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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미 판타지 지옥에 빠져 들었다.

하고 또 하고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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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밍교s
작품등록일 :
2015.04.18 08:26
최근연재일 :
2015.05.05 18:10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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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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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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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복수는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다.

DUMMY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계집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상관없었다. 아이가 말이 없던 머리가 좋던 '복수'란 단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현관을 들어서자 계집아이 등에 매달린 가방을 낚아 채 소파에 던져버린 기훈은 말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현관 앞에 뻘쭘하게 서있던 아이는 한참을 서있더니 조용히 거실로 들어와 소파 한쪽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고 움직이지 않았다.


기훈은 일 단계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흐뭇해 졌지만 허무함에 맥이 풀어졌다.


어수룩하고 평범한 사내는 계집아이를 데리고 와 복수 한다는 생각만 있었지 어떻게 얼마나 고통을 주고 괴롭힌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하진 않았다. 그래도 만족했다. 아무렴 어떠하리 그녀는 이미 자신의 손안에 들어온 작은 새인 것을, 구체적인 방법은 내일부터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아내와 딸을 잃은 이후 처음 술을 마셨다. 그녀들 사진을 보고 이름을 울부짖다가 쓰러져 잠 들어 버렸다.





복수는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다.....



하늘을 반 쯤 가로 지른 태양이 눈부실 즈음 자리에서 일어 났다. 오랜만에 느끼는 숙취였다.


쓰린 속을 부여 잡으며 방문을 나서자 거부하기 힘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기억이 가물 할 정도로 잊고 있던 정겨운 냄새였다.


집밥......


잠이 덜 깬 기훈은 아내와 딸이 살아 있던 행복한 시절로 돌아 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식탁에 앉아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 있는 김칫국에 숟가락을 담갔다.


"캬! 시원 하다."


아내가 곁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속이 풀리며 만족한 웃음을 짓는 그의 관자놀이에 어제 일과 반 년 간의 기억들이 빠르게 감기 버튼을 누른 동영상처럼 지나 갔다.


큰 소리가 나게 숟가락을 탁자에 내동댕이 쳤다.


"탕........"


숟가락은 식탁에 옅은 흠집을 남기고 튀어 거실 바닥에 떨어 졌다.


정신이 번쩍 든 기훈은 집안을 뒤졌다. 소파와 베란다 창문 사이 틈에서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쪼그려 앉아 있는 유리를 발견 하기 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 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 보았다. 씩씩거리는 기척을 느꼈는지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바라 보았다. 기훈은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그녀가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씨…발! 누…누구 맘대로 밥 하라고 했어!"


말끝을 올려 화난 목소리를 내려 했는데 무척 어색했다고 느꼈다. 화를 내고 싶은데.......내야 하는데... 씩씩거렸지만 화 낼 껀덕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평범한 80프로의 인생을 살았던 그가 여덟 살 계집아이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것은 평범하게 쉽지 않았다.


복수를 다짐하며 극단적인 것도 마다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평생을 적당히 착하고 바르게 살았던 관성은 당황하거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본성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노려보던 눈길을 거두고 다시 식탁에 앉았다. 일부러 과장되고 난폭한 몸짓으로 입안 가득 밥과 국을 우겨 넣었다.


"빨리 와! 밥 먹어!!"


부풀린 볼 사이로 밥알이 튀어나오는 것도 개의치 않고 성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유리는 집어 던졌던 숟가락을 줍더니 맞은 편에 앉아 반찬도 없이 맨밥을 먹기 시작 했다.


그녀가 주어 식탁에 올려 놓은 숟가락에 괜히 짜증이 났다. 숟가락을 지나치면 그것을 핑계로 욕이라도 하려 마음 먹었던 차였다.


성질 부리고 싶었지만 계집아이는 틈을 주지 않는다. 문득 아이가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덟 살 계집 아이가 낯선 곳에서 외롭고 배 고프게 보낸 밤은 결코 작지 않은 공포와 두려움 이었으리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생각하던 복수가 약간은 이루어진 것 같아 기분이 누그러졌다.


"밥 하는 건 누구한테 배웠냐?"


"아빠가 일 나가 시면 혼자였어요. 제가 밥 짖고 빨래하고 청소 했어요."


처음 들어 보는 아이 목소리였다. 조용하며 침착했지만 또렷한 억양과 정확한 발음이었다.


"국도 네가 직접 끓였어?"


"아빠가 술 드신 다음 날 국물을 찾으셨어요, 없으면 절 때리......혼 났어요."


여덟 살 계집아이가 보여 주는 몸짓이나 존대 말은 놀라웠지만 아이는 아이였다. '혼났어요' 라고 단어를 바꾸는 아이의 양 귀가 새빨개 졌다.


의자로 발을 받치고 위태롭게 서서 국을 끓이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죽은 딸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머릴 세차게 흔들었다. 약해지면 안돼. 마음 굳게 먹어야 돼! 그리 다짐하며 먹먹함을 몰아 냈다.


"개새끼!!"


유리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누굴 말하는 건지 짐작하고 있는 걸까? 딸 자식 앞에서 아비 욕을 해주고 나자 마음이 후련해졌다.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 놓고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행동에 머쓱해진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빼싹 마른 계집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밥은 먹여야 해. 암! 그래야만 오래 두고두고 괴롭힐 수 있지.'


먹먹했던 가슴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집을 옮겨야 해'


복수를 소재로 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참으로 거저 먹는구나 생각하는 기훈이었다.


'복수'라는 단어에 꽂혀 무작정 아이를 고아원에서 빼내 오는데 성공했지만 복수를 실행하기엔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 느꼈다.


위층 아줌마 변비 소리마저 생생한, 층간 소음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 찾아 보기 힘든 아파트 안에서 영화 속 이야기처럼 화려한 복수는 불가능 했다. 살려 달라는 비명 소리엔 아무 반응 없었던 이웃들 이었지만 아이들 발소리나 울음 소리엔 번개 같이 달려와 거품 물고 항의와 불평을 날렸다.


이웃들에게 가급적 유리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몇 달 전 벌어졌던 사건 때문에 애써 무관심 한 척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언젠가 유리의 존재를 알게 될 이웃들의 의혹의 눈초리와 수군거림이 부담스러웠다.


기훈은 구체적인 복수의 계획을 세우진 않았지만 강령은 마련해 두었다..


"천천히, 길고 잔인하게"


아이를 죽여 버리거나 순간의 고통을 주는 것으론 그와 가족들이 받았던 상처를 위로 받기엔 성에 차지 않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자신이 늙어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괴롭히는 것이 원한을 푸는 길이라 믿었다.


흉흉한 소문이 퍼져있었던 터라 아파트는 시세보다 훨씬 헐 한 값을 부르고서야 매수자를 찾을 수 있었다.


단지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알아보는 사람과 만날 확률이 거의 없는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음습한 공터 옆 허름한 빌딩 지하를 찾아낸 기훈은 계획을 실행할 최적의 장소를 만났다고 흡족해 했다. 창도 나 있지 않아 불 끄면 손바닥조차 가늠하기 힘든 싸구려 월셋집 이었다.


주인 내외는 외국으로 이민 가 어쩌다가 한번 귀국하는 정도였고 외진 곳에 떨어진 오래된 빌딩은 귀신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마저 풍겨 몇 해가 지나도록 입주자를 찾기 힘들었다.


건물주는 돈이 궁한 처지가 아닌데다 재 개발 지역으로 땅 값 상승 한다는 소문에 놀려도 그만이라며 신경을 껐지만 놀리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는 복덕방 주인의 소개로 거저이다시피 싼 값에 세를 주었다.


벽과 바닥은 눅눅했고 벽지에 얼룩진 곰팡이가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그에게는 호러 영화 세트장처럼 완벽한 장소로 느껴졌다.


'흐흐흐. 난 이제 여기서 악마가 되는 거다.'


기훈은 일부러 음흉한 미소까지 지어가며 중얼거렸다.


유리는 담담했다.


자기가 호러 영화의 희생양 역을 맡은 아역 배우임을 알고 있다는 듯 무표정하게 짐을 정리하는 기훈을 지켜보았다.


짐이라고 해 봐야 얼마 되진 않았다. 기본 생활 도구와 몇 가지 옷을 남긴 채 중고로 처리 해 버렸다.


묵묵히 지켜 보던 유리였지만 책 들을 헌책방에 넘길 때만큼 작고 또렷한 눈망울에 물 빛을 비추며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이 책만 안 파시면 안 될 까요?"


슬픈 눈으로 몸뚱이 반 만한 크고 두툼한 책을 꼬옥 껴 안고 기훈을 쳐다 보았다.


고아원을 나온 이후 무엇인가 애착과 아쉬움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기훈은 오히려 좋은 먹이를 만난 승냥이처럼 눈을 번들거리더니 거칠게 책을 빼앗았다.


유리는 순순히 책을 내주었다. 크고 반짝이는 눈을 적시며 차오르려는 눈물은 어찌하지 못 했다.


'울엇! 울어버렷! 내가 원하 건 그거야.'


억지로 책을 빼앗은 찝찝함을 털어내며 속으로 외쳤지만 바램과는 달리 차 오르던 눈물은 자취를 감췄다. 기훈은 실망한 표정으로 헌책방 주인에게 던지다시피 책을 건 냈다.




헌책방 주인이 쫓아 달려 나왔다.


"따님이 책을 참 좋아하나 보네요? 중고생들도 잘 읽지 않는 책인데 말입니다. "


인심 좋게 생긴 책방 주인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훈이 빼앗아 넘긴 책을 돌려 주었다. 유리는 빼앗길 때 보다 눈물이 더 글썽한 눈망울로 고맙습니다 를 반복했다.


책방 주인이 마뜩치 않았지만 책값은 받은 후였고 거절 할 구실도 없어 내버려 두어야 했다. 소중하게 책을 품은 유리는 일부러 성큼 성큼 빠른 걸음으로 걸어 가는 그의 뒤를 버겁게 쫓아 갔다.


책방 주인 말대로 여덟 살 계집아이완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 보였다. 두툼한 갈색 표지 위에 삽화 하나 없이 금박 궁서체로 박혀 있던 제목은 '일리아드-오디세이' 였다.



**********



현관에 보조키를 하나 더 설치 했다.


집 안에서는 열쇠로만 열 수 있고 집 밖에서 잠글 수 있게 해 달라 요구했다. 열쇠공은 '집안에 몸이 불편하신 분이 계신가 보죠?' 말하며 이런 주문이 종종 있다고 했다.


정리를 마치자 방에 틀어박힌 기훈은 구체적인 복수의 방법들을 궁리하기 시작 했다. 신체적 학대. 신문이나 방송에서 많이 보아 왔던 것이었고 간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기훈의 눈에 비친 여덟 살 빼빼 마른 계집아이 의 몸은 잔인한 고통이나 폭력을 견딜 것 같지 않았다.


감옥에 있는 친 아버지 때문에 폭력과 폭언에 익숙하리란 것은 짐작했다. 하지만 살짝 쳐도 부러지거나 숨 넘어갈 듯 보이는 가냘픈 계집아이를 어떻게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고통을 주었을 지 신기했다.




감동 받았죠? 그럼 한마디 남기는 센스는 기본이죠 ^^


작가의말

음 분량이 조금 모자랐네요. 꼭 5000자 맞춰야 하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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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자신의 몸을 바치려는 여자, 거부하는 남자 +1 15.05.02 818 15 13쪽
35 그럼 네가 풀어 줘 +5 15.05.01 731 16 13쪽
34 이젠 안녕 +3 15.04.30 611 15 12쪽
33 내 아내를 빼앗아간 그 놈. +9 15.04.29 670 15 10쪽
32 아이처럼 +7 15.04.28 612 18 12쪽
31 수감록 2 +3 15.04.27 580 14 8쪽
30 수감록 +3 15.04.27 630 17 10쪽
29 행복 뒤에 숨은 불안. +3 15.04.27 654 17 8쪽
28 진술서 2 +5 15.04.26 684 14 17쪽
27 진술서 +3 15.04.26 622 18 12쪽
26 이루어 지다. +5 15.04.26 720 20 16쪽
25 대물 +3 15.04.26 835 17 14쪽
24 나쁜 손 +3 15.04.26 742 19 12쪽
23 그녀.......... 벗기다. +4 15.04.25 1,075 17 14쪽
22 여행을 떠나요. +3 15.04.24 688 18 11쪽
21 복어같은 그녀 +3 15.04.23 697 18 14쪽
20 그녀에게 남자가 생겼다. +1 15.04.23 825 16 12쪽
19 여고생과 노처녀의 결투 +5 15.04.23 658 22 12쪽
18 넌 너무 어려. +4 15.04.23 758 19 12쪽
17 그녀는 적당히란 말을 모른다. +3 15.04.22 816 19 12쪽
16 발가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아. +5 15.04.22 857 18 7쪽
15 승냥이의 시간 +3 15.04.21 917 15 14쪽
14 짐승이 날뛰기 시작 할 때. +3 15.04.20 825 21 12쪽
13 짐승의 시간 +1 15.04.19 827 17 12쪽
12 짐승의 계절 +3 15.04.19 842 19 12쪽
11 19금 +1 15.04.19 1,250 16 12쪽
10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좋다. +1 15.04.19 897 15 12쪽
9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1 15.04.19 799 17 12쪽
8 유리의 일기 2 +3 15.04.18 945 25 12쪽
7 유리의 일기 +2 15.04.18 982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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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짐승 같은 놈 +2 15.04.18 1,045 18 11쪽
4 벗겨야 하는 이유. +2 15.04.18 1,078 19 12쪽
» 복수는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다. +4 15.04.18 926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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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2 15.04.18 1,415 1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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