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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 님의 서재입니다.

루니엔의 아이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로맨스

마이리
작품등록일 :
2016.02.04 14:59
최근연재일 :
2016.12.15 21:36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5,350
추천수 :
18
글자수 :
190,383

작성
16.02.1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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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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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다짐들

DUMMY

# 다짐들




마르텔은 심기가 불편했다. 약속한 날짜가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룬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 그리고 알렉은 첫날 찾아와서 문전박대당한 이후로는 안부조차도 물으러 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정보를 물어오는 작자들은 죄다 쓸모없었다. 평화롭기만 한 이곳 뮤리엔에서 너무 오래 들 살아서 그런지 그런 정보전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신하들이 아무도 없다는 게 마르텔은 갑자기 답답해졌다. 그는 알렉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알렉은 그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마르텔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건 룬도 알렉도 아닌 헬렌이었다. 그녀의 기도가 다시 시작되었다. 룬이 태어난 이후로 그녀는 기도실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루니엔에서 추방당한 그녀를 위해 그곳을 만들어준 건 마르텔이었다. 가족들과 헤어져 평생을 못 보고 산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마르텔은 가늠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을 택한 그녀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는 그녀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곳이 그녀에게 위안이 되는 곳이기를 그는 바랬다. 그러나 룬이 태어난 이후로는 그녀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벌써 며칠째 그곳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약간의 물만으로 버티며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소식 없는 아들에 대한 기도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러다 정말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알렉과 룬이 서로 싸우게 된다면 그동안 지켜왔던 뮤리엔의 평화는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었다. 그는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끝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는 병을 떨치고 일어났다. 그리고 궁안의 사람들을 불러놓고 3일 후의 결혼식 준비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왕다운 결정을 내렸다고. 자신의 이 마음을 알렉이 알아주길 바랬다. 이로써 그는 두 아들의 입장에서 한 번씩 각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었다. 그렇게라도 그는 그들을 곁에 두고 싶었다. 알렉이 결혼하면 그는 왕위에서 물러나 헬렌과 느긋한 노후를 즐길 예정이었다. 그것만이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헬렌은 자그마한 공간에서 그녀가 잊고 있었던 힘을 최대한 발휘하여 간절하게 소통하기를 바랐다.


-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 테니..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살면서 단 한번. 절실할 때 나를 불러라...


룬을 임신한 후 루니엔에서 추방될 때 그녀의 오빠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뮤리엔에 도착해서 그녀는 마르텔의 마음 씀씀이에 감명을 받았다. 그녀를 위한 작은 기도실 때문에. 말이 기도실이지 그곳은 헬렌과 루니엔의 소통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곳에서 간절히 불러도 그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고향을 그리며 울었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그녀의 빛이 룬을 낳고 사라지자 그녀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녀와 루니엔의 소통의 끈이 끊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룬이 약속한 날짜가 점점 다가와도 룬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녀의 걱정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가 되어서 그녀는 기도실을 찾았다.


[절실할 때 나를 불러라...]

자식을 걱정하는 애미의 마음만큼 절실한 건 없었다.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간절함을 담은 마음을 보냈다. 그녀의 절실함이 오라비에게 닿아 그가 룬을 보살펴 주기를 간절하게 염원했다. 그리고 그 염원이 마침내 이루어진 날 그녀는 아들을 보았다. 다 쓰러져 가는 모습으로 그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자신의 아들.. 그 아들이 루니엔족처럼 자신과 소통하는 그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그녀는 아들이 쓰러지는걸 보았다. 그리고 어둠이 그의 아들을 삼키는걸 보았다..





결혼식이 3일 남았다.

루리프는 그사이 부쩍 성숙해 보이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낯설었다. 3주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흘렀다. 룬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고, 알렉은 그날 이후로 자신을 찾지 않았다. 일부러 그가 갈만한 곳을 알짱거리며 눈을 마주치려 해도 그는 무표정하게 지나칠 뿐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배신감이 그녀를 외롭게 했다. 이 왕궁에서 십 년을 살았음에도 그녀와 말벗이 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틸리온은 유모를 앞세워 결혼식 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웨딩드레스가 그녀방의 한귀퉁이에서 우아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날의 치장을 위한 장신구들이 그 옆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 상황이 무겁게 그녀의 숨통을 죄어왔다. 알렉은 좀처럼 알 수 없는 남자였다. 살기등등할 때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무시무시함을 내뿜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보여준 그 다정함도 그 안에 존재해 있었다.


[이걸 우리의 첫 키스로 하자.] 그렇게 말한 그의 입술의 감촉이 아직도 그녀의 입술에 남아있었다. 문득문득 그날의 따사로운 촉감과 달콤했던 아찔함이 찾아와 그녀를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곳을 찾았지만 알렉은 그곳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천진난만했던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그리고 그 그늘만큼 그녀의 눈빛도 깊어졌다.



- 결혼식 선물을 미리 준비했습니다.


언제 왔는지 틸리온경이 싱글거리며 서있다. 그의 곁엔 얼굴을 가린 여자가 서있다. 그냥 봐도 평범하지 않은 그 여자의 모양새에 심히 신경이 쓰였다.


- 뭔가요?


- 공주님이 여자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 줄 아입니다.


틸리온의 그 말과 함께 그 여자는 복면을 내리고 요염한 몸짓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게 무얼 뜻하는지 깨닫게 된 순간 그녀가 알지 못했곳에서부터 분노가 폭발해왔다. 그 분노로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다.


- 알렉 왕자님을 만족시키시려면...




- 무엄하다!!




폐부에서부터 찢겨 나오는 새된 외침에 그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오금이 저렸다.

다가오던 여자는 주춤 뒤로 물러섰고, 유모는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허리를 조아렸다. 틸리온은 분노에 휩싸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 썩 물러가거라!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감히.. 감히..


말을 잇지 못하는 루리프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의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붉게 물들고 그녀의 온몸에서 금방이라도 폭발 할거 같이 부글거리는 화산처럼 불길이 솟았다.




오래전 그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왕이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날 때 보였던 모습이었다. 그는 야망이 있었다. 사실 왕이라는 건 핏줄로 대물림되었을 뿐 그 어떤 자질로 인해 주어지는 직함이 아니었다. 그의 왕은 자질도 가지고 있었지만 왕족이라는 핏줄을 타고났었다. 어릴 때부터 그들은 함께 자라며 장차 한 나라의 왕과 신하로서의 우정을 다짐한 사이였다. 하지만 그렇게 점점 권력에 가까워지면서 그의 마음속에서 야망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나고 있었다. 성정이 불같은 그의 주군은 가끔 그 성격 탓에 실수를 했고 그 실수를 무마하면서 그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라면 절대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나라면 절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을 텐데..] [나라면... 나라면... 나라면...] 생각들이 몸에 배이게 되고, 몸에 밴 생각들이 얼굴로 표현이 될 때쯤 그의 왕은 그의 마음을 눈치채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에게 경고를 했었다. 그때도 그는 왕의 몸에서 불꽃을 보았다. 활활 타오르는 거 같은 불꽃의 이미지가 그의 왕을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저 불꽃에 타죽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자고...




룬이 루니엔으로 갔다는 보고를 받은 알렉은 생각에 잠겼다. 어떤 식으로 일이 전개될지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룬과 이렇게 엮이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에게 룬은 헬렌과 상관없이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었다. 룬의 그의 동생이었다. 배다른. 그런 동생이 사랑이라는 변변치 않은 감정 때문에 자신에게 도전을 해오고 있었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알렉은 마음이 답답했다. 그런 참에 왕이 병치레를 끝내고 3일 후에 결혼식을 거행하고 로리엔으로 떠나라는 명을 내렸다. 알렉은 내심 기뻤다. 여태 아무런 소식이 잡히질 않는 거 보면 룬은 시간을 헛되이 쓴 참이었다. 결혼식만 무사히 치르면 룬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보다도 그는 루리프를 하루라도 빨리 품에 안고 싶었다...




루리프는 자기 안에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것이 무엇이던 그 감정을 겪고 난 지금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 듯 지쳐버렸지만 뭔지 모를 힘이 생긴 거 같았다. 이젠 그 무엇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로리엔의 공주야. 나는 로리엔의 공주야! 그리고 곧 뮤리엔의 왕비가 될 거야. 그 무엇도 나를 건들지 못해. 나를 건들면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


루리프는 달라진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짐했다. 아버지처럼, 오빠처럼 그렇게 허망하게 당하진 않을 거라고.


누가 됐던 로리엔과 자신을 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절대. 절대로 그냥 두고 보진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하는 그녀의 눈동자에 번개같은 섬광이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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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리움이 그리움에게... 16.12.15 44 0 14쪽
40 틸리온 16.05.31 88 0 11쪽
39 얼마나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날까? 16.05.22 131 0 9쪽
38 연결점 16.05.10 72 0 10쪽
37 오! 브라더 16.05.03 142 0 12쪽
36 골드룬 vs 실버룬 16.05.01 140 0 12쪽
35 꼬마왕자 16.04.23 112 0 16쪽
34 사랑을 배신하다(3) 16.04.22 111 0 11쪽
33 사랑을 배신하다(2) 16.04.17 150 0 6쪽
32 사랑을 배신하다 16.03.27 143 1 9쪽
31 요룬의 왕국(2) 16.03.18 127 0 9쪽
30 요룬의 왕국 16.03.15 34 0 10쪽
29 여신의 방문 16.03.09 74 0 9쪽
28 비극의 시작 16.03.08 149 0 7쪽
27 칼멘 16.03.02 104 0 8쪽
26 슬픔은 그대로 두어라...(2) 16.03.02 106 0 11쪽
25 슬픔은 그대로 두어라... 16.02.29 162 0 13쪽
24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16.02.23 117 0 12쪽
23 루리프 3 16.02.22 148 1 9쪽
22 루리프 2 16.02.21 135 0 11쪽
21 루리프 16.02.18 71 0 10쪽
20 저마다의 속셈 16.02.17 119 0 13쪽
19 마나프 16.02.16 142 0 13쪽
18 불의 정령 16.02.16 147 0 9쪽
17 달의 정령 16.02.15 138 0 14쪽
16 너를 어디에서 찾을까... 16.02.14 139 1 17쪽
15 꿈속에서... 16.02.14 179 1 12쪽
14 지켜지지 못한 그녀 16.02.13 173 0 14쪽
13 첫날밤 16.02.12 143 1 11쪽
12 불의 아이 16.02.11 147 1 8쪽
» 다짐들 16.02.11 143 1 10쪽
10 루니엔 16.02.10 147 1 11쪽
9 로리엔 16.02.10 139 1 6쪽
8 왕의 묘수 16.02.09 188 1 9쪽
7 음모들 16.02.09 81 1 7쪽
6 시작된 감정 16.02.08 190 0 11쪽
5 운명의 불씨 16.02.07 92 0 6쪽
4 첫키스 16.02.05 128 1 6쪽
3 16.02.05 134 1 7쪽
2 저녁 만찬 16.02.04 176 3 10쪽
1 방문객 16.02.04 246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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