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싱크로율
038. 싱크로율
감시 화살촉새 드론이 보내오는 화면 속.
이반이 거대한 거미 이동요새에서 내려와 걷는다.
그가 움직이자 주위로 안드로이드들 수십 기가 가드를 하듯 주변으로 뭉쳤다.
주위를 살피던 그가 부서진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들어 보였다.
길리슈트를 입었던 내 안드로이드. 아리스가 얼굴에 페인트로 아이덴티티를 부여한 낙서를 유심히 본다.
“뭐야? 이건.”
그가 랩톱에서 랜선을 뽑아 안드로이드의 머리에 연결했다. 전력이 다시 들어오며 안드로이드의 눈이 천천히 깜빡인다.
“됐나? 됐네?”
그는 그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이! 레오! 거기 있나? 나말 들려?”
[······.]
“이봐!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보지? 들리지?”
[안녕. 이반.]
“어이쿠. 이거 목소리 듣기 참 어렵구만. 잘 지냈어? 반갑네.”
[뭐 난 반갑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 보내준 지뢰가 너무 놀라워서 말이야.]
“지뢰?”
[네가 명령권자로 링크해두고 방치한 안드로이드 말이야. 그 지뢰는 내가 받아 잘 처리했어.]
“아. 그놈들? 난 또 뭐라고. 내 깜짝 선물이었지. 그나저나 자네 안드로이드들은 실력이 상당하던데···. 무슨 무술을 가르쳤나? 나 정말 깜짝 놀랐어.”
[하! 네 늑대 부하들은 변신도 하더라? 그게 더 놀랍던걸? 막 거대해지고 말이지.]
“크크크. 그래? 놀랍다면 다행이고. 뭐 하나만 물어보자.”
[뭘?]
“엘프 클론들은 데려가서 뭐 하게? 하렘이라도 만들 생각인가?”
[내가 너냐?]
“아. 너에겐 아리스가 있었지? 데려가 봐야 아리스 눈치 보여서 잘 놀지도 못하겠군?”
[할 이야기가 뭐야?]
“뭐 예상하지 않나?”
[뭐? 동맹? 아니면 휴전?]
“이런 개인전에서야 티밍은 기본 아니겠어? 어때?”
[티밍?]
“그래. 일시적 동맹. 어떻게 생각해? 지금은 우리가 서로 싸우고 있을 때는 아닌 거 같아서 말이야.”
[계속해봐.]
“내가 지금 누구랑 싸우고 온 줄 아나?”
[누구?]
“매튜야. 그 자식이랑 전쟁 중이지. 그 새끼가 네 쉘터도 날려버렸다면서?”
[······.]
헤베 박사가 있던 쉘터 알파를 날린 것은 메튜와 그가 이끌던 인간 클론들이었다. 구식 대포까지 끌고 왔었으니 매튜의 전력도 생각보다 대단했다. 슬슬 그쪽도 걱정이 되긴 한다.
“매튜 그 새끼가 포섭한 인간들 수가 어마어마해. 어림잡아도 수십만은 될 걸? 내가 잡은 수인 족과는 비교도 안 되지. 쪽수에서부터 이빨도 안 들어간다고.”
[그래?]
“그놈이 착륙한 대륙엔 인간 클론이 국가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더군. 내가 그쪽에 떨어졌어야 했는데 말이야. 난 이 약해빠진 엘프 몇이랑 늑대 무리가 전부야. 그리고 지금은 네가 내가 힘들게 잡아둔 엘프를 다 빼내어 갔고 말이지.”
[그러니까 너도 약하고 나도 약하니까··· 쪼랩끼리 힘이라도 합치자?]
“약하다곤 안 했어. 그래도 내 안드로이드는 3만이니까. 네가 가진 그 무술 모드를 우리 쪽에 지원해준다면 우린 힘이 막강해질 거야.”
[좋아. 그럼 나도 제안을 하나 하지.]
“뭐?”
[네가 가진 그 안드로이드 3만을 그냥 날 줘. 그럼 내가 널 다시 동면할 수 있게 봐줄게. 물론 네 대가리 속에 있는 네오이데아의 나노 머신은 죄 끄집어내고 말이야. 되겠어?]
“무슨 X 같은 소리야? 미쳤어?”
[왜? 싫어? 그래도 넌 살 수 있잖아? 내가 널 미래로 안전하게 보내줄게. 잘만 되면 넌 한숨 자고 일어나면 지구로 돌아가 눈을 뜰 수도 있을 거야.]
그 순간.
놈의 옆에 서 있던 안드로이드가 나무 위에서 이쪽을 감시하던 화살촉새 드론을 향해 창을 날렸다. 화살촉새 드론이 터지며 보고 있던 화면이 깨졌다. 링크로 연결된 정신이 약하게 흔들렸다.
-제길.
[아리스!]
[공격?]
[처!]
번개 같은 움직임.
늑대의 사체를 위장해 누워있다 번개처럼 일어난 내가 놈을 향해 펀치를 날렸다. 동시에 아리스는 발차기. 9대의 화살촉새 드론도 놈의 정수리를 타깃으로 공격 명령을 넣었다.
놈의 주위에 있던 안드로이드가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화살촉새 드론을 몸으로 박는다. 이반과 나 사이로 끼어든다.
퍼퍼퍽!
‘칫! 약해!’
놈의 주위로 가드를 하는 안드로이드들이 새롭게 뭉쳤다.
퍽!
쾅!
콰과광!
안드로이드의 팔, 다리와 함께 파편이 비산하는 사이로 난 손을 뻗어 이반, 놈의 멱살을 잡아냈다.
“헉!”
놈의 커다랗게 떠지는 동공을 슬로비디오로 바라보며 난 면상을 향해 손날을 찔렀다.
[죽엇!]
이 펀치라면 두개골뿐만 아니라 그의 뇌까지 관통하리라. 손가락이 그의 뇌를 뚫는 장면이 쉽게 연상됐다.
툭.
그 순간. 놈이 자신의 목걸이를 뜯어냈다.
슉!
내 손날은 분명하게 놈의 면상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손날이 그의 이마를 뚫기 직전 그는 빛이 꺼지듯 사라졌다. 그가 있던 곳에선 그의 잔상을 내 손과 아리스의 발차기가 동시에 뚫는다. 공기가 찢기는 파공음이 들렸다.
[엉?]
[··· 사라졌어!]
바닥에 흩뿌려지는 놈의 목걸이.
마치 진주목걸이처럼 생겼지만, 진주가 아니라 마력의 보주다. 마력을 담은 아티팩트라도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건 텔레포트?
[도망?]
[칫!]
생각을 정리할 틈이 없다.
난 우선 놈이 들고 있다 떨어뜨린 내 안드로이드의 머리부터 부숴버렸다. 3중으로 안전장치를 했지만, 놈이 그렇게 우리의 모드에 집착하고 있을 줄 몰랐다.
놈이 내 안드로이드를 수거해 데이터를 살려낸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난 놈의 안드로이드와 싸우며 가우시아에게 명령했다.
[가우시아. 지금 나랑 아라스가 링크한 안드로이드는 전투 불능 시 자폭 모드로 설정해. 나머지 여기 누워있는 놈들도 시스템이 살아있으면 하드를 다 태워.]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놈은 놓쳤다.
지금 이 두 대의 안드로이드가 잡힌다면 가지고 있는 위장복, M4 소총과 탄약. 그리고 너무나 많은 정보가 적의 수중에 들어간다. 이반의 안드로이드들이 우릴 향해 쏟아져온다.
[가우시아. 격투 모드 지원해줘.]
[백병전으로 설정합니다. 32가지의 종합 무술로 대응합니다.]
[좋아. 간다.]
수백 대의 안드로이드를 향해 난 놈들에게 소총탄부터 쏟아 부었다. 아리스는 주변의 안드로이드를 꺾어 머릴 뽑고 척추를 부러뜨린다. 하지만 수에선 전혀 게임이 되지 않는다.
[아악! 이거 놔!]
아리스가 먼저 붙잡히자 그녀의 안드로이드가 자폭모드.
[나 먼저 가!]
콰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십여 대의 적 안드로이드가 불꽃으로 산화했다. 나도 순순히 붙잡혀 죽어주진 않을 욕심. 난 놈들의 포위를 뚫고 보주가 모여 있는 엘프의 지하 창고로 내달렸다.
[으으으···. 잡아! 놈을 잡아라!]
이반, 놈이 안드로이드에 링크해 미친 듯이 날 향해 달려왔다.
몸을 날려 뛰어 들어온 곳은 아까 늑대 거인이 튀어나왔던 구멍. 바로 보주의 방이었다. 나에게 목이 뚫려 죽은 변신 잘못한 늑대 한 놈을 발로 차 치워버리고 거대한 석문을 밀어 닫았다.
‘주먹만 한 보주가 가득 쌓여 있는 이 방을 놈들에게 그대로 내줄 수는 없지.’
[어이. 이반, 들려?]
[이노오오옴! 감히 날 죽이려 해?]
[티밍의 끝은 언제나 배신 아니겠어?]
[XX새끼야! 너는 내가 꼭 죽여주마.]
[기대할게. 또 보자고.]
내가 자폭 모드를 실행하자 가슴의 모터와 배터리가 과부하 되는 느낌.
이게 느껴진다고? ‘이 정도로 링크 싱크로율이 높았나?’싶은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가슴에서 화염이 뿜어진다.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난 침대에서 깨어났다.
“으아아아악!”
삐이이이이---
굉음의 이명과 함께 내 정신이 본래의 몸으로 순식간에 튕겨져 돌아온 것.
“크허허헉!”
내 옆에서 헬멧을 벗던 아리스가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본다.
“왜 그래? 레오?”
“헉헉··· 헉헉헉···!”
난 가슴을 움켜쥐고 식은땀을 흘렸다.
겨우겨우 헬멧을 벗고 기침을 쏟아냈다.
“가··· 가우시아!”
[네. 항해사님.]
“방금. 내 링크 싱크로율이 얼마였지?”
[확인하겠습니다. 우선 안정을 취하십시오. 심박 수가 너무 높습니다.]
아리스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날 바로 눕혔다. 미칠 듯 뛰던 심장이 조금 진정을 하는가 싶을 때 가우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항해사님. 방금 안드로이드와의 링크 싱크로율은 일천팔백 퍼센트였습니다.]
“뭐?!”
“에?”
나보다도 아리스가 더 놀란 얼굴.
그녀가 날 보며 물었다.
“레오. 혹시 너도 나처럼 뇌에 나노 머신을 심었어?”
나 또한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
나와 아리스가 다시 엘프들이 모여 있는 곳의 안드로이드로 링크했다.
[감각이 이상해.]
이전의 링크와는 다르다.
손끝, 발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다.
발바닥으로 걸을 때마다 슬며시 눌리는 진흙의 느낌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후각 기능이 없는 안드로이드여서 코는 답답하지만, 외피와 연결된 감각기의 전자신호가 바람의 방향까지는 전달하고 있었다.
[가우시아.]
[네. 말씀하세요. 항해사님.]
[지금 싱크로율은?]
[안드로이드와의 싱크로율은 338%입니다.]
[나 이전과 뭐가 달라진 거지?]
[확인해보겠습니다.]
난 조용히 엘프들을 바라보며 감각기능을 점검했다.
평상시의 3배가 넘는 싱크로율.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한다. 안드로이드의 신체구조는 인간의 6배~12배. 하지만 심장에 위치한 배터리와 동력 증폭기며 여러 근섬유에서 느껴지는 이 생생함은 전혀 다른 이질감을 준다.
마치 새로운 몸을 얻은 듯 한 느낌.
[항해사님.]
[말해.]
[지금 누워계시는 본체의 몸에서 미약하게 사이오닉 에너지가 방출됩니다. 신체를 스캔한 결과 명치 부근에 직경 18mm 크기의 결석이 형성되었습니다. 결석의 성분으로 볼 때 이 별의 생물들에서 채취하는 마력의 보주와 같은 성질입니다.]
[?!]
그러니까 내 몸에 그 보주가 형성되었다는 말?
초코의 몸속에도 이 보수가 몇cm 크기로 자라고 있는 것은 안다. 바쿠얀의 몸엔 거의 달걀만 한 보주. 그리고 그 둘은 어느 정도의 마법을 따로 보주 없이도 자신의 몸에 깃든 마력으로 실행할 수 있었다.
‘만약 내 몸에도 보주가 자라고 있다면···.’
곧 들려오는 가우시아의 목소리.
[항해사님.]
[왜지?]
[명치에 있는 결석 이외에도 항해사님의 몸에는 두 개의 결석을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뭐?]
[머리와 단전입니다. 지금 바로 외과적 수술을 통해 결석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제거 하시겠습니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그 좋은 걸 왜 없애?
[아니. 수술은 사양이야. 가우시아. 내 몸을 시간 단위로 모니터링 해줘. 결석의 크기랑 사이오닉 에너지의 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겠습니다.]
난 주위로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엘프들을 보며 생각했다.
‘초코와 바쿠얀에게 마법을 배워야겠어···.’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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