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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 님의 서재입니다.

루니엔의 아이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로맨스

마이리
작품등록일 :
2016.02.04 14:59
최근연재일 :
2016.12.15 21:36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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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190,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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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0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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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왕의 묘수

DUMMY

마르텔 왕은 유한 사람이었다. 진지하고, 온화하며, 자애로운 사람이었다. 그게 다였다. 왕으로서의 자질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귀족적 한량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의 부친은 그런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주변국에 휘둘리지 않을 왕이 필요했다. 자신이 가고 나면 마르텔이 이 뮤리엔을 잘 지켜낼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작고 자원도 없는 별 볼 일 없지만 부족전체가 사냥과 모험적 기질을 가진 도리엔의 왕녀와 마르텔을 결혼시켰다. 물론 덤으로 도리엔을 뮤리엔에 편입시킨 건 그의 생애 최고의 업적이었다. 그렇게 뮤리엔은 강력해졌다. 다행히도 마르텔은 카리엔 왕비와 사이가 좋았다. 그가 갖지 못한 강력함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어려운 결정도, 결단력을 강요하는 문제들은 모두 카리엔의 조언으로 해결이 되었다. 마르텔은 행복했다. 게다가 그들에겐 첫 왕자도 생겼다. 알렉. 그들의 첫 결실. 문제가 있었다면 사냥과 훈련을 통해 단단한 몸을 유지했던 왕비였지만 아이를 낳기에는 부적합한 몸이었다는 것이다. 알렉은 건장한 아이 였다. 그런 건장한 아이를 낳기엔 카리엔의 자궁은 너무 협소했다. 아이를 낳고 하열을 많이 한 그녀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예전의 팔팔하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늘 침대를 떠나지 못했고, 결국 마르텔은 혈기왕성한 몸을 이기지 못해 곁눈질을 했다. 헬렌은 루니엔의 여인이었다. 루니엔족은 신비로운 신화를 가진 부족이었다. 달의 여신을 숭배하는 루니엔의 사람들은 희미한 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곧잘 요정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 다른 민족과 섞이지 않았다. 하지만 헬렌은 예외였다. 그녀가 사냥을 나온 마르텔과 숲 속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는 그와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들은 그렇게 밀회를 즐겼고, 그들 사이엔 아들이 생겼다.


룬. 그 아이는 빛은 머금은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품에 안긴 아이를 안아 들고 마르텔은 하염없이 웃었다. 룬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룬에게선 따뜻한 빛이 나와 모든 이들에게 전이되었다. 그 따뜻함이 사람들을 평온하게 했고, 그 평온함이 그들을 웃게 만들었다.


자칫 왕의 사생아가 될뻔했던 룬은 카리엔 왕비의 죽음으로 헬렌이 왕비로 등극하면서 왕자가 되었다. 룬을 처음 만난 날 알렉도 웃었다. 어미를 잃은 슬픔을 안고 배다른 동생을 맞이한 알렉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증오와 분노와 질투와 슬픔을 안고 갓난아이를 노려보던 알렉은 그 아기의 빛나는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마치 어두운 그늘을 씻어내는 듯한 따스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슬픔도, 분노도, 외로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알렉과 룬은 헬렌 왕비의 보살핌 속에서 구김 없이 자랐다. 그런 아들들을 바라보며 마르텔은 알렉에 대한 걱정을 잊었다. 아니 잊었었다. 알렉이 반항기에 접어들어 궁을 등한시하고 도리엔을 자주 출입하는 것도 그저 한시기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어미의 기질을 닮아 모험과 전쟁을 좋아한다고만 여겼을 뿐 왜 그런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장성한 아들을 바라보는 마르텔의 마음에 은근한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자신의 자리 때문이 아니었다. 마르텔은 이깟 왕자리 언제든 물려 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느낀 두려움은 다른 거였다. 뭔지 모를 불안함이 왕에게 직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왕은 아프기로 했다. 이 모든 일에 시간을 벌려면 그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왕궁 의사들이 드나들고 모두의 입을 함구시킨 채 왕은 병을 청탁하고 방에서 두문불출했다. 그게 알렉의 본심을 가늠하고 룬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묘수라고 그는 생각했다.



- 왕께서 도대체 어디가 아프신 겁니까?


헬렌은 틸리온 경의 말에 조용히 대답했다.


-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틸리온 경. 결혼식이 연기된 건 유감스러운 일이에요. 왕께서 쾌차하시는 대로 식은 바로 거행될 겁니다.


- 혹시. 룬 왕자님을 위해..


- 무례하군요. 감히 그런 말을 입에 올리다니!


-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헬렌 왕비님..


- 돌아가 계세요. 차도가 있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쌀쌀맞게 돌아서는 왕비의 뒷모습을 보면서 틸리온은 분노했다. 분명 이건 그들의 계략이었다. 왕은 병이 난 게 아니었다. 시간을 벌려는 수작일 뿐. 갑자기 초조해진 틸리온은 어떻게 이 상황을 빨리 처리할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로리엔으로 가는 배를 타고 있어야 했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해버렸다. 게다가 틈이 생겨버린 시간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음이었다. 오랜 시간 공들인 일이었다. 코앞에서 이렇게 방해를 받을 줄은 미처 몰랐다.



- 공주님. 식이 연기된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저는 걱정이 되네요.


유모의 말이 아니라도 루리프는 갑작스런 왕의 병과 결혼식 연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건 또 누구의 계략인지 가늠도 안되는데다가 룬도 알렉도 찾아오지 않는 상태라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그렇다고 찾아가서 물어보기엔 겁이 난다기 보다는 자존심이 상했다. 룬을 찾아가자니 룬의 마음을 알면서 자칫 어떤 희망을 줄까 염려가 되었고, 알렉을 찾아가자니 그가 저번과 같은 다정한 모습으로 대해줄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알렉의 옆에 있는 그 칼멘이란 여자 때문에 루리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에는 그녀가 존재하는 줄도 몰랐지만 알렉과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엔 그녀의 존재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 공주님. 어찌 됐든 공주님께서 결혼을 앞두셨으니 제가 몇 가지 알려드릴게 있어요. 어머님께서 해주셔야 하는 말이지만 멀리 계시니.. 제가 대신해야겠네요..


유모는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가 열아홉이 되도록 곁에서 그녀를 보필했다. 타고난 기품은 어쩔 수가 없는지 루리프는 한 번도 그녀를 당황하게 만든 적이 없었다. 언제나 처신을 잘했었고, 기지가 있어서 불편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잘 빠져나왔다. 하지만 지금 이상황은 루리프에게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유모는 내심 루리프와 룬이 맺어지기를 소원했었다. 룬이라면 루리프를 상처 없이 잘 보살펴줄 거란 믿음이 갔기에. 하지만 루리프의 짝은 알렉이었다. 유모는 지난번 알렉이 루리프를 안고 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렸다. 만신창이처럼 젖어있었고, 입술과 팔에 상처와 멍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유모는 알렉이 루리프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 공주님.. 비록 이 결혼이 정략적이긴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에게는 의무가 생깁니다.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의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남녀 간에..


- 유모. 그건 나도 알아.


- 아세요? 어떻게요? 지난번에 알렉 왕자님 하고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유모를 쳐다보는 루리프의 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 무슨 일?


- 아니, 그게, 공주님이 아신다니까.. 그 .. 여자와 남자와의..


- 아이 낳는 법 말이야? 전에 어머니께서 말해주신 게 기억나. 남자랑 여자랑 결혼을 하게 되면 아기를 만드는 신이 꿈에 황새를 통해서 아이를 가져다준다며. 그 아기를 품에 안으면 배가 점점 커진다고 했어. 그리고 그 배가 점점 커져서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때가 되면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고.. 그래서 내게도 동생이 생긴 거라고..


- 아이고! 정말이지 공주님.. 도대체가 그런 걸 아직도 믿으세요? 그건 공주님이 어리시니까 어머님께서 그렇게 설명을 하신 거죠.


웃겨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유모가 말한다.


- 그거 말고 뭐가 또 있는 거야?


- 아이고.. 공주님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 드려야 하는지 정말..


유모는 자신의 딸에게 언젠간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녀가 사랑하게 되면 하는 자연스런 몸짓들에 대해.


- 그럼.. 키스해도 애가 생겨..?


- 아니오. 키스는 가장 기본적인 거예요. 키스해보신 적 있으세요? 혹시 룬 왕자님과?


- 아니야. 그런 일 없어. 룬 하고는..


- 그럼 알렉 왕자님 하고는요?


- 그건...


- 루리프님.. 알렉 왕자님은 어른이에요. 이미 여자를 아는 분이죠.. 그런 분은 잘 다루셔야 해요.


- 여자를 안다는 게 어떤 뜻이야?


- 여자 경험이 많다는 뜻이죠.



여자 경험이 많다.. 루리프의 머릿속에 칼멘이 떠올랐다. 늘 알렉 곁에 붙어있는 칼멘의 화려한 용모와 야생적인 매력이 느껴지자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 그럼. 알렉은..


- 길들이셔야죠. 공주님의 무기로.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게 틸리온 경이 서 있었다. 어디서부터 엿들은 거지?


- 내게 무슨 무기가 있다는 거죠?


공주의 말에 틸리온경은 미소를 지었다. 그 야릿한 미소 때문에 루리프는 맘이 불편해졌다.


- 공주님께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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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리움이 그리움에게... 16.12.15 45 0 14쪽
40 틸리온 16.05.31 89 0 11쪽
39 얼마나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날까? 16.05.22 131 0 9쪽
38 연결점 16.05.10 72 0 10쪽
37 오! 브라더 16.05.03 142 0 12쪽
36 골드룬 vs 실버룬 16.05.01 140 0 12쪽
35 꼬마왕자 16.04.23 112 0 16쪽
34 사랑을 배신하다(3) 16.04.22 111 0 11쪽
33 사랑을 배신하다(2) 16.04.17 150 0 6쪽
32 사랑을 배신하다 16.03.27 143 1 9쪽
31 요룬의 왕국(2) 16.03.18 127 0 9쪽
30 요룬의 왕국 16.03.15 34 0 10쪽
29 여신의 방문 16.03.09 74 0 9쪽
28 비극의 시작 16.03.08 149 0 7쪽
27 칼멘 16.03.02 104 0 8쪽
26 슬픔은 그대로 두어라...(2) 16.03.02 106 0 11쪽
25 슬픔은 그대로 두어라... 16.02.29 162 0 13쪽
24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16.02.23 117 0 12쪽
23 루리프 3 16.02.22 148 1 9쪽
22 루리프 2 16.02.21 135 0 11쪽
21 루리프 16.02.18 71 0 10쪽
20 저마다의 속셈 16.02.17 120 0 13쪽
19 마나프 16.02.16 142 0 13쪽
18 불의 정령 16.02.16 147 0 9쪽
17 달의 정령 16.02.15 138 0 14쪽
16 너를 어디에서 찾을까... 16.02.14 139 1 17쪽
15 꿈속에서... 16.02.14 179 1 12쪽
14 지켜지지 못한 그녀 16.02.13 173 0 14쪽
13 첫날밤 16.02.12 144 1 11쪽
12 불의 아이 16.02.11 147 1 8쪽
11 다짐들 16.02.11 143 1 10쪽
10 루니엔 16.02.10 147 1 11쪽
9 로리엔 16.02.10 139 1 6쪽
» 왕의 묘수 16.02.09 189 1 9쪽
7 음모들 16.02.09 81 1 7쪽
6 시작된 감정 16.02.08 190 0 11쪽
5 운명의 불씨 16.02.07 92 0 6쪽
4 첫키스 16.02.05 128 1 6쪽
3 16.02.05 134 1 7쪽
2 저녁 만찬 16.02.04 176 3 10쪽
1 방문객 16.02.04 24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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