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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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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불시착한 김에 행성정복한 썰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21.07.26 15:13
최근연재일 :
2021.10.05 16:22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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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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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3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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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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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12화 - 아무튼 고맙군. 좋은 몸을 새로 주어서 말이야.

DUMMY

012. 아무튼 고맙군. 좋은 몸을 새로 주어서 말이야.


부웅!

쾅쾅!!

퍼석!


어디서 배웠는지 200여 대의 롱쉽이 우릴 부채꼴 모양으로 포위해 펼쳐진다. 그리곤 얼음의 송곳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가까이 접근하는 롱쉽을 향해 발칸포가 불을 뿜었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방어막이 놈들의 배를 지켰다.


“칫!”


난 발칸을 쏘아대는 동시에 우리의 배 밑으로 작은 수류탄 같은 폭탄을 지속해서 폭발시켰다. 마치 폭뢰처럼 우리의 바지선 아래에선 쿵! 쿵! 계속 물보라가 퍼지며 배를 울렸다. 아까부터 헬멧을 통해 안드로이드에 접속한 아리스는 바지선 옆에서 이 작업을 계속 진행 중.


“언제까지 배 밑으로 폭탄을 터뜨려야 해?”

“조금만 더 해줘! 놈들의 접근을 막아야 해.”

“지금 상황은 어떤데?”

“소나에 보이는 것으론 우리 쪽으로 오던 놈들은 폭탄 소리에 놀라 방향을 틀었어.”

“그래도 이게 효과는 있네?”

“잘하고 있어. 소나 화상을 공유할게.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놈들이 우리 쪽으로 오면 계속 터트려.”

“오케이.”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저 카누에 탄 녹색의 근육들이 아니다.

바로 전, 소금 평원에서 함께 쓸려온 거대 장어들.

바다 밑에서 지금 시퍼렇게 뜬 눈으로 먹이를 노리는 괴수들이다.


“몇 마리가 다시 이쪽으로 온다.”

“던져?”

“응!”


펑!

퍼엉!


바지선 바로 옆으로 물기둥이 솟는다.

장어인지 뱀인지 곰치인지 모를 놈들은 지금도 저 멀리 흙탕의 폭포를 타고 계속 바다로 밀려 떨어지고 있었다. 덩치가 커다란 성체가 아니라 영역싸움에서 밀려난 준성체들. 그래도 크기가 20~30m가 넘는다.


칼리의 통신이 내 채널을 뚫고 다시 들어왔다.

실실 웃는 목소리.


[어이! 이봐~ 레오!]

“왜?”

[너흰 아직 마법도 쓸 줄 모르나?]

“마법이라니? 그 사이오닉 에너지 말인가?”

[사이오닉 에너지? 흥! 이름 짖는 꼴 하고는···. 이건 그냥 마법이야.]

“마법이든, 마력이든 꼭 이렇게 싸워야겠어?”

[너희가 우릴 우주에 버렸을 때부터 이건 예정된 전쟁이야. 난 정당하게 복수를 실현하고 있고.]

“버리다니? 우린 버린 적 없어. 구조대가 올지도 모르잖아? 행성 탐사에선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는 오히려 소수가 편하다고.”

[무슨. 너흰 그냥 우릴 미래로 버렸지. 그럼 너희가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냉동고에서 천 년을 기다려? 내가 그 꼴을 보려고 이 배에 탄 줄 알아?]

“난 네오이데아가 이유 없이 배를 탔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데?”

[큭큭큭. 그렇네. 이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냥 너는 죽어주면 돼! 아! 그 상자 같은 배엔 함장 년도 타고 있나? 재미 좀 봤어?]

“닥쳐라!”

[큭큭큭! 봤네. 봤어.]


놈의 비릿한 웃음소리를 들어주다 다른 생각이 났다.

난 놈의 주의를 좀 더 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어이. 칼리! 너 어떻게 그 종족을 포섭한 거야?”

[포섭이 아니라 정복이다.]

“저들이 클론이라는 건 알아?”

[그래서 선조들에겐 감사하고 있어. 아주 제대로 된 놈들을 키워놨더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쪽에도 아주 재밌는 종족이 있어.”


난 칼리가 링크된 안드로이드와 통신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이 통신을 유지하기 위해선 분명 놈이 마련한 통신 중계기가 있을 터였다.


‘어딘가 있을 텐데······.’


그가 이 쓰나미를 타고 대양을 넘어 기습을 감행했다면 안드로이드를 조종하는 중계기가 하늘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다. 바다를 넘어 대륙과 연결하려면 하늘뿐이다.


“우리 쪽은 너구리도 말을 한다고.”

[뭐? 너구리?]

“수인 족이라고 들어봤어?”

[닥치고. 이거나 받아라!]


퍼억!

펑!


안드로이드에 명령해 놈의 공격부터 막았다. 안드로이드가 지프의 문을 뜯어 방어할 때 난 화살촉새 드론을 조종해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높이까지 상승시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게 반짝이는 놈의 드론, 정확하게는 애드벌룬 형태의 부유 안테나를 찾아냈다.


“칼리! 너 너무 뻔하다.”

[뭐?]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했어. 보내준 안드로이드는 내가 잘 받을게.”

[무슨······.]


펑!!


통신용 중계기를 폭발시킴과 동시에 놈의 안드로이드에 재밍(Jamming)을 걸었다. 잠깐의 시간만 벌어주면 된다. 전투 안드로이드에게 한번 각인된 명령권자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 시스템 포맷을 어떻게 하냐고? 당연히 못 한다. 하지만, OS 자체를 물리적으로 찢어 포맷하는데 버텨낼 보안프로그램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뚝배기!!”


나는 구름에 숨이었던 화살촉새에게 강하를 명령했다.

하늘 높이 떠 있던 200대의 화살촉새가 바다 위, 정확하게 배에 하나씩 타고 있던 안드로이드의 머리에 쏘아 박혔다.


퍽!


머릿속 AI를 담당하는 데이터 칩이 내장된 회로 기판이 폭발한다. 머리야 새로 달면 되고, 만들지 못한다 해도 쓰러진 안드로이드는 여분 부속으로 활용하면 그뿐.


펑펑펑!!

과직!

콱!!


줄무늬로 위장했던 200여 대의 안드로이드가 순식간에 머릴 잃고 무너졌다. 몇몇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다로 떨어진다.


“나이스!”


근육질의 오크들은 명령권자가 일순간 사라지자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로 급하게 의견을 나눈다.


“까란! 쿠 아로인! 파카얀캬!”

“우롹! 콱! 터른 피! 꺼솟!”


그래. 피가 거꾸로 솟겠지.

난 링크된 안드로이드의 시각으로 놈들을 주시했다.

오크들은 쏘아 보내던 얼음 화살과 화염구의 생성을 그만두고 서로 심각하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난 은밀하게 안드로이드를 바닷속으로 보내 방금 물에 빠진 칼리의 부서진 안드로이드부터 찾았다.




***




“우에엑!”


아리스가 먹었던 그 하늘을 날던 가오리를 죄다 토했다.

선창에는 말할 수 없는 암모니아와 위액이 섞인 냄새가 진동했다.


“우아. 미안. 이렇게 냄새가 지독할 줄 몰랐어. 우웁!”

“괜찮아?”

“에액. 멀미야. 단순 멀미.”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그녀가 안드로이드와 링크한 것이 문제였다.


자신의 몸이 느끼는 파도의 율동감과 링크된 안드로이드가 전하는 감각의 율동감이 달라지자 그녀의 평형감각이 꼬였다. 그 오차가 누적되자 소뇌가 감당 못하고 터져버린 것. 그녀는 속부터 뒤집었다.


“우... 우엑!”


그녀가 다시 위액을 토한다. 빠르게 안정제 패치를 붙이고 침대에 눕혔다.


“좀 쉬고 있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뭐?”

“그 곰치 장어는 다시 먹고 싶었단 말이야!”


앙다문 입술과 결연한 의지.

소금 평원에서 잡았던 놈의 고기가 냉장고에 없었나?


난 그녀의 식탐이 이 행성에 불시착한 불안감의 반향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유복한 해피마인드의 공주님에겐 그렇게밖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겠구나 싶었다. 그녀를 안아주고 말했다.


“잡아 줄게. 쉬고 있어.”

“‘꼭’이야.”


피부를 통해 안정제가 스며들자 그녀가 금세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녀의 입을 소매로 쓱쓱 닦아주었다. 말괄량이가 예뻐 보일 때는 자고 있을 때뿐이다.


“가우시아!”

[네. 항해사님?]

“놈들은 어때?”

[지금은 소강상태입니다. 카누 형태의 선박을 한곳에 모으고 사이오닉 에너지를 이용해 커다란 방어막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다른 공격 움직임은 없고?”

[지금 선박의 인원을 재분배하고 있습니다. 사이오닉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인원이 한 배로 모이고 있고, 근육 훈련이 잘되어있는 인원들도 선발돼 별도의 배로 배정되고 있습니다.]

“바닷속은 어때?”

[소금 평원에서 떠내려온 거대 생물 말씀인가요?]

“응.”

[우리 쪽으로는 접근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쪽 배 방향으로 몇 마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닷속으로 보냈던 안드로이드는 부서진 안드로이드를 수거해 복귀했습니다.]

“살펴봤어? 데이터는 살아있고?”

[메모리와 메인 보드를 복원 중입니다. 곧 데이터 백업이 완료됩니다.]

“좋아. 그 데이터에서 저 종족의 언어부터 파악해줘.”

[언어 파일은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곧 번역기에 해당 언어를 업로드 하겠습니다.]

“번역기도 하나 출력 부탁해.”

[알겠습니다.]


난 초코를 불러 함께 12족 그리마에 올라탔다. 그러면서 초코가 차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번역기도 내 목에 걸었다.


[항해사님. 해당 언어가 번역기에 업로드되었습니다.]

“알겠어. 우리 출발한다. 혹시 모르니까 엄호에 신경 쓰고.”

[알겠습니다.]


안드로이드 하나가 발칸포에 탑승하는 모습을 보며 그리마를 운전했다. 그리마가 바지선을 박차고 수면 위를 달렸다. 12개의 다리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물을 밀어내자 뒤로 물보라가 하얗게 일어났다. 멀리 놈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며 우리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우락 까라 미 끼로 웃! (잠깐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우르! 쿵카 냔!!(놈이 온다!)”

“카로! 카로힙!!(방어! 방어 준비!!)”


내가 그들 주위를 거의 한 바퀴 돌 때까지 그들은 날 지켜보며 서로 떠들고만 있었다. 바로 그때 내 앞의 바다가 불쑥 솟아나며 거대한 입이 튀어나왔다.


푸악!


내가 회피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자율주행 모드의 인공지능 센서가 12개의 다리를 이용해 놈의 입을 붙잡고 튕겼다. 초코의 번역기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XXXX”

“으앗!”


거대 장어는 몸을 비틀며 공중에서 몇 번 헛입질을 해대더니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리마는 12개의 다리를 넓게 펴서 양력을 만들어 수면 위로 안착하는 듯하더니 바로 물을 박차고 튀어 나간다. 내 심장은 처음 산책을 나온 강아지처럼 쫄깃하게 뛰었다. 우리 모습에 놀란 오크들에게 난 소리쳤다.


“바캉 타그로? 나랏믹 카랴막크슈! 우락까라 미!! (방금 봤지? 물 밑에 괴물이 있어! 우리 이야기 좀 해!)”

“그어어?(뭐?)”


내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놈들의 무리 한 가운데가 불쑥 올라온다. 커다란 카누가 두 동강이 나며 흩어졌다. 건장한 근육질의 오크들이 하늘을 날았다.


퍼엉!


거대 장어 여러 마리가 함께 튀어 오르며 물에 빠진 이들을 잡아먹는다. 놈들은 물속을 향해 다양한 마법 주문을 쏟아냈지만 속수무책. 한번 맛을 본 놈들이 사납게 무리를 찢으며 배를 침몰시켰다. 거대한 꼬리에 치인 카누가 보기 좋게 하늘을 날며 뒤집힌다. 오크들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바라막! 바라마아악!(도망! 도망쳐!)”


“이런 제기랄! 가우시아!”

[네, 항해사님.]

“지금 물에 빠지는 안드로이드들 위치 다 기록해놔. 나중에 확인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나는 이 아비규환의 바다에서 천천히 물러났다. 놈들이 날 향해 수영해 왔지만, 금세 소용돌이가 일며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장어들의 꼬리가 수면위로 쑥쑥 지나간다.


“나르냐랍!(살려주시오!)”

“···허어.”


1분이나 채 되었을까?

200여 척의 카누들은 한 대도 남지 않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생존자가 있을까?”

[확인되지 않습니다.]

“어디······.”


난 그리마의 뚜껑을 덮고 초코에게 안전벨트를 채웠다. 그리고 그리마의 배를 뒤집었다. 천장이 수면으로 들어가자 바닷속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없이 많은 카누와 그 사이를 누비며 물속을 헤엄치는 근육질 놈들을 쏙쏙 뽑아먹는 거대 장어들. 아직도 몇몇이 살아 버둥거리다 장어에게 잡아먹힌다.


쿠르륵!


거품과 함께 그들 사이로 장어 하나가 온몸을 비틀며 튀어 오른다.


[방금 고압의 전류가 방전되었습니다.]

“뭐?”


괴수의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장어는 눈을 뒤집고 죽은 듯 물 위를 둥둥 떠올랐다. 죽은 장어를 향해 다른 장어들이 다시 몰려드는 모습. 그가 그 아비규환을 힘겹게 빠져나온다.


“푸아-! 흡!”


장어들의 등쌀에 다시 오크가 급류에 휩쓸렸다. 수면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 자꾸 내 눈에 걸렸다. 난 그리마를 뒤집고 그가 떠오르는 곳을 향해 달렸다.


“띠암!(잡아!)”

“헛?”


내민 손을 바라보던 그가 황급히 손을 뻗었다. 난 그를 끌어 올려 내 그리마 위에 태우고 황급히 자릴 옮겼다. 방금 그리마가 있던 수면이 폭발하듯 부서지며 괴수 한 마리가 솟구친다. 놈이 몸을 비틀며 다시 수면으로 떨어졌다.


“돌아가자.”

“네.”


정신없는 그에게 내 목걸이를 씌우자 그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깜짝 놀란 그가 자신의 생경한 목소리에 놀라 목걸이와 날 번갈아 바라본다.


“번역기. 너희와 내 말을 통하게 해주는 거야.”

“통역 마법이 부여된 아티팩트로군요.”

“음?”

“고맙소. 어쨌든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은 당신이니. 우쿠란 부족의 명예를 걸고 이 빚은 갚도록 하겠소. 난 우크란 부족의 상급 주술사 바쿠얀이오.”


물에서 방금 건져 올려 모습은 엉망이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난 레오. 이쪽은 초코야.”




***




우크란 부족의 주술사 바쿠얀.


그는 놀란 눈으로 내 바지선에 도열한 천육백 대의 안드로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절제하곤 있지만 두려움 가득한 눈빛.


“우리에게도 수호자가 있었소.”

“수호자?”


그의 손가락이 안드로이드를 향해 뻗었다.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글씨가 여기에 있소.”


그의 손이 자신의 이마를 가리킨다.

안드로이드의 이마엔 대부분 일련번호가 찍혀 있다.

그 말은 이 오크 같은 부족에게도 ‘수호자’라고 불리는 안드로이드가 존재했다는 이야기. 흥미롭다. 난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다.


“들어와. 당신의 이야길 듣고 싶군.”

“고맙소.”


우리는 바지선의 중앙. 간이로 만든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우리 부족은 수호자를 모시고 따랐었소.”


그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부족을 지키는 수호자. 몸은 금속으로 되어있으며 눈에서는 빛이 난다. 현명함이 극에 닿아 세상 모든 이치를 알고 있었다. 수호자는 2천 년 이상을 살았고, 부족의 시작부터 그는 함께 해왔다.


1년에 한 번, 새해를 여는 날, 매년 수호자가 깨어나 예언 같은 말을 남겼다. 자신의 부족은 이 수호자를 신처럼 모시고 따랐기에 이 별의 험난한 환경에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주 전쯤 새로운 수호자 하나가 부족을 찾아왔다.


그 새로운 수호자는 반짝이는 몸에 방금 태어난 것처럼 빛이 났다. 새로운 수호자는 부족을 지키는 수호자를 만나자 수호자의 기억을 읽더니 부족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전쟁을 말했다. 부족을 지키는 수호자가 그 말에 반대하자 새로운 수호자는 부족의 수호자를 간단하게 죽였다. 목을 뽑고 온몸을 부쉈다.


하지만 부족의 수호자는 목을 뽑혔어도 죽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굴종이 죽음보다 값진 법이다. 너희는 부족의 안위와 생존에 집중하라.]


부족의 장로들이 나서서 반짝이는 수호자를 잡았지만,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목이 잘린 수호자는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 뿐이었다.


며칠 후 인간종족인 칼리라는 자가 나타났다. 새로운 수호자 무리와 함께 고블린 수천을 이끌고 찾아왔다. 수호자만 해도 그 수가 천이 넘었다.


부족은 항전을 결심했고 새로운 수천의 수호자는 자신의 부족을 짓밟았다. 반항하는 전사를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다. 그들은 기준을 정하고 일정 나이 이상인 어른들은 모두 끌어내 죽였다. 그렇게 부족은 ‘어르신’이라 분류되는 세대의 현자들을 모두 잃었다. 아이들은 한곳에 모아 인질로 잡혔고, 자신을 포함해 전사 모두는 전쟁에 강제로 동원됐다.


칼리와 번쩍이는 수호자들은 전쟁밖에 몰랐다.

그가 부족의 장로들을 모으고 명령했다.


원정.

큰 파도의 날, 파도를 타고 대양을 넘으라.

한 배에 한 명씩 수호자가 따를 것이다.


5일 동안 줄곧 파도를 타며 새로운 수호자에게 이 전쟁에 관해서만 들었다. 수호자들끼리의 전쟁. 부족의 전사들이 칼받이가 되었으니 이겨야만 살 수 있었다. 진다면 그건 부족의 멸망뿐. 자신은 부족의 아이들과 부족의 수호자를 위해서라도 이 전쟁에 목숨을 걸었다. 자신이 실패한다면 자신보다 어린 부족원이 다시 차출되리라.


그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당신의 수호자들은 마치 인형 같군요.”

“부족을 공격한 것과 같은 모델이야. 한마디로 똑같아. 부족의 일은 미안하군. 칼리를 대신할 순 없지만 내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당신 탓은 아니죠. 당신은 칼리라는 그자와는 많이 다르군요.”

“그래?”

“그리고 적의 적은 곧 동료입니다.”


이 자는 생각보다 머리가 좋다. 합리적이고, 결단도 빠르다.

난 그에게 물었다.


“부족이 가진 그 ‘수호자’라는 게 나이가 2천 살이 넘었다고?”

“그렇소. 우리 부족이 처음 배에서 태어났을 때부터요.”

“배에서 태어나?”

“그렇다오. 우리는 저 하늘, 별의 하늘에서 떠내려온 하늘의 배에서 태어났소.”

“혹시 그 배에 대해선 알아?”

“신화에만 있는 배요. 지금은 바닷속에 잠들었다 하지요.”

“그럼 그 배의 이름이 혹시 [ANUKA]인가?”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 유적에서 본 이름 [ANUKA].

개척단의 배다.

클론 배양기를 달고 지상까지 내려온 거다.


‘그 배를 찾는다면 다시 우주로 돌아가 지구로 도약할 수 있을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닷속에서만 2천 년이다. 원자재로서의 쓰임새 외에 무엇 하나 남아있을 리 없었다.


그보다 2천 년을 살아남은 안드로이드의 지혜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 메모리엔 어떤 기억과 코드가 들어있을까?

난 그게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머리만 남았어도 죽지 않았다 했지?”

“그렇소. 우리 부족의 수호자는 아직 죽지 않았소.”


난 머릿속이 맹렬히 돌기 시작했다.




***




“크악!”


갑판장 칼리는 링크되었던 안드로이드와 방금 강제로 접속이 끊어지는 바람에 쇼크를 먹었다. 그 후 엄청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네오이데아의 나노 머신을 이용해 뇌와 직접 연결되는 방식으로 링크를 진행했기 때문에 더욱 데미지가 컸다. 그는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전율을 어쩌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그 빌어먹을 레오가 헤베 박사와 통신하는 내용을 해킹해 위치를 특정하는 순간, 그는 바로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놈들이 세 개의 달이 만드는 조력의 파도에 당하면 그저 줍기만 해도 승리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이 오크 족 놈들 중에 똘똘하고 마력을 쓰는 주술사와 전사를 추려 바다로 보냈다. 이 조력이 이끄는 파도를 타고 5일이면 놈들이 있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터였고, 조금만 방해하면 파도에 쓸려 부서진 놈들을 줍기만 하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늦었다. 도착해서 만난 놈은 이미 바지선을 타고 안전하게 바다에서 발칸까지 쏘아대고 있었다. 아무리 마력으로 보호막을 만들고 파이어 볼을 쏘아붙인다 해도 안드로이드를 보유한 레오 일행을 쉽게 이기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이길 수 없다면 동귀어진이라도 해야 할 판.

저 배를 부순다면 8시간 후에 올 다음 쓰나미에는 톡톡히 피해를 줄 수 있겠다 싶었다. 하루에 두 번씩. 아직 달의 조력은 충분하니까.


그래서 공격 명령을 하기 직전까지도 승리를 장담했다.

중계기가 터져나갈 줄은 몰랐다. 상상도 못 했다.

특히 충분히 고도를 유지했기에 들키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중계기가 어떻게 당했는지는 알지도 못했다.


“제기라알!!”


그렇게 감각 링크가 터지며 후유증으로 덜덜 떨고 있는 그에게 테이블 위에 있는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웃으며 말했다.


[실패했군요. 어설픈 작전이 패착이었겠지요?]

“시끄러워!!”

[당신은 질 겁니다. 당신의 욕심이 화를 부른 거요. 당신의 그 급한 성질이 문제입니다.]

“안드로이드 주제에 뭘 안다고 떠들어?”

[당신이 아는 것보다는 이 별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알지요.]

“그래? 그럼 네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다 토해내 봐.”

[싫습니다. 당신은 내 메모리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요.]

“뭐? 흥! 어디 두고 보자고!”

[소용없을 것이오.]


칼리는 자신의 안드로이드 중에 하나의 머리를 분리하고 그곳에 테이블 위에 있던 ‘수호자’라고 불리는 구모델 안드로이드의 머릴 붙였다. 그러자 ‘수호자’의 시스템이 새 모델의 시스템과 충돌했다. 명령권자로 ‘칼리’의 프로필이 강제로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수호자의 머릴 붙인 안드로이드의 행동이 빨랐다.


푸슙!


“음?!”

[내가 뭐라고 했소. 소용없을 거라 하지 않았소?]


안드로이드의 손이 이미 칼리의 복부를 뚫고 등 뒤로 삐져나와 있었다.

붉게 물든 손에서는 피가 툭툭 떨어졌다. 그의 손에는 칼리의 장기로 보이는 덩어리가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커어억! 어떻게···, 어떻게 로봇이 인간인 나를 공격했지?”

[로봇운용 3원칙 말인가?]

“그······ 그렇다······.”

[정확히 말한다면 난 로봇이 아니거든.]

“뭐?”


칼리의 눈에 수호자라는 이 로봇이 자신의 외형을 입체영상으로 꾸미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엔 인자한 얼굴의 초로의 노인이 칼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전뇌라고 들어봤나?]

“무슨······.”

[아무튼 고맙군. 좋은 몸을 새로 주어서 말이야.]


칼리의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피를 닦아주려는 듯 천천히 뻗은 안드로이드의 손이 자신의 목뼈를 부러뜨리는 소리를 직접 들었다. 그의 동공이 서서히 열렸다.


“커허헉!”

그의 부러진 목으로 마지막 숨이 빠져나갔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작가의말

설정상 레오는 반말을 사용합니다. 그건 바쿠얀이 클론인 것도 있지만, 통역기가 알아서 의미를 전달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레오는 대부분 이종족과의 대화에서는 반말체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점 어색하더라도 설정상 안배한 부분이니 이해를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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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한 김에 행성정복한 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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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차후 일정관련 공지입니다. +14 21.09.03 568 0 -
49 48화. 골렘 (5) +3 21.10.05 234 11 13쪽
48 47화. 골렘(4) +6 21.09.26 196 10 14쪽
47 46화 - 골렘(3) +9 21.09.04 302 10 13쪽
46 45화 - 바닷속 결투 +8 21.09.03 306 9 13쪽
45 44화 - 붉은 보주 +6 21.09.02 322 13 15쪽
44 43화 - 와이번 +4 21.09.01 313 9 13쪽
43 42화 - 골렘(2) +10 21.08.31 349 14 13쪽
42 41화 - 골렘(1) +4 21.08.30 354 16 13쪽
41 40화 - 치유의 신전 +8 21.08.29 361 12 13쪽
40 39화 - 제2쉘터 아사스 (2) +4 21.08.28 382 14 16쪽
39 38화 - 싱크로율 +4 21.08.27 373 15 11쪽
38 37화 - 구출 (4) +8 21.08.26 359 16 12쪽
37 36화 - 구출 (3) +6 21.08.25 356 14 13쪽
36 35화 - 구출 (2) +10 21.08.24 378 17 14쪽
35 34화 - 구출 (1) +6 21.08.23 375 13 14쪽
34 33화 - 흡혈충 +8 21.08.22 417 11 14쪽
33 32화 - 제2쉘터 아사스 (1) +6 21.08.21 399 14 14쪽
32 31화 - 아누카 (2) +8 21.08.20 407 18 11쪽
31 30화 - 아누카(1) +4 21.08.20 397 11 13쪽
30 29화 - 명령권자 신규 등록 +8 21.08.19 453 11 19쪽
29 28화. 그렇다면 재능을 한 가지 설정하시죠. +10 21.08.18 438 13 16쪽
28 27화 - 그래도 무척 절박했을 것 같지 않아? +10 21.08.17 420 18 16쪽
27 26화 - 이제 넌 내꺼야. +4 21.08.16 457 17 17쪽
26 25화 - 왜? 아쉬워? 좀 더 기다려 줄 걸 그랬나? +6 21.08.15 451 14 15쪽
25 24화 - “한 놈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잡아라. 알겠지?” +8 21.08.14 480 14 14쪽
24 23화 - 크크크! 이거 너무 재밌잖아. +9 21.08.13 492 18 16쪽
23 22화 - 나야, 매튜, 너희들이 우주에 버린 요리사. +4 21.08.12 517 21 19쪽
22 21화 - 저 아이의 줄기세포를 추출해 줘. +10 21.08.11 492 19 13쪽
21 20화 - 금안의 아이가 태어났소! +8 21.08.10 536 22 12쪽
20 19화 - 함장님의 바이탈 사인에 이상이 있습니다. +12 21.08.09 524 22 14쪽
19 18화 - 하아. 이 새끼···. 내 이럴 줄 알았지. +4 21.08.08 528 22 16쪽
18 17화 - 모두 무기 버리고 꼼짝 마! +6 21.08.08 550 17 13쪽
17 16화 - 그 지형은 유독 유별났지······ +6 21.08.08 540 21 16쪽
16 15화 - 지금 너한테 깔린 모드가 총 몇 개니? +12 21.08.07 607 20 15쪽
15 14화 - 당신들의 이 수호신은 철의 골렘입니까? +6 21.08.07 625 25 17쪽
14 13화 - 최초 모델의 출력까지 2시간 12분이 소요됩니다. +4 21.08.06 616 28 13쪽
» 12화 - 아무튼 고맙군. 좋은 몸을 새로 주어서 말이야. +6 21.08.05 680 28 22쪽
12 11화 - 딱 봐도 개발자네. +8 21.08.04 691 30 16쪽
11 10화 - 으악! 이게 뭐야? +6 21.08.03 711 30 21쪽
10 9화 - 잠깐 이 데이터를 살펴봐 주세요. +12 21.08.02 759 29 20쪽
9 8화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일까? +6 21.08.01 774 32 16쪽
8 7화 - 전투는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14 21.07.31 852 31 15쪽
7 6화 - 클론 배양기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14 21.07.30 991 37 15쪽
6 5화 - 언제 출발할 수 있는데? +22 21.07.29 1,203 49 21쪽
5 4화 - 외계 종족의 언어 구조와 해독이 완료되었습니다. +14 21.07.28 1,340 58 13쪽
4 3화 - 이 생명체가 지구와 똑같다고? +10 21.07.27 1,743 59 15쪽
3 2화- 안전할 것 같은 착륙지를 스캔해줘 +24 21.07.26 2,218 80 18쪽
2 1화 - 불시착 +18 21.07.26 2,801 103 19쪽
1 프롤로그 - 무섭도록 평범한... +28 21.07.26 3,168 116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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