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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 님의 서재입니다.

루니엔의 아이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로맨스

마이리
작품등록일 :
2016.02.04 14:59
최근연재일 :
2016.12.15 21:36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5,362
추천수 :
18
글자수 :
190,383

작성
16.04.22 23:57
조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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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랑을 배신하다(3)

DUMMY

초조해 보이는 남자가 방문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깊게. 큰 숨을 들이 마심과 동시에 문을 열고 그는 방으로 들어섰다.


- 여긴 어쩐일로...


틸리온은 갑자기 들이닥친 왕의 모습을 수상쩍은 눈빛으로 마주했다.

아까 그렇게 자신만만해 보이던 왕은 사라지고 예전의 그 주눅 들어 있던 모습으로 나타난 조르쥬가 그의 신경 줄을 바짝 당겨놨다.


- 틸리온 경... 내가 .. 아까.. 실..실례를 범했지요...


- 무슨 말씀이십니까?


- 내가.. 내가 이상해요.. 내 몸이.. 이상해요..


- 폐하. 이리로. 이리로 앉으세요.


틸리온은 떨리는 몸을 양팔로 감싸 안은채 불안정한 눈빛으로 서 있는 조르쥬를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 왜 그러십니까?


-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내가 아닌 거 같아요..


- 폐하. 어디 불편하십니까? 몸이 안 좋으세요?


- 틸리온 경. 루리프가 죽었나요?


- 저도 확실한 건 모릅니다.. 하지만 공주님의 실종 사실을 안건 꽤 시간이 지난 후라서.. 알렉 왕자님도 아무런 연락도 없으시니..


틸리온은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아까와는 다른 왕의 모습이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섰다.


- 알아봐 주실래요? 내 동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도 모르고 맘 편히 있을 수 없어요...


-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까 제게 그리 당당하게 명령도 하시더니..


- 그건.. 그건.. 내뜻이 아니었어요..


- 그럼. 왕대비 마마의 뜻입니까?


- 어머니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 왕의 모습엔 거짓이 없어 보였다.


- 어머니는 아니에요.. 아엘.. 아엘이.. 저보고 무능하다고.. 왕처럼 보이도록 노력하라고.. 아엘이 그리 하라고 시켜서..


- 아엘? 왕비께서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는 조르쥬의 순진한 모습이 전과 다를 바 없었다. 틸리온은 그 모습에서 다른 걸 찾을 수 있지 않나 해서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 틸리온 경.. 아시잖아요.. 전 경이 하라는 대로 했어요. 근데. 그게 아엘에게 무시 당하는 거라면.. 내가 아엘에게 무능한 남자로 보이는 게 싫어요!


조르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불안한 걸음으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흥분해 있는 어린 청년의 모습을 보며 틸리온은 회심에 미소를 지었다.


[변한게 아니었군. 아엘. 후후..]


- 폐하.. 왕비님의 마음에 들고 싶으십니까?


- 당연하죠! 난 아엘 밖에 없어요. 아엘이 내 전부예요! 아엘이 나를 사랑하게 될까요?


틸리온은 이 한심한 왕을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에 잠겼다.


- 틸리온 경. 루리프를 찾아 어디로 갈 건가요? 경이 나가 있는 동안 나는 어떻게 해야 하죠?


- 루리프님의 소식을 알기 위해선 뮤리엔으로 가야 하겠지요. 왕께서 제게 직접 가기를 명하셨으니..


- 그랬으면 좋겠어요.. 내가 믿을 사람이 경뿐이잖아요..


풀 죽은 목소리의 조르쥬는 분명 아침과는 달랐다.


- 알겠습니다. 제가 다녀 올 동안 왕께서는 왕비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제가 왕비님께 잘 말해놓겠습니다.


- 제발.. 꼭! 그렇게 해줘요. 꼭!


- 알겠습니다.


- 그리고 루리프의 소식도 꼭..


- 그것도 걱정 마십시오. 제가 왕께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시게 정확한 소식을 가져오겠습니다.


- 고마워요.. 틸리온 경. 내가 신세를 많이 지는군요..


- 별말씀을.. 폐하께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소임입니다.


조르쥬는 불안한 눈빛을 하고 틸리온의 방을 나왔다.


방을 나선 조르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고 구부정했던 자세도 바로 펴지며 불안했던 발걸음도 경쾌해졌다.


왕은 뭐가 좋은지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걸어갔다.



- 아엘. 네 일은 잘 하고 있겠지?


- 네.


-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오만했던 딸의 모습이 다소곳한 게 마음에 걸린 틸리온은 딸을 유심히 살펴보며 물었다.


- 아니오.


- 조금만 참거라. 네게 어울리는 배필을 구해주마.


-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 루리프는 죽었다. 뮤리엔의 알렉은 네게 딱! 맞는 배필이지.


- 그걸 아버지가 어떻게 아시죠?


- 네게 다 말하지 못하는 게 있다. 로리엔은 뮤리엔이 필요하지. 루리프가 없는 이상 조르쥬가 사라지고 내가 왕이 되면 넌 알렉과 결혼하게 될게다. 네 계획은 잘 세우고 있겠지?


- 그럼요...


오늘따라 힘이 없는 딸아이의 표정을 틸리온은 실패한 계획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르쥬가 살아난 게 아엘에게는 재미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엘에게는 조르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남자가 더 잘 어울렸다. 조르쥬처럼 약해빠진 남자는 아엘에게 부족했다. 왕만 아니었다면 그는 아엘을 절대 조르쥬에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 다녀오마. 그때까지 조르쥬를 잘 감시하도록 해라. 좋은 수가 있다면 내가 없는 틈에 해치워도 좋아. 그럼 일이 더 수월해지겠지.


다짐을 하듯 눈을 보고 말을 하는 틸리온은 아엘이 자신의 말대로 일을 잘 처리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아엘의 표정에서도, 아엘의 눈빛에서도 틸리온은 별다른걸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아엘의 낙담을 빨리 회복시켜주는 일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랑을 담아서 아엘을 꼭 안아주고 그녀에게 로리엔을 맡기고 뮤리엔을 향한 배에 올랐다.



- 아버지는 가셨나?


- 방금 배에 오르셨어요..


- 당신에게 달리 한 말은 없고?


- 루리프가 죽었다고 했어요...


- 확실해?


- 저게 다 말하지 못하는 게 있다고 했어요..


- 그리고?


- 다... 당신을...


- 죽이라고 하던가?


- ...


아엘은 대답 대신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벗은 상반신에 전에 없던 근육들이 생겼다. 약하고, 온순한 왕은 칼자루를 쥐는 것도 버거워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왕은 칼 다루는 솜씨가 여느 기사 못지않았다.


연습중이었던지 그의 불거진 근육마다 땀방울이 배어있었다.


- 누군가를 불러드릴까요? 혼자 연습하시는 것보다는...


- 아니. 난 혼자가 좋아.


날렵한 동작으로 칼집에 칼을 넣고 돌아서는 조르쥬의 모습은 그녀가 알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저렇게 변한 게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더더욱 알 수 없는 건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조르쥬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단 한시도 조르쥬의 모습을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온몸의 촉수가 죄다 조르쥬를 향해 뻗쳐 있었다. 전에 조르쥬가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자신을 그렇게 쫓아다녔던걸 그녀는 너무나 성가셔했었다. 그 기분을 너무 잘 아는 아엘이었기에 그녀는 마음대로 행동하지도 못했다. 자기의 마음을 조르쥬에게 들키기 싫었다.



- 마음은 정한 거야?


어느새 그녀 앞에 다가온 조르쥬의 몸에서 상큼한 땀냄새가 풍겼다. 기분 좋은 체취였다. 그 향기에 취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아버지 대신 나를 택한 거야?


또다시 그가 다정하게 물어왔다.


그녀의 고개가 다시 끄덕여졌다.


- 내가 시키는 건 뭐든 할 거야...?


그가 조금 더 다가왔다.


- 뭐든.. 뭐든 할 거예요..


다가온 그가 말 대신 깊고 긴 키스로 그녀의 대답을 훔쳤다.


- 날.. 사랑해?


- 그런 거 같아요.. 당신을...


- 아니.. 아니지.. 그건 대답이 아니야.. 나를 사랑하게 되면 말해줄래? 난 당신의 진심에서 우러난 말을 듣고 싶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이 날 사랑해주면 좋겠는데...


- 날. 아직도 사랑해요? 내가 당신을..


- 날 죽이려 했었지.. 당신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상처받은 눈빛으로 조르쥬가 말하고 있었다. 그의 반듯한 눈매가 왜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지 아엘은 안타까웠다. 그의 사랑을 되찾고 싶었다. 전처럼 그의 눈에 자신만 담고 싶었다. 전처럼 그가 자기만 바라봐줬으면 했다.


- 뭐든.. 뭐든 할게요.. 뭐든 할 거예요.. 당신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한 모든 짓을 당신이 용서해준다면..


- 아엘.. 아엘.. 아엘... 이제야 날 봐주는군.. 우린 전보다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이제야 비로소 서로를 알아갈테니까.


아엘은 조르쥬의 표정을 보며 길고 긴 안심의 한숨을 속으로 쉬었다.


[그는 아직 날 사랑해. 아직 기회는 있어.]


아엘은 생전 처음으로 남자에게 키스했다. 조르쥬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발끝을 세워 그의 입술에 진정을 담아 키스했다.


겨우 입술을 떼었을 때 그녀는 보았다. 눈을 감고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사랑스런 남편의 얼굴을...


그는 아직 아엘의 남자였다. 이젠 그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터였다...




- 틸리온이 떠났더구나.


- 루리프를 찾아오라 했지요.


- 계획은 있는 거니?


- 전 계획을 세우는 체질이 아니라서요. 그냥 느낌대로 그때그때 움직이려고요.


- 네가 달리 보이는구나.


- 정령이 제게 준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저를 바꿔놨어요.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죠.


- 그래..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는구나..


- 어머니. 이제 걱정 마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왕대비는 늠름해진 아들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탈마드.. 우리 아이들을 지켜줘요... ]


- 어머니. 우리가 믿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 룬 왕자를 찾아보면 어떻겠니? 뮤리엔의 왕자이면서 루니엔 혼혈이란다.


- 도움이 될까요?


- 로리엔 사람 보단 나을게다. 여기서 우리 편은 아무도 없을 거 같다.


- 조제프에게 연통이 되시면 룬을 찾아보라 말해주세요.


- 다음 소식에 운을 띄워보마.


- 그들은 루리프가 죽었다고 알고 있어요. 뮤리엔에 알려야 할까요?


- 우선 룬 왕자를 먼저 찾아보자꾸나. 틸리온이 가고 있으니 뮤리엔에선 그 소식을 모르는 게 좋지 않겠니?


- 그렇겠네요. 그럼 어머니께선 룬 왕자 찾는 걸 도와주세요. 전 아엘을 이용해서 틸리온을 칠 준비를 하겠어요.


- 네가 사랑했던 아인데.. 괜찮겠니?


대답 대신 조르쥬는 말없는 미소를 띠고 왕대비를 바라보았다. 아들의 눈빛에 답이 있었다. 왕대비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그 무엇도 깊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죽음만큼 깊은 감정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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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리움이 그리움에게... 16.12.15 4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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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골드룬 vs 실버룬 16.05.01 140 0 12쪽
35 꼬마왕자 16.04.23 112 0 16쪽
» 사랑을 배신하다(3) 16.04.22 112 0 11쪽
33 사랑을 배신하다(2) 16.04.17 150 0 6쪽
32 사랑을 배신하다 16.03.27 144 1 9쪽
31 요룬의 왕국(2) 16.03.18 127 0 9쪽
30 요룬의 왕국 16.03.15 3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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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16.02.23 117 0 12쪽
23 루리프 3 16.02.22 148 1 9쪽
22 루리프 2 16.02.21 135 0 11쪽
21 루리프 16.02.18 71 0 10쪽
20 저마다의 속셈 16.02.17 120 0 13쪽
19 마나프 16.02.16 142 0 13쪽
18 불의 정령 16.02.16 147 0 9쪽
17 달의 정령 16.02.15 138 0 14쪽
16 너를 어디에서 찾을까... 16.02.14 139 1 17쪽
15 꿈속에서... 16.02.14 179 1 12쪽
14 지켜지지 못한 그녀 16.02.13 173 0 14쪽
13 첫날밤 16.02.12 144 1 11쪽
12 불의 아이 16.02.11 147 1 8쪽
11 다짐들 16.02.11 143 1 10쪽
10 루니엔 16.02.10 147 1 11쪽
9 로리엔 16.02.10 140 1 6쪽
8 왕의 묘수 16.02.09 189 1 9쪽
7 음모들 16.02.09 82 1 7쪽
6 시작된 감정 16.02.08 190 0 11쪽
5 운명의 불씨 16.02.07 92 0 6쪽
4 첫키스 16.02.05 128 1 6쪽
3 16.02.05 135 1 7쪽
2 저녁 만찬 16.02.04 176 3 10쪽
1 방문객 16.02.04 24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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