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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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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불시착한 김에 행성정복한 썰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21.07.26 15:13
최근연재일 :
2021.10.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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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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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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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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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화 - 불시착

DUMMY

001. 불시착



푸쉬익― 츠컥!


동면 캡슐의 슬라이더가 열리며 강제 해동이 시작됐다. 캡슐에 누운 나에게 연결된 호스에서 내 몸에 있던 인공부동혈액이 빠져나가고 외부 조혈모 배양기에서 배양된 신선한 피가 수혈된다. 캡슐 내 냉각 젤은 온열기에 의해 데워지며 형태가 흐무러졌다. 온수에 빠진 몸이 천천히 온기에 깨어난다.


[긴급 해동을 위해 각성제와 아드레날린 호르몬 칵테일이 투입됩니다.]

[뇌 및 신체 생명 유지, 그리고 장기 세포 활성화를 위한 전자극 시퀀스가 시작됩니다.]


호르몬 및 각성 약물의 투입.

뇌세포를 깨우는 전자극.

그리고 제세동을 위한 전기 충격.


“크아악!”


가슴이 크게 열리며 척추가 접힌다. 속이 뒤집히는 느낌.


-우에엑!


일어나기가 무섭게 뱃속에 들어있던 모두 것들을 겨워 냈다. 부동젤과 함께 폐 깊숙이 꽂혔던 파이프들이 연신 입에서 토해져 나온다.


“허억. 허억. 뭐야?”

[해동되었습니다. 동면 부작용 및 장애 예방을 위해 보조제와 함께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십시오.]


정신을 차린 난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습관처럼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꼼지락거렸다. 동면에서 해동되고 가장 잘 망가지는 곳이 이 말단 조직의 모세혈관. 열심히 움직여야 탈이 없었다. 옆에 튀어나온 물병을 잡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후우욱. 무슨 일이지?”

[안녕하세요. 레오 항해사님. 긴급 비상조치에 의한 강제 해동입니다.]

“왜 나부터 깨운 거야?”

[함장님께서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항해 전반에 대한 권한은 대부분 항해사님이 결정권자입니다.]

“아. 그랬었지···.”


함선 관리용 AI, 가우시아 2.0의 목소리는 상황이 급하다는 의미로 들렸지만, 목소리는 너무도 차분했다. 가장 가까운 모니터로 달려가 접속인증부터 시작했다.


“지금 상황을 브리핑해줄 수 있을까?”

[최근 운항 기록을 출력합니다.]


정보 인증과 동시에 화면 가득 선박의 현 문제와 항해일지가 빠르게 출력됐다. 동면실의 작은 모니터로는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긴급 상황 경고 패널. 붉은 경고창이 무수히 중첩되어 쏟아져 나온다. 이래선 내용을 알아볼 수조차 없다.


“여기선 힘들겠네. 조타실로 이동해야겠어.”

[레오 항해사님. 함장님을 깨우시겠습니까?]


난 옆의 동면 캡슐을 살폈다. 앳된 얼굴. 녹색의 풍성한 머리와 긴 속눈썹의 미소녀가 편한 미소를 머금고 반라의 모습으로 자고 있다. 아니 빙하 속 얼음의 공주처럼 누워 있었다.


“깨워야지. 이 배의 함장은 내가 아니라 그녀니까.”

[알겠습니다. 함장 아리스 엘리아데의 해동 시퀀스를 시작합니다.]


그녀가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겨를이 없다. 나는 잘 펴지지 않는 다릴 두드려가며 조타실을 향해 달렸다. 왜인지 조타실로 향하는 복도는 미세하게 휘어있었다. 휘청거리며 걷던 나에게 함선의 용골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기기기기긱!/


‘이거 상태가 심각한데?’


조타실로 통하는 자동문도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다. 문 사이를 겨우 빠져나온 난 조타실로 뛰어들어 조종 모듈을 하나씩 깨웠다.


“가우시아. 함선 피해 상황부터 다시 확인할게.”

[알겠습니다. 항해사님. 피해 상황을 3차원 영상으로 출력합니다.]


조타실 전면의 테이블 위로 함선의 전체 모습이 입체로 투영된다.

함선의 중앙과 후미의 엔진, 기타 다양한 부분이 적색 경고로 점멸 중인 상황. 창밖으론 부서진 함선의 파편들이 무수히 떠돌고 있었다. 특히 중앙에 위치해야 할 차원 도약용의 중력 엔진은 극소블랙홀과 함께 유실되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함선의 용골과 선체 구조도 12%가량 휘어있는 상태. 운행 및 자가 수리도 불가 판정. 수리까지의 소요 시간은 계측도 되지 않았다.


“항해일지 출력해.”

[항해일지를 출력합니다.]


화면 가득 떠오르는 그래프와 도표들, 내 눈이 번뜩였다. 머릿속에 수치가 입력됨과 동시에 운항 그래프의 산술식이 자동으로 수정된다. 내 ‘메타인지’가 빠르게 이 상황을 ‘시공간 도약 중 중력파 간섭’이라고 판단했다. 상상 속에서 아차원 공간을 도약하던 함선이 거대한 중력의 파도에 전복되는 모습이 보였다. 중력 엔진이 터져나가며 극소블랙홀이 어디론가 빠져나가자 함선이 아차원 공간에서 튕겨진다.


난 화면의 한쪽 그래프를 확대하며 가우시아에게 물었다.


“이 부분 설명 좀 부탁할게.”

[반중력 엔진이 자세교정 때문에 극소블랙홀의 회전수를 3천472번 미세 조정했습니다. 124번의 큰 중력계수 변이를 확인하였고 추력을 변경하여 이를 버텨냈습니다.]

“중력파 간섭?”

[맞습니다. 중력파 웨이브 때문에 반중력 엔진이 섭동에 걸리며 예상 궤도를 이탈, 회전수의 오차율이 급증하였습니다. 그 여파로 제어 불능. 극소블랙홀이 소멸하며 우주선이 항로의 시공차선에서 튕겨 나왔습니다.]

“그래서 엔진이 날아갔다고?”

[그렇습니다. 항해사님.]


반중력 엔진은 잃었지만, 그 엔진의 핵인 극소블랙홀이 이 우주선을 집어삼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살아난 게 기적이군.”


그때 함장 아리스가 조타실로 얼굴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으아앙! 무슨 일이야. 왜 나 혼자 둬! 나 무서웠어!!”

“어서 와. 함장.”

“함장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어서 와. 아리스.”


난 의자 아래에서 비상 보온용의 은박 필름을 꺼내 그녀를 감싸주었다.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데?”

“대규모 중력파 간섭.”

“우리 차원 항로에? 그렇게 특별할 게 있었나? 그런 위험은 차원항로 운용국에서 고지 받지 못했는데?”

“내가 볼 때는 아무래도 초신성 폭발보다는 근처에서 블랙홀끼리 충돌한 거로 보여. 대략 예상 거리는 1만3천 광년.”

“블랙홀 충돌?”

“정확히는 나도 모르겠어. 단 지금 계산한 수치로는 그럴 거 같다는 단순 예측이지.”

“레오의 예측이라면 틀릴 리가 없잖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날 바라봤다. 무한 신뢰의 눈빛. 난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중력파가 거의 쓰나미 급으로 항로 전체를 흔들었어. 즉 갑자기 나타난 큰 파도에 우리 배가 너무 빠르게 달리다 전복된 거지.”

“우리만?”

“같은 항로로 우리 앞에 차원 도약 중이던 팔라스 급 수송함 6대가 있었고 모두 우리보다 먼저 시공으로 튕겨 날아갔어. 구조신호도 확인했고. 싸구려 엔진을 탑재한 팔라스 급은 회피 기동도, 차원 벽도 넘지 못했을 테니까. 그들은 아마 시공의 미아가 됐을 거야.”

“우리가 안 죽은 게 천만다행인 거네?”

“아버님께 먼저 감사드려. 엔진에 돈 들인 값은 한 거야. 지금 상황이라면 시공에 영원히 갇혀 우주가 소멸할 때까지 영생을 누리거나, 차라리 냉동인 채로 아무것도 모르고 죽는 게 행운이었을지도 모르지.”

“흠. 무서운 소리 하지 마. 그런 행운이라면 절대 사양이야. 난 최소 5백 살은 살고 싶다고.”

“그럼 냉동 캡슐에서 한숨 더 자고 오던지.”

“거 말이 참 정 없다?”


그녀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녀가 창밖에 부유 중인 함선의 파편들을 보며 묻는다. 다시 걱정 가득해진 눈빛.


“상황은 어때?”

“중력 엔진 유실, 플라즈마 엔진은 기능 정지. 지금은 그냥 중력이 이끄는 데로 유랑하며 흘러가는 중이지.”

“저기로 말이지?”


그녀의 턱짓에 조타실 앞 유리로 보이는 푸르고 거대한 행성.

세 개의 달을 머리에 이고 오색 운무에 가려 천천히 돌고 있는 행성이 보였다. 그 행성의 중력에 수송선은 천천히 끌려가고 있다. 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가우시아! 저기 충돌까지 얼마나 남았지?”

[이틀, 정확히 47시간 15분 28초입니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매정하게 들렸다.




***




우주선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3백여 대의 드론과 수많은 수리용 로봇들이 부지런히 수선하고 있었지만, 아직 함선 후면의 플라즈마 엔진을 구해낼 상황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줄래?”


코맹맹이 귀여운 목소리의 함장 아리스. 지금 그녀의 녹색 풍성한 머리는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마치 커다란 브로콜리 같았다. 인공 중력도 들어오지 않아 무중력에 더욱 풍성하게 사방으로 뻗는다. 그 아래 커다랗고 예쁜 두 눈이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날 주목했다. 따듯한 코코아 팩을 입으로 가져가자 귀여운 볼이 다시 빵빵해진다.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은박의 보온필름에 싸인 몸매는 성숙미를 물씬 풍겼다. 난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녈 보며 말했다.


“앞으로 충돌까지 대략 42시간이야. 무조건 추락은 막아야지. 내 생각은 우주선을 온전히 살리는 건 불가능해. 화물도 마찬가지고. 만약 저 행성에 불시착하더라도 저 대기권을 뚫다간 대부분이 유실되거나 죄다 타버릴 거야.”

“레오니까 다른 계획이 있을 거 아니야?! 계속 설명해줘!”

“음. 최소한 조타실과 중앙컴퓨터, 우주선의 본체와 후면의 플라즈마 엔진은 살려서 저 행성의 궤도 위에 올려뒀으면 싶어서. 충분한 속도가 필요하지만, 잘 해서 궤도에만 오르게 되면 수리 로봇이 계속 관리하며 조금씩이라도 우주선을 살려내겠지.”

“그리고?”

“나머지는 살림을 왕창 꾸려서 저 별로 내려가야지. 다시 동면할 거 아니라면.”


그녀의 눈이 창 너머 가득 보이는 별의 운무에 시선이 집중된다.


“저 별에서 살 수는 있어?”

“자료를 보니 300년 전에 저 별에 테라포밍 시도가 있었어. 성과가 있었는지 대기질은 충분히 호흡 가능. 지구와 거의 같아. 식물도 자라고 있고.”

“그럼 1차는 성공했다는 이야기네?”

“그렇지. 하지만 구름이 너무 두꺼워서 여기에서 생태계 조성 파악까지는 불가야. 응답도 따로 없고.”

“하다 버렸나?”

“모르겠어. 지금은 시간이 너무 부족해. 그래도 살려면 일단은 내려가야 해. 아니면 냉동인 채로 탈출선을 타고 마냥 기다리며 미래로 가든지.”

“난감하네···. 자면서 기다린다면 몇 년?”

“천 년 단위야.”

“······.”


그녀가 자신이 먹던 코코아를 내밀었지만, 난 고개를 흔들었다. 방울방울 삐져나와 부유하는 코코아를 그녀가 후웁하며 빨아드린다.


“속도가 필요하다면서? 방법은 있어?”

“엔진이 죽은 상태이니, 후미의 용골을 폭파해 화물 컨테이너의 무게만큼 추력을 얻게 했으면 싶어.”

“시뮬레이션은 해 봤어?”

“물론이지. 성공확률 13.76%. 하지만 나에게 8시간만 주면 70%까지는 만들 수 있어.”

“그럼 차후에라도 버려진 화물을 다시 찾을 수는 있나? 나 그거 잃어버리면 아빠한테 진짜 혼나는데. 저건 보험도 없단 말이야.”


우주적 규모의 재벌가답다 싶은 반응. 아틀라스 급 수송선과 짐을 잃으면서도 그녀는 아빠에게 혼나는 게 먼저 걱정이다. 이 최신식 아틀란스급 수송선만 해도 코로니 몇 개의 가격일 터였다. 튕겨 나가버린 극소블랙홀만 해도 그 가격은 천문학적일 텐데. 얼마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

“저 화물들 진짜 뭐야?”


그녀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우주 연방에서 보안등급까지 AAA로 쳐서 관리하는 거 보면 대충 알잖아?”

“군용인가? 무기?”

“뭐. 그렇지.”

“혹시 저 별에 던져서 유실되어도 괜찮은 물건들이야?”

“어쩌면. 우리 생존엔 꽤나 유용할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뭐냐고요.”

“전투용 안드로이드와 4등급 클론 생성기.”

“와우!”

“하지만 활용 코드가 없어.”

“그건 걱정 마. 출입 코드를 훔치는 거야 항해사에겐 기본이니까. 그래서 몇 마리나 운송 중인 거야?”

“10만.”


내 눈이 한번 더 커졌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뭘 그까짓 걸로 놀라냐는 눈치.


“테라포밍도 가능하겠는데?”


내 짧은 헛소리에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게. 저 별이라도 팔아야 지금 손해 본 걸 만회하지.”

“그거 재밌겠네. 그럼 불시착한 김에 테라포밍이나 할까?”

“정말 그럴까?”

“다른 선택지도 없잖아···.”


우리는 천천히 돌고 있는 행성의 운무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구름 사이로 번쩍이며 천둥이 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느낌.


“우리가 저 별의 신이 되자.”

“불시착한 신? 왠지 웃기다.”

“지구도 어쩌면 그렇게 시작했을지도 모르잖아.”

“하긴. 우주는 대부분이 운이니까.”


그녀가 내 옆에 꼭 붙어왔다.

그녀의 녹색의 머리처럼 저 별을 신록의 자연으로 덮는다면 어떨까?

난 가만히 그녀의 깊고 큰 눈을 바라봤다.


“좋아. 저 별을 너에게 줄게.”

“꼭 자기 것처럼 말한다?”

“원래 땅장사하는 사람들이 물건 보면 다 그래.”

“피이~!”

“그리고 장담컨대 저 별은 곧 네게 될 거야.”


그녀가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응. 기대할게.”




***



순차적으로 폭파되며 화물이 분리되는 3D 영상이 반복해서 보였다. 난 영상을 돌려보며 아리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 낙하 시엔 충격을 최대한 줄이는 쪽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저 컨테이너들은 일단 떨어뜨리고 멀쩡하길 빌어야지.”


내 설명에 그녀가 동그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어떻게? 자유 낙하시키면 부서질 텐데? 하중을 견디겠어?”

“낙하산으로.”

“낙하산? 그게 뭐야?”

“우산 같은 거.”

“우산? 우산은 또 뭐지?”


잘은 모르지만, 그녀 부모는 개인 소유의 스페이스 코로니를 가지고 있을 만큼 대 부호, 초엘리트 출신. 그녀라면 과거의 유산이 된 지 오래인 지구의 날씨 같은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을 터였다. 단지 유전자에 각인된 잠재력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부는 능력을 따라서 그녀를 이 함선의 소유주이자 함장으로 여기에 있게 했다. 이 차원 운항도 어찌 보면 그녀에겐 잠깐의 유희였을 터. 성인식 선물로 아틀라스 급 함선을 받았다니···.


낙하산과 우산, 저장된 이미지 몇 개를 보여주자 그녀가 빠르게 이해했다.


“정말 원시적이네.”

“효과는 있어.”

“그럼 이젠 정말로 단둘이서 저 별에서 살아야 하나?”

“싫어도 어쩔 수 없지.”


그녀가 입술을 다시 삐죽 내밀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표정만 보면 오히려 지금이 진심으로 원하던 바 아니었을까? 그걸 내가 몰라줬고? 왠지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


“구조대 도착은?”

“아공간 통신은 먹통이니까 대략··· 전파 통신으로 뿌려서 광속으로 오백 년 정도 가야 가장 가까운 거주 행성에 우리 배의 구조신호가 도착할 거야.”

“그럼 진짜로 왕복 천년?”

“그것도 빠르면.”

“하! 아까 이야긴 난 진짜 농담으로 알았지···.”


그녀가 멍하게 천년이란 시간의 길이를 가늠해보더니 말했다.


“좋아···. 저 별에서 단 둘이···.”


얼굴을 붉히며 웃는 그녀의 미소에 난 이상하게 등골이 오싹했다.

이전 역사 속에 사라진 그 ‘결혼’이란 제도가 떠올라 몸이 드드드 떨렸다. 돌이킬 수 없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랄까··· 차라리 지금 당장 동면 캡슐로 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눈치를 슬슬 보며 난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승조원들을 깨울 생각은 없어?”

“그들을 깨우면 너부터 죽이려 들 걸? 죄다 날 감시하려고 보낸 사람들일 텐데?”

“헤베 박사는 그래도 깨우는 쪽이 좋지 않을까?”

“그 멍청이를?”

“그래도 그는 생물학자잖아.”

“흐음···.”


그녀가 가우시아의 스크린을 열고 동면 캡슐과 관련한 이런저런 명령을 넣었다. 날 보며 묻는다.


“박사는 언제 깨우지? 지금?”

“아니. 내려가서!”

“아하하. 인질 같네. 깨어나면 레오가 욕 좀 먹겠어.”

“괜찮아. 그라면 아마 만세를 부르며 환영할 거야.”

“하긴. 지나가는 별마다 생물만 살면 내려달라고 그렇게 보챘었으니까.”

“그럼 시작한다.”

“응.”


난 그녀를 붙잡아 무중력에 몸을 띄우고 기폭장치에 스위치를 눌렀다.



***



소리는 없지만, 폭발은 순차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차례대로 꼬리를 자르듯 화물은 블록별로 떨어져 나갔다.

그 떨어져 나간 화물의 질량만큼 우주선의 본체는 속도를 얻었다.


떨어져 나온 화물 블록들은 급조된 대형 낙하산과 내화 블록을 배에 깔고 하나씩 행성으로 낙하했다. 어디 계곡에 처박히거나 바다에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찾아낼 수 있도록 신호기를 하나씩 붙인 채. 수백 개의 컨테이너가 줄을 맞춰 행성 벨로나의 대기에 유성우를 만들었다.


“상태 양호, 이대로라면 문제없겠어.”


가져갈 수 있는 모든 짐을 화물 운송용 소형 수송기에 옮긴 후 바라본 우주선의 잔해는 마치 거대한 공룡의 화석 같았다. 거대한 시체에 붙은 날파리 떼처럼 여러 대의 수리 로봇과 드론들이 열심히 선체를 고치고 있었다. 메인컴퓨터와 여러 지원용의 설비까지 죄다 들어내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오히려 본선이 우주에서 우릴 지원하는 쪽이 더 유리할지도 몰랐다. 특히 천년 후, 어쩌면 구조대에 의해 구조될 저 15명의 선원은 절대로 이 별에 데려가고 싶지 않다는 아리스의 결정엔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결정에 그들은 우주에 남겨 천년 후, 미래로 보낸다.


“출발할게.”

“응!”


4층 높이의 화물 운송용의 소형선이 마치 쇠똥구리처럼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꼬리에 물고 강하를 시작했다. 컨테이너 안에는 오백 대의 안드로이드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




“내려간다.”


미세한 떨림, 대기와의 마찰열에 의한 불꽃이 창문 가득 우릴 반겼다.


구구구구구-


성층권과 열권의 대기를 뚫자 화물선의 엔진이 역추진하며 살짝 속도를 줄였다. 두꺼운 구름이 시야를 가리며 비를 뿌린다.


저 거대한 두께의 구름 아래 무엇이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300년 전 테라포밍을 시도한 인류의 기록만 전해지는 외지행성이란 것뿐. 하지만 시공의 터널에서 퉁겨졌으니 지금이 어떤 시간대인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 그 300년이 진짜 300년일지···, 300만 년일지···, 3억 년일지···.


그나마 이 별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최대의 행운. 불행이라면 두 달 전. 화성에서 파친코 기계가 구슬을 쏟아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 돈으로 고급스러운 술집에 미친 척하며 호기롭게 들어가지도 말았어야 했다. 술에 취해선 그녀 앞에서 어설픈 카드 마술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괜히 한눈에 반했다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지도 말았어야 했다.


‘역시 우주는 운빨 게임이야.’


쿠쿠구궁!


거대한 구름 속에서 천둥이 불을 뿜는다. 우리는 그 속으로 미끄러지듯 하강했다. 구름이 조각나며 드넓은 녹색의 대지가 우릴 맞이했다. 원시의 수림이 하늘 아래에 펼쳐졌다.


불시착한 김에 테라포밍.

오늘이 우리 사업의 첫 시작이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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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화 - “한 놈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잡아라. 알겠지?” +8 21.08.14 480 14 14쪽
24 23화 - 크크크! 이거 너무 재밌잖아. +9 21.08.13 492 18 16쪽
23 22화 - 나야, 매튜, 너희들이 우주에 버린 요리사. +4 21.08.12 517 21 19쪽
22 21화 - 저 아이의 줄기세포를 추출해 줘. +10 21.08.11 492 19 13쪽
21 20화 - 금안의 아이가 태어났소! +8 21.08.10 536 22 12쪽
20 19화 - 함장님의 바이탈 사인에 이상이 있습니다. +12 21.08.09 523 22 14쪽
19 18화 - 하아. 이 새끼···. 내 이럴 줄 알았지. +4 21.08.08 528 22 16쪽
18 17화 - 모두 무기 버리고 꼼짝 마! +6 21.08.08 550 17 13쪽
17 16화 - 그 지형은 유독 유별났지······ +6 21.08.08 540 21 16쪽
16 15화 - 지금 너한테 깔린 모드가 총 몇 개니? +12 21.08.07 607 20 15쪽
15 14화 - 당신들의 이 수호신은 철의 골렘입니까? +6 21.08.07 625 25 17쪽
14 13화 - 최초 모델의 출력까지 2시간 12분이 소요됩니다. +4 21.08.06 616 28 13쪽
13 12화 - 아무튼 고맙군. 좋은 몸을 새로 주어서 말이야. +6 21.08.05 679 28 22쪽
12 11화 - 딱 봐도 개발자네. +8 21.08.04 691 30 16쪽
11 10화 - 으악! 이게 뭐야? +6 21.08.03 711 30 21쪽
10 9화 - 잠깐 이 데이터를 살펴봐 주세요. +12 21.08.02 759 29 20쪽
9 8화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일까? +6 21.08.01 774 32 16쪽
8 7화 - 전투는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14 21.07.31 851 31 15쪽
7 6화 - 클론 배양기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14 21.07.30 991 37 15쪽
6 5화 - 언제 출발할 수 있는데? +22 21.07.29 1,203 49 21쪽
5 4화 - 외계 종족의 언어 구조와 해독이 완료되었습니다. +14 21.07.28 1,340 58 13쪽
4 3화 - 이 생명체가 지구와 똑같다고? +10 21.07.27 1,743 59 15쪽
3 2화- 안전할 것 같은 착륙지를 스캔해줘 +24 21.07.26 2,218 80 18쪽
» 1화 - 불시착 +18 21.07.26 2,801 103 19쪽
1 프롤로그 - 무섭도록 평범한... +28 21.07.26 3,168 116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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