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골렘(4)
47화. 골렘(4)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 난 백색의 너구리 신선장 밀키(삐유마랏)에게 아리스의 치료를 부탁했다. 밀키는 흔쾌히 아리스의 상태를 봐주었다. 동양의 침술사가 진맥을 하듯 아리스의 이곳저곳을 살피던 밀키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제일 안쪽의 뇌가 무너져내렸군요.”
라는 정확한 표현.
“한가지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치료 술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외부로부터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말이죠.”
“알겠습니다.”
“특히 치료진을 외부에 만들고 있는 만큼 각별하게 신경 써야만 합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난 가우시아를 불러 이와 관련된 조치를 시작했다.
안드로이드 300대가 동원되어 원형의 방진을 구축했다.
안드로이드들이 무협지에서 나오는 호법처럼 바깥을 향해 긴 장창을 들고 경계를 서자 든든한 마음이 들었는지 신선장 밀키가 치료식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너구리들 모두를 모아 거대한 제단 같은 치료진을 만들었다. 수박만 한 커다란 보주도 셋이나 꺼내 들었다. 그 외에도 한 상자나 되는 작은 보주가 쓰였다.
치료진은 거의 농구장 크기.
넓은 들판위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문양과 그 문양 사이에 박힌 보주.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세심하게 바닥에 작은 보주를 박고 치료의 술식을 엮어 커다란 마법진을 그렸다.
아리스를 보고 묻는다.
“준비됐지?”
“응.”
초코와 한번 치료에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리스도 덤덤하게 치료에 임했다.
그녀가 마법진의 한가운데 드러눕자 14명의 라쿤 족 친구들이 치료의 술식을 진행한다. 강강술래처럼 둥글게 손을 맞잡고 행하는 치료의 의식.
서서히 보주들에게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며 아리스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리고 아리스의 몸이 무지갯빛 오로라에 싸이기 시작한다.
“가우시아. 녹화 중이지?”
[네. 항해사님. 아리스 함장님의 소뇌와 나노 머신이 대체 중이던 뇌세포들이 서서히 수복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률은 18%입니다.]
“와! 생각보다 빠르네.”
치료의 의식을 살펴보고 있을 때, 예상치도 못했던 불청객이 난입했다.
절대로 방해받아선 안 될 의식에 참여한 이는 다름 아닌 골디.
금안의 나가.
“앗!”
“안돼! 골디!”
그 아이가 그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특히, 그 아이는 ‘외부인’이 아니었기에 안드로이드의 경계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금안의 나가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초코의 어깨를 향해 툭툭 튀듯 움직여 마법진의 가운데로 향했다.
드드드드.
불청객의 난입은 치료의 술식을 왜곡시켰다.
골디의 마법 특성은 전격.
골디의 가슴속 보주의 힘이 전격이 되어 치료 술식을 이끄는 마력의 힘에 전격을 추가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서 금안의 나가는 강강술레 춤을 추는 라쿤 족 사제들의 어깨를 타고 넘어 하늘에 떠서 밝게 빛나는 아리스의 가슴 위로 툭 하고 뛰어올랐다. 마치 웅크린 고양이처럼 아리스의 가슴 위에 앉아 금안의 두 눈을 반짝였다. 골디를 중심으로 새로운 마법진이 형성되며 하늘에서 번개가 골디를 향해 떨어졌다.
퍼엉!!
라쿤 사제들이 온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마법진이 깨지며 전격의 방전이 땅에서 U자를 그리며 튀어 올라 흘렀다.
하지만, 사고라 하기엔 아직 술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격은 마치 꽃처럼 혹은 별처럼 아리스와 골디를 감싸며 흘렀다. 그 방전의 흐름은 마치 강강술래를 하듯 아리스와 골디를 중심으로 맥동했다. 그리고 천천히 아리스가 땅으로 내려왔다.
“아리스!!”
내가 아리스에게 다가갔을 때는 아리스의 가슴 위에 앉은 골디가 ‘나 잘했지?’라는 표정으로 혀를 내밀어 자신의 금빛 눈을 닦았다.
아리스를 안으려 손을 내밀자 정전기가 팝콘처럼 튀었다.
“아리스!”
금빛으로 빛나던 아리스에게서 빛이 사라진다.
예전 녹색이었어야 할 머리가 밝은 금빛으로 찰랑거렸다.
그녀가 현자의 표정으로 천천히 눈을 떴다.
물끄러미.
그녀의 입이 열리며 말했다.
“누구?”
뇌를 포맷이라도 한 건가?
난 망연자실한 눈으로 아리스를 끌어안으려 했다.
하지만,
지지지지직!
“누구신데 갑자기 이러는 거죠?”
난 팝콘처럼 머릴 둥글게 태우고 앞으로 쓰러졌다.
***
“가우시아?”
[완료했습니다.]
“아리스는?”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아리스 함장이 가지고 있던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모두 치료되었습니다. 소뇌의 사라졌던 뇌세포들은 모두 재생되었습니다.]
“다행이네.”
[두 번째는 아리스 함장님이 원래 가지고 있던 나노 머신이 새롭게 생성된 뇌세포와 융합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노 머신은 뇌세포의 뉴런을 대체하며 원래 가지고 있었던 신경망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그러니 아리스 함장님의 기억 상실은 일시적이거나, 특별한 이유가 아닐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꾀병이다?”
[아리스 함장의 평소 행실이나, 표정으로 파악한 진실성 판단은 99.75%가 거짓입니다. 아리스 함장님은 기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아. 그렇겠지.”
[그리고 세 번째 아리스 함장님의 소뇌 하단부에 마력의 보주와 같은 성분의 조직이 새롭게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보주?”
[네. 특히 이 보주는 좀 특이합니다.]
영상이 출력된다.
아리스의 뇌를 3차원으로 보여주는 영상.
뇌가 천천히 돌며 금색으로 반짝이는 새로운 보주의 모습이 보인다.
“구가 아니네?”
[맞습니다.]
보주는 진주처럼, 당구공처럼 반짝반짝 원형의 구 형태를 띤다. 그건 내 몸에 자라고 있는 보주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영상으로 살펴본 아리스의 보주는 소뇌의 빈 공간, 뇌세포와 두개골의 틈 사이로 자유롭게 자라나 자릴 잡았다. 꼭 권투선수들이 입에 무는 마우스피스를 연상하는 형태.
“그리고 저 보주의 성분은 골디와 같다?”
[그렇습니다.]
천재.
골디는 마력과 함께 태어난 아이다. 그 아이는 잘 때도 거대한 보라색의 전격의 보주를 깔고 잔다.
나가의 전설이 말해주듯, 골디의 마력 사용이 숨 쉬듯 자유로웠다면 치료 술식의 마법진을 움직이는 마력이 저 금빛 눈에 그대로 보였을 것이다.
아니, 업글을 해줄 거면 허락이라도 받던가.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나저나.
원래 아리스의 푸른 듯 회색이던 눈빛은 골디와 같은 황금색.
그녀의 머릿결도 금색으로 반짝인다.
전격 마법을 패치 받은 거라면 내가 가장 위험하다.
날 기절시키고 그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가우시아.”
[네. 항해사님.]
“전격 공격을 방어할 허리띠 같은 걸 만들 수 있을까? 목걸이라도?”
[가능합니다.]
“좋아. 하나 만들어줘.”
[알겠습니다.]
난 시선을 돌려 열넷의 라쿤들을 바라봤다.
모두 기절한 듯 바닥에 눕혀 간호 중.
건강엔 이상이 없지만, 마력 탈진.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초코와 신선장은 원래 대머리였으니 상관없지만, 그들 모두가 이젠 대머리.
“좋아들 하겠네. 대업을 이루었으니.”
오크 바쿠얀이 트레일러로 찾아왔다.
“원정 준비가 끝났소. 이제 엘프들이 출정식을 하겠답니다.”
***
엘프의 군대가 원정을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젊은 전사들이 선두를 유지하는 가운데 나와 아리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만들고 부수기를 수없이 했던 골렘의 용골과 뼈대, 골렘을 쓸 무기를 들고 중간 본대를 유지했다.
최전방에는 크로마토 위장복을 입은 안드로이드들이 켄타우로스 안드로이드에 타고 이동 중. 안드로이드만 4천. 하이 엘프와 다크 엘프. 그 수를 다 합치니 일만오천에 살짝 모자라다.
“보주는 충분한가요?”
“최대한 모았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운용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만든 켄타사갈 골렘을 20기가량 만들 수 있습니다.”
켄타사갈.
내가 붙인 이름이다.
켄타우로스 + 사마귀 + 전갈의 형태이니 이해하기 편하잖아.
나만.
그래도 아리스의 거대 아리스 로봇을 무너뜨렸으니 위력이나 공격력만큼은 인정해줘야지.
쿵 쿵.
문젠 그 아리스의 거대로봇이 미련을 버리지 않고 대열의 후미에서 따라오고 있는 것. 아리스의 어깨에 탄 아리스가 내가 쳐다볼 때마다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녀의 어깨 위 나가 골디가 함께 엉덩이를 흔든다.
원정 3일 차.
가우시아의 인공위성이 이반의 안드로이드 2천 대와 늑대 부족 5천의 전사를 발견했다.
작전 회의랄 것도 없는 작전 회의
난 엘프의 여왕 나르델에게 말했다.
“들판에서 놈들의 숙영지를 발견했습니다.”
“좋아요. 어찌 대응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놈들의 안드로이드부터 먹겠습니다.”
“네?”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간 출력해왔던 화살촉새 드론이 까맣게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
늑대 족장 와카락은 이반이 이상했다.
매일 술과 향락을 즐기던 모습은 없고, 지금은 무슨 연구를 한다고 혼자 왕실에 틀어박힌다. 가지고 놀던 엘프도 더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산양족 죄수 하나를 잡아 뜯어먹고 있을 때 안드로이드 하나가 찾아왔다.
[와카락! 놈들의 위치를 찾았다.]
이반의 목소리.
이 이반이란 놈은 철의 괴인 누구에게든 정신을 옮긴다.
와카락은 고갤 깊게 숙이며 말했다.
“그럼 출정할까요?”
[가서 다 잡아 와!]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안드로이드 이천을 주마. 전투가 시작되면 내가 함께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늑대 여덟 부족 중 자신을 따르는 세 부족이 나섰다.
거기에 든든한 안드로이드 철인이 이천.
저번 라쿤의 신전에서는 와이번 때문에 피해를 좀 입었지만, 늑대는 새끼를 많이 낳는다. 먹이만 풍족하다면 숫자는 금방 복구될 것이었다.
그렇게 떠난 원정길.
10일째 되는 날, 눈앞에 이상한 괴물이 나타났다.
***
“아리스!!”
[날 말리지 마라아아아아아!!]
아드레날린 과용.
치료 술식이 부작용을 만들기는 개뿔.
저 인간 원래 저랬지.
조용히 접근하던 우리의 작전을 무시하고 아리스의 거대 아리스가 쿵쾅거리며 놈들을 향해 달렸다. 내 화살촉새 드론이 타깃을 정하기도 전이거든? 아니 왜!!
쾅!!
저 덩치를 날려?
뛴 거야?
“가우시아! 아리스의 링크 싱크로가 얼마지?”
[현재 1,500%를 넘었습니다.]
아. 맞다. 나노 머신이 뇌세포랑 붙어버렸지.
그렇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만든 켄타사갈 골렘과 싸울 때와는 또 다른 상태.
아리스는 훌쩍훌쩍 날아오르는 적 안드로이드를 파리 잡듯 쳐내며 늑대들의 숙영지를 짓밟고 있었다.
***
와카락은 자신의 숙영지를 부수고 날뛰는 거인 여자의 행태에 눈이 뒤집혔다.
“저 거인은 뭐냐? 뭐야!!”
“엘프들이 만든 골렘으로 보입니다.”
“조종하는 놈들이 있을 거야. 저 거대 골렘은 철인들이 상대하게 놔두고 우린 엘프를 찾는다. 뛰어!”
늑대들이 부채꼴로 숙영지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볼 내가 아니고.
“일제 사격.”
크로마토 포레스 위장복을 입은 안드로이드들의 지향 사격. 숙영지를 뛰어나오던 늑대들이 픽픽 쓰러졌다. 특히 윙 슈트를 입고 하늘을 돌며 쏘는 총탄은 놈들이 피할 재간이 없었다.
드르르르륵!!
“크아악!”
“하늘! 하늘이다.”
“하늘부터 막아!”
“크아아악!!”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늑대들이 쓰러진다.
그때 준비가 다 되었는지 우리 쪽 켄타사갈 한 마리가 골렘 화를 완성했다.
다크 엘프의 왕 네오드르의 외침.
“정령의 신 이스넨의 맹약에 따라 너를 내 권속으로 명한다.”
[마력이 다할 때까지! 난 당신의 권속이오.]
뼈대는 강력한 강철 와이어로 묶인 화강석. 거기에 흙으로 된 살이 뼈대를 지탱하고 겉은 편모 형태의 바위가 갑옷처럼 몸을 둘렀다. 두 개의 머리, 네 개의 팔, 여섯 개의 다리. 네 개의 팔엔 각각 장창 같은 무기를 들고 전갈 같은 꼬리가 머리 위를 방어한다.
“저··· 저건 뭐야아!!”
“괴··· 괴물이다.”
“꾸에엑!”
하지만 놈들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대 아리스를 붙잡기 위해 만들어낸 그물 형태의 안드로이드 대형.
불개미의 조직처럼 대각으로 엮인 안드로이드의 그물이 아리스를 향해 덮쳐올 때, 난 이반의 안드로이드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화살촉새 드론. 꼬라박!”
하늘 위에서 맴을 돌던 화살촉새 드론들이 선회를 마치고 급강하.
안드로이드의 안면에 하나씩 머릴 박는다.
펑펑펑펑펑!
[그러취!!]
구속상태였던 거대 아리스가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이단 옆차기를 켄타사갈에게 던졌다.
“?”
[덤벼! 2차전이다아아!!]
아니 왜 그걸 지금!
뭐. 이미 승부는 끝난 거니까 상관없으려나?
다크 엘프의 왕 네오드르를 바라보자 그가 껄껄 웃는다.
“상관없겠지요. 전투는 이미 끝났으니!”
아니. 진다고.
싱크로가 천오백이라고!
또 궁디춤을 춰야 한다고요오!!
바쿠얀의 얼굴이 핼쑥하다.
저 켄타사갈에 뭘 더 업글을 해야 이기지?
늑대 족이나 이반의 안드로이드 2천 기엔 아랑곳없이 우린 다시 골렘 전에 집중했다. 저걸 잡지 못하면 오늘 밤엔 전기구이가 될지도 몰랐다.
“이겨! 무조건 이겨! 물어 뜯어어!!”
얼굴. 얼굴이 너무 순해.
악어든 상어든 얼굴부터 뜯어고치자.
오기가 하늘을 뜯어 오를 무렵 거대 아리스의 양발이 드롭킥을 날린다.
이 엉망진창인 와중에 정신이 멀쩡한 것은 가우시아뿐.
[항해사님. 일군의 늑대 족 무리가 도주를 시작합니다.]
도주?
인공위성의 영상을 바라보며 난 실소를 날렸다.
“켄타우로스 보내. 저놈들만은 사로잡는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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