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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불시착한 김에 행성정복한 썰

웹소설 > 작가연재 > SF, 판타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21.07.26 15:13
최근연재일 :
2021.10.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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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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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6화 - 이제 넌 내꺼야.

DUMMY

026. 이제 넌 내꺼야.





하이 엘프이자 상급 전사인 파르넬

그녀는 차원의 틈을 퉁겨지듯 빠져나왔다. 하지만 나온 곳은 하늘. 대략 100m는 공중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


“칫!”


그녀는 급하게 자신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장법으로 바닥을 향해 마력을 뿜어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떨어지는 속도를 모두 상쇄시키진 못한다. 낙법을 써보지만, 바닥에 충격한 그녀는 몇 번을 튕기며 땅을 굴렀다.


“크핫!”


그나마 아래쪽이 경사가 있는 언덕의 사면이었기에 다행히 그녀는 살 수 있었다.


“쿨럭. 쿨럭!”


찢어질 듯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으며 그녀는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평범한 들판, 군데군데 있는 물웅덩이는 거울처럼 푸른 하늘을 비춘다. 너무도 아름답고 평온한 느낌에 방금까지 목숨을 걸고 전투를 준비하던 마음이 이질감을 느꼈다. 급하게 가슴에 품었던 두루마리를 꺼냈다.


몇 번을 접어 만든 커다란 세계 지도와 여러 종류의 명령서.

통역 마법이 그려있는 마법진. 나가 족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장로들이 파악했던 기계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 전황과 앞으로의 전투 계획.


지도에 표시된 위치를 가늠해보니 지금 자신은 엘프의 도시 [아누라난]에서 남동쪽으로 80km, 미루스 평원에 있는 듯싶었다. 엘프가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하루 60km가 한계. 그것도 몇천 km를 가야 할지 모를 타 대륙의 험지를 가야 한다는 걱정에 그녀는 눈앞이 캄캄했다.


‘걸어선 너무 늦어.’


그녀는 언덕 위로 올라 주위를 살폈다.

떨어질 때 다친 갈비뼈가 은근 아려왔지만, 지금은 달리 치료할 방법이 없다.


“후우. 괜찮아. 침착해.”


저 멀리 사슴들이 반쯤 물에 잠긴 채 풀을 뜯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그쪽을 향해 쩔뚝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




바둑판처럼 생긴 거대한 동물원.

하지만 현재 폐허가 되어버린 모습. 층마다 있어야 할 동물은 대부분 죽어 뼈만 남았다. 스케빈져로 활동하는 원시 동물들과 곤충의 유충이 사체의 구멍마다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그리고 버려진 동물원의 한 가운데, 클론 배양기의 컨테이너 앞에 네오이데아의 시민이자 의사인 알렉사가 비릿한 미소로 자신의 랩톱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잡았어!”


랩톱에는 천여 대의 안드로이드가 거대한 괴물에 들러붙어 압박하는 모습. 이제껏 보지 못한 크기의 날개와 외형. 거기에 입에선 불까지 뿜는다. 안드로이드 수십 대가 불꽃에 폭발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계속 명령을 해댔다. 안드로이드들은 튼튼한 사슬과 천으로 괴수의 머리를 꽁꽁 싸매고 날아가지 못하게 완벽하게 구속했다.


어깨까지의 높이만 해도 20m, 머리부터 꼬리까지는 150m는 될 듯한 거대한 파충류. 앞발은 프테라노돈과 같은 피막형의 날개. 뒷다리와 꼬리는 알로사우루스만큼이나 크고 강하다. 거기에 입에선 불도 뿜는다.


와이번.


그녀가 이제껏 모아온 생물들은 우스울 전투력.

그녀는 확실하게 제압된 놈의 모습을 보며 클론 배양기가 있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배양기 속을 유영하는 작은 생물을 살핀다.


배양기 속 생물은 환형동물.

지렁이나 거머리같이 생겼지만, 특이한 것이 있다. 이 생물은 절반만 동물이고 나머지 절반은 기계수. 반도체와 보드, 감각 센서와 신경망, 그리고 여러 기계 촉수들과 함께 환형동물을 파고든 인공 신경 다발. 기괴한 형태로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귀여운 놈들. 어서 나와라. 네 먹잇감을 잡았단다.”


환형동물이 꿈틀거리며 배양기 위쪽으로 헤엄치더니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그리고 툭 그녀의 어깨 위로 떨어진다.


“그래. 착하지?”


그녀는 그 괴이한 생명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자. 이제 일할 시간이야.”


어깨 위에 얹고 컨테이너를 빠져나와 이동식 드론 바이크에 몸을 실었다. 강력한 바람이 바닥을 때리며 바이크는 금방 하늘 위로 치솟는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수없이 많은 익룡이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자!”


익룡은 마치 편대를 이루어 비행하는 것처럼 V자로 줄을 맞추어 그녀를 호위하듯 날았다. 그 익룡의 머리와 목 사이엔 그녀의 어깨에 있는 것보다는 작은 기계수와 합성된 기생 생물이 하나씩 붙어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


천여 대에 가까운 안드로이드가 붙잡고 있는 와이번. 놈은 무수한 사슬에 감겨 숨을 후욱후욱 뿜어내고 있었다. 가슴에 있는 염수 탱크도 바닥났는지 더는 입에서 불꽃을 뿜어내지도 못했다.


알렉사는 천천히 눕혀져 꼼짝 못 하는 와이번의 비늘을 쓰다듬으며 걸었다.

늠름한 자태, 강인한 근육. 생물이 몸을 비틀며 내뿜는 원시의 생명력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멋지네.”


그녀가 와이번의 목덜미 쪽에 서서 말했다.


“가라.”


그녀의 명령에 어깨에서 꿈틀거리던 기계가 반인 기생생물이 손을 타넘고 와이번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강철보다도 튼튼한 비늘의 사이를 비집고 살로 파고 들어갔다.


“좋아. 아주~ 좋아!”


그녀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녀의 눈이 반달이 되어 거대한 와이번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넌 내꺼야.”




***




꾸역꾸역 불어나 이젠 거의 50개의 트레일러를 달고 움직이는 열 대의 트럭이 정차했다. 무한궤도는 울퉁불퉁한 늪지의 땅에서도 무리 없이 달렸다. 호수 같은 늪지의 물웅덩이를 피해 구불거리며 달리길 반나절, 금빛 물결 가득한 황금색 평야를 만났다.


“레오, 앞에 뭐가 있는데?”

“정지!”

[알겠습니다. 항해사님.]


저 앞에 이상한 모양의 형상이 황금색의 들판에 우뚝 서 있다.


“사람이야?”

“마치 모아이 석상 같군.”


사람의 형상을 갖춘 바위들.


크기는 제각각. 큰 것은 거의 20층의 건물만 하고 작은 것은 4~5m급. 푸른 들판 가운데 서서 발목이 땅에 박혀있다. 담쟁이 넝쿨과 기생 식물이 기어오른 모습. 거인들이 녹색의 이끼가 낀 다리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하늘을 이고 서 있다. 태곳적부터 살아온 신의 모습 같았다.


바쿠얀과 초코가 놀란 눈으로 트럭의 루프탑으로 오른다.


“천천히 접근해.”

[알겠습니다. 항해사님.]


거대한 석상은 두 종류.


크기와 형태가 대별된다. 하나는 퇴적암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형태, 가로의 층을 따라 풍화가 진행되며 기괴한 모양으로 뼈대가 남았다. 다른 한쪽은 검은색의 현무암. 숭숭 뚫린 구멍 사이 모아이 석상처럼 투박한 이목구비가 보인다.


그 둘은 서로 전투를 하듯 손을 맞대고 있거나 어깨를 밀며 겨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굳었다. 몇천 년이 지난 듯 이젠 자연이 되었다.


“꼭 건전지 다 된 장난감 같은데?”

“정말 그렇네.”


난 엑소슈트에 새로 출력한 로켓 추진용의 점프 팩을 달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기둥처럼 서 있는 거인을 향해 날아올랐다. 허리쯤이었을까? 하얀색의 둥그런 바위가 눈에 걸린다. 난 그곳에 내려서서 거신의 허리에 박혀있는 하얀 구슬을 꺼냈다. 배구공만 한 구슬은 역시나 마력석, 이미 색이 퇴색된 보주는 푸석푸석하게 미세한 구멍이 나 내가 들어 올리기가 무섭게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내 시각을 공유 중인 아리스에게 물었다.


“봤어?”

[어. 바쿠얀과 초코도 옆에서 보고 있어.]

“마력의 보주가 맞지?”

[정말 오래되어 보인다는데?]

“골렘?”

[자기들도 그렇게 생각한 데.]


내 예상에 이것들은 보주의 마력이 다 하자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정지해버린 골렘. 이렇게 많은 숫자의 골렘이 전투를 벌였다면 어떤 전쟁이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가우시아. 이놈들 얼마나 오래된 거지?”

[확인해보겠습니다.]


트럭에서 조사용 드론 몇 대가 거친 소음을 내며 날아간다. 난 혹시나 한 마음에 화살촉새 드론도 주위에 뿌렸다. 수백 마리의 화살촉새 드론이 둥근 원형으로 주위에 퍼져나가는 모습도 생각보다 장관이었다.


[항해사님?]

“어? 어때? 나왔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Radiocarbon dating)의 결과 앞에 있는 바위에 박힌 마력석의 생성은 2만 년~2만2천 년 전입니다.]

“뭐?”


유기물에 포함된 탄소-14의 반감기는 약 5730년, 그러니까 이 부스러질 정도로 삭아버린 보주에는 1/16 정도의 탄소-14만 남아있다는 이야기였다.


“2만 년?”

[그렇습니다.]


이게 뭐 어떻게 되는 거야?


아누카[ANUKA], 예전 우리가 마주했던 그 폐허의 도시는 생성 시기가 2천 년 전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골렘의 생성 시기는 2만 년.

시간이 맞질 않는다.


난 도저히 이 별이 어떤 생명을 잉태하며 살아왔는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러니까 인간이 테라포밍을 위해 내려왔을 때가 대략 2천 년 전이고, 그 이전에도 이런 거대한 골렘을 만들 정도로 발전한 인간 외의 문명이 살았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하지만, 이 별의 생물 대부분은 ‘클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난 인위적으로 문명을 조성하는 이족 클론을 생성한 것이 아누카[ANUKA]라는 이름을 쓰는 인간 개척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300년 전 테라포밍을 시도했으니, 나와 아리스는 차원 도약 시 사고로 ‘1,700년 뒤의 미래로 튕겨온 것이 아닐까?’란 가설을 세웠다.


뭔가가 꼬인다.


그럼 그 아누카라는 인간 개척단보다 먼저 이별의 토착종이 골렘을 만들 정도로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설정? 그 토착종족들은 전투를 위해 저런 미칠 듯이 거대한 클론 생물들을 어마어마하게 사냥하고 보주를 생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지금은?

2만 년 전, 저 거대한 클론을 만들었던 미지의 종족은 어디로 가버린 거지?

그리고 저 골렘들을 무엇을 지키려 한 걸까?


내가 거기까지 사고의 흐름을 이어갈 때쯤, 아리스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레오. 뿌려두었던 화살촉 드론에게서 영상이 들어왔어.]

“확인할게.”


난 황금색 들판에 앉은 듯 굳어 있는 거대한 석상의 어깨에서 같은 모습으로 앉아 내 시각의 한 귀퉁이로 영상을 살폈다. 그 영상은 거대한 폐허의 도시 한 가운데 우두커니 옆으로 쓰러져 있는 우주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팔라스 급?”


한눈에 알아봤다.

우리와 함께 차원 도약 중 날아가 버린 6대의 수송선.


폐허의 유적 위에는 1km 크기의 팔라스 급 수송선의 잔해가 거의 용골만 남은 모습으로 반쯤 무너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 중력파 폭풍은 나와 아리스뿐만 아니라 6대의 수송선도 이 별에 쏟아놓은 것이다. 그것도 태곳적이라고 할 수 있는 2만 년의 시차를 두고 말이다.


“아리스!”

[나도 봤어.]

“먼저 가볼게.”


난 점프 팩을 당겨 높이 도약했다.

저 멀리 지평선엔 석양에 붉게 물든 거대한 우주선이 자신의 발아래로 기하학적인 문양의 도시를 품고 있었다.




***




유적 탐험은 흥미로웠다.


우선 팔라스 급 우주선은 2만 년의 풍화를 견뎌내지 못했다. 2만 년이란 시간은 현 인류가 몇 번은 멸망과 번성을 경험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 엄청난 강도의 우주선 용골과 유리로 제작된 구조물을 제외한 전체가 사그라져 사라졌다.


웃긴 것은 누출된 방사능은 아직 살아 슈트에 경고를 들어오게 만들었다.


[방사능이 허용기준치를 초과하여 검출됩니다. 더 이상 우주선에 접근하지 마세요.]

“알겠어. 측정 결과는?”

[발견되는 플루토늄의 반감기를 기준하면 여기도 2만 년 내외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선의 나이가 2만 년이란 이야기지?”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우주선들도 마찬가지 결과겠네? 함께 조난된 6대 말이야.”

[워프 홀에서 튕겨 나가면서 순차적으로 시차를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만, 6대 전체가 이 별 근처로 튕겨 나왔으리라 예상하진 않습니다.]

“왜 그렇지?”

[은하도 자전을 합니다.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탈출한 것이 아니라면 시차에 따라 그 위치도 변할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 은하는 초속 270km, 시속 972,000km로 자전하며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차원 홀에서 튕겨 나간 우주선이 같은 위치에 불시착할 이유가 있을까? 그 수송선과 우리 배가 튕겨 날아간 시차는 웜홀 안에서는 몇 초에 불과했다. 그 1초의 차이가 현실에선 몇만 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주변 항성들의 중력장에 의해 차원 홀이 고착되거나 붙들릴 가능성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계산해볼까요?]

“아니. 그런 거 하다간 시스템 다 말아먹어.”

[알겠습니다.]


이런 문제는 AI에게 잘못 질문했다가는 정말 큰일 난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AI라고 하더라도 우주적 산술이 필요한 수학적 난제를 주제로 질문을 던졌다간 사고회로가 터지거나 먹통이 되어버린다. 예전에 우주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NASA의 인공지능 연구 설비가 ‘암흑물질과 반물질의 상호 보완성은 어떤 관계지?’라는 질문을 던졌다가 200년의 침묵을 경험했지 않은가? 그 일로 인공지능의 데이터를 활용하던 수많은 여객선과 화물선이 항로를 잃고 표류하거나 사고로 이어졌다. 그때의 사고로 잃은 희생자만 수백 명이다.


이 태양계는 쌍성계.

그리고 그중 하나는 중성자별.


난 충분히 차원 이동용 웜홀이 강한 중력장에 묶여 공간적 제약을 가했다면 시간의 변수로만 우주선들이 튕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어차피 아공간에서 강한 중력으로 공간을 묶어버리면 바뀔 수 있는 건 시간뿐이다.


“난감하네.”


난 가설을 다시 세웠다.


300년 전, 테라포밍을 위해 [ANUKA]라는 개척민이 이 별을 탐험하기 위해 출발했다. 이건 참. 우주 개발역사서에 항해기록이 남아있다.

폐허의 도시에서 [ANUKA]의 잔해는 2천 년. 이것도 참.

그러니 우리 아리스 소유의 아틀라스급 수송선 [엘리아데]호는 차원 도약 중 웜홀에서 튕겨 1,700년의 미래로 온 것이다.


우리와 함께 운항 중이던 6대의 팔라스급 수송선 중 한 대는 2만 년 전의 이 행성으로 불시착했다. 그럼 다른 5대의 행방은?


이 별에 1억 년, 혹은 그 이전에 불시착해서 이 웃지 못할 거대 생명체를 클론으로 구축하며 그 수송선은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층을 뒤져 화석이라도 연구한다면 모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궁금증은 2만 년 전의 수송선. 그 수송선의 생존자들, 그 인류는 그럼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 걸까?


바쿠얀? 저 오크들?

아니면 헤베 박사를 공격했다는 그 인간 족?


이 별의 생태계는 원시의 지구.

거기에 이 별만의 독특한 생명 시스템인 마력과 보주.

어떤 천재의 설계였는지 모르겠지만, 테라포밍의 성공 사례로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난 거기에 하나의 가능성을 더 첨가했다.


2만 년 전, 팔라스 급의 수송선에 ‘남자’ 선원만 타고 있다면? 이란 가정.


웃기게도 요즘도 어떤 화물 수송선 운용사는 고용 시 ‘남자’만을 선호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클론 여성’을 생산하고 생존을 위해 자신의 2세를 클론과 인간의 혼혈아로 잉태하고 출산했다면? 당연히 모든 인간에 클론의 유전형질이 남는다.


그럼 이 별의 인간형 클론을 ‘클론’으로 정의하는 것이 마땅할까?

인간형 클론의 유전형질은 인간과 0.1%도 차이가 나질 않는다. 단지 거세된 성과 억압된 수명만이 그들을 구속한 채 인간과 구별한다.


그러니 이 별의 생물 모두가 클론의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다 해도, 성과 출산이란 자연스러운 생명의 영속을 시스템화하는 순간, 이들은 클론의 한계를 벗어나 하나의 종이 된 것이다.


황금빛 들판에 서 있는 죽은 거인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존을 위해 클론을 생산하며, 이 수송선의 생존자들은 무슨 일을 겪은 걸까?

지구의 인류보다도 더 장대한 역사를 이끌며 어떤 문화를 이루었을까?


난 전혀 다른 감동으로 붉게 물들고 있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기억 속, 화물선 선창에 보이는 흔하디흔한 노동자들.

덥수룩한 수염에 기름때 가득한 작업복으로 한 손은 어디서 일하다 잘라 먹고 로봇 의수를 흔들며 웃던 이들,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맥주를 마시던 그 허름한 우주 정거장의 선술집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2만 년 전, 뜬금없이 불시착한 이 황무지의 별에서 어떤 생명을 키우고 싶었던 걸까?


“하아~!”


벅찬 감동이 가슴을 쿵쿵 울렸다.


생각해보면 이 별은, 이 별의 생명은 그 기름때 묻은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 그 후손들이 어딘가 살아남아 이 별을 걷고 있을 터였다.




***




상급 전사이자 하이 엘프인 파르넬.


그녀는 반쯤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금 사슴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풀을 뜯던 사슴은 몇 번 투레질하곤 성큼성큼 들판을 다시 달려 나갔다.


그녀의 어깨엔 지금 2만 년간이나 이어온 종족의 명운이 걸려있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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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 최초 모델의 출력까지 2시간 12분이 소요됩니다. +4 21.08.06 751 30 13쪽
13 12화 - 아무튼 고맙군. 좋은 몸을 새로 주어서 말이야. +6 21.08.05 810 29 22쪽
12 11화 - 딱 봐도 개발자네. +8 21.08.04 834 32 16쪽
11 10화 - 으악! 이게 뭐야? +7 21.08.03 868 34 21쪽
10 9화 - 잠깐 이 데이터를 살펴봐 주세요. +12 21.08.02 906 30 20쪽
9 8화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일까? +6 21.08.01 938 33 16쪽
8 7화 - 전투는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16 21.07.31 1,030 33 15쪽
7 6화 - 클론 배양기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14 21.07.30 1,207 39 15쪽
6 5화 - 언제 출발할 수 있는데? +22 21.07.29 1,464 53 21쪽
5 4화 - 외계 종족의 언어 구조와 해독이 완료되었습니다. +14 21.07.28 1,632 62 13쪽
4 3화 - 이 생명체가 지구와 똑같다고? +10 21.07.27 2,095 65 15쪽
3 2화- 안전할 것 같은 착륙지를 스캔해줘 +24 21.07.26 2,682 86 18쪽
2 1화 - 불시착 +18 21.07.26 3,380 111 19쪽
1 프롤로그 - 무섭도록 평범한... +30 21.07.26 3,962 12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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