
120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8) +12 15.01.22 1,491 41 15쪽
119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7) +6 15.01.21 1,337 28 18쪽
118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6) +7 15.01.20 1,319 33 20쪽
117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5) +4 15.01.19 1,324 30 20쪽
116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4) +10 15.01.17 1,444 27 18쪽
115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3) +13 15.01.16 1,439 40 18쪽
114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2) +13 15.01.15 1,541 43 17쪽
113 (12막) 어느 이름 없는 죄인의 유산 (1) +6 15.01.14 1,378 29 19쪽
112 (막간) 따스한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15.01.13 1,415 28 13쪽
111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0) +11 15.01.12 1,382 39 24쪽
110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9) +6 15.01.10 1,255 31 20쪽
109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8) +6 15.01.07 1,295 36 19쪽
108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7) +8 15.01.05 1,453 33 24쪽
107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6) +9 15.01.02 1,567 38 18쪽
106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5) +10 14.12.31 1,330 39 21쪽
105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4) +9 14.12.29 1,185 39 18쪽
104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3) +2 14.12.26 1,224 39 17쪽
103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2) +7 14.12.24 1,294 45 17쪽
» (11막) 차가운 여름에도, 꽃은 피어나고 나무는 솟았다 (1) +4 14.12.22 1,440 32 16쪽
101 (막간) 피지 못한 목소리는 달길 따라 조각배 태워 보내고 +3 14.12.20 1,515 41 15쪽
100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1) +10 14.12.18 1,456 39 25쪽
99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0) +6 14.12.16 1,535 45 21쪽
98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9) +6 14.12.14 1,318 43 18쪽
97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8) +6 14.12.12 1,468 40 20쪽
96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7) +4 14.12.09 1,427 44 17쪽
95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6) +3 14.12.07 1,504 50 16쪽
94 (10막) 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5) 14.12.05 1,628 4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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