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92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9.09 23:13
조회
1,096
추천
17
글자
20쪽

07화 - 3

DUMMY

유진이의 본모습을 본 나는 더욱 고심하게 되었다. 조금 이상한 애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이상한 애다. 저런 식으로 극단적인 사람, 엄마 따라 몇 번 본 아침드라마에서나 봤는데. 실제로 저런 애가 있다니.

어떤 남자애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애가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 더해서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그 애 주위엔 여자애가 여럿 있다. 자신이 그 사이에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주위 애들을 모두 나락으로 빠뜨리고, 심지어 좋아하는 그 남자애까지 같이 함정에 빠뜨리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그래서 더 대책이 없다. 아직도 광기에 찬 채유진의 눈이 선명하게 뇌리에 떠오른다.

‘너도 바람피운 거, 나라고 못할 건 없잔아?’

“……달라.”

채유진의 당돌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도 갑갑한 마음에 교복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혼잣말한다. 내가 웅도랑 데이트 한 것과, 지금 채유진이 하는 짓은…… 엄연히 달라. 개념이 다른 거잖아.

“언니이─”

“응, 안 졸려? 10시 넘었는데.”

“헥, 헥.”

“케이나인. 나인이도 잘 시간인데?”

문이 열리고 졸려 보이는 희나와 숨을 헐떡이는 나인이가 들어온다. 희나, 아직 어리니까 노크를 기대할 순 없지.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둘을 맞이한다.

“언니, 안 좋은 일 있어?”

“응? 왜?”

“언니 기운 없어 보여서…… 마악, 풀 죽은 것 같아서…… 응?”

“아니야, 공부하고 와서 힘들어서 그래. 언니 걱정두 해주고, 착하네 희나?”

“히히힛.”

9살 밖에 안 된 애가 눈치는 엄청 빠르네. 역시 내 동생이야. 공부는 전혀 안 하고 고민만 잔뜩 했지만, 사실은. 희나는 그저 내 칭찬이면 좋아라 한다. 희나의 귀여운 걱정을 다독여주고 그만 자라고 달랬다. 나인이와 같이 방을 나서는 희나. ……조금 더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교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

기분이 썩 좋지 않다. 희나가 내 걱정 해주는 것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리유가 떠오른다. 그리고 죄책감이 더욱 강해진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채유진이 한 말을 듣고부터는 계속 신경 쓰인다.

‘뚜…… 뚜…… 뚝.’

『……여보세요.』

“……응. 나야.”

나도 조금 맛이 간 것 같다. 무슨 정신인지 모르겠지만 리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외로 전화를 받는 리유. 나도 모르게 얼른 몸을 일으켜 정자세를 취했다. 리유의 목소리를 들으니 함부로 퍼져 있을 수가 없다.

『……잘 지냈어?』

“응…….”

먼저 인사를 건네는 리유. 안절부절 못하는 나. 지금 한가하게 안부인사를 주고받을 때가 아닌데. 어린애 같고 활발한 리유의 목소리가 아니다. 진지하고 낮은, 리유같지 않은 목소리. 안부를 물어보는 게 더 어색하다. 리유가 그럴 리가 없잖아. 전화를 건 건 나인데, 어떻게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미안해.”

『…….』

“미안해.”

『……괜찮아.』

어떤 생각도 나지 않을 때, 먹먹한 상태로 한 마디 사과를 꺼냈다. 대답이 없는 리유.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자기 남자친구랑 바람피운 여자애가 대뜸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상황이라니. 나라면 대뜸 쌍욕을 날리고 전화를 끊겠지. 무슨 낯짝으로 전화했냐고. 나 농락하는 거냐고. 누구 때문에 헤어졌는데, 놀리는 거냐고. 대답이 없는 휴대폰에, 혼잣말하듯 한 번 더 사과했다. 이어지는 리유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괜찮아……라고?

『고민 같은 거…… 얘기해도 될까?』

“자, 잠깐만…… 괜찮다니. 나…… 나 때문이라고?! 내, 내가! 내가 웅도랑…… 바람피워서! 헤어진 거잖아! 근데 어째서?!”

『……괜찮으니까, 얘기 들어줘.』

“…….”

리유는 잔잔한 말투로 말한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얼굴은 완전히 새빨개졌다. 부끄러움. 수치심. 흥분. 이런저런 감정이 섞여서 잔뜩 흥분한 말투로 휴대폰에 대고 말한다.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어째서?! 목소리 듣는 것도 역겨울 텐데?! 그렇게나 좋아하는 웅도였잖아? 나 때문에 헤어진 건데, 죽도록 싫을 텐데, 그런데 왜?

『나…… 사실 여기 와서 힘들었어.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고. 음식도 안 맞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언제나 웅이하고 히이하고 비니하고 늘 생각했거든. 늘, 언제나.』

”…….”

『근데 그런 사진 보니까…… 너무 억울하고 슬퍼서…… 나 여기 있는 건 잊어버리고 애들끼리 재미있게 놀고 있구나, 그런 생각 드니까…… 돌이킬 수 없게 돼 버렸네. 헤헤헷.』

“……웃지마, 바보야. 바보야. 바보 멍충아!”

리유는 담담하게 말한다. 상담사에게 말하는 것처럼, 자기 얘기를 무덤덤하게 하고 있다. 조금 머뭇거리면서도 확실하게 말하는 리유. 끝에 가서는 내가 아는 리유 특유의 어린아이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마무리한다. 묵묵히 대답하지 않다가 겨우, 입을 땠다. 또르르 눈물이 떨어지는 걸 의식하지 못 한 채.

“바보야. 힘들면 말을 했어야지. 왜, 왜! 그렇게 참고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왜 나한테는 전화 한 번 안 하고……! 웅도한테는 힘들다는 말도 안 하고, 왜! 정웅도 그 개자식은 너 잘 지낸다고 알고 있는데!!”

『……웅이한테는 말할 수 없잖아. 히이한테는, 다른 이유로 전화 못 걸겠구.』

“…….”

『나, 그랬어도 히이 싫지 않아. 여기 와서 확실히 알게 되었어. 유학 억지로 온 것도, 사실은 히이처럼 되고 싶었던 거니까. 히이처럼 의젓한 어른 같은 모습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히이가 그랬어도 전혀 아무렇지 않아. 나 같은 거, 웅이한테 도리어 어울리지 않을까 고민도 했었는데……』

“……멍청아!”

리유에게 눈물 흘리고 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기에, 잔뜩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흥분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어지는 덤덤한 리유의 목소리에 더 말을 이을 수가 없다. 리유는 모든 일에 초연한 사람처럼, 체념한 것처럼 말한다. 나를 동경했다는 말에, 자기를 깎아내리는 리유의 말에 더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 울음도, 슬픔도, 분노도 숨기지 않은 그대로.

“네가 왜! 네가 어때서! 나는, 비겁하게 너랑 사귀는데도 웅도한테 접근해서 데이트하고, 제멋대로 굴고 그런 사진까지 찍었는데! 흣…… 싫으면 싫다고 해! 울고 싶으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해! 네 감정을 숨기지 말고! 그렇게 참는 게 의젓한 건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정말, 정말 괜찮아…… 응, 괜찮……흑! 괜찮으니까……!』

“뭐! 바보야! 끝까지 말 안 할 거야?! 그럼 내가 진짜 홀라당 웅도 먹어버린다?! 어! 멍청아! 바보야!!”

『……흑! 안…… 안 괜찮아……!』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는 목소리가 된 나는 감정적이고 격정적으로 리유에게 퍼붓듯 말했다. 리유는 끝까지 꾸욱 참는 태도로 말한다. 굳이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입술을 깨물고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는 리유가 보이는 듯하다. 더욱 격정적인 태도로, 꼭 놀리는 것처럼 말했다. 정말은 놀리는 게 아니라 갑갑한 마음 뚫어내는 듯한 기분이다. 간신히, 입을 여는 리유. 리유의 목소리도 떨려온다.

『흑! 나도! 웅이랑 놀고 싶은데! 흑! 웅이랑! 흑! 데이트 하고! 흑! 그러고 싶었는데!! 후으으, 흐그윽, 흐으윽!』

“……미안해, 미안해.”

『흑! 흐아아아앙! 흐어엉, 끅! 흐아아아앙─!!』

“미안해, 미안해…….”

리유는 울음이 격해져 더는 말을 잇지 못한다. 마음에 있던 억울한 심정, 전부 털어내려 하지만 잔뜩 몰려온 울음 때문에 말이 잘 안 나온다. 결국에는 펑펑 울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죄책감에, 후회에, 그저 미안하다고 사죄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 말밖에 할 수 없다.


『흣! 응, 이제 괜찮아.』

“괜찮지 않잖아.”

『한참 울어서 괜찮아. 나는 진짜 히이가 웅이 먹어도 되니까.』

“머, 먹긴 뭘 먹어. 그건 그냥 한 말이니까.”

『으으응, 괜찮아. 어차피 헤어졌고.』

한참동안 서로 휴대폰을 붙들고 울고짜고 했던 나와 리유. 이제는 진정돼서 리유 쪽에서 저런 농담을 날릴 정도가 되었다. 어쨌든 속은 후련하다. 차분하게 말하는 리유의 대답에 아직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긴 하지만.

『아…… 그럼 웅이 왕따 당하고 있어? 히이랑 성빈이도?』

“어. 빌어먹을 어떤 년 때문에. 걱정 마. 죽어도 가만히는 안 있을 거니까.”

『응. 다행이다, 여기 있어서. 그런 상태였으면 나 다시 아무것도 못 하고 하얗게 돼서 멍청하게 있었을 것 같은데.』

웅도의 안부를 묻는 리유에게, 짧게 지금 상황을 알려줬다. 흠칫 놀라며 대답하는 리유. 별 것 아닌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리유가 여기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사건이 안 일어났겠지. 또 모르겠지만. 채유진 그 미X년이면. 그 뒤로도 리유랑 한참을 통화하다 간신히 전화를 끊었다. 12시가 훌쩍 넘었다. 2시간 가까이 통화했네. 울기도 잔뜩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것 같다. 얼른 자야겠다. 푹 자야 내일 학교 가서 제대로 상대하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어…….”

여기에 한 명, 조금 둔하지만 멍하니 사태를 관망하는 한 소녀가 있다. 민서. 웅도의 호의로 금세 친해지고, 웅도의 배려에 더욱 웅도를 따르고 좋아하게 된, 통통하고 둔해 보이는 여자아이. 그런 그녀가,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상황을 살피고 있다.

처음 그런 소문을 들었을 때, 민서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자기가 겪은 웅도는 결코 그럴 애가 아니었기에. 희세라는 여자애와 어느 정도의 썸은 있었던 것 같지만 웅도는 결코 그러지 않을 거란 신뢰가 있었기에. 하지만 계속되는 소문과, 이어지는 웅도에 대한 따돌림, 그리고 아무 반응도 없는 웅도를 보고 민서의 마음은 조금 흔들리게 되었다. 마침 공범(?)인 희세라는 여자애도 같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수상쩍고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민서는 기본적으로 소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가련한 소녀다. 거기에 사교성도 부족해 별로 친구도 없는 상태. 다른 애들과 교류하는 방법도 그리 잘 알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 민서인지라, 간신히 친해진 웅도가 따돌림 당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다. 웅도랑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따돌림의 여파로 말을 못 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웅도에게 말은 걸지 못하고, 그렇다고 웅도를 가만히 둘 수도 없고. 그런 와중에, 민서는 결심했다. 비록 애들 앞에서 당당하게 웅도에게 말을 걸 용기는 없지만, 적어도 그에게 힘이 되자고. 그의 도움이 되자고.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변변찮은 인연 없이 지나간 1학년 때처럼 2학년이 이어지려 할 때 말을 걸어주고 친구가 되어준 웅도처럼. 그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결심한 민서다.


친구도 인연도 없는 그녀는 특유의 무존재감이 있다. 존재감이 없는 것이 특징.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는 때도 있다. 워낙 존재감이 없기에 애들은 민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건 좀 서글픈 문제이긴 한데. 은신에 가까운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해, 민서는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열심히 귀동냥하여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했다.

아이들의 수다와 소문은 늘 그렇듯 중구난방이지만 그저 듣고만 있지 않고 열심히 분석하고 추적해본 민서. 그 결과, 소문의 시발점은 유진이에게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누구한테 들었어?’, ‘응? 유진이가 그러던데’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다, 유진이 측근인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민서는 스스로 분석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반에다, 착하고 친구도 많고 다른 애들에게 인망도 두텁고, 무엇보다 웅도하고 친한 유진이가? 사실, 희세인지 뭔지 하는 애와 바람피웠다는 것보다 유진이랑 놀아났다는 게 더 맞을 정도로, 민서가 반에서 지켜본 유진이와 웅도의 관계는 그 정도로 좋았다. 소풍 가서 절정을 이뤘었지.


“헛, 헛!”

어떻게든 더 정보를 캐고 싶은 민서. 복도에서 어설프게 숨어 있다 유진이가 이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얼른 화장실로 들어간다. 문을 잠그고 변기에 앉아 가만히 숨을 죽인다. 아니나 다를까, 유진이가 친구와 함께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정웅도 걔도 진짜 어지간하구나. 나희세랑 짜고 그러는 거겠지?”

“뭐…… 나는 웅도 괜찮은데.”

“에엑. 너는 네가 그런 꼴 보고선 그런 생각이 들어? 한 번 바람피운 애가 두 번은 못 피우겠어?”

“상관없잖아. 그런 거야, 바람피우면 정신 번쩍 들게 해주면 되는 거고. 위기가 기회라고, 오히려 지금이 기회 아니겠어? 지금 내가 좋아한다고 잘해주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보이지 않겠어? 흐흐흥♪”

“으이이~ 유진이 너 은근히 악마 같단 말이지? 하핳, 소문까지 네가 일부러 낸 거라고 하면 진짜 엄청 쩌는 아침 드라마일텐데.”

“그럴 리가 없잖아~ 헤헿.”

친구와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유진이. 민서는 연신 표정이 바뀌며 유진이의 말을 곱씹어 듣는다. 열심히 분석해보는 민서. 퍼뜩 자리에서 일어난다. 번뜩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철컥.’

“너, 너가 그런 거야?!”

“엣. 누구…… 아는 애야?”

“응, 잠깐 할 얘기 있을 것 같네. 먼저 가 있을래?”

“어, 뭐.”

화장실 문을 나오고, 세면대 앞 거울에서 머리를 다듬고 있는 유진이와 그 친구에게 대뜸 말하는 민서. 긴장해서 절로 말을 더듬게 된다. 유진이 친구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민서를 쳐다보고 유진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분명 그녀도 민서와 같은 반인데. 유진이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친구에게 말한다. 유진이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장실을 나선다. 문까지 닫아주는 센스를 보여준다. 화장실에 단 둘이 남은 민서와 유진이.

“내가 그랬어? 뭘? 뭘 그랬을까?”

“그그그ㄱ…… 웅도 안 좋은 소문 내고! 다른 애들 소문도 내고! 웅도한테 접근하려는! 계략! 같은 거지!”

“어머. 다들 왜 그러나 모르겠네. 나만 보면 그런 생각이 막 샘솟아요? 내가 그렇게 드라마 싸구려 악역처럼 생겼어?”

“……그냥 그래!”

사실 민서는 딱히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그저, 유진이가 친구와 얘기하는 태도라던가, 유진이 친구의 농담에 조각을 맞춰보니 그게 아귀가 딱 맞아들어가는 것 같아 대뜸 던져본 말이다. 유진이의 비꼬는 듯한 말에 민서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의 다정다감한 유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하다. 비꼬는 듯 놀리는 듯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하는 태도 또한 건들건들하다. 민서는 잔뜩 겁먹고 떨리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유진이는 피식 웃는다.

“아아, 이젠 지겹네. 계속 설명하기도 지겨워. 그래, 내가 그랬다면? 네가 어쩔건데?”

“네, 네, 네가 그랬어?!”

“어. 내가 그랬어. 소문 낸 것도 나. 계획 짠 것도 나. 웅도 가질 것도 나. 감독·각본·배우, 전부 채유진입니다! 쨘! 됐어?”

“……말할거야!”

“하핳. 무섭네. 아주 무서워. 진짜 무서워서 어떻게 돼 버릴 것 같네. 있잖아, 민서야……?”

“……!”

유진이는 눈을 반쯤 뜨고 지겹다는 투로 말한다. 흠칫 놀라 눈이 커지는 민서. 원래도 조금 더듬거리는 말투가 더욱 더듬거리게 되었다. 유진이는 갑자기 민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쭈욱 화장실 벽으로 밀치며 말한다. 민서는 너무 놀라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웅도가 조금 놀아줬다고, 너무 까부는 거 아니야? 너 같은 거, 중학교 때 찌질이 찐따처럼 구석에 짱박혀 있던 거 누가 모를 것 같아? 한 번만 더 나대봐. 어떻게 될지, 말 안 해도 알잖아? 그 때 그 친구들, 다 내 휴대폰에 저장돼 있거든? 익히 알겠지만 나, 발 넓은 편이니까?”

“……!”

과거의 이야기까지 꺼내 민서를 짓밟으려 하는 유진이. 민서는 몸서리치며 입술을 깨문다. 눈물까지 고이는 걸 봐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벌벌 떠는 민서를 보고 유진이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민서에게서 손을 땐다. 그러더니 방긋 웃으며 홱 한 바퀴 귀엽게 돈다.

“으응~ 민서가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무섭게 말하게 되잖아. 나 그런 거 싫어하는데.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하는데, 이런 거 누가 보면 어떡해? 안 되잖아~ 흐흣.”

“……네가 그래도, 말 할거야. 웅도한테 말할 거야. 다른 애들한테도 말할 거야!”

“말 하던가!”

“!”

다시금 귀엽고 살가운 평소 말투로 혼잣말하는 유진이에게, 민서는 독기를 품고 말했다. 또르르 흐르는 눈물은 무시하고, 둥글둥글한 민서답지 않게 무서운 투로 말했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유진이의 호통. 전혀 다른 애의 목소리인 것처럼 크고 높은 톤의 무서운 목소리기에, 민서는 어깨를 들썩, 깜짝 놀랐다.

“말 해! 어디 전국 방방곡곡 다 말하고 다녀 봐! 누가 너 같은 찐따새X 말 들어주나! 하나도 안 무섭거든!? 말 해 봐! 그거 알까요, 민서 양. 말이라는 건, 신뢰에요. 신용이에요. 권력이에요.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 지껄이는 거, 사람들 한 명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알아요?”

“……흑!”

“……더 짜증나게 하지 마. 그 땐 진짜 가만히 안 있으니까.”

유진이는 몰아세우듯 다시금 민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민서는 숨을 죽이고 대답하지 못했다. 두려움과 억울함에 다시금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라 또르르 흐른다. 유진이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말하고 화장실을 나선다.


혼자 남은 민서.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 훌쩍훌쩍 울었다.

싫다. 무능한 자신이 싫다.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자신이 싫다. 찌질하고 찐따같은 자신이 싫다. 지금까지 무얼 했는지 모를 자신이 싫다. 웅도에게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유진이의 말 한 마디 마디가 그대로 칼날처럼 마음에 박힌 것 같이 아프다.

내가 조금이라도 친구가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내 말을 믿어줄만한 친구가 있었다면. 그런 것도 없이,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았는지.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뒤이어 이어지는 슬픔과 절망감, 좌절감 때문에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툭.’

“……?”

“울지 마. 피부 나빠져.”

“……흑! 여, 여기…… 흑! 여자 화장실인데……! 흣!”

“……그런 농담 할 기력은 남아 있구나.”

누군가 부드럽게 민서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퍼뜩 고개를 드는 민서. 눈물콧물 범벅의 흉한 모습이다.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 손을 들어 눈을 비비는 민서. 눈 앞에 있는 건 웅도. 의젓한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말한다. 민서는 겨우 울음을 그치고 말 한 마디 한다.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웅도.

“눈물은 이제 그만! 이제부터 반격 시작이니까!”

“바, 반……격?”

“사격중지! 아군이다! 언제까지 얻어맞고만 있을 텐가! 역공이다! 우리도 이제 공격한다! 정신력만 있으면 서구열강의 힘을 이길 수 있다! 덴노 헤이카 반자 컼! 아 목젖은 좀!”

“시끄럽고, 무슨 기습공격을 동네 광고하면서 해. 반자이 어택도 아니고.”

옆에서 미래가 펄쩍 토끼처럼 튀어나와 평소와 마찬가지로 개드립을 펼친다. 점잖게 저지하는 웅도. 미래는 마찬가지로 짜증스럽게 대응한다. 민서는 울음을 그치고 두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반격……이라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9 쉬는 날. +10 15.10.09 762 16 19쪽
188 11화 - 3 +9 15.10.08 927 23 18쪽
187 11화 - 2 +8 15.10.07 806 20 20쪽
186 11화. 고난의 행군 +12 15.10.06 875 17 19쪽
185 10화 - 5 +8 15.10.04 934 24 22쪽
184 10화 - 4 +8 15.10.03 827 24 18쪽
183 10화 - 3 +16 15.10.01 1,006 18 20쪽
182 10화 - 2 +8 15.09.29 1,050 16 21쪽
181 10화. 약속했어, 기다려 줘. +12 15.09.24 1,022 18 16쪽
180 09화 - 4 +12 15.09.22 951 25 17쪽
179 09화 - 3 +8 15.09.21 1,033 26 21쪽
178 09화 - 2 +9 15.09.20 891 21 17쪽
177 09화. 힘들지만 안녕, 하고 말하기 +8 15.09.19 1,232 16 19쪽
176 08화 - 4 +12 15.09.16 937 18 19쪽
175 08화 - 3 +10 15.09.15 1,063 19 21쪽
174 08화 - 2 +12 15.09.13 1,003 20 19쪽
173 08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16 15.09.11 959 20 19쪽
» 07화 - 3 +10 15.09.09 1,097 17 20쪽
171 07화 - 2 +16 15.09.08 935 17 19쪽
170 07화. 말했을 텐데. +10 15.09.06 1,035 20 18쪽
169 06화 - 4 +6 15.09.04 998 18 23쪽
168 06화 - 3 +10 15.09.01 1,046 20 21쪽
167 06화 - 2 +8 15.08.30 1,005 19 19쪽
166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19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3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4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3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3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8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20 2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