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마이리 님의 서재입니다.

루니엔의 아이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로맨스

마이리
작품등록일 :
2016.02.04 14:59
최근연재일 :
2016.12.15 21:36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5,360
추천수 :
18
글자수 :
190,383

작성
16.02.05 09:08
조회
134
추천
1
글자
7쪽

DUMMY

# 룬.



- 루리프. 나랑 얘기 좀 해!

룬의 말소리가 나를 잡는다. 그럼에도 나는 룬을 볼 수 없다. 아니 보고 싶지 않다. 오늘 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잠들고 싶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 있을 거 같다.

- 얘기 좀 하자니까!

룬이 내 팔을 잡고 나를 돌려세웠다. 저 파란 눈에서 위안을 받곤 했는데 오늘은 그 위안마저도 내게 오질 않는다. 파랗던 룬의 눈빛이 짙어졌다.

- 왜 그랬어? 왜 그렇게 말해버렸냐구!

- 룬... 이미 정해졌던 일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 알고 있었던 거야?

- 짐작은 하고 있었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정략결혼이라는 걸.

- 그럼 왜 내겐 말 안 한 거야?

- 룬.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줘. 우린 그저 좋은 친구야. 오누이 같은.

룬의 눈에서 파란빛이 사라졌다. 나를 잡고 있던 손에서도 힘이 빠져나갔다.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룬은 언제나 생기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한순간에 그는 모든 생기를 잃은 지푸라기 인형 같아졌다. 더 이상 룬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오늘은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빛을 잃어가는 룬을 남겨두고 나는 뒤돌아 뛰었다. 아까부터 뛰쳐나가고 싶었던 내 본능이 지금 나를 몰아치고 있었다. 심장이 터지도록 나는 뛰고 또 뛰었다.



바다는 늘 내가 용기를 얻는 곳이었다. 내 그리움을 달래는 곳이기도 했지만 늘 날 다독거리는 곳이기도 했다. 혼자 있고 싶을 때, 고국이 그리울 때, 엄마가 그리울 때도 나는 이곳으로 뛰어왔다. 파도소리가 내 소리를 가져가고, 내 울음을 가져갔다. 그렇게 이곳에서 나는 나를 덜어내곤 했었다. 오늘은 바다 앞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언젠간 일어날 거라 생각했던 일이 일어났는데 그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나는 하지 못했다. 감정이라는 게 이렇게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건 줄 알았더라면 미리 연습이라도 했을 텐데... 알렉의 검은 눈빛이 떠올랐다. 마치 그 눈빛에 갇혀버린 것처럼 바다도 검게 빛났다. 달빛도 오늘은 빛을 잃었나 보다. 오늘은 모든 게 밤처럼 어두워져 버렸다. 세상 모든 게...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차가운 밤바다에 담근다. 추워서가 아니라 열 때문에 떨리는 몸을 밤바다에 식히고 싶었다. 여태 한 번도 룬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룬은 그저 나의 남자 형제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두고 온 나의 오빠이자 동생. 범접하기 힘들었던 알렉보다는 늘 살가운 룬이 나는 편했고, 그에게서 두고 온 형제들의 온기를 느꼈었다. 그래서 난 룬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거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오누이에서 여자로 바뀌었다는 걸.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고 살았다. 그저 맘 편하게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룬뿐이라는 사실만을 알았을 뿐. 그게 룬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다르게 대했을까?


돌이킬 수 없는 하루였다.

푸르렀던 룬의 눈빛이 짙어지고 빛을 잃어가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룬의 심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 내 심정도 모르는데...



룬은 빛의 아이였다. 달빛의 아이. 헬렌이 룬을 가졌을 때 그녀의 수호신 달의 여신이 그녀를 축복했다. 빛나는 아이를 얻을 것이라고...



룬은 어머니에게로 갔다.

어머니는 그에게 모든 병의 치료제였다. 왕비는 룬을 안아주었다. 밝게 빛나던 아들이 빛을 잃어가는 걸 보는 왕비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진작에 경고를 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왕비 눈에 그들은 아직도 어린애들이었다. 오누이처럼 이쁘게 지내는 그들에게서 남녀 간의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그래서 방심했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음에도 아직 시간이 더 남은 줄 알았었다. 룬의 몸이 뜨겁다. 열병이 룬을, 그녀의 아들을 삼키고 있는 중이었다.

- 아가. 너무 아프지 마렴... 다 지나간단다.. 사랑이라는 것도 시간따라 다 지나간단다...

- 어머니.. 왜 저한테는 기회가 없는 거죠? 왜 루리프를 형한테 보내야 하죠? 형은 루리프를 사랑하지 않아요. 형은 아무 관심도 없다구요. 왜 그런 형한테 루리프를 보내야 해요? 왜?



룬은 이해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룬은 이해했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뮤리엔은 알렉의 나라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알렉이 왕이 될 거란 사실을 그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알렉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런 형에게 나라를 맡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꿈만 꾸었다. 루리프를 처음 본 순간부터는 룬은 사랑을 꿈꿨다. 아홉 살 여자 아이가 배에서 내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그녀의 눈에서 설렘과 혼란스러움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 여자아이가 놀래지 않게 웃어주었다. 환하게.. 룬은 알았다. 자신이 사람들을 웃게 한다는 걸. 자기가 웃으면 모든 사람들이 따라 웃는 다는걸. 알렉조차도 룬이 웃으면 같이 웃어주었다.

룬은 오늘 일어난 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그녀를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아줘...

그녀가 말했다. 어렵게 만들지 말라고. 그녀는 이런 날이 오리란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뭐였지?

- 우린 그저 좋은 친구야. 오누이 같은...

절대. 절대 그럴 순 없어. 절대!!





열이 룬을 감싸 안은 거 같았다. 불덩이가 룬을 둘러싸고 있는 거 같았다. 룬은 자기의 몸이 붕붕 떠다니는걸 느낀다. 몸이 너무 뜨겁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타 버릴 거 같아서 룬은 달린다. 저 차가운 밤바다에 몸을 식히고 싶었다. 몸을 식혀야 한다는 생각에 룬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익숙한 바다의 짠맛이 입안 가득 고인다. 열이 빠져나가면서 정신이 드는 거 같다. 몸이 점점 가라앉으며 룬은 마음이 차분해졌다.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한줄기 빛이 스며든다. 은은한 달빛이 룬을 감싼다. 불덩이 같던 룬의 몸에서 열이 조금씩 빠져나간다. 룬은 달빛을 받으며 바다 위에 떠있다. 빛을 잃어가는 룬에게 차가운 달빛이 비쳤다. 룬은 서서히 눈을 떴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한 채로 그녀를 보낼 수는 없다. 정해진건 없어. 정해져 있었던 것일지라도 그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니까.

알렉의 검은 눈빛이 달빛에 떠올랐다. 알렉은 루리프를 사랑하지 않아. 그녀를 사랑하는 건 나야!



룬은 눈을 감는다. 앞으로 그가 쟁취해야 하는 일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래도 단념할 수 없는 게 있다. 평생을 후회하며 살 거라는 게 확실한데 아무것도 안 한 채로 그대로 놔버릴 수는 없다. 사랑 앞에선 그 무엇도 걸림돌이 될 순 없었다. 룬의 마음에 여태까지 없었던 감정 하나가 생겨났다. 룬은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열에 들뜬 아들을 내려다보며 어미는 결심한다. 이 아이가 빛을 잃게 할 수 없다고...


작가의말

룬과 루리프의 마음이 다르게 움직이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루니엔의 아이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1 그리움이 그리움에게... 16.12.15 45 0 14쪽
40 틸리온 16.05.31 89 0 11쪽
39 얼마나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날까? 16.05.22 131 0 9쪽
38 연결점 16.05.10 72 0 10쪽
37 오! 브라더 16.05.03 142 0 12쪽
36 골드룬 vs 실버룬 16.05.01 140 0 12쪽
35 꼬마왕자 16.04.23 112 0 16쪽
34 사랑을 배신하다(3) 16.04.22 111 0 11쪽
33 사랑을 배신하다(2) 16.04.17 150 0 6쪽
32 사랑을 배신하다 16.03.27 143 1 9쪽
31 요룬의 왕국(2) 16.03.18 127 0 9쪽
30 요룬의 왕국 16.03.15 34 0 10쪽
29 여신의 방문 16.03.09 74 0 9쪽
28 비극의 시작 16.03.08 149 0 7쪽
27 칼멘 16.03.02 104 0 8쪽
26 슬픔은 그대로 두어라...(2) 16.03.02 107 0 11쪽
25 슬픔은 그대로 두어라... 16.02.29 162 0 13쪽
24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16.02.23 117 0 12쪽
23 루리프 3 16.02.22 148 1 9쪽
22 루리프 2 16.02.21 135 0 11쪽
21 루리프 16.02.18 71 0 10쪽
20 저마다의 속셈 16.02.17 120 0 13쪽
19 마나프 16.02.16 142 0 13쪽
18 불의 정령 16.02.16 147 0 9쪽
17 달의 정령 16.02.15 138 0 14쪽
16 너를 어디에서 찾을까... 16.02.14 139 1 17쪽
15 꿈속에서... 16.02.14 179 1 12쪽
14 지켜지지 못한 그녀 16.02.13 173 0 14쪽
13 첫날밤 16.02.12 144 1 11쪽
12 불의 아이 16.02.11 147 1 8쪽
11 다짐들 16.02.11 143 1 10쪽
10 루니엔 16.02.10 147 1 11쪽
9 로리엔 16.02.10 140 1 6쪽
8 왕의 묘수 16.02.09 189 1 9쪽
7 음모들 16.02.09 82 1 7쪽
6 시작된 감정 16.02.08 190 0 11쪽
5 운명의 불씨 16.02.07 92 0 6쪽
4 첫키스 16.02.05 128 1 6쪽
» 16.02.05 135 1 7쪽
2 저녁 만찬 16.02.04 176 3 10쪽
1 방문객 16.02.04 247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