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 스토리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창고 안으로 써치라이트가 환하게 비치며 경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경찰들의 진입을 막는 조폭들과 도망치는 건달들 그들을 쫓는 경찰들로 창고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봐. 정신 차려. 괜찮아?”
정우가 급하게 달려와 의자에 묶인 기훈을 풀어주며 말했다.
“한 반장님이 여기를 어떻게?”
“쯪쯪, 한심한 사람...... 이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먼저 상의를 했어야지.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지경이 된 거야?”
“유, 유리는 요?”
“지금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 같이 진입한다는 것을 말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그럼 안 되는데......안돼!!!”
기훈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한 반장님. 지금 여기 유리 아버지가 와있어요.”
“뭐? 친 아버지가 와 있다고? 그 사람이 왜?”
정우는 기훈의 몸에 감긴 줄을 풀던 손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 친 아버지 맞아요. 지금 절 해치려 한 것도 그자가 한 짓이에요. 그자가 유리를 만나면 안돼요. 유리가 얼마나 충격을 받을 지 모른다구요. 빨리 요! 빨리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해요!”
정우는 기훈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묶여있는 기훈을 놔두고 반사적으로 뛰어나갔다. 친 아버지라니……. 교도소에서 나간 그녀 아버지가 조까치파에 들어갔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나이로 전국구 최대 조직에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동안 그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조폭 아버지와 검사 딸…….이 막장 아침 드라마 제목 같은 만남을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였다. 하지만 정우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부하들에게 둘러 싸여 급히 몸을 피신한 기형은 창고 뒤 으슥한 곳에 대기 시킨 차에 막 올라 타려던 참이었다. 기형 등 뒤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차에 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꼼짝 마! 너희들을 납치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유리였다. 정우의 만류로 창고 밖에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창고 뒷쪽으로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하고 슬그머니 그들을 쫓아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유리야”
총을 든 그녀 앞으로 조직 폭력배 중 우두머리도 보이는 자가 두 손을 들고 다가왔다. 점점 그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선명해 지자 유리의 동공이 두 배로 커졌다.
“다. 당신은?”
“그래. 날 알아보겠니?”
“아, 아, 아버지?”
총을 든 그녀의 손이 크게 떨렸다.
“영특한 것, 내 얼굴을 잊지 않고 있었구나. 그래 내가 네 아버지다.”
기형은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 목소리엔 반가움 보단 두려움이 더 많이 담겼다.
“어, 어떻게 이곳에 계신 거에요?”
그녀 등 뒤로 경찰견의 짓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시간이 없구나. 얼마 안 가서 내가 직접 널 찾아가마. 그때 이야기 하자.”
기형은 유리에게 부드럽게 웃어주고는 차에 올라탔다. 이어서 경찰들이 달려오는 소리와 경찰견의 짓는 소리가 그녀 주위를 감쌌다.
"유리야. 괜찮아?”
기훈이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기훈의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토록 보고 싶은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유리는 힘 없이 기훈의 품에 안겼다. 긴장이 풀어지고 맥이 풀린 그녀는 기훈의 품 안에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
"손 똑바로 들엇! 요령 핀다 이거지?”
"......"
며칠 후 기훈과 유리가 함께 사는 집에선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그날 기훈의 품에 안긴 그녀는 하루 밤낮 꼬박 정신을 잃었다. 의사 말로는 몸살을 동반한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이 삼 일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 질 거라고 말했다.
그녀가 기운을 차리고 두 사람은 함께 집에 돌아왔다. 기훈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화가 풀리지 않자. 자진 납세라며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손드는 벌을 자청했다.
“아쭈? 손이 점점 내려온다. 이제 겨우 오 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빠지는 거야?”
유리는 벌 서는 학생을 감시하는 학생 주임처럼 기훈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매의 눈을 하고 지켜보았다.
‘젠장 시키지도 않았는데 괜히 한다고 했나?’
팔이 아프고 무릎이 저려 왔다. 기훈은 몸을 배배 꼬았다. 그 모습을 가소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유리가 고개를 숙여 기훈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날 떠나라는 협박을 받고 그랬다 이거지?”
기훈은 대답 대신 위아래 이빨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어색하고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웃어야 한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지금 복어처럼 독이 잔뜩 오른 이 여자를 달래려면 웃어야 산다. 기훈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웃지 마! 정들어! 그러니까 한마디로 날 위해서 그런 거다?”
두 팔을 든 채 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남자가 협박 좀 받았다고 그렇게 쉽게 떠나. 그게 말이 돼?”
“하지만, 네 아버지 일 이라서………”
“시끄럿! 그러면 나에게 먼저 말을 했어야지, “
“그래도……..차마 말하기가……..”
쉿! 그녀는 손가락을 기훈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더 이상 말하지 마. 내겐 아버지보다 당신이 더 소중해. 그걸 몰라서 그런 거야?”
“알지.”
팔에 쥐가 날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내리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화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 밀고 있는 있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벗어나려고 앙탈을 부렸다.
“왜 이래. 이거 놔! 징그러워.”
“유리야. 사랑해~”
“징그럽다니까. 왜 이래요.”
“너도 좋지? 다시 같이 있게 되어서?”
“좋기는 뭐가 좋아! 지금 벌 서기 힘들어서 이러는 거지? 내가 미쳐!”
“유리야. 사랑해!”
기훈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그는 유리를 안은 채 받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벨 소리는 예전 노래인 ‘아이처럼’ 에서 새로운 노래로 바뀌어 있었다.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쉬고 있지만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위엔
같은 모습의 바람이 지나네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꺼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꺼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여)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그녀를 떠나며 기훈이 가슴으로 울면서 들었던 노래였다. 기훈의 품에 안긴 작은 새의 앙탈이 잠잠해 졌다.
******
“13년 만이구나. 잘 자라줘서 고맙다.”
기형이 유리를 찾은 것은 기훈을 창고에서 구해낸 뒤 일주일 후였다. 기형과 유리는 인천지청 근처의 한적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녀는 쉽사리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죠? 조까치 파의 경호부장이라니 아버지가 어떻게 거기에 있는 거죠?”
“인생이란 모르는 거지.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참 기구하기도 하구나. 난 너를 위한다며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넌 검사라니. 참 얄궂다.”
“절 위해서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검사 딸을 위해 조폭이 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없어요.”
“그래.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출소한 이후에도 한동안 너를 보러 올 면목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일 그만두시면 되잖아요.”
“유리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기형의 눈에 서글픔이 감돌았다.
“네가 검사가 된 줄 알았다면 절대 조까치파에 들어가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 발을 담근 이상 빠져 나오기가 쉽지가 않아.”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는 애처롭게 딸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곳을 나오게 되면, 그 화살이 너에게로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번 사건으로 이미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조직 내에 알려져 버렸거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조직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시무시해. 일개 검사 따위는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지금은.....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이 너를 위한 일인 것 같구나.”
“제 핑계는 대지 마세요. 제 기억 속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핑계만 대셨죠. 제가 어렸을 땐 어머니 핑계. 이제는 제 핑계.”
“어릴 적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내가 정말로 더 면목이 없구나. 하지만 믿어다오. 내 인생에서 여인이란, 오로지 네 엄마와 너 밖엔 없었다. 그때는....... 그때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지금도 제 정신이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기훈의 일 때문일까 유리의 말투는 사뭇 냉정하다 못해 적대적이었다. 기형은 한참 동안 말없이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얼마나 몹쓸 아비인지는 잘 안다. 지금도 그렇고. 네가 원망해도 할 수 없지. 네가 원한다면 앞으로 네 앞에 나타나지 않으마. 하지만 그 남자는, 그 남자만큼은 절대 안 된다.”
“기훈씨요? 그래서 그런 일을 꾸미신 거에요?”
“넌 그 자식이 무슨 생각으로 너랑 같이 있는지 몰라. 그 녀석은 네 엄마를 빼앗아 가고…….”
“자기의 아내와 딸을 죽인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저를 데려왔다는 것 잘 알아요.”
말을 끊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 말투에 오히려 놀란 것은 기형이었다.
“........너, 너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냐?”
“네. 잘 알고 있어요.”
“언제부터 안 거니?”
“처음부터 요. 그 사람이 절 고아원으로 찾아왔던 그 순간부터 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놈 옆에 있었던 거야? 그 놈은 네 엄마를 내게서 빼앗아 간 놈이야!”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는 기형을 유리는 한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아버지가 죽인 그 사람의 아내가 어머니라고 생각하세요?”
“물론이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네 엄마가 그 놈하고 같이 있는 것을.”
유리는 가방에서 작은 종잇 조각을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여기요. 엄마가 사는 곳의 주소와 연락처에요. 과테말라의 한 시골 마을이에요. 그곳에서 불리는 이름은 마리아라고 하더군요. 전 연락해 본 적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 같아서 찾아놓았어요. 확인은 하셔도 되지만 찾아가거나 직접 연락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사람보다 신을 더 사랑한 여자니까요. 진정 사랑하셨다면 가만히 놔두시는 것도 사랑이겠죠.”
유리는 기형 앞에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놓아두고 일어섰다. 기형은 그녀가 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할 뿐 차마 손 내밀어 잡지를 못했다.
아버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유리는 온몸이 떨리며 열이 나더니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태연한 척, 냉정한 척, 아버지 앞에서 애써 담담한 척을 했지만 십 수 년 묵혀있던 애증과 고통의 기억들을 억누르기엔 그녀의 몸은 너무 가냘펐다.
감동 받았죠? 그럼 한마디 남기는 센스는 기본이죠 ^^
- 작가의말
20 만 자 고지가 눈앞이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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