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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불시착한 김에 행성정복한 썰

웹소설 > 작가연재 > SF, 판타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21.07.26 15:13
최근연재일 :
2021.10.05 16:22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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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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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1.07.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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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5화 - 언제 출발할 수 있는데?

DUMMY

005.


가우시아의 목소리


[삐욧, 삐—이이오-욧, 삐삐-이—욧 삐뿌이요옷]


너구리 넷의 눈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커다랗게 떠졌다. 가우시아의 목소리가 재차 들린다.


[번역기를 목걸이 형태로 제작하였습니다. 저 종족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으니 부착하시길 바랍니다.]


안드로이드 하나가 쟁반에 목걸이 네 개를 가지고 들어왔다. 아리스가 쪼로로 달려가서 네 너구리들에게 목걸이를 채웠다. 놈들은 경직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서 목걸이만 만지작거렸다. 아리스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말해봐!”

“네?”

“히익!”

“신··· 신의 목소리가···.”

“목걸이에 번역 마법이 걸려있어!!”

“번역 마법 아티팩트가 이렇게 강력하다니! 내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아리스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건 너희가 너무 삐윳거리고 시끄러워서 성대에서 소리가 안 나오도록 조정한 거거든? 그냥 목걸이 스피커로만 말하라고 말이야.”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멍한 표정.


“좋아. 아무튼 그건 됐고! 이름?”


눈치를 보던 놈들이 하나씩 입을 열었다.


“삐윳입니다.”

“삐잇입니다.”

“쀼옷입니다.”

“쀼이옷”입니다.


으큼. 역시 전혀 구별이 되질 않는다. 저 언어가 귀에 익질 않으니 당연한 결과. 아리스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재미있는 것이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너희들 이름은 전혀 모르겠으니까 내가 새 이름을 지어주지.”

“새 이름 말입니까?”

“지금 이름을 버릴 필요는 없어. 그냥 나와 여기 있는 레오가 부르기 편하면 돼.”

“알겠습니다.”

“초코, 카카오, 코코아, 모카!”


인조 팔을 달고 있는 너구리가 초코. 그리고 다른 두 수컷이 카카오와 코코아, 암컷이 모카다. 뭐 부르기 편하고 외우기 편하니 아무렴 어떨까. 넷을 세워두니 정말 색깔 따라 지은 이름이네.


“그리고 지금 너희가 먹고 있는 그게 코코아야.”

“아!!”

“저게 초코고!”

“오오!!”


자신들의 이름이 먹고 마시는 것들에서 나왔다는 것을 안 너구리들이 서로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인간의 언어를 나누는 너구리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간단하게 자신의 소개를 마칠 때쯤 헤베 교수가 돌아와 합석했고 그 후 이 친구들의 이야길 들었다.


*


너구리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자신들은 치유의 신 비아나를 보시는 수도사들이다.

며칠 전 대신관을 통하여 신의 계시가 있었다.

이 별을 향하여 신성한 이가 찾아오고 있다고

그리고 그날 밤 하늘에서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비처럼 내렸다.


대신관의 명령에 따라 가장 가까운 별이 떨어진 곳을 향하여 원정대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하루도 되기 전에 태반의 전사들을 잃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괴수들과 거대한 생물들은 성격이 포악해졌다. 원정대를 공격했고, 대부분의 전사들은 수도사를 지키기 위해 명예롭게 스스로를 희생했다.


자신들은 도망치던 와중에 그 거대한 두꺼비(그들의 언어로는 삐기요긋이라 한다)의 사냥터에 떨어지게 되었다. 놈의 습성을 피해 해가 지면 움직이려 숨었으나 신의 병사(우리 안드로이드들)가 자신들을 찾아왔다. 두꺼비가 놀라는 바람에 숨어있던 둥지가 터지며 발각되었다. 그 후는 아는 바와 같다.


‘신의 계시라···.’


생각이 막 정리될 때 쯤 헤베 박사가 흥미롭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저들에겐 예언자 같은 게 있는 건가?”

“종교도 있으니 그럴지도 모르죠.”

“솔직하게는 예언을 믿을 순 없잖나? 단지 우리 탈출선과 컨테이너가 떨어지는 것을 조사하기 위해 예언이란 이유를 갖다 붙였을 수도 있고.”


헤베 박사의 말에 너구리들이 인상을 쓰며 왁자하게 삐윳거렸다.


[아직 파악되지 않은 언어입니다.]


가우시아의 친절한 설명.

너구리들의 표정만 봐도 알겠다. 저건 분명 욕.

아리스가 에너지 바 몇 개를 부셔서 던져주자 너구리들이 조용해졌다.


“그렇게 확신할 순 없죠. 저놈들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예언이라고 하는 비과학적···.”


그리고 그때 우리는 보았다.


화가 잔뜩 난 초코, 그 의수를 붙여준 너구리가 자신의 멀쩡한 손으로 플라즈마를 응축해 보였다. 밝은 빛이 손끝에 모이며 달걀 정도 크기의 화염이 둥그렇게 공을 이루며 공중에 떠 있었다.


초코가 말했다.


“더 이상 우리의 신을 모욕하지 마시오.”




***




헤베 박사의 감탄사.


“놀랍군.”


정말 놀랐다.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이건 게임도 아니다.

손에서 그 게임에서나 보던 ‘파이어 볼’을 만들어 내다니.

그것도 너구리가.


“무슨 만화 같네요.”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네.”


헤베 박사가 두꺼비의 가슴에서 꺼냈던 둥근 구슬 모양의 조직을 내보이자 너구리들이 다시 난리가 났다. 그리고 이내 심통 난 표정으로 한숨을 쉰다.


“최상급 마력의 보주일 텐데 이미 생기를 잃었어.”

“보존을 잘못 한 거야.”

“내가 옆에 있었으면 마력 보호를 위해 마법진을 그려 넣었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이 분들은 이 별이 처음이니까.”

“그래도 늪의 ‘삐기요긋’의 마력석이었어. 그것이라면 6서클은 충분히······.”


놈들의 대화를 듣다가 내가 물었다.


“이 돌에 마력이라는 게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마력의 보주입니다.”

“너희들이 방금 보여준 그 힘이 ‘마력’이라는 거고?”

“맞습니다.”


그때 가우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주에 있는 함선의 메인 가우시아와 연결되었습니다. 데이터 백업 및 동기화를 진행합니다.]

[우주선 선체에 이상 징후를 발견하였습니다.]

[29시간 전, 동면 시스템에서 4명의 승무원이 강제로 동면을 해지하고 깨어났습니다.]

[15시간 전, 4기의 탈출용 포트가 행성을 향하여 발진했습니다. 탈출자는 이반, 칼리, 알렉사, 매튜 이렇게 4명입니다.]


“뭐?”


나와 아리스, 헤베 박사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





우주선 선체에 있는 메인 컴퓨터 가우시아.

우린 가우시아가 우리 머리 위를 지나는 동안 빠르게 보안프로그램을 돌리고 방화벽을 강화했다.

발견된 바이러스는 세 개.

[네오이데아 트로이 목마 (Neo idea-Trojan)]

[네오이데아 파일리스 (Neo idea-Fileless)]

[네오이데아 스파이웨어 (Neo idea-Spyware)]


우리 함선은 최고급 사양의 4세대 인공지능이다.

놀랐던 것은 이 인공지능 가우시아가 자신의 방화벽이 뚫린지 몰랐다는 것.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이러스의 실체가 [네오이데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멍청한 것은 바이러스의 속성. 몇 백 년 전에나 써먹히던 원시적인 방식이 오히려 빈틈을 만들었다.


“이 쥐새끼들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었어?”

“내 함선에 그 짐승들이 네 마리나 숨어들었는지 몰랐네요.”

“네오이데아라니······ 젠장.”


[이데아]가 해체된 지 30년, [네오이데아]는 더욱 은밀하게 활동하는 범죄조직이자 악의 축이 되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점조직, 즉 개인으로만 움직였기에 뿌리 뽑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결국 결론은 지금 함선을 탈출한 네 명은 [네오이데아]출신이자 범법자라는 것.


그들이 우리 함선에서 무슨 불법적인 일을 했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객관적 사고로는 그럴 리 없지만, 심증으로는 지금의 불시착 사고도 그들의 짓만 같았다. 그만큼 [네오이데아]의 악명은 우리에게 커다란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난 분노한 얼굴로 4대의 탈출선이 향한 방향부터 물었다.


“놈들은 지금 어디 있지?”

[탈출선의 착륙지점을 지도에 표시합니다.]


정확하게 대륙을 각각 양분하는 위치들. 그리고 어림짐작으로 봐도 우리의 컨테이너들이 뿌려진 위치 중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이거 난리 났네.”

“레오! 어쩌지?”


난 걱정 가득한 아리스를 달래며 행성 벨로나의 3D 지도를 살폈다.


“아무리 가까운 탈출선도 최소 12,000km 거리야.”

“그럼 우리 안드로이드들 다 빼앗기는 거 아니야?”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라도 그럴 거야. 최우선 목표는 안드로이드 탈취겠지. 이제부터 전쟁이 일어났다고 봐야 해.”

“자넨 어쩔 텐가?”


헤베 박사의 질문에 답은 뻔했다.


“최대한 많이 그리고 빨리 안드로이드를 확보해야죠.”

“어떻게 말인가?”

“네오이데아 놈들이 안드로이드를 노리고 탈출선으로 이 별에 강하했어도, 탈출선의 기본기능으로 운신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이동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그 전에 우리가 최대한 많은 양의 안드로이드들을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고출력의 프린터와 생산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잖아요?”

“레오. 드론을 통해서는 컨테이너의 인증을 원격으로 열 수는 없어. 권한 관리자인 내가 직접 가서 접속인증을 해야 해.”

“음······.”


어쩔 수 없다.

내가 매인 테이블에서 속도가 빠를 것 같은 비행기의 설계도를 띄워 검토했다. 그때 초코와 코코아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이건 비행을 하는 날틀인가요?”

“어떻게 알았지?”

“비슷해요. 우리에게도 있었거든요.”

“오!!”

“하지만, 지금은 무용지물입니다. 하늘은 삐쿠아옷의 세상이에요.”

“삐쿠아옷?”


내가 궁금해하자 코코아가 바닥에 자신이 마시던 코코아로 그림을 그렸다.

긴 주둥이와 날개.

첫날 우리 수송선을 습격했던 그 괴조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날개에 달린 발톱과 다리, 꼬리가 전혀 다른 굵기와 길이.

모양이 날개가 달린 거대한 도마뱀 같다. 아니면 용?


“작은 것은 30m, 큰 것은 100m가 넘어요.”

“뭐?”

“하늘은 이놈들의 것이에요. 날아서는 절대 멀리 못갑니다. 이들이 허락하질 않아요.”


그림을 본 헤베 박사는 뭔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 모양에 그 크기라면 마치 옛 전설에 나오는 드래곤이나 와이번 같구먼.”

“만약 날 수 없다는 조건이라면 우리만 그런 게 아니잖아?”

“그렇겠지. 저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박사님. 전 안드로이드를 수거해야겠어요. 박사님이 이 쉘터를 지켜주세요. 둘이 가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리스가 직접 컨테이너를 열어야 하고, 안드로이드를 움직이려면 제가 방어벽을 뚫고 해킹으로 관리자 접속을 유도해야 하니까요.”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하게.”

“먼저 여길 중심으로 반경 2000km까지만 모아볼게요.”

“어서 준비하게.”


떠날 결심을 하니 필요한 물건들이 많았다.

프린터의 출력 생산량부터 늘려야 했다. 대형 프린터로 출력 가능한 소형 프린터의 설계도부터 찾았다. 탈출선에도 이 소형의 프린터가 있으니, 놈들도 무엇이든 출력부터 하고 있을 터. 함선에서 뜯어 온 고출력의 대형 프린터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천운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강점.

아리스가 물었다.


“뭐부터 출력해야 하지?”

“우선은 프린터부터. 그리고 장거리 출장이 될 테니 튼튼한 트럭과 트레일러부터 뽑아야지. 수리 로봇이 몇 대지?”

“여덟!”

“쉘터 건설은 잠시 멈추고, 출력물 조립부터 부탁해.”

“오케이.”


우린 각성제부터 입에 털어 넣었다. 잠은 출발 후에 자도 충분하다. 느긋하게 섬과 대륙의 생태계를 조사하며 천천히 테라포밍할 계획이었는데 모두 무산되었다.


네오이데아 놈들이라면 우리 모두를 죽이고 이 별을 어디에 팔아먹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건국 초기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인 철저한 ‘차별주의자’였으니 말이다.


거기에 더해 접속 코드인 나노 머신이 뇌에 삽입되지 않은 이는 그들의 세계에서는 우주를 더럽히는 무가치한 존재. 바이러스일 뿐이었다.


우리가 프린터에 들어갈 재료를 공급하는 동안, 헤베 박사는 우주에 있는 함선의 메인 가우시아와 접속했다.


“가우시아. 내 짐에서 랩톱에 접속해 데이터를 이송해 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죄송합니다. 헤베 박사님, 박사님의 짐과 함께 수면 중인 11명의 짐이 모두 도난당했습니다. 아마도 행성으로 불시착한 네 명의 소행으로 추정합니다.]


“뭐라고? 이런 제기랄!!”


헤베 박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제발, 내 랩톱의 접속 코드를 찾아내지 못해야 할 텐데··· 말이야···.”




***




나는 첫 번째로 출력한 소형 프린터에 중세시대 풀 플레이트 갑옷을 연상시키는 안드로이드 형 외장갑을 설계해서 걸었다. 사철을 정제해 만드는 간단한 방식이었지만, 어제처럼 엉뚱하게 산성 독을 뒤집어쓰고 안드로이드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이 별의 생태계는 위압적, 100m가 넘는 크기의 생물이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했다. 안드로이드가 강하다 하여도 최대한 전투력을 높여야 했다. 하다못해 네오이데아 놈들이 강탈한 같은 안드로이드와 대적하게 된다면 그 작은 차이가 승리를 이끌 터였다.


두 번째로 출력된 소형 프린터에서는 칼과 창, 도검 같은 무기류를 출력했다. 특히 방패와 창의 조합이 대 안드로이드 전투엔 최적. 화약 무기가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자원이 부족하다. 특히 탄약 공급에 걸리는 시간과 자원을 만들 수가 없었다. 대신 초진동 단검은 생산이 가능했기에 단검을 쇠봉에 달아 초진동 장창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세 번째로 출력된 프린터엔 수리 로봇의 미니미들을 부탁했다. 안드로이드가 전투에 들어가면 수리와 재활용이 꼭 필요한 상황. 함선 수리용의 저 커다란 놈들 외에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재조립을 해야 하는 안드로이드를 관리할 수리 로봇이 필요했다. 이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안드로이드 전투에 가장 큰 전력이 될 터였다. 수리 로봇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대형 트레일러는 운전석이 있는 헤드와 엔진부 바로 위에 예의 벌컨포를 설치했다. 그나마 우리에게 있는 최대의 전력. 20mm 포탄은 프린터를 하나 실어 그때그때 자원을 모아 출력해 모으면 된다. 그리고 2인 주거용의 카라반과 그 뒤 안드로이드를 실어 운반하는 컨테이너.


마지막은 큰 짐을 움직이기 위해 다목적으로 설계된 거대한 로봇 팔이 장착된 기중기와 소형 버기 두 대를 넣을 수 있는 격납 창고. 이렇게 준비하다 보니 거의 80m 길이의 4칸짜리 대형 열차가 되어버렸다. 거기에 관측용 드론이며 필요한 것을 넣고 넣다 보니 일이 끝이 없다.


그리고 그때 사이렌과 같은 가우시아의 경고음이 들렸다.


[함장님. 탈출한 승무원에게서 추락한 안드로이드 컨테이너와 첫 접촉이 확인되었습니다.]


거리는 대략 24만km 행성의 반대편에서 우리보다 먼저 컨테이너의 안드로이드를 확보한 이가 있었다.




***



푸슈욱

치익!


[접속 코드가 승인되었습니다.]


끼이익. 텅!


기관장이자 1급 플라즈마 엔진 관리사인 이반은 씁쓸한 얼굴로 컨테이너의 문부터 뜯어냈다. 긴 천으로 둘러싸인 컨테이너는 반쯤 땅에 박혀있었지만, 외형만큼은 크게 부서진 곳이 없었다. 특히 그를 즐겁게 한 것은 이 컨테이너가 지금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세 개나 함께 모여 있었다는 것. 그가 랩톱을 조작하자 자신을 감싸고 있던 아리스의 외형이 사라졌다.


“일어나라!”


어두컴컴한 컨테이너 안에서 푸른색 눈이 반짝이며 안드로이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왼팔에 감긴 랩톱에 안드로이드의 리스트가 새롭게 갱신된다. 그는 빠르게 비어있던 명령권자 항목에 자신의 3D 사진과 DNA 인증 코드를 올리고 새롭게 부대를 개편했다. 컨테이너 하나당 500대, 지금 자신에게는 1,500대의 최신형 안드로이드가 포섭되었다.


“좋아.”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쉘터 건설과 자원 확보.

간단한 명령 몇 번에 안드로이드들이 자신이 실려 왔던 컨테이너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활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탈출선에 함께 실려 있던 소형 프린터의 자원카트리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한다.


“우선은 이동이 최우선이라······.”


그의 머릿속 구상은 쉘터이자 이동 요새.

거대한 움직이는 성이었다.


“자원이 엄청나게 필요하겠는데?”


그는 탈출 포트에 박혀있는 프린터에서 건설 로봇부터 출력하기 시작했다.


“기다려라 새끼들아! 내가 일등이다!”




***




행성의 반대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넓은 들판. 비릿한 혈향이 온 대지를 비와 함께 적셨다. 가늘고 거친 비명이 하늘을 찌른다.


“키에에엑!”

“제길! 제길! 제길! 제길!”


갑판장이자 함선의 유지관리 책임자인 칼리는 탈출선에서 나와 첫 컨테이너를 열자마자 위기에 봉착했다.


“저것들은 뭐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녹색의 괴물들. 8살 정도의 꼬마 아이 같은 체구에 넝마 같은 옷을 입었는데 이빨은 마치 상어처럼 날카로웠다. 조악한 뼈칼과 손도끼, 대롱으로 부는 독화살을 장비한 이들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저것들은 위험해 보였다. 그의 명령에 안드로이드들이 무표정하게 움직였다.


“키에엑!”

“쿠엑!”


죽이고 죽여도 그 숫자가 줄지 않는다.


500 대의 안드로이드 중에 벌써 십여 기가 파손되었다. 배터리가 폭발하며 일으킨 풍압과 파편에 살덩어리가 뭉텅뭉텅 떨어져 왔지만, 놈들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들판 가득 보이는 놈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수천은 되어 보였다. 천둥에 슬쩍 보인 그들의 눈은 붉게 불타고 있었다.


“저놈들을 다 쳐 죽여야 이 지역이 내 것이 되는 건가?”


그때 저 멀리 이제까지 보아왔던 괴물과는 다르게 생긴 거대한 덩치가 나타났다. 그의 주위엔 마치 수발을 들 듯 많은 이들이 가마를 만들어 어깨에 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술잔을, 다른 손에는 거대한 넓적다리 고기를 들고 있다.


“저놈! 저놈이야! 저놈을 먼저 잡아!”


번개처럼, 안드로이드 백여 대가 길을 뚫는다. 그리고 그 덩치 큰 괴물을 보호하려는 이들의 머리를 부수고 손발을 뽑는다.


“크에엑!”

“캬악!”


단순하지만 강력한 완력 공격.

큰 괴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 듯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죽이지 말고 이리로 데려와!”


안드로이드 둘이 그 덩치의 괴수를 잡아 칼리 앞에 데려오자, 그 괴수는 덜덜 떨며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에 쓰고 있던 뼈로 된 관을 떨리는 손으로 바친다.


“뭐야? 이 새끼. 별거 없었잖아? 쪽수는 개같이 많더니, 다 졸이었냐?”


그가 그 뼈로 된 관을 쓰자 평원에 있던 수천의 괴수들이 멈추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음? 뭐야? 나 지금 왕 된 거?”


그는 장대비를 맞으며 하늘이 보고 찢어지게 웃었다.


“아하하하하. 이게 뭐야!! 이 별! 개 막장 게임이네!!”




***




/삐잉. 삐잉/


테이블 위에 영사되는 3D 행성 지도에 벌써 8번째 컨테이너가 점령되었다는 표시가 떠올랐다. 아리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코코아를 소리 내어 빨아먹었다.


“언제 출발할 수 있는데?”

“이것만 출력되면 바로!”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래도 있으면 훨씬 편할 거야.”


내가 지금 제작하고 있는 것은 다족 보행 산악용 버기였다.

외형은 우리가 ‘돈벌레’라고 부르는 다족류의 ‘그리마’를 닮았다. 발은 총 12개. 무게를 완벽히 분산해서 절벽도 쉽게 기어오를 수 있는 산악 운송용 탈것.

만약 저 대형 컨테이너가 갈 수 없는 지형이라면 이 메탈 ‘그리마’를 타고 안드로이드만 따와야 한다.


“다 됐다.”


내가 이 그리마를 타고 수송 창고의 외벽과 천장을 기어오르자 아리스가 생경한 눈으로 장비를 살폈다.


“생긴 것보다는 훌륭하네. 그럼 준비는 다 된 거지?”

“응.”


그때, 창고의 문이 열리며 네 꼬꼬마. 라쿤 족이라고 부르기로 한 너구리들, 초코, 카카오, 코코아, 모카가 쪼르르 다가왔다. 그리곤


“저희도 가겠습니다.”

“길잡이 역할을 하게 해주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솔직히는 이놈들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넷을 다 데려갈 이유는 없었다.


“어쩌지?”


아리스의 질문.

난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초코만 데려가자. 그의 의수라면 통신 기능도 들어있을 테니까. 가까운 거리라면 통신도 될 테고, 이 여정에 도움이 된다면 그건 초코뿐이야. 초코가 마력도 가장 강하고.”


내 선언에 초코의 입에서 번역되지 않은 말이 쏟아졌다.


“뀨뀨이요오우!!”


그렇게 우리 셋은 이름 모를 평원을 가로지르며 트럭을 몰았다. 안드로이드를 모으기 위한 첫 출정이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무명의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덧글로 따끔하게 부족한 부분도 지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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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화 - 구출 (1) +6 21.08.23 455 16 14쪽
34 33화 - 흡혈충 +8 21.08.22 502 13 14쪽
33 32화 - 제2쉘터 아사스 (1) +6 21.08.21 486 16 14쪽
32 31화 - 아누카 (2) +8 21.08.20 496 20 11쪽
31 30화 - 아누카(1) +4 21.08.20 491 13 13쪽
30 29화 - 명령권자 신규 등록 +9 21.08.19 555 13 19쪽
29 28화. 그렇다면 재능을 한 가지 설정하시죠. +10 21.08.18 536 15 16쪽
28 27화 - 그래도 무척 절박했을 것 같지 않아? +10 21.08.17 515 20 16쪽
27 26화 - 이제 넌 내꺼야. +4 21.08.16 554 19 17쪽
26 25화 - 왜? 아쉬워? 좀 더 기다려 줄 걸 그랬나? +6 21.08.15 542 16 15쪽
25 24화 - “한 놈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잡아라. 알겠지?” +8 21.08.14 579 17 14쪽
24 23화 - 크크크! 이거 너무 재밌잖아. +9 21.08.13 588 20 16쪽
23 22화 - 나야, 매튜, 너희들이 우주에 버린 요리사. +4 21.08.12 619 24 19쪽
22 21화 - 저 아이의 줄기세포를 추출해 줘. +10 21.08.11 594 21 13쪽
21 20화 - 금안의 아이가 태어났소! +9 21.08.10 642 24 12쪽
20 19화 - 함장님의 바이탈 사인에 이상이 있습니다. +12 21.08.09 627 24 14쪽
19 18화 - 하아. 이 새끼···. 내 이럴 줄 알았지. +4 21.08.08 628 24 16쪽
18 17화 - 모두 무기 버리고 꼼짝 마! +6 21.08.08 660 19 13쪽
17 16화 - 그 지형은 유독 유별났지······ +6 21.08.08 654 23 16쪽
16 15화 - 지금 너한테 깔린 모드가 총 몇 개니? +12 21.08.07 725 22 15쪽
15 14화 - 당신들의 이 수호신은 철의 골렘입니까? +6 21.08.07 746 28 17쪽
14 13화 - 최초 모델의 출력까지 2시간 12분이 소요됩니다. +4 21.08.06 750 30 13쪽
13 12화 - 아무튼 고맙군. 좋은 몸을 새로 주어서 말이야. +6 21.08.05 809 29 22쪽
12 11화 - 딱 봐도 개발자네. +8 21.08.04 833 32 16쪽
11 10화 - 으악! 이게 뭐야? +7 21.08.03 867 34 21쪽
10 9화 - 잠깐 이 데이터를 살펴봐 주세요. +12 21.08.02 906 30 20쪽
9 8화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일까? +6 21.08.01 938 33 16쪽
8 7화 - 전투는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16 21.07.31 1,030 33 15쪽
7 6화 - 클론 배양기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14 21.07.30 1,207 39 15쪽
» 5화 - 언제 출발할 수 있는데? +22 21.07.29 1,464 53 21쪽
5 4화 - 외계 종족의 언어 구조와 해독이 완료되었습니다. +14 21.07.28 1,632 62 13쪽
4 3화 - 이 생명체가 지구와 똑같다고? +10 21.07.27 2,095 65 15쪽
3 2화- 안전할 것 같은 착륙지를 스캔해줘 +24 21.07.26 2,682 86 18쪽
2 1화 - 불시착 +18 21.07.26 3,379 111 19쪽
1 프롤로그 - 무섭도록 평범한... +30 21.07.26 3,961 125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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