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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73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09.22 22:47
조회
950
추천
25
글자
17쪽

09화 - 4

DUMMY

“안녕!”

“안녕, 웅도야.”

상쾌하고 밝은 아침. 나는 기쁜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어 모두에게 인사한다. 딱히 목표를 정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에게의 인사. 애들은 방긋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준다. 아아, 그래. 인기만점 원래의 정웅도로 돌아왔구나.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다.

“기분 좋아 보이네.”

“응, 당연하지! 애들이 인사를 받아줬는걸! 하하.”

“헤헷.”

아직 미래는 안 왔는지 자리에 보이지 않는다. 옆자리 민서가 방긋 웃으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기운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사실 원래 이 학교 처음 왔을 때엔 ‘조용한 외교’를 생각하고 존재감 없이 지내려 했는데. 하, 이놈의 인기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으니. ……농담이고, 존재감이 없으려 해도 어쩔 수 없잖아. 여고에서 유일하게 남자 한 명 있는데. 900개의 흰 돌 가운데 흑돌 하나 덜렁 놓여 있으면 존재감이 드러날 수밖에 없잖아? 딱히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희소성’이지 희소성.

“다행이네, 다 잘 끝나서.”

“다 잘 끝난 건 아니지…… 하하…….”

민서의 말에 나는 한순간에 업된 기분에서 축 처쳐서 대답했다. 따돌림에서 벗어나고, 다른 애들과 원래대로 원만한 사이가 되었다. 다 좋다. 하지만 벌어진 상처까지 원래대로 흉터 없이 아문 것은 아니다. 도리어 상처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지.

희세는 더 이상, 아침에 날 깨우러 오지 않는다.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그게 맞는 거겠지만. 간접적으로 말했지만 그 때, 내가 한 말은 ‘거절’ 이었으니까. 막상 늘 그러던 희세의 손길이 없으니 상당히 어색하고 그 공허함이 크다.

리유에 대한 건, 아예 건드리지도 못 한다. 그나마 희세는, 마주보고 얘기라도 할 수 있고, 유진이에 대한 사건을 해결하며 어느 정도 관계를 회복했지만─나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지만─ 리유는. 아예 전화도 전혀 못 걸겠다. 차마 리유의 목소리를 들을 면목도 염치도 난 없다.

순식간에 시무룩해지는 나를 보고 민서는 조금 당황해서 ‘어어…… 나 뭐 잘못 말했어? 미, 미안…….’ 하고 말한다.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어쨌든 해결해 봐야지. 상처를 알고도 그대로 덮어둘 수는 없으니까.

“여! 히시시부리!”

“이젠 국일문혼용체도 아니고 아예 생일본어를 쓰는 구나.”

“에엣! 캉코쿠고↘오↗? 손나모, 미라이쨩와 시·라·나·이·요☆ 뀽뀽!”

“하하하. 드디어 대놓고 맛이 갔구나, 미래 너.”

손날을 허공에 들고 근엄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미래. 가방도 어째 삐딱하게 들고 있다. 가볍게 태클을 거니 미래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발악하듯 말한다. 허허 웃으며 미래를 외면하는 나. 이런 또라이 오타쿠와는 어울리고 싶지 않아. 다시 따돌림 당할지도 모르고. ……너무 심한가.

“이제 이렇게 드립을 쳐도 따돌림 당하지 않는 세상이잖아요. 우린 그랬어도, 우리 아이들은 더는.”

“‘우리 아이’라니, 끔찍한 소리를 잘도. 그보다 무슨 세상인데 그건.”

“흐흥☆ 혹시 몰라요. 이 안에, 있·을·지·도♡”

“뭔 소리야!!”

“어, 엇…… 우, 웅도랑 미래…… 그, 그런 거야??”

“뭐가 그래! 무슨 드립에 무슨 상상인데!!”

미래는 마치 전쟁이 끝나고 숙연한 미망인 같은 느낌으로 잔잔하게 말한다. ……아무리 봐도 여고생이 칠만한 드립은 아닌 것 같은데. 순진한 민서는 미래의 얼토당토 않은 드립을 믿는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 큰 소리를 치게 된다. 아침부터 참, 미래 덕에 활기차네.

“그…… 유진이랑, 점심 같이 먹고 싶은데.”

“으헥! 설마, 유진이마저 임신시키려고?!”

“뭔 개소리야!!”

“그, 그런 거야……?”

“아니라고!”

유진이와 점심을 같이 먹겠다는 것. 나랑 유진이 둘이 먹겠다는 게 아니라, 애들하고 같이 먹고 싶어서. 미래의 허락까지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들의 동의는 받아야 하니 적당히 화두를 던져보는 것이다. 모든 대화는 드립으로 귀결된다. ─미래. 이런 건가. 아침부터 찰진 임신 드립으로 나를 당황케 만드는 미래. 곧이 곧대로 믿는 순진한 민서 덕분에 더욱 당황스럽다.

“무슨 얘기해? 내 이름 들렸는데.”

“어, 웅도가 너 임신 시키는 것에 대한 토의를 하고 있었어.”

“할 것 같냐, 그딴 토론! 아, 유진아, 미래가 좀 이런 애라서…….”

유진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관심이 있는 표정으로 이쪽으로 와 묻는다. 천연덕스럽게 얼토당토않은 말을 유진이에게 하는 미래. 드립을 치는 건 미래인데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얼른 유진이를 보며 사정을 설명하는데 유진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다.

“나는 웅도의 아이라면 임신해도 좋을 것 같은데……♡”

“무, 무, 뭐??!”

“아핳! 꽤 하네, 채유진! 드립이 살아 있어! 오빠 당황한 거 봐!”

유진이의 전혀 의외의 말에 나는 극도로 당황했다. 묘하게 요염한 미소를 띠고 말하는 유진이. 순식간에, 유진이와의 장래가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사고치고 ─ 임신 ─ 자퇴 후 취직 ─ 어쩔 수 없이 결혼 ─ 자영업 ─ X망 ─ 치킨집 ─ 행복 ─ 자식 장성 ─ 손주 봄 ─ 까지의 미래가 물 흐르듯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럴 리가 없잖아! 괜히 엄청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미래는 상당히 즐거워하며 유진이에게 말한다. 싱긋 웃는 유진이. 민서는 어버버 상당히 부끄러워하며 나와 유진이를 번갈아 본다.

“그래서,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어어, 어…… 너 우리 밥 패밀리에 합류시키고 싶어서.”

“엣, 같이……? 먹어도 되려나, 내가?”

“그러니까 애들한테 말해보려고 한 거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 주제를 다시 돌리는 유진이. 역시 장난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큰 충격이었지만. 잠자코 말하니 유진이는 조금 껄끄러운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말한다. 어제 잔뜩 울면서 사과했지만, 희세까지 사과를 받아줬지만 역시, 아직은 껄끄러운 모양이다. 문제가 있다면 역시, 희세를 설득하는 게 크겠지. 예전에도 희세가 대놓고 싫어하는 티 팍팍 내서 밥 패밀리 합류는 결렬되었으니까.

“어때, 너희들은? 미래, 민서?”

“나, 나는 괜찮아. 밥 같이 먹으면 좋지.”

“저도 찬성해요!”

“의외네. 네 쪽에서 반대할 줄 알았는데.”

“그치만~ 이 정도로 드립을 잘 받아주는 인재를 마다할 리가 있나요. 아까 괜찮았어, 임신드립?? 수준급인데!”

“고마워.”

“……하하하하. 뭔가 불안한데.”

의외인 것은 미래다. 민서야 착하고 무던하니 승인할 것을 예상했지만. 미래는 완강히 거부한다거나, 아직도 불신의 시선을 거두지 않거나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밝게 웃는 모습으로 허락한다. 대뜸 태클을 거니 싱긋 웃으며 나를 보고 말하는 미래. 역시 좋은 의도는 아니구나.


“……정말 괜찮을까.”

“괜찮다니까요! 곧 알아서 찾아올 겁니다!”

“아니, 오기야 오겠지. 그리고 화내겠지. 나한테.”

“저한테 화내는 건 아니니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

미래와 민서의 허락을 받고, 바로 성빈이와 희세에게 톡으로 알려주려 했는데 미래가 뜯어 말렸다. ‘어차피 점심 때 만나서 얘기하고 바로 밥 같이 먹으면 되니까’ 라는 논리인데. 지금 와서 보이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면 그냥 나 엿 먹이려고 그런 것 같다. 미래가 그렇지. 알면서도 넘어가는 게 나의 흔한 패턴이다. 뭐, 저번만큼 느낌이 나쁘지는 않다. 어쨌든 사과 했으니까.

“뭐야, 왜 아무 말도 없어. 밥 안 먹어?”

“아, 그게. 유진이하고 같이─”

“나, 너희하고 같이 밥 먹어도 될까!”

“……하아?”

호기롭게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희세. 아무리 강철멘탈의 희세라지만 그래도 따돌림 당할 때엔 조금 기가 안 살던 모습인데. 지금은 완연히 평소의 희세같은 모양으로 돌아왔다. 아니, 도리어 더 당당해진 기운인데. 최대한 기분을 자극하지 않고 말을 꺼내려 하는데 대뜸 내 말을 끊고 유진이가 냉큼 말해버린다. 잔뜩 눈썹을 치켜 올리고 유진이를 쳐다보는 희세.

“너, 내가 무슨 대답 할 것 같아?”

“싫어? 꺼져?”

“그런데 그렇게 당당하게 물어봐?”

“그치만, 너는 꼭 나랑 같이 먹어야 할 이유가 있는데?”

“이유……?”

희세는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유진이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유진이는 웃는 얼굴로 희세를 보며 말을 잇는다. 그녀의 말에 의아해진 표정의 유진이. 성빈이도 민서도 궁금한 얼굴로 유진이를 쳐다본다.

“희세 너는 나 감시해야 하잖아? 점심시간에, 내가 다른 애들한테 또 수작질 부리면 어떡하려고? 그거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나랑 같이 점심 먹어야하지 않아?”

“……너 더 친구 없잖아. 여전히 따돌림 당하고 있지 않아?”

“…….”

“오오! 역시 나희세, 생각보다 강한데!”

샐쭉 웃으며 여유롭게 말하는 유진이. 그녀의 눈에서 다시금, 예전 계략을 펼칠 때의 총명함과 사악함이 나오는 듯하다. 짐짓 당황하는 희세. 그러더니 넌지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순식간에 한 방 얻어맞은 유진이. 잠시동안 혼란 상태가 되어 대답하지 못한다. 지켜보던 미래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운동경기 중계하듯 상황을 중계한다. 나도 흥미진진해서 유진이와 희세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내 흉계를 막기 위해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아? 내가 무슨 짓 벌일 줄 알고?”

“별로 안 무서운데.”

“아아아! 어쨌든! 너는 나를 감시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잖아!”

“아하하, 채유진 안 되니까 이제 땡깡부린다! 저게 뭐야! 저런 애가 최종보스였어?! 아군이 된 적군 하향보정이다!”

“뭐라는 거야.”

유진이의 말에 희세는 심드렁하게 한 마디 더 해 안 그래도 조각난 유진이의 멘탈을 손수 가루로 만들어준다. 유진이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 꼭 리유가 억지로 생떼 부리는 것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희세를 노려보며 말한다. 심각한 장면은 아니고, 되게 귀여워 보이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희세가 피식 웃을까. 미래는 여전히 알아 듣지 못하는 드립을 친다.

“알았어, 어쨌든 시간 늦었으니까 밥 먹으러 가자. 오늘은 밖에서 먹기로 했지?”

“응, 그렇지.”

“얼른 가자!”

“잠깐만! 너, 확실히 인정 해야지?! 날 감시해야 할 거 아냐!”

“어어, 그래야지. 그럴 필요성이 있다면.”

“아씨! 진짜 무섭게 해 줘?! 나 채유진이야!”

“하하핫.”

희세는 귀찮다는 듯 유진이를 무시하고 나에게 말한다. 졸지에 병풍이 된 유진이. 미래 말마따나 ‘최종보스’라고 불릴만한 위엄이 있던 위치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몰락이다. 잔뜩 움찔거리며 반발하는 유진이. 희세는 여전히 대충 알았다고 말만 하고 대답한다. 최후의 발악을 하며 소리 지르는 유진이. 그래도 희세는 별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 보고 있던 성빈이가 하하 웃는다. 민서도 생긋 웃는 눈치. 모두 일어나 학교 밖으로 나간다.


“잘 들어! 다시 한 번 나를 무시하면! 어떻게 될지 알아?!”

“응. 다시 우리를 따돌림 시킬 계략을 짜서 한심한 정웅도를 갖겠다고 아등바등하겠지. 우리 말고는 밥 먹을 사람도 없는, 지금의 채유진이.”

“……아니거든!”

“에이, 너무 놀리잖아 희세야.”

“사실인데?”

식당에 도착해서도, 유진이는 잔뜩 자신의 포악성과 사악함을 말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희세에겐 먹히지 않는 카드. 이미 희세의 인식 속에 유진이는 이빨 빠진 호랑이다. 도리어 잔뜩 우기는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보다 못한 성빈이가 옆에서 말릴 정도.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같이 밥 패밀리 하면 좋잖아.”

“별로. 지금도 사람 많아서 짜증나는데.”

“헤에─ 하긴, 미래는 오빠랑 둘이서만 먹고 싶겠지! 사건의 시발점이 희세였으니까! 둘이 바람 피우고!”

“……그거는, 그거는.”

“아핳! 그렇지. 둘이 바람피웠잖아! 소문낼꺼야!”

“어디 내보시던가……! 승냥이도 아니고, 남 아픈 구석 나오자마자 달려들겠다, 이거야?!”

“아야야야야! 아아! 아파아파!”

적당히 정리하는 말을 하자 희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한다. 이런 좋은 기회를 미래는 놓치지 않고 물어뜯는다. 그, 그건…… 나와 희세 둘의 아킬레스건이다. 희세가 입을 다물자 유진이는 좋다고 희세 놀리기에 동참한다. 아까 섹드립도 그렇고, 유진이는 미래와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다만 희세는 나처럼 호락호락한 애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 희세는 잔뜩 화난 목소리로 말하며 유진이의 양 볼을 세게 꼬집어 늘리며 말한다. 괴로워서 탁탁 희세의 어깨를 치며 발버둥치는 유진이. ……초등학생이냐, 얘네.

“아아, 아파! 미친 엄청 아파!”

“아프라고 한 거지. 감시하라며, 네가.”

“난 폭력 같은 거 한 번도 안 썼는데!”

“아, 육체적 폭력은 안 쓰고 정신적 폭력은 괜찮다? 참 고상한 악역이시네요, 채유진 씨?”

“……폭력은, 안 썼어?”

“……미안해, 미안해 민서야……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아핳, 하하, 노, 농담이야.”

유진이는 볼이 빨개져서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한다. 희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대답한다. 벌컥 짜증내며 말하는 유진이에게, 희세는 특유의 당당하게 비꼬는 말투로 말한다. 유진이가 채 대답하기 전에, 민서가 문득 음울하고 불쌍한 눈으로 유진이를 보며 찬찬히 묻는다. 깊은 반성의 눈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참회하는 유진이. 다시금 울적해졌다. 민서는 고개를 내저으며 피식 웃는다. 이제는 민서까지 유진이 놀려먹는구나. 만인의 북이 된 느낌이다, 유진이.


“나, 웅도한테 차였어.”

“에?!”

“엣!”

“진짜?!”

밥 먹고 돌아오는 길. 여자애들끼리 앞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나는 조용한 민서와 함께 걷고 있는데. 문득 유진이가 제자리에 서서 선언하듯 말한다. 흠칫 놀라며 높은 톤으로 대단한 반응을 보여주는 희세, 성빈이, 민서. 의외로 미래는 담담한 표정. 아니, 그걸 왜 굳이 말하는 건데?

“웅도한테, 희세랑 성빈이랑 민서한테 사과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자기한테 제대로 고백하라고 하더라고. 힘내서 고백하니까, 바로 차 버리데. 나쁜 놈이지, 그치?”

“아니, 그거는 그…… 어떤 하나의 상징화된 절차로써─ 거시기 그.”

“……차였구나.”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위로해주면 더 슬프거든!? 지금도 눈물 나올 것 같잖아!”

남일 얘기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유진이. 나를 보며 샐쭉, 악동처럼 웃으며 말을 잇는다. 나는 가만히, 변명하는 정치인처럼 나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 하는 말로 변명한다. 그거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희세는 입술을 깨물며, 언짢은 표정으로 유진이를 보며 말한다. 남일 같지 않은 걸까. 성빈이는 서글픈 표정으로 유진이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한다. 유진이는 잔뜩 울상인 표정으로 억지웃음 지으며 말한다. 괜히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나, 절대 포기 안 할 거야! 지금 선언하는 거야, 전부한테!”

“……하아?”

“왜, 맞잖아! 지금 여기 있는 애들, 다 웅도한테 관심 있으니까 같이 다니는 거 아니였어?”

“……아니거든!”

“그, 그런 이유 때문에 꼭 같이 다니는 건 아니구!”

“나, 나는 웅도가 친하게 대해줘서, 그래서…….”

유진이의 말에 희세의 날카로운 대답이 귀를 찌른다. 유진이의 되물음은 다른 애들에게 파장이 컸는지 다들 말을 얼버무린다. 희세는 잔뜩 날카로운 기세로 아니라고, 성빈이는 얼버무리며 대답, 민서는 더듬거리며 어물쩍 대답한다.

“얘네가 원래 그래. 다들 자기 속마음을 잘 안 밝히거든. 나는, 한 번 고백했다가 리타이어 했어. 동지네?”

“아 진짜? 언제언제?”

“작년 2학기 때. 그리고서 이젠 설명충으로 전직했지. 오히려 그러니까 마음은 편하더라고.”

“그래. 나는 절대 포기 안 해! 아니, 못 해!”

미래는 잠자코 그런 애들을 쳐다보다 유진이 옆으로 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툭 올리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유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래의 말을 듣는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나머지 여자애들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나는 중간에서 더욱 껄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는다.


뭐, 어떻게든 사건은 일단락 된 것 같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유진이에게 뒤통수를 맞고, 다른 애들까지 속속 쓰러지고. 그 모습은 흡사 호로관의 여포의 추풍낙엽 같았지.

하지만 지능까지 여포였던(?) 유진이는 너무 과한 자신감과 자존감 덕분에 우리쪽 지장, 미래의 꾀주머니에 넘어가고. 탱커이자 어그로 달인(?)인 희세에게 밑천 탈탈 털리고 결국엔 패배하여 모든 기반을 잃고 효수(??). 그렇지만 어떻게 또, 좋게좋게 끝난 것 같다. 우리 밥 패밀리에 들어온 시점에서, 모든 원한관계는 끝난 거겠지. 잘 됐네요, 잘 됐어요.



이제 해결할 건, 리유에 대한 것. 그것 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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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5.09.23 00:23
    No. 1

    그렇게 리유는 리타이어에 이어 NTR까지...(어이 그만 망상아 제발 멈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23 23:08
    No. 2

    ㅠㅠㅠ 리유 불쌍해요 리유 ㅠ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5.09.23 07:02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23 23:08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48 캐르릉
    작성일
    15.09.23 12:42
    No. 5

    리유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해외에서 홀로 주변이랑 의사소통도 잘 안되는데, 애들한테 욕먹고 따돌림 당하면서 각종 인신공격, 인종차별 및 육체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더해 유일한 버팀목이던 주인공은 유학간지 얼마 채 되지도 않았는데 절친이랑 바람피는거 사진으로 염장질 하지, 이별통보 이후 옳다꾸나 전화 한통 제대로 안하면서 스쿨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23 23:08
    No. 6

    ......아닙니다 우리 웅도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ㅠㅠ 분명 속으로는 괴로울 거에요. 딱히 글 쓰면서 한 편 한 편 막기(?) 급급해서 그런 식으로 된 건 아니에욧!!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비행병아리
    작성일
    15.09.23 19:16
    No. 7

    담임 선생님의 뒷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재도전 선언말고 행동으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23 23:09
    No. 8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하는데...... 할겁니다. 다만 너무 힘들어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7 연필유령
    작성일
    15.09.24 23:03
    No. 9

    아무나게님 리유 가슴에 비수를 난사하신닼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09.25 20:34
    No. 10

    ㅎㅎㅎㅎㅎ 저도 뜨끔 했습니다. 좀 답답하긴 하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5.09.30 23:55
    No. 11

    이참에 리유랑 정리 잘하고 자연스럽게 일부다처제로~~~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0.01 21:01
    No. 12

    일부다처제...... 라뇨!? 물론 남자의 로망이긴 하지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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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09화 - 3 +8 15.09.21 1,032 26 21쪽
178 09화 - 2 +9 15.09.20 891 21 17쪽
177 09화. 힘들지만 안녕, 하고 말하기 +8 15.09.19 1,231 16 19쪽
176 08화 - 4 +12 15.09.16 937 18 19쪽
175 08화 - 3 +10 15.09.15 1,063 19 21쪽
174 08화 - 2 +12 15.09.13 1,003 20 19쪽
173 08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16 15.09.11 958 20 19쪽
172 07화 - 3 +10 15.09.09 1,096 17 20쪽
171 07화 - 2 +16 15.09.08 935 17 19쪽
170 07화. 말했을 텐데. +10 15.09.06 1,035 20 18쪽
169 06화 - 4 +6 15.09.04 997 18 23쪽
168 06화 - 3 +10 15.09.01 1,046 20 21쪽
167 06화 - 2 +8 15.08.30 1,004 19 19쪽
166 06화. 일장춘몽 +12 15.08.27 1,219 68 20쪽
165 05화 - 4 +18 15.08.24 1,212 25 18쪽
164 05화 - 3 +14 15.08.22 1,104 21 19쪽
163 05화 - 2 +8 15.08.20 942 27 19쪽
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3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7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19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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