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골렘(3)
046. 골렘(3)
[레오. 어디쯤?]
[어. 거의 다 왔어.]
[그럼 링크 풀겠네?]
[그렇지. 왜?]
[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링크를 바로 풀고 일어났다.
퍽!
“악!”
“아이쿠!”
박치기라니.
나와 아리스는 동시에 이마를 붙잡고 눈물을 찔끔.
이마를 붙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슨 짓을 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침대며, 내 주변은 특별할 건 없다. 창문에 비친 모습도 다를 건 없었다. 뱃가죽에 그려진 바둑판에도 X표는 하나뿐. 뭐지? 뭘 하다 들킨 거지?
“아리스!”
“박치기 벌점!”
적반하장으로 그래플링을 시도하는 그녀를 백덤블링으로 피해 달아났다.
그러는 사이 하늘에서 하나씩 윙 슈트를 입은 안드로이드들이 너구리들을 안고 내렸다. 초코가 링크를 풀고 뛰어나간다.
“신전장님!”
우선 목걸이형 번역기부터 하나씩.
설마 벼룩이 있으면 그도 안될 일이니, 안전을 위해 위생 검사부터 실시했다.
의료 침대에 신전장을 눕히니 라쿤들이 모두 의료실로 들어왔다.
“삐윳. 신전장님은 어떠셔?”
“기력이 너무 약해지셨어. 그리고 여기선 날 초코라고 불러.”
“초코?”
“응. 별에서 온 성인들이 준 이름이지. 여긴 아리스 함장님, 여긴 레오 항해사님.”
“······.”
열두 너구리들이 깊게 인사한다.
“레오 님. 혹시 보주를 써도 될까요?”
“물론이지.”
“감사합니다.”
초코는 보주의 창고에서 제법 큰 소금 평원의 장어 보주를 꺼내왔다.
“모두 준비해.”
강강술래를 하듯 손을 붙잡은 자리 가운데 초코가 보주를 품고 앉았다.
그리고 그 앞 바닥에 신선장을 눕힌다.
난 그 모습을 보며 가우시아를 불렀다.
“모두 녹화해.”
[알겠습니다.]
가운데 초코와 신선장을 두고 열두 너구리들이 손에 손을 잡고 멀리 벌렸다가 가깝게 좁히길 반복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나직하게도 삐윳거릴 수 있구나 싶은 생경하고 조용한 노래가 그들의 입에서 나온다. 그러길 잠시.
“으으음.”
하얀 털의 신전장이 천천히 깨어났다.
***
“몸은 좀 어떠십니까?”
아무리 너구리에 클론이라고 해도 존댓말이 나오는 포스.
현현한 눈빛의 하얀색 너구리가 날 보며 말했다.
“은혜를 입었군요.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아닙니다. 몸부터 추스르세요.”
내가 나가자 쪼르르 달려오는 초코.
그의 대머리에 신전장이 흐뭇한 미소부터 보낸다.
그가 초코의 대머리를 만져보며 말했다.
“허. 벌써 삐윳이 대업을 이루었구나. 훌륭하다.”
“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초코는 신전장과 그의 친구들을 모아두고 처음 두꺼비에게서 목숨을 구한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로봇 팔과 다리를 만져보며 그들은 연신 감탄사를 표했다.
“음료수라도 한 잔씩 대접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음. 초코라면 저 친구들 죽을걸?”
“그럴까?”
아리스는 귀여운 너구리들이 한가득 생긴 것이 좋았는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음료수를 뽑아와 돌렸고, 너구리들은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우와아아악!!
촵촵촵촵촵!!
저들도 이젠 아리스의 노예.
저걸 한잔 더 받아먹기 위해 영혼도 팔리라.
어찌어찌 잔치 아닌 잔치가 벌어져 버린 트레일러와 임시 쉘터.
깔깔깔 웃는 아리스의 목소리와 무서워하는 너구리와 얼굴이 붉어진 바쿠얀의 인사가 마무리될 때쯤. 신전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그 늑대 족과 기계 인간을 공격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여기 엘프들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골렘을 이용할 거로 들었습니다만.”
“맞아요.”
“그럼 저도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
“놈들에게 신전을 잃었습니다. 그 많은 책과 유물들이 파손되었지요.”
“아!”
“우리 라쿤 족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려 합니다.”
“신념이라 하시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혹시 신전장 님 이름이···?
그들의 클론 유전자에는 라쿤이 아니라 벌꿀오소리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
***
다크 엘프의 마을.
두 벼랑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위에는 하이 엘프의 여왕 나르델 레티아람과 전사 파르넬, 그리고 휠체어를 탄 네오드르 왕과 다크 엘프 장로들이 서 있었다.
네오드르 왕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땅 위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던 엘프족 근위대장이 큰소리로 외친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게.”
바닥엔 거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마치 사람이 누워 손과 발을 대자로 뻗은 형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모형의 폼으로 그려진 인물은 다른 여러 원과 기하학적 도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인물 그림의 가운데엔 커다란 하얀색의 보주가 놓여있다.
원형의 기하학 문양의 주위로 수십 명의 엘프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보주가 밝은 빛으로 주위를 비추며 점차 떠오른다.
그러길 잠시, 보주의 주위에 그려진 인물의 형태대로 바닥의 흙들이 끓어오르듯 뭉쳤다.
그그그그극!
보주가 흙 속으로 감춰져 보이지 않게 되자 그 인물 형태의 흙이 천천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략 크기는 거의 10m. 구름다리의 위로 얼굴이 불쑥 솟아올랐다. 거대한 골렘을 향해 네오드르 왕이 외친다.
“정령의 신 이스넨의 맹약에 따라 너를 내 권속으로 명한다.”
거대한 골렘의 머리가 물끄러미 구름다리 위에 서 있는 엘프들을 훑어본다. 엘프들이 거대한 골렘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력이 다할 때까지! 난 당신의 권속이오.]
“성공이군요.”
와아아아아!
다크 엘프의 계곡 마을
그 두 절벽 사이로 10m가 넘는 거대한 골렘이 우뚝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
와아아아!
엘프들의 함성이 들린다. 아리스가 엘프의 계곡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공했나 보다.”
“뭘 성공해.”
“골렘 소환”
“벌써 골렘을 만든다고?”
“응. 오늘. 지금.”
“뭐로?”
“흙?”
아리스의 설명에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게 강하겠어?”
“일단은 만들어 보는 거로 의미를 두나 봐.”
“음···”
“그래서 나도 만들었지.”
“뭘?”
“거대 괴수?”
“앵?”
그녀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휘익 바람을 불었다.
그러자 쉘터 작업을 하던 안드로이드들이 줄을 맞춰 모인다. 대략 백 마리?
난 뭐가 나올지 예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안드로이드로는 최악의 효율.
거대 합체 안드로이드.
***
엘프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거대 골렘의 모습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아, 저 모습으로는···”
골렘이 돌아서다가 무릎이 무너지며 발을 헛디뎠다. 그러자 손을 뻗어 바닥을 짚은 팔도 함께 부서져 무너진다. 시간이 지나며 부서진 곳에 다시 흙이 채워지고 자세를 새롭게 잡았지만, 흙으로 만들어진 골렘은 느리고 부서지기 쉬웠다.
난 그런 엘프들을 향해 다가갔다.
걸음마를 하기에도 덩치에 비해 내구도가 약하다.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따름.
“오. 레오 님. 오셨군요.”
“골렘이 멋지네요.”
“그래 보입니까? 그렇지만 전투에서 어떤 효용을 보일지는···.”
“처음이잖아요. 그리고··· 골렘을 이용한 전투에는 색다른 경험이 필요하죠.”
“예?”
“아리스가 부탁하더군요. 한번 싸워보고 싶다고.”
“싸운다고 하시면 설마···.”
난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리스. 나와.”
[오케이.]
쿵. 쿵.
그때 다른 쪽 골목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기계 인간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괴물. 거대 합체 안드로이드.
나무 한 그루를 뽑아 붙인 것인지 아리스와 같은 헤어 스타일.
아리스가 나 없는 동안 프로그램을 조작해 만들어낸 이 안드로이드 합체형 거대 인간으로 뒤뚱거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마치 무협 영화의 배우처럼 합장을 하더니 한 손을 뻗고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좋아. 준비됐으면 붙어보자.]
네오드르 왕이 불안한 표정으로 거대 골렘에게 목청껏 소리쳤다.
“저 상대를 물리치시오.”
[계약에 따라 명령한 대로 행한다.]
흙의 거인이 금속의 거인을 상대로 주먹을 뻗었다.
그 주먹은 보기 좋게 턱을 맞췄지만, 충격을 주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펀치란 이런 거지.]
퍽!!
아리스의 펀치에 우린 서 있는 자리에서 흙을 뒤집어써야 했다.
***
엘프들을 위로하고 돌아오는 길.
아리스가 허탈한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난들 그렇게 약할 줄 알았나?”
“나라도 딱히 위로를 해줄 상황이 아니더라고.”
“흙이었던 게 문제지. 돌이라면 달랐을 거야.”
“그래도 승리 후 그 엉덩이 춤은 너무했어.”
“······.”
“그럼 난 저 쪽 편.”
“앵?”
“왜? 아리스도 재밌잖아. 상대가 너무 약하면 그것도 김빠지고.”
“좋아! 덤벼.”
“오케이.”
난 자릴 박차고 나가 바쿠얀부터 불렀다.
그리고 신전장.
아리스는 그에게 삐유마랏 말고 ‘밀키’라는 이름을 주었다.
“가죠.”
***
나와 바쿠얀, 그리고 너구리 신전장 밀키가 골렘을 제작하는 엘프 마법사 팀에 합류했다. 아니 합류라기보다는 2개의 조로 나누어서 하는 협업.
하이 엘프와 다크 엘프 장로들이 한팀으로 골렘을 개발하고, 나와 바쿠얀 밀키가 한팀. 룰은 간단하다.
-자연에서 나오는 자료
-키는 50㎝를 넘지 않는다.
-보주는 눈알 크기로, 다크 엘프들이 자주 잡는 숲 사슴의 보주다.
우리 두 팀은 한 시간에 한 번씩 만나 전투를 벌였다.
승자는 명예를 얻고 폐자는 벌로 나가서 아리스의 엉덩이춤을 춘다.
결투가 끝나면 골렘은 계약을 해제하고 서로 정보를 나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 마법과 보주의 사이오닉 에너지의 흐름이 어떻게 골렘을 움직이는지 알 수 없기에 가우시아의 가상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 못하는 것.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골렘 꼬꼬마를 만들고 부수며 무수히 전투를 행했다.
그리고 저녁 6시.
아리스와 엉덩이춤을 걸고 행해지는 거대 골렘 전.
저쪽은 이제 가우시아까지 붙었기에 디자인부터가 다르다.
아리스의 기계 거인은 매일매일 성장한다.
오늘도 우리의 거대 골렘과 아리스의 거대안드로이드 합체 거인의 한판 승부가 들판에서 시작됐다.
“으아아아! 펀치! 펀치이!!”
“그렇지이이!”
“으아악!”
“오케이 몰아붙여!”
“돌아! 돌라고오!”
“어허허! 어찌 저럴 수가.”
화강암으로 둥글게 조각했던 골렘의 무릎이 깨지며 우리의 8번째 골렘이 천천히 무너졌다. 하지만 골렘도 자신의 마력을 다해서 안드로이드 거인의 턱을 올려 쳤다. 링크한 아리스가 기분이 나빴는지 합체에 활용된 모든 안드로이드가 입을 모아 외친다.
[마무리!]
쾅!
8전 8패.
하이 엘프, 다크 엘프의 장로들과 바쿠얀, 밀키. 그리고 나.
다크 엘프의 꼬마 아이들과 아낙들이 빨래하는 계곡이 바라보이는 벼랑 위에서 우리는 안드로이드의 구령에 맞춰 오늘도 엉덩이춤을 추었다.
***
“이번은 어때요?”
“해볼 만합니다.”
어제와 같은 맨트.
해볼 만하다고 덤볐다가 어제도 엉덩이춤을 추었지.
하지만 오늘은 정말 획기적으로 다르다.
얼굴이 둘. 팔이 넷. 다리가 여섯.
거기에 꼬리는 날카로운 집게가 달린 전갈 형.
그러니까 인간+사마귀+전갈이라는 요상한 형태다.
엉덩이춤이란 굴욕이 만든 처절한 생존본능의 결정체.
“자. 가라!”
아리스 쪽은 점점 ‘아리스’와 같다.
이젠 뽐내기에 집중했는지 얼굴까지 똑같게 조각된 형태.
단순 안드로이드를 합치는 것으로는 아깝다며 수리 로봇으로 진짜 거대한 ‘아리스’를 만들었다.
“저··· 저건 뭐야?”
“뭐긴 뭐야! 골렘이지.”
“레오! 진짜 이러기야? 이젠 완전 괴물이잖아.”
“언제나 진화는 옳아. 진화의 방향은 문제가 아니야.”
“또 헛소리한다. 엉덩이춤을 춰봐야 정신을 차리지.”
“너 어제도 엉덩이춤 연습하더라?”
“난 내 마지막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할 거야.”
“그게 오늘이길 빈다.”
“퍽이나!”
“좋아! 덤벼어어어!!”
“돌격!!”
콰앙!
퍽퍽!
우르릉!
터컹. 퍽!
대지가 울리고 땅이 뒤집힌다.
바위가 부서지며 금속이 뜯겨나간다.
부서지고 무너져도 수복되고 합쳐진다.
전투는 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마력이 달리겠는데?”
“저 기계 수의 에너지도 다 되어 갑니다.”
“좋아! 그렇지!”
“물어! 깨물어어!”
“버텨! 으아악!”
쿠웅.
“이걸?”
“이걸 이겨?”
우와아아아아아!!
계곡에서 전투를 바라보던 모든 다크 엘프와 하이 엘프. 그리고 라쿤들.
그들 모두가 계곡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다크 엘프 꼬마들이 튀어나와 엉덩이춤을 추었다.
끝나지 않는 저 두 괴수의 혈투가 끝나는 것을 바라보며 이제야 이반의 늑대 족과 놈의 안드로이드를 씹어먹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오늘 쓰러진 아리스의 거대로봇 위에서
춤추는 아리스의 화려한 골반 댄스를 넋을 잃고 바라봐야 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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