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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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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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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5.09.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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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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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9쪽

07화 - 2

DUMMY

“…….”

‘왁자지껄.’

모두가 즐거이 떠드는 가운데, 저는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아이들. 그 ‘평소와 다르지 않다’ 라는 점이 더욱 저를 소름 돋게 만듭니다. 현지와 웃으며 수다 떨고 있는 나라. 같이 휴대폰을 보며 킬킬대고 웃는 수영이와 세희. 다른 애와 얘기하고 있는 성미. ‘저’를 빼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즐거운 아이들을 보고 있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입니다.

서글픈 눈으로 주위 애들을 보다 얼른, 눈을 내렸습니다. 저는 정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은 이런 때 쓰이는 것일까요.

────저, 따돌림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아.”

“……어.”

모두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가운데, 지선이만은 저에게 말을 걸어줍니다. 물론 교실에서 얘기하는 것은 눈치가 보이기에, 교사 뒤편 으슥한 곳입니다. 저번에는 제가 웅도랑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제가 그 따돌림을 받는 입장입니다.

지선이는 저에게, 다른 애들에게 퍼진 소문을 얘기해줍니다. 역시, 어디서부터 시작된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은 상당히 악의적입니다. 제가, 웅도를 좋아해서 이 사이를 틈타 웅도에게 꼬리를 쳤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소문. 어이없고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가 나지만 누가 주동자인지 알 수조차 없는 것이 소문이기에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는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성빈이 너라면 아니겠지만.”

“으응, 괜찮아. 괜히 지선이 너까지 휘말리는 건 싫으니까. 고마워. 알려줘서.”

“……울지 마.”

“……안 울어. 그냥, 억울해서 그래.”

지선이는 묵묵한 말투로 저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지선이라도 제 말을 믿어 줘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성미나 다른 애들이 저를 무시하고 있는 것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어이없는 소문에 휘말린 건 예전의 저도 같으니까요.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것은 꼭 저의 감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웅도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이런 느낌이었구나. 이런 때에 한 마디, 얘기해주는 친구가 이렇게나 고맙고 생명의 은인 같은데 나는 그러지 못했구나.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데 섞여서 더욱 마음이 괴롭습니다.

잠시 눈물을 삼키려 진정하는 사이 그런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지선이가 저에게 다가와 저를 꼬옥 안아줍니다. 더욱 마음이 달아올라 소리 죽여 지선이의 품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따돌림이란 건 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무슨 역병이라도 걸렸나요. 소중한 친구들에게 스스로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 그런 얘기를 웅도에게 두 번이나 하게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었어도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주위 시선따위 의식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제가 당한 일부 감정은 웅도에 대한 생각으로 더욱 증폭돼 한동안 진정되질 않습니다.


“음? 왜 그래? 무슨 할 말이라도?”

“……응, 할 말 있어.”

“알았어. 잠깐만 애들아.”

“응.”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하고 있는 유진이와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가만히 유진이를 노려봅니다. 유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에게 먼저 질문합니다. 저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유진이는 주위 애들을 물리치며 말합니다. 화장실엔 저와 유진이만 남았습니다.

“……네가 그랬어?”

“응? 뭘 내가 그래?”

“소문…… 네가 낸 거냐고.”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무슨 소문?”

머뭇거리다 간신히 말을 꺼냈습니다. 철저하게 제 개인적인 감정으로 시작된 의심이니까요. 유진이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습니다. ‘소문’이라는 제 말에 유진이는 피식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 웃음은, 저번에 웅도와 얘기하고 모퉁이에서 만났을 때의 그 웃음과 비슷합니다. 아니, 명백하게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비웃음.’ 놀리는 듯 빙글빙글 웃는 유진이를 보니 저도 모르게 약간 화가 치솟습니다. 꾹꾹 감정을 눌러 담습니다.

“그 때, 웅도랑 얘기한 거 본 사람, 너밖에 없었어. 네가 얘기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소문이 나?”

“흐응~ 글쎄. 나는 말 안 했는데. 모르겠는데~?”

“……유진이 너.”

“성빈이도 참, 너무하네~? 단순히 의심하는 거야?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너무한다, 그런 게 진짜 헛소문 내는 지름길 아닐까? 확실하지도 않은 일 가지구 부풀려서.”

“…….”

유진이는 능구렁이처럼 제 질문을 빠져나갑니다. 그러면서 도리어 저를 조롱하듯 말합니다. 착하게 봤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잔뜩 비웃는 말투에 저는 더욱 기가 찹니다. 분명히 아니라고 하지만 명백하게 분위기 상으로 ‘내가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유진이의 태도. 그러면서 도리어 저에게 ‘헛소문 내는 거 아니야?’ 같은 얘기를 하고 있으니 더욱 할 말이 없어집니다.

“소문이란 건 그래. 소문의 주인공이 잘못한 게 없다 해도, 퍼뜨리는 당사자들은 아무 상관없어. 그게 진실인 양 떠들고 다니지. 당사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던 말던, 그저 까고 씹고 뜯는 거지. 그러다 나중에 실체가 밝혀졌을 때. 진실이 드러났을 때. 책임을 질 사람은 아무도 없어. 전부 공범이니까. 그게 소문이 무서운 점이지. 어이없는 점이기도 하고.”

“…….”

유진이는 갑자기 엄숙한 표정이 되어 줄줄 말을 늘어놓습니다. 목소리도 무미건조한 설명하는 어투. 저는 입술을 깨물며 그 말을 듣습니다. 제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유진이는 피식 비웃는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습니다.

“더 어이없는 건? 진실은 본인과 당사자 모두 알고 있는데, 그 거짓을 이기기 위해선 거짓 한 문장보다 수십 배 이상의 증거와 증언을 대야해. 설령 그렇다고 해도, 책임의 당사자가 없는 게 소문의 실체기 때문에.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안 좋은 소문을 받는 사람뿐이지. 그래서 연예인들이 그렇게 스캔들에 민감한 거고, 공인들이 평판에 치중하는 이유겠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흐흐흥. 느긋하게 들어줄래? 이미 탈락한 주제에.”

“……!”

유진이는 뭐가 재미있는지 실실 웃으며 제 주위를 돌아다니며 말합니다. 저는 이제 적대감이 실린 눈빛으로 유진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소문’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굳이 제 앞에서 얘기한다는 건, 유진이가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냈다는 것을 스스로 증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심증뿐이지만. 제 말에 유진이는 순식간에 낮고 무서운 목소리로 말합니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눈이 크게 떠집니다.

“소문이 한 번 잘못 나면 그걸 만회하긴 정말 힘들어. 바람피운 것과 소문의 상관관계. 없지, 확실히. 하지만 소문을 퍼뜨리는 애들은 그런 걸 알기나 할까? 그저 부화뇌동 할 뿐일 텐데.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똑같이 당하고. 아─ 정의가 땅으로 떨어졌네. 원래 그렇잖아, 이 사회라는 게. 정신 붙들고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거지. 뻔뻔히 자기는 소문 퍼뜨리지 않았다고, 묵인하는 소시민 같은 부류 애들도. 결국엔 자기가 타겟이 안 되었다고 안심하겠지. 암묵적으론 동의한 것인데.”

“……니가, 니가 그랬구나…… 웅도에 대한 것도, 나에 대한 것도……!”

“으응, 울면 어떡해. 우리 고등학교 2학년인데. 이제 울 나이는 지났지? 분하다구 무조건 울면 그저 나약한 여자애일 뿐이잖아?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확증도 없이 그저 의심에 의심. 그거, 소문 퍼뜨리는 애들하고 다를 바가 없는 거다? 감성팔이로는 이길 수 없는 게 있는 노릇이니까.”

“너…… 너……!”

유진이의 말에 저는 몸을 부들부들 떨립니다. 유진이의 저 말은 제 소문 뿐만 아니라 웅도에 관한 소문까지도 유진이가 냈다는 말입니다. 어째서 저에게 그 사실을 밝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분함과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리며 몸이 떨립니다. 더듬거리며 말하니 유진이는 방긋 착한 웃음을 보이며 말합니다. 그게 더 소름끼칩니다. 차라리 방금 전과 같은 비웃음이면 나을 텐데, 평소 애들에게 보이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무서운 목소리로 저런 말을 하는 유진이를 보고 있자니 엄청나게 소름 돋습니다.

“너한테는 처음 말하는 것 같지만. 경고할게. 웅도 주위에서 얼씬대지 마. 너 같은 게 얼쩡대면…… 방해되거든. 엄청 역겹고.”

“…….”

“이러면 상대도 안 되잖아~ 겁쟁이에, 울보에, 부들부들. 무서워, 도와줘 웅도야 엉엉. 후후훗. 귀엽네. 남자애들은 좋아하겠어.”

“……!”

이제는 저에게 완연하게 조롱하는 말을 하며 가식마저 벗어 던지는 유진이. 대놓고 저를 저격하는 말에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무서운 기분마저 듭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애와 대치하는 건 평생에 처음이기에 말도 안 나오고 어떻게 대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금 눈물이 양 볼로 또르르 흐르는 게 느껴집니다.

“너……!”

“?”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아……! 네가 아무리 그런 헛소문 퍼뜨려도……! 웅도에 대해 헐뜯고, 나에 대해 아무리 안 좋은 얘기 하고 다녀도……! 절대, 절대 포기 안하니까! 웅도에 대한 것도, 이 헛소문도, 너 같은 미친X도! 절대!”

“하핳. 하하하. 성빈이 너…… 되게 재미있는 애구나. 그래, 어느 정도는 그런 게 있어야 재미있지. 마음대로 해 봐. 이미 끝난 주제에. 흐흫♪”

“……흑! 흐읏…… 히끅!”

아무렇게나, 나오는대로 말합니다. 눈물이 뚝뚝 흐릅니다. 억울합니다. 억울하고 억울해서, 잔뜩 화가 나서, 이 감정들을 어떻게 추스릴 수 없어 잔뜩 울며 격정적으로 말합니다. 유진이는 그런 저를 무덤덤하게 쳐다보다 피식 웃으며 대답합니다.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뒤돌아 화장실을 나갑니다. 혼자 남은 저. 애써 울음을 삼킵니다. 혹여라도 다른 애들이 들어올까 얼른 화장실 칸으로 들어갑니다. 한참을 울음을 참느라 입을 막고 숨을 죽였습니다.




“읏.”

가만히 혼자 빵을 먹다 목이 메어 소리를 냈다. 주위 애들이 힐끔 나를 쳐다보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니 얼른 눈을 피한다. 흥. 저딴 거, 아무렇지도 않다. 제까짓 것들이 따돌린다고 따돌린다는 거겠지만, 나는 전혀, 어떤 피해도 입지 않는다. 찌질이 정웅도 같은 줄 아나. 이 정도에 정신이 타격받을 정도면 큰 인물 되기는 글렀지. 호쾌하게 다시금 빵을 뜯어 먹는다.

아이들은 나를 따돌리고 있다. 저들끼리 수군대고, 나를 피하고, 내가 하는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보다 세찬 내 눈빛을 받으면 얼른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 확실하다. 뭐, 그런 일에 나 나희세가 흔들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애초에 소문 따위에 저들끼리 어울려 깔깔대는 녀석들, 신경쓸 필요가 없다. 소문의 주체는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고.

내가 짜증나는 건 이딴 치졸한 따돌림이 아니라, 바로 정웅도 때문이다. 찌질한 그 녀석의 성격 탓에 굉장히 완만하게 돌려 말했지만, 결국 그 때 그 말은…… 차인 거잖아, 나.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정웅도가 뭔데 나를 차?! 지금 누구 때문에 이딴 말도 안 되는 따돌림 받고 있는데!

“…….”

“……안녕.”

“…….”

빵을 먹고 물을 마시러 가는 길. 복도에서 문득 웅도와 마주쳤다. 방금 전까진 속으로 잔뜩 욕한 주제에, 막상 보니 말문이 콱 막힌다. 얼굴도 확 달아오르고,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다. 녀석도 어색한지 힐끔 나를 쳐다보다 겨우 인사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휙 지나쳤다. 마음 같아선 잔뜩 뭐라 하고 싶은데. 이 녀석 앞에만 서면 나도 잔뜩 멍청이가 돼 버리는 기분이다.

“앗! 당신은! 왕따로 유명한 나희세 씨 아니에요?! 쉿! 그녀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선 안 돼. 절대 그녀를 자극해선 안 되고 함부로 대해서도 안 돼. 아아아아~ 머리카락은~~! 아아, 아프다구!”

“……짜증나게 할래?”

“왜 나한테 화풀이를 해요! 아우…… 지도 여자라 머리끄댕이 잡아당기면 아픈 거 알면서! 무슨 아줌마에요?!”

가뜩이나 정웅도 때문에 짜증나는 마음, 따돌림 때문에 우울한 마음을 녀석의 뒤를 이어 지나가는 미래가 뒤집어 놓는다.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미래의 머리를 냅다 잡아당긴다. 누구에게든 이런 식으로 폭력적으로 대하진 않지만, 미래는 그래도 싸다. 그런 행동을 하니까. 미래는 반말과 존댓말의 중간 정도의 이상한 말투로 대답한다. ……웅도한테 오빠라고 하고 존댓말 하는 것부터 이상했어, 이 녀석은.

“……너는 소문 들었어?”

“그럼요! 설명충인데 그 정도도 모르면 어떡해요! 왜요, 설명해줘요?!”

“……응.”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미래. ‘설명해줘요?’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써 무시하고 있지만 어쨌든 소문에 대한 건 궁금하긴 하니까. 연예인들이 굳이 자기 악플 보고 상처받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래요.”

“……그런 소문은 누구한테 듣는 거야.”

“그냥, 주위 애들이 하는 말이 그래서. 나 친구 없잖아? 그냥 안 듣는 척 하면서 듣는 거지요. 다들 그래, 그런 식으로 얘기해.”

“……하아. 알았어. 고마워.”

“뭐야, 제멋대로. 흥이다 흥!”

미래에게 대강 들은 소문은 참, 어이가 없는 내용. 바람…… 그래, 정웅도랑 내가 바람피웠다는 얘기까진 어떻게 용납하겠는데. 나랑 웅도가 짜고 리유 정신을 붕괴시켜버리고, 대놓고 이별통보하고 지금은 자숙하고 있는 중이라니, 무슨 드라마 대본도 아니고. 무슨 연예인이야? 자숙하게? 남들 시선 의식해서?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거기다 추가된 성빈이에 대한 헛소문까지. 임성빈, 무슨 바보같은 짓 해서 굴비 엮이듯 엮여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건데. 보나마나 또 수작질인 게 뻔하지만.

우선은 미래를 보냈다. 미래는 어울리지 않게 ‘흥흥!’ 하며 귀여운 척 자리를 뜬다. 잠자코 옆 반으로 걸어간다.


“……나와.”

“응?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 하고.”

“나오라면 나와.”

“아아~ 싸우겠다. 무섭게. 무슨 할 말 있어?”

“…….”

교실에서 애들과 웃으며 얘기하고 있는 채유진. 대뜸 녀석의 팔목을 붙들고 말했다. 유진이는 주위 애들을 쳐다보며 짐짓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역겹다. 묵묵히 말하니 채유진은 대놓고 주위 애들에게 들으라는 듯 말하며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난다. 복도로 나왔다.

“어머, 왜 무섭게 그렇게 노려봐. 할 말 있으면 해?”

“……너 진짜 미X년 같다.”

“그 고상하신 나희세 입에서 그런 욕도 나오시네? 무서워라~ 실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히히힛.”

“…….”

굳이 채유진을 배려해주는 건 아니지만, 나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 위해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갔다. 채유진은 이제 내 앞에서는 대놓고 조롱하는 듯 본색을 드러내 말한다. 이런 녀석이 정작 애들 앞에선 착한 여자 코스프레 하며 가면을 쓰고 있다니…… 소름 돋는다.

“소문…… 네가 낸 거지? 추가로 성빈이에 대한 것도.”

“눈치는 빠르네. 아, 하긴.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의심 못 하면 바보 중에 바보겠지.”

“……목적이 뭐야.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데.”

“어머, 이런 와중에 추리? 명탐정 나셨어? 후훗♪”

내 질문에 인정하는 듯 말하는 채유진. 한층 재수없어진 비웃음과 함께. 보는 것만으로 역겹지만, 어쨌든 말을 더 잇는다. 녀석은 비꼬는 말투로 더욱 내 속을 긁으놓으며 웃는다. ……이렇게까지 재수 없는 녀석은 내 인생에서 얼마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꾹꾹 참으며 말을 이었다.

“나랑 성빈이, 정웅도 따돌림 받게 해서 네가 얻는 이득이 뭔데. 너…… 웅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럼 웅도한테 꼬리쳐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되면 웅도가, 누구랑 더 동질감을 느낄 것 같아? 너한테 말도 안 걸어주는, 다른 애들하고 하등 다를 게 없는 너? 아니면, 같이 따돌림 당하는 나하고 성빈이?”

“푸흡. 푸후후후후. 후후후. 하하하하하하! 아핳, 아하하하!”

“…….”

팔짱을 끼고 낮은 톤으로 따지듯이 말했다. 채유진은 묵묵히 내 말을 듣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그러더니 갑자기 피식, 웃는다. 웃음이 터져선 배를 잡고 웃는다. 박장대소를 하는 녀석.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채유진이 잔뜩 웃는 것을 가만히 쳐다봤다. 한참을 웃던 녀석은 겨우 진정되어, 그래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상태로 나를 보며 말한다.

“나희세, 너 왜 이렇게 멍청해? 머리 안 돌아가? 그래놓고 어떻게 전교 1등이야? 진짜 신기하네?”

“뭐……라고?”

“아직도 판 돌아가는 거 모르겠어? 그렇게 둔해서 어떻게 웅도한테 꼬리쳤어?”

“…….”

비꼬다 못해 이제는 폭언 수준의 채유진의 말.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 입을 다물었다. 채유진은 잔뜩 웃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엄숙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얼음 바람이 지나가는 듯 차갑게 스치는 말을 내 귀에다 대고 한다.

“어쨌든 안 좋아진 이미지는 안 좋아진 이미지야. 잔뜩 따돌림 당하고 피폐해진 상태에서, 나희세 너든, 임성빈이든 웅도한테 다가가면 그림이 좋아 보일까? 더 안 좋아보이지. 결국엔 따돌림 당하는 저들끼리 뭉쳐 노는구나. 노답은 노답끼리 모이는구나.”

“…….”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다가갈 거야. 헛소문에 찌들대로 찌들어서 피폐해진 웅도에게, 그런 위험한 시기에 먼저 말 걸어주는 여자애가 누구인지. 힘들고 괴로운 때에 옆에 있어줄 여자애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

“……너…… 진짜 미친년이구나.”

“흐흥. 그러거나 말거나, 가지면 끝이지. 도덕성? 그럼 누구는? 누가 먼저 바람피웠는데? 그게 사실 아니야? 너는 바람피우면서 나는 못 해? 아니, 오히려 나는 명분에도 앞서는데? 바람피우고 꼬리쳐서 같이 왕따 된 여자애, 도와주겠다고 도매금으로 같이 왕따 당하는 여자애, 그리고 그런 불쌍한 남자애한테 먼저 구원의 손길을 보내는 애. 누가 적절할지…… 그림 안 그려져?”

“…….”

이제는 광기마저 느껴지는 채유진의 눈빛. 흥분한 채로 나에게 말하는 채유진의 눈빛은 미치광이처럼 빛난다. 더욱 소름돋는다. 단순하게 소문을 낸 게 아니라 전부 계획된 것이었다니. 그것도, 철저하게 채유진은 선역이고 나와 성빈이, 심지어 좋아한다고 하는 웅도마저 쓰레기로 만드는, 그런 계획.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 떨려서 어떻게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말 했을 텐데. 정웅도, 내 남자라고. 한 번 더 건드려 봐. 어떻게 될지. 두 번 경고는 안 해.”

“…….”

살벌하게 경고의 말을 날리는 채유진.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돌아 간다. 멍청하게 그런 채유진을 쳐다본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안 좋다. 채유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떨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작가의말

......방학동안 엄마 따라 아침드라마를 보는 게 아니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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