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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미 판타지 지옥에 빠져 들었다.

하고 또 하고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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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밍교s
작품등록일 :
2015.04.18 08:26
최근연재일 :
2015.05.05 18: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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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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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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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유리의 일기

DUMMY

내가 기훈이라 불리는 남자와 범상치 않은 동거를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이다 되어간다.


어두침침하고 환기조차 되지 않으며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사방이 밀폐 된 지하 셋방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안식처였다.


이 글을 쓰기 전 내가 했던 거짓말부터 사과하고 싶다.


일 년 전 한 반장님과 대화할 때 언급했던 고아원에 관한 내용이었다.

마귀 할멈처럼 무서운 얼굴에 항상 성난 표정을 지닌 원장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인자하고 정이 많은 분이셨다.


한 반장을 설득하느라 나쁘게 묘사하긴 했지만 상냥하고 아이들을 위해 애쓰셨던 그분을 생각하면 숙연한 마음과 함께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다음은 그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다. 한 반장을 핑계로 학교에 가야 한다고 우겼지만 한 반장은 학교를 다니는 것과 무관하게 주변을 맴 돌 것이다.


그는 정의감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강력반 형사이다.


사 년 전 철창 너머 아버지를 보고 있을 때 그의 동료들이 수군댔던 그의 성격과 슬픈 가족사를 기억 한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딸이 있었고 엄마와 함께 도망갔다고 했다.


한 반장이 오해-사실은 틀리지 않은-로 인해 이성을 잃고 그 사람을 심하게 두들겨 패던 날 시선 속에 잃어 버린 딸을 찾고 있는 아비의 슬픔을 보았다. 그는 나와 딸을 동일시 했다.그 사람이 죽거나 내가 죽지 않는 이상 한 반장은 우리에게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내 말투와 어휘가 열 두 살 먹은 여자아이들과 다르다 것을 의아해 하지 말길 바란다.


신은 사랑과 믿음을 바치느라 남편과 딸까지 버린 여인에게 행복한 삶의 은혜를 내려 주지 않는 대신 그녀 딸에게 경이적이고 특별한 두뇌를 내려 주었다.


행복 대신 '왜 나는?' 이라 물으며 고통스러웠던 하루하루를 지내야 했던 비참했던 시간들은 나이를 뛰어 넘는 정신 연령과 인생에 대한 성찰까지 더 해주었다


지능과 학습 능력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깨달은 시기는 친 아버지 -난 절대 그분을 아빠라고 불러 드릴 수가 없다.- 가 그 사람의 가족들을 끔찍하게 살해 하고 난 후 다시 들어 가야 했던 고아원에서였다.


마귀할멈 사촌 동생 같이 생겼지만 인정 많고 자애로운 원장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그곳에서 나완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늦은 지능 발달을 보인 정상적인 동갑내기들을 만났다.



*********



아버지와 지냈던 세월 동안 아버지께서 집에 안 계신 시간엔 난 혼자였다. 친구들을 사귈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난 다른 아이들과 내 자신을 비교 할 일이 없었다.


다섯 살 여자아이의 음식 솜씨와 살림 솜씨를 가끔은 신통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일 년에 맨 정신으로 취하지 않은 날이 며칠 안 되는 아버지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재능은 정상적인 가족을 가진 아이가 지녔다면 축복이었을지 몰라도 정상적인 삶을 경험 해보지 못한 내겐 형벌이었다..


출산한 직후 마치 악마의 자식이라도 본 것처럼 저주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아원에 날 버리다시피 맡기고 남미의 어느 나라로 선교 하러 떠나 버린,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무척이나 닮은 어머니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다른 아이들이 기저귀를 뗄 무렵 혼자서 글자를 떼고 구구단을 외우며 동화책 마저 재미 없어 하던 나를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찾아 주었던 아버지와의 첫 만남이 주었던 두근거림도 잊지 않았다. 홀로 남겨졌던 나는 외로웠고 누군가 나를 찾아준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찾아 온 고통스럽고 비참했던 5 년 간의 지독했던 기억은 내 대뇌 피질 한 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았다.


얼굴 밖에 기억 못 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리 아름답고 애잔하지 못 했다. 사리 분별과 남녀 관계까지는 이해하기는 힘든 어린아이에게 신세 한탄 하며 저주를 퍼붓는 술에 절어 살던 아버지 덕에 내게 어머니란 단어 주는 이미지는 마녀와 가까웠다.


그녀와 닮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죽을 만큼 고통과 아픔을 안겨 주어야 직성이 풀리던 아버지에게 날 남기고 도망간 그녀에 대한 원망은 좋은 이미지로 추억 할 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였다.



*********



원장님 손에 이끌려 처음 그 남자를 마주하던 날, 어색했던 시간 동안 창문 너머로 떨어졌던 가을 낙엽의 숫자를 아직 기억한다.


선하게 생겼지만 약간은 덜 떨어져 보이기도 하는 그가 특별이 '유리' 라는 이름을 부르며 날 찾았을 때 창문 너머로 숨 죽여 지켜 보았던 원생들이 보냈던 부러움 담긴 시선을 아직도 기억한다.



적의로 가득 찬 시선들을 감추려 애쓰는 남자가 두렵다기 보다는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그는 다시 홀로 남겨진 세상에 유일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 준 사람이었다.


그는 선하고 슬픈 눈을 가진 사람 이었다.


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고아원 현관에 서서 허공을 바라보는 멍하고도 슬픈 시선은 먼저 떠나 보낸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말해 주고 있었다. 허무에 찬 눈 빛을 지켜 보며 그의 가슴을 송곳처럼 찔러대고 있는 외로움과 고통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선하고 슬픈 눈을 가진 불쌍한 남자를 위로해 주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운명처럼 솟아 올랐다. 그것은 어쩌면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나와 내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불쌍한 남자를 통해 인간의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다. 그것이 진정한 신의 뜻임을 어머니에게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다.


아파트로 처음 들어가던 날 등에 맨 책가방을 거칠게 빼앗아 소파에 내동댕이 치고 안방에 들어 가버린 그의 소심한 뒷모습을 기억한다.


거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자는 척 하던 나를 깨울까 봐 조심조심 냉장고로 향하던 상냥한 발걸음 소리를 기억한다.


냉장고에 꺼낸 술로 잔뜩 취한 채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며 울부짖는 남자의 목소리가 안방 문 너머로 들렸다. 가슴 속엔 연민과 동정이 피어 올랐고 난 아버지를 대신해 속죄하는 심정으로 그를 위해 살겠다며 다짐 했다.


여덟 살, 육체적으로 어린 내가 그를 위해 처음으로 해 줄 수 있었던 건 아버지 덕에 익힌 음식 솜씨로 끓여 낸 속을 달래 줄 멀건 김칫국 밖엔 없었다.


다음날 잠에서 덜 깬 그가 기분 좋게 들이키며 냈던 속 시원한 소리를 지금도 기억한다. 늦은 아침까지 잠든 그가 뜨거운 국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 아침 내내 30 분마다 국을 다시 데우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다.


잠결에서 깨어난 후 성난 얼굴로 숟가락을 던지며 나를 찾아 헤매는 그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찾는 사람이 존재 한다는 감격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 나를 찾고 있는 지 이유를 잘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는 이유를 감추려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나도 그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알고 있다 하지도 않았다.


그가 어색하게 "씨,씨발! 누구 맘대로 밥 하라 했어!" 화난 척 소리 질렀을 땐 난 화도 낼 줄 모르는 남자의 순진함에 '맙소사'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릴뻔했다.


*****************



시간이 흐르고 몇 개의 작은 사건들을 지나 외 떨어진 건물 지하인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난 그가 어떤 복수를 원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연민과 자책감에 몸부림 치는 그가 원한 건 살인자인 내 아버지를 대신한 고통과 불행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가슴 속에서 복수라는 단어를 속삭이는 악마는 내 시선만 스쳐도 꼬리를 내리고 숨어버리는 비겁한 겁쟁이였다.


그는 화가 난 듯 하면서도 금세 풀어졌다가 불안정한 시선으로 나와 허공을 번갈아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방안을 빙빙 돌며 한숨 쉬다가 무언가 발견한 듯 환호를 질렀다. 정서 불안과 욕구 불만 초기 증세를 보이던 그가 나에게 한 짓은 안방 문틀에 세우는 것이었다.


키 높이 보다 한 뼘 높게 표시된 마크와 날 번갈아 가며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그가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 키가 그곳에 다다랐다. 며칠 동안 정서 불안과 욕구 불만 중기 증세를 보이던 그는 마침내 술의 힘까지 빌리고 나서야 험악한 표정으로 달려 들었다.


그를 조종하던 악마는 결코 내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내 뺨을 때리기 위해 손을 치켜 든 순간 어쩔 수 없이 내 눈과 마주 칠 수 밖에 없었다. 손을 치켜든 채 억지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슬프고 고통에 젖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나는 주저하고 있는 그의 눈빛을 발견하고서 그 자리에 선 채로 내 두 눈을 감아 주고 말았다.


진심으로 난 그가 날 때리길 바랬다. 그것으로 그의 응어리진 가슴 한구석이 후련해 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며칠 전 그 사람 몰래 훔쳐 본 가족사진에서 찾아낸 나를 닮은 그의 아내와 내 또래였을 그의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내 아버지를 대신하여 조금이나마 속죄하고 싶었다.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던 그 순간이 지나고 한참을 지나도록 이번에도 그는 나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못하였다. 내가 살며시 눈을 뜨자 이 한심하고 소심한 사내는 바닥에 주저 앉아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내 가슴 깊은 곳에는 이 착하디 착한 사내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더 단단한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순간 울고 있는 그를 살며시 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나의 작은 품에 기대어 울었다.



*********



기훈.......선한 눈을 가진 허약한 악마를 가슴속에 품고 사는 남자.......


몇 마디 언어로 모든 내 가슴속에 그려진 그의 이미지 모두를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내가 가장 가깝게 설명할 수 있는 '그' 라는 남자는 그랬다.


오랜 지하 생활은 야윈 그의 얼굴에 창백함을 더해 주었고 갸름한 턱 선을 따라 우직하게 솟아 오른 코를 지나면 뚜렷한 쌍꺼풀에 덮인 깊은 호수 같은 맑은 눈동자를 가진 이 사내는 자기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동안의 소유자였다.


물론 그의 좋은점만 보려고 하는 내 눈에 덮인 콩깍지를 모른다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가족인 그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두 번째 표시가 문틀에 그려졌다.




감동 받았죠? 그럼 한마디 남기는 센스는 기본이죠 ^^


작가의말

분량 조절 또 실패....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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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내 아내를 빼앗아간 그 놈. +9 15.04.29 670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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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수감록 +3 15.04.27 630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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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진술서 +3 15.04.26 622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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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대물 +3 15.04.26 835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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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녀에게 남자가 생겼다. +1 15.04.23 825 16 12쪽
19 여고생과 노처녀의 결투 +5 15.04.23 658 22 12쪽
18 넌 너무 어려. +4 15.04.23 759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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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승냥이의 시간 +3 15.04.21 918 1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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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짐승의 계절 +3 15.04.19 843 19 12쪽
11 19금 +1 15.04.19 1,250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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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리의 일기 2 +3 15.04.18 946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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