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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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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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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3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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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9쪽

06화 - 2

DUMMY

“……저, 선생님.”

“응?”

“배가 아파서…… 화장실 좀 갔다와도 될까요.”

“너는 여자애들 있는데 창피하지도 않니. 똥쟁이여 똥쟁이.”

“아하하하하─”

“갔다 와.”

“감사합니다─”

영어2 선생님은 작은 핀잔을 주며 허락해주신다. 사감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면 좋겠지만 사감 선생님은 영어1 선생님. 공부 잘 하는 A반 선생님이니까.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여자애들이 깔깔 비웃지만 이 정도에 주눅 들거나 부끄러워할 내가 아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겠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며 밖을 나선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화장실이 정말 엄청 급한 게 아닌 이상 꾹 참았다 쉬는 시간에 가는 타입이다. 그러라고 있는 쉬는 시간이잖아. 그럼에도 굳이 선생님께 작은 핀잔을 받으며 나온 이유는, 휴대폰이 계속 울리고 있기 때문에. 물론 무음으로 해 놔서 소리는 안 났지만.

리유에게 온 전화. 언제 수업하는 줄 알고 있기에 어지간하면, 아니 단 한 번도 수업시간에는 전화를 한 적이 없는 리유. 굳이 시차를 고려해봐도, 리유는 내 생활패턴을 훤히 꿰고 있을 테니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할 시간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가장 일찍 전화가 왔을 때가 저녁시간이었으니까. 그 때도 못 받을 시간은 전혀 아니었고.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한창 수업 중에 졸고 있을 시간인 걸 리유도 알고 있을 텐데, 어쩐 일일까 싶다. 애써 외면하며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정하게 종료를 눌러 안 받을 수는 없으니까. 1분 넘게 화면에 일렁거리는 ‘내 사랑♡♡리유♡♡’ 표시에 내 마음은 더욱 안달이 난다. 쉬는 시간 되면 다시 전화 걸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용서해라, 리유야.

하지만 웬일일까, 부재중 전화가 찍히고 바로, 다시금 전화를 걸어오는 리유. 정말 중요한 일인가 싶다. 한 번 못 받았는데도 두 번째 계속 걸 정도면, 지금 받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말이 있는 거 아니겠어. 해서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수업 중인 교실을 나섰다.

“여보세요?”

『…….』

화장실까지 전력으로 뛰어갔다. 복도에서 바로 받는 건 양심에 찔리고, 리유가 더 전화를 기다리게 하는 것 또한 싫으니까. 얼른 전화를 받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너무 오래 안 받아서 끊어진 줄 아는걸까, 한 번 더 ‘여보세요’ 하고 말해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들어 본다. 통화가 연결된 게 맞다.

“저기…… 리유야? 전화 받은 거 맞아? 무슨 일 있어?”

『……어어, 응.』

“무슨 일이야? 목소리 안 좋은데?”

『…….』

의아한 목소리로 리유를 부른다. 겨우,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리유. 불안한 마음이 가시면서도 이내 걱정스런 생각이 든다. 처음 듣는, 엄청 가라앉은 리유의 목소리. 리유가 아닌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낮은 톤이다. 원래 리유, 목소리 톤이 엄청 높은데. 게다가 특유의 활달함 없이 잔뜩 다운된 기분으로 말하니 더욱 리유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유학 간 내내 즐거운 목소리인 리유였는데, 오늘은 무슨 일 있나보다. 내 물음에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 한다.

“안 좋은 일 있었어? 음…… 말하기 좀 그래?”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뭔데?”

『……흣. 후우…… 흑.』

“……울어?”

이런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리유랑 사귀면서 단 한 번도 말싸움조차 한 적 없어서. 가뜩이나 여자애가 울면 정신이 나갈 것 같이 당황하게 되는데, 그게 내 여자친구면 추가 대미지 적용이다. 민감하기도 하고, 어떤 모범답안이 없는 나이기에 머뭇거리며 리유의 눈치를 살핀다. 잠시 조용해지는 휴대폰. 애써 울음을 감추는 듯하다. 무슨 일이기에, 내 앞에서 펑펑 울지도 못하고 울음을 삼키는 것일까. 묵묵히 리유의 반응을 기다린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리유.

『……헤어져, 우리.』

“……어??”

잘못, 들은 건가……? 아니, 분명히 들었는데. 조용한 상태에서 튀어나온 리유의 나지막한 말이기에 더욱 똑똑히 들렸다. 분명, ‘헤어지자’고 말했다. ……헤어지자고? 나, 나랑, 리유랑?! 그것도, 리유가 먼저?!

『…….』

“저기, 리유야. 나 잘 못 들은 것 같은데. 방금 뭐라고…… 했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헤어지자고.』

내가 아는 리유는 절대 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알량한 ‘신뢰’나 그런 게 아니다. 저런 말투는, 저런 말은, 저런 태도는. 전부 리유가 할법한 말이 아니잖아. 천진난만한 목소리는. 목소리만으로 방긋 웃는 얼굴이 떠오르는 활달한 분위기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난감한 화법은. 내가 아는 리유는, 전부 어디 가고 이런 말을 하는 리유가 있는 건데.

“무슨…… 나, 전혀 못 알아 듣겠거든?! 헤…… 헤어지자고? 그게 말이 돼?”

『……긴 말 하고 싶지 않으니까. 헤어져.』

“아니…… 무슨 말이야 대체! 진짜야? 장난이야? 뭐야!? 무슨 일 있어? 뭔데! 갑자기 왜!”

이제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조금 짜증스런 태도로 말을 꺼냈다. 말을 하다보니 조금씩 분노도 일렁거리는 것 같다. 어째서? 이유도 알 수 없이, 평소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이는 어른 같은 목소리로 ‘헤어지자’고 말하는 리유의 말을 받아들이라고? 전혀 납득할 수가 없잖아! 적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왜 그런 심경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들어야! 납득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럼 왜! 왜 그렇게 만드는데! 왜, 왜에에에!!』

“……!”

귀가 아프도록 빼액 소리를 지르는 리유. 놀라고 분노가 차오르고, 그런 감정들 모두 일시에 뻥 초기화 되는 기분이다. 이런저런 리유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화내면서 소리 지르는 리유 또한 처음이기에 얼떨떨하다.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작게 입을 벌리고 그저 휴대폰에 귀만 대고 있다.

『왜 히이랑 그런 사진 찍었어?! 그걸 왜 또 나한테 보내는데! 왜 거짓말 했어? 나는 마냥 웃기만 하는 바보야? 나 유학 가 있는 동안 그렇게 사귀었어?! 뭔데 대체!』

“……어?!”

잔뜩 흥분한 리유의 목소리. 격앙된 감정이 휴대폰 너머까지 전달될 것만 같다. 듣는 동안 리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잘 벼려진 화살촉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힌다. 리유가 내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도 정확하게 정곡을 찌른다는 뜻. 너무 당황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겠다.

『나는…… 그런 생각도 못 했어. 나라고 멍청하고 바보라서 그런 생각 안 한 게 아니야. 그저 너무 좋아서…… 희세도, 성빈이도, 너도 전부 좋아서! 그랬는데…… 그랬는데……!』

“리, 리유야.”

『……말하지 마. 더 말하지 마.』

“……그게.”

『말하지 말라고!!!』

이제 리유의 목소리는 잔뜩 잠겼다. 목이 약해 금방 쉬어버리는 리유. 목까지 잠기고 쉬었는데 감정은 잔뜩 격앙된 상태이고, 해서 이제는 정말 평소의 리유 같지 않은 목소리다. 어떻게든 리유를 진정시키려고 말을 꺼내지만 이제 리유는 내 말 한 마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더는…… 변명하지 마. 더러우니까.』

“……!”

마음 속 한 가닥 툭 끊기는 느낌. 리유의 그 말에 더는 대답할 수가 없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어두운 세상에 내가 휴대폰을 들고 서 있는 것만 같다. 우두커니 눈을 뜨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휴대폰을 사이로 리유의 말을 듣는 것 뿐이다.

『나…… 웅도 네가 정말 좋았어. 세상 누구보다 좋았어. 나 왕따에서 해방시켜주고, 다른 애들하고도 친하게 지내게 해주고, 모두하고…… 히끅! 정말 좋았는데, 흑! 좋았으니까…… ‘좋은 웅이’로 남아 줘, 흣! 더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툭! 뚜─’

“…….”







……







…………







………………







목이 저리다. 다리도 욱씬거린다. 팔도 아프다. 가위에 눌린 듯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들고 서 있는 자세로,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전화는 끊긴 지 한참 오래 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심장 두근대는 소리만이 고동처럼 들려온다. 검은 세상 속에 리유와의 연결도 끊긴 채 혼자 남아 있는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왜 리유를 울려야만 했을까. 리유에게 잘못한 것이 잔뜩 떠오른다. ……굳이 생각할 것도 없이, 떠오를 것도 없이 리유에게 전부 잘못한 것 투성이였지. 모든 게, 전부가. 착한 리유는 뭐라고 한 마디 안 했는데, 어째서 나란 새끼는……

공허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아무 생각도 생겨나질 않는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굳이 머릿속이 아니라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공허함. 그대로 주저앉고 싶지만 그것조차 몸이 잘 따라주질 않는다. 몸이 뻐근한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아. 하아. 하아.”

마비에서 풀린 듯 간신히 다리를 땠다. 얼굴이 뻑뻑하다. 잔뜩 얼굴을 찡그렸다 탁탁 손으로 얼굴을 때려 정신을 차린다. 음, 내가 여기 왜 있었지. 수업도 안 듣고 왜 나와 있었지.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네. 누구랑 전화라도 했나. 통화 기록이 떠 있네. ‘내 사랑♡♡리유♡♡’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리 지른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소리 지른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나는 왜 그랬을까. 진심 미친새끼였던걸까, 나는. 후회할 짓을 왜 했을까. 바보같은 짓은 왜 하는 걸까. 왜 괴로운 걸까. 왜 눈물이 떨어지는 걸까. 왜 더는 못 만날 것 같을까. 왜. 왜.

왜 헤어지는 걸까.


‘덜컹!’

“?!!”

부서질 듯 세게 문을 열었다. 흠칫 놀라는 여자애들. 그도 그럴 게 아직 수업중이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전혀 마음에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는다. 그저 눈을 돌려 찾을 뿐이다.

“뭐야, 수업중인데.”

“…….”

“?!”

“뭐, 뭔데?! 아, 아파! 야, 야!”

수업중인 영어1 선생님. 그러니까 사감 선생님. 잔뜩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하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을 돌리다 겨우 찾았다. 희세. 성난 얼굴로 뚜벅뚜벅 걸어가 그대로 희세 팔뚝을 잡아채 일으킨다. 깜짝 놀라 소리치는 희세.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힘으로 희세를 끌고 나온다. 선생님이 ‘야!!’ 하고 낮게 소리치는 게 들리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희세를 데리고 나왔다.


“뭐야 미쳤어?! 뭔데!”

“……어떡해.”

“……하아?”

“어떡하냐고! X발!”

“……뭐야.”

희세를 화장실까지 데리고 왔다. 희세는 두 가지 의미로 미쳤냐고 묻는 것일 것이다. 수업 중에 갑자기 데리고 온 것, 그리고 잔뜩 흥분한 상태로 ‘여자 화장실’로 데리고 온 것. 딱 봐도 꽤 오해하기 쉬운 상황이기에. 하지만 나는 지금 장난칠 여력도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말했다. 희세는 상황의 어긋남을 느꼈는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고개를 팍 쳐들고, 나는 쌍욕을 하며 외쳤다. 욕을 해야 할 건 희세 쪽인데. 고개를 드니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희세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리유가, 리유가…… 헤어지자고 했어.”

“뭐?! 언제. 아까 아침까진 그런 말 안 했잖아?”

“……방금 전에, 전화 와서. 받았는데. 허허어…… 하아.”

“왜? 왜 헤어진 건데? 무슨 이유도 없이?!”

“…….”

내 말에 희세는 깜짝 놀란다. 큰 눈이 튀어나올만큼 크게 떠져서 따지듯이 말한다. 말하면서도 나는 허탈에서 헛웃음이 나온다. 아직까지 믿을 수 없는 현실이지만, 더는 리유에게 전화를 걸 용기도 기력도 없는 나다. 지금은 휴대폰에 저장된 ‘내 사랑♡♡리유♡♡’ 도 바꾸고 싶지만 차마 못 바꾸고 있는 나다. 희세의 말에 단번에 대답할 수 없다.

“……사진 찍은 걸 봤데. 나랑 너랑, 놀이공원 가서 찍은 사진을. 그거 보고, 바람 피웠다고 오해…… 바람 피운 거 들켜서, 그만 끝내기로……”

“뭐……?”

말을 하다 스스로 정정한다. ‘오해’가 아니지. 그냥 바람 피운 게 맞지. 내 잘못이 맞다. 그래, 나는 정당한 댓가를 치룬 것이다. 사실은 댓가를 치룬 것도 아니지. 이 정도 괴로운 것 가지고는 전혀. 리유가 받았을 충격과 괴로움에 비한다면 이딴 건…… 희세는 내 말에 입을 다물며 그대로 표정이 굳는다.

“……너, 내가 찍은 사진 가지고 있었어?”

“……아니.”

“……그럼 이상하잖아. 그걸 누가 보내? 그 사진, 너랑 나밖에 모르는데다 가지고 있는 건 나밖에 없는데.”

“……그렇지. 가지고 있는 건 너밖에 없는데.”

“……뭐. 뭐? 너, 설마…… 내가 보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밖에 판단이 흐를 수밖에 없다. 희세를 의심하겠다는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것 밖에는 아무런 수단도 방법도 없다. 나는 희세랑 사진을 찍은 ‘기억’만 있지 사진은 온전히 희세 휴대폰에만 있다. 사진 보내달라고 말한 적도 없다. 누가 희세 휴대폰을 해킹하지 않는한, 사진을 리유에게 전송할 수 있는 것은 희세 휴대폰에서 보내는 것 뿐.

그렇지만 그것도 이상하다. 희세가 그렇게 바보야? 미쳤다고 그런 짓을. 희세가 리유랑 잘 모르고, 작정하고 나를 휘어 잡으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희세는 나만큼이나 리유랑 친하고 리유를 잘 아는데. 리유에게 유학을 적극 권장한 건 물론, 나와 제대로 놀기 위함이었겠지만 그런 벽을 스스로 부숴버리는 짓을 할 어리석은 희세가 아니잖아. 이것저것 앞뒤가 맞질 않는다.

“널 의심하겠다는 게 아니야. 너한테 뭐라고 하려는 것도 아니야.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것도 아니야. 이미 난 끝났으니까. 그치만, 그치만 그 사진은…… 어떻게 보냈는지를 알고 싶어. 그것만 알고 싶어.”

“내가 미쳤다고! 봐! 보낸 흔적 있나!”

내 말에 희세는 얼굴이 빨개져서 바로 휴대폰을 내민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잔뜩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여자애에게는 상당히 민감할 톡 내용이라던가 사진첩 같은 것도 전부 보여준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희세는 나를 말리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그저 리유에게 사진을 보낸 흔적만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없다.

“……없어.”

“그러니까! 안 그래도 나 오전에는 휴대폰 잃어버려서 쓰지도 못 하고 있었는데!”

“……하아.”

“……하아? 설마…… 설마?!”

허탈한 기분으로 희세에게 휴대폰을 돌려준다. 나는 방긋 웃는 표정으로, 희세는 귀엽게 내 볼에 뽀뽀하는 사진을 보니 다시금 마음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희세가 리유에게 메일을 보냈다거나 톡을 보냈다는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사진들도 그대로 있고, 그래서 내 마음은 더욱 괴로워진다. 그럼 대체 무슨 노릇으로 그 사진이……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문제는 ‘사진을 보내서 리유에게 들켰다’가 아니라 그런 짓을 한 내가 잘못인 거지. 희세는 잔뜩 심통이 난 목소리로 말하다 무엇인가 깨달았는지 말을 더듬거린다.

“채유진! 채유진이 휴대폰 가져다 줬잖아!”

“……그건 찾아다 준거잖아. 친구들도 같이 찾아서 줬다고.”

“그 때 뭐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알아! 걔…… 진짜 단단히 미쳤네. 나와, 말하러 가야지.”

“……됐어. 결국엔 내가 잘못한 건데.”

“그게 왜 네 잘못이야! 누가 중간에 수작질을 했는데!”

“잘못한 거지! 리유 두고 바람피운 건데!”

“……잘못한 거라고?”

희세는 분명하게 유진이를 의심하며 표정을 찡그린다. 나는 허탈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 와중에 유진이는 또 왜 걸고 넘어지는 건가. 아무리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휴대폰 찾아준 앤데.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봇짐 내놓으라는 꼴이잖아. 화를 내거나 따질 기력도 없어 힘없이 대답한다. 희세는 내 팔목을 잡고 복도로 나왔다가 내 외침에 손을 뿌리치고 진지한 표정이 됐다. 희세와의 데이트 자체를 부정하니 그것으로 뿔이 난 모양이다.

“…….”

“정웅도. 교무실로 와. 미쳐 돌아가지고. 얼른 와!”

“……네.”

희세는 진지한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나 또한 담담한 표정으로 희세를 마주봤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희세. 그 때 선생님이 지나가며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A반 애들이 나와 쳐다보고 있다. 사감 선생님이 이만큼 화난 모습은 처음본다.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희세를 두고 선생님을 따라 간다.


“야 채유진!”

“응? 무슨 일이야, 희세야?”

“……역겨운 수작질 집어 치우고. 뭐야 너.”

“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덜컥 뛰기 시작한 희세. 한걸음에 달음질 해 유진이 책상 앞까지 뛰어왔다. 격앙된 목소리로 부르는 이름에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유진이. 희세는 소름 끼치는 걸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 애들이 들어서 좋을 게 없기에 소리를 낮췄다. 유진이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내 휴대폰…… 가지고 네가 무슨 짓 했지?”

“무슨 말이야? 계단에 떨어져 있던 거 주워서 그대로 가져다 줬는데.”

“그러면 왜……! 휴대폰 사진이 저절로 다른 사람한테 보내져있는데! 보내면 안 되는 사진이!”

“그…… 그걸 왜 나한테 따져? 나 진짜 안 건드렸어. 네 휴대폰 비번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보내.”

“…….”

“아 진짜~ 이러면 물에 빠진 사람 구하니까 봇짐 꺼내라고 하는 것 같잖아~ 너무하잖아, 그건~”

“…….”

대뜸 말하는 희세에게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유진이. 사정을 전부 말할 수는 없기에 희세는 잔뜩 열받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유진이의 말에 말문이 턱 막히는 희세. 휴대폰을 잠시 유진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비밀번호만큼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유진이의 장난스런 말에 희세는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심증은 있는데 정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잘 봐두랬잖아? 어떻게 되는지.”

“……뭐?”

“아~ 나연아 화장실 갈래?”

“응!”

“야, 야 채유진!”

“아 나는 모른다니까~ 가자!”

“어어~”

낮고 은밀한 목소리로, 희세에게만 들리게 말하는 유진이. 흠칫 놀란 희세. 유진이는 그대로 샐쭉 보란 듯이 미소 짓더니 자리에 일어나 방긋 평소의 생글생글한 웃음으로 옆자리 친구에게 말한다. 희세의 말을 무시하고 친구와 함께 교실을 나서는 유진이. 희세는 멍하니 유진이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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