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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미 판타지 지옥에 빠져 들었다.

하고 또 하고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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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밍교s
작품등록일 :
2015.04.18 08:26
최근연재일 :
2015.05.05 18:10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33,696
추천수 :
712
글자수 :
206,114

작성
15.04.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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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추천
17
글자
12쪽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DUMMY

입학 절차를 마치고 유리는 이듬해가 되어서 간신이 초등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곧 바로 학교를 보내려는 기훈의 조급함과는 달리 그녀는 준비가 필요하다며 책들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초등학교 4 학년 과정을 준비해야 하는 유리가 중학생이 보는 영어 참고서와 한자 참고서 까지 요구하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비범한 그녀의 머리를 알기에 두말 없이 사주었다.


나란히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유리는 밀렸던 초등 과정을 공부 했고 기훈은 신문의 구직란을 뒤적이며 각자 세상에 복귀 할 준비를 했다. 회사에 제출 할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그가 어려워하는 한자며 영 단어를 유리가 대신 읽고 써 주었을 때 기훈은 별로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았다.


이 깜찍한 소녀가 그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어차피 맺어진 동맹이요 파트너 십이었다. 시간, 조건부로 맺은 가학과 피학의 거래였지만 아무튼 기훈은 이상야릇한 동맹의 결과로 휴전 했다면 굳이 위협적이고 험악한 분위기로 지낼 필요 없다고 자신을 설득 했다.


‘그날이 올 때까지만 이야.’


문틀에 새긴 마크를 바라보며 먼저 간 딸과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들은 가끔은 야생화가 핀 우거진 동네 근처 야산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시장에 나가 이것 저것 반찬도 고르고 맛있는 것을 사 먹기도 했다.


기훈은 더 이상 유리에게 비닐 봉지를 들게 하지 않았다. 영특한 꼬마 아가씨 에게 흥정을 맡기고 뒤에서 짐꾼 역할을 하는 것이 생활비를 절약하는 최선의 방법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린것이 아빠 대신 요모조모 따지고 흥정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고 신통했는지 상인들은 유리에게 덤을 듬뿍 안겨주기 일쑤였다.


"꼬마 아가씨"


유리에게 참 잘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두 사람 모두 말 수가 적었다. 하루에 둘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아주 가끔 기분 좋은 일이 생긴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는 마주 보며 미소 지을 때도 있었다.


먼저 미소를 짓는 쪽은 언제나 기훈이었다. 유리는 입가에 살짝 걸릴 듯 말 듯 미소로 화답했다.


밥과 설거지는 여전히 그녀의 몫 이었다.


기훈이 직접 하겠다고 우겼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그녀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마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실랑이 끝에 음식 솜씨 대결로 승부를 보자고 합의 했고 기훈은 이번에도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러 서야 했다.


다음 날 기훈은 건물 옆 공터에서 뭔가 만드느라 한참 씨름했다. 합판과 각목들을 이리저리 자르고 붙이더니 발판을 만들어 왔다. 어설픈 생김새였다. 나름 튼튼하게 만들려고 사방에 두서 없이 박은 무수한 못들이 흉했다.


땀 방울 맺힌 기훈의 콧잔등과 턱에 묻은 검댕이 자국을 보며 유리는 그들이 함께한 이래 처음으로 하얗고 가지런한 이빨들이 모두 보일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유리는 열 두 살이 되던 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간의 공백을 고려해 한 학년 늦춰 4학년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는 역시나였다. 유리는 학교에 들어 간 지 한 달도 안 되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닌 지 두 달이 되었다. 기훈은 담임 선생님의 호출에 이제 막 다니기 시작한 직장을 조퇴하고 학교를 방문 해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리 삼촌 되시죠?"


"네? 네."


의욕과 열정이 눈에 가득한 젊은 여 선생의 입에서 나온 삼촌이란 단어에 기훈은 옆에 앉은 유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담임 선생 눈을 피해 기훈의 정장 소매 자락을 지긋이 당겼다. 의아해 하는 기훈을 향해 담임이 입을 열었다.


"교직 생활을 오래 하진 않았지만 유리와 같은 아이는 처음 봅니다. 외국에서 살다 왔다는 아이가 한글은 물론 한문까지 완벽히 깨치다니 부모님의 가정교육이 대단했나 보죠?"


"외국이요?"


기훈은 반문하려 했지만 소매 끝으로 전해오는 유리의 두 번째 신호에 나오는 말을 다시 삼켜야 했다.


"아,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으신 거죠 ? "


"유리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은 압니다. 외국어 뿐만 아니라 고학년 과정들도 전부 이해 하구요. 하지만 교육은 지식과 지능만이 전부가 아니라 인성과 도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네. 그렇지요."


기훈의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아원에서 데려 온 후 오직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똑똑하고 놀라운 재능을 가진 그녀였지만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법이라던지, 협력하는 법, 어울리는 법까지 예습할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담임으로써 내린 결론은 졸업 만큼은 안 된다는 겁니다."



"네 졸업이요?"


예상과는 다른 엉뚱한 소리에 유리가 보내는 신호조차 느끼지 못하고 담임 선생을 쳐다 보았다.


놀라는 기훈을 담임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유리가 미리 말씀 안 드렸나 보죠? "


두 주 전부터 방과 후 저를 찾아와 어찌나 조르던지 모릅니다. 빨리 졸업해야 한다며 중학교로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어요. 그래서 이렇게 오시라고 했습니다."


"......네"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유리의 네 번째 신호에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결국 유리 부모님과 상의 해 보겠노라며 그녀와 함께 교무실을 나섰다.




**********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앞서가던 기훈은 홱 하고 돌아서더니 묵묵히 뒤따라 걷고 있는 유리를 향해 짓궂은 얼굴을 하고 다가갔다. 빈정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암~~촌?"

"외~~에~~국?"


유리는 귓불까지 빨개 진 채 고개를 숙였다.

처음 보는 유리의 수줍은 모습과 빨갛게 변한 얼굴에 신이 났다. 그 동안 요 앙증맞은 계집아이에게 당해왔던 것을 앙갚음 할 좋은 찬스였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더욱 짓 굿은 눈빛으로 생글거리며 유리의 주변을 돌았다.



"차라리 아빠라고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 하기도 훨씬 쉬웠잖아."


"그건 절대........"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들고 그를 바라보며 말을 꺼내려던 유리는 그녀 답지 않게 머뭇거리더니 더 빨개진 얼굴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기훈은 그녀가 감옥에 있는 친 아버지를 생각 하는구나 지레 짐작했다.

갑자기 눈 앞에 서있는 그녀가 쓸쓸하고 불쌍했다. 가슴 한구석이 짠해졌다.


가슴이 먹먹해진 채 다시 걸으면서 기훈은 첫 월급이 나오는 다음 주말엔 놀이 공원이라도 한번 가리라 마음 먹었다.


스스로 대견해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걷는 기훈은 붉게 물든 얼굴로 자신의 그림자를 쫓아 걷는 마르고 연약한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못 했다.


유리를 설득하고 담임 선생을 이해 시킨 끝에, 결국 6학년 월반 하는 것으로 그날의 작은 소동을 마무리 지었다.


통장에 첫 월급이 들어 오던 날 유리가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서울의 한 놀이 공원이 딸린 거대한 쇼핑 센터에 함께 갔다..


지능과 성품을 떠나 유리는 아직 아이였다. 기훈은 그녀의 시선이 옷 가게의 아름다운 의상들 사이로 잠깐씩 머무는 걸 놓치지 않았다. 기훈의 등만 바라보며 걸어가는 듯 했지만 여자 아이 마네킹 앞을 지나갈 때면 시선 밖으로 지나치는 예쁜 옷들에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기훈은 속으로 또다시 찬스를 외쳤다. 불쑥 유리의 손목을 잡고 마네킹이 서 있던 옷 가게로 미처 그녀가 거부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다짜고짜 들어갔다.



유리를 비웃듯 흘겨보던 마네킹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가 벗겨져 부끄럽게 쇼 윈도우에 서 있어야만 했다 .


“따님이 정말 예뻐요. 완전 마네킹이네, 마네킹 이야."


모자며 신발까지 마네킹이 입고 있던 것을 빼앗아 입은 유리는 상술인지 정말로 예뻐서 그러는 건지 모를 주인 여자의 호들갑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오직 '따님' 이라는 소리 만큼은 '딸 아닌데요' 라고 정정 해야 직성이 풀릴 눈치였다.


" 음 .옷이 괜찮은 것 같네요. 어이 우리 딸! 맘에 들어?"


만족한 표정으로 값을 치르던 기훈은 '딸!'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가며 윙크했고 부끄러워하는 그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장난스럽게 쳤다.


유리는 한사코 놀이 공원 입장을 거부했다. 자신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모처럼 기분 내려했는데... 기훈은 완강하게 거절하는 유리에게 삐졌다. 그럼 네 맘대로 해! 하고 소리를 빽 지르고는 화가 난 듯 돌아 앉았다.


유리는 민망했는지 잠시 후 그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


“아, 뭐야~~?”


"사실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요."


"그게 뭔데?"


그녀의 손 끝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놀이 공원 입구 오락실 윈도우 바로 뒤에 설치된 DDR 머신 이었다.


찰랑이는 생머리 위로 흰색 각 베레모를 쓰고 흰색 짧은 재킷 안엔 하얀색 레이스가 과하지 않은 블라우스 모양의 셔츠를 받쳐 입었다. 주머니가 허벅지에 달린 스키니 진을 걸치고 깔 맞춤 한 청색 발목 스니커를 신은 유리가 디디알 머신 위에 올라 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살짝 머물렀다.


처음이라 어색한 듯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모니터에 비친 아바타 동작을 따라 발판을 요리조리 밟았다. 참으로 귀여웠다. 어른스런 말투와 성숙한 몸가짐을 지닌 유리였다곤 해도 천상 초등학생이었다.춤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열 두 살 여자아이의 귀여운 율동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기왕 해보고 싶었던 거 마음껏 해보라는 심산에 그는 노래가 끝나고 기계에서 내려오던 그녀를 제지하며 재빨리 DDR 머신에 동전을 집어 넣었다.


유리도 싫지 않은지 다시 버튼을 누르고 발판 위에 올라섰다.


전 번과 같은 노래가 울려 퍼진 지 얼마지 않아 웅성거림이 오락실 안팎으로 번지며 시선이 DDR 머신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첫 번째완 달리 그녀는 아바타를 능숙한 동작으로 완벽하게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미 화면에 나온 동작들을 전부 외워버린 모양이었다. 조그마한 엉덩이에 착 달라붙는 스키니 진을 입은 다리가 보여주는 현란한 스텝은 화려했고 열정적인 몸짓 사이에선 관능미가 뿜어져 나왔다.


기훈의 눈망울 속 유리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커다란 눈망울과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외모에 구경꾼들은 걸 그룹 아이돌이 아닐는지 추측하기도 했고 작고 어려 보이는 외모에 기획사 연습생 일거다 웅성웅성 수군댔다.

두 번째 타임이 끝나고 약간 땀에 젖은 가늘고 긴 목에 감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내려오자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유리는 더 이상 열 두 살 귀여운 여자 아이가 아니었다.


얼이 빠진 기훈 앞에 선 유리는 새 하얀 이빨이 눈부실 정도로 커다란 함박웃음을 지었다. 커다란 눈을 깜빡여 살짝 윙크를 보냈다. 한 손으로 기훈의 손을 잡더니 다른 손으로는 흰색 베레모를 누른 채 사람들 사이를 도망가듯 뛰쳐나왔다.



행복한 시간들은 빠르게 지나간다.

불행한 시간들은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지도 몰랐다.




감동 받았죠? 그럼 한마디 남기는 센스는 기본이죠 ^^


작가의말

행복하시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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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The last sweetness +3 15.05.03 679 17 11쪽
38 네버엔딩 스토리 +7 15.05.02 615 18 12쪽
37 이별하는 여자의 심리 네 단계 +9 15.05.02 595 18 12쪽
36 자신의 몸을 바치려는 여자, 거부하는 남자 +1 15.05.02 817 15 13쪽
35 그럼 네가 풀어 줘 +5 15.05.01 730 16 13쪽
34 이젠 안녕 +3 15.04.30 610 15 12쪽
33 내 아내를 빼앗아간 그 놈. +9 15.04.29 670 15 10쪽
32 아이처럼 +7 15.04.28 611 18 12쪽
31 수감록 2 +3 15.04.27 580 14 8쪽
30 수감록 +3 15.04.27 629 17 10쪽
29 행복 뒤에 숨은 불안. +3 15.04.27 654 17 8쪽
28 진술서 2 +5 15.04.26 683 14 17쪽
27 진술서 +3 15.04.26 622 18 12쪽
26 이루어 지다. +5 15.04.26 720 20 16쪽
25 대물 +3 15.04.26 834 17 14쪽
24 나쁜 손 +3 15.04.26 742 19 12쪽
23 그녀.......... 벗기다. +4 15.04.25 1,075 17 14쪽
22 여행을 떠나요. +3 15.04.24 688 18 11쪽
21 복어같은 그녀 +3 15.04.23 697 18 14쪽
20 그녀에게 남자가 생겼다. +1 15.04.23 825 16 12쪽
19 여고생과 노처녀의 결투 +5 15.04.23 657 22 12쪽
18 넌 너무 어려. +4 15.04.23 758 19 12쪽
17 그녀는 적당히란 말을 모른다. +3 15.04.22 816 19 12쪽
16 발가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아. +5 15.04.22 857 18 7쪽
15 승냥이의 시간 +3 15.04.21 917 15 14쪽
14 짐승이 날뛰기 시작 할 때. +3 15.04.20 825 21 12쪽
13 짐승의 시간 +1 15.04.19 827 17 12쪽
12 짐승의 계절 +3 15.04.19 842 19 12쪽
11 19금 +1 15.04.19 1,250 16 12쪽
10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좋다. +1 15.04.19 897 15 12쪽
»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1 15.04.19 799 17 12쪽
8 유리의 일기 2 +3 15.04.18 945 25 12쪽
7 유리의 일기 +2 15.04.18 982 15 11쪽
6 최후에 웃는 놈은 웃기는 놈이다. +1 15.04.18 972 15 5쪽
5 짐승 같은 놈 +2 15.04.18 1,045 18 11쪽
4 벗겨야 하는 이유. +2 15.04.18 1,077 19 12쪽
3 복수는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다. +4 15.04.18 925 18 11쪽
2 소심한 남자 복수를 꿈꾸다. +6 15.04.18 1,408 15 13쪽
1 프롤로그 +2 15.04.18 1,413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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