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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275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11.20 23:42
조회
787
추천
17
글자
20쪽

13화 - 2

DUMMY

“같이 공부하자, 웅도야!”

“응, 그거 좋지.”



점심시간, 간만에 밖에서 점심을 먹을 때, 성빈이가 나에게 와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나. 성빈이의 활기찬 모습에 귀여움을 느끼며 물끄러미 성빈이를 쳐다본다. 별 말 없이 성빈이를 빤히 쳐다보니 성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 하는 느낌으로 마찬가지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같이 하면, 다같이?”

“응, 다같이! 서로 모르는 것도 알려주고 하면 좋잖아?”

“근데, 나는 그게, 궁금한 게. 성빈이 너나 희세한테는 도리어 손해이지 않아, 같이 모여서 공부하면?”

“응? 왜에? 왜 손해야?”



같이 공부한 건 저번 주말에 희세랑 같이 했지만, 눈치없이 여기서 그걸 말할 순 없지. 능청스럽게 질문하니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를 쳐다보며 말한다. 미래는 ‘다같이’라는 말에 흥미가 돌았는지 유진이랑 얘기하다 이쪽을 조금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유진이도 나를 쳐다본다. 민서는 먹느라 정신없다. 희세는, 특유의 곁눈질로 안 보는 척 보고 있는 시선.



“나나 미래 같은 꼴통이야, 성빈이나 희세처럼 공부 잘 하는 애들한테 설명 듣고 하면 좋지만. 그 설명하는 시간동안을 공부 잘 하는 너희에겐 시간낭비가 되잖아. 게다가 모여서 공부하면 떠들거나 할 가능성도 높고. 어수선하니까 집중 못 할 수도 있고.”

“으으응, 전혀! 가르쳐 주는 것만큼 공부하는 게 어디있다구! 설명해주려면 설명해주는 사람도 제대로 알아야 하니까, 더 꼼꼼히 공부하게 되는 거잖아! 시끄러운 건, 서로 조심하면서 떠들지 않게 노력하면 잘 될 거야. 떠들려고 모이는 게 아니라 공부하려고 모이는 거니까!”

“그럴까나…….”

“누구보고 꼴통이래요! 흥!”



성빈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가르쳐준다는 애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배우는 입장에서 거절할 명분도 없다.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는 성빈이의 설명. 반짝 웃는 그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엽게 굴지. 미래는 툴툴거리며 나와 성빈이의 좋은 분위기를 깨뜨린다.



“그럼, 주말에 공부하려구?”

“응, 월요일부터 시험이니까, 주말동안 다시 보는 차원에서 열심히 하면 좋지 않을까?”

“어디서 하게?”

“음…… 일단은, 도서관?”



유진이는 관심을 보이며 성빈이에게 묻는다. 시선을 유진이에게 돌려 대답하는 성빈이. 유진이는 지그시 고개를 끄덕인다. 도서관이라고 하니까 또 뜨끔 하게 되네. 슬쩍 희세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희세는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그러면, 이렇게 할래? 우리집에서 공부하자.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자체적으로 야자를 하는거야.”

“엣, 집에서……? 그치만, 여섯 명이나 되는데? 웅도도 있으니까, 웅도는 따로 재워야 하구…….”

“웅도랑 그냥 다같이 자면 안 될까♡”



유진이는 대뜸 자기 집에서의 공부를 제안한다. 흠칫 놀라는 성빈이. 그도 그럴 게, 보통 가정집이면 6명이 공부할만한 공간은 없으니까. 거실에서 상 펴고 한다고 해도, 조금 무리지. 성빈이 말대로 나는 남자애니까 따로 자야만 하고. 그럼 잘 방도 부족하고.

유진이는 생긋 웃으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살짝 혀를 내밀며 힐긋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의도한 표정. 하지만 의도하였기에 더욱 뇌쇄적인 표정. 괜히 흠칫 놀라게 된다. 저게 정녕 18살 여고생의 표정인가 싶을 정도인데.



“에, 엣! 그건, 그건 안 돼! 가, 같이는!”

“에이, 여자애 다섯 명이랑 같이 자는데 설마 무슨 짓 하려구? 내가 아는 정웅도 씨는 그렇게 대담하지 못한데?”

“어이어이~ 우리 변태 오빠를 무시하지 말라구? 작년까지만 해도 「변태 씨」로 전교에 명성을 떨쳤었는데!”

“누가 변태야! 오해와 오해가 겹쳐서 생긴 예전 별명 가지고 그딴 평가는!”



성빈이는 크게 당황해서 살짝 얼굴이 상기되어 말한다. 싱긋 웃으며 말하는 유진이. 숫제 놀리는 태도지만 성빈이를 당황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미래가 옆에서 거든다. 가만히 태클을 거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없다. 솔직히, 다섯 명이나 되면 도리어 위축되는 건 나지. ……한 두명이면 무슨 짓거리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네. 안 해요. 못 해요. 쫄려서(?).



“히힛, 농담이고. 우리 집이 학원 하거든. 토요일에 학원에서 밤새 공부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에? 학원? 유진이네 학원이었어?!”

“어. 아빠가 학원 원장.”

“와, 대박. 신기해!”

“……덕분에 늘 공부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학원집 딸이 공부 못하면 그 학원 다니겠어, 너 같으면.”

“아…….”



유진이의 말에 성빈이는 굉장히 놀란다. 나도 조금 놀란 표정으로 유진이를 쳐다보게 된다. 학원이었구나, 유진이네 집. 하긴, 친해진 지 얼마 안 됐으니 모를 수도 있지. 설령 친하다고 해도 모를 수도 있고. 유진이는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뭐, 맞는 말이긴 하지. 아버지가 학원 선생님이고 원장님인데 그 딸이 공부 못하면…… 좀, 신뢰의 문제이긴 하지.



“어쨌든, 토요일엔 학원 텅텅 비니까, 아무 문제 없거든. 어때, 다들?”

“나는 찬성! 학원이면 교실처럼 돼 있을 테니까 공부하기도 편하고 좋을 것 같애!”

“나도 뭐.”

“저도 찬성이요!”

“……뭐.”

“응, 밤새 공부하는 거야?”



유진이의 말에 다들 한 마디씩 대답. 전반적으로 다들 거절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도서관도 좋지만 거긴 저번에 가 봐서 알잖아, 숨막힐 것 같이 조용해서 우리끼리 뭘 알려주거나 할 수는 없는, 그런 분위기인 거. 그래서 저번주에 희세랑 갔을 때엔 철저하게 개인학습이었는데.


유진이는 싱긋 웃으며 ‘그럼 아빠한테 말해둬야겠다. 토요일이야?’ 하고 말한다. ‘응─!’ 하고 기쁜 듯이 웃는 성빈이.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나도 마주 웃어주다가 희세와 눈이 마주쳤다. ‘……흥!’ 하는 투로 눈을 돌리며 젓가락을 놀리는 희세. 괜히 눈치 보인다.




--




‘띵동.’

“왜 초인종을…… 아, 성빈아……?!”

“헤헤. 준비하고 있었어?”

“어, 응.”

“잠깐 들어가도 될까?”

“응, 응…….”



초인종 소리에 나는 남방을 걸치다 말고 문을 열었다. 딱히 비번을 바꾸거나 하지 않았는데, 희세라면 제집인 양 문을 열 텐데, 가뜩이나 준비 중인데 꼭 나를 독촉하는 것 같은 초인종 소리에 살짝 짜증스럽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여자애는 희세가 아닌 성빈이. 상의를 입는 중에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며 방긋 웃으며 방으로 들어온다. 딱히 내 허락은 듣지 않고 들어오지만 나는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뭐야, 뭐?! 갑자기 성빈이가 이렇게 이른 아침에 찾아오다니.



“으음─ 웅도 치고는 깨끗하게 사는 것 같은데?”

“웅도 ‘치고는’이라니, 내가 그리 더러운 인상이었어, 성빈이 너한테?”

“에헤헷, 아니, 예전에 기숙사 살 때엔 별로 깨끗하진 않았던 것 같아서, 네 방.”

“그 땐 그랬지만, 지금은.”



지금은 희세가 올 때마다 잔소리 하니까. 결국 깨끗한 방은 희세의 영향이 크다. 리유 건 때문에 희세가 안 오던 몇 주는 예전처럼 더러워지나 싶었는데 요즈음 또 희세가 자주 자취방에 찾아와서 다시금 깨끗함을 찾아가고 있다. 희세가 툴툴대며 정리해주기도 하고.



“밥 먹고 있었어? 구경해야지.”

“대충 먹으려고 했는데. 성빈이 너는 먹었어?”

“응, 먹었지.”

‘삑삑삑삑. 삐익─ 철컹.’

“……?”



상에 놓인 반찬들을 보고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치마를 가지런히 하고 자리에 앉는다. 입던 셔츠를 마저 입고 상에 앉으며 대답한다. 성빈이는 먹고 왔구나. 희세는 아침에 올 때면 늘 밥을 안 먹고 와서 같이 먹어주는데. 뭐, 그래도 성빈이가 구경해준다니(?) 나쁠 건 없지. 혼자 밥은 아니니까. 마악 한 수저 뜨려는 순간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신속하게 열리는 문, 들어오는 희세. 미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아, 희세도 왔네? 웅도랑 같이 가려구 아침일찍 왔는데.”

“……그래. 빨리 일어났네. 약속시간보다 좀 이른데.”

“아하하, 그냥 눈이 떠져서. 배고프기도 하고. 그런 때 있잖아, 괜히 일찍 일어나지는 때. 밥 먹었어?”

“아니.”

“같이 먹자?”

“……그래.”



잠깐만, 나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예전에, 유진이가 다짜고짜 자취방 쳐들어 왔을 때. 그 때에도 공교롭게 희세가 뒤늦게 와서 상황을 잔뜩 오해했었던 것 같은데. 차이가 있다면, 그 때 희세는 유진이를 굉장히 아니꼽게 여기는 사이인 것과, 성빈이와는 예전부터 친한 사이라는 점.


그 차이가 어느 정도 먹힌 것인지, 희세는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는 않고 다만 껄끄러운 표정으로 나와 성빈이를 쳐다보며 말한다. ‘왜 너희 둘이 이 아침부터……?’ 하는 듯한 눈빛.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질문을 받은 것만 같다.


성빈이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나와 희세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웃으며 대충 얼버무린다.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며 희세에게 밥을 권한다. 아침에 일찍 올 희세라면 분명 나 깨워주고 아침 먹이러 온 것일 테니. 예상대로 희세는 밥을 먹지 않고 왔다. 별로 탐탁지 않은 표정과 태도로, 희세는 가방을 내려놓가 자리에 앉는다. 나는 얼른, 여왕님 대접하듯 빠르고 신속하게 밥공기에 밥을 채우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희세 앞에 대령한다.



“그렇게 밥 먹고 있으니까, 되게 신혼부부 같다. 헤헷.”

“푸흡. 무, 무슨 소리를.”

“아니, 그냥. 분위기 되게 좋아 보여서. 나도 아침 안 먹고 올 걸 그랬네? 헤헷.”

“그…… 어, 그, 음.”

“…….”



말없이 희세와 밥을 먹는 나. 평소라면 무슨 주제라도 조금 얘기를 나눌 텐데, 희세와 나. 물끄러미 보고 있는 성빈이 때문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희세. 이어지는 성빈이의 갑작스런 평에 나는 깜짝 놀라 밥을 뿜을 뻔 했다. 성빈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한다.

신혼부부 같은데 ‘나도 아침 안 먹고 올 걸’이라니, 그럼 성빈이도 이런 ‘신혼부부 같은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싶다는…… 그런 뜻은 아니겠지요?! 그, 그냥, 부럽다는 얘기겠지? 아아, 미치겠네. 희세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희세는 별다른 대답 없이 묵묵히 밥을 먹으며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자, 그럼 여기서 24시간동안 공부하는 거야!”

“그…… 시작부터 이의를 제기해도 될까요.”

“안 돼!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거, 안 좋은 일이니까!”

“맞아요, 오빠는 좀 근성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머리도 둔하고 금방 포기하는 잉여로운 성격이니까!”

“너는 만나자마자 내가 뭘 했다고 폭풍디스질이야.”

“데헷☆ 제가 안 까면 오빠를 누가 까겠어요! 다 오빠 좋다고 헤롱헤롱 하는 사람들인데! 자정작용이라구요, 자·정·작·용!”



학원에 도착한 우리. 유진이와 미래, 민서는 미리 도착해 있다. 다들 모여 공부할 자세를 갖추니 유진이가 선언하듯 근엄한 표정으로 말한다. 손을 들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하는 나. 유진이는 고개를 저으며 엄격하게 대답한다. 옆에서 미래는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잔뜩 까내린다. 짜증스럽게 되돌려도 미래는 입만 살아서 잔뜩 궤변을 늘어놓는다.



“무슨 이의인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해도 10시간이 족히 넘는데, 구태여 비효율적으로 밤을 세야 하나 싶어서. 밤 세면 일요일엔 자야 하잖아.”

“음, 과연. 일리 있는 말이긴 하네.”



유진이는 관대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윤허(允許)한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성빈이. 확실히, 그렇잖아. 지금이 아침 9시인데, 저녁 7시에 끝내고 헤어져도 10시간 공부하는 것이다. 야자 끝나는 시간처럼 10시에 끝나면 13시간 공부한 거. 중간중간 점심이나 저녁도 먹고 쉬는 시간도 있겠지만 최소한 8시간 이상은 공부할 수 있는 건데, 어째서 밤샘공부를 해야만 하는데. 게다가 밤 세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요일 오전부터 잘 텐데. 그럼 도리어 패턴이 깨져서 더 공부를 못 하지 않을까. 비효율적이잖아.



“「추억」이야.”

“추억……?”

“애들하고 밤새 공부해본 적, 없을 거 아냐?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하면서 추억도 쌓으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겠어? 꼭 공부만 하는 게 나쁜 게 아니라, 밤새 시험공부 하는 추억도 남기는 거지! 효율 문제로 간다면 확실히 비효율이겠지만, 그래도 한 번에 그렇게 오래 공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지 않을까?”

“……그 말은 조금 놀기도 하겠다는 얘기잖아?”

“아 그럼 사람이 어떻게 24시간동안 공부만 해요! 누가 보면 공부 엄청 한 사람처럼 보이겠네! 여기서 성적 두 번째로 낮은 주제에!”

“시끄러, 꼴등한테 그딴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유진이는 지그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추억」이라는 유진이의 말은 귀를 통해 내 마음 깊숙이 박히는 것 같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추억’을 들어버리니 더 반박할 명분이 없다. 가뜩이나 저번에 공부할 때, 희세랑 고등학교 과거, 미래에 대한 얘기 할 때의 결론이 「추억」이었는데.


확실히,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비효율이라곤 하지만 어쨌든, 한 번에 쭈욱 이어서 공부하니, 일요일에 자는 동안만큼 토요일 밤에 많이 하면 되는 거잖아? 모르는 거 있을 때 희세나 성빈이한테 팍팍 지도 받고, 족집게 과외 받듯이. 내 대답에 미래는 잔뜩 놀리는 목소리로 태클을 건다. 나도 지지 않고 맞불을 놓는다.



“자, 그러면. 잠깐만. 여기, 이렇게, 성빈이는 여기. 그다음, 네, 오빠는 여기.”

“……? 이게 뭐야.”

“성적 계층화에요. 희세는 성골, 유진이랑 성빈이는 진골, 민서는 6두품, 오빠랑 저는 천민이요.”

“왜 6두품에서 바로 천민으로 내려가는데?! 그리고 너랑 같은 급은 아니거든 내가?!”

“핳! 어이가 없네요 어이가? 누가 누구보고 그런 말을! 도찐개찐이죠!”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미래는 갑자기 아이들의 자리배치에 손을 댄다. 희세, 유진이, 성빈이, 민서, 나, 미래 순으로 나란히 앉힌다.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나에게 당당하게 설명하는 미래. 잔뜩 태클을 거니 미래는 마찬가지로 소리친다.



“유진이가 성빈이보다 공부 잘 해? 몰랐네.”

“에헤헤, 나 좀 별로 공부 못 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나. 하긴, 전교 5등 밖에 안 되니까.”

“5등이 ‘밖에’라니…….”

“누구 씨는 늘 1등이잖아, 당연하게?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쩔고…… 우아아아!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겠어!”

“뭐, 뭐얏!? 아하핳, 가, 간지러워!”



의외의 유진이의 높은 성적에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딱히 디스를 걸려고 한 건 아닌데, 유진이는 처연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성빈이가 훨씬 모범생 같은 스타일이니까. 어디까지나 ‘스타일’이. 유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눈을 하고 은근히 희세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러다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괴상한 소리를 내며 희세에게 달려들어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당황한 희세는 잔뜩 웃으며 유진이를 떼어내려 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유진이도 희세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 냈으려나. 잘 됐네.



“성빈이는 몇 등이었지?”

“나는 15등 정도.”

“와. 쩌네. 민서는.”

“나, 나는 좀 많이 떨어지는데. 40등 정도려나.”

“와, 잘하네. 나는 100등 간신히 안에 드는데.”

“전투력이 5밖에 안 되는가. 쓰레기군. 제 전투력은 「265」입니다! 오호호홋!”

“자랑할 건 아닌 것 같다만.”



성빈이는 15등, 민서는 40등. 준수한 성적이다. 우리 학년 전체가 300명 조금 넘던가. 백분위로 대강 따져보면 성빈이는 상위 5%, 민서는 상위 15% 안인 거잖아. 나는 간신히 절반 넘는데. 미래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성적을 밝히며 깔깔 웃는다. 저기요, 숫자가 높다고 좋은 게 아니라구요. 게다가 265등이면 심각하잖아. 제일 공부 열심히 해야 될 녀석이 여기 있는데.



“아아, 잡담이 너무 많아! 우리 공부하려고 왔잖아! 자, 이제 공부합시다!”

“응, 알았어.”



성빈이가 나와 미래를 다독이며 분위기를 전환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흥분을 진정한다. 이런 걸 경계했었던 거잖아, 공부하러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거. 자리에 앉아 공부할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 이런 건 어떻게 외우는 거야.”

“뭔데 뭔데?”

“이…… 연대표라고 해야 하나.”



얼굴을 찌푸리며, 옆의 유진이에게 물어본다. 유진이는 안경을 고쳐 쓰고 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안경을 쓴 유진이의 모습이 색다르네. 평소에는 렌즈 쓰나? 내가 물어보는 건 국사. 답 없이 외우기만 해야 하는 과목이 국사인데.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외워. 기말고사라서 범위가 정해져있긴 하지만, 그 범위조차 자비없는 국사 선생님의 폭풍진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애초에 국사 교과서 자체가 페이지 수가 많긴 하지만.



“아, 이거는, 흐름을 아는 게 중요한데.”

“잘 정리해서 외우면 좋아! 여기, 내 공책 보여줄게!”

“아, 우와, 되게 깔끔하게 정리했네?”

“헤헤헷.”



유진이가 설명해주려는 찰나, 나와 유진이의 얘기를 들었는지 성빈이가 다가와 공책을 내밀며 말한다. 빨간색 파란색 검정색 세 볼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성빈이의 공책. 표 같은 것도 있고 화살표도 있고, 알아보기 무척 쉽다. 내 칭찬에 성빈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웃는다. 귀엽네.



“그런 것보다는, 스스로 정리하는 게 좋아. 백날 남이 적은 거 보면서 외우려고 해봐야, 머리에 안 남으니까. 이런 식으로 내 책 보면서 스스로 노트 정리 하는 게 좋아.”

“아, 그래?”

“그, 그치만! 지금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월요일에 국사 시험이잖아? 그러니까, 내 공책 보고 외우는 게!”

“시간이 걸려도 확실하게 머리에 남기는 게 낫지. 교과서 요약해서 보기 좋은 건 맞지만, 그건 스스로 해야 머리에 남는 거니까.”

“그치만!”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국사 교과서를 내 쪽으로 들이밀며 말하는 희세. 교과서 여기저기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추가 설명 같은 것도 쓰여 있다. 이것도 감탄할만 하다. 하지만 감탄을 이을 수가 없다. 왜인지 모르게 성빈이와 희세가 잔뜩 언쟁을 하는 것 같이 돼서. 그럴 성격이 아닌 성빈이가 자신의 공책을 나에게 들이밀며 우긴다. 희세가 또 그런 거에서 질 성격이 아니다.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두 여자애를 쳐다보고, 정작 처음 물어본 유진이는 빙긋 웃으며 멀거니 떨어져 재미있게 나와 희세, 성빈이를 쳐다본다. 어, 이런 때엔 솔로몬의 판결처럼, 판관 포청천처럼 공명정대하게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음…… 그러면, 희세 교과서 절반으로 자르고 성빈이 공책 절반으로 잘라서 내가 공부하면 되는 거지, 그치? 뭔 개소리야!



“어…… 성빈이 공책을 베끼면서 공부하면 되겠지? 이게 더 간단하니까.”

“응! 그럼 되겠다! 한 번 써 가면서 공부하면 머리에도 남겠지? 흐흐흐흥.”

“……맘대루 해. 흥.”

“아, 어, 고마워. 희세도 고마워.”

“응! 난 다른 거 공부하니까, 마음껏 써 줘!”



괜히 머리가 아파올 것 같다. 대충 더 간단해 보이는 성빈이 공책을 선택했다. 대번에 갈리는 두 여자애의 반응. 성빈이는 격하게 기쁨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희세는 아닌 척 하지만 상당히 기분 나쁜 듯 저기압이 돼 책을 가지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괜히 미안해진다. 성빈이는 콧소리 내어 웃으며 공책을 주며 웃으며 말한다. 음, 아, 공부하자. 괜히 신경 쓰지 말고.


작가의말

간만에 사이사이 줄을 넣었는데 이게 더 읽기 편한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5.12.10 14:03
    No. 1

    이러나 저러나 재미는 있는데 읽기 쉬운 글은 아니라니까요~
    대화가 전부 나오고 설명이 나오는 태신작가님 특징이라~
    설명 읽을때는 정작 다시 대화를 읽어야 한다는~
    특히 여러 사람이 대화하고 있을때는 대사가 누가 한 말인지 다시 확인해야할 지경~
    그것만 다듬으면 정말 좋은 글!!!
    그러고 희세 짱!!!!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2.10 23:22
    No. 2

    제가, 그것만은 어떻게든 고쳐보려 하는데 잘 안 되네요 ㅠㅠ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력이 모자라서...... 노오오오력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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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09화 - 2 +9 15.09.20 893 21 17쪽
177 09화. 힘들지만 안녕, 하고 말하기 +8 15.09.19 1,232 16 19쪽
176 08화 - 4 +12 15.09.16 939 18 19쪽
175 08화 - 3 +10 15.09.15 1,064 19 21쪽
174 08화 - 2 +12 15.09.13 1,005 20 19쪽
173 08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16 15.09.11 959 20 19쪽
172 07화 - 3 +10 15.09.09 1,097 17 20쪽
171 07화 - 2 +16 15.09.08 936 17 19쪽
170 07화. 말했을 텐데. +10 15.09.06 1,036 20 18쪽
169 06화 - 4 +6 15.09.04 998 18 23쪽
168 06화 - 3 +10 15.09.01 1,047 20 21쪽
167 06화 - 2 +8 15.08.30 1,006 19 19쪽
166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20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3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7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3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4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8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20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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