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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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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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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2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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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05화 - 3

DUMMY

“흠…….”

예전부터, 박물관이라는 건물은 그 존재의의를 잘 모르겠다. 비단 박물관 뿐만 아니라 식물원, 동물원, 아쿠아리움 같은 것 역시. 직접적으로 전시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산 교육의 현장이 되는 것일까. 아니, 전혀.

박물관에선 조용히 해야 한다. 당연한 거겠지. 관람에 방해가 되니까. 유물을 만지거나 들어 올려선 안 된다. 당연하지, 한두 번도 아니고 온 사람들이 다 만지면 수백, 수천, 수억의 만짐이 있을 테니. 부서져 버릴지도 모른다. 애초에 손을 댈 수도 없다. 네모난 유리창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당당하게 소풍 코스에 박물관이 있는 것일까. 그저 보기만 할 수 있다. 교과서와 다른 점은, 2D의 책 지면의 사진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유리관 안의 유물.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일까. 전혀, 똑같은데. 차라리 1080P 동영상으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이고 편할 것 같은데.

식물원이나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은 그나마 살아있는 짐승이나 식물들이라도 생생하게 볼 수 있는데. 똥 싸는 것이나 꽃향기나 돌고래가 물을 뿌린다거나 직접 겪을 수가 있을 텐데. 박물관은 심지어 말 한 마디 꺼내는 것조차 통제된다. 사진도 당연히 안 된다. 전혀 재미없고 유익하지도 않다. 지루한 설명문만이 빼곡하게 써 있다. 대체 이 공간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감상?”

“아니, 존재가치의 고민.”

“피, 뭐야. 진지한 척?”

“그렇지.”

같이 구경하고 있던 유진이. 넌지시 묻는 말에 생각의 흐름을 잠시 끊고 대답한다. 유진이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진지한 눈으로 유물을 바라보는 유진이. 이런 게 재미있을까. 아까 전 난장판은 그럭저럭 흐지부지하게 넘어가고, 다시 평소의 유진이로 돌아왔다. 뭐, 나도 계속 과거에 연연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

“어디가?”

“잠깐 화장실 좀.”

“응, 그래.”

나는 가만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눈썹을 모은다. 유진이에게 말하지 않고 살며시 자리를 뜨려 하지만 귀신같이 눈치챈 유진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나에게 묻는다. 적절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뜬다. 유진이는 다음 유물을 보기 위해 자리를 이동한다. 저 쪽 구석 모퉁이에서 나를 쳐다보고 가만히 손짓하는 성빈이.


“너무하잖아, 그런 거! 리유가 알면 어떡하려고!”

“……그러게.”

“‘그러게’라니! 네가 간 거잖아!”

“……아하하.”

박물관 바깥. 거기에서 듣는, 어머니의 잔소리보다 더한 잔소리. 사실 우리 엄마는 프리한 편이라 딱히 잔소리를 안 하는 편이라 더 타격이 큰데. 성실하고 착하디 착한 성빈이에게 이런 잔소리를 들으면 더욱 정신에 대미지가 강하게 전해진다. 거기다 뭐라 하는 주제가 바람피운 것에 대한 훈계이니 더더욱.

아까 전 충격의 희세가 보여준 사진 때문에 이렇게 잔소리를 퍼붓는 성빈이다. 리유의 대변인이자 착실하고 모범생 스타일인 성빈이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일 테니. 사실 나도 상식으로는,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 때엔 그냥 본능에 몸을 맡겨 버려서. 그래! 내가 바람 피웠다! 으아아아! 이미 한 거 어떡하라고! 배 째! ……이러면 너무 철면피인가. 이웃 어떤 나라가 생각나는 뻔뻔한 행동이지, 무책임하고.

“둘이 데이트 한 것 까지는 어떻게 넘어갈 수 있어. 아니 사실 넘어가면 안 되지만! 웅도는 여고 다니니까, 친구랑 놀았다고 가정해. 그렇다고 칠 수 있어. 그치만! 연인 사이도 아닌데 뽀뽀하는 건! 거기다 그걸 사진까지 찍는 건! 너무하잖아!”

“……아니, 내가 그런 게 아니라…… 희세가 그런 거니까. 나도 속수무책이었어!”

“그럼. 하늘을 우러러 떳떳해? 이거 리유가 보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정직할 수 있어? 가슴 펴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아니지. 아이,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하아. 아우…….”

“……웅도 진짜.”

“……미안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잘못했어.”

야무진 목소리로 하나하나 따지는 성빈이의 등쌀에 나는 차마 견딜 수가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인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어지는 성빈이의 추궁에 더는 뻔뻔하게 변명을 할 수가 없다. 어떻게 말을 못 잇고 한숨만 나온다. 성빈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 시선을 견딜 수가 없다. 우선은 정중하게 사과한다. 그 수밖에는 없다. 제발, 더는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이 아킬레스건을……

“웅도는, 여자친구 아니어도 아무하고나 뽀뽀 받아도 상관없어? 리유가 엄청 슬퍼할 텐데?”

“……내가 하지는 않았으니까. 아 이러니까 엄청 쓰레기 같잖아! 그게 어쩔 수 없잖아! 희세가 멋대로 한 거니……으헉!”

‘쪽’

“……헤헤헷, 히히. 이렇게 기습으로 하면 상관없다는 거지?”

“……!”

넌지시 물어보는 성빈이. 그 말에 나는 잠자코 말한다.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쓰레기 같아 창피해 벌컥 화내는 듯 솔직하게 말한다. 방귀뀐 놈이 성내는 꼴일까. 변명을 하는 찰나,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성빈이. ‘쪽’ 소리가 나고 볼 쪽에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기겁을 하며 놀란 나.

뭐뭐뭐뭐, 뭐야 이 상황?! 성빈이가, 지금 기습뽀뽀 한 거야?! 그 임성빈이?! 뭔 일이야! 아니, 성빈이가 왜! 방금 전까지 희세랑 바람피운 거 훈계하고 있었으면서! 리유가 보면 얼마나 슬퍼하겠냐는 말까지 했으면서! 그러고선 정작 본인이 이런 짓을?! 앞뒤관계가 전혀 안 맞잖아!

성빈이는 지금까지 내가 본 것중에 가장 얼굴이 빨개진 모습으로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 성빈이가 이 정도까지 행동하는 건 정말 예외인 일이니까. 성빈이 본인도 당황스럽겠지. 하물며 나는 오죽하겠는가. 여자애한테 기습뽀뽀를 당하다니, 평생에 한 번 당하기도 힘든 일인데 희세에게 한 번, 지금 또 한 번 당하다니.

“……나도 지지는 않으니까! 이걸로 같은 거야! 미안해, 갈게!”

“야, 야……! 뭐, 뭐가 진다는 거야…… 하아. 하아. 후우.”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끊기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한 성빈이. 황급히 종종걸음으로 뛰어간다. 어이없기도 하고, 심장이 너무 쿵쾅대기도 해서 성빈이를 붙잡지 못하고 작게 얼버무리듯 혼잣말 했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어서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성빈이가 이러니까 내 반응 또한 예상치 못하게 더욱 격하다.


“와, 재미있을 것 같아, 재미있을 것 같아!”

“배멀미 하지 않을까. 자동차도 간신히 버티는데.”

“에이, 얼마 안 간다는데! 큰 배도 아니고 뭐!”

“그런가…….”

부우웅. 묘한 느낌과 함께 출발하는 배. 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옆에 앉은 유진이는 그저 신나는 모양이다. 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다음 소풍 장소는 어느 섬. 배로 15분 정도 바다를 건너간단다. 배라고 해봐야 쾌속선처럼 몇백명이 타는 큰 배는 아니고, 기껏해야 30명 정도 탈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배. 섬도 저 멀리에 보인다. 반 별로 끊어서 배를 타기에, 이번에도 성빈이나 희세와는 마주치지도 못 하고 다만 유진이와 계속 다니게 된다.

조금 불안하다. 말은 안 했지만, 나 멀미 있으니까. 그나마 버스 같은 경우엔 멀미약 먹고 가만히 있으면 그럭저럭 안정되지만, 배는. 무엇보다 멀미약도 안 먹었고. 딱히 이런 일정이 있을 줄 몰랐으니. 게다가 배를 타고 배가 출발하며 흔들 할 때부터 묘한 느낌이 들어서. 유진이는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자~ 이제부터는, 바깥에 나가셔서, 섬들을 구경하시면 됩니다아~”

“오! 나가보자!”

“으으…… 그래, 나가자.”

어느 정도 바다로 나아가는 배. 가이드 하시는 아저씨가 마이크에 대고 말씀하신다. 모두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간다. 유진이 또한 얼른 일어나 나를 재촉한다. 슬슬 촉(?)이 와서 어질어질한 느낌이 든 나. 바깥 바람이라도 쐬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어 유진이의 말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촤아악!’

“우후! 쩔어! 물 튈 거 같아!”

“으으…… 그렇네…… 으으…….”

바깥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울렁울렁 덜컥거리며 떠가는 배. 그에 따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충분히 즐길만한 요소가 많은, 배 바깥의 경치다. 옆으로 지나가는 기암괴석들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진이는 신이 나서 난간을 잡고 말한다. 나는 잔뜩 어지러워서 간신히 대답한다. 바깥바람을 쐬어도 나아지기는커녕 멀미가 더 심해진 것 같다. 너무, 너무 울컥울컥 뛰잖아, 배가…….

“괜찮아? 안색이 엄청 안 좋은데?”

“멀미…… 하는 것 같아서, 후우.”

“약 먹고 타지! 아, 살 시간이 없었나.”

“으후우…… 아학.”

그제야 나의 이상을 파악한 유진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멀미하면 얼굴이 창백해져서 누가 봐도 아파 보이는 내 모습. 겨우 난간을 붙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토할 것 같다. 휘청거리면서 잔뜩 어지럽고. 섬이고 바다고 나발이고 그냥 내리고 싶다. 누워 있고 싶다. 땅을 밟고 싶다. 나중에 군대 갈 때 절대 해군은 못 가겠구나. 육군으로 가자. 이딴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릿속도 정리가 되질 않는다.

“우쭈쭈. 괜찮아요. 나을 거야, 이렇게 하면.”

“……!”

“에헷. 너무 부끄러워서 말이 안 나와?”

괴로워하는 내 곁으로 다가오는 유진이. 배 바깥은 한 명이 겨우 지나갈만큼 길의 폭이 좁다. 그런 좁은 곳에서, 유진이는 옆으로 나를 앉는다. 등을 토닥여주며 내 쪽으로 말한다. 바닷바람과 모터 소리 때문에 주위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나한테도 작게 들릴 정도. 흠칫 놀라 유진이를 쳐다본다. 유진이는 싱긋 웃으며 장난스레 말한다. 아…… 팔꿈치로 가슴이 닿는데…… 유진이의 가냘픈 허리와, 가슴의 느낌.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에…… 으아아! 참을 수가 없다! 크아아아!

“……우웨에에에엑!”

“꺄앗! 어어, 괜찮아?”

“……크으…… 으앗, 아우우우우웨에에엑!”

“선생님─!!”

올라오는 위액과 덩어리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바다로 내뿜는다. 누가 그랬던가, 바다는 어머니라고. 푸른 바닷물은 말없이 내 토사물 또한 덤덤히 받아준다.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하며, 꾹꾹 참아보려지만 한번 더 울컥, 배가 흔들리니 위장의 모든 것을 뿜어낼 기세로 구토는 계속해서 나온다. 유진이는 잔뜩 놀라 선생님을 부른다. 선생님을 부른다고 토하는 걸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으아아아…….”

“괜찮아?”

“아하아. 어……. 어느 정도는.”

배에서 내리고서야 간신히 속이 괜찮아진다. 한바탕 시원하게 토해낸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섬에서 내려서 한 시간, 섬의 산책로를 돌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선생님을 따라 반 전체가 같이 가지만 나는 토하고 어지러워 선착장 앞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유진이도 돌봐주고자 남았다. 뭐, 길을 잃는다거나 하기에는 너무 작은 섬이라서 선생님은 유진이와 나만 두고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신 모양이다.

“……좀 걸을까.”

“아직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좀 더 쉬어. 아니, 배 탈 때까지 쉬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유진이 너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좀 아니잖아.”

“에이, 나는 뭐 아무렇지도 않아. 그보다 네 속 아픈 게 중요하지.”

“좀 걸으면 나아질 것도 같으니까. 걷자.”

“음─ 그래,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 것도 조금 그래서 넌지시 말을 꺼낸다. 내 걱정을 해 주는 유진이. 나 또한 유진이에 대한 배려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주는 훈훈한 상황이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유진이도 더 이상 거절은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실제로도 좀 걸으면 나을 것 같고. 무엇보다 더 안 흔들리는 땅을 밟아서 멀미의 상당부분이 꽤 괜찮아진 기분이니까. 이렇게 한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또 억울하잖아. 그렇게나 힘든 시련을 겪으며 배 타고 왔는데.

“어.”

“왔네. 기다리느라 힘들었는데.”

“아, 먼저 와 있었구나.”

“멀미 괜찮았어? 웅도 멀미 심하잖아.”

“아아…… 잔뜩 토했지.”

섬이지만 산처럼 올라가는 길. 길의 초입에서, 전혀 의외의 두 명을 만났다. 성빈이와 희세. 새침한 표정의 희세와 방긋 미소 짓는 성빈이의 모습에 나는 얼떨떨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반보다 20분 정도 먼저 떠난 희세네 반인데. 기다리고 있었다니, 정말 의외다. 삐딱하게 말하는 희세와는 상반되게 내 멀미를 걱정해주는 성빈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 멀미 심한 것도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역시 성빈이는 착하다. 배려해주는 것도 너무 상냥하고.

“……크흠. 그럼 갈까.”

“어, 어…… 응.”

성빈이와 훈훈한 대화가 오가는 것이 심기가 불편한 듯한 희세. 헛기침을 하며 나와 유진이 쪽으로 온다. 그러더니 의도적으로 유진이를 살짝 밀치고 내 오른손을 잡고 걷는다. 저번에 성빈이가 내 손 잡은 것처럼,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고서. 조금 애들 눈치가 보여 말을 더듬으며 대답한다.

“응, 같이 가자.”

“어어…… 어.”

생글생글 웃으며 내 왼쪽으로 붙는 성빈이. 왼쪽 손을 잡고 걷는다. 희세는 눈이 번쩍. 뒤에서 유진이는 멍하니 손에 손 잡고 걷는 세 사람을 쳐다본다. 성빈이까지 이러니까 정말 어떻게 몸둘바를 모르겠다.

“자…… 잠깐만, 이러니까 꼭 부축당하는 것 같잖아. 좀 손 좀 놓……”

“뭐?”

“아, 아닙니다.”

“멀미하고 왔다며? 그럼 부축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부담스러워 한 마디 꺼내지만 이내 희세의 날카로운 눈매에 꼬리를 내린다. 희세의 등쌀에는 감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어지는 성빈이의 명랑한 목소리에 더 변명할 길이 없다. 그래, 그냥 상황을 즐기자. 미소녀 두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 그 상황만 보면 무척 즐거운 일이잖아. 야, 복 터졌지 내가. 감독님의 전성기는 언제에요? 저는…… 지금입니다!

“와! 그럼 나는 뒤에서!”

“……!”

“뭐, 뭐하는 거야! 미친 거 아냐?!”

“친·한·친·구 사이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미국이나 그러겠지! 여기 한국이라고!!”

“아핫! 되게 꽉 막혔네, 희세.”

“이으으……!”

나와 성빈이, 희세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아니아니, 이딴 개드립은 집어 치우고. 셋이 손 잡고 걸어가는 동안 멍하니 뒤따라오던 유진이. 밝은 목소리로 뒤에서 나를 꼬옥 안는다. 등쪽으로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유진이 가슴의 감촉. 우와아아앗……! 여자애한테 백허그는 처음 당해봐……! 게다가 유진이, 생긴 거랑 다르게 생각보다 꽤, 그, 거……(?) 있잖아!

희세는 깜짝 놀라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얼른 내 손을 놓고 유진이를 떼어 놓으며 말한다. 유진이는 찡긋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노발대발 어쩔 줄 몰라하는 희세. 희세도 기습뽀뽀 정도는 했지만 나와 포옹한다거나 그런 건 한 적 없으니까. 그건 희세 입장에서도 꽤나 큰 일(?)로 인식되나보다.

희세의 비난에 유진이는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한다. 얼굴이 빨개져서 말하는 희세. 대화가 오가는 사이 졸지에 유진이의 말 덕분에 보수적인 여자애 포지션이 된 희세.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잔뜩 표정을 찌푸리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유진이를 쳐다본다. 성빈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아, 싸우지 말구~ 그럼 번갈아가면서 같이 가자!’ 하고 말한다. 나는 옆에서 ‘내가 무슨 공공재야?!’ 하고 드립을 친다. 난장판이구먼, 이건.

“사진 찍자!”

“그래.”

“……너랑은 같이 찍기 싫은데.”

“누군 너랑 찍고 싶은 줄 알아? 난 웅도랑 단 둘이 찍을 건데~♪”

“누, 누구 맘대로?!”

산은 아니지만 어쨌든 산책로의 정상. 그럴 듯한 공원과 밑으로 바다가 보이는 멋진 풍경이다. 이런 곳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게, 한국인의 숙명이지. 관광 오면 사진 찍는 게 남는 거잖아. 유진이의 활달한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여전히 삐딱한 태도로 말하는 희세. 유진이와는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지 오래다. 유진이 또한 비꼬는 태도로 대답한다. 가운데에서 나만 골치 아프다.

“김치─”

“히─”

결국에 나는 공공재. 도로·항만·철도 같은 개념일까. 유진이랑 단독 샷으로 한 번, 희세랑 한 번, 성빈이랑 한 번.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한 명 한 명 따로 사진을 찍다니. 출세했네, 정웅도. 뿌듯하기보단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다.

“그래두, 같이 찍기도 해야 하는데. 같이 찍을래?”

“……진심으로 싫은데.”

“나는 상관없어! 웅도야, 찍자!”

“어어…… 어.”

“……이씨.”

성빈이의 제안. 어떻게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평화주의자 성빈이의 가상한 노력이다. 나는 찬성이지만 희세와 유진이의 알력 때문에. 유진이는 대뜸 내 옆으로 붙으며 말한다. 흠칫 놀라게 되는, 팔꿈치와 팔 전체로 느껴지는 유진이 가슴의 감촉. ……생각보다 크다니까. 진짜로. 사람은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선 안 되는구나. 희세는 잔뜩 달라붙는 유진이를 보고 잔뜩 약이 오른 표정을 짓는다.

“……흠, 나도 같이 찍지 뭐.”

“……!”

“여기요. 나도 나도!”

“!!”

유진이를 보고 ‘질 수 없지’ 하는 느낌으로 반대쪽에 서는 희세. 유진이와 마찬가지로 노골적으로 가슴을 내 팔에 밀착시킨다. 잔뜩 놀라 숨을 들이키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희세는 조금 창피한 듯 얼굴이 빨개졌지만 짜증스레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바라본다. 얼른 기죽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린다. 오른쪽도, 왼쪽도 황홀한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성빈이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 찍는 걸 부탁하고 쪼르르 이쪽으로 온다. 와서는 내 뒤쪽으로 와, 등 쪽에 자연스럽게 밀착. 성빈아, 성빈아 성빈아아아……! 이건 완전히 희세하고 유진이도 뛰어넘는 엄청난 밀착이잖아!! 오죽하면 유진이와 희세도 흠칫 놀란 표정이다.

“찍을게요. 하나 둘.”

“…….”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니라 고자리라. 예쁜 여자애 세 명에게 둘러 쌓인데다, 특정 부위가 온 몸에 다 밀착돼 있는 아찔한 상황인데. 사진 찍는 아저씨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피식 웃는다. 여자애 세 명에게 둘러 쌓인 내 모습이 이상한 모양이다. 사진을 다 찍고 아쉽게도(?) 떨어지는 셋. ……조금 위험할 뻔 했다.

나머지는 별 것 없이, 넷이서 산책로를 내려왔다. 다른 애들은 벌써 다 내려와 아까 내가 선착장에 앉아 쉬던 의자에 빼곡이 모여 앉아 있다. 우리도 그 틈바구니에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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