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외계 종족의 언어 구조와 해독이 완료되었습니다.
004. 외계 종족의 언어 구조와 해독이 완료되었습니다.
축구를 잘하는 것도,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은 내가 목표한 골에 정확하게 돌덩이를 차 넣는다. 이 큼지막한 돌덩어리를 집어넣기 위해 안드로이드의 사고능력 28%를 연산에 투자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목을 부풀리던 놈의 목에 정확하게 돌을 찍어 넣는다.
퍽!
“꾸어억!”
놈이 뿜어내려던 산성의 점액이 입으로 강제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벌려진 입으로 손에 들고 있던 긴 장창을 찔러 넣었다.
푸욱!
“키루룩!!”
꾸득!
장창은 정확히 놈의 입을 통해 입천장을, 그리고 두개골의 내피를 부수고 좌뇌에 직격. 외피까지 관통시키진 못 했지만, 뇌에 구멍이 뚫린 놈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천천히 내 쪽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땅에 박힌 장창에 걸려 멈췄다. 장창을 타고 점액이 흘러내리자 창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금방 부식되어 부러진다. 놈이 털썩 땅으로 무너졌다.
난 선 자리에서 재차 바위를 발로 차 놈을 맞춰봤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사냥을 마무리하고 다시 헬멧으로 의식의 흐름을 되돌렸다. 헤베 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두꺼빈 잡았나?”
“네.”
“저 너구리같이 생긴 놈들을 살펴봐도 되겠지?”
“문제가 없을까요? 전염병이라거나···, 기생충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저 죽어가는 친구를 어서 치료해주고 싶네.”
헤베 박사가 안드로이드 둘을 좌우에 붙이고 버기를 뛰어내려 다친 너구리에게 다가갔다. 나 또한 그의 뒤를 따랐다.
“큐웃! 큐우웃!!”
“큐우우웃!!”
안드로이드에게 구해진 세 마리의 너구리들이 두려움에 떨며 우릴 주시하고 있지만, 섣부르게 움직이지는 못했다. 거대한 장창을 든 안드로이드들이 무서운 모양.
쓰러져있는 너구리의 상처는 심각했다. 그 산성 점액이 묻었던 곳에선 아직도 하얀 연기와 함께 생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거 심하군요.”
“암모니아수라도 있으면 중화할 텐데, 치료가 쉽지 않겠어.”
“어쩔 수 없겠어요. 절단하죠.”
난 헬멧의 한쪽에 충전된 냉각제를 꺼냈다. 대형사고 시 운전자의 두뇌를 급속도로 냉동시켜 사망만은 막게 되어있는 보호 기능. 이 기능만 있으면 머리가 완전히 몸과 분리되었어도 헬멧 안의 사람의 뇌는 어떻게든 생환이 가능했다. 이 냉각제라면 응급처치로는 충분한 분량.
산에 타 녹아내리는 팔과 다리에 적절하게 냉각제를 분사하고 뼈가 드러나며 괴사한 곳은 초진동 나이프로 잘라낸다. 지혈과 치료를 위해 지혈제와 재생 스프레이를 뿌린다. 얼추 치료가 마무리되자 붕대로 압박하고 들것에 실어 버기에 태웠다. 내가 손짓하자 두려움에 떨던 너구리들이 엉거주춤 버기를 향해 다가왔다.
“타!”
“삐윳! 쁏!”
“삐끼 삐끼!”
“타라고!!”
내가 뒤 의자를 손으로 두드리자 너구리들이 덜덜 떨며 버기로 들어왔다. 헤베 박사를 바라보자 그가 두꺼비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난 이놈을 좀 더 관찰하겠네.”
“그럼, 먼저 올라갔다가 버기만 돌려보낼게요.”
“고맙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챙겨오세요. 안드로이드도 한 대 잃었는데 밥벌이한 거라도 티를 내야죠. 그러지 않으면 아리스가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걱정 말게. 이 사체는 쉘터로 가져갈 테니. 안드로이드 50대만 두고 가.”
“100대로 진행하세요. 헬멧 벗지 마시고요.”
“알겠네.”
난 버기에 태운 너구리 넷과 안드로이드 49대와 함께 쉘터로 돌아왔다.
***
“우와아 귀여웟!!”
아리스는 저 감탄사로 잃어버린 안드로이드에 대한 문제는 이미 망각 속으로 사라졌음을 내게 알렸다. 그녀는 잡혀 온(?) 너구리들을 만지고 싶어 눈이 반짝반짝하고 있는 중.
“삐욧! 삐요옷!!”
“큐오웃”
“뿌오우~!”
“삣!삣!”
음. 생각 외로 시끄럽군.
“가우시아. 결과 나왔어?”
[네. 항해사님. 포유류와 조류의 특성을 골고루 갖춘 생물체입니다. 난생으로 세 개체는 수컷, 한 개체는 암컷입니다.]
“난생? 이놈들 그냥 너구리가 아니라 오리너구리였어?”
[비슷합니다.]
“그래. 이 별의 생물도 성은 있는 거로군?”
[진화에 더 유리하니까요.]
“위험은?”
[현재로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생물체의 표피와 타액 등에서 추출한 미생물과 기타 바이러스의 표본은 이전 지표 생물 검사 결과와 대부분 동일합니다. 위험한 바이러스나 기생충, 독, 등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특이사항은?”
[의복을 만들어 입은 것과 소지한 물품들을 파악했을 때 인류의 기원 전후의 초기 중세의 기술은 갖춘 것으로 파악됩니다.]
“흐음.”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리스가 가우시아에게 말했다.
“이 친구들 삐윳거리는 소리, 이게 언어라면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저들의 대화 내용을 뇌파 및 의식과 연동하여 추론 중입니다. 충분한 데이터가 누적되면 언어를 분석, 번역기의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좋아.”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에너지 바부터 꺼내왔다. 에너지 바 중에서는 가장 단맛이 나는 노란색. 견과류와 꿀이 뭉쳐진 바나나 맛에 탄수화물과 당류로 구성된 대용 식품. 그녀가 에너지 바를 먹는 시늉을 하며 나누어주자 너구리들이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
“큐오옷!”
“삐이삣!!”
낼름. 햘딱햘딱
와삭와삭 바바박 버버벅 챱챱챱!!
와! 미친 듯이 먹네.
음. 길들이기 쉽겠어.
사육은 역시 먹이는 게 짱인가?
아리스는 흐뭇한 미소로 놈들을 바라봤지만, 그 눈빛만은 날카롭게 빛났다.
설마, 저걸 잡아먹지는 않겠지?
내 눈엔 한쪽 팔과 다리를 잃고 끙끙거리는 너구리에게 닿았다.
‘우선은 저놈부터······.’
***
아리스가 달디 단 칼로리 덩어리로 놈들의 경계심을 학살하고 있을 때,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놈들을 포섭하고자 노력했다. 프린터에서 나온 의수와 의족. 그래핀과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외골격에 섬유형 인조 근육이 전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맞춤형 의수를 출력했다.
“움직이지 마라.”
다친 놈에게 절단된 팔과 다리에 붙여주자 간단한 설정 몇 번에 실리콘으로 된 팔과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요옷! 삐요오옷!!”
“삐이비이!! 끼루옷!!”
“삐이삐이릿! 끼삐리잇!!”
시끄럽다. 아. 귀엽지만 시끄러워.
놈들에게 쉘터 아치의 안쪽에 위치한 일정 블록을 할애하자 놈들이 간단한 주거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짚을 가져와 침실을 만들고, 간단한 화장실과 도구들을 제작한다. 불을 피우려도 했지만, 그건 불가. 우리가 적외선과 화염 이펙트가 영상으로 추가된 조리도구를 출력해주자 그 시끄러운 감탄사가 다시 연발된다.
“아직 언어 추출은 멀었어?”
[현재 28% 정도 의사소통 메커니즘을 파악했습니다.]
“그럼 더 떠들게 시켜야겠네.”
[네 개체가 충분히 서로 소통 중이니 현재는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표본수집이 충분합니다.]
“지금 무슨 이야기 중이야?”
[만들어 주신 의수와 의족에 대한 평가입니다.]
“어떻데?”
[그들의 의식에는 ‘신’에 대한 주제가 대부분입니다.]
음...
그렇겠네.
내가 생각해도 로마 시대로 날아가 팔다리가 날아간 검투사에게 로봇 팔을 이식해준다면 바로 신 급으로 올라갔을 터. 저들이 나와 아리스를 신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신이라···.
저기 미모와 맛의 신인 아리스가 팬케이크를 가져와 털 난 중생들에게 맛의 진리를 깨우치고 있었다. 코코아까지 더해지자 광신도들은 거의 미쳐서 삐윳거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자기 개 짖는 소리는 귀여울지 몰라도 남에겐 소음이자 지옥이다. 난 저 삐윳거리는 시끄러움을 피해 자릴 옮겼다.
***
난 수송선의 조타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 헬멧으로 다시 안드로이드에 접속했다. 그러자 예의 그 미묘한 빨려 들어가는 듯 한 중력감이 느껴진 후 안드로이드의 시선으로 상황이 인식되었다.
안드로이드를 움직여 버기의 운전석에 앉았다. 쉘터에 있던 이 버기를 직접 운전해 달렸다. 원래라면 자율 주행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깜빡한 것도 있고 겸사겸사 삐윳거리는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드라이브가 하고 싶었고.
버기가 도착하자 박사가 연구하던 살덩어리를 내려놓고 내 쪽을 바라봤다.
[박사님. 어떻습니까?]
“어이쿠 깜짝이야. 안드로이드인 줄 알았더니 레오인가?”
[네, 링크 중입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요. 뭐 도와드릴까요?]
“음. 아. 잠깐 이걸 좀 보겠나?”
헤베 박사가 두꺼비 사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해체해 늘어놓은 장기 중 한 곳을 가리키며 날 불렀다. 난 안드로이드의 분석 광을 이용해 헤베 박사가 들고 있는 주먹만 한 구슬을 살폈다. 조개의 진주와 특별히 다를 것 없는 반질거리는 광택. 탄산칼슘이 주성분. 묘한 빛이 아른거렸다.
[신체 조직인가요? 아니면 이물질?]
“정확히는 그렇네. 이게 놈의 가슴 중앙에 들어있었어.”
[그런데요?]
“음. 이게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에 어떤 알 수 없는 에너지파가 감지된다네.”
[예? 에너지파요?]
“그렇지. 한마디로 말해선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이 돌 같은 물질에서 뇌파와 비슷한 형태의 파장이 지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어.”
[뇌파요?]
“정확하겐 뇌파도 아니야. 파장이 비슷하다는 거지. 하지만 어떤 우리가 모르는 에너지가 가득 들어찬 것임은 분명하다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파장이 지속해서 나올 이유는 없지.”
[자세히 분석을 해봐야 알겠네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 이 에너지는 계속 약해지고, 소멸하고 있어. 저 두꺼비가 죽은 이후 실시간으로 시간 주기로 반감되고 있다네. 아마 곧 이 조직은 에너지를 모두 잃고 뼈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가 될 거야.”
[어떤 에너지를 담고 있다가 생물이 죽자 그게 점점 소멸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네.”
[알겠습니다. 우선 정리가 되면 돌아오세요. 그리고 여기 그 너구리같은 생물들의 언어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곧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면 그 부분을 좀 더 묻거나 파악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알겠네. 대충 정리되면 바로 올라가겠네.”
난 헤베 박사와 대화를 끝내고 작업 중인 안드로이드와 죽은 두꺼비의 상태를 좀 더 구경했다. 죽은 두꺼비의 주위에는 벌써 팔뚝만 한 지렁이 형태의 스케빈져(scavenger)들이 사체를 파먹고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환영 동물이 사체를 파먹는 모습은 그리 즐길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거머리 같이 생긴 한 놈을 발로 밟자 검은 피가 퍽 하고 터져 나왔다. 이놈이 먹었던 두꺼비의 피.
[이놈들은 뭔가요?]
“시체 청소부들이지. 이미 표본은 채집했으니 돌아가서 조사해봐야지.”
[알겠습니다.]
이젠 해도 완벽하게 져서 구름 사이로 밝은 빛의 은하가 긴 강을 이루고 있었다. 이 별이 지구가 있는 태양계에 비하여 훨씬 은하 중심과 가깝다는 것이 여실히 보이는 상황. 밝게 빛나는 은하수 사이로 두 개의 붉은 달까지 떠오르고 있었다.
“밝네···.”
이 별의 밤은 밤이되 밤 같지가 않았다.
***
안드로이드와의 접속을 끊고 난 수송선의 조종석에서 나와 목욕탕부터 살폈다. 아리스의 요구에 의해 신축 중인 목욕탕은 마치 로마 시대의 유적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디자인됐다. 목욕탕은 생각보다 더 거대했다.
“수리 로봇에 드워프의 피라도 흐르나? 프로그램에 뭔 예술 모드가 이렇게 깔려있어?”
긴 석주와 파란색 조명을 안쪽에 넣은 물은 깨끗함을 넘어 성스럽기까지 했다.
“와아! 완성됐네!”
“삐요옷!”
“삣삐!”
그때 아리스가 수영복 차림으로 삐요미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리스가 강제로 너구리들의 옷을 벗기자 한 녀석만 기겁하며 도망친다. 저놈들도 남녀로 수치심이 있는 건가? 그래도 깨끗한 물을 보더니, 옷을 입은 채로 물로 들어간다.
“레오! 너도 들어와!”
“목욕탕은 어때?”
“급조한 것치곤 쓸만해.”
“음. 잠깐만.”
난 왼손에 감긴 랩톱을 이용해 명령을 넣었다. 그러자 조명이 어두워지며 천장과 목욕탕의 외벽에 영상을 투과했다. 그러자 지구의 아쿠아리움 속에 있는 것처럼 오색의 물고기들이 벽면을 메웠다.
“삐욧!”
“삐삐요오오옷!!”
“삐요오옷!!”
그렇게 지구의 아쿠아리움을 배경으로 우리는 외계의 너구리 족과 수영을 즐겼다.
***
물을 털고 나오니 메인 홀이 푸른색의 은은한 조명으로 빛났다. 간단한 식사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고, 안드로이드 둘이 음식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식사하고 있을 때 가우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쉘터에 방문한 외계 종족의 언어 구조와 해독이 완료되었습니다.]
내가 너구리들을 바라보자 가우시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삐욧, 삐—이이오-욧, 삐삐-이—욧 삐뿌이요옷]
너구리 넷의 눈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커다랗게 떠졌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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