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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미 판타지 지옥에 빠져 들었다.

하고 또 하고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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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밍교s
작품등록일 :
2015.04.18 08:26
최근연재일 :
2015.05.05 18:10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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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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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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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짐승 같은 놈

DUMMY

한정우 반장이 기훈과 유리가 사는 빌딩을 찾을 무렵 어둠은 서쪽 하늘에 희미하게 남은 여명의 흔적을 그악스럽게 몰아 내고 있었다.


사방 50미터 내엔 아무것도 없는 재개발 예정지 공터 주변에 알박기 하듯 자리 잡은 오래된 빌딩은 외장 타일이 뜯겨져 흉했고 유리창들이 깨진 채 방치 돼 연쇄 살인 사건 벌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불도 켜지지 않는 컴컴한 현관을 지나 어둠 속에 잠겨있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 앞에 멈추었다. 회색 재킷을 뒤져 손가락 만한 소형 LED 플래시 하나를 찾아 냈다.


발소리 죽여 계단을 내려와 지하실 철문 앞에 다다른 정우는 예감이 틀리지 않음을 확신했다. 묵직해 보이는 철문이었다. 여느 문과는 달리 잠금 장치가 밖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떠오를 단어는 두 가지였다.


'정신병 환자. 그리고 납치 감금.'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는 동일 했지만 선의에 의한 행위와 악의에 의해 비롯된 행위라는 점이 틀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감금된 이와 감금한 이가 함께 있다는 뜻이었다. 날카로운 베테랑 형사의 직감이 떨리고 있었다. 현관문을 여는 정우의 머리 속에 도망간 마누라가 데리고 간 딸이 떠올랐다.


유리와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반장이 되자 마자 마누라와 딸부터 찾으려 사방을 돌아다녔다. 모녀의 흔적을 찾아 사방팔방을 헤맸었다.


3년 묵은 서당개처럼 그의 마누라 또한 형사의 아내로 10년 이상을 묵은 여자였다. 남편이 언제 어디를 덮칠지 알고 있다는 듯 언제나 한 두발 먼저 추적을 피했다.


가난이 부른 비참함과 고통은 부부의 가슴에 돌아오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행복을 찾아 서로 다른 삶을 살자 해도 서운하지 않으련만... 딸......형사인 아빠를 자랑스러워 했던 어여쁜 딸 만은 반드시 찾고 싶었다.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평생을 금과옥조처럼 간직하던 '청렴결백'과 '정의' 란 단어 마저 기꺼이 내팽개쳐 버리리라 생각했다.


어딘가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지 모를 딸이 현관문 넘어 보게 될 계집아이와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불안감에 손잡이를 돌리는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100촉 백열전구가 희미하고 누런 광원을 뿜어내는 좁은 거실 옆에 붙은 주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참혹했다.


먹다가 만 소주병이 놓여있었다. 열살 난 계집아이는 얼마나 맞았는지 하얀 셔츠가 물들도록 머리부터 피를 흘리고 있었고 웃통을 벗은 사내가 아이의 절규를 무시한 채 고함을 지르며 셔츠를 벗기려 하고 있었다. 정우는 괴성과 함께 사내에게 달려 들었다.


야위다 못해 부실해 보이는 사내는 갑작스런 공격에 아무런 저항도 못 했다. 사내의 배 위에 올라 탄 정우는 무턱대고 얼굴에 주먹을 퍼부었다.


얼마나 사정 없이 쳐 댔는지 때리는 주먹에 피가 났다. 때리다 지쳤는지 팔이 느려졌다. 묵직해 보이는 프라이팬을 들고 계집아이가 다가왔다.


'어린것이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으면 짐승 같은 놈을 때리고 싶었을까'


그래도 아니다 싶어 아이를 제지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 하더니 정우는 정신을 잃어 버렸다.



***********



흔드는 것을 느낀 기훈이 눈을 떴다. 얼굴이 얼얼했고 쑤셨다. 퉁퉁 부은 왼쪽 눈은 잘 떠지지 않았고 시야 마저 흐릿했다.


방안을 둘러보았다. 체구는 작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사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리둥절해 있던 그의 귀에 짧지만 단호한,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라 울렸다.


"빨리 묶어요"


유리의 손에는 박스 테이프가 들려 있었다. 마법에 걸린 듯 기훈은 시키는 데로 사내의 양 손목을 등 뒤로 하여 테이프를 칭칭 감았다.


"발목도 감으세요."


발목에 테이프를 감으면서 기훈은 문득 침착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계집아이가 과연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던 그 열 한 살 짜리 계집아이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달리 뾰족한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아 시키는 데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입은 막지 마세요. 저쪽 벽에 앉혀 주세요"


입을 막으려는 기훈을 만류하며 유리는 거실 구석 그녀가 쪼그려 앉았던 벽을 가리켰다.


사내를 끌어 옮기면서 기훈은 그녀 판단이 옳다고 여겼다. 한적하고 인적 드문, 동떨어진 건물 지하로 이사 온 이유가 소리치고 고함 질러도 누구 하나 관심 끌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급박하고 당황스런 순간에 그런 것까지 계산했을 아이의 차분한 눈동자를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기훈은 소름이 끼쳤다.



벽을 기대고 앉아 기절해있는 정우의 정수리 끝에 차가운 물 줄기가 흘렀다. 물줄기가 얼굴 윤곽을 따라 맺힐 즈음 그는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다리가 묶여 있음을 알아 챈 정우가 황급히 손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살피는 기훈의 엉망이 된 얼굴을 적의와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쏘아 보았다. 그 뒤에서 비어 있는 물컵을 든 채 표정 없이 서있는 유리를 발견하자 정우의 눈빛은 애처로움과 의문으로 바뀌었다.


"왜....?"


"남동 경찰서 강력반 한정우 형사님 이시죠?"


얼굴과 턱을 조그마한 수건으로 닦아주며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그의 신분을 말하는 작은 목소리에 정우는 움찔했다.


'형사' 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자 기훈 역시 움찔 했다. 경황이 없었다.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자 가족 살해 사건 담당 형사였던 박형사 곁에 자신을 지켜보던 작은 체구의 형사가 기억 났다. 그가 왜 이곳에 왔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살인자의 딸, 그리고 피해자의 아빠.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동거를 목격하고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 이리라. 하지만 형사가 유리가 살인자의 딸인 것을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형사님이 무슨 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새끼, 쓰레기 같은 놈"


적의에 가득 찬 단어들은 그가 기훈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최악의 경우 형사를 제거해야 할 지도 몰랐다. 어떻게 처리 할 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형사님께서 오해 하신 것 같아요."


열 한 살짜리 여자아이 입에서 튀어나온 "오해"라는 단어는 그녀 키와 얼굴에 비교해 어울리지 않았다.


"형사님 생각처럼 아빠는 절대 그럴 뿐이 아니에요"


그녀는 다정한 눈빛으로 기훈을 바라보았다..


'아빠' 라는 단어에 기훈은 귀를 의심했다. 자신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투로 말하고 있는 계집아이에게 경악했다. 형사를 처리해야 한다는 고민마저 잊어 버리고 소녀의 입술을 주시했다.


유리의 또박또박 뚜렷한 목소리엔 의심 할 수 없는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정우는 그녀가 한 말이 짐승 같은 사내가 폭력과 욕설을 통해 협박한 결과라고 의심했다.


'연약하고 어린 것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기에 준비된 냥 아무일 없던 것처럼 무표정 하게 말 할 수 있을까?'


정우의 의중을 알았는지 바라보던 유리는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란 말을 남기고는 욕실로 들어 갔다.


한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채 한 남자는 살기 가득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침묵이 어색하게 흘렀다.


물소리가 나더니 하의만 입은 채 상체를 팔과 입고 있던 티셔츠로 가린 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젖은 머리는 그녀의 등에 찰싹 붙어 있었고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연분홍 빛 투명한 피부가 어깨 위에 빛났다.


"보세요."


먼저 머리를 숙여 정수리에 상처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잠시 주저 하더니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셔츠를 바닥에 떨구더니 가슴을 가린 두 손을 마지못해 끌어 내렸다.


자두만한 멍울이 가슴에 피어 오르기 시작한 티끌 하나 없는 아담한 상체는 작은 멍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멍울 위 중앙에 자리 잡은 핑크 빛 돌기 두 개만이 투명한 피부와 구별되는 유일한 다른 색이었다.


어린 아이에서 소녀로 변신 하는 성스러운 순간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정우는 매서운 눈빛으로 구석구석 유리의 몸을 살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려 하지 않는 것을 느낀 유리는 ‘바지까지 벗을 까요?' 말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를 파르르 떨었다.


"아니, 아니, 이제 그만 됐다."


정우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당황하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유리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애원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절 돌봐주는 분은 오직 이분 뿐이에요. 유일한 가족이고요. 이 분이 없다면 전 어디로 가야 하죠? 지저분하고 배 고프고 추운 고아원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유리가 이렇게 긴 문장을 한번에 말한 적이 있었던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기훈이었다. 가족이라는 소리가 튀어 나올 때 명치가 불로 데인 듯 뜨거웠지만 형사에게 맞아서 쑤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고개 돌린 한 반장의 눈에 고춧가루며 양파 찌꺼기들이 범벅이 된 유리의 붉게 물든 티셔츠가 들어왔다.




난장판이 수습되자, 한 반장은 그만 돌아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혹에 눈초리를 완전히 거두지 못하는 한 반장을 기훈과 유리는 부녀지간처럼 다정히 어깨동무하며 배웅했다.


"현관 문은 올 때부터 저랬습니다."


유리를 남기고 빌딩 앞까지 따라 나온 기훈은 쭈뼛쭈뼛 마지막까지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았다.


"잘 들어. 아무리 저 아이가 그렇게 말 했다 해도 내가 당신의 음흉한 속셈을 모를 줄 알아?"


"뭘 말입니까?"


"형사 생활 20년 동안 당신처럼 생각하고 또 실행에 옮긴 사람을 못 봤을 것 같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왕 벌어진 일, 기훈은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내가 항상 지켜 볼 거야. 잊지 말라고.알았어?"


눈꼬리를 치켜 뜬 채 으름장을 놓은 한반장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 치를 피해 도망 가야 하나? 계속 아닌 척 하고 살아가야 하나? 한숨을 쉬며 현관문을 들어 서는 기훈에게 울음 소리가 들렸다. 기훈과 한반장이 문 닫는 순간까지 미소 지으며 배웅 하던 유리였다. 발소리가 사라지자 그대로 주저 앉아 서럽고 슬프게 울었다.


그토록 원했던 그녀 눈물이었건만 예기치 못한 오열에 실 없고 소심한 사내는 바보 같은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 했다. 엉거주춤 문고리 잡은 현관 앞에 서서 비키라는 말조차 못하고 울고 있는 소녀만 바라 보았다.




감동 받았죠? 그럼 한마디 남기는 센스는 기본이죠 ^^


작가의말

짐승은 순진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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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내 아내를 빼앗아간 그 놈. +9 15.04.29 670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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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수감록 +3 15.04.27 630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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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진술서 +3 15.04.26 622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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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나쁜 손 +3 15.04.26 742 19 12쪽
23 그녀.......... 벗기다. +4 15.04.25 1,075 17 14쪽
22 여행을 떠나요. +3 15.04.24 688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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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녀에게 남자가 생겼다. +1 15.04.23 825 16 12쪽
19 여고생과 노처녀의 결투 +5 15.04.23 658 22 12쪽
18 넌 너무 어려. +4 15.04.23 758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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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발가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아. +5 15.04.22 857 18 7쪽
15 승냥이의 시간 +3 15.04.21 918 15 14쪽
14 짐승이 날뛰기 시작 할 때. +3 15.04.20 825 21 12쪽
13 짐승의 시간 +1 15.04.19 827 17 12쪽
12 짐승의 계절 +3 15.04.19 842 19 12쪽
11 19금 +1 15.04.19 1,250 16 12쪽
10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좋다. +1 15.04.19 897 15 12쪽
9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1 15.04.19 799 17 12쪽
8 유리의 일기 2 +3 15.04.18 946 25 12쪽
7 유리의 일기 +2 15.04.18 982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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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 같은 놈 +2 15.04.18 1,046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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