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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80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9.21 22:36
조회
1,032
추천
26
글자
21쪽

09화 - 3

DUMMY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 바퀴벌레처럼 스물스물 기어 나옵니까? 반성하세요, 스스로의 모순을.”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어.”

유진이와 빵을 먹고 교실로 들어온 때. 미래가 근엄하고 진지한 투로 폭언을 내뱉는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는다. 이런 일에는 눈치가 빠른 미래인지라. 아마 내가 유진이를 만나고 온 걸 눈치채고 이러는 거겠지. 단순히 만나고 온 것 가지고 이럴 정도면 어떻게 유진이와 애들 만나서 화해를 시킨다.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겼네. 잠자코 한숨을 쉰다.


“…….”

“또 무슨 수작질이야?”

“아니, 이건 그─”

그래서, 제가 직접 비난의 화살을 맞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탱커입니다 딜러들의 공격을 받겠읍니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다고! 이 니X미 씨X랄 것들아!! 마음만은 철벽같은 탱커로 먹었지만 실제 내 멘탈은 굉장한 물몸이다. 지금도, 희세의 한 마디에 비굴한 표정으로 희세의 눈치를 살핀다.

이곳은 빈 교실. 책상도 의자도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 애들이 오기 전에 내가 미리 정리를 했다. 무슨 회담이라도 하듯 나란히 자리 배치를 했다. 오른쪽에는 희세, 성빈이, 민서. 왼쪽에는 유진이. 나는 판사처럼 가운데 위 상석에 자리 잡았다.

“뭔데, 이게 지금.”

“그…… 유진이가, 너희에게 할 말 있다고 해서, 자리를 마련……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날카롭게 묻는 희세. 나는 ‘유진이가 사과하려고─’ 하고 말하려다 말을 애매하게 고쳤다. 미안하다는 말은 유진이가 직접 해야지. 해설자처럼 말하다 희세의 도끼눈에 조용히 존댓말로 끝마쳤다. 무서워, 희세!

“무슨 말? 우리한테 뻔뻔하게 할 말이 있어? 그런 염치가?”

“…….”

“그그, 우선은 얘기라도 들어보는 걸로 하고. 너무 다그치지 말고.”

희세는 잔뜩 가시가 뻗치는 투로 대답한다. 가뜩이나 의기소침한 유진이는 더욱 안쓰러운 표정으로 애들을 본다. 뭐랄까, 전후사정 없이 이 장면만 본다면 악역과 선역이 뒤바뀐 느낌인데. 기분 탓이겠지. 유진이에게 말할 기회를 주기 위해 약간의 제재를 가하니 희세는 잔뜩 나에게 눈을 부라린다. 애써 외면.

“……저기.”

“뭐.”

“왜에. 응, 무슨 할 말 있는데?”

“……그.”

넌지시 말을 꺼내려는 유진이. 희세는 단 한 글자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더욱 위축되는 유진이. 옆자리 성빈이가 안쓰럽다는 듯 말리고 유진이에게 기회를 준다. 희세는 한숨 쉬고 유진이는 더욱 위축된 태도로 애들을 힐끔 쳐다본다.

“……미안해.”

“……역겨워.”

“미안해, 정말정말 미안해.”

“엇…… 지금, 사과하는 거야?”

“응…….”

조용히, 처음으로 사과의 말을 건네는 유진이. 성빈이는 흠칫 놀란 표정이 되고, 조용히 있던 민서조차 깜짝 놀란 표정이다. 희세는 고개를 돌리고 혼잣말한다.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모두에게 들릴 만큼 꽤 큰 소리로 말하는데. 그 말에 항변이라도 하듯 유진이는 힘주어 두 번째 사과를 한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지 성빈이는 유진이를 보고 묻는다. 유진이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나쁜 짓을 한 것 같아. 너무 이기적으로, 너무도 나쁜 짓을……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사과하는 것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어. 내가 사과할 자격이나 있을까. 그치만, 웅도 말 듣고. 사과하기로 마음먹었어. 알아, 역겹다는 거. 도저히 받을 수 없겠지. 그치만, 어쨌든 난. 내 마음을 알리고 싶어. 진심으로, 미안해. 그 말을 하고 싶었어.”

“…….”

길게 말을 이으며 점차 눈물이 고이는 유진이. 그래도 굳은 표정으로 꿋꿋이 말을 잇는다. 희세의 혼잣말도 의식한 말을 덧붙히며. 성빈이와 민서는 멀뚱히, 그런 유진이를 바라본다. 희세는 아예 고개를 돌려 유진이를 쳐다보지 않는다.

“……너 말야. 끝까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

“너만 사과하고 마음 편해지면 끝? 천만에. 받아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그런 짓을 해 놓고, 막상 네가 따돌림 당하니까 못 견디겠어? 이제 와서 착한 여자애 코스프레 해서 또 연기하려고? 이렇게 따지는 나만 악역 만들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유진이를 쳐다보는 희세. 잔뜩 새침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따지듯이 말한다. 유진이는 희세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듣고만 있다. 성빈이가 옆에서 ‘희세야, 너무 심하잖아.’ 하고 말린다. 희세는 ‘뭐! 뭐가 심해.’ 하고 성빈이의 손을 뿌리친다. 잔뜩 흥분한 듯 불쾌한 표정으로 유진이를 노려보는 희세.

“……따돌림 같은 거, 무섭지 않아.”

“뭐?”

“그런 거, 얼마든지 감안했어. 내 잘못이니까, 내가 감수할 생각 끝냈다고. 내 죄값이니까, 그걸로 다른 애들 기분 풀어진다면 따돌림 같은 거 학교 다니는 내내 당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그치만! 그치만…… 쟤가 그렇게 못하게 하는데! 어떡하라고 나 보고! 죽어도 사과 받아내라는데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

유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말한다. 반박의 말로 들렸을까, 희세는 다시금 삐죽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머리카락이 화악, 흩날릴 정도로 세게 머리를 쳐드는 유진이. 잔뜩 성난 얼굴로 대답한다. 이를 악 물고 있지만 고인 눈물은 또르르 흐른다. 유진이가 말하는 ‘쟤’는, 나를 뜻하는 거겠지. 희세는 약간 눈이 흔들리며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

“그…… 그렇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겁니다.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뉘우치고 잘못했다는 사람을 어떻게 매정하게 내칩니까. 사과 받고 좋게좋게 끝내는 게……”

“뭘 좋게좋게 끝내?! 당사자가 싫다니까! 성빈이, 민서 이딴 물렁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절대 싫다니까?! 멋대로 하라그래! 울고불고짜고 아무리 해도, 나는 죽어도, 절대 쟤 안 믿으니까! 한 번 그렇게 했는데 두 번은 못 해?!”

‘드르륵!’

“맞아요 그 말이─!”

“너는 또 왜…… 아아.”

희세의 눈총이 상당히 신경 쓰이기에, 나는 천천히 존댓말로 희세의 눈치를 봐 가며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희세는 화난 목소리로 잔뜩 나를 몰아세운다. 뭐가 어찌됐든 유진이 말은 절대 못 믿겠다는 말. 그것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희세도 당한 게 있으니까. ‘네 그런 마음을 고쳐!’ 하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뜩이나 복잡한데, 문이 열리며 하이톤의 짜증스런 미래의 요란한 외침이 들린다. 미래는 굳이 부르지 않았는데. 이 일에서 유일하게 당사자가 아니고, 또 있어봐야 희세 편 들 게 뻔하고 나한테 태클 걸면서 방해만 할 게 뻔해서 부르지 않았는데. 부르지 않는다고 안 올 녀석인가. 이렇게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분위기 망치고 있으니. 그래, 이래야 미래지.

“저딴 건 악어의 눈물입니다! 위선이에요! 속으로 또 어떤 검은 흉계를 품고 있을지 몰라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 보기 전에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하는 법! 여기서 또 속으면 진짜 병X! 호구 미친X! 우에에에에에~~!!”

“아니야! 정말,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나는……!”

“흥! 자, 보세요 저 뻔뻔한 수작질을! 이렇게 눈물로 호소하면서 상황 모면하고 후일을 도모할 거라니까요? 와신상담도 몰라요?! 쟤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애에요! 그 정도 계획성과 집념이면!”

“그…… 우선은 당사자 아니면 빠져줬으면 좋겠는데. 미래야.”

“헐충격! 오빠, 이제 완전히 넘어갔군요…… 저 X 편으로……! 어떡해, 희세야! 완전히 세뇌당했어!”

“아니,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니까…….”

미래는 대놓고 유진이를 쳐다보며 폭언을 일삼는다. 원래 직설적인 드립이 일상인 미래지만 지금은 아주 돌직구가 아니라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유진이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미래는 도리어 놀리듯 비꼬는 말투로 말한다. 보다못한 내가 가볍게 제재를 가하려 하니 미래는 사소한 진영논리를 내세우며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어떻게 답이 안 통하는 것 같다, 지금 상태의 미래는.

‘털썩.’

“!”

“……제대로, 제대로 사과하면 되지?”

“아아아, 아니, 이럴 것 까지는…….”

갑자기 털썩,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릎을 꿇는 유진이. 자리에 있던 모두, 흠칫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유진이를 내려다본다. 유진이는 독기가 오른 듯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당황스러워 손사래를 하며 유진이를 말린다. 하지만 유진이는 잠자코 시선을 돌린다. 처음으로 유진이의 시선이 닿은 사람은 민서.

“……나, 너 무시했었어. 중학교 때, 따돌림 당한 거 봤었으니까. 내가 한 건 아니지만, 내 친구들이 그러는 거 묵인했었으니까. 그것만으로 나쁜데, 그 얘길 꺼내서 네 마음 잔뜩 아프게 만들었어. 미안해, 민서야.”

“어어, 어어, 난 괜찮아, 응, 괜찮아.”

“정말?”

“응응! 괘, 괜찮으니까 이러는 건 좀…….”

“고마워.”

유진이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민서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민서는 잔뜩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대답한다. 유진이는 거듭 민서에게 괜찮다는 말을 확인받고 고맙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드라마나 만화도 아니고, 실제로 이렇게 무릎꿇고 사죄하는 건 처음 봐서 그런 것도 있는데. 유진이가 말하는 게 너무 진지하고 뭐랄까, 연극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이상하다. 아니, 꾸며서 말하는 것 같다는 게 아니라, 말하는 투가 연극톤이라는 거. 희세와 미래는 어이없다는 듯 그런 유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 너 부러워했어. 예쁘고, 착한데다 애들한테 이미지도 좋고 무엇보다 웅도랑 친하니까.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너한테 함부로 대하고 소문까지 멋대로 내 버렸어. 그런데다 너 조롱까지 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말, 정말 후회하는 거야?”

“응, 정말……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나설 걸, 차라리 그럴 걸…… 미안해, 미안해.”

“……응,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

“고마워.”

시선을 돌리는 유진이는 이번에는 성빈이에게 매달린다. 유진이의 묘사와는 다르게 냉정한 표정으로 유진이를 내려다보는 성빈이. 오오,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의 성빈이. 이런 표정의 성빈이는 되게 드물어서 색다르다. 어쨌든 그런 차가운 얼굴로 유진이를 내려다보며 말하는 성빈이. 유진이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내가 지적했던 그 연극톤으로 말한다. 성빈이는 제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유진이와 눈높이를 맞춘다. 그리고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유진이의 눈물을 닦아준다. 일어나며 유진이를 일으켜 세워주려는 성빈이. 하지만 유진이는 끄떡도 않고, 다만 고맙다는 말만 한다.

“…….”

“……!”

이번에는 희세. 차례상 그렇게 되니까. 성빈이의 일으킴에도 움직이지 않은 유진이는 무릎꿇은 채 몸을 희세 쪽으로 돌린다. 희세는 막상 자기 차례가 되자 구태의연한 태도는 어디가고, 뭔가 꺼림칙하고 불안정한 표정으로 유진이를 내려다본다. 희세의 다리를 바라보던 유진이. 눈을 들어, 희세의 눈을 쳐다본다.

“……나, 너 싫어. 너만 첫 대면에서 나 싫어한 줄 알아? 처음부터, 너 같은 거 엄청 싫어했어. 웅도 때문에, 웅도 앞이니까 착한 척 내숭 떤 거지.”

“뭐, 뭐?!”

전혀 상상도 못한 유진이의 말. 방금 전 민서와 성빈이에겐 진심어린 사죄를 했는데, 희세에겐 갑자기 어린아이 생떼 부리듯 적나라한 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이미지 관리는 전혀 안 한 날것의 자신의 속마음을. 보고 있는 나도 어이가 없는데 그 얘기를 직빵으로 듣고 있는 희세는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입을 조금 벌리고 멍청한 표정으로 유진이를 내려다보는 희세.

“너 같은 거, 누가 좋아할 거 같아? 얼굴은 엄청 예쁘지, 공부도 전교 1등이지, 앗……으으, 가슴은, 무슨 AV배우처럼 커서 지나가는 남자애들 시선 독차지하고! 뭐냐고, 대체! 왜 너 같은 게 있어서, 짜증나게……! 너만 없었어도, 너만 없었어도……! 조금은 가능성 있었을 텐데……! 어?!”

“……뭐야 너.”

유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희세를 쳐다보며 말한다. 일어나는 와중에 무릎 꿇고 있던 다리가 저린지 얼굴을 찡그린다. 그래도 꾹 참으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말하는 게 조금, 그렇다. 듣고 보니까 그냥 희세에 대한 질투 한 가득이잖아. 가만히 듣고 있든 희세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유진이를 보며 가만히 말한다.

“……너무 부러웠어, 너무!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어떤 것도, 이길 수가 없는데! 그래서,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유진이는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길게 말하지 못하고, 희세의 대답도 듣지 못하고 ‘와아앙─!’ 하고 울기 시작한다. 아무리 독설가 기질이 있는 희세지만, 이런 때엔 어떻게 차마 말을 하지 못한다. 착찹한 표정으로 유진이를 쳐다본다. 자신이 너무 부러워서 그랬다는데 어떻게 뭐라 할 수가 없겠지. 우쭐해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정하게 더 몰아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건 아니지, 유진아. 사람은, 누가 예쁘고 몸매가 좋고 공부도 잘하고, 그런 ‘조건’들로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 그런 식이면 나는 어떤 경우의 수가 있어도 희세랑 사귀는 게 되잖아? 그런데 최후의 승자는 리유였어. 물론 지금은 헤어졌지만…… 아하하.”

“자랑이다! 그딴 걸로 지금 장난칠 때야 네가?! 누구 때문에 이 사단인데!”

“아핳! 역시, 오빠는 쓰레기에요! 그런 걸로 웃기려고 드립을 치시다니!”

“닥쳐! 너한테만큼은 드립으로 지적받고 싶지 않거든?!”

잔잔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유진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하는 나. 자연스런 본인 디스와 함께. 희세는 잔뜩 눈총을 주며 소리친다. 옆에서 미래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희세에겐 주눅 들어도 미래에겐 함부로 대하는 이중인격의 나는 미래에겐 얼른 큰 소리로 대답한다. 잔뜩 울고 있는 유진이는 민서가 받아 달랜다.

“아 진짜. 개짜증나.”

“흑! 흐윽! 히끅! 후우, 후읏…… 흑!”

“어…… 저……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음, 그래도 사과를 못 받겠다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포기할게, 나도 더 이상은.”

“……이러면 자꾸 나만 악역 되잖아! 아우. 정웅도, 하여튼!”

“아하하.”

어쨌든 나와 미래의 투닥거림으로 어느 정도 분위기는 웃는 느낌으로 넘어갔다. 유진이는 여전히 민서 품에서 울고 있지만. 희세 눈치를 보며, 나는 뜸을 들이며 말했다. 사실, 상황이 그러니까. 민서랑 성빈이는 유진이 사과를 받아줬는데, 희세만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니까. 희세는 잔뜩 나에게 짜증을 부린다. 웃어 넘길 수밖에 없다.

“야, 채유진. 그만 울어. 애야?!”

“……흑! 응…… 후우, 후읏.”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유진이를 부르는 희세. 유진이는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희세 앞에 섰다. 울음은 그쳤지만 아직도 기운이 남아 있어 숨을 헐떡인다. 눈은 퉁퉁 부어서 잔뜩 삐친 것 같은 얼굴이다. 희세는 그런 유진이를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본다.

“나도 너 싫어. 처음 봤을 때부터 엄~청 재수 없었거든. 여우짓만 골라서 하니까. 거기다 이런 짓까지 하니까, 진짜 정나미 떨어져서 도저히 보고 싶지도 않은데. 근데.”

“…….”

“그렇게까지, 질투하는 거, 싫어하는 것까지 전부 말하면서까지 사과하니까, 어떻게. 안 받아줄 수가 없잖아. 받아주긴 진짜 싫지만. 어쨌든, 알았으니까. 더 싫다고 징징대면 그건 그것대로 추하니까.”

“……응.”

“그래도, 그건 계속 명심하고 있어. 나 너 엄청 싫어해. 계속 감시의 눈초리로 볼 꺼니까. 그건 네 잘못이야. 한 번 네가 그런 짓 했으니까. 알았어?!”

“……어, 응, 알았어, ……흣! 흐윽! 흐아아앙─!”

“아아, 뭐야 뭐?! 떨어져 미친……!”

희세는 잔뜩 돌려 말하면서 결국엔 유진이의 사과를 받아준다. 그 말이지, 지금? 자존심 때문에 대놓고 사과 받아주지는 못 하는 희세니까. 유진이는 토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다 곧 또 눈물이 고인다. 그러더니 갑작스럽게, 희세의 품에 안겨 펑펑 울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희세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희세는 잔뜩 당황해서 그런 유진이를 떨어뜨리려 하지만 유진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고 잔뜩 운다. ……그렇게나 부러웠던 희세 가슴에다 모든 슬픔을 풀어놓는구나. 뭔가 훈훈한데.

“음. 결국엔 희세까지 사과를 받아줬는데. 어떡할래, 당사자도 아닌 분?”

“……저는 그저 욕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렇게까지 눈물을 많이 흘릴 줄은 몰랐어요. 이것까지 연기는 아니겠죠…… 네, 그렇습니다. 저는 그냥 누구를 욕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쁜 년이네. 미래 너.”

“오빠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요?!”

내 질문에 켕기는 듯 작게 대답하는 미래. 피식 웃으며 놀리니 미래는 아까 내가 했던 말 그대로 돌려준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아.


“아. 근데 보충수업이지 않아?”

“?!”

“헥! 20분이나 지났어요! 아 망했어요 이거 들어가면 큰일나죠 이거는!”

“미친……!”

겨우겨우, 계속 우는 유진이를 진정시킨 찰나. 성빈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실을 깨닫게 해준다. 아차. 청소 끝나고 남는 시간 짧게 사과하려는 거였는데. 시간이 너무 흘렀다. 미래는 친히 늦은 시간까지 말하며 남의 일 말하는 것처럼 웃으며 말한다. 황급히 빈 교실을 나와 우리반까지 질주한다.

‘드르륵!’

“……나가. 엎드려.”

“……넵.”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비비적 들어가려 했지만. 하필이면 보충수업은 영어. 게다가, 우리 담임선생님. 냉정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딱 두 마디 하신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대답하며 도로 나갔다. ……왜! 정규수업은 수준별 수업 하면서 보충수업은 그냥 하냐고! 일관성이 없어 일관성이! 대한민국 교육 다 족구하라 그래! 이 와중에 희세와 성빈이는 반이 달라 무사히 교실로 들어간다.

‘퍽! 퍽! 퍽!’

“끄헉!”

“여자애들하고 노닥거리려고 학교 다니지. 어휴. 어지간히 해야지.”

“……죄송합니다.”

내 개인적으로 봐도 선생님은 꽤 나를 예뻐하는 것 같은데. 예뻐해서 그런가, 나만 때리신다. 민서, 미래, 유진이는 무릎꿇고 손 들고 있고. 아 이거 성차별 아닙니까! ……이런 생각 저번에도 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선생님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때린 후 말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아아, 오늘도 이렇게 엎드려 있는구나.

“어휴, 그러니까 수업을 왜 빼먹어요. 학생의 본분도 안 지키고.”

“……같이 벌 받고 있는 게 누군데 그런 말을.”

“흐흫, 나 수업 처음 빼 먹어 봐. 웅도 덕분에.”

“아니 그게 왜 내 덕이야!? 다 같이 빠진 건데 왜 다 내 탓으로 몰아갑니까, 다들!”

미래는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을 사용하여 나를 꾸짖는다. 잠자코 태클을 거는 나. 옆에서 민서가 웃으며 말한다. 나는 벌컥 화를 내듯 큰 소리로 말했다. 다 내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 같으니까.

“……고마워, 웅도야.”

“응? 아아. 뭐. 사과는 네가 한 건데.”

“……다들, 정말정말 고마워. 미안해.”

“이제 그만 미안하다구 해. 좀, 너무 그러니까.”

민서 옆에 무릎 꿇고 있는 유진이. 정면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울음을 그치고 바른 목소리로 처음으로 고맙다고 하는 유진이. 계속 미안하다고 하는 게 너무 보기 그래서 잠자코 말했다. 유진이는 입을 다문다.

“아~ 뭐, 굉장히 어색하네요. 뭐, 원한은 없어요. 저는 그냥, 막장드라마 지켜보는 것 같아서 분통 터져서 그런 거니까.”

“왜 존댓말이냐. 다른 애들한텐 존댓말 안 쓰잖아.”

“그럼 잔뜩 험담했는데 어떻게 그러냐! 내가 그런 걸 어떡하냐! 컨셉충인데!”

“야 존댓말 쓰던 거 안 쓰니까 겁내 이상하잖아! 써!”

“싫다! 내 맘이다!”

‘드르륵!’

“……반까지 다 들리는데. 몇 대 더 맞아야 정신 차리지?”

“……죄송합니다.”

멋쩍은 지 미래는 유진이를 보며 존댓말을 쓴다. 정작 유진이는 별로 미래를 신경 쓰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이상한 기분에 미래에게 묻는다. 미래의 존댓말, 나한테만 하고 다른 애들한텐 자연스럽게 반말인데. 미래는 짜증스럽게 갑자기 반말을 쓴다. 투닥투닥 다투다가 다시금 문이 열리고, 싸늘한 표정의 선생님. 나는 더욱 면목없는 죄인이 되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뭐, 어떻게든 멋대로 해결된 것 같다. 유진이에 관한 사건은. 아아. 묘하게 힘드네. 중간에서 끼어서 일처리 하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니.


작가의말

우학변 if 시나리오, 소소한 댓글투표를 마감하고 결과가 나왔습니다.


희세 8표

성빈 5표

미래 3표

사감 4표


......중복투표지만 희세가 압도적이긴 하네요. 그래서, 희세 “먼저”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직 if시나리오 분기점이나 큰 틀은 잡지 않았지만, 조만간 구상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계속 말하지만 if 시나리오는 문피아에 올라오지 않고 저희 카페에 따로 올라옵니다!

http://cafe.naver.com/teammagn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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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10화 - 4 +8 15.10.03 826 24 18쪽
183 10화 - 3 +16 15.10.01 1,006 18 20쪽
182 10화 - 2 +8 15.09.29 1,050 16 21쪽
181 10화. 약속했어, 기다려 줘. +12 15.09.24 1,022 18 16쪽
180 09화 - 4 +12 15.09.22 951 25 17쪽
» 09화 - 3 +8 15.09.21 1,033 26 21쪽
178 09화 - 2 +9 15.09.20 891 21 17쪽
177 09화. 힘들지만 안녕, 하고 말하기 +8 15.09.19 1,232 16 19쪽
176 08화 - 4 +12 15.09.16 937 18 19쪽
175 08화 - 3 +10 15.09.15 1,063 19 21쪽
174 08화 - 2 +12 15.09.13 1,003 20 19쪽
173 08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16 15.09.11 959 20 19쪽
172 07화 - 3 +10 15.09.09 1,096 17 20쪽
171 07화 - 2 +16 15.09.08 935 17 19쪽
170 07화. 말했을 텐데. +10 15.09.06 1,035 20 18쪽
169 06화 - 4 +6 15.09.04 997 18 23쪽
168 06화 - 3 +10 15.09.01 1,046 20 21쪽
167 06화 - 2 +8 15.08.30 1,004 19 19쪽
166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19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2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4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2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3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7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20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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