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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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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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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2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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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05화 - 4

DUMMY

“아함─ 재미있었다.”

“……난 여러모로 다사다난 한 것 같아서.”

“우리 웅도 씨는 그렇지─ 인기가 많아서.”

“아하하. 내가 좀 그렇지.”

“우씨, 칭찬해주니까 막 그러네.”

버스에 앉아 느긋하게 눈을 감고 말하는 유진이. 나는 뒷머리를 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뭐랄까, 내가 알던 여자애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라서. 오늘의 애들은. 희세야, 예전에는 새침데기였지만 지금은 대놓고 어필하는 모습인데. 그건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싶은데 성빈이마저 갑자기 엄청 적극적이 돼 버린 것 같아서. 아직도 아까 박물관에서 볼뽀뽀 당한 감촉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생각하니 또 볼에 감촉이 살아나는 듯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기분 탓이겠지.

더욱 의외인 건 유진이. 그 전까지 유진이의 이미지는 착하면서도 활달하고, 그러면서도 적절하게 나랑 취향이 맞는 좋은 친구, 굳이 비유를 하자면 성빈이를 기반으로 해서 미래의 활달함과 적극성, 드립력을 열화 시켜서 합친, 굉장히 좋은 배합의 캐릭터였는데.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구체화시킨 유진이의 캐릭터가 오늘 와르르 무너진다. 나의 유진쨔응(?)은 그러지 않아!

장난……은 아니겠지? 희세랑 사이가 안 좋으니까, 희세 물 먹으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진짜로 좋아하는…… 그것도 그럴 리가 없잖아. 희세, 성빈이의 관심만으로도 과분한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유진이가 나에게 무슨 매력을 느끼겠어. 나는 청국장 같은 남자라서, 처음에는 별다른 매력을 풍기지 않지만 지내면 지낼수록 은은하게 퍼지는 매력의 남자인데. ……내 입으로 말하니까 되게 이상한 기분인데. 어쨌든 그런 느낌인데 어째서.

“오늘도 발랄한 러브 코미디 찍고 오셨나요?”

“무슨 러브 코미디야. 네 망상 속에서야 그렇겠지.”

“헹! 모처럼 자리 비켜주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저 그러면 섹드립 막 쳐요? 방영불가하게!”

“방영불가는 무슨. 드라마 찍냐.”

“아하핫~ 그럴지도 모르구요~ 아닐지도 모르구요!”

뒤에서 미래 특유의 째지는 듯한 높은 톤의 기분 잔뜩 오른 목소리가 들린다.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게 미래의 개소리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법이다. 역시 도통 이해하지 못할 드립을 치고 있다. ……뭐, 러브 코미디라면 러브 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지. 여자애 세 명한테 시달리는 건. 보이는 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기분은 아니지만. 도리어 좌불안석이랄까, 마지막 양심의 비명이랄까.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분이다.

“여, 역시 웅도, 인기 많구나. 부러워.”

“너는 왜 자꾸 나를 인기쟁이로 몰아가려고. 민서 너도 미래랑 같은 파야? 나 몰아가기?”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그러니까…….”

조금 더듬거리며 운을 떼는 민서. 아침에 보고 지금 처음 보는 것 같은 기분인데. 어쨌든 미래 말대로 오늘은 미래가 피해준 것 같다. 민서랑 같이 다니면서. 장난스럽게 민서에게 말하니 민서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와 손을 함께 저으며 대답한다. 장난도 못 치겠네, 민서한테는. 너무 진지해서. 고개를 저으며 흔들리는 볼살이 귀엽다.

“헤헷, 잘 알아 봤구나. 오빠는 인기쟁이거든! 작년에도 4명의 여자애한테 둘러쌓여서 파란만장한 1년을 보냈─ 컥! 목젖은! 여자애 목을 치는 남자애가 어디있어요!”

“적당히 해야 여자애 취급을 해주지. 민서한테 뭔 말을 하려고.”

“헿! 결국 더러운 진실은 이렇게 감춰주는군요. 알아요, 저도 순수한 민서에게 그런 지저분한 얘기는 하고싶지 않거든요! 민서야, 가자!”

“가긴 어딜가, 버스 안인데.”

“……빼애애애액!”

적절한 차단. 그대로 쭈욱 의자에 무릎을 짚고 나아가 미래의 목젖을 툭 쳐서 저지한다. 미래는 잔뜩 소리 지르다 저 혼자의 망상에 빠져 고개를 홱 돌리며 삐친 척을 한다. ‘척’ 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건 정말 늘 그러니까. 미래, 강철멘탈이라 아무리 무시하고 막 대해도 결코 삐치지를 않으니까. 그래서 덮어놓고 미래에게 막 대하니까. 미래는 대답할 말이 없는지 소리 지르며 눈을 감는다. 더 이상의 대화는 쓸모가 없을 것 같다. 몸을 돌려 앞으로 한다.

“그래도 소풍이 이렇게 끝나니까 아쉽네. 좀 더 재미있게 놀고 싶었는데.”

“버스에서만 6시간 보내는 것 같은데. 하루 중에 절반 가까이.”

“그치 그치? 그치만 재미있었어. 오래간만에 바람도 쐬고.”

“교과과정이란 게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이런 것도 없이 학교에서 14시간 정도…… 중세 농노의 열약한 노동 환경입니다. 휴식도, 급료도 없습니다. 너무도 가혹한 조건이죠. 그런 중세 농노가 12시간 일했는데 우리는 14시간…… 핳.”

“에이,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구. 학교에서 애들이랑 노는 것도 재미있잖아?”

“하하. 그건 유진이 네가 너무 긍정적인 거 아닐까.”

두런두런 얘기하며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댄다. 당일치기 소풍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뭔가 허탈하다. 이동시간이 너무 길었어, 솔직히. 제대로 논 시간보다 오고 가고 하는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긴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말한대로, 어쨌든 학교를 벗어나 오래간만에 바람을 쐰 것 자체는 상당히 좋으니까. ……여자애 셋 끼고 내가 언제 놀아보겠어. 가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횡재한 거구나, 아까 그 상황은.


“……음.”

“─푸하. 후으. 푸하.”

“……흫헣.”

몇 시간이나 달렸을까. 버스 안은 굉장히 조용하다. 아침에 올 때엔 나와 유진이, 미래도 떠들었지만 주위 여자애들도 잔뜩 떠들어서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다들 피곤한지 조용하다. 슬쩍 뒤돌아 쳐다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 그렇지 않은 애들도 피곤한 눈으로 창밖을 본다거나 하고 있다. 피곤하겠지, 당장 버스 6시간만 타도 힘들텐데.

시선을 돌려 유진이를 바라보니 유진이도 잠들어 있다. 뒷자리 미래의 요란한 숨소리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애들 자는 게 방해될까 크게 웃지는 못한다.

자는 유진이의 모습은 귀엽다. 미래처럼 요란하게 소리를 내지도 않고, 어린아이처럼 쌔근쌔근 잘도 자고 있다. 뭔가 훈훈한 기분이 든다. 아까 전 장난스러운 유진이의 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된다. ……미래 이후로, 장난으로 좋아한다는 건 절대 믿지 않는다. 그런 건 없어. 설령 장난치는 쪽에서 장난이라고 해도, 난 진심으로 받아들일 테니까.

“이크. 어어. 여보세요?”

『……웅도 너.』

“어? 왜? 무슨 일 있어?”

카메라를 눌러 유진이의 모습을 찍으려 했다. 귀엽기도 하고, 나중에 장난으로 보여주고 잔뜩 쳐맞고 지우려고. ……이미 맞는 게 결정돼 있는 건가. 막 찍기 직전에, 휴대폰 화면이 전화 발신으로 바뀐다. 리유. 굉장히 엄청 뜨끔해서 얼른 받았다. 하필 유진이 사진 찍으려는데 리유 전화라니. 오금이 저릴 것 같다. 안 그래도 양심이 당기는데 전화를 받는 리유의 목소리마저 뭔가 기운 없고 진지한 목소리다. 뭐야, 뭐?!

『소풍이지? 재미있게 놀았어?』

“어어, 이제 버스 타고 가고 있어. 버스만 한 6시간 타는 것 같애.”

『하하하. 히이랑 비니랑은 같이 잘 못 놀았겠네? 같은 반 아니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반별로 움직이니까. 그래서 미래랑 새로 사귄 다른 애들이랑 같이 놀았어.”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미래랑 아주 안 논 건 아니고─버스에서만 얘기하고 논 것도 어쨌든 논 건 논 것이니까.─, 새로 사귄 다른 애들하고 논 것도 사실이니까. 새로 사귄 애들을 딱히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가뜩이나 희세 등쌀에 시달리는데 리유에게까지 한소리 듣는 건. 뭐, 리유 성격이라면 그런 말도 안 하겠지만.

『……웅도 너, 요즈음 너무 여자애들하고 많이 노는 거 아니야?』

“어……?”

『……아무리 내가 없다지만, 그건 너무해. 히이나 비니는 괜찮지만, 다른 여자애들은…… 나두 불안해? 여자친구인데. 다른 여자애들하고 노닥거리구.』

“…….”

……희세나 성빈이는 괜찮다니. 어이, 믿는 도끼에 발등 제대로 찍히고 있어요, 리유 씨. 그 둘이 제일 적극적이에요. 정작 새로 사귄 유진이나 민서는 그런 낌새도 없어요. 아, 유진이는 조금 있긴 하지. 변명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리유 쪽에서 저런 식으로 말하면 나는 꼼짝없이 할 말이 없어진다. 안타까운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리유 쪽이 더 안타까우니까.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근데 우리 학교 여고인데 나는 그럼 왕따 상태로 있어야 돼? 여자애들 안 사귀려면?”

『아하핫! 장난이야 장난! 웅이 잘 아니까, 안 그러는 거. 방학 때 놀러가면 소개시켜줘!』

“어, 그래야지.”

『으응, 그럼 이따 저녁에 전화할게!』

“응─”

장난스럽게 말하니 리유는 깔깔 웃으며 말한다. 리유도 유학 가서 지내더니 성격이 꽤 많이 바뀌었다. 뭐랄까, 예전보다 훨씬 대범하고 자유분방해졌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장난도 걸고, 방학 때 내가 새로 사귄 친구 소개해달라고 하고. 예전 리유였으면 꼭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좀처럼 친해지지 않으려 했을 텐데. 이런 면은 희세보다 도리어 나아졌구나. 역시,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해. 유학을 간 건 리유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같다. 굳이 영어를 배우는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그러면, 집에 가서 푹 쉬고. 내일부턴 다시 원래대로. 그만 집에 가.”

“네─”

드디어 학교 앞에 도착. 종례하듯 선생님은 간단하게 말하고 애들을 해산시킨다. 쿨하고 할 말만 하는 건 우리 선생님의 좋은 점이지. 아이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나는 슬슬 선생님 쪽으로 다가갔다.

“선생님은 쉴 수 없겠네요. 기숙사에 사니까.”

“……왜 시비일까, 꼬꼬마가. 극도로 스트레스 받은 여자의 분노를 받아보고 싶어서?”

“아하하. 저는 기숙사에 안 살거든요. 아하하하하! 하하! 하하핳하 아악! 어딜 만져요, 쫌!”

“흐흣. 오래간만에 확인♡”

“뭘 확인하는데요!”

괜한 시비다. 예전에는 선생님하고 되게 친했던 것 같은데, 내가 기숙사 나가고부턴 별로 얘기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담임 선생님이 되어도 달라질 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잔뜩 어그로를 끌다가 선생님의 만짐(?)을 당한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특유의 시니컬한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시는 선생님. 이거 엄연히 성추행이라고! 성별 바꿔서 생각해봐! 30대 남자 선생님이 여고생 신체를…… 오우, 진짜 범죄인데.

“……니들이 야자를 해야 내가 편히 쉬는데. 오늘은 그러지도 못하겠네. 지지배들 겁내 떠들겠어. 에휴. 오늘은 봐 줘야지. 집에도 못 가는 불쌍한 애들인데.”

“그래요. 얼마나 불쌍해요. 오늘만큼은 좀, 으아아아~~ 선생님! 아파요 아파! 숨막혀요!”

“어른 다 되셨어요, 자취 조금 하신다고? 앙? 나는 대학생 때 4년 동안 어디서 살았을까요~? 응?? 고등학생 나부랭이가 건방지게 자취하면서?!”

선생님은 한탄하듯 말씀하신다. 2학년이 돼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되셨지만 기숙사 사감 직책은 계속 맡고 계시니까. 고충이 상당하신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어그로를 끌다 이번에는 선생님에게 헤드락을 당한다. 크고 아름다운 선생님의 가슴이 얼굴 쪽에 닿지만 그런 촉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몰아치는 고통과 괴로움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

“어휴. 짜증나게 하지 말고 집에 가라. 내일 보자.”

“네, 선생님도 고생하세요.”

뭔가 사이 좋은 친척 사촌 누나 같은 느낌이다.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며 손짓하고 뒤돌아 기숙사로 올라가신다. 뒷모습이 참 힘들어 보인다. 깍듯이 인사하고 나도 이제 집에 간다. 애들은 벌써 다 갔다.

“어, 기다리고 있었어?”

“응, 뭐. 같이 갈 생각은 아니야.”

“같이 안 가는데 왜 기다려?”

“……뭐. 어차피 너랑 나랑은 가는 방향도 틀린데.”

“그렇긴 한데.”

교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애 셋. 희세, 성빈이, 유진이.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분위기로 셋 다 휴대폰을 보다 희세가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건다. 하긴. 희세, 성빈이 둘만 있었다면 그럭저럭 괜찮았겠지만 유진이까지 같이 있으니 어색할 수밖에. 게다가 희세, 묘하게 시비조로 말한다. 나 뭐 잘못했나. 잘못은 항상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성빈이랑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가.”

“아. 그……럴까?”

“응, 그래.”

“나도 같이……!”

“응? 유진이도 같이 가?”

“……아니야.”

의외로 먼저 제안하는 희세. 사실 이 상황에서 제일 난감하다고 생각한 게, 셋이서 자기랑 가자고 할 까봐 고민하고 있었는데. 성빈이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예전이면 희세나 유진이 배려해서 ‘아니야, 난 그냥 인사만 하려고.’ 하는 반응을 보였겠지만. 적극성이 개화한 성빈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유진이는 밝은 목소리로 말하려다 무언가에 말이 끊기기라도 한 듯 멈칫 한다. 성빈이 쪽을 보느라 보지 못했는데. 다시금 물으니 유진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한다. 음. 뭐 다른 할 말이라도 있었나.

“그럼 갈게, 내일 봐!”

“응! 잘 가~”

“내일 봐, 희세야~”

“응.”

성빈이와 함께 간다. 유진이에겐 내가 인사하고 희세에겐 성빈이가 인사한다. 방긋 웃으며 뒤돌아 걷는 유진이. 마악 시선을 앞쪽으로 돌리니 성빈이가 내 손을 잡는다. 흠칫 놀라 성빈이를 보니 성빈이는 얼굴이 발그래 해져서 ‘히힛’ 하고 미소 짓곤 모르는 체 한다. ……뭔가, 성빈이처럼 성실한 애가 이러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라는 속담이 떠오르잖아.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딱히 손을 풀지는 않고 묵묵히 걷는다. 손 뿌리치면 성빈이가 무안해 할 거 아냐.





“할 말 있어.”

“어. 그래서 아까 말 끊고 남았잖아.”

“……무슨 속셈이야?”

“어? 무슨 속셈?”

뒤돌아 걸으려 하는 유진이를 붙잡는 희세. 싱긋 웃으며 뒤돌아 대답하는 유진. 두 여자 사이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희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유진을 쳐다보며 말한다. 유진이도 지지 않고 희세를 마주본다.

“……너, 웅도 좋아해?”

“아핫. 웃기네. 내가 왜 그걸 말해줘야 해? 네가 뭐 웅도 여자친구라도 돼? 웅도 여자친구, 따로 있잖아?”

“……걸리적거리니까 말하는 거야.”

“흐흥. 재미있네. 희세, 진짜 재미있어.”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는 희세. 유진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능글능글하게 대답한다. 웅도와 같이 있을 때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에 희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다시금 눈을 찡그리며 말하는 희세. 유진이는 재미있다는 듯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내가 왜 걸리적 거려? 신경 쓰여? 웅도 주위에 얼쩡거리니까?”

“어. 짜증나. 웅도, 내가 좋아하니까. 건드리지 마. 건드릴 거면 확실히 선전포고 하고 건드리던가. 그러면 뭐라 안 할 테니까.”

“하핳! 침 발라놨어? 되게 초등학생 같은 발상이네. 그럼 먼저 침 바른 사람 있지 않아? 침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여자친구인 애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상관없잖아.”

“어머. 리유라는 애, 되게 여리게 생겼던데. 희세 나쁘구나. 희세하고도 친구라고 들었었는데. 모진 애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애면 친구고 뭐고 없구나, 희세는.”

“…….”

느물느물한 유진이의 태도에 당당하게 대답하는 희세. 그 대답에 유진이는 약간 정신이 나간 것처럼 유쾌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유진이의 말에 희세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대답한다. 이번에는 우려하는 듯한 목소리로, 잔뜩 비꼬는 태도로 말하는 유진이. 보면 볼수록 대외적인 유진이의 모습과는 다른 이상한 모습인지라 희세는 어이가 없어 잠자코 그런 유진이를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

“……전쟁놀이 해? 진짜 전쟁이 선전포고 하고 일어나? 6·25가 왜 일어났는줄 알아? 방심해서 그래. 아무도 쳐들어 올 줄 몰랐겠지. 그런 거 말하면서 뺏는 거 아니다? 제대로 뺏을 거면, 말없이 뺏어야 직빵이지.”

“……그래서, 네가 뺏겠다, 그 말이야?”

“……흐흥. 머리회전은 빠르구나, 희세.”

이번에는 낮게 깔린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하는 유진이. 살벌한 눈매까지, 평소의 다정한 유진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무서운 모습이다. 물론 그런 것에 두려움을 느낄 희세는 아니다. 잠자코 담담하게 대답하는 희세. 피식 웃는 얼굴로 돌아오는 유진이. 잠자코 대답하다. 그러다 희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 희세는 움찔 움직이게 된다.

“……그러니까 조심해. 누가 누구보고 경고할 처지가 아니야. 가장 먼저 부서지는 게 누구인지 똑똑히 봐. 누가 누구를 누구 것으로 만드는지.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말고. 선전포고 하는 거야, 지금.”

“…….”

“……악감정은 없어. 흐흥. 친구로 만났으면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싫잖아, 그런 건?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 공동소유라니. 독점하고 싶은 건 세상 누구나 가진 욕망이니까.”

“……너.”

“그럼 잘 가. 볼 수 있으면 또 보고. 아, 희세 나 싫어하지. 그럼.”

“…….”

희세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희세 머리칼을 쓰다듬는 유진이. 낮게 깔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희세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자기 앞에서만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유진이지만, 지금 이 모습은 정말 상상도 못할 무서운 모습이기에.

희세를 지나쳐 미소를 띠고 말하는 유진이. 다시금 평소의 원만하고 다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희세는 그런 유진이의 모습이 더욱 소름끼친다. 아직 말투까지는 돌아오지 않았는지 냉소적이고 비꼬는 태도로 말하더니 방긋 웃으며 손짓하고 그대로 걸어간다. 희세는 눈을 크게 뜨고 유진이를 바라본다. 어떻게, 더 할 말이 없다. 멍하니 걸어가는 유진이를 쳐다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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