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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미 판타지 지옥에 빠져 들었다.

하고 또 하고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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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밍교s
작품등록일 :
2015.04.18 08:26
최근연재일 :
2015.05.05 18:10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33,695
추천수 :
712
글자수 :
206,114

작성
15.05.0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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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추천
18
글자
12쪽

이별하는 여자의 심리 네 단계

DUMMY

유리는 정우가 가져온 죽 덕분인지 시간이라는 이름의 약 때문인지 약간 기운을 차렸다. 지난 이틀 동안 그녀는 헤어진 여성들이 겪는다는 이별 후 심리 변화 네 단계를 오르락 내리락 밟았었다.


분노-자책-그리움-인정,


-나쁜 새끼!! 찌질하고 소심하고 못난 놈! 나를 아프게 하는 바보!!


- 혹시 내가 그를 너무 힘들게 하진 않았을까? 가족에 대한 상처가 다 아물었는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욕심 부린 건 아니었을까?


–보고 싶어! 그가 웃는 모습, 짜증 내는 모습, 슬퍼하는 모습, 그리고 날 사랑한다 말하던 모습 모두를……….


- ……


기훈과 헤어진 것은 기정 사실인데 그녀는 쉽사리 마지막 인정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일어나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자책과 그리움의 단계가 그녀를 더 갉아먹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든 정신을 돌릴 것이 필요 했다. 청소기를 잡았다. 스위치도 올리지 않은 채 바닥을 문지르고 있는 그녀 머리에 ‘그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아니야 다시 돌아올 거야.’ 소리가 위 아래에서 메아리 치듯 번갈아 가며 울렸다. 그녀의 두뇌와 심장이 다투고 있었다.


집안을 대충 치웠다. 마지막 남은 곳은 기훈의 방이었다. 그녀는 선뜻 방문을 열지 못하고 주저했다. 문을 열면 기훈이 안에 있을 것만 같았다.두뇌가 아무리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책망해도 심장은 자꾸 그녀의 몹쓸 상상력과 부질없는 기대를 자극했다.


기훈의 방에 불을 켰다. 방안은 싸늘했다. 그녀는 구석구석 치우기 시작했다. 침대 담요를 정리하던 중, 담요 밑에서 손에 묵직하고 단단한 것이 만져 졌다. 아무 생각 없이 꺼내 든 그것은 책이었다.


-일리아드 오딧세이-


어릴 적 그녀가 소중히 간직하려 했던 그 책이었다. 이사 올 때 묻어두려 했지만 기훈이 기어코 찾아온 그 책이었다. 두 사람의 추억이 묻어있는 낡은 책…… 그녀는 가만히 책을 쓰다듬고는 다정한 손길로 책을 펼쳤다.


일렉트라-얼마나 많이 그 부분만 읽고 또 읽었는지 책은 길 들은 듯 자연스럽게 그 대목이 펼쳐졌다. 그 부분 책장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얼마나 많이 읽어 봤으면…….. 그녀는 그 동안 기훈이 해왔을 고민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반 지하 월셋집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던 날 그녀가 해주는 설명을 기어이 듣지 않으려 했으면서도 이 머리 나쁜 남자는 그녀 몰래 책을 몇 번이고 읽었던 것이었다. 그가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헤져버린 페이지를 바라보며 그녀는 가슴이 아려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목구멍까지 울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울면 안 되었다. 그녀는 옷을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섰다.


‘이 정도까지 날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야. 그렇게 쉽게 변할 수는 없어. 무엇인가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는 거야. 최소한 한번은, 한번은 더 만나 봐야 해.’


이번엔 두뇌와 심장이 처음으로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가 현관을 막 나서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기훈 아닐까? 그녀가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들었지만 아쉽게도 정우였다.


<한 반장님?>


<유리야.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기훈 그 친구 어제부터 행방불명이야.>


<행방불명이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찾아온 불안한 예감에 떨렸다.


<그래서 내가 주변을 뒤져 봤거든. 기훈을 본 사람을 찾아서 물어 봤는데 어제 아침 조까치파 행동대원들에게 끌려간 것 같다.>


<조까치 파요? 그 사람을 왜요? 어디로 끌고 갔단 말이에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 지금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하자.>


전화를 끊은 유리는 다시 집안에 들어왔다. 힘없이 소파에 주저 앉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조까치파에서 왜 그 사람을 데려 간 거지? 혹시 내가 그 사건 담당 검사라서? 날 위협하거나 협박하기 위해 그 사람을 이용 할 생각인가?’ 유리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조까치 파의 뒤를 캐고는 있었다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은 강력반 형사 몇 명뿐이었다.


고작 집단 폭행사건이었다. 물론 상해를 입은 피해자가 있었지만 사망자가 나온 사건도 아니기에 강력반에서 담당한 사건 중에 그리 대단한 축에도 못 끼는 사건이었다. 최악의 경우 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조직의 막내 한두 명 학교(?) 보내면 될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


기훈이 그녀 몰래 엉뚱한 짓을 해서 그들과 엮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기훈이 근래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2주 정도였다. 사소한 것까지 기훈 모든 일과 행동들을 훤히 꿰고 있던 그녀였기에 기훈이 그들과 엮일 일은 없었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신원이 확실한 일개 회사원을 잡기 위해 국내 최대 조직의 행동 대원들이 동원된다는 사실이 이치에 맞지 않았다.


단지 조까치파가 연루 된 기훈의 행방불명과 갑작스럽게 돌변한 행동과 성격 그리고 기훈의 이별 선언이 무언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어렴풋한 짐작이 들 뿐이었다. 그녀는 불안에 떨면서도 한편으론 그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 솟아 올랐다.


‘일단은 그를 찾고 봐야 해. 만나야 해.’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두뇌는 이번 만큼은 심장에게 모든 결정을 맡겼다.



***************



유리를 피해 집을 나왔지만 갈 데가 마땅치 않은 기훈은 이후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였다. 자신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유리에게 그리움과 미련을 남길지도 몰랐다. 어차피 해외로 나갈 거라고 말한 바에야. 그때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회사를 다니는 것이 혹시나 다시 찾아오거나 몰래 지켜 볼지도 모를 그녀가 마음을 정리하는데 더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기훈이 당장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변명일 뿐이었다.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유리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이 당장 떠나가지 못하게 만든 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회사로 찾아 온 유리를 만나고 난 이틀 후 아침부터 그가 있던 찜질방으로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찾아왔다. 기형은 배 위에서 말한 대로 기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해 왔다. 유리와 만났다는 것과 어떤 말을 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되었다. 유리와 기훈은 적당히 헤어질 준비를 마친 걸로 보였다. 이제 다음은 기훈이 사라질 차례였다. 기형은 기훈이 머무는 찜질방으로 부하들을 보냈다. 기훈 역시 어차피 벌어질 일 조금 빨리 벌어지는 것 뿐이다 체념했는지 순순히 부하들을 따라갔다.


변두리 산속에 있는 낡은 창고에 갇혀 꼬박 하루를 감금되었다. 콘크리트 블록으로 둘러싸인 창고 안에는 백 촉 전구만이 을씨년스럽게 불을 밝혀주고 있었다. 양철 지붕과 깨진 창문으로 바람에 꺾여 떨어지는 나뭇가지들이 만들어낸 소음과 이름 모를 짐승들의 내는 울음소리가 아무 여과 없이 들려왔다.


낯선 곳에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과 함께 하는 기약 없는 기다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었다. 기형은 아마 그의 공포감을 극대화 시킴으로써 다시는 유리에게 접근할 생각조차 못하게 할 만들 심산인 모양이었다.


고요를 뚫고 차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어둠 속에서 기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차 소리가 여러 대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꽤 많은 수의 부하들을 대동하고 온 것 같았다.


기형은 희미한 전등을 사이에 두고 기훈의 앞에 앉았다. 기형이 담배를 빼어 물자, 건달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올라가 전구 주위를 뿌옇게 감쌌다.


“약속을 잘 지켰더군.”


“그럼 이제 내가 사라질 차례인가?”


“그래야. 되겠지.”


“어차피 유리 곁에서 사라지면 될 거. 뭐 이렇게 번잡하게 구는 거야.”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기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런데 말이야. 부하들 보고를 듣자 하니 네가 유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사라지면 아무 상관 없는 거잖아.”


“아니.”


기형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차라리 네가 내 딸에게 복수하려는 마음 이었다면 놔 줬을지도 몰라. 적당히 겁줘서 보내면 다시는 복수 하겠다는 꿈도 못 꾸겠지.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사랑, 그거 지독한 거거든. 언젠가는 터져버리는 시한폭탄 같은 거야. 너와 내가 시작부터 얽혀 여기까지 온 것처럼.”


“네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우습군.”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그래 우스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너처럼 비겁하지는 않아.”


"글세 나 대신 어린 딸 아이에게 복수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네가 할 말은 아닐 듯싶은데?"


잠시 동안의 침묵 사이로 기훈과 기형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래서 사라지는 걸로 부족하다?”


“응. 부족해.”


“그래. 어차피 유리 맘은 대충 정리한 것 같으니까....... 여한은 없어. 네 맘대로 해라.”


“의외로 담담하군.”


“그게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거니까.”


죽음 앞에서 너무 담담한 기훈의 태도에 기형은 마음이 흔들렸다. 들은 바로는 소심하고 찌질한 줄로만 알고 있었던 남자가 갑자기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랑일 것이었다. 그는 기훈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유리를 위해 죽음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이 남자만큼 그녀도 이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갑자기 기훈이 사라져 버린다면 유리는 기훈을 찾느라 남은 인생을 허비하며 고통 속에 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형은 딸에게서 기훈을 떼 놓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에게는 딸아이의 행복과 미래를 지켜 주고 싶은 의지가 더 강했다. 딸아이가 자신처럼 사랑에 옭매여 비참한 인생을 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간의 정리를 봐서 짧게 고통 없이 끝내지.”


기형이 손짓하자 거구의 사내 두 명이 오함마를 들고 기훈의 앞에 섰다. 두려움에 저절로 눈이 감긴 기훈의 눈꺼풀에 유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다시 볼 수 없을 터였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처음 만났던 어린 그녀, 그녀를 차마 때리지 못하고 울어버린 그를 안아주던 손길, 놀이 공원의 DDR 머신 위에서 빛나던 그녀, 한반장 앞에서 수줍게 상체를 드러내 오해를 풀어주며 부끄러워하던 그녀의 표정, 그러고 나서 터져버린 눈물을 감추지 못한 그녀, 발가 벗겨진 채 부끄러움도 잊고 이마를 찢던 그에게 다가와 더 상 다치지 말라며 막아주던 손, 수능 성적을 빌미로 기습적으로 느낀 그녀의 입술, 해변에서의 빛나던 몸매와 젊음, 읽어도 읽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일리아드-오디세이’에 담긴 그녀의 마음, 어색하게 핑계 대며 선물한 BMW,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알몸으로 곁에 누웠던 그녀의 눈부신 육체…… 이젠 안녕……잠시 힘들어 하겠지만 언젠가 이 모든 것을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안녕 꼬마 아가씨.


사내들의 오함마가 허공을 갈랐다.




감동 받았죠? 그럼 한마디 남기는 센스는 기본이죠 ^^


작가의말

안녕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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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네버엔딩 스토리 +7 15.05.02 615 18 12쪽
» 이별하는 여자의 심리 네 단계 +9 15.05.02 595 18 12쪽
36 자신의 몸을 바치려는 여자, 거부하는 남자 +1 15.05.02 817 15 13쪽
35 그럼 네가 풀어 줘 +5 15.05.01 730 16 13쪽
34 이젠 안녕 +3 15.04.30 610 15 12쪽
33 내 아내를 빼앗아간 그 놈. +9 15.04.29 670 15 10쪽
32 아이처럼 +7 15.04.28 611 18 12쪽
31 수감록 2 +3 15.04.27 580 14 8쪽
30 수감록 +3 15.04.27 629 17 10쪽
29 행복 뒤에 숨은 불안. +3 15.04.27 654 17 8쪽
28 진술서 2 +5 15.04.26 683 14 17쪽
27 진술서 +3 15.04.26 622 18 12쪽
26 이루어 지다. +5 15.04.26 720 20 16쪽
25 대물 +3 15.04.26 834 17 14쪽
24 나쁜 손 +3 15.04.26 742 19 12쪽
23 그녀.......... 벗기다. +4 15.04.25 1,075 17 14쪽
22 여행을 떠나요. +3 15.04.24 688 18 11쪽
21 복어같은 그녀 +3 15.04.23 697 18 14쪽
20 그녀에게 남자가 생겼다. +1 15.04.23 825 16 12쪽
19 여고생과 노처녀의 결투 +5 15.04.23 657 22 12쪽
18 넌 너무 어려. +4 15.04.23 758 19 12쪽
17 그녀는 적당히란 말을 모른다. +3 15.04.22 816 19 12쪽
16 발가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아. +5 15.04.22 857 18 7쪽
15 승냥이의 시간 +3 15.04.21 917 15 14쪽
14 짐승이 날뛰기 시작 할 때. +3 15.04.20 825 21 12쪽
13 짐승의 시간 +1 15.04.19 827 17 12쪽
12 짐승의 계절 +3 15.04.19 842 19 12쪽
11 19금 +1 15.04.19 1,250 16 12쪽
10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좋다. +1 15.04.19 897 15 12쪽
9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1 15.04.19 798 17 12쪽
8 유리의 일기 2 +3 15.04.18 945 25 12쪽
7 유리의 일기 +2 15.04.18 982 15 11쪽
6 최후에 웃는 놈은 웃기는 놈이다. +1 15.04.18 972 15 5쪽
5 짐승 같은 놈 +2 15.04.18 1,045 18 11쪽
4 벗겨야 하는 이유. +2 15.04.18 1,07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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